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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화

여름은 멍해졌다. 사실 하준의 가족에 관해 물어볼 참이었다. ‘최윤형에게 말하지 말라고 한 건 나한테 알려주고 싶지 않다는 뜻이겠지, 그럼 관두자.’“없는데요.”하준은 천천히 눈을 내리깔았다. 여름은 시간을 확인하고는 말했다.“아, 있어요! 오늘 저녁에 난 경매 행사 참가해요. 집에서 밥 못 먹어요. 혹시 같이… 갈래요?”여름은 조심스레 물었다. 승낙할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콧대 높은 그가 이런 행사 따위에 참석할 리 없었다.“그러죠.”“예?”여름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그게 그렇게 놀랄 일입니까?”하준은 넋이 나간 여름의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아뇨, 전엔 동성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하는 거 싫어했잖아요.”“당신 지켜주러 갑니다. 또 벌이고 나비고 다 달려들 테니.”앞만 보고 진지하게 운전하는 완벽한 옆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던 여름은 몸을 내밀어 하준의 뺨에 입을 맞췄다.순간 핸들을 잡은 손이 흔들렸다. “하아, 운전할 때는 유혹 금지입니다.”어쩐지 익숙한 말이었다. 여름이 웃었다.“알아요, 차 흔들리면 뒤집힐까 봐요?”“아닙니다.”하준이 여름을 슬쩍 보았다.“마음이 흔들립니다.”여름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밀폐된 공간에 순간 뜨거운 기운으로 가득 차고 있었다. 여름의 가슴은 설레어 점점 빨리 뛰기 시작했다.그 순간 하준에게 달려들어 입을 맞추고픈 생각이 간절했지만, 무사히 가기 위해 꾹 참았다.******7시 반. 컨벤션센터.경매 행사가 막 열리려 하고 있었다.동성의 유명인사가 하나둘 입장했다. 이제 새로 화신의 대표이사가 된 강여름은 화제의 중심이었다. 여름이 들어서자 주위에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많은 사람의 관심 대상이 된 여름을 멀리서 바라보는 한선우의 마음에 씁쓸함이 스쳤다.단 며칠 만에, 예전에 자신이 버렸던 여친이 화신의 새로운 대표가 되어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모두 자신더러 어리석다고 말하고 있었다.그렇다. 어리석었다. 가장 좋은 다이아몬드를 못 알아보고, 깨진 유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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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화

곧 몇몇 재벌 사모가 여름의 주위를 둘러쌌다.“강 대표, 이 스커트 어디서 사신 거예요? 너무 예뻐요!”“지금 하고 계신 목걸이 가르디 신상이죠?”“…….”“여러분, 안녕하세요?”갑자기 진가은이 와인잔을 들고 의뭉스럽게 다가왔다. “어머나~ 강 대표, 이런 행사에도 오실 만큼 한가하신 줄은 몰랐네. 아니지, 아직 강 대표라고 불러도 되나 모르겠네?”“그게 무슨 소리예요?”주 여사가 불쾌한 듯 물었다.“어머, 아직 모르시나 보다. 어젯밤에 화신 기념행사에서 강 대표가 서울에서 온 최윤형 씨한테 실례를 했다지 뭐예요?”“뭐라구요? 설마 FTT 최윤형?”“맞아요, 그분.”진가은이 고개를 끄덕였다.“친구한테 듣자니까 아주 노발대발 난리 났다던데. 강 대표, 왜 그렇게 성미가 급해? FTT가 어디 그렇게 만만한 상대던가? 다음에 만날 때 무사히 자리보전하고 있어야 될 텐데….”모두 놀라 숨을 멈추고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어머나, 우리 남편이 오라고 하네요.”“오 여사, 오랜만이에요!”잠시 후, 사모님들은 다들 핑계를 대고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미쳤어, FTT를 건드렸다고? 저 여자는 이제 그냥 죽은 목숨이네.”여름은 아무 해명도 없이 그저 한심한 눈으로 진가은을 바라봤다. ‘이제 강여경이랑 잘 안 노나? 아직 아무 소식 못 들었나 보네?”“너~무 황당하지~, 아직 대표이사 자리에 엉덩이 붙이기도 전에 쫓겨나게 생겼으니.”진가은은 의기양양하게 웃다가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하준을 보았다.“ 빨리 쟤랑 손절하세요, 괜히 엮이지 마시고.”