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서부터 이번 생까지, 두 사람의 사이는 셀 수 있을까?‘예전?’이유영은 더욱 비웃으며 말했다.“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예전을 운운하는데?”이유영의 평온하고 비꼬는 웃음은 순간 강이한을 정신 차리게 했다.그는 무의식적으로 이유영한테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마침 이때, 최익준의 차가 도착했다. 이유영은 차 소리를 듣고, 그리고 반짝이는 차 불빛을 보고는 강이한을 보며 웃었다. 더욱 진하고 비웃는 웃음이었다.이유영이 입을 열었다.“강이한, 내가 예전에 얼마나 악독한 사람이었든 간에 당신은 다 인정하고 그냥 넘겨버리는 수밖에 없잖아. 안 그래?”“...”“그리고 이온유, 내가 그 애랑 가까이해서 그 애를 다치게 한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얼마든지 그 애를 데리고 파리를 떠나가면 되잖아!”“...”이 말을 들은 강이한은 머리가 띵 해나는 것만 같았다.이유영의 눈 밑은 평온함과 풍자함, 그리고는 막연함이었다, 이런 막연함은 전혀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 것만 같았다.이유영이 이렇게 막연하다는 태도를 보이자 강이한의 마음은 유달리 당황했다.그는 입을 열어 뭐라고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순간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해명?사실 두 사람 사이에 오해가 생겼을 때 해명은 적지 않게 했었지만, 해명하는 중점이 틀렸었다. 지금...“유영아. 지음은 사실...”강이한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를 대답하는 건 쿵 문이 닫히는 소리였다. 이유영은 차에 올라타자마자 바로 차 문을 닫았다.강이한은 제자리에 선 채 찬바람만 맞았다.한참 동안,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이유영이 한지음과 이온유에 대한 저촉 심리가 얼마나 강렬한지 강이한은 보아낼 수 있었다.심지어 그의 곁에 이온유가 있으면 이유영이 있을 수 없고, 반대로 이유영이 있으면 이온유가 있을 수 없게 되었다.하지만 이유영은 아무것도 모른다. 한지음이 그녀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지잉 핸드폰이 진동하였으며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이유영이 보내온 문자 메시지였다.그저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이미 11시가 넘었다. 도우미는 나가 계셨고 이유영은 침대 옆의 울타리를 다 세웠다.이래야만 월이의 안전을 더 보장할 수 있었다.“엄마, 엄마.”꼬맹이는 헤헤 웃으면서 이유영의 몸 위로 바라 올랐는데 아주 신나 보였다.월이를 쳐다보는 이유영의 눈빛은 점점 더 자상해졌다.“우리 공주님!”꼬맹이는 이유영의 품에서 비비적거렸다. 아이의 몸은 아주 민첩한 것이 이유영의 품에서 구르는가 하면 또 그녀의 몸 위를 바라 올라가기도 하고 아니면 자신의 작은 얼굴로 이유영의 얼굴을 비비기도 했다.두 사람은 웃음꽃이 활짝 핀 상황에서 아주 화목하였다.이유영은 저도 모르게 이온유에게 부드럽게 대하는 강이한이 떠올랐다. 비록 그녀는 강이한에게 별 감정이 남아있진 않았지만, 그가 이온유를 대하는 모습을 생각하자 마음이 다소 조금 불편하였다.그건 아마도... 이유영이 강이한의 세계에서 항상 뒷전에 놓인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저도 모르게 월이와 이온유를 비교하게 되었다.‘만약 이온유와 월이에게 동시에 사고가 일어난다면 그때 강이한은... 아마도 예전에 나랑 한지음을 대했던 것처럼 마음이 한쪽으로 치우치겠지?’이유영이 보기엔 강이한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지금 그가 이온유를 대하는 태도를 생각하면 정말 그럴지도 몰랐다.“엄마. 우유.”꼬맹이는 이유영의 품에서 비비적거리며 웅얼거리는 것이 딱 봐도 졸려 보였다.이유영은 월이를 제대로 안고는 흐리멍덩해진 꼬맹이의 눈을 보며 그저 마음이 떨리는 것만 같았다.‘우리 꼬맹이 왜 점점 갈수록... 닮아가지? 강이한과 월이를 최대한 못 마주치게 해야겠어.’딸은 갈수록 아버지를 닮아간다는 말이 있으니, 이유영은 지금 강이한이 파리에 있는 것 자체가 큰 복병이라고 생각했다.월이에게 우유를 풀어주자, 꼬맹이는 우유병을 안고 한쪽으로 돌아누웠다. 엉덩이가 이유영을 향한 채 조용하게 있는 월이의 모습은 정말 귀엽기 그지없었다.이유영이 작은 담요를 잡아당겨 월이에게 덮어주었더
