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말하지 않았다.“그러면 이제 말씀드리겠습니다. 최하준 씨의 병에 대해서라면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하준 씨가 이유 없이 보모를 해치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은 최하준 씨가 8살이었을 당시 치료과정입니다. 장기적인 학대로 인한 우울증과 PTSD입니다. 네, 보모에게 장기적으로 심각한 학대에 시달렸습니다.여름이 뒤를 한 번 돌아봤다. 오래된 영상이 푸른 스크린에 올라왔다.경찰이 머리를 산발하고 주름진 얼굴을 한 중년 부인에게 질문하는 영상이었다.“평소 울면 어떻게 대했습니까?”“잡아서 옷장에 집어넣고 잠갔어요.”“얼마나 감금했습니까?”“보통 하루 이틀이오. 그 집 식구들은 아무도 신경 안 쓰더라고요. 아무도 몰랐어요. 이틀 굶어도 애가 죽지는 않더라고요.”경찰이 울컥했다.“겨울에도 그랬습니까?”“네. 얼어서 기절할 때도 있더라고요. 그러면 끌고 와서 식구들한테 애가 옷도 제대로 안 입고 나가 놀았다고 말하면 다들 믿던데요. 애가 워낙 지랄 맞아서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5분짜리 영상이 끝나고 장내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일부 울분을 터트리는 기자도 있었다.여름은 눈시울을 붉힌 채 심호흡을 했다.“중요한 것은 보모를 살해한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3일 밤낮을 갇혀 있다가 잠시 제정신이 아닌 채로 반항하다가 다치게 한 겁니다. 그 뒤로 병원에서 3년을 입원해 치료받았습니다. 이후 치료 효과를 인정받고 퇴원했습니다.”“하지만 어제 최하준 회장의 병력과 자극적인 사진이 퍼졌는데요. 그렇습니다. 신제품 발표를 앞두고 너무 긴장해서 집에서 나오던 길에 회장님이 쓰러졌습니다. 발표회가 취소될 뻔했어요.”여름의 시선이 갑자기 사나워졌다.“악의적으로 이런 사진을 유포하다니 상처 입은 사람에게 소금 뿌리는 격이죠. 사업에 있어 경쟁은 할 수 있지만 도의적 선은 넘으면 안 되죠. 최하준 회장은 그동안 꾸준한 기부활동을 해왔고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수많은 직원이 가정을 부양하도록 했습니다. 그런 최하준 회장이 대체 무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지자 경제일보 기자가 다급히 외쳤다.“FTT라니요?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 수가 없네요.”“괜찮아요. 곧 아시게 될 겁니다. 언론사라고 무단으로 개인의 사적인 사진을 인터넷에 함부로 유포해서 정신적 피해를 입히면 안 되죠. 이미 경찰에 신고했습니다.”여름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이분 밖으로 모셔주세요. 경찰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경제일보 기자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경비는 뭐라고 할 기회도 주지 않고 그대로 끌고 나가버렸다.전광석화 같은 일 처리에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이제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블랙 정장을 입고 단상에 선 여름은 서늘한 표정에 온몸에서 풍기는 독보적으로 싸늘한 카리스마에 다들 두려움을 느꼈다.여름은 모두를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개인적인 일이 해결됐으니 이제 다시 발표회로 돌아가 볼까요? 