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은 무표정한 얼굴로 생선구이를 우적우적 씹었다. 박우혁이 파도에 밀려온 생선을 주워 만든 요리. 아니, 그 어떤 조미료도 들어가지 않았으니 요리라고도 할 수 없었다.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으면 식재료 자체의 감미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누군가 그랬던가? 하지만 지금 소은정이 먹고 있는 생선은 비릿한 맛만 느껴질 뿐이었다.“프랑스 파리에 있는 레스토랑이 생각나네. 화이트 와인까지 곁들이면 정말 완벽 그 자체인데...”깨작거리는 소은정과 달리 허겁지겁 생선구이를 먹던 박우혁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들더니 슬쩍 손을 뻗었다.“입맛 없으면 내가 대신 먹어줄 수도 있는데....”하, 아무리 맛이 별로라지만 살려면 이거라도 먹어야 했다. 소은정은 뒤로 물러서며 박우혁을 노려보았다.“호랑아, 물어!”소은정의 명령에 소호랑이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으르렁댔다.“그런데 왜 반말해?”피식 웃던 박우혁이 물었다.“네가 말 편하게 하라며.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예의 차리는 것도 웃기고 어차피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 것 같은데 그냥 편하게 하려고.”소은정의 대답에 어깨를 으쓱하던 박우혁이 물었다.“그냥 가만히 있으려니까 심심하지. 야인들 옷 입어볼래? 부족들 영지로 데리고 가줄게.”박우혁의 말에 소은정은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지루해도 목숨을 담보로 장난을 칠 수는 없다. “야인”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데 그들의 옷까지 입으라니.절대 그럴 순 없어!구름 하나 없이 맑은 하늘, 에메랄드빛 바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닷바람... 평소에 결코 볼 수 없는 절경이었지만 그 광경을 바라보는 소은정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도대체 언제쯤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 부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가 그녀를 잠식하려던 그때... 멀리 바닷가에서 모터 소리가 들려왔다.소은정은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저 멀리 보이는 요트를 향해 미친 듯이 손을 저었다.“살려주세요! 여기 사람 있어요!”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걸까? 쿠르릉거리는 엔진
총소리에 깜짝 놀란 야인들이 부랴부랴 몽둥이를 들고 전투태세를 취했다.사방이 적인 이곳에서도 항상 긍정적이던 박우혁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는 조용히 식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그리고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두 사람의 귀가를 스쳤다. 야인들은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달려나갔다.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지만 그 말투만 들어도 해적들을 향해 날리는 경고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해적들도 야인들의 기에 눌리지 않고 욕설을 내뱉었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야인들의 수에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총이 아무리 대단하다지만 총알의 숫자에도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게다가 “사냥감”들을 쫓아 여기까지 왔는데 오히려 더 귀찮은 존재를 만나 화가 단단히 난 듯싶었다.“이딴 곳에 야인들이 있었다니. 젠장! 저런 놈들에게 총알을 낭비할 수야 없지.”“그 모험가 아마 이 근처에 있을 거야. 돈 좀 가지고 있으려나?”“잡아서 족치면 알 수 있겠지. 뭐 성에 안 차면 죽여버리면 그만이고.”그들을 뒤쫓아 온 해적은 단 세 명, 영어로 나누는 그들의 대화가 들려오고 너무나 태연한 말투로 살인에 대해 얘기하는 그들의 태도에 소은정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이때, 무슨 변덕이 불었는지 세 사람은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귀청을 찢을 듯한 총소리에 야인들은 허둥지둥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나무로 깎아만든 창살이 총의 상대가 될 리가 없는 법. 해적들은 거칠게 야인들을 차버리고 그들이 지은 천막을 뒤지기 시작했다.야인들의 비참한 비명소리와 해적들의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기이하게 어우러졌다. 어느새 해적들은 두 사람이 몸을 숨긴 큰 나무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소은정은 온몸이 경직된 채 숨조차 쉴 수 없었다.죽음의 그림자가 그녀를 향해 스멀스멀 다가오는 기분이었다.이제 어떡하지?일촉즉발의 순간, 야인들의 고함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그들이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야인들의 기습을 피한 해적들이 욕설을 내뱉었다.“그만둬. 곧 떼로 몰려들 거야. 저 미개한 자식들을 건드