차 안에서 이유영은 월이를 다시 안으려고 했지만, 순간 아이의 몸 상태가 엄청 심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월이는 잠시 경련을 하더니 어두운 불빛 아래서도 보일 정도로 얼굴에 빨간 점들이 돋아났다.이건 체온이 너무 높아서 생긴 것 같았다.이유영은 놀란 나머지 냉기를 한숨 들이켰다.“월아...”여진우는 월이를 감싼 담요를 휙 떼어내더니 월이의 몸에 있던 옷들을 다 벗겼다. 이것을 본 이유영은 마음이 싸늘했다.“너...”“아이 지금 체온이 너무 높아.”이렇게 열이 계속 났다가는 정말 큰일 날지도 몰랐다. 아직 채 2살도 안 되는 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이유영은 가슴이 턱턱 막혔다.금방 병원에 도착했다.의료진들은 이미 대기하고 있었으며 여진우를 본 순간 아주 공손하게 앞으로 다가왔다.“여진우 도련님!”그러고는 얼른 아이를 넘겨받고는 응급실로 들어갔다.이유영은 그들이 월이를 데려가는 것을 보고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여진우가 입을 열고 물었다.“집에 있었을 때 체온이 얼마였어?” “39.5도!”“왜 의사를 안 불렀어?”열이 났을 때 진작에 의사를 불러야 했다.이렇게까지 열이 높게 나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갑자기 열이 난 거야.”이유영은 온밤 별로 잠들지 않았다. 월이의 이마가 뜨겁다는 것을 느낀 순간, 이유영은 바로 체온을 쟀다.하지만 그때는 이미 체온이 높았으며 이유영은 전혀 반응할 겨를이 없었다.이유영은 응급실 쪽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눈을 한시도 떼지 못했다. 심장은... 이미 목구멍까지 차올랐다.이유영은 두려웠다!“진우야.”“난 네 오빠야.”“...”그 순간 이유영은 여진우의 말투가 유달리 무겁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엄숙하고 심각하게 압박 하에 이유영은 가족의 든든함을 절실하게 느꼈다.그녀는 기억이 있고부터 평생 줄곧 외동딸이었으며 주변에는 형제자매가 없었다.그 뒤에 갑자기 한지음이 나타났지만, 이유영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한지음한테서 제일 많이 받은 건 보복이었지 추호의 가족애를 느끼지
현장 분위기는 순간 터져버렸다.“진우야, 넌 먼저 아이랑 가...”여진우가 주먹을 꾹 쥐고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이유영이 입을 열었다.두 남자의 눈빛이 서로 마주친 순간, 마치 두 무리의 늑대가 서로 맞붙은 것처럼 살벌했다.“가라니까.”여진우가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을 본 이유영은 매섭게 그에게 경고의 눈길을 보냈다.결국 여진우는 강이한을 한눈 째려보고는 자리를 떴다.월이는 이미 병실로 옮겨졌다.주차를 마치고 들어온 엄수현은 의사가 밀고 가는 아이를 힐끔 보았다... 비록 한 눈이었지만 그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그는 무의식적으로 앞에 있는 광경을 보았다. 특히 그의 앞으로 지나가는 여진우는 몸에서 차가운 기운을 가득 내뿜고 있었다.비록 그가 기운을 단속하긴 했지만, 서주에서 여진우를 만난 적 있었던 사람이라면... 그가 차가운 기운을 얼마나 많이 감추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여진우가 떠난 뒤, 강이한은 이유영을 소독수 냄새가 가득한 벽에다 대고 세게 누르고는 붉은 두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전화는 왜 안 받았어?”“지금 당신은 내가 매정하다고 탓하는 거야? 그 애가 아파서 엄마를 찾는데 내가 전화를 안 받았다고 지금 내게 뭐라고 하는 거야?”이유영은 비꼬며 강이한에게 되물었다.“...”순간 강이한의 두 눈은 분노 때문에 더욱 붉어졌다.강이한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이유영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그 애를 위해 나한테 전화를 얼마나 많이 한 거야? 