”하준이 말이 지금 추신 자본 규모가 우리 나라에서 손에 꼽는 수준일 거라는데.”최대범이 갑자기 말했다.장춘자가 놀랐다.“그럴 리가?”“아직도 20년 전 추신만 생각하는 거요? 그 때만 해도 내가 동현이를 우습게 생각했지. 음악에서는 프린스니 뭐니 했지만 가업은 별볼일 없었잖아. 그래서 란이가 추신을 많이 도와주기도 했지. 나도 다 알면서도 못 본 체해줬어. 하지만 하준이 말이 사실이라면 추신이 뭔가 꿍꿍이가 있어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싶구먼.”“그러네요. 지난 번에 약혼식 만해도 사부인은 몇 년째 추신 상황이 굉장히 어렵다면서 많이 도와달라고 하던데.”장춘자가 울컥했다.“전에 내내 하준이가 일을 열심히 안 해서 내 체면만 깎아 먹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양하에게 FTT 경영을 맡긴 건데 양하가 이렇게 계속 친가라고 추신만 도와주다가는 FTT가 길가로 나앉을 판이야.”최대범이 그 길로 변호사에게 전화를 했다.“이리로 한 번 건너오게.”한나절 만에 최대범이 FTT주식과 회장자리를 모두 최하준에게 양도한다는 이야기가 온 서울에 다 퍼졌다.온 가족이 본가로 모여들었다.최민이 제일 먼저 반대했다.“왜 이러세요? 왜 갑자기 FTT를 하준이에게 물려준다고 그러셔? 내가 그동안 아빠한테 어떻게 했는데?”“뭐라고?”그 말을 듣고 최대범은 등짝이라도 후려치고 싶었다.“아니, 걱정돼서 그러죠. 하준이가 날 미워하니까 걔가 회장자리 올라가면 분명 나랑 대립하게 될 텐데.”최민이 놀라서 얼른 최대범이 손을 꾹 잡아 누르며 말했다.“오빠랑 언니는 할 말 없어?”최진은 입을 비죽거렸다.“난 하준이랑 뭐 딱히 얽힌 건 없는데. 하준이에게 FTT를 안 맡기면 뭐, FTT 절단 나는 꼴을 보자는 거야? 지금 다들 비웃으면서 우리 회사 망하기만 기다리고 있는데.”“말은 잘도 하셔.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게 저렇게 쓸모가 없으니….”최민이 대놓고 최진을 욕했다.“입 다물어.”최대범이 짜증스럽게 최양하를 쳐다봤다.“양하는 어떻게 생각하니?최양하는 주먹
“뭐라고?”추성호는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지금 엄청난 자금 들여서 생산라인 다 만들어 놨더니 인제와서 죽으란 소립니까?”“아니 뭘 또 죽기까지 해. 지금까지 번 것도 꽤 되잖아?”최양하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그리고 최하준 어렸을 때 사진은 추신 쪽에서 흘러나온 거 아닌가?”“강여름 그 여자가 하는 말을 믿는 겁니까? 게다가 우리가 가족도 아닌데 어디서 그런 사진을 구해요?”최양하는 아무 말이 없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러나 추동현의 평소 행실로 봤을 때 그럴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하여간 우리 식구들이 죄다 날 의심하고 있어서 최하준이 회장으로 올라가고 나면 제일 먼저 나부터 해 넘기려고 들 텐데.”“됐어요. 어쨌든 어머님도 계신데. 어머님의 주식은 결국 당신이 물려받을 거 아닙니까?”이쪽 전화를 끝내자마자 추성호는 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계획이 실패했습니다.”“그래. 내가 최하준과 최대범의 투지와 강여름을 모두 너무 얕잡아 봤어.”추성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전에 강여름에 대해 조사해 본 적이 있었다. 화신 대표라고는 하지만 대표 자리에 앉은 지도 얼마 안 된다. 하지만 어제 라이브를 보니 전 세계로 송출되는 방송 카메라 앞에서도 침착했다. 심지어 청중과 국내 최고라는 FTT에 맞서면서도 내내 냉철하고 날카로웠다.하준의 병이 재발하고 나서 여름이 여하를 일부 떠받쳤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왠지 약혼녀인 서유인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다르다지만 한 아버지 자식인데 서유인은 왜 저렇게 하찮아 보일까?’“이제 앞으로는 어떻게 합니까?”“다행히 내가 애진작에 플랜B를 준비해 뒀었지. 이제 걔가 등장할 때가 됐군.”“기대하겠습니다.”추성호가 한껏 공손하게 답했다.‘이분의 작전 능력은 정말 감탄스러워. 얼마 안 가서 추신은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이 될 거야.FTT만 끝장난다면…’******다음날장춘자는 해변 별장으로 주식을 직접 들고 왔다.들어가서 보니 청소하는 이진숙을 제외하고는 아
