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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화

여름은 후다닥 2층으로 올라가 서재 책상 서랍을 열어 약병을 꺼내 보았다.얼른 검색해보니 그중 2병은 신경안정제와 향정신성 약물이었다.‘그 뉴스가… 진짜야?자기를 돌봐주던 유모를 죽이고 날 그렇게 해쳤으니 앞으로도….’온몸이 떨렸다. 생각도 하기 싫었다.“사모님, 회장님이 안 오시는데 전화해 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이진숙이 올라왔다가 여름의 손에 들린 약병을 보더니 표정이 바뀌었다.“그 약은….”“하준 씨 어려서부터 자라는 거 다 봤다고 하셨죠? 그러면… 정신질환 있는 것도 다 아셨어요?”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바들바들 떨었다.이진숙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그런 소리는 어디서 들으셨어요? 그게….”“지금 인터넷에 다 떠돌아요.”여름이 휴대폰을 열어 보여주었다.“이게 다 사실이에요?”이진숙은 사진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누가 이런 걸… 너무 하네. 사모님, 회장님을 믿으셔야 해요. 회장님은 좋은 분이세요.”“하지만 평소에도 성격이 폭력적이고 화도 잘 내고 극단적이잖아요. 그리고 이 약이 그 증거 아닌가요?"여름은 약병을 꼭 쥐고 중얼거렸다.“사실 나는 평소에도 너무 무서워요. 그때 하준 씨에게 다치고 나서는 너무 두렵다고요. 그냥 사실을 알고 싶을 뿐이에요.”“그래요. 말씀드릴게요. 다른 사람들처럼 회장님을 오해하지는 말아주세요.”이진숙이 한숨을 쉬었다.“그게 회장님이 8살 때 발병했어요. 그때 부모님이 이혼하셨을 때예요. 어머님은 도련님(우리 회장님 말이에요.)을 본체만체했고 할아버지는 사업에만 몰두하는 차가운 분이셨죠. 할머니는 도련님을 아껴주셨지만 돌봐야 할 자식도 많고 손자도 많았죠. 게다가 접대에 교제에 바쁘셨으니 도련님 신경 쓸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그러니 유모가 도련님을 학대하는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던 거예요.”“학대요?”여름은 깜짝 놀랐다.그래요. 도련님은 어렸을 때 불안이 좀 높아서 툭하면 울고불고했거든요. 사실 그냥 어린애잖아요. 그런데 유모는 그게 짜증 났던 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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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화

“회장님은 지금….”상혁은 초조한 듯했지만 차마 입을 못 열었다.“이모님 말씀 들었어요. 하준 씨 병은 상관없어요.”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여름이 말했다.“회장님이 뉴스를 보셨는데 혼자서 어디로 가셨는지 모르겠네요. 지금 여기저기 찾아보고는 있습니다. 아무래도 지금 정서가 불안해서 병이 재발했을 것 같아요. 어머니께 가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어머님께요?”“네. 아까 사무실에서 뉴스를 보시고 ‘이건 어머니가 벌인 짓이야’뭐 그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어머님과 부딪힐 때마다 회장님이 제어를 잘 못 하시는데…”상혁이 초조한 듯 말을 이었다.“지금 회장님 어머니께 가는 길입니다”“주소 보내주세요. 저도 바로 갈게요.”여름은 차 열쇠를 가지고 차에 뛰어올랐다.******개인 별장.최하준의 정신병력 관련 기사를 보자마자 최란은 최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사진 네가 유출한 거 아니니?”“언니, 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그 사진은 우리 집에만 있는 거야. 너 말고 또 우리 집에서 누가…?”최란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벌컥 열렸다. 밖에는 보디가드가 쓰러져 있고 최하준이 싸늘한 얼굴로 문 앞에 서 있었다.“얘….”“따라오세요.”하준은 거칠게 최란을 끌고 옥상으로 갔다.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에서 최민의 다급한 비명소리가 들려왔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옥상, 산발이 된 최란이 물었다.“얘, 대체 뭘 어쩌려고… 앗!”하준이 갑자기 최란을 옥상 가장자리로 떠밀었다.“내 이전 병력으로 몰아붙이지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요.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어쩌다가 이런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을까?”하준이 최란을 꽉 움켜쥐고 소리쳤다.최란은 놀라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동공이 확장됐다.“내가 그런 게 아니야….”“지난번에도 이걸로 날 협박했잖아요? 어머니가 아니면 누가 이런 짓을 합니까?”하준의 두 눈에 검붉은 빛이 돌았다.“그저 눈에 양하밖에 없죠. 최양하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시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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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화