하준은 말없이 눈썹을 치켜올렸다.하준이 흥미를 보인다고 생각한 진가은은 서둘러 덧붙였다.“우리 친척 중에 최윤형 씨한테 인정받는 비서가 계세요. 나중에 저한테 부탁하시면 제가 도와드릴게요.”여름은 웃고 싶었다. 최윤형도 벌벌 떠는 최하준인데 일개 비서가 무슨 대수라고.“신경 쓰지 말고 우린 가서 앉아요.”여름은 하준의 팔짱을 끼고 앞으로 걸어갔다. 지금은 진가은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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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화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한주그룹 한선우 아냐? 통 크네.”"서상택 회장 댁 따님이랑 사귄다더라구요.”“어쩐지, 서 회장네 ‘사도’도 꽤 안정적인 기업이잖아요. 어지간히 출세하고 싶은가 보네요.” “누가 아니래요? 그런데 전 여친은 지금 화신 대표 강여름이에요.”“강여름 씨 남친은 지금 가만히 있네요. 여자 친구한테 돈 쓸 생각은 없나 봐.”가만히 지켜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여름에게로 항했다.갑자기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에 당황한 여름은 황급히 하준을 붙들고 조용히 얘기해다.“사람들 말 신경 쓰지 말아요. 그래 봐야 그냥 액세서리죠. 다른 사람들한테 과시하는 거 말고 무슨 쓸모가 있어요? 더군다나 중고잖아요, 저렇게 큰 돈 쓸 필요 없어요.”하준이 물끄러미 여름을 바라보았다. 좀 아까 분명 좋아하는 눈치였다. 하준은 여름이 자신이 누군지를 알았으니 사달라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여름의 말은 너무나 의외였다.여자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돈을 쓰게 하는 게 아니라 절약하게 한다더니 그 말이 맞는 듯했다.씨익, 하준이 매력적인 미소를 띠더니 피켓을 들었다.“400억.”낮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였다.“…….”여름은 얼이 빠진 사람처럼 멍했다. 머리가 폭발하는 것 같았다.“미쳤어요, 들지 말랬잖아요!”“410억.” 진가은이 갑자기 피켓을 들었다.여름은 하준의 손을 꽉 쥐었다.“들지 말아요. 쟤 분명 살 돈 없을 거예요. 일부러 가격 올리려고 저러는 거예요.”하준은 신경 쓰지 않고 다시 피켓을 들었다.“450.”장내가 온통 술렁이기 시작했다.한선우가 하준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한선우에겐 380억이 상한이었다. ‘이 자식이, 사랑하는 사람도 뺏긴 마당에 목걸이마저 빼앗기다니!’ 한선우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옆에 있던 서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됐어요. 목걸이 하나에 450억이라니, 너무 오버예요.”“응.”한선우는 눈을 내리깔고 분을 삭였다.진가은이 또 손을 들려고 했다. 그러자 하준이 진가은을 향해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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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화

결국 최하준이 450억에 목걸이를 낙찰받았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행사 스태프들이 목걸이를 조심조심 그의 손에 넘겼다.하준이 목걸이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찬란한 붉은 색이 반짝였다.그 목걸이를 들고 그 옆에 있던 여름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일어나 봐요.”여름은 얼떨결에 일어났다.사람 홀리는 미소를 지으며 하준은 여름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중후한 목소리가 잘 숙성된 와인처럼 매혹적이었다.“이제부터 당신이 나의 퀸입니다.”“와!”좌우에서 부러움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여름의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비록 많이 속 쓰린 가격이었지만 마치 두 사람의 결혼식이라도 올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정말 자신이 바라는 모든 걸 만족시켜주는 남자였다.