우리 제품이 원래 FTT에서 개발하던 것이 아닌가 하는는 점을 궁금해 하는 분도 계실 텐데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심희철 팀이 개발한 제품의 소유권은 최하준 회장 1인에게 속한 것입니다. 현재 최하준 회장은 FTT를 떠났으므로 심희철이 연구 개발한 제품의 소유권을 찾아오기로 한 것입니다.”폭탄 같은 발언이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어느 회사에서도 분쟁에 휩싸일 수 있는 FTT와는 협력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기자들이 놀라서 물었다.“그러면 최하준 회장이 FTT와 정면으로 붙는 건가요?"“전쟁 같은 건 하지 않습니다. 그저 여하그룹에서 자기 소유권을 되찾아오는 것뿐입니다.”여름이 웃었다.“이제부터 관련 자료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해변 별장, 최하준은 라이브 방송 속의 당당하고 화끈한 여름을 보며 자랑스러움에 입꼬리가 올라갔다.‘역시 내 와이프라니까.’그 작고 가냘프던 여름이 이렇게나 성장하다니, 이제는 용기와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전에는 늘 구해주고 지켜줘야 하는 대상이었는데 이제는 당당히 옆에 설 수 있겠는
하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나랑 그렇게 오래 같이 일을 했으면서 그딴 일도 못 해내면 안 되지. 못 하면 나랑 같이 못 다녀.”“……”상혁과 주혁은 동시에 말문이 막혔다. 어쨌든 지금 하준의 와이프인 여름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능력자인 점은 사실이었다.******발표회는 3시간 동안 계속됐다.끝나고 나서 여름은 차에 타고 별장으로 돌아왔다.기사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고 보니 하준이 수영장 옆 풀밭에 서 있었다.흰 셔츠에 편안한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셔츠를 바지에 넣지 않아서 더욱 편안해 보였다.바닷바람이 불어와 옷자락과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를 산들산들 흔들었다.언뜻 보면 열 살은 어려진 것 같았다. 대학생 같은 하준을 보니 순수해 보였다. 다만 안색이 너무 창백했다.여름은 마음이 약해졌다.한 걸음 한 걸음 하준에게 다가가 기다란 속눈썹을 올렸다.“미안해요. 사람들 앞에서 당신 병력을 밝혀 버렸어요. 내가 미워요?”하준이 여름의 머리를 쓸더니 와락 품에 안았다.“내 와이프 점점 더 근사해지네.”“화… 안 나요?”여름은 조금 놀랐다. “병력이 알려지는 거 싫어할 줄 알았는데.”“당신이 날 떠나지만 않으면 아무 상관 없어.”하준이 여름의 얼굴을 받쳐 들고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았다.“정말로 내 곁에서 함께 치료하는 걸 봐줄 거야?”“응.”여름이 단호하게 끄덕였다.“하지만 언제 다 나을지도 모르는데. 평생 못 고칠 지도 몰라. 게다가 당신을 다치게 한 적도 있잖아. 어떤 때는 나도 통제가 안 되는 내 자신이 두려워.”하준의 눈에 확 초조함과 고통이 스쳐 갔다.“쭌, 치료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난 당신을 버리지 않을 거예요.”여름이 결심했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우리 아이를 가져요.”하준이 깜짝 놀랐다.“전에는 싫다고 했잖아?”“이주혁 씨와 상의해 봤어요. 가정을 이루고 싶잖아. 아이가 생기면 우리 두 사람의 가정이 더 완벽해질 거예요.”여름은 고개를 들어 따스한 눈길을 보냈다.“아이가 생기면