”하준아, 진정해라. 난 네 에미야.”최란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지금 넌 천륜을 어기는 짓을 하고 있어. 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할 거다.”“흥, 손가락질은 이미 받고 실컷 받고 있습니다. 대체 날 왜 낳았나요? 당신은 정말이지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에요.”최하준은 미친 듯 소리쳤다. 최란은 상반신이 뒤로 한참 밀린 채 허우적거렸다.“정말 날 죽일 셈이니? 미쳤구나.”“네, 미쳤어요. 어머니가 날 이렇게 만들었잖습니까?”하준은 다시 흥분했는지 자신을 컨트롤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내닫던 중에 갑자기 강여름이 비명이 들려왔다.“그만 해요!”하준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얼굴이 삽시간에 하얗게 질렸다.고개조차 돌릴 수 없었다.자신을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여름을 차마 마주할 수 없었다.‘지쳤어. 이젠 너무 지쳤다고.’하준은 병이 재발하고 상태가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을 느꼈다.이젠 가슴속에 악만 남았다.전에는 그래도 최란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었는데 오늘은 정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이제 다시는 그 하얀 정신병원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그곳은 영원히 하얀 벽만 있는 곳이었다.아무도 하준에게 관심도 애정도 주지 않았다.“이리 와요.”여름이 한 걸음 한 걸음 숨도 못 쉬고 하준에게로 다가갔다.“그만, 더 다가오지 말아요.”하준이 여름에게 고함쳤다.얼굴은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었다.“난 병이 있어. 당신을 다치게 할 거야. 이제 다 알잖아?”여름은 하준의 그런 낯선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났다.“난 무섭지 않아요.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사람은 없어요. 당신 잘못도 아니에요. 당신에게 상처 준 사람이 잘못한 거지.”“안 믿어. 그만 둬.”하준이 고개를 저었다.“예전에 어머니도 그런 소리로 날 속였었어. 그러더니 날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버렸다고.”최란은 완전히 굳어져 버렸다.“그때 네 상태는 병원에 보내서 치료하지 않으면…”“시끄러!”하준은 갑자기 더 울컥한 듯했다.“당신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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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화

최란을 잡고 있던 하준이 손에 힘이 풀렸다. 바닥으로 스르륵 쓰러졌다.여름이 바로 하준을 안았다. 귓가에 가만히 속삭였다.“약속할게. 절대 떠나지 않겠다고. 깨어나면 당신이 좋아하는 거 만들어 줄게요.”잔뜩 찌푸리고 있던 미간이 펴지더니 기절했다. 가만히 잠든 아이처럼. 그 난리를 치던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평화로운 얼굴이었다.최란은 마침내 구조된 사람처럼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한참 동안 혈색이 돌아오지 않았다.최양하가 달려와 최란을 붙잡았다.“제가 이미 정신병원에 연락해 놨어요. 바로 와서 데려갈 거예요.”최란은 깜짝 놀랐다.여름이 화난 눈으로 최양하를 노려봤다.“누가 전화하래요?”불쾌하다는 듯 최양하가 답했다.“그 난리를 치는데 치료 받으러 보내야죠. 그러다 또 사람 죽으면 어떡합니까?”“그래. 정말 너무 무섭더구나.”추동현이 최란의 손을 잡고 덜덜 떨었다.“정말 너무 놀랐다니까요.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어요. 이번엔 당신이었지만, 다음에 발병하면 또 누가 될지도 모르….”추동현은 말끝을 흐렸다. 듣다 보니 최란은 마음이 흔들렸다.“역시 병원에 보내서 치료하는 게 좋겠어. 안 해봤던 것도 아니고….”여름은 이제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하준 씨 말 못 들으셨나요? 전에 하준 씨를 속이고 입원시킨 바람에 상처받았잖아요. 어머니로서 아픈 사람을 그 싸늘한 병원에 보내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으세요?”최란의 얼굴에 부끄러움과 분노가 떠올랐다.최양하가 미간을 찌푸렸다.“당신이 뭘 압니까? 형을 가둬두지 않으면 또 사람을 해칠 거라고요. 당신을 해칠지도 몰라요.”“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건 내 문제예요.”여름은 울컥했다.“말을 참 쉽게 하시는군요. 본인이 갇혀보지 않았으니 모르는 거겠지. 어려서부터 부모님 사랑만 받으며 자랐겠죠. 어머님은 좋다는 건 뭐든 다 해줬을 테니까요. 하지만 하준 씨는 어땠을까요? 정신병은 왜 걸렸겠어요? 당신들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하준 씨는 혼자서 옷장에 갇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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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화

