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위자영이 몇 억을 집어넣었으니까 그런 겁니다.”하준의 눈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내 추측이 틀리지 않다면 이모가 여름 씨 얼굴을 망치는 대가로 위자영이 지불한 거니까 다 허위 실적입니다.”장춘자는 깜짝 놀랐다. 대체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이 정도로 끝나는 걸 고맙게 생각하세요. 할머니, 할아버지만 아니었으면 이 정도로 안 끝납니다.”하준이 일어섰다.“자식들 간수 잘하십시오. 하나는 남편에게 퍼줄 줄밖에 모르고, 하나는 허위 실적이나 만들어 내고,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건 무능하기 짝이 없고. 제가 없어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년에 발 뻗고 지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장춘자는 충격으로 몇 년은 팍삭 늙어버린 기분이었다.******12시 30분.여름이 다 된 음식을 들고 나와서 보니 분위기가 사뭇 무거웠다.일단 할머니께 밥을 담아 내드렸다.장춘자가 테이블에 차려진 음식을 보더니 조금 놀랐다. 자기 집에서 셰프가 한 음식보다 가정식 느낌인데도 매우 진수성찬이었다.게다가 그렇게도 징글징글하게 밥을 안 먹던 최하준이 너무나 맛있게 식사하는 게 아닌가? ‘정말 맛있게 먹네….’장춘자도 보쌈 고기를 한 점 집어 보았다. 입에서 살살 녹는 게 아주 일품이었다.그런데 한 점 더 먹으려고 봤더니 하준이 얼마나 빨리 먹어 치웠던지 벌써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아유, 그만 먹어. 할머니 아직 잡숫지도 못했는데….”여름이 접시를 장춘자 앞으로 밀었다.하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아, 좀 더 하지, 왜 요거밖에 안 했어?”“어제 저녁에도 먹었잖아? 이렇게 똑같은 것만 너무 많이 먹으면 안 좋아.”여름이 나물을 집어 주었다.“영양을 균형 있게 섭취해야지. 편식하면 안 돼. 자꾸 이렇게 편식하면 다시는 밥 안 해줄 거야~.”“쳇, 그러면 할 수 없지.”뭘 먹어도 한두 젓가락 먹고 나면 상을 물리던 하준이 이렇게 얌전히 나물을 받아 밥 두 그릇을 비우는 것을 보고 장춘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덩달아
“쭌, 나도 할머니가 계셨어요. 돌아가시고 나서야 왜 진작 할머니랑 더 시간을 보내지 못했나 후회가 되더라고요. 가족은 피로 연결된 존재잖아요. 떼내고 싶다고 떨어지는 게 아니라니까. 자기를 기쁘게 할 수 있다면 나는 좀 더 포용하고, 더 용서할 수 있어요.”여름이 하준의 눈을 바라보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하준은 감동했다.가슴 밑바닥에서 흐르던 감정이 갑자기 마그마처럼 터져 나오는 느낌이었다.여름의 얼굴을 꼭 붙들고 고개 숙여 입을 맞췄다.“자기, 미안해.”‘정말 너무 미안해. 내 가족이 당신의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놨는데도 날 위해서 모두를 포용하겠다니….하지만 그러지 마. 당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은 내가 하나하나 다 갚아줄 거야.이모라도 해도 예외가 될 수는 없어.’“언젠가는 내가 당신 얼굴 꼭 되돌려 줄게. 사랑해. 죽을 때까지, 죽으면 다음 생에서까지도 변함없이 사랑해.”여름은 두 눈을 감았다. 이 순간, 너무나 든든하고 평온한 느낌이었다.‘얼굴이 어떠면 어때? 괜찮아. 최하준만 괜찮다면 난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다음 날.여름은 출근했다.상혁이 간호조무사 몇 명을 데리고 아주 이상한 얼굴을 하고 들어왔다. “회장님, 병원에서 추천한 간호조무사들입니다.”책을 읽던 하준이 얼굴을 들었다.하준의 병은 하루 이틀에 좋아지는 병이 아니었다. 여름도 자기 일이 있는데 24시간 붙어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관리를 위해 집에 전문 간호 요원이 필요했다.그런데 하준의 시선이 한 간호조무사의 얼굴에서 멈추더니 몇 초간 숨 쉬는 것도 잊은 듯했다.그러나 곧 정신을 차렸다.“이름이 뭔가?”하준이 너무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상대는 움찔하더니 고개를 숙이고 답했다.“지다빈이라고 합니다.”“지다빈이라고?”하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백지안이란 사람이랑 압니까?”“사촌 언니인데요.”지다빈이 눈을 깜빡이며 답했다.“우리 언니를 아세요?”“……”‘안다 뿐이겠어?’하준은 속으로 긴 한숨을 쉬었다.“그렇다며 이서그
