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디찬 바람이 창문 틈으로 들어오자 강태환은 으스스한 기분을 느꼈다. 처음으로 후회가 밀려왔다.안정된 가정이었는데 3개월 만에 풍비박산이 나버렸다.다음 날, 강태환은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이미 화신 이사회에서 제명되었다는 통보였다.화가 나 회사로 찾아갔지만, 입구에 있던 경비가 들여보내 주기는커녕 내쫓았다.갈 곳 없는 강태환은 매일 술집에서 술에 진탕 취해 한밤중에야 집으로 돌아갔다.그날 밤, 그는 잔뜩 취해 집 현관문을 열었다. 불은 모두 꺼져 있었고 싸늘한 달빛이 거실 통창으로 스며들고 있었다.거실엔 못 보던 휠체어가 있었다. 휠체어에 등이 굽은 검은 노인의 그림자가 산발한 채로 앉아 있었다. 오싹했다.그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로 돌아 도망치고 싶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뒤쪽에 있던 문이 ‘쾅’하고 닫히고 거실은 더욱 음산해졌다.“어머니….”강태환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얘, 왜 나를 그렇게 무서워하니?”휠체어가 천천히 미끄러져 다가오고, 노인의 쉰 목소리도 함께 다가왔다.강태환은 겁에 질려 뒤쪽으로 기어갔다.“어머니, 오지 말아요, 부탁이에요, 내가 그런 게 아니에요. 잘못 찾아오셨어요.”“왜 네가 아니라는 거냐?”노인의 음산한 웃음소리가 거실을 휘감았다.“지분 때문에? 돈 때문에? 왜 그랬니? 이제까지 내가 네게 해준 게 부족했니? 염라대왕님도 날 받아주지 않아 너한테 돌아왔다, 아들아….”휠체어가 점점 다가오자 강태환은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어머니,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어요, 제가 뭔가에 홀렸었나 봐요. 하지만 제가 그런 게 아니에요. 정희, 이정희가 베개로 질식시킨 거예요. 그 여자한테 가세요.”“네가 동의하지 않았다면 걔가 그럴 수 있었겠니?”노인은 차갑게 웃으며 울었다.“어머니, 죄송해요.”강태환은 울부짖었다. “그 두 여자가 절 꼬드긴 거예요. 전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어머니, 잘못했어요, 봐주세요.”“잘못을 알았으니 이제 널 데려가야겠다
강태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제 더 이상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그러나 지금 자백하지 않으면 나중에 이정희가 책임을 자신에게 미룰 테고 정말 감옥에 갇힐 수도 있다.“좋아. 할머니께서 주무실 때, 이정희가 질식시켰다.”마지막 양심의 발로였는지 강태환은 결국 바닥에 엎드려 큰 소리로 울었다.여름과 현주도 울음이 터져 나왔다. 할머니의 마지막이 그렇게 처참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현주가 물었다.“마지막으로 여쭈어볼게요. 어르신이 2층에서 굴러서 반신불수 된 것도 강여경 짓인가요?” “그건 정말 나도 몰라.”강태환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간 강여경이 해온 짓을 생각해 보건데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러나 어쨌든 그것도 딸인지라 차마 감옥에 보낼 소리를 할 수는 없었을 뿐이었다.결국 강태환은 경찰에 끌려가 조사받게 되었다.여름이 시커먼 별장을 돌아보았다.한때는 자기 집이었는데 이제 다시는 발도 딛고 싶지 않은 곳이 되어버렸다.열쇠를 잔디밭에 던져버리고 걸어 나갔다.입구에는 호화로운 세단이 한 대 세워져 있었다.하준이 늘씬한 몸을 차에 기대고 서 있었다. 눈이 그의 머리와 어깨에 쌓였다. 여름을 바라보았다. 그윽한 눈동자는 마치 어두운 밤하늘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별 같았다.집을 잃은 여름이 돌아갈 곳을 찾았다는 듯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하준이 코트를 벌려 그녀를 품에 안아 들였다.“쭌, 나 마침내 복수했어요.”여름이 그의 품에서 울먹였다.“하지만 기쁘진 않네요. 할머니 곁에 좀 더 같이 있을 걸 그랬어요. 그랬으면 그렇게 돌아가시진 않았을 텐데.”눈물이 그의 셔츠 앞자락을 적셨다.하준은 누군가를 잘 위로할 줄 몰랐다. 그저 여름이 실컷 울 때까지 기다리며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정말 잘했습니다. 증거도 하나 없으면서 잘도 전부 얻어냈군요.”“도박을 한 거예요. 강태환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할머니에 대한 일말의 양심에 걸고, 그 여자에 대한 강태환의 이기심에 걸고….”목이 잠긴 여름이 천천히 말했다.“절대