하준은 주방으로 가서 밥을 담았다. 여름이 웃으면서 이진숙에게 속삭였다.“환자인 건 알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정상으로 대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우리가 조심스러워할수록 하준 씨도 더 민감하고, 감정적이고 예민해질 것 같거든요.”이진숙이 깜짝 놀랐다.“사모님은 역시 대단하세요. 그렇네요. 회장님도 아직 안 드셨는데 식사 좀 하게 해주세요.”곧 하준이 밥 한 그릇을 들고 나타났다.“자긴 안 먹어요?”“방금 먹어서 별로 배가 안 고파.”하준이 여름 앞에 밥그릇을 놓아주었다.“거짓말! 이모님이 자기 밥 먹어야 한다고 하던데.”여름이 억지로 하준을 끌어다 앉혔다.“꼭 먹어야 해.”“밥이 안 넘어가.”“내가 먹여줄게요.”여름이 새우를 집어 하준의 입에 넣었다.“……”‘뭐지? 그 맛없던 새우가 갑자기 맛있네?’“하나 더.”새우 하나를 꿀꺽 삼키더니 졸랐다.“혼자서 먹어 봐요.”여름이 젓가락을 쥐어 주었다.“싫어. 입맛이 없단 말이야.”하준이 얼굴을 홱 돌리며 극혐 얼굴을 했다.여름은 진땀이 났다.‘하아아… 새우 먹는 거 보니까 입맛 없는 거 아닌데?내가 먹여주면 뭐 맛이 다르냐?어쨌거나 뭘 먹여야 하니까….’여름은 할 수 없이 직접 먹이기로 했다.어느새 여름이 한 그릇을 먹는 동안 하준은 두 그릇을 먹었다.이진숙이 보더니 너무 기뻐했다.“회장님이 이렇게 드시는 거 너무 오랜만에 보네요. 역시 사모님이 먹여 드려야겠어요.”여름은 어이가 없었다.‘전에는 왜 이렇게 유치한 최하준의 모습을 몰랐을까?’갑자기 누군가가 어깨를 꾹 쥐는 느낌이 들었다돌아보다가 어색하기 짝이 없는 하준의 눈과 마주쳤다.“아까 밥 먹고 나면 안마해달라면서요.”“어?.... 아, 응.”여름은 흐뭇했다.‘밥 먹인 보람이 있군.’잠시 후 여름은 깩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살살~ 아파요.”“살살 하는 건데.”“아니, 그만, 그만! 아파 죽겠네.”여름이 후다닥 하준의 손에서 벗어났다.“다른 거 하죠. 이따가 나 샤워할 건데 그 힘으로 내
여름이 말은 그렇게 하긴 했지만 정말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생각보다 부끄러웠다.“됐어요. 내가 할게.”얼른 가서 하준을 밀어내려고 했다.“안 돼. 우리 마누라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직접 느껴봐야 해.”하준이 새빨개진 여름의 얼굴을 보고 일부러 놀렸다.“제대로 빨 줄도 모르면서.”여름은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그렇게 문지르면 안 돼요. 다 망가지겠네.”“그럼 가르쳐 주던가.”하준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어린애처럼 얌전히 가르쳐 달라는 표정을 했다.여름은 마침내 자기가 제 무덤을 팠다는 것을 깨달았다.“얼른.”하준이 재촉했다.여름은 할 수 없이 울상을 하고 쪼그리고 앉아 하준을 가르쳤다.“이렇게 뒤집어서 반대쪽으로…”가르치는 대로 조심스럽게 자기 속옷을 빠는 하준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빨래를 널더니 하준이 돌아봤다. 복잡하면서도 감개무량한 여름의 눈을 보더니 우습기도 하고 슬쩍 짜증도 났다.“그런 눈으로 볼 일인가?”“당연하죠. 남이 내 속옷 빨아준 거 처음이거든요.”여름이 입을 비죽거렸다. 전에 한선우와 몇 년을 사귀었지만 두 사람은 이 정도까지 친밀하지는 않았다.남친이 속옷을 빨아준다는 것은 남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함께 살고 나서 그 거만한 최하준이 자기 빨래를 해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당신 속옷 빨래해 줄 남자가 더 필요한 건 아니겠지?”