그 말을 듣고 하준의 눈이 어두워졌다.“여기는 우연히 오게 됐나?”“그런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이번 시즌에 가장 근무 성적이 좋은 사람들만 뽑아서 후보로 보냈거든요.”하준은 끄덕였다. 마침내 마음에 의심을 걷어냈다.“영하는 지금 누가 최고 책임자지?”“백소영 씨입니다.”“남의 자리를 뺏어 놓고 아직 욕심을 놓지 못했군. 영하에는 반도체 공급하지 마.”“…알겠습니다.”상혁의 입술이 달싹이는 것을 보니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오후 5시.여름은 조금 일찍 퇴근했다. 막 차에서 내리려는데 농구장에서 공 소리가 들렸다.여름의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했다. 하준이 두 손을 살짝 들고 점프했다. 깔끔하게 3점 슛이 들어갔다. 한참 그러고 놀았는지 등이 살짝 젖어 있었는데 활기차 보였다.여름은 넋을 잃고 하준을 바라보았다.학생 때는 한선우가 세상에서 농구를 제일 잘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의 하준과 비교해 보니 진짜 농구를 잘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짝짝짝!”농구장에 갑자기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름은 그제야 코트 가장자리에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평범한 청바지에 흰 티를 입고 검은 머리는 포니테일로 묶어 올리고 있었다.“회장님 너무 멋지세요.”여자애가 물과 수건을 들고 다가갔다.“벌써 40분 지났어요. 이제 좀 쉬셔야죠.”“응.”하준이 물을 받아 꿀꺽꿀꺽 마셨다. 저녁노을을 받은 두 사람의 모습이 눈부셨다.“쭌….”여름이 부르면서 얼른 다가갔다.하준이 돌아보더니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자기, 오늘은 일찍 왔네?”“좀 일찍 퇴근했지. 혼자 심심할까 봐.”여름이 그 여자애를 쳐다봤다. 자세히 보니 말쑥하게 생기긴 했지만 예전의 자신의 미모만 못했다. 심지어 서유인보다도 못한 듯했다.여름은 속으로 가만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랑을 혹시나 잃게 될까 싶어 속이 좁아지기 마련이다. 여름도 예외가 아닌 듯했다.“안
여름은 마음이 좀 답답했다.‘남의 이름에 백지안처럼 ‘지’자가 들어갔다고 신경 쓰인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그렇다고 엄청 대범한 사람인 척하기도 싫어서 대놓고 비죽거렸다.“어린애 말을 잘도 듣네.”하준이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허리를 숙여 여름의 몸 냄새를 맡는 시늉을 했다.“뭐 타는 냄새 안 나? 질투심에 강여름 불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어쭈, 아주 이런 걸로 농담을 하시겠다?”여름이 하준을 찰싹 때렸다.말이 때린 것이지 실상은 간지러울 수준이었다.여름의 손을 와락 움켜쥐더니 그 손을 하준이 입술로 가져가 쪽하고 키스했다.“예전 같으면 내가 말 안 듣지. 오히려 주위에 정신병원에서 파견 나온 의료인이라면 반감을 가졌겠지. 하지만 지금은 강여름을 위해서 빨리 건강해지고 싶어졌거든. 다시는 당신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알겠지?”여름은 입술을 깨물었다. 갑자기 자기가 너무 쩨쩨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알았어요. 하지만 좀 나이가 많은 사람을 두거나 남자로 해도 되잖아요? 출근하고 나면 하루 종일 당신이랑 저 사람이랑 둘이서만….”하준이 웃더니 여름의 턱을 치켜올렸다.“이거, 이거, 진짜 질투하는데?”“최하준!”여름은 새빨개진 얼굴로 하준을 노려보았다.“적당히 하시지?”“나 참, 난 입맛이 엄청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아직도 몰라? 그러니까 내 옆자리는 강여름이 아니면 안 된단 말이야.”하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전에 내가 서유인이랑 있을 때는 꿈쩍도 안 하는 것 같더니, 엄청 질투하면서 말만 안 한 거군?”“……”팩폭을 당하자 매우 민망했다.“흥, 당신이랑 안 놀아. 밥이나 해야지.”여름은 하준에게 수건을 집어 던지고는 밥을 하러 내려갔다.주방에 들어가니 지다빈이 리스트를 들고 왔다.“사모님, 이게 평소 회장님이 드시는 식단표인데요. 조금 더 영양이 풍부하고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위주로 준비해 주시길 부탁드릴게요. 폭식은 피해야 하고요.”“알았어요. 고마워요.”여름이 목록을 받아 들더니 갑자기