더욱이 이 사람에게 이런 낭만적인 면이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여름의 우윳빛 피부 위에서 빛나는 빨간 다이아몬드에 모두 시선을 빼앗겼다. 진정 여왕과도 같은 기품이 흘러넘쳤다.“고마워요, 사랑해요.”여름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까치발을 들어 하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입을 맞추고 나서야 많은 사람이 보고 있다는 게 생각난 여름이 얼굴을 붉히는 모습마저도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하준의 눈동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윽해졌다.갈수록 빠져들게 하는 사람이었다. 하준은 눈 딱 감고 당장 여름을 갖고 싶다는 충동을 간신히 누르고 있었다.한선우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지난번 여름이 하준을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는 믿지 않았었는데 지금 똑똑히 확인한 것이다.과거 오직 자신만을 품었던 소녀가 이제 정말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다. 자신보다 훨씬 잘나고 능력 있는 남자를.한선우는 더 이 자리에 있을 수가 없어 그냥 돌아가고 싶었다.그런데 무대 위에 스크린이 갑자기 밝아지는 게 아닌가.주최 측이 준비한 비하인드 영상인가보다 추측하던 사람들은 화면이 나오자 다들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나랑 이러고 있는 거 진현일이 알게 돼도 괜찮겠어?”“신경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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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화

“정말 무서운 사람이네요. 목적을 위해 여자친구까지 이용하다니.”“우리 딸하고 혼담 있었을 때 거절하길 천만다행이에요.”“그러게요, 평소에는 반듯해 보였는데 정말 역겨워요. 앞으로 JJ랑은 거리를 둬야겠어요.”“진가은도 그런 식으로 이용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그럴지도 모르죠. 원래 그 아가씨한테 좀 호감이 있었는데 관심 꺼야겠어요.”갑자기 비난의 중심에 놓인 진가은은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누구 짓이야!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라고!”한껏 들떠 있던 이 남매는 이제 난감하기 그지없었다.그리고 자리를 뜰 준비를 하던 한선우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진작 강여경의 실체를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자기가 생각한 이상으로 역겨웠다. 대체 얼마나 많은 남자가 있었던 걸까.자신이 이런 여자와 사귀었었다고 생각하니 토할 것 같았다.옆에 있던 사람들이 좋은 구경거리라도 난 듯 그의 주위에 몰려들었다.“저 사람 전에 강여경이랑 사귀려고 강여름을 버렸다지?”“강여경한테 헤어나오지 못하는 매력이라도 있나 봐. 한선우도 그런 취향인 줄 몰랐네.”“유유상종이죠.”“…….”서도윤은 더 들을 수가 없어 고개를 홱 돌려 자리를 떴다.한선우 역시 황급히 쫓아 나갔다.막 나설 때, 자신을 연민과 조소의 눈길로 쳐다보는 강여름을 보았다. 그제야 모든 게 명확해졌다.‘이게 나에 대한 마지막 일격인 건가….’그렇다면 성공이었다. 그때부터 강여경만 생각하면 구토가 나올 지경이었으니까.*****일석삼조였다.여름은 정말 만족스러웠다.강여경의 뻔뻔함이 모두 까발려졌다. ‘끊임없이 욕심 부린 것도, 남자 꼬시기 좋아한 것도 다 너야.’“이제 다 봤습니까?”이를 꽉 깨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게 당신이 말한 그겁니까? 어제 분명히 경고하지 않았습니까? 나 말고 다른 남자는 보지 말라고.”하준이 여름의 눈을 노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싸늘한 기운이 엄습하고 여름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 와중에도 여름은 둘러댈 말을 찾았다.“내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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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화