하준이 여름을 안아 침대에 올려놓으며 경고하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한선우와 양유진이 당신 속옷을 안 빨았기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내가 그 손모가지를 그냥….”“그럴 일 없네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최하준 밖에 없으니까.”여름이 하준의 목에 손을 걸더니 먼저 입을 쪽 맞췄다.“쭌, 사랑해요.”여름의 가벼운 키스에 하준은 심장이 떨렸다.손을 뻗어 여름의 코끝을 살짝 꼬집었다.“진짜?”“내가 거짓말한 적 있던가?”여름은 마음이 답답했다.‘완전 진심으로 고백하는 거라고, 이 바보.’“예전에!”하준의 눈에 원망스러운 빛이 돌았다.“전에 나한테
하준이 웃었다.“알겠어. 아주 노래 가사를 외우는구먼. 처음 날 만났을 때 느낌부터 시작해서 읊어 보시지. 얼마나 할 수 있는지 보자. 다 꺼내 봐.”“……”여름은 이제 완전히 말문이 막혔다.결국 어쩔 수 없이 하준의 목을 안고 애교를 떨었다.“내가 잘못했어요, 여보. 대체 언제 사랑에 빠졌는지 말하라니, 그걸 어떻게 알아? 같이 살면서 순간순간, 그리고 내가 위험할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나서 날 구해줄 때마다 빠져들었겠지. 내가 정신을 차려보니 당신을 사랑하고 있던 걸.”하준은 완전히 여름에게 녹아버렸다.“진짜야?”“그럼. 사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당신은 내가 평생 만나본 사람 중에 제일 매력적인 사람이었어요. 평소에 성격이 좀 안 좋아서 그러지. 어쨌든 매일 나에게 미운 말만 골라서 해서 날 울리고 그랬잖아. 안 그랬으면 훨씬 더 빨리 사랑하게 됐을 텐데. 당신을 사랑하는 일은 아주 쉬운 일이거든.”여름이 두 손으로 하준의 얼굴을 받쳤다. 검은 눈동자에 하준의 모습이 가득했다.하준이 여름의 입술에 쪽하고 뽀뽀했다.“요, 요, 요 입으로 사람 낚는 기술 보라고. 전에는 대체 남자를 얼마나 낚은 거야?”“당신밖에 없는데. 앞으로도 당신밖에 없을 거고.”여름이 하준을 꼭 안았다.하준의 목젖이 꿀꺽했다. 목소리가 살짝 잠겼다.“자꾸 이러면 아기 만들고 싶어진다니까.”여름이 얼굴을 붉혔다. 고개를 끄덕하려는 찰라, 하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하준이 슬쩍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휴대전화를 귀에 댔다.머리끝까지 화가 난 최대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놈의 자식! 넌 네 마누라 간수도 못 해? 감히 FTT에서 반도체 소유권을 가져가겠다니? 어디서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까불어?”여름이 눈썹을 치켜올렸다.하준이 웃으며 여름을 쓱 쳐다봤다. 목소리는 사뭇 냉정했다.“제 와이프의 생각이 제 생각입니다.”“네가 정말 나 숨 넘어가는 꼴을 보겠다는 거냐?”최대범의 목소리가 떨렸다.“할아버지, 저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FTT쪽에
”앞에 세 가지는 말도 안 된다.”최대범이 깜짝 놀랐다.“추신그룹 올해 재무재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추신그룹만 내내 성적이 저조했는데 평소 가만히 실력을 숨기고 있다가 최양하가 무대에 올라오더니 5가지를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는데 추신이 충분히 강하지 않아서였을까요?최대범은 흠칫했다.“일단 FTT가 무너지면 추신이 절대적으로 윗자리로 치고 올라갈 겁니다. 하지만 제가 FTT를 장악하고 나면 우리 집안의 지위는 변함없을 겁니다. 