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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1장

저녁 7시, 하현은 사청인의 차를 타고 경비들의 검열을 무사통과한 뒤 용 씨 가문 저택으로 들어왔다.차 문을 열고 나온 하현은 주위를 빙 둘러보았다.이 저택은 무성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고 건축이 고풍스럽고 풍수가 더없이 좋았다.무성의 호수와도 가까웠다.소문에 의하면 용천진은 젊었을 때 무예를 익히기 위해 매일 호수에 가서 목욕을 했다고 전해졌다.“하현, 용천진과 모지민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사청인이 하현의 신분을 밝히자 경호원들은 공손하게 하현을 건물 안으로 안내했다.사청인은 걸으면서 조용한 목소리로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오늘 밤 용천진이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한 것은 당신한테 특별히 사과하고 해명하기 위해서야.”“그가 무성상업연맹의 자산을 받아들인 것은 순전히 용천오한테 속아서였어.”“부디 용천진의 상황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이따가 이 일에 관해 얘기가 나오면 너그럽게 받아줘. 부탁이야.”“어차피 용천진이 모든 무성상업연맹의 자산을 당신한테 넘기라고 분부했으니까 더 문제 삼지 말아줘.”하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용천진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오늘 밤 여기 나타나지도 않았을 거야.”“물론 이 모든 것이 오해로 인해 생긴 건지 아니면 누군가 일부러 그런 건지는 용천진이 나한테 어떤 해명을 하느냐에 따라 달렸지만.”사청인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알겠어. 하현, 이쪽으로 와. 우리가 마련한 연회 장소는 일월루야.”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런데 정작 일월루 앞에 와 보니 주변에 아무도 시중드는 사람이 없었다.사청인은 뭔가 의문스러운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을 밀었다.그런데 문이 마음대로 열리지 않았다.하현은 사청인도 여자이기 때문에 무거운 문을 열기엔 역부족이라 생각해서 그녀를 도와 함께 문을 밀어 주었다.“삐걱!”일월루의 문이 열리는 순간 늘씬하고 아름다운 여자가 하현의 품에 푹하고 쓰러졌다.순간 말할 수 없는 역한 피비린내가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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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2장

용천진의 말은 온기 하나 없이 무미건조했다.그러나 그가 입 밖에 내놓은 말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만큼 치명적이었다.하현의 곁에 서 있던 사청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변했다.용천진의 모습을 보니 그가 하현에게 사죄하고 고개를 숙일 뜻이 전혀 없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용천진은 오히려 하현을 살인자로 몰아넣을 작정이었다.이제 둘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 되었다.동시에 일월루에는 각각 십여 명의 용 씨 가문 고수들이 쫙 늘어서 있었다.마스크와 긴 도끼를 등에 멘 채 그들은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분명 용천진의 명령이 떨어지면 그들은 사양하지 않고 하현을 향해 돌진해 올 기세였다.그리고 흰색 무도복을 입은 용문 전당 선임 탁심설이 구석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그녀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현을 보았다.마치 곧 죽을 사람을 보는 듯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장내에는 칼끝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언제라도 피 튀기는 장면이 펼쳐질 것 같은 긴장감이 흘렀다.“용천진, 나도 오늘 뭔가 일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어. 당신이 오늘 이곳으로 날 유인해 죽일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다만 당신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리석군.”“나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던 여자를 죽이고 그 죽음을 나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해?”“도대체 누가 이런 계략을 꾸민 거야?”“나중에 그 사람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거든 어서 빨리 그 사람을 죽이는 게 나을 거야.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말이지.”말을 하면서 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식탁에 앉아 냅킨으로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피를 닦았다.하현의 흔들림 없는 모습에 주위 사람들은 모두 혀를 내둘렀다.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거나 이미 만반의 준비가 된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용천진의 눈빛이 순식간에 깊은 상념에 빠졌다.그는 원래 하현이 이런 상황에 닥치면 소스라치게 놀라 당황할 것이라 생각했다.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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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3장