장춘자는 눈물범벅이 되어 있을 하준을 상대할 각오를 하면서 왔는데 이렇게 평온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두 사람이 문으로 들어오다가 장춘자가 있는 것을 보았다.하준의 얼굴에서 온기가 싹 가시더니 방어적이고 싸늘한 기운이 돌았다.장춘자는 철렁했다.“할머니, 안녕하세요?”여름이 시원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불쾌한 일 따위는 없었다는 듯이 사뭇 평온한 말투였다.장춘자는 여름을 흘겨볼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하준의 얼굴이 확 어두워졌다.“내 와이프가 눈치 보게 만드실 거면 돌아가세요.”“얘가….”장춘자는 혈압이 확 올랐다.“난 네 할미다. 내가 죽어야 속이 시원하겠니?”“우리 식구들은 항상 내 상처에 칼을 꽂는 사람들이니까요. 이번에 여름이 아니었으면 날 또 무자비하게 정신병원에 처넣었을 겁니다.”하준이 비꼬아 말했다.“정말 내게 조금이라도 가족의 정이라는 게 있다면 강여름 씨를 존중해 주시죠.”장춘자는 마음이 답답했다.여름이 상황을 보고 있다가 끼어들었다.“사실 얼굴까지 이 지경이 됐는데 화는 제가 내야죠. 설마 제가 FTT 정도 되는 집안 출신이 아니라고 이런 대접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장춘자는 입이 벌어진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데 하준이 먼저 말했다.“처음부터 내가 먼저 강여름에게 매달렸어요. 쓸데없는 생각 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날 처음 만났을 때 강여름은 내가 누군지도 몰랐어요. 서유인이랑 사귀는 척했던 것도 다 내가 강여름에게 질투를 불러일으키려고 벌인 일입니다.”“어떻게 네가 유인이한테 그런 짓을 하니?”장춘자는 좀 화가 났다.“그렇게 서유인이 좋으시면 손녀로 입양하세요.”하준의 눈동차가 차가웠다.“다 너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었니? 유인이가 얼마나 괜찮은 애인에….”“강여름은 괜찮은 사람이 아니란 말씀입니까?”하준이 갑자기 날카롭게 말을 끊었다.“둘 다 서경주의 딸입니다. 내 와이프가 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누구에게서 태어날지를 여름이가 정했나
“그건 위자영이 몇 억을 집어넣었으니까 그런 겁니다.”하준의 눈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내 추측이 틀리지 않다면 이모가 여름 씨 얼굴을 망치는 대가로 위자영이 지불한 거니까 다 허위 실적입니다.”장춘자는 깜짝 놀랐다. 대체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이 정도로 끝나는 걸 고맙게 생각하세요. 할머니, 할아버지만 아니었으면 이 정도로 안 끝납니다.”하준이 일어섰다.“자식들 간수 잘하십시오. 하나는 남편에게 퍼줄 줄밖에 모르고, 하나는 허위 실적이나 만들어 내고,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건 무능하기 짝이 없고. 제가 없어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년에 발 뻗고 지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장춘자는 충격으로 몇 년은 팍삭 늙어버린 기분이었다.******12시 30분.여름이 다 된 음식을 들고 나와서 보니 분위기가 사뭇 무거웠다.일단 할머니께 밥을 담아 내드렸다.장춘자가 테이블에 차려진 음식을 보더니 조금 놀랐다. 자기 집에서 셰프가 한 음식보다 가정식 느낌인데도 매우 진수성찬이었다.게다가 그렇게도 징글징글하게 밥을 안 먹던 최하준이 너무나 맛있게 식사하는 게 아닌가? ‘정말 맛있게 먹네….’장춘자도 보쌈 고기를 한 점 집어 보았다. 입에서 살살 녹는 게 아주 일품이었다.그런데 한 점 더 먹으려고 봤더니 하준이 얼마나 빨리 먹어 치웠던지 벌써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아유, 그만 먹어. 할머니 아직 잡숫지도 못했는데….”여름이 접시를 장춘자 앞으로 밀었다.하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아, 좀 더 하지, 왜 요거밖에 안 했어?”“어제 저녁에도 먹었잖아? 이렇게 똑같은 것만 너무 많이 먹으면 안 좋아.”여름이 나물을 집어 주었다.“영양을 균형 있게 섭취해야지. 편식하면 안 돼. 자꾸 이렇게 편식하면 다시는 밥 안 해줄 거야~.”“쳇, 그러면 할 수 없지.”뭘 먹어도 한두 젓가락 먹고 나면 상을 물리던 하준이 이렇게 얌전히 나물을 받아 밥 두 그릇을 비우는 것을 보고 장춘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덩달아