저야 뭐 별 상관 없습니다. FTT를 제게 넘겨주지 않는다고 해도 제 지위는 흔들림 없을 겁니다. 다만 FTT의 생사는 저와는 상관 없는 일이 되겠죠.”“하지만 넌 병이….”“못 믿으시겠다면 그만 두겠습니다. 할 일이 있어서 이만….”그렇게 말하고 끊으려고 하자 최대범이 급히 말했다.“그래, 난 이제 늙었으니 너희 젊은 애들과는 싸울 수가 없지. FTT를 넘기마. 하지만 회사는 잘 경영해주고, 네 이모는… 걔들이 너에게 잘못했지. 나도 용서해달라고는 차마 말 못하겠구나. 하지만 다들 한 가족 아니냐, 너무 뚝 끊지는 말자꾸나.”“저는 언제나 은혜는 은혜로 갚고 원수는 원수로 갚는 사람이었어요.”“얘야….”“이건 협상의 여지가 없습니다.”전화를 끊은 하준의 눈은 한없이 싸늘했다.여름은 하준이 그런 싸늘한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준의 품에 덥석 뛰어들어 꼭 안으며 말을 돌렸다.“추신의 자산 규모가 정말 그 정도예요?”“어떨 것 같은데?”하준의 눈에서 싸늘함이 서서히 가시고 대신 따스함이 돌아왔다.“조금 믿을 수가 없네. 추신은 내내 그렇게 별볼일 없어서 주민그룹이랑 쿠베라가 더 대단한 줄 알았거든요.”“응, 추신이 워낙 발톱을 잘 숨기고 있었지. 이번에 약혼식에서 추성호가 너무 거만하게 굴지만 않았으면 내가 가서 뒤져볼 일이 없어서 몰랐을 거야.”하준은 생각에 잠겼다.“추신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내 의부도 겉보기처럼 간단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여름은 완전히 깜짝 놀랐다.“추동현
”하준이 말이 지금 추신 자본 규모가 우리 나라에서 손에 꼽는 수준일 거라는데.”최대범이 갑자기 말했다.장춘자가 놀랐다.“그럴 리가?”“아직도 20년 전 추신만 생각하는 거요? 그 때만 해도 내가 동현이를 우습게 생각했지. 음악에서는 프린스니 뭐니 했지만 가업은 별볼일 없었잖아. 그래서 란이가 추신을 많이 도와주기도 했지. 나도 다 알면서도 못 본 체해줬어. 하지만 하준이 말이 사실이라면 추신이 뭔가 꿍꿍이가 있어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싶구먼.”“그러네요. 지난 번에 약혼식 만해도 사부인은 몇 년째 추신 상황이 굉장히 어렵다면서 많이 도와달라고 하던데.”장춘자가 울컥했다.“전에 내내 하준이가 일을 열심히 안 해서 내 체면만 깎아 먹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양하에게 FTT 경영을 맡긴 건데 양하가 이렇게 계속 친가라고 추신만 도와주다가는 FTT가 길가로 나앉을 판이야.”최대범이 그 길로 변호사에게 전화를 했다.“이리로 한 번 건너오게.”한나절 만에 최대범이 FTT주식과 회장자리를 모두 최하준에게 양도한다는 이야기가 온 서울에 다 퍼졌다.온 가족이 본가로 모여들었다.최민이 제일 먼저 반대했다.“왜 이러세요? 왜 갑자기 FTT를 하준이에게 물려준다고 그러셔? 내가 그동안 아빠한테 어떻게 했는데?”“뭐라고?”그 말을 듣고 최대범은 등짝이라도 후려치고 싶었다.“아니, 걱정돼서 그러죠. 하준이가 날 미워하니까 걔가 회장자리 올라가면 분명 나랑 대립하게 될 텐데.”최민이 놀라서 얼른 최대범이 손을 꾹 잡아 누르며 말했다.“오빠랑 언니는 할 말 없어?”최진은 입을 비죽거렸다.“난 하준이랑 뭐 딱히 얽힌 건 없는데. 하준이에게 FTT를 안 맡기면 뭐, FTT 절단 나는 꼴을 보자는 거야? 지금 다들 비웃으면서 우리 회사 망하기만 기다리고 있는데.”“말은 잘도 하셔.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게 저렇게 쓸모가 없으니….”최민이 대놓고 최진을 욕했다.“입 다물어.”최대범이 짜증스럽게 최양하를 쳐다봤다.“양하는 어떻게 생각하니?최양하는 주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