”우리도 여러 번 호흡을 맞춰 본 셈인데 그동안 꽤 잘 맞았잖아, 응?”“무성상업연맹 자산을 순순히 나에게 모두 돌려주고 벌주만 석 잔 마신다면 나도 이 상황에서 당신 체면 정도 못 세워 주겠어, 안 그래?”하현은 그동안의 소회를 말하는 듯 느긋한 표정으로 용천진을 떠보았다.“용천진, 꼭 이렇게 꼴사납게 굴어야 했어?”“당신이 했던 제안을 곰곰이 생각해 봤어.”용천진은 마치 하현에게 마음을 열고 성의를 가진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발아래 천하를 둔 군주처럼 말했다.“안타깝게도 당신이 한 가지 잊은 게 있어.”“나 용천진이 처한 상황이 쉽지가 않아.”“남들이 보기에 난 용 씨 가문의 유력한 후계자이고 용문 고위층의 절반의 지지를 받고 있지.”“그렇지만 당신이 잊은 게 있어. 우리 용 씨 가문 노부인이 나한테 그다지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거야!”“지금 노부인은 용천두를 상석에 앉히지 못해서 안달이 나 있지.”“이런 마당에 내가 무성상업연맹의 자산을 내줄 수 있겠어?”“이것은 나의 퇴로를 스스로 끊고 노부인에게 날 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주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야?”“나 같은 사람은 말이야. 상석에 앉을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야. 이런 내가 상석에 앉을 기회를 버린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아!”“그래서 여러 번 생각해 보니 당신의 비상한 머리를 빌려야 할 것 같더군.”“아, 걱정하지 마. 내가 당신을 죽인 후에는 다음 생에는 좋은 집에서 태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 줄 테니까!”용천진은 마음을 터놓은 오랜 친구에게 말하듯 했다.그러나 말속에 담긴 음흉한 속내는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용천진, 별말을 다 하는군. 내년 오늘 당신이 날 위해 기도해 줄 수 있겠어?”“걱정하지 마. 내가 꼭 기도해 줄 테니까. 비싼 향으로 당신의 명복을 빌어 줄 테니까 저세상 가서도 안심하라고.”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어.”“아, 한마디만 더 물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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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4장

”퍽!”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첫 번째로 달려드는 용 씨 가문 고수의 얼굴에 손바닥을 후려쳤다.용 씨 가문 고수는 밀려오는 고통에 눈앞이 캄캄해지며 몸체가 그대로 뒤로 튕겨졌다.튕겨진 고수는 그들 무리 사이로 쓰러져 몇몇 용 씨 가문 고수들을 연이어 무너뜨려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손바닥을 후려친 하현이 이번에는 탁자 위를 탁 쳤다.그러자 탁자 위에 있던 도기 접시 몇 개가 산산조각이 나서 부서져 사방으로 튀어나왔다.“아악!”여기저기서 연거푸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용 씨 가문 고수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사람들이 쓰러졌지만 또 다른 사람들이 밀려들었다.이들은 죽음 따위 두려워하지 않는 얼굴이었다.마치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끝없이 이어졌다.하현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용 씨 가문 고수들 앞에서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담담한 모습이었다.하지만 이런 공세는 누가 봐도 하현을 무력화할 수 있는 정도의 기세처럼 보였다.구석에 몸을 숨기고 몰래 이 상황을 지켜보던 용천진의 여자들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그녀들은 이렇게 훌륭한 고수들 앞에서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하게 서 있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창백한 얼굴로 대문 근처로 물러나 이를 지켜보던 사청인도 깜짝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도련님, 제가 처리하겠습니다.”거의 백 명에 가까운 용 씨 가문 고수들이 제대로 힘을 못 쓰고 있는 것을 한쪽 구석에 서서 가만히 지켜보던 탁심설은 천천히 허리춤의 장검을 뽑아 들고 한발 앞으로 걸어 나왔다.용천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조심해, 하현도 만만찮은 사람이야.”하지만 용천진은 탁심설의 실력이 출중하다는 것에 자신이 있었다.그녀는 용문 전당의 선임이었기 때문이다.만약 그가 하현을 꺾을 수 없다면 누가 할 수 있겠는가?“솽!”탁심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그녀의 가냘픈 몸을 비틀어 귀신 그림자처럼 날쌔게 내던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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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5장