진현일과 진가은이 쫓아 달려왔다.진현일의 얼굴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가득했다. 여름을 찢어 죽여도 시원찮았을 것이다.하준은 여름을 자신의 몸 뒤로 보냈다. 크고 건장한 몸이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있었다.“강여름, 네 짓이지?”진현일이 소리 질렀다.“좋아, 네가 끝까지 날 이렇게 건드렸단 말이지, 널 못 죽이면 내 성을 간다.”진가은도 거들었다.“너, 네가 누굴 건드린 건지 알아? 최윤형이라고, 감히 그 사람 영상을 공개해? 모자이크했다고 봐주진 않을 거야.”여름의 눈썹이 올라가더니 빙긋 웃었다.“그 영상이 어디서 났는지 생각해 봤니? 내가 몰카라도 찍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설마?”진현일과 진가은은 동시에 조용해졌다. 잠시 후, 진현일이 고개를 흔들었다.“그럴 리가 없어. 최윤형이 줬을 리 없잖아. 넌 어제 그 사람을 욕보였고, 그 사람은 널 못 잡아먹어 안달인데. 해킹한 거 아니야? 흥, 넌 이제 끝이야. 최윤형 비서에게 바로 전화하겠어. 우리 집안 사람이거든.”“걸어 봐요, 최윤형 씨가 오늘 아침에 벌써 동성을 떠난 건 모르나 본데.”여름은 여유만만하게 웃고 있었다.“잘나가시는 여자 친구분께서 말 안 해줬어요? 오늘 아침 최윤형 씨가 화신에 와서 어제 일 추궁 안 하겠다고 직접 말했는데. 아, 맞다. 그리고 강태환 씨 부녀한테 제대로 참교육 시전했구요. 이제 화신 사람들 다 강여경의 실체를 알게 돼서, 그 두 사람 회사에 발도 못 디딜걸?“웃기지 마, 그게 말이 돼?”진현일은 전혀 믿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최윤형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을 걸어 전화 연결이 된 전화기에서는 욕이 쏟아졌다. “진현일, 이 자식! 무슨 낯짝으로 전화야? 너 때문에 난 망했다고, 회사에서도 잘렸어.”“어떻게 된 거예요?”“나도 몰라. 아무튼 너랑 강여경 두 멍청이가 일 저지르는 바람에 그분은 벌써 서울로 돌아가셨어.”전화는 일방적으로 끊기고 진현일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멍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앞에서 만면에 웃음을 띄고 서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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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화

집에 돌아온 여름은 목에 걸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푼 다음, 손에서 놓기 싫다는 듯 탁상 등 아래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정말 예쁘다, 흠잡을 데가 없네.”“액세서리 안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어느새 하준이 등 뒤로 다가와 놀렸다.“중고라더니.”여름의 얼굴이 빨개지더니 웅얼거렸다.“그… 그건 너무 비싸서 그런 거죠. 얼마 동안 벌어야 하는 돈이냐구요.”“한선우도 쓰는데 내가 그깟 돈 못 쓰겠습니까?”“가격은 상관없습니다. 당신만 좋다면.”눈을 깜빡거리며 듣던 여름은 순간 모든 게 이해됐다.‘한선우한테 지기 싫어 그런 거야?’하지만 상관없었다. 한선우를 신경 쓴다는 건 자신을 신경 쓴다는 뜻이니까.“한선우는 이제 나랑은 털끝만큼도 관계없는 사람이에요. 이제 그 사람을 좋아하지도 않고. 내가 사랑하는 건 당신이에요.”여름은 몸을 돌려 하준의 목에 팔을 감고 얼굴에 입을 맞췄다.하준의 심장이 뛰었다. 예전에는 비록 돈을 많이 벌긴 했지만 그것은 그저 본능 같은 것이었다. 이제야 하준은 돈 버는 의미를 찾은 것 같았다.입술이 씰룩거리더니 의미심장한 눈으로 여름을 보았다.“이게 다입니까?”여름은 무슨 말인지 알아차린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귀까지 빨개졌다.하준이 웃음을 터뜨리며 여름을 안아 올렸다.“날 보고 싶다더니?”“어머, 몰라….”여름은 놀라 얼굴이 온통 새빨개졌다. 말로만 대담하지 사실은 순진하기 그지없는 전형적인 쑥맥이었다.“그럼 거짓말이었습니까?”하준이 여름의 턱을 살살 어루만졌다. 