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나는 재벌이 되었다의 모든 챕터: 챕터 271 - 챕터 280

2631 챕터

제271화 멍청한

소은해는 잔뜩 충격받은 얼굴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은정이가 죽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속에 남은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던 그였다. 그런 소은해에게 소은찬의 말은 구세주가 내린 한줄기의 햇살과도 같은 존재였다. 소은찬이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소은해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힘없이 쓰러진 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고 세계적인 톱스타라 칭송받는 남자가 어린아이처럼 펑펑 오열하기 시작했다.가만히 서 있던 우연준도 그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다.“미안. 내가 너무 늦게 왔지.”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소은찬이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비밀 프로젝트에 참여하지만 않았더라도 이렇게 늦게 소식을 입수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책이나 슬픔에 잠겨있을 때가 아니었다. 소은찬은 최대한 이성을 유지하며 모든 단서들을 취합했다. 소은정이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 조금의 실마리라도 찾기 위함이었다.지금 소호랑에게 장착된 위치 추적 장치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상태, 첨단 기술을 적용한 차단 장치에 의해 신호가 막힌 게 틀림없다.이에 소은찬은 수색 범위를 2000마일 밖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한참을 울고 난 소은해도 정신을 차렸는지 바로 소은찬의 말대로 구조팀을 이동시켰다. 소은찬은 위성지도를 유심히 살펴보며 해역의 지형을 살폈다.섬이 많다는 건 그만큼 수많은 변수가 있음을 의미한다...소은찬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소찬식에게 전화를 걸었다.“아빠, 기부 기자회견 아직 안 하셨죠? 은정이 살아있을 수도 있대요!”“이놈의 자식,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돈타령이야! 그래, 우리 은정이가 그렇게 쉽게 죽을 리가 없지. 그래...”아버지의 핀잔에 입이 삐죽 나온 소은해를 보던 소은찬이 피식 웃었다.“그 멍청한 머리로 나름 애썼네. 수고했어.”멍청?짜증이 치밀었지만 딱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학창 시절 나름 수재 소리를 듣던 소은해였지만 IQ 200에 육박하는 찐 천재인 소은찬에게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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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2화 첫 불운

소은정은 무표정한 얼굴로 생선구이를 우적우적 씹었다. 박우혁이 파도에 밀려온 생선을 주워 만든 요리. 아니, 그 어떤 조미료도 들어가지 않았으니 요리라고도 할 수 없었다.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으면 식재료 자체의 감미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누군가 그랬던가? 하지만 지금 소은정이 먹고 있는 생선은 비릿한 맛만 느껴질 뿐이었다.“프랑스 파리에 있는 레스토랑이 생각나네. 화이트 와인까지 곁들이면 정말 완벽 그 자체인데...”깨작거리는 소은정과 달리 허겁지겁 생선구이를 먹던 박우혁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들더니 슬쩍 손을 뻗었다.“입맛 없으면 내가 대신 먹어줄 수도 있는데....”하, 아무리 맛이 별로라지만 살려면 이거라도 먹어야 했다. 소은정은 뒤로 물러서며 박우혁을 노려보았다.“호랑아, 물어!”소은정의 명령에 소호랑이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으르렁댔다.“그런데 왜 반말해?”피식 웃던 박우혁이 물었다.“네가 말 편하게 하라며.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예의 차리는 것도 웃기고 어차피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 것 같은데 그냥 편하게 하려고.”소은정의 대답에 어깨를 으쓱하던 박우혁이 물었다.“그냥 가만히 있으려니까 심심하지. 야인들 옷 입어볼래? 부족들 영지로 데리고 가줄게.”박우혁의 말에 소은정은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지루해도 목숨을 담보로 장난을 칠 수는 없다. “야인”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데 그들의 옷까지 입으라니.절대 그럴 순 없어!구름 하나 없이 맑은 하늘, 에메랄드빛 바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닷바람... 평소에 결코 볼 수 없는 절경이었지만 그 광경을 바라보는 소은정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도대체 언제쯤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 부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가 그녀를 잠식하려던 그때... 멀리 바닷가에서 모터 소리가 들려왔다.소은정은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저 멀리 보이는 요트를 향해 미친 듯이 손을 저었다.“살려주세요! 여기 사람 있어요!”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걸까? 쿠르릉거리는 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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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3화 일촉즉발