익숙한 이름에 소은정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오빠가 온 거야!”방금 전까지 죽을 뻔했던 일은 어느새 깡그리 잊고 마음에 벅차올랐다.정말 여기서 죽는 줄 알았는데...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평생 여기서 살아야 하는 걸까라는 막연함... 무거운 돌덩이처럼 그녀의 마음을 누르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헬리콥터 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기분이었다.항상 시끄럽다고만 생각했던 이 소리가 이렇게 아름답게 들릴 수가 있다니.마지막 희망의 빛을 향해 소은정은 달리고 또 달렸다. 이때 그녀의 옆에서 뛰던 박우혁이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저기. 우리 같이 돌아가는 거 맞지? 나만 여기 버리고 가는 거 아니지?“당연히 같이 돌아가야지!”소은정이 환하게 웃었다.“돌아가서도 나 모른 척하기 없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알겠지?”“걱정하지 마. 앞으로 넌 내가 평생 먹여살릴 테니까!”내가 그렇게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보이나? 사람을 뭐로 보고. 뭐 남동생 하나 더 생겼다고 생각하지 뭐.별생각 없이 걸음을 재촉하던 그때, 너무 흥분한 탓일까? 소은정은 나뭇가지에 걸려 또다시 넘어지고 말았다.“진정해. 함정일 수도 있잖아.”박우혁이 소은정을 부축하며 말했다.“아니, 그럴 리가 없어. 분명 우리 오빠일 거야!”소호랑의 위치 추적 신호를 풀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오빠일 것이라고 그녀는 확신했다.그렇게 20여 분을 달리고 또 달렸다. 그 사이에 몇 번을 더 넘어진 탓에 옷은 전부 찢어지고 새하얀 손은 상처로 인해 피가 낭자했지만 그녀는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여기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이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으니까.숲에서 나오니 광활한 백사장에 선 거대한 헬리콥터 세 대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커다란 프로펠러가 거대한 바람을 일며 웅웅 소리를 내고 있었다.그뿐만이 아니었다. 해안가에는 요트 8대까지 정박된 상태였다.성난 파도가 철썩이며 암초를 때리는 소리와 함께 소은정의 얼굴에 피어올랐던 미소도 차갑게 식어갔다.뭔가 이상했다. 요트에
박우혁의 말에 소은정도 도망치려는 생각을 버렸다.아무리 빨리 도망친다 해도 총알보다 빨리 달릴 수는 없는 법...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죽기만 기다리고 있어야 하나?총기에서 풍기는 화약 냄새와 바닷물의 비릿한 내음이 어우러진 악취에 소은정은 구역질이 몰려왔다.자칭 타칭 유명 모험가인 박우혁도 이런 상황은 처음인지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었다.소은정도 다리가 후들거리긴 마찬가지였지만 이상하게도 해적들이 그녀와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해졌다.앞장선 세 남자 중 건장한 체격의 두 남자와 달리 센터에 선 남자는 꽤 왜소한 체격이었다. 하지만 매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본 순간 알 수 있었다.아, 이 사람이 두목이구나.넘어지고 까져 얼굴은 먼지투성이에 옷차림도 엉망이었지만 그 아름다운 이목구비는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두목은 욕정으로 가득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거칠게 탐했다.소은정의 차가운 눈빛에 두목은 피식 웃더니 휘파람을 불었다.다음 순간, 남자는 총구로 소은정의 턱을 들더니 그녀의 얼굴을 더 유심히 살펴보더니 악마 같은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오, 이 여자 얼굴이며 몸매며 끝내주는데? 이번 사냥은 아주 성공적이야.”두목의 말에 모두들 웃음을 터트렸다. 남자들의 눈빛은 마치 독사의 혀처럼 차갑고 치명적이었다.이곳은 해적들의 구역, 그들에게 소은정은 전리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거센 해풍이 소은정의 뺨을 스치고 도망치게 나뭇가지에 긁힌 상처가 아려오기 시작했다. 생생한 고통에 소은정은 천천히 이성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턱 밑을 겨룬 총구에서 풍기는 죽음의 향기에 소은정은 생각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두 사람을 잡았다고 확신한 해적들이 방심한 채 웃고 있던 그 순간, 소은정이 손을 뻗어 턱을 겨눈 총을 잡아 앞으로 홱 잡아당겼다. 그와 동시에 소은정은 다른 한 손으로 남자의 손가락을 뒤로 꺾어버렸다.짧은 신음과 함께 총을 놓친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이런 상황