중후한 목소리가 첼로처럼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다.여름은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점점 더 얼굴이 빨개지더니 얼른 하준을 밀어냈다.“저녁에 제대로 못 먹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내가 간장 떡볶이 해줄게요.”종종거리며 도망가는 뒷모습을 보며 하준은 하는 수 없다는 듯 웃었다.하준이 씻고 나오자 여름은 간장떡볶이를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아주 오랫동안 여름이 해준 야참을 먹지 못했던 하준은 얼른 받아들고는 맛을 음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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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화

방금 머리를 말렸음에도 헝클어진 머리는 하준의 조각 같은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했고, 온몸에서 야성미가 넘쳤다.여름은 얼굴을 들어 넋이 나간 듯 하준을 뚫어지게 보았다.지금, 이 순간 윤서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었다.윤서의 어리바리한 착각으로 이 남자가 자신에게 왔으니 말이다.하준은 매번 자신을 도와주었다.오늘에 이르기까지 자신에게 용기를 준 것도 이 사람이다.오늘 밤, 하준은 자신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선물하며 동성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여름도 그저 보통 사람일 뿐이다. 허영심도 있고 이런 일에 쉽게 감동한다.“쭌….”여름은 용기를 내어 그의 목을 안았다.아름답기 그지없는 얼굴에 수줍음이 어른거렸다. “우리 한 번… 해볼래요?”여름은 결심이 섰다. 가장 의미 있을지 모를 순간을 이 남자와 함께하고 싶었다. 하준은 멍해졌다.최근 여름은 이런 스킨십을 늘 거부해 왔고 그래서 자신도 더 진도를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왜 갑자기….‘설마 내가 누군지 알게 되어서?’“왜지?”깊고 그윽한 눈동자가 여름을 빤히 보았다. 여름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려는 듯이.부끄럽다는 생각에 휩싸인 여름은 별다른 점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하준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당신이 좋으니까요, 지금 이 순간, 그 어느 때보다 내 마음에 확신이 생겼어요.”하준의 그윽한 눈빛이 여름의 부드러운 머리칼에 닿았다.하준은 그 대답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의 주위에는 그의 신분을 알고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여자가 너무나도 많았다.“왜요… 싫어요?”여름은 하준이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자 난감했다.‘하긴 전에도 내가 먼저 나섰다가 호되게 모욕만 당했었지.’“오해하지 말아요. 유혹하는 것도 아니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에요.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나도….”여름은 하준을 밀어내고 일어나려 했지만 하준의 몸은 꿈쩍하지 않았다.“그렇게까지 말하니 이젠 나도 어쩔 수 없네.”여름은 너무나 당황스러웠다.“어쩔 수 없이 할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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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화