총소리에 깜짝 놀란 야인들이 부랴부랴 몽둥이를 들고 전투태세를 취했다.사방이 적인 이곳에서도 항상 긍정적이던 박우혁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는 조용히 식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그리고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두 사람의 귀가를 스쳤다. 야인들은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달려나갔다.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지만 그 말투만 들어도 해적들을 향해 날리는 경고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해적들도 야인들의 기에 눌리지 않고 욕설을 내뱉었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야인들의 수에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총이 아무리 대단하다지만 총알의 숫자에도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게다가 “사냥감”들을 쫓아 여기까지 왔는데 오히려 더 귀찮은 존재를 만나 화가 단단히 난 듯싶었다.“이딴 곳에 야인들이 있었다니. 젠장! 저런 놈들에게 총알을 낭비할 수야 없지.”“그 모험가 아마 이 근처에 있을 거야. 돈 좀 가지고 있으려나?”“잡아서 족치면 알 수 있겠지. 뭐 성에 안 차면 죽여버리면 그만이고.”그들을 뒤쫓아 온 해적은 단 세 명, 영어로 나누는 그들의 대화가 들려오고 너무나 태연한 말투로 살인에 대해 얘기하는 그들의 태도에 소은정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이때, 무슨 변덕이 불었는지 세 사람은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귀청을 찢을 듯한 총소리에 야인들은 허둥지둥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나무로 깎아만든 창살이 총의 상대가 될 리가 없는 법. 해적들은 거칠게 야인들을 차버리고 그들이 지은 천막을 뒤지기 시작했다.야인들의 비참한 비명소리와 해적들의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기이하게 어우러졌다. 어느새 해적들은 두 사람이 몸을 숨긴 큰 나무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소은정은 온몸이 경직된 채 숨조차 쉴 수 없었다.죽음의 그림자가 그녀를 향해 스멀스멀 다가오는 기분이었다.이제 어떡하지?일촉즉발의 순간, 야인들의 고함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그들이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야인들의 기습을 피한 해적들이 욕설을 내뱉었다.“그만둬. 곧 떼로 몰려들 거야. 저 미개한 자식들을 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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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4화 무서워

익숙한 이름에 소은정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오빠가 온 거야!”방금 전까지 죽을 뻔했던 일은 어느새 깡그리 잊고 마음에 벅차올랐다.정말 여기서 죽는 줄 알았는데...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평생 여기서 살아야 하는 걸까라는 막연함... 무거운 돌덩이처럼 그녀의 마음을 누르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헬리콥터 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기분이었다.항상 시끄럽다고만 생각했던 이 소리가 이렇게 아름답게 들릴 수가 있다니.마지막 희망의 빛을 향해 소은정은 달리고 또 달렸다. 이때 그녀의 옆에서 뛰던 박우혁이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저기. 우리 같이 돌아가는 거 맞지? 나만 여기 버리고 가는 거 아니지?“당연히 같이 돌아가야지!”소은정이 환하게 웃었다.“돌아가서도 나 모른 척하기 없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알겠지?”“걱정하지 마. 앞으로 넌 내가 평생 먹여살릴 테니까!”내가 그렇게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보이나? 사람을 뭐로 보고. 뭐 남동생 하나 더 생겼다고 생각하지 뭐.별생각 없이 걸음을 재촉하던 그때, 너무 흥분한 탓일까? 소은정은 나뭇가지에 걸려 또다시 넘어지고 말았다.“진정해. 함정일 수도 있잖아.”박우혁이 소은정을 부축하며 말했다.“아니, 그럴 리가 없어. 분명 우리 오빠일 거야!”소호랑의 위치 추적 신호를 풀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오빠일 것이라고 그녀는 확신했다.그렇게 20여 분을 달리고 또 달렸다. 그 사이에 몇 번을 더 넘어진 탓에 옷은 전부 찢어지고 새하얀 손은 상처로 인해 피가 낭자했지만 그녀는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여기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이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으니까.숲에서 나오니 광활한 백사장에 선 거대한 헬리콥터 세 대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커다란 프로펠러가 거대한 바람을 일며 웅웅 소리를 내고 있었다.그뿐만이 아니었다. 해안가에는 요트 8대까지 정박된 상태였다.성난 파도가 철썩이며 암초를 때리는 소리와 함께 소은정의 얼굴에 피어올랐던 미소도 차갑게 식어갔다.뭔가 이상했다. 요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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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5화 독 안에 든 쥐