지다빈은 여름의 조심스럽게 여름의 눈치를 살피며 살그머니 문을 닫고 나갔다.하준이 웃음을 띠고 말했다.“당신 때문에 애 놀랐잖아.”“……”여름은 입을 꾹 다물었다.“내가 뭘 어쨌다고 놀라요? 엄청 다정하게 말했는데.”“그래. 하지만 엄청 질투가 섞여 있었지.”하준이 끄덕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그냥 우유잖아. 그런 걸로 질투하지 마.”“……”‘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쩨쩨한 사람 같잖아.’여름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억울했다.‘내가 너무한 거야? 아니잖아?’“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이리 와. 머리 말려줄게.”하준이 드라이어를 꺼냈다.머리를 다 말리고 여름은 이불을 파고 들어갔다.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틀 연속 사랑을 나누고 나니 하준이 어쩐지 더 다정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여름은 여전히 조금 부끄러웠다.그런데 오늘은 하준이 불을 끄더니 얌전히 누워있었다. 평소의 하준 같지 않았다.여름은 살짝 어색해하면서도 하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우리 애기 착하지, 자자.”다정하게 말하며 하준이 여름의 등을 토닥였다.여름은 믿을 수가 없었다. 입술을 깨물고는 하준의 목을 껴안았다.“쭈운….”불을 껐기 망정이지 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여줄 뻔했다.움찔하더니 하준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그러나 곧 진정했다.“아까 다빈 씨가 그러는데 아직 약 복용 중이고 상태가 안정적이지 않으니까 부부관계 조심하라고 하더라고.”“……”여름은 어이가 없었다.“하지만 내내… 괜찮았잖아. 굳이 조심할 필요가 있을까?”“나 참, 내가 그렇게 좋아?”하준이 갑자기 플러팅하듯 눈썹을 치켜세웠다.“아니거든요!”여름은 돌아누웠다.‘사람 부끄럽게, 진짜!’“에헤이, 거짓말쟁이!”등 뒤에서 하준이 꼭 안았다.“우리 애기 착하지. 난 지금 너무 자극을 받으면 안 돼. 내가 날 컨트롤하지 못해서 당신을 다치게 할까 봐 겁난다고. 지난번에도 그랬잖아.”여름은 입술을 깨물고는 한참 만에야 억지로 답했
“잘 들어. 네 아빠는 나랑 이혼하려고 했다. 그래서 너에게는 벨레스 주식을 5%만 물려주려고 했어. 강여름에게는 35%를 물려주면서 말이야. 그러니까 이게 다 널 위한 거야.”위자영이 서유인의 어깨를 잡고 눈시울을 붉혔다.서유인의 눈에는 혐오가 떠올랐다.“우리 아빠가… 왜? 나한테 왜 그러는데?”“그러니까.”위자영이 내키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벨레스 주식 5% 가지고는 재벌가에 우리 모녀는 명함도 못 내밀어. 추성호도 너랑 결혼하겠다고 안 할 거다.”서유인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다시는 최하준에게 버림받았던 것처럼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왜 다들 강여름만 좋아하는 거지? 그리고, 내가 아빠 딸이 아니면 난 누구 딸인데?”“울지마라. 네 아빠가 벨레스를 너에게 물려줄 거야.”위자영이 서유인을 끌어안았다.“곧 다 알게 될 거야.”******상혁이 벨레스 관련 정보를 여름에게 가져왔다.그동안 서경재는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주주들을 만나 자기편으로 포섭하는 한편, 서경주의 측근들을 각종 이유로 직위 해제 시켜 버렸다.겨우 2주 만에 벨레스는 기본적으로 서경재의 손에 넘어갔다.“정말 사모님 예상이 적중했습니다. 업계에서도 서경재의 행보에 놀란 모양입니다. 다들 평소 서경재가 그동안 발톱을 숨기고 살았다고들 하더라고요.”상혁은 이제 여름이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정말이지 놀라운 통찰력이었다.“서유인은요?”갑자기 여름이 물었다.“지금 부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전에는 그냥 직함만 받아 놓고 설렁설렁하더니 2주 전부터 갑자기 진지하게 업무에 임하고 있습니다. 주주 회의에도 참석하고 서경재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고 합니다.”여름이 생각에 잠겼다.“서경재는 서유인에게 어떤가요?”“굉장히 잘해줍니다. 며칠 전에는 꽤 큰 프로젝트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이제 벨레스와 추신이 손을 잡을 준비중입….”여름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상혁 씨, 뭐 하나만 부탁하죠. 가서 뿌리가 살아있는 서경재와 서유인의 머리카락을 좀 구해다 주