방금 전까지 맑던 하늘에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먹구름이 드리우고 거세게 몰아치던 파도도 곧 다가올 폭풍우를 암시하 듯 조용해졌다.숨 막히는 대치가 이어졌다.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해적과 예의치 못한 사고로 조난당한 여자 한 명.누가 봐도 소은정이 압도적으로 불리했지만 그녀는 추호의 두려움도 드러내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떨지 않는 소은정의 강단에 두목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두 사람을 겨누는 수많은 총구에 박우혁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 모습을 힐끗 바라보던 소은정이 말했다.“겁먹지 마. 내 뒤에 숨어. 총 소리가 울리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 알겠어?”그들의 뒤는 바로 숲. 허허벌판인 이곳보다는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이 더 많을 것이다.침착한 소은정의 목소리에 박우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모험가로 살며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었고 죽을 고비도 몇 번이나 넘겼었다.물 한 모금 못 마시고 닷새를 버틴 적도 있었고 원시 부족의 공격을 받은 적도 있었고 천 길 벼랑으로 떨어질 뻔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박우혁이 할 수 있는 건 두려움에 몸을 떠는 것뿐이었다. 죽음의 공포는 언제 겪어도 사람을 숨 막히게 만드는 법이니까.그런데 이 여자는 뭘 믿고 저렇게 태연한 걸까?박우혁은 이를 악물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죽으면 죽었지 쪽팔리게 여자 뒤에 숨을 수야 없지.“아니, 난 도망치지 않아. 내가 널 지킬 거야.”두 번째로 뱉은 말이었지만 그 말에 담긴 무게는 확연히 달랐다.소은정이 한 사람이라도 살아야 한다고 소리치려던 그때, 맞은편에 서 있던 해적이 영어로 말했다.“됐고 그냥 쏴...”뭐지? 두목이 아니었나? 이렇게 쉽게 버린다고?소은정이 살짝 당황하던 그때, 좌측에 암초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교전이 벌어진다면 설령 영화 속 주인공처럼 날아오는 총알을 전부 피한다 해도 그녀가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어떻게라도 시간을 끌어야 할 텐데...“잠깐...”소은정이 심호흡을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소은정은 갑자기 4년 전, 유럽의 거리를 떠올렸다. 테러리스트들이 던진 폭탄이 터지고 평화롭던 거리는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던 그 순간, 소은정은 부모를 잃고 구석에서 울고 있는 여자아이를 구하기 위해 안전 가옥에서 뛰쳐나갔었다.하지만 아이를 안은 순간, 테러리스트가 던진 폭탄이 굴러왔다. 몸을 피하기엔 이미 늦은 상황, 이렇게 죽는구나 싶어 눈을 꼭 감은 그때, 누군가 그녀와 여자아이의 몸을 감싸 안았다.그것이 소은정과 박수혁의 첫 만남이었다. 군복 차림의 박수혁은 소은정과 여자아이가 무사한 걸 확인하고 바로 일어서 다시 다른 시민들을 구하기 시작했다.폭파의 충격으로 등은 피로 물들었지만 흔들리지 않던 그의 눈빛... 생명의 은인을 향한 감격인지 살았다는 안도감인지 묘한 감정이 소은정을 사로잡았다.하지만 이 커다란 세상에서 이름조차 모르는 군인을 찾는 것이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나 마찬가지인 일, 인연이라면, 운명이라면 어떻게든 다시 만나겠지라고 생각하던 그때, 두 번째 만남은 그녀가 예상도 하지 못한 순간 찾아왔다.그곳은 바로 카지노의 지하 불법 격투장이었다. 수많은 남자들이 박수혁을 둘러싸고 있었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박수혁은 비틀거리며 겨우 일어서려 했지만 남자들의 공격에 또다시 쓰러지고 말았다.아무리 누구 하나 정신을 잃을 때까지 싸우는 무법천지라지만 여러 명이서 단 한 명을 공격하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일, 그 모습을 지켜보는 관객들도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몰래 수군댈 뿐, 누구 하나 말리지 못했다.그때 어둠 속에서 남자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그러게 네가 뭔데 거기서 나서. 네가 뭐 슈퍼맨인 줄 알았어? 멍청한 자식.”“그래. 지금 여기서 누군가 널 구해준다면 살려줄게.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하하하!”이것은 저번 테러에 실패한 테러리스트들의 복수였다. 누가 감히 나설 수 있을까? 테러리스트들은 낄낄대며 박수혁을 조롱했다.하지만 다음 순간, 어둠 속에서 이