박우혁의 말에 소은정도 도망치려는 생각을 버렸다.아무리 빨리 도망친다 해도 총알보다 빨리 달릴 수는 없는 법...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죽기만 기다리고 있어야 하나?총기에서 풍기는 화약 냄새와 바닷물의 비릿한 내음이 어우러진 악취에 소은정은 구역질이 몰려왔다.자칭 타칭 유명 모험가인 박우혁도 이런 상황은 처음인지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었다.소은정도 다리가 후들거리긴 마찬가지였지만 이상하게도 해적들이 그녀와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해졌다.앞장선 세 남자 중 건장한 체격의 두 남자와 달리 센터에 선 남자는 꽤 왜소한 체격이었다. 하지만 매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본 순간 알 수 있었다.아, 이 사람이 두목이구나.넘어지고 까져 얼굴은 먼지투성이에 옷차림도 엉망이었지만 그 아름다운 이목구비는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두목은 욕정으로 가득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거칠게 탐했다.소은정의 차가운 눈빛에 두목은 피식 웃더니 휘파람을 불었다.다음 순간, 남자는 총구로 소은정의 턱을 들더니 그녀의 얼굴을 더 유심히 살펴보더니 악마 같은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오, 이 여자 얼굴이며 몸매며 끝내주는데? 이번 사냥은 아주 성공적이야.”두목의 말에 모두들 웃음을 터트렸다. 남자들의 눈빛은 마치 독사의 혀처럼 차갑고 치명적이었다.이곳은 해적들의 구역, 그들에게 소은정은 전리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거센 해풍이 소은정의 뺨을 스치고 도망치게 나뭇가지에 긁힌 상처가 아려오기 시작했다. 생생한 고통에 소은정은 천천히 이성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턱 밑을 겨룬 총구에서 풍기는 죽음의 향기에 소은정은 생각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두 사람을 잡았다고 확신한 해적들이 방심한 채 웃고 있던 그 순간, 소은정이 손을 뻗어 턱을 겨눈 총을 잡아 앞으로 홱 잡아당겼다. 그와 동시에 소은정은 다른 한 손으로 남자의 손가락을 뒤로 꺾어버렸다.짧은 신음과 함께 총을 놓친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이런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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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6화 얼마나 할까

