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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2장

용천진의 말은 온기 하나 없이 무미건조했다.

그러나 그가 입 밖에 내놓은 말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만큼 치명적이었다.

하현의 곁에 서 있던 사청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변했다.

용천진의 모습을 보니 그가 하현에게 사죄하고 고개를 숙일 뜻이 전혀 없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용천진은 오히려 하현을 살인자로 몰아넣을 작정이었다.

이제 둘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 되었다.

동시에 일월루에는 각각 십여 명의 용 씨 가문 고수들이 쫙 늘어서 있었다.

마스크와 긴 도끼를 등에 멘 채 그들은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분명 용천진의 명령이 떨어지면 그들은 사양하지 않고 하현을 향해 돌진해 올 기세였다.

그리고 흰색 무도복을 입은 용문 전당 선임 탁심설이 구석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녀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현을 보았다.

마치 곧 죽을 사람을 보는 듯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장내에는 칼끝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언제라도 피 튀기는 장면이 펼쳐질 것 같은 긴장감이 흘렀다.

“용천진, 나도 오늘 뭔가 일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어. 당신이 오늘 이곳으로 날 유인해 죽일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

“다만 당신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리석군.”

“나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던 여자를 죽이고 그 죽음을 나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해?”

“도대체 누가 이런 계략을 꾸민 거야?”

“나중에 그 사람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거든 어서 빨리 그 사람을 죽이는 게 나을 거야.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말이지.”

말을 하면서 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식탁에 앉아 냅킨으로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피를 닦았다.

하현의 흔들림 없는 모습에 주위 사람들은 모두 혀를 내둘렀다.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거나 이미 만반의 준비가 된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

용천진의 눈빛이 순식간에 깊은 상념에 빠졌다.

그는 원래 하현이 이런 상황에 닥치면 소스라치게 놀라 당황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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