이정희가 울부짖었다.“아니, 이 짐승 같은 놈이! 내가 네 할머니를 죽였다고 말했단다. 여경아, 넌 부디 몸 조심하고 있거라.”이정희는 곧 끌려나갔다. 여경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시골에서 20여 년을 고생하며 살다가 이제 겨우 집에 왔는데 1년도 안 돼서 집구석이 이 지경이 되다니.강태환과 이정희에게 일이 생기면 이제 재벌 2세 놀음도 끝장이다.‘아니, 아니지! 다시 그 거지 같은 삶으로 돌아갈 순 없어!’급히 진현일에게 전화를 걸었다.“현일 오빠, 나 좀 도와줘요. 우리 엄마 아빠가 경찰에 잡혀갔어. 이번 일만 도와주면 내가 결혼해 줄 게요. 화신 주식도 반 양도할게.”“뭐라고? 너랑 같이 있는 사람은 다들 재수가 없어. 처음에는 한선우더니 이제는 네 엄마 아빠까지 감옥을 가는구나. 내 평판도 덩달아 땅바닥에 떨어졌다고! 이제 나한테서 떨어져. 너같이 더러운 것하고 엮이고 싶지 않으니까!”그러더니 진현일은 전화를 끊었다.강여경은 완전히 멍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 동성의 재벌가에서 자신에게 빌붙으려고 난리였는데 불과 며칠 만에 판세가 완전히 뒤집어졌다.‘이게 다 강여름 때문이야!다 망했어. 강여름 때문에 내가 이 지경이 된 거야.죽어버렸으면 좋겠어!’강여경의 눈 속에 광기가 가득했다.이 때 핸드폰이 짧게 몇 번 울렸다. 열어보니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사진 몇 장이 들어와 있었다.사진을 열어보고 흠칫했으나 곧 악마적인 미소가 떠올랐다.원래는 보디가드에게 손 봐주려고 할 셈이었지만 양유진이 들이 닥치는 바람에 그 때 룸에 설치했던 카메라를 회수하지도 못 했는데 그때의 사진이 손에 들어오다니….이 사진만 있으면 강여름은 이제 최하준과 끝이다.화신 대표로서의 강여름의 명예에도 타격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서둘러 기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오전 9시.어젯밤 밤새 눈이 내려 창 밖은 온통 은빛이었다.여름이 침대에서 일어나 보니 혼자서 자고 있었다.드디어 강태환 일가와의 일이 해결되어 오랜만에 편안하고 상쾌한 기
한동안 하준이 화내는 걸 본 적이 없었던 지라 놀란 여름은 얼른 전화를 껐다. “그 사진 보고 그래요? 오해하지 말아요.”“오해? 오해는 무슨 오해?”하준이 핸드폰을 뺏어 들었다. 눈에는 실망과 혐오가 뒤섞여 있었다.“양유진을 안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눈이 있으면 이 사진을 보라고! 당신이 더 끌어안고 있는 거 안 보입니까? 어떻게 이렇게 뻔뻔한 여자가 다 있지?”하준이 핸드폰을 집어 던졌다. 아팠다. 너무나 심장이 꽉 조여왔다.하긴 이런 사진을 보고도 냉정을 유지할 수 있는 남자가 얼마나 되겠는가?“아니, 나도 당한 거예요! 그날 강여경한테 잡혔는데 양 대표가 구해준 거예요. 정말 그 사람하고는 아무 일 없었어요!”여름은 고개를 저으며 울먹였다.“난 머리를 식히려고 욕조에 들어가서 밤새 있었어요.”“내가 바보인 줄 압니까?”하준의 목에서 음산한 웃음소리가 울렸다.“그런 상황에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고?”“난 사실대로 말하는 거예요.”여름은 억울해서 열심히 해명했다.“정말 맹세할 수 있어요.”“그만! 강여름 씨, 난 당신을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하준이 그녀의 턱을 와락 잡았다.“내 앞에서는 순수하고 순진한 척하더니 날 이런 식으로 가지고 놀아?”“이 사진이 언제 찍혔는지 대충 알겠군요. 전에 내가 출장 갔을 때 당신이 밤새 돌아오지 않은 날이 있었지.”“아니에요! 정말 그 사람하고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 양 대표를 좋아하지도 않아요.”여름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내 말이 맞나 보군.”하준은 그녀의 말을 아예 듣지도 않았다. 눈에 한껏 비웃음을 담아 싸늘하게 뱉었다.“그날 전화를 걸었을 때 목소리가 좀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쇼핑한다더니 양유진과 함께 있었군요.”말을 하다 보니 점점 더 화가 났다. 마음에 난 상처에 누가 소금이라도 뿌린 것 마냥 심장이 너무 따끔거렸다. 숨도 못 쉴 지경이었다.하준의 의심과 질책 앞에서 여름의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둘 사이에 믿음은 모두 사라졌다. 여름은 이