12시 반, 세단 한 대가 펜션으로 들어왔다.송영식과 이주혁이 입구에서 기다린 지 한참 되었을 때에야 뒷문이 열리더니 지다빈이 안에서 나왔다. 둘은 몇 초간 얼어 있었다. 특히 송영식은 눈이 완전 휘둥그레졌다.“지안아… 아니지 지안이는 이거보다는 예뻤는데.”송영식은 흥분하는 듯하더니 곧 냉정을 찾았다.“아, 우리 사촌 언니를 아시나 봐요? 전 지안이 언니 사촌 동생이에요.”지다빈이 웃으니 보조개가 쏙 패였다.송영식이 살짝 눈시울을 붉히더니 시선을 피했다.“지안이 동생이면 이제 내 동생이나 마찬가지지.”“하준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이주혁이 하준에게 물었다“병원에서 보내준 간호조무사야.”하준이 담담하게 설명했다.“그랬구나.” 이주혁이 끄덕였다.“일은 잘해? 넌 좀 좋아졌고?”지다빈은 그 말을 듣더니 긴장한 얼굴로 하준을 쳐다봤다.“걱정하지 마.”송영식이 지다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일 못했으면 하준이가 벌써 사람 갈아치웠지.”지다빈이 고개를 들고 피식 웃었다.“제가 잘 못한다 싶으면 얼른 다른 분으로 교체하세요. 지금 병환 돌보시는 게 제일 중요하죠.”“뭐 괜찮아.”하준이 지다빈을 한 번 보더니 먼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이주혁이 조그만 소리로 물었다.“야, 저런 애를 왜 곁에 둬? 아직 백지안 못 잊은 거야?”“쓸데없는 소릴. 전에 나 어떻게 치료됐는지 잊었어?”하준은 살짝 짜증이 났다.“의사가 그러는데 내 병은 유아기의 영향이 크대. 지안이는 내 유년기에 유일한 빛이었잖아. 비슷한 얼굴이라도 보면 빨리 좋아질지도 모르잖아. 요즘 확실히 상태가 꽤 좋아졌다니까”“하지만 여름 씨가 알면….”“절대 모를 거야. 너희들만 입 다물면.”하준이 경고하듯 주혁을 노려봤다.“영식이도 입막음 잘해 놔.”이주혁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백지안이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는 점을 떠올리고 나니 딱히 할 말도 없었다.“아참, 요즘 ‘영하’랑 한 판 뜨고 있다며?”“한 판 뜬다기보다는 교훈을 보여주고 있지. 왜? 아직도
“아름다우시네요.”강여름이 진심으로 감탄해서 말했다.“최 회장 사모님에게 그런 칭찬을 듣다니 영광이네요.”여자가 빙긋 웃었다.“절 아세요?”여름은 잠시 멍했다.“아, 하긴. 지난번에 발표회에서 많이들 보셨겠구나. 저처럼 독특한 얼굴이면 기억에 남기도 쉽겠죠.”상대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외적인 미보다 내적인 아름다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푸훗, 저도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죠.”여름이 웃었다.“차는 어쩌다가 빠졌어요?”“아까 맞은편에서 오는 차를 피하다가 빠졌는데 몇 번을 빼보려고 했는데 제 힘으로는 뺄 수가 없네요.”그 사람이 쓴웃음을 지었다.여름은 직접 가서 상황을 살폈다.“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요. 키 주실래요?”상대가 반신반의하며 키를 건넸다.여름이 바퀴 아래 큰 돌을 하나 괴더니 운전석에 앉아 확 엑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차가 순식간에 빠져나왔다.“이제 보니 베스트 드라이버셨군요. 고마워요.”상대가 감탄을 표했다.“천만에요.”여름이 돌아서 차에 올랐다.차윤이 곧 차를 출발시켰다.여름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윤은 언제나 여름을 보호해주는 사람이었는데 아까는 아예 차에서 내리지도 않았다.“차윤 씨, 혹시… 아까 그분 알아요?”“네.”차윤은 조금 망설이다가 답했다.“보통내기 아닙니다. 이쪽 바닥에서 평가가 아주 안 좋습니다. 앞으로는 가까이하지 마세요.”“그래요?”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여름은 사실 별로 동의하지 않았다.‘사람이 괜찮은지 아닌지는 보기만 해도 알지. 게다가 아까 그 사람은 내가 최하준의 와이프인 줄 알면서도 다른 재벌가 사람들처럼 명함을 주거나 하면서 굳이 나랑 연줄을 만들려고 하지도 않았잖아.좀 차갑기는 했지만 예의는 바르던걸.남들에게 휩쓸리지 않고 자기 길 가는 사람이라서 평가가 안 좋을 수도 있지.”******펜션에 도착하니 6시가 다 되어 있었다.여름은 차에서 내려 호숫가 정자로 다가가는데 종업원들이 하는 얘기가 귀에 들어왔다.“프랑스 요리 다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