최란은 아주 먼 옛날 일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제 보니 하준이 마음에 상처가 많았구나.’최란은 확실히 하준의 존재 자체가 짜증 났었다. 그러니 어머니가 자신을 낳은 것이 싫을 수밖에 없었다.“사진은 네가 유포했니?”최란이 인상 쓰며 물었다.“내일 여하에서 신제품 발표회가 있는 날이다 보니 식구들은 너 아니면 네 이모를 의심하고 있다.”“전 아니에요.”최양하는 좀 화가 났다.“아무리 그래도 형인데요. 안 그래도 병도 있는 사람한테 제가 그렇게까지 하겠어요?”최란은 머리가 아파 미간을 찌푸렸다. 아들 성격이야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그렇다면… 정말 최민이 한 짓인가?’“형이 저 모양인데 내일 발표회는 할 수 있을까요?”최양하가 갑자기 주저하며 물었다.최란이 최양하를 노려보았다. 최민을 만나야 했다.******이주혁은 하준을 데리고 자기 병원으로 가 검사하고 진정제를 놓아주었다.전에는 이주혁이 그렇게 오만하고 싸늘하며 잔인한 사람으로 보이더니 오늘은 어째 연약하고 무력해 보였다.“하준이가 당신이랑 사귄다는 말을 듣고 솔직히 난… 하준이가 아깝다고 생각했어요. 주혁이 갑자기 웃었다.“그런데 오늘 보니 그런 생각한 게 좀 부끄럽네요. 하준이가 여름 씨를 그렇게 아낄 만하군요.”여름은 친구니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다 싶어 신경도 쓰지 않았다.“그럼 이제는 팔에 저 상처가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주혁이 쓴 웃음을 지었다.“이제 대충 아시겠지만 하준이는 자제가 안 될 때마다 자해를 했어요. 지금까지 두 번인데 매번 여름 씨랑 관계가 있었죠.”여름은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고 쳐다봤다.“한 번은 아침에 하준이가 여름 씨랑 싸웠을 때죠. 걔는 밖으로 나와 차에서 자해를 했어요. 다른 한 번은 여름 씨를 별장에서 구한 뒤 병원으로 가던 길에서죠.”여름은 생각났다. 처음은 여름이 하준에게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해서 화가 나서 나갔을 때였다. 두 번째는 같이 차에 타고 있다가 갑자기 내렸었다. 여름은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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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화

여름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그렇죠. 아주 미워 죽는 게 맞죠. 동성에서는 날 안 믿어주고, 허구한 날 괴롭히고, 상처 주고… 하지만 최하준에게 일이 났다는 얘기를 들으니 너무 걱정이 되더라고요. 불행한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니 그것도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최하준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속여보기도 했지만 내 마음을 속일 수는 없더라고요. 그렇게 오래 함께 지내다 보니 점점 더 최하준이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됐어요.”의식이 없이 잠든 하준을 애틋하게 쳐다봤다.‘즐겁지 못한 과거는 그냥 흘러가게 둬요. 이제부터는 내가 잘해줄게요.’이제 서경주도 혼수상태고 하준을 돌볼 유일한 가족도 여름이 되었다.이주혁은 흐뭇해했지만, 상혁은 걱정이 많았다.“회장님이 일을 못하신다면 내일 발표회는 어떡하죠? 게다가 지금 병에 관련해서 찌라시가 퍼져나가면 진정시킬 사람도 없고요.”여름이 흠칫했다.“여하 그룹은 다른 책임자가 없나요?”“계시기야 계시지만 발표회는 회장님이 직접 하신다고 이미 공지가 나간 상태인데 갑자기 이런 상황이 생겨서 나타나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논란이 될 텐데 여하의 장래에 부정적인 영향이 클 겁니다.”여름이 미간을 찌푸리며 한동안 생각하더니 벌떡 일어났다.“내일은 제가 대신하죠. 아내니까 도울 의무가 있어요."“하지만내일 발표회에서는 기자들이 회장님 병력에 관해서도 물어볼 텐데요.”“내가 답하면 되죠.”여름이 예리한 시선으로 상혁을 돌아봤다.“자료 좀 수집해 주세요. 사람들에게 최하준이 정말 정신병으로 미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야겠어요.”상혁은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감동을 받았다.‘드디어 우리 회장님을 아껴주는 사람이 나타났구나.’******다음날.바다를 마주 보는 별장, 봄꽃이 한창이다.침대에서 밤새 푹 잔 하준이 눈을 뜨더니 벌떡 일어나 앉았다. 옷도 안 입고 입구로 후다닥 걸어갔다.이때 마침 문이 열리더니 상혁이 환한 얼굴로 다가왔다.“회장님 깨셨군요.”하준은 상혁을 밀치더니 1, 2층을 돌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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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화