양유진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자 마음에 남아있던 일말의 의심도 사라졌다. 양유진을 의심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렇게나 신사적인 사람이 그런 사진을 찍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지금 엄청나게 화가 났어요. 양 대표님 전화 받으면 더 화낼 것 같아요.”여름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카메라는 다 찾아서 처리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어떻게….”“제가 카메라는 다 처리했었죠. 다시 한 번 싹 뒤져보기까지 했습니다.”양유진이 괴로운 듯 말했다.“그때 화면이 그대로 강여경에게 실시간 전송되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제가 너무 안일했습니다. 알아보니 온라인에 퍼진 사진은 강여경이 기자들에게 직접 뿌린 거라고 하더군요.”여름은 쓰디쓰게 웃었다.‘내가 강여경을 너무 얕잡아 봤구나. 하필 온갖 상상을 다 하게 만들 수 있는 교묘한 프레임의 사진을 뿌렸어.’“미안합니다.”양유진이 무척 미안해 하며 다시 말했다.“나야 그렇다고 치고 여름 씨에게 너무나 파장이 크겠습니다. 혹시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최선을 다해서 돕겠습니다.”“고마워요. 회사에서도 전화 들어오네요. 일단 이거 받아야겠어요.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여름은 급히 양유진의 전화를 끊고 노선경의 전화를 받았다.“대표님, 회사로 한 번 나오셔야겠습니다. 대표님 관련한 소문이 돌아서 지금 기자들 상대하느라 회사 전화에 불이 나고 있어요. 이거 좀 급히 처리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그래, 지금 바로 갈게요.”다른 생각은 할 것도 없이 급히 옷을 입고 내려갔다.나가면서 생각해보니 전처럼 차윤이 따라 붙지 않았다.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준이 고용했던 보디가드이니 자신과 관계를 끊을 생각으로 차윤도 해고했나 싶었다.회사에 도착하자 입구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여름은 주차장을 통해 들어갔다.사무실로 올라가 보니 중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온라인에서 네티즌들이 이사장님이 너무… 개방적이라며…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홍보부 오 팀장이 이마에 땀을 흘렸
다들 침묵했다. 한참 만에야 오 팀장이 끄덕였다.“대표님 말씀에 동의합니다.”곧 화신 SNS를 통해서 공식 입장이 나갔다.-해당 사진은 몇 달 전 위험에 처했던 강여름 대표를 진영그룹 양유진 대표가 구출한 직후의 사진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는 업계 지인으로서 우호적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뿐 정식으로 교제 하는 사이는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이어서 양유진도 SNS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우선 젊은 기업인으로서 회사를 든든히 이끌어 가는 강여름 대표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 사진이 촬영된 사건 당시 강여름 대표와 저 사이에 오해를 살만한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몇 장의 사진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입장 발표가 나가자 사태는 의외로 빨리 수습되었다.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강여름과 양유진의 따듯한 우정을 응원하기 시작했다.사람들은 둘이 너무 잘 어울린다며 이렇게 된 바에 사귀라고 하기도 하고, 너무 잘어울린다는 여론이 만들어졌다.******이지훈의 로펌.사무실 분위기는 암막이라도 드리운 듯 무거웠다.하준은 종일 휴대 전화만 새로 고침을 하고 있었다. 오전에는 다들 강여름을 욕하는 분위기더니 오후가 되니 갑자기 다들 강여름과 양유진 커플을 응원하는 쪽으로 흐름이 바뀌었다.최하준은 화가 나서 휴대 전화를 집어 던졌다.“이 사람들은 할 일이 없나? 저 둘이 어울리기는 뭐가 어울려?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냐?”상혁이 난감한 듯 휴대 전화를 집어 들었다.‘또 핸드폰을 사러 가야 할 판인가 보다. 동성에 와서 이게 대체 몇 번째인지도 모르겠네.’“다들 할 일 없는 사람들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신경을 안 쓸래도 사람들이 다들 양유진과 강여름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고 난리인 데다, 여름은 확실히 양유진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일부 사람들은 이미 두 사람들 주제로 자기들끼리 말도 안 되는 드라마를 써내려 가는 중이었다.너무 화가 났다. 하준은 곧 자리에 앉더니 노트북을