여름이 생각해도 심장이 벌렁거렸다.“다신 안 그래요.”여름은 살레살레 고개를 저었다.하준이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부끄럼을 많이 타서 아기는 언제 낳아 주겠어, 응?여름의 얼굴이 부끄러움에 완전히 빨개졌다.작은 얼굴을 하준의 가슴에 파묻고는 부끄러움에 한참 동안 아무 말 하지 않았다.“어차피 언젠가는 완전히 내 사람이 될 건데, 뭐.”여름을 꼭 안은 하준의 목소리는 매우 단호했다.여름은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 달달해지는 기분이었다. 너무나 행복했다.******두 사람이 자는 동안, 오늘 밤 자선활동 행사에서 일어났던 일은 온 동성에 소문이 퍼졌다.이 시각 강 회장 집. 강태환은 또 사업파트너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었다.“강 회장님, 따님 행동거지를 못 봐서 그러시는데요.”강태환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꺼지시오, 다시는 나한테 연락하지 말고.”강태환은 핸드폰을 바로 던져버렸다.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반평생 영광스럽게 살아왔는데 오늘처럼 망신스러운 적이 없었다. 다 잡은 물고기였던 화신도 놓치고, 갈수록 첩첩산중에 마지막 남은 체면마저 다 깎이고 남은 게 없었다.너무 화가 나 이성을 잃은 강태환은 빗자루를 들고 위층으로 가 강여경을 향해 마구 휘둘렀다.“이 쓸모없는 것, 다 너 때문이다. 네가 돌아오고 나서 TH도 내 명예도 다 사라졌어. 내가 이 나이에 사람들한테 모욕이나 당해야겠냐!”“아악! 이게 다 우리 집안을 위한 거였잖아요. 아빠도 최윤형에게 잘 보이라고 하셨구요.”“내가 가서 잘 보이라고 했지, 방에 뛰어 들랬어?”강태환은 갖은 욕설을 퍼부었다. “당신 미쳤어요? 얘는 우리 딸이라고요!” 이정희가 달려와 강여경을 떼어냈다. 상처 난 강여경을 보자 가슴이 아파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이따위 자식 없는 게 나아”강태환이 강여경을 손가락질했다.“알았으면 애초에 널 데려오지도 않았을 거다. 네가 아니었으면 여름이가 이렇게 우리를 걸고 넘어지겠니? 너희들이 종용하지 않았으면 내가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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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화

차디찬 바람이 창문 틈으로 들어오자 강태환은 으스스한 기분을 느꼈다. 처음으로 후회가 밀려왔다.안정된 가정이었는데 3개월 만에 풍비박산이 나버렸다.다음 날, 강태환은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이미 화신 이사회에서 제명되었다는 통보였다.화가 나 회사로 찾아갔지만, 입구에 있던 경비가 들여보내 주기는커녕 내쫓았다.갈 곳 없는 강태환은 매일 술집에서 술에 진탕 취해 한밤중에야 집으로 돌아갔다.그날 밤, 그는 잔뜩 취해 집 현관문을 열었다. 불은 모두 꺼져 있었고 싸늘한 달빛이 거실 통창으로 스며들고 있었다.거실엔 못 보던 휠체어가 있었다. 휠체어에 등이 굽은 검은 노인의 그림자가 산발한 채로 앉아 있었다. 오싹했다.그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로 돌아 도망치고 싶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뒤쪽에 있던 문이 ‘쾅’하고 닫히고 거실은 더욱 음산해졌다.“어머니….”강태환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얘, 왜 나를 그렇게 무서워하니?”휠체어가 천천히 미끄러져 다가오고, 노인의 쉰 목소리도 함께 다가왔다.강태환은 겁에 질려 뒤쪽으로 기어갔다.“어머니, 오지 말아요, 부탁이에요, 내가 그런 게 아니에요. 잘못 찾아오셨어요.”“왜 네가 아니라는 거냐?”노인의 음산한 웃음소리가 거실을 휘감았다.“지분 때문에? 돈 때문에? 왜 그랬니? 이제까지 내가 네게 해준 게 부족했니? 염라대왕님도 날 받아주지 않아 너한테 돌아왔다, 아들아….”휠체어가 점점 다가오자 강태환은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어머니,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어요, 제가 뭔가에 홀렸었나 봐요. 하지만 제가 그런 게 아니에요. 정희, 이정희가 베개로 질식시킨 거예요. 그 여자한테 가세요.”“네가 동의하지 않았다면 걔가 그럴 수 있었겠니?”노인은 차갑게 웃으며 울었다.“어머니, 죄송해요.”강태환은 울부짖었다. “그 두 여자가 절 꼬드긴 거예요. 전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어머니, 잘못했어요, 봐주세요.”“잘못을 알았으니 이제 널 데려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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