”죽어! 죽어! 죽으란 말이야!”탁심설의 동작은 점점 더 빨라졌고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그녀의 양손에 든 장검은 하현을 산 채로 베어버리려는 듯 교활한 발톱을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었다.하현은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으로 탁심설의 무시무시한 공격을 모두 방어했다.하현을 포위하고 있던 용 씨 가문 정예들은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탁심설이 전당의 선임을 맡은 만큼 얼마나 실력이 출중한지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 이 상황에서 하 씨 이 자식이 어떻게 이렇게 멀쩡한 몸으로 방어할 수 있는가?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던 용천진의 얼굴도 점점 더 굳어져 갔다.그는 이미 하현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를 위해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만약 이렇게 했는데도 하현을 어떻게 할 수 없다면 앞으로 일이 아주 번거로워질 것임이 틀림없다!용천진이 눈살을 찌푸리기 시작하자 탁심설은 거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자신의 칼날에 하현의 목을 걷어올리고자 애썼다.“퍽!”모두가 탁심설의 승리가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 둔탁한 소리가 장내를 울렸다.순간 번쩍이던 장내의 칼날은 사라지고 정적이 흘렀다.잠시 후 탁심설은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며 마치 실이 끊어진 연처럼 풀썩 땅에 쓰러졌다.땅바닥에 쓰러지며 그녀는 입에서 왈칵 피를 뿜었다.완전히 만신창이가 된 것이다!용문 전당의 선임인 탁심설이!그렇게 강인했던 탁심설이!뜻밖에도 하현의 주먹에 고개를 떨구고 만 것인가?!이 장면을 본 많은 용 씨 가문 고수들은 그대로 굳어져 얼음이 되었다.용천진의 여자들도 모두 눈앞의 장면에 할 말을 잃고 넋이 나가 버렸다.사청인조차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등골이 오싹한 느낌에 압도당해 버렸다.하현 같은 무적의 존재가 무성에 나타난 것은 정말 처음이었다.“용천진, 당신이 준비한 사람, 이제 못쓰게 된 것 같은데.”하현은 손바닥을 툭툭 털며 탁자 위의 휴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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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6장

”어때? 하현, 이제 더는 꼼짝 못 하겠지? 아니면 내 솜씨 한 번 구경해 볼 테야?”용천진은 어두워진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당신을 죽일 수 있는 충분한 병력들을 준비해 두었다는 걸 명심해야 할 거야!”“맞아. 당신은 사람도 많고 실력도 좋아.”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난 이미 당신이 날 죽이려고 이 자리를 마련했다는 걸 짐작했었어. 용천진 당신은 내가 정말 혈혈단신으로 당신이 초대한 이 자리에 왔다고 생각해?”하현의 말을 들은 용천진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다가 사청인을 매섭게 쏘아보며 말했다.“일을 성사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망치려 들어? 이 쓸모없는 것!”“퍽!”그때 누군가가 일월루의 대문을 발로 뻥 걷어차고 들어왔다.무도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남녀가 길게 행렬을 지어 몰려들었다.이 사람들의 손에는 장검이 들려 있었고 표정은 하나같이 찬바람이 불었다.군중 앞에 앞장서고 있는 사람은 진주희였다.그들은 빠르게 흩어져서 하현 주변으로 방어선을 이루며 막아섰고 용 씨 집안 고수들과 대치하기 시작했다.장내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용문 집법당 사람들이야?”“진주희?”이 광경을 보고 용천진은 냉소를 흘렸다.“진주희, 뭘 잘못 알고 온 거 아니야?!”“내가 누군지 잊었어?”“또 집법당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무슨 행패를 부리려고 하는 거야? 내가 정말 만만하게 보여?”“나도 오고 싶지 않았죠.”진주희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그런데 용천진 당신은 공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하고 용문 사람들을 동원해 용 씨 가문의 일을 처리하려고 했습니다.”“집법당의 부당주로서 어떻게 이 일을 가만 보고 있겠습니까? 내가 어떻게 당주에게 떳떳이 고개를 들 수 있겠냐고요?”“당주?”용천진이 피식하고 냉소를 흘렸다.“내가 비록 당신이 말하는 그 당주가 누군지 모르지만 말이야. 지금 그 말을 듣고 보니 잊었던 게 생각나는군.”“그동안 깜빡 잊고 있었는데 마침 잘 됐어!”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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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7장