밤.하준은 술을 마구 들이 부었다. 지훈이 좀 말려보려고 했지만 소용 없었다.하준은 원래 주량이 상당하지만 오늘은 얼마를 마셨던지 정말로 취하고 말았다.“지안이 보고 싶다.”창밖의 어둠을 보며 나지막이 읊조리듯 말했다.“내게 다가온 여자들 중에 내게 진심을 다한 여자는 지안이 뿐이었어. 거짓말도 안 하고, 배신하지도 않았어. 지안이는 왜 세상을 떠났을까?”술잔을 들고 있는 지훈도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남들이 보기에는 신비롭고 존귀한 존재인 최하준이지만 사실 지훈은 알고 있었다. 하준은 어려서부터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사랑 받지 못하고 자라서 애착이 부족했다. 유치원 때부터 하준의 주변에는 목적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들 투성이였다. 그래서 이렇게 의심 많은 성격이 된 것이다.그런 하준이 이번에는 정말 사랑에 빠졌었다.애초에 왜 하준을 동성으로 불러서 이 고생을 시키는지 친구로서 후회됐다. 그러나 그렇게 얼음장처럼 냉랭하기만 하던 하준이 이렇게나 사랑에 깊이 빠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지훈은 계속해서 하준이 완전히 취해서 고꾸라질 때까지 술자리를 지켜주었다.하준이 정말 취한 모습을 보는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테이블에 올려둔 핸드폰 진동이 계속 울렸다. 여름이 걸어오는 것이었다.지훈이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잔뜩 잠긴 여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디에요? 늦었는데 집으로 들어와요, 네?”“하준이가 취했습니다.”지훈이 한숨을 쉬었다.“제가 데리러 갈게요.”여름이 급히 말했다.“됐습니다. 혼자서 이 친구 들지도 못해요. 제가 대리 불러서 같이 갈게요.”통화가 끝나자 여름은 바로 문밖으로 나가 기다리기 시작했다.밖에는 눈이 내려 소복소복 쌓이고 있었다.30분쯤 지나 도착하는 지훈의 차를 보고서 차가운 밤공기 속에 서 있던 가녀린 몸에서 하얀 입김이 후욱 뿜어져 나왔다.차가 멈추자 여름은 뒷좌석 문을 열었다. 이렇게 곤드레만드레 취한 하준은 처음이었다. 거의 의식을 잃고 뒷좌석에 누워 있었다.지훈이 여름과 함께 하준을 침실로
여름은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다 하준의 셔츠를 풀고 수건으로 닦아주었다.“지안아….”갑자기 하준이 여름의 손을 잡으며 잠꼬대를 했다.여름은 얼음물을 뒤집어 쓴 듯 그대로 굳어 버렸다.‘지안이?누구지? 전 여친인가?’이럴 때 여자의 육감이란 특히나 예민한 법이다.힘껏 손을 뿌리쳤다. 하준의 손이 허공을 저으며 다시 불렀다.“지안아….”여름은 눈가가 빨개진 채로 침대 가에 돌아 앉았다. 심장이 바늘에 찔린 듯 아팠다.******다음날 새벽잠에서 깬 하준은 숙취로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속도 쓰렸다.주위를 둘러보니 자기 집 침실이었다.‘지금은 강여름 꼴도 보기 싫다니까 지훈이는 왜 날 여기로 데려온 거야?’어젯밤 술을 너무 마신 탓에 속이 아팠다.시선을 돌리다가 협탁 위에 물과 위장약이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눈이 살짝 커졌다.이모님이 이렇게 세심할 리는 없다. 그리고 하준이 무슨 약을 먹는 지도 모를 테고.'그렇다면 강여름이….'하준은 복잡한 심경으로 일단 약은 먹었다. 세수를 하고 속쓰림이 좀 가라앉고 나서야 1층으로 내려갔다.임옥희가 청소를 하다가 그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웃었다.“사모님이 아침 준비하고 계세요.”식탁에 가 보니 꿀물과 북엇국, 김자반이 놓여있었다.주방 문이 열리더니 쟁반에 밥그릇을 받쳐든 여름이 나왔다. 편안한 캐주얼에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는 하나로 묶었다. “어제 너무 많이 마신 것 같길래 북엇국 준비했어요.”여름이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로 밥그릇을 하준의 자리에 놓았다.하준은 밥 그릇을 한 번, 여름을 한 번 보았다. 머릿속에서는 자꾸 여름이 양유진의 목을 껴안고 있던 이미지가 떠올랐다.심장에서 팽팽하게 당겨졌던 뭔가가 탕하고 끊어진 것 같았다.벌떡 일어나 테이블에 있던 그릇을 모두 밀어버렸다.“더러워! 강여름 씨가 한 밥은 못 먹습니다!”여름의 얼굴이 삽시간에 하얗게 질렸다. 잠시 후 깜빡이던 눈에서 눈물방울이 떨어졌다.“더럽다고 말하니 내가 나갈게요.”어쨌든 꿈속에서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