방금 전까지 맑던 하늘에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먹구름이 드리우고 거세게 몰아치던 파도도 곧 다가올 폭풍우를 암시하 듯 조용해졌다.숨 막히는 대치가 이어졌다.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해적과 예의치 못한 사고로 조난당한 여자 한 명.누가 봐도 소은정이 압도적으로 불리했지만 그녀는 추호의 두려움도 드러내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떨지 않는 소은정의 강단에 두목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두 사람을 겨누는 수많은 총구에 박우혁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 모습을 힐끗 바라보던 소은정이 말했다.“겁먹지 마. 내 뒤에 숨어. 총 소리가 울리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 알겠어?”그들의 뒤는 바로 숲. 허허벌판인 이곳보다는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이 더 많을 것이다.침착한 소은정의 목소리에 박우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모험가로 살며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었고 죽을 고비도 몇 번이나 넘겼었다.물 한 모금 못 마시고 닷새를 버틴 적도 있었고 원시 부족의 공격을 받은 적도 있었고 천 길 벼랑으로 떨어질 뻔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박우혁이 할 수 있는 건 두려움에 몸을 떠는 것뿐이었다. 죽음의 공포는 언제 겪어도 사람을 숨 막히게 만드는 법이니까.그런데 이 여자는 뭘 믿고 저렇게 태연한 걸까?박우혁은 이를 악물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죽으면 죽었지 쪽팔리게 여자 뒤에 숨을 수야 없지.“아니, 난 도망치지 않아. 내가 널 지킬 거야.”두 번째로 뱉은 말이었지만 그 말에 담긴 무게는 확연히 달랐다.소은정이 한 사람이라도 살아야 한다고 소리치려던 그때, 맞은편에 서 있던 해적이 영어로 말했다.“됐고 그냥 쏴...”뭐지? 두목이 아니었나? 이렇게 쉽게 버린다고?소은정이 살짝 당황하던 그때, 좌측에 암초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교전이 벌어진다면 설령 영화 속 주인공처럼 날아오는 총알을 전부 피한다 해도 그녀가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어떻게라도 시간을 끌어야 할 텐데...“잠깐...”소은정이 심호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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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7화 데리고 갈게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소은정은 갑자기 4년 전, 유럽의 거리를 떠올렸다. 테러리스트들이 던진 폭탄이 터지고 평화롭던 거리는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던 그 순간, 소은정은 부모를 잃고 구석에서 울고 있는 여자아이를 구하기 위해 안전 가옥에서 뛰쳐나갔었다.하지만 아이를 안은 순간, 테러리스트가 던진 폭탄이 굴러왔다. 몸을 피하기엔 이미 늦은 상황, 이렇게 죽는구나 싶어 눈을 꼭 감은 그때, 누군가 그녀와 여자아이의 몸을 감싸 안았다.그것이 소은정과 박수혁의 첫 만남이었다. 군복 차림의 박수혁은 소은정과 여자아이가 무사한 걸 확인하고 바로 일어서 다시 다른 시민들을 구하기 시작했다.폭파의 충격으로 등은 피로 물들었지만 흔들리지 않던 그의 눈빛... 생명의 은인을 향한 감격인지 살았다는 안도감인지 묘한 감정이 소은정을 사로잡았다.하지만 이 커다란 세상에서 이름조차 모르는 군인을 찾는 것이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나 마찬가지인 일, 인연이라면, 운명이라면 어떻게든 다시 만나겠지라고 생각하던 그때, 두 번째 만남은 그녀가 예상도 하지 못한 순간 찾아왔다.그곳은 바로 카지노의 지하 불법 격투장이었다. 수많은 남자들이 박수혁을 둘러싸고 있었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박수혁은 비틀거리며 겨우 일어서려 했지만 남자들의 공격에 또다시 쓰러지고 말았다.아무리 누구 하나 정신을 잃을 때까지 싸우는 무법천지라지만 여러 명이서 단 한 명을 공격하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일, 그 모습을 지켜보는 관객들도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몰래 수군댈 뿐, 누구 하나 말리지 못했다.그때 어둠 속에서 남자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그러게 네가 뭔데 거기서 나서. 네가 뭐 슈퍼맨인 줄 알았어? 멍청한 자식.”“그래. 지금 여기서 누군가 널 구해준다면 살려줄게.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하하하!”이것은 저번 테러에 실패한 테러리스트들의 복수였다. 누가 감히 나설 수 있을까? 테러리스트들은 낄낄대며 박수혁을 조롱했다.하지만 다음 순간, 어둠 속에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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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8화 왔어

소은정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울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기분과 달리 눈물을 흐르지 않았다.평소 종종 생의 마지막 순간 무슨 말을 할까 생각했었지만 정작 죽음이 닥쳐오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총알에 부서진 돌멩이의 파편이 그녀의 손목을 스치며 지났고 새빨간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점점 더 가까워지는 해적들의 발걸음 소리는 마치 사신의 목소리처럼 소은정의 숨통을 조여왔다.옛 상처와 새 상처가 섞여 원래 모습을 알아볼 수조차 엉망이 된 손을 바라보던 소은정이 한숨을 내쉬었다.총알이 하나만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그 총알은 그녀 스스로를 위해 사용했을 것이다.절망에 잠긴 소은정이 두 눈을 감은 그때, 하늘에서 또다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수십 대의 거대한 헬리콥터가 순식간에 하늘을 메우자 해적들은 일제히 공격을 멈추었다.총알을 다 써버린 여자보다 갑자기 나타난 정체 모를 헬리콥터가 더 위험하다고 직감했기 때문이었다.해적들이 총구를 하늘로 바꾸고 그들의 공격을 피하는 헬리콥터가 소은정의 눈앞을 지난 순간, 죽어있던 소은정의 눈동자가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헬리콥터에 그려진 저 문양은 누가 봐도 태극기였기에...수십 대의 헬리콥터가 허공에서 비행을 멈추고 수십 명의 해적들을 완벽하게 둘러쌌다.순식간에 역전된 상황에 긴장이 풀린 소은정은 암초에 기댄 채 두 눈을 꼭 감았다. 이때 박우혁이 감격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수혁 삼촌! 저예요, 저! 우혁이!”하, 박수혁... 박수혁이 온 거구나...소은정은 자꾸만 내려오려는 눈꺼풀을 억지로 치켜뜨며 고개를 돌렸다. 사다리를 통해 내려온 블랙 트렌치코트 차림의 남자, 익숙한 차가운 표정... 분명 박수혁이 맞았다.오른손에 손을 든 채 저벅저벅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박수혁의 모습과 4년 전, 유럽의 거리에서 그녀의 마음을 훔쳐 갔던 그의 모습이 겹쳐졌다. 이런 게 주마등인가...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며 소은정은 두 눈을 감았다.허둥지둥 달려간 박수혁이 바로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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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9화 생명의 은인