하현이 일어서자 진주희는 그의 존재를 의식한 듯 반보 뒤로 물러서며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았다.이 모습은 용천진을 적잖이 당황스럽게 만들었다.사청인도 용천진과 마찬가지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설마 하는 생각이 그들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하현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내가 바로 용문 집법당의 당주야.”이 말을 들은 집법당 제자들은 모두 손에 칼을 든 채 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당주님, 인사 올립니다!”“당주님, 인사받으십시오!”하현을 부르는 소리가 하늘과 땅을 울리며 장내를 휩쓸었다.용천진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고 그를 따르던 여자들도 모두 넋이 나간 표정이 되었다.“하현이 당주라고?!”용천진에게서 하현이 보통 거물이 아닐 거라는 얘기를 귀띔으로 들은 사청인조차도 하현이 용문 집법당 당주라는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아무리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하현이 당주일 거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하현이 당주라고?”“용문의 새로운 집법당 당주는 젊고 의기양양하고 실력이 출중하여 용문의 신임을 한몸에 받는다고 하던데 설마 그 사람이 바로 이 사람?”“그럴 리가?! 하 씨 성을 가진 이놈은 아무리 보아도 당주 같아 보이지 않는데!”“하지만 만약 그가 당주가 아니라면 진주희가 뭐 하러 이렇게 공손할 필요가 있겠어?”집법당 자제들이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한 자세를 취하자 용천진이 데려온 용 씨 가문 고수들은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용 씨 가문과 용문은 막역한 관계다.많은 용 씨 가문 고수들은 사실 용문에서 나왔다.만약 눈앞의 이 사람이 정말 용문 집법당의 당주라면 그들이 그에게 맞서는 것은 그야말로 하극상, 대역무도한 죄를 짓는 것이었다.화려하게 치장한 용천진의 여자들은 모두 죽일 듯 하현을 노려보았다.땅바닥에서 일어서려고 발버둥치던 탁심설은 온몸이 더욱 뻣뻣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려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도무지 입을 뗄 수가 없었다.왜냐하면 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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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8장

곧이어 바깥에서 우레와 같은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소리만 들어도 용천진 쪽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자칫하다간 오늘 밤 이곳이 피의 강을 이룰 수도 있을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하현의 말을 들은 용천진의 한 측근은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소리쳤다.“하 씨! 설령 당신이 정말로 용문 집법당 당주라고 해도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용 씨 가문 도련님을 벌할 거야?”“용문은 용문이고 용 씨 가문은 용 씨 가문인데. 용문 집법당에서 집행하는 법을 어찌 용 씨 가문 사람한테 적용할 수 있느냔 말이야?!”이 측근의 말에 감정에 복받친 용 씨 가문 사람들이 덩달아 한 소리씩 덧붙였다.이론대로라면 집법당 당주인 하현은 용천진을 체포할 자격이 없다.동시에 몇몇 측근들은 맹렬하게 손짓을 했고 갑자기 높은 곳에 있던 궁수와 저격수가 머리를 내밀고 총구를 아래로 겨누었다.그들은 여차하면 무기를 앞세워 싸울 태세였다.“용문의 법으로는 용 씨 가문 사람들을 벌할 수 없지.”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자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해졌다.“다만 용천진은 용문 내외 팔당과 서른여섯 개 용문 지회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인물이야!”“용문의 자원을 썼고 용문을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둘렀어.”“어떻게 보면 반쪽짜리 용문의 고위층인 셈이지, 안 그래?”“그런데 중요한 순간에는 용문의 법망에서 교묘하게 빠져나가려고 해?”“지금 나랑 장난하는 거야?”하현의 말에 떠들썩했던 장내가 조용히 가라앉았다.많은 사람들은 하현의 말을 듣고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하현의 말이 전적으로 맞았기 때문이다.용천진은 용문의 많은 자원을 이용했으니 반쪽짜리 용문 고위층이라고 할 만했다.그가 용문의 자원을 이용했다면 당연히 용문의 법으로 그를 구속할 수 있다.“하현, 천만 번을 말해도 변함없어! 난 정식으로 한 번도 용문에 가입하지 않았어!”용천진은 싸늘한 표정으로 일어섰다.“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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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9장