이주혁이 말을 이었다.“카메라 앞에서 발작이 오면 그야말로 회사의 미래는 없어지는 거야. 이제 평생 사업은 못 하게 돼.”“그만해.”하준의 눈에 한기가 돌았다.“여름 씨를 믿어. 여름 씨는 그렇게 약하지 않다고.”이주혁이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라이브 앱을 열었다.“잘하고 있는지 같이 보자고.”이미 동시접속자 수가 어마어마했다.여름은 검은 수트를 입고 연단에 올랐다.처음으로 최하준이 아내로서 공개장소에 나서는 것이었다.여름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국내 최고의 신랑감이 사랑하는 아내는 엄청난 미인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강여름의 실물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실시간 채팅창에 난리가 났다.-뭐야? 얼굴 왜 저래?-진짜 괴물처럼 생겼어.-최하준 미쳤다더니 시력에도 이상 생김?이주혁은 깜짝 놀라서 실시간 채팅창을 닫아버렸다.그러나 하준은 이미 다 봐버렸다. 또 화가 폭발했다.“이것들이! 미녀를 보러 왔어 발표회를 보러 왔어, 어? 누군지 다 적어 놔. 가만 안 둬.”상혁이 땀을 뻘뻘 흘리며 화제를 바꿔보려고 했다.“어… 아, 사모님 말씀 시작하시네요. 진짜 멋있는데요.”하준이 상혁에게 눈을 부라렸다.‘나도 눈이 있는데 그걸 네가 굳이 말해야 내가 아는 줄 알아?’어쨌거나 이렇게 눈부시게 빛나는 여름을 보는 건 하준도 처음이었다.오늘 여하의 발표회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큰 관심을 받고 있었다.여름은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잡더니 톡톡 쳐서 확인을 해보고 입을 열었다.“안녕하십니까? 저는 최하준 회장의 와이프 강여름입니다. 오늘 여하에서 개최하는 발표회에 와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저희는 신규 반도체를 개발해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원래 최하준 회장께서 직접 소개를 드릴 예정이었으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오늘 자리를 함께하지 못해….”말을 마치기도 전에 경제일보 기자가 말을 끊고 들어왔다.“정신병 재발 때문입니까? 정말 어렸을 때 보모를 살해했나요? 제대로 처벌 받거나 알려지지 않은 것은 심신 미약 때문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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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그러면 이제 말씀드리겠습니다. 최하준 씨의 병에 대해서라면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하준 씨가 이유 없이 보모를 해치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은 최하준 씨가 8살이었을 당시 치료과정입니다. 장기적인 학대로 인한 우울증과 PTSD입니다. 네, 보모에게 장기적으로 심각한 학대에 시달렸습니다.여름이 뒤를 한 번 돌아봤다. 오래된 영상이 푸른 스크린에 올라왔다.경찰이 머리를 산발하고 주름진 얼굴을 한 중년 부인에게 질문하는 영상이었다.“평소 울면 어떻게 대했습니까?”“잡아서 옷장에 집어넣고 잠갔어요.”“얼마나 감금했습니까?”“보통 하루 이틀이오. 그 집 식구들은 아무도 신경 안 쓰더라고요. 아무도 몰랐어요. 이틀 굶어도 애가 죽지는 않더라고요.”경찰이 울컥했다.“겨울에도 그랬습니까?”“네. 얼어서 기절할 때도 있더라고요. 그러면 끌고 와서 식구들한테 애가 옷도 제대로 안 입고 나가 놀았다고 말하면 다들 믿던데요. 애가 워낙 지랄 맞아서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5분짜리 영상이 끝나고 장내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일부 울분을 터트리는 기자도 있었다.여름은 눈시울을 붉힌 채 심호흡을 했다.“중요한 것은 보모를 살해한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3일 밤낮을 갇혀 있다가 잠시 제정신이 아닌 채로 반항하다가 다치게 한 겁니다. 그 뒤로 병원에서 3년을 입원해 치료받았습니다. 이후 치료 효과를 인정받고 퇴원했습니다.”“하지만 어제 최하준 회장의 병력과 자극적인 사진이 퍼졌는데요. 그렇습니다. 신제품 발표를 앞두고 너무 긴장해서 집에서 나오던 길에 회장님이 쓰러졌습니다. 발표회가 취소될 뻔했어요.”여름의 시선이 갑자기 사나워졌다.“악의적으로 이런 사진을 유포하다니 상처 입은 사람에게 소금 뿌리는 격이죠. 사업에 있어 경쟁은 할 수 있지만 도의적 선은 넘으면 안 되죠. 최하준 회장은 그동안 꾸준한 기부활동을 해왔고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수많은 직원이 가정을 부양하도록 했습니다. 그런 최하준 회장이 대체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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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화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지자 경제일보 기자가 다급히 외쳤다.