소은정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울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기분과 달리 눈물을 흐르지 않았다.평소 종종 생의 마지막 순간 무슨 말을 할까 생각했었지만 정작 죽음이 닥쳐오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총알에 부서진 돌멩이의 파편이 그녀의 손목을 스치며 지났고 새빨간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점점 더 가까워지는 해적들의 발걸음 소리는 마치 사신의 목소리처럼 소은정의 숨통을 조여왔다.옛 상처와 새 상처가 섞여 원래 모습을 알아볼 수조차 엉망이 된 손을 바라보던 소은정이 한숨을 내쉬었다.총알이 하나만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그 총알은 그녀 스스로를 위해 사용했을 것이다.절망에 잠긴 소은정이 두 눈을 감은 그때, 하늘에서 또다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수십 대의 거대한 헬리콥터가 순식간에 하늘을 메우자 해적들은 일제히 공격을 멈추었다.총알을 다 써버린 여자보다 갑자기 나타난 정체 모를 헬리콥터가 더 위험하다고 직감했기 때문이었다.해적들이 총구를 하늘로 바꾸고 그들의 공격을 피하는 헬리콥터가 소은정의 눈앞을 지난 순간, 죽어있던 소은정의 눈동자가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헬리콥터에 그려진 저 문양은 누가 봐도 태극기였기에...수십 대의 헬리콥터가 허공에서 비행을 멈추고 수십 명의 해적들을 완벽하게 둘러쌌다.순식간에 역전된 상황에 긴장이 풀린 소은정은 암초에 기댄 채 두 눈을 꼭 감았다. 이때 박우혁이 감격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수혁 삼촌! 저예요, 저! 우혁이!”하, 박수혁... 박수혁이 온 거구나...소은정은 자꾸만 내려오려는 눈꺼풀을 억지로 치켜뜨며 고개를 돌렸다. 사다리를 통해 내려온 블랙 트렌치코트 차림의 남자, 익숙한 차가운 표정... 분명 박수혁이 맞았다.오른손에 손을 든 채 저벅저벅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박수혁의 모습과 4년 전, 유럽의 거리에서 그녀의 마음을 훔쳐 갔던 그의 모습이 겹쳐졌다. 이런 게 주마등인가...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며 소은정은 두 눈을 감았다.허둥지둥 달려간 박수혁이 바로 소은
전투가 끝나고 헬리콥터가 다시 비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프로펠러 바람에 박수혁의 트렌치코트가 휘날렸다.“계좌 확인해 봐. 1500만 달러 입금됐을 테니까.”두 사람을 다치게 했는데 5000만 달러나 더 얹어주다니. 예상치 못한 횡재에 두목의 눈동자가 탐욕으로 반짝이던 그때.“탕!”총소리가 울리고 두목의 사악한 미소가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의 가슴에서 뜨거운 피가 콸콸 흘러내렸다.자신의 돌발행동에 해적들이 또다시 공격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덤덤한 박수혁의 얼굴에서는 그 어떤 공포도 느껴지지 않았다.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던 박수혁이 마지막 한 발을 남겨두고 고개를 돌렸다.“남은 5000만 달러는 네 몫이야.”소은정의 가슴에 상처를 낸 이상, 이대로 넘어갈 수 없었다.그제야 5000만이나 더 얹어준 박수혁의 목적을 이해한 두목은 분노로 부들거렸고 두목이 총상을 입자 해적들은 일제히 다시 총을 들었다. 하지만 압도적인 화력 차이에 해적들은 결국 박수혁이 유유히 떠나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한편, 대서양을 가르는 거대한 크루즈, 출렁이는 파도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꿈속에서 수많은 총알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모습이 다시 연출되고 소은정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갑자기 눈앞에 벼랑이 생기고 소은정은 그대로 어두운 심연으로 추락했다...“헉!”소은정이 두 눈을 번쩍 떴다. 천근만근 무거운 머리와 흐릿한 시야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그녀의 귓가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형수님 진짜 대단한데? 해적들을 상대로 인질 싸움을 하다니. 게다가 두 명이나 다치게 명중했다면서. 데이빗 그 자식이 직접 말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을 거야.”남자의 말에 박수혁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은정이는 강한 여자니까.”소은정은 위기의 상황에서 눈물밖에 흘릴 줄 모르는 나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서민영이 자동차에 손을 써 죽을 뻔했을 때도 송지현에게 납치당할 뻔했을 때도 그녀는 항상 당당하고 태연한 모습이었다.하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