”솨솩!”용천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하현은 한 발짝 앞으로 나와 우뚝 섰다.그의 동작에는 언짢은 기운이 가득했다.사실상 화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용천진 앞으로 다가왔다.용천진의 최측근들과 부하들이 제지할 틈도 주지 않았다.“퍽!”하현은 손바닥을 내던지듯 후려쳤다.저항하려던 용천진은 장내가 떠나갈 듯 비명을 질렀고 시뻘건 피가 하늘로 솟구쳐올랐다.쾅 하는 소리와 함께 용천진의 몸은 뒤에 있던 큰 기둥에 부딪히고 말았다.쓰러진 용천진은 일어서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차가운 손이 그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퍽!”하현은 손바닥을 뒤로 힘껏 뺐다가 그대로 용천진의 얼굴에 가격해 기절한 용천진을 깨웠다.“용천진, 이러면 재미없지.”“사람이 봐줄 땐 넙죽하고 받아들여야지. 당신은 매번 이렇게 버티다가 결국 내가 손을 쓰게 만들다니! 정말 피곤해!”“용천진, 마지막으로 묻겠어...”“어떤 선택을 할 거야?”세상이 무너진 듯한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이럴 수가?!어떻게 이런 일이?!용천진이었다.그는 무도의 고수였다!비록 전신은 아니었지만 평소에 그 누구도 함부로 그에게 덤비지 못했다.그런데 하현 앞에서 그는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했다.방금 용천진이 땅바닥에서 일어서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그 모습이 얼마나 처량한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그를 따르던 여자들은 하나같이 겁에 질려 땅에 주저앉아 누군가의 도움을 청하며 벌벌 떨고 있었다.그녀들의 마음속에 큰 산이 무너진 거나 다름없었다.용천진은 항상 백전백승의 존재였는데 어떻게 이런 꼴을 당할 수가 있는가?용천진은 사색이 된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잠시 후 그는 고통스러운 기침을 몇 번 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생각지도 못했어. 완전히 생각지도 못했다구!”“나 용천진도 반평생 전장에서 있었던 셈인데 어떻게 무성 용 씨 가문 노부인의 신임이 두터운 용천두 한 사람을 누를 수 없단 말이야?!”“난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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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0장

용 씨 가문 유력 후계자 세 명 중 용천진은 자부심이 강했고 용천오는 오만했다.어쨌든 두 사람은 무대 앞으로 나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는 인물이었다.하지만 두 사람과는 달리 어릴 때부터 용 씨 가문 노부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아온 용천두는 항상 겸손하기 그지없었고 사람들 앞에 잘 나서지도 않았다.세상 사람들은 용 씨 가문에 세 명의 유력한 가문 후계자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용천두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능력이 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하지만 몇 년 동안 용 씨 가문 용천두는 노부인이 그에게 준 모든 총애를 천천히 음미하며 소리도 없이 조용히 집안의 상황을 파악했다.게다가 그는 매우 침착했다.용천오가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도 별로 힘이 실리지 않은 인물을 파견해 그저 상황을 탐색하기만 했다.무성상업연맹이 나락으로 떨어졌건 무성상업연맹의 자산을 누가 삼켰든 그는 전혀 손을 쓰지 않았다.그는 그림자도 없는 유령처럼 몸을 낮추었다.그런 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사람들은 지금 그의 병력이 얼마나 강한지 용 씨 내부에서 얼마나 권위가 높은지 짐작할 수 있었다.그의 등장은 기세와 위세 면에서 이미 용천진과 용천오를 압도하고도 남았다.용천진은 얼굴을 드러낸 용천두를 보고 이상야릇한 미소를 띠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용천두, 결국 등판하셨군.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너무 늦게 왔어!”“늦지 않았죠.”용천두가 빙그레 웃었다.“형님께서는 용문 고위층의 절반 가까운 지지를 얻고 계시고 병력도 아주 강하죠.”“형님이 이 모든 것을 잃었다는 걸 확실히 하기 전에 내가 어떻게 함부로 나타날 수 있겠어요?”“물론 내가 좀 늦은 건 사실이긴 하죠. 형님이 뺨을 맞고 날아가는 모습을 못 봐서 아쉽긴 하군요.”용천두는 거의 폐인이나 다름없는 모습이 된 용천진을 보기 전에 눈을 치켜올리며 하현을 쳐다보았다.“이 분이 그 당주이신가?”“이전에는 용천오를 짓밟아 뭉개버리더니 이젠 용천진을 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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