전투가 끝나고 헬리콥터가 다시 비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프로펠러 바람에 박수혁의 트렌치코트가 휘날렸다.“계좌 확인해 봐. 1500만 달러 입금됐을 테니까.”두 사람을 다치게 했는데 5000만 달러나 더 얹어주다니. 예상치 못한 횡재에 두목의 눈동자가 탐욕으로 반짝이던 그때.“탕!”총소리가 울리고 두목의 사악한 미소가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의 가슴에서 뜨거운 피가 콸콸 흘러내렸다.자신의 돌발행동에 해적들이 또다시 공격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덤덤한 박수혁의 얼굴에서는 그 어떤 공포도 느껴지지 않았다.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던 박수혁이 마지막 한 발을 남겨두고 고개를 돌렸다.“남은 5000만 달러는 네 몫이야.”소은정의 가슴에 상처를 낸 이상, 이대로 넘어갈 수 없었다.그제야 5000만이나 더 얹어준 박수혁의 목적을 이해한 두목은 분노로 부들거렸고 두목이 총상을 입자 해적들은 일제히 다시 총을 들었다. 하지만 압도적인 화력 차이에 해적들은 결국 박수혁이 유유히 떠나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한편, 대서양을 가르는 거대한 크루즈, 출렁이는 파도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꿈속에서 수많은 총알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모습이 다시 연출되고 소은정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갑자기 눈앞에 벼랑이 생기고 소은정은 그대로 어두운 심연으로 추락했다...“헉!”소은정이 두 눈을 번쩍 떴다. 천근만근 무거운 머리와 흐릿한 시야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그녀의 귓가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형수님 진짜 대단한데? 해적들을 상대로 인질 싸움을 하다니. 게다가 두 명이나 다치게 명중했다면서. 데이빗 그 자식이 직접 말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을 거야.”남자의 말에 박수혁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은정이는 강한 여자니까.”소은정은 위기의 상황에서 눈물밖에 흘릴 줄 모르는 나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서민영이 자동차에 손을 써 죽을 뻔했을 때도 송지현에게 납치당할 뻔했을 때도 그녀는 항상 당당하고 태연한 모습이었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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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0화 그녀이길 바라?

방금 전, 피투성이인 소은정을 안고 비행기에 오른 박수혁은 소은정의 손을 꼭 잡은 채 말없이 눈물까지 흘렸었다.헬리콥터에 동행한 박수혁의 전우들은 그 모습에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다행히 군의관 출신인 한연우가 바로 응급조치를 취했고 크루즈에 타자마자 바로 응급 수술을 시작했지만 박수혁의 이상행동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굳이 수술 현장을 지켜보겠다며 우기더니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소은정과 수술을 집도하는 한연우의 손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총알을 꺼낼 때는 식은땀까지 흘리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수술을 마친 한연우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이렇게 긴장되는 수술은 처음이었어. 아주 내가 칼 한 번 댈 때마다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더구만? 왜? 내가 뭐 허튼짓이라도 할까 봐?”오랜 전우의 장난에도 박수혁은 붉은 눈시울로 소은정을 바라볼 뿐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그리고 그 모습을 전부 지켜보던 소은찬은 혼란스러웠다. 두 사람 분명 이혼했다고 했었는데... 게다가 결혼생활 내내 사랑 한 번 못 받았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런데 저 모습은 뭐지?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여동생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모습에 박수혁을 바라보는 소은찬의 눈빛은 어느새 점차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수술이 끝나고 소은해와 박수혁은 자기가 서로 소은정을 간호하겠다며 다투었지만 결과는 전우들의 “도움”을 받은 박수혁의 승.남자들의 손에 이끌려 질질 끌려나가면서도 소은해는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소은정의 상태가 안정된 걸 확인한 박수혁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갑판 위로 올라왔다. 그런 그의 손에는 전우가 건넨 사진 한 장이 들려있었다. 그 사진을 누가 찍었는지 어떻게 구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사진에 찍힌 소은정의 얼굴,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채 그녀의 부축을 받아 겨우 서 있는 박수혁 자신의 모습...그날, 링 위에 뛰어든 한 여자의 도움을 받아 겨우 목숨을 구했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문이 열리고 환한 달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는 순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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