“쭌, 나도 할머니가 계셨어요. 돌아가시고 나서야 왜 진작 할머니랑 더 시간을 보내지 못했나 후회가 되더라고요. 가족은 피로 연결된 존재잖아요. 떼내고 싶다고 떨어지는 게 아니라니까. 자기를 기쁘게 할 수 있다면 나는 좀 더 포용하고, 더 용서할 수 있어요.”여름이 하준의 눈을 바라보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하준은 감동했다.가슴 밑바닥에서 흐르던 감정이 갑자기 마그마처럼 터져 나오는 느낌이었다.여름의 얼굴을 꼭 붙들고 고개 숙여 입을 맞췄다.“자기, 미안해.”‘정말 너무 미안해. 내 가족이 당신의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놨는데도 날 위해서 모두를 포용하겠다니….하지만 그러지 마. 당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은 내가 하나하나 다 갚아줄 거야.이모라도 해도 예외가 될 수는 없어.’“언젠가는 내가 당신 얼굴 꼭 되돌려 줄게. 사랑해. 죽을 때까지, 죽으면 다음 생에서까지도 변함없이 사랑해.”여름은 두 눈을 감았다. 이 순간, 너무나 든든하고 평온한 느낌이었다.‘얼굴이 어떠면 어때? 괜찮아. 최하준만 괜찮다면 난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다음 날.여름은 출근했다.상혁이 간호조무사 몇 명을 데리고 아주 이상한 얼굴을 하고 들어왔다. “회장님, 병원에서 추천한 간호조무사들입니다.”책을 읽던 하준이 얼굴을 들었다.하준의 병은 하루 이틀에 좋아지는 병이 아니었다. 여름도 자기 일이 있는데 24시간 붙어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관리를 위해 집에 전문 간호 요원이 필요했다.그런데 하준의 시선이 한 간호조무사의 얼굴에서 멈추더니 몇 초간 숨 쉬는 것도 잊은 듯했다.그러나 곧 정신을 차렸다.“이름이 뭔가?”하준이 너무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상대는 움찔하더니 고개를 숙이고 답했다.“지다빈이라고 합니다.”“지다빈이라고?”하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백지안이란 사람이랑 압니까?”“사촌 언니인데요.”지다빈이 눈을 깜빡이며 답했다.“우리 언니를 아세요?”“……”‘안다 뿐이겠어?’하준은 속으로 긴 한숨을 쉬었다.“그렇다며 이서그
그 말을 듣고 하준의 눈이 어두워졌다.“여기는 우연히 오게 됐나?”“그런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이번 시즌에 가장 근무 성적이 좋은 사람들만 뽑아서 후보로 보냈거든요.”하준은 끄덕였다. 마침내 마음에 의심을 걷어냈다.“영하는 지금 누가 최고 책임자지?”“백소영 씨입니다.”“남의 자리를 뺏어 놓고 아직 욕심을 놓지 못했군. 영하에는 반도체 공급하지 마.”“…알겠습니다.”상혁의 입술이 달싹이는 것을 보니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오후 5시.여름은 조금 일찍 퇴근했다. 막 차에서 내리려는데 농구장에서 공 소리가 들렸다.여름의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했다. 하준이 두 손을 살짝 들고 점프했다. 깔끔하게 3점 슛이 들어갔다. 한참 그러고 놀았는지 등이 살짝 젖어 있었는데 활기차 보였다.여름은 넋을 잃고 하준을 바라보았다.학생 때는 한선우가 세상에서 농구를 제일 잘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의 하준과 비교해 보니 진짜 농구를 잘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짝짝짝!”농구장에 갑자기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름은 그제야 코트 가장자리에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평범한 청바지에 흰 티를 입고 검은 머리는 포니테일로 묶어 올리고 있었다.“회장님 너무 멋지세요.”여자애가 물과 수건을 들고 다가갔다.“벌써 40분 지났어요. 이제 좀 쉬셔야죠.”“응.”하준이 물을 받아 꿀꺽꿀꺽 마셨다. 저녁노을을 받은 두 사람의 모습이 눈부셨다.“쭌….”여름이 부르면서 얼른 다가갔다.하준이 돌아보더니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자기, 오늘은 일찍 왔네?”“좀 일찍 퇴근했지. 혼자 심심할까 봐.”여름이 그 여자애를 쳐다봤다. 자세히 보니 말쑥하게 생기긴 했지만 예전의 자신의 미모만 못했다. 심지어 서유인보다도 못한 듯했다.여름은 속으로 가만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랑을 혹시나 잃게 될까 싶어 속이 좁아지기 마련이다. 여름도 예외가 아닌 듯했다.“안