“FTT라니요?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 수가 없네요.”“괜찮아요. 곧 아시게 될 겁니다. 언론사라고 무단으로 개인의 사적인 사진을 인터넷에 함부로 유포해서 정신적 피해를 입히면 안 되죠. 이미 경찰에 신고했습니다.”여름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이분 밖으로 모셔주세요. 경찰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경제일보 기자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경비는 뭐라고 할 기회도 주지 않고 그대로 끌고 나가버렸다.전광석화 같은 일 처리에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이제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블랙 정장을 입고 단상에 선 여름은 서늘한 표정에 온몸에서 풍기는 독보적으로 싸늘한 카리스마에 다들 두려움을 느꼈다.여름은 모두를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개인적인 일이 해결됐으니 이제 다시 발표회로 돌아가 볼까요? 우리 제품이 원래 FTT에서 개발하던 것이 아닌가 하는는 점을 궁금해 하는 분도 계실 텐데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심희철 팀이 개발한 제품의 소유권은 최하준 회장 1인에게 속한 것입니다. 현재 최하준 회장은 FTT를 떠났으므로 심희철이 연구 개발한 제품의 소유권을 찾아오기로 한 것입니다.”폭탄 같은 발언이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어느 회사에서도 분쟁에 휩싸일 수 있는 FTT와는 협력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기자들이 놀라서 물었다.“그러면 최하준 회장이 FTT와 정면으로 붙는 건가요?"“전쟁 같은 건 하지 않습니다. 그저 여하그룹에서 자기 소유권을 되찾아오는 것뿐입니다.”여름이 웃었다.“이제부터 관련 자료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해변 별장, 최하준은 라이브 방송 속의 당당하고 화끈한 여름을 보며 자랑스러움에 입꼬리가 올라갔다.‘역시 내 와이프라니까.’그 작고 가냘프던 여름이 이렇게나 성장하다니, 이제는 용기와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전에는 늘 구해주고 지켜줘야 하는 대상이었는데 이제는 당당히 옆에 설 수 있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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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화

하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나랑 그렇게 오래 같이 일을 했으면서 그딴 일도 못 해내면 안 되지. 못 하면 나랑 같이 못 다녀.”“……”상혁과 주혁은 동시에 말문이 막혔다. 어쨌든 지금 하준의 와이프인 여름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능력자인 점은 사실이었다.******발표회는 3시간 동안 계속됐다.끝나고 나서 여름은 차에 타고 별장으로 돌아왔다.기사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고 보니 하준이 수영장 옆 풀밭에 서 있었다.흰 셔츠에 편안한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셔츠를 바지에 넣지 않아서 더욱 편안해 보였다.바닷바람이 불어와 옷자락과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를 산들산들 흔들었다.언뜻 보면 열 살은 어려진 것 같았다. 대학생 같은 하준을 보니 순수해 보였다. 다만 안색이 너무 창백했다.여름은 마음이 약해졌다.한 걸음 한 걸음 하준에게 다가가 기다란 속눈썹을 올렸다.“미안해요. 사람들 앞에서 당신 병력을 밝혀 버렸어요. 내가 미워요?”하준이 여름의 머리를 쓸더니 와락 품에 안았다.“내 와이프 점점 더 근사해지네.”“화… 안 나요?”여름은 조금 놀랐다. “병력이 알려지는 거 싫어할 줄 알았는데.”“당신이 날 떠나지만 않으면 아무 상관 없어.”하준이 여름의 얼굴을 받쳐 들고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았다.“정말로 내 곁에서 함께 치료하는 걸 봐줄 거야?”“응.”여름이 단호하게 끄덕였다.“하지만 언제 다 나을지도 모르는데. 평생 못 고칠 지도 몰라. 게다가 당신을 다치게 한 적도 있잖아. 어떤 때는 나도 통제가 안 되는 내 자신이 두려워.”하준의 눈에 확 초조함과 고통이 스쳐 갔다.“쭌, 치료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난 당신을 버리지 않을 거예요.”여름이 결심했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우리 아이를 가져요.”하준이 깜짝 놀랐다.“전에는 싫다고 했잖아?”“이주혁 씨와 상의해 봤어요. 가정을 이루고 싶잖아. 아이가 생기면 우리 두 사람의 가정이 더 완벽해질 거예요.”여름은 고개를 들어 따스한 눈길을 보냈다.“아이가 생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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