여름은 마음이 좀 답답했다.‘남의 이름에 백지안처럼 ‘지’자가 들어갔다고 신경 쓰인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그렇다고 엄청 대범한 사람인 척하기도 싫어서 대놓고 비죽거렸다.“어린애 말을 잘도 듣네.”하준이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허리를 숙여 여름의 몸 냄새를 맡는 시늉을 했다.“뭐 타는 냄새 안 나? 질투심에 강여름 불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어쭈, 아주 이런 걸로 농담을 하시겠다?”여름이 하준을 찰싹 때렸다.말이 때린 것이지 실상은 간지러울 수준이었다.여름의 손을 와락 움켜쥐더니 그 손을 하준이 입술로 가져가 쪽하고 키스했다.“예전 같으면 내가 말 안 듣지. 오히려 주위에 정신병원에서 파견 나온 의료인이라면 반감을 가졌겠지. 하지만 지금은 강여름을 위해서 빨리 건강해지고 싶어졌거든. 다시는 당신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알겠지?”여름은 입술을 깨물었다. 갑자기 자기가 너무 쩨쩨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알았어요. 하지만 좀 나이가 많은 사람을 두거나 남자로 해도 되잖아요? 출근하고 나면 하루 종일 당신이랑 저 사람이랑 둘이서만….”하준이 웃더니 여름의 턱을 치켜올렸다.“이거, 이거, 진짜 질투하는데?”“최하준!”여름은 새빨개진 얼굴로 하준을 노려보았다.“적당히 하시지?”“나 참, 난 입맛이 엄청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아직도 몰라? 그러니까 내 옆자리는 강여름이 아니면 안 된단 말이야.”하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전에 내가 서유인이랑 있을 때는 꿈쩍도 안 하는 것 같더니, 엄청 질투하면서 말만 안 한 거군?”“……”팩폭을 당하자 매우 민망했다.“흥, 당신이랑 안 놀아. 밥이나 해야지.”여름은 하준에게 수건을 집어 던지고는 밥을 하러 내려갔다.주방에 들어가니 지다빈이 리스트를 들고 왔다.“사모님, 이게 평소 회장님이 드시는 식단표인데요. 조금 더 영양이 풍부하고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위주로 준비해 주시길 부탁드릴게요. 폭식은 피해야 하고요.”“알았어요. 고마워요.”여름이 목록을 받아 들더니 갑자기
지다빈은 여름의 조심스럽게 여름의 눈치를 살피며 살그머니 문을 닫고 나갔다.하준이 웃음을 띠고 말했다.“당신 때문에 애 놀랐잖아.”“……”여름은 입을 꾹 다물었다.“내가 뭘 어쨌다고 놀라요? 엄청 다정하게 말했는데.”“그래. 하지만 엄청 질투가 섞여 있었지.”하준이 끄덕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냥 우유잖아. 그런 걸로 질투하지 마.”“……”‘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쩨쩨한 사람 같잖아.’여름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억울했다.‘내가 너무한 거야? 아니잖아?’“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이리 와. 머리 말려줄게.”하준이 드라이어를 꺼냈다.머리를 다 말리고 여름은 이불을 파고 들어갔다.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틀 연속 사랑을 나누고 나니 하준이 어쩐지 더 다정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여름은 여전히 조금 부끄러웠다.그런데 오늘은 하준이 불을 끄더니 얌전히 누워있었다. 평소의 하준 같지 않았다.여름은 살짝 어색해하면서도 하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우리 애기 착하지, 자자.”다정하게 말하며 하준이 여름의 등을 토닥였다.여름은 믿을 수가 없었다. 입술을 깨물고는 하준의 목을 껴안았다.“쭈운….”불을 껐기 망정이지 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여줄 뻔했다.움찔하더니 하준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그러나 곧 진정했다.“아까 다빈 씨가 그러는데 아직 약 복용 중이고 상태가 안정적이지 않으니까 부부관계 조심하라고 하더라고.”“……”여름은 어이가 없었다.“하지만 내내… 괜찮았잖아. 굳이 조심할 필요가 있을까?”“나 참, 내가 그렇게 좋아?”하준이 갑자기 플러팅하듯 눈썹을 치켜세웠다.“아니거든요!”여름은 돌아누웠다.‘사람 부끄럽게, 진짜!’“에헤이, 거짓말쟁이!”등 뒤에서 하준이 꼭 안았다.“우리 애기 착하지. 난 지금 너무 자극을 받으면 안 돼. 내가 날 컨트롤하지 못해서 당신을 다치게 할까 봐 겁난다고. 지난번에도 그랬잖아.”여름은 입술을 깨물고는 한참 만에야 억지로 답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