아니면 당신은 여태껏 내가 어떤 태도인지 모르겠어?”‘알아볼 때도 됐잖아. 이젠 알아봐야지!’“유영아, 넌 온유한테 그렇게 대하면 안 돼!”이런 똑같은 말을 강이한은 정말 여러 번이고 말했다. 하지만 도대체 이유영이 왜 이온유를 그렇게 대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서 그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한지음에 관한 얘기가 나오기만 하면 뒤에 얼마나 큰 이야기가 엮여있는지를 막론하고 화제는 단 한 번도 계속 이어진 적이 없었다.“강이한, 내 딸도 열이 39.5도로 났어.
“얘기하세요.”이유영은 아주 무뚝뚝하게 입을 열었다.마치 엄수현이 무슨 얘기를 할 것을 알아차린 것만 같았다.오늘 도원산에서 떠날 때, 이유영은 강이한 주변의 사람들이 원념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것을 느꼈다.‘마음이 참 독해... 고작 어린애인데 아이한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그래서 지금 엄수현이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도 이유영이 도대체 어떤 여자인지를 얘기하려고 하는 줄로 생각했다.엄수현은 이유영을 보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이유영은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내내 두 사람은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으며 분위기는 점점 심각해졌다.이유영이 엘리베이터에서 나가려는 순간, 엄수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사모님, 그 아이가 왜 도련님을 닮았죠?”엄수현의 말이 끝나자, 이유영은 머리가 팡 터지는 것만 같았다.이유영은 고개를 돌려 충격이 가득한,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두 눈으로 엄수현을 바라보았다.‘이 사람... 월이를 딱 한 눈 보았는데 월이와 강이한이 닮았다는 것을 보아낸 거야?’이유영은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이 순간 이유영의 마음속에 어떤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저녁에 침대 위에서 이유영은 월이의 변화를 보면서 강이한이 파리에 있는 한 시종 큰 복병이 될 것으로 생각했었다.하지만 그녀의 생각이 이렇게나 빨리 현실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강이한 주변의 엄수현이 이렇게 쉽게 눈치를 챘다니 그녀는 정말 믿기지 않았다.이유영은 크게 숨을 몇 모금 들이켰지만, 여전히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사모님, 만약 도련님이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되면 사모님께 더...”“더 잘해 줄 거라고요?”엄수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유영은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이유영의 호흡은 조금 가빠졌다.‘강이한의 신변에서 지내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한 거 아냐? 강이한이 나한테 잘해 줄 거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이유영은 연달아 심호흡을 몇 번 하고는 그제야
병실 안에서 여진우는 침대 위에서 곤히 잠든 월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열이 난 아이는 쉽게 졸려 했기에 집에서 병원으로 오는 길 내내 한 번도 깨어나지 않았다.여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꼬맹이의 작은 코와 입이 다 그 사람이랑 많이 닮았어!”이유영은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조금 전 엄수현이 자기를 막아선 것이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만약 그녀를 막지 않고 바로 강이한에게 사실을 얘기했으면 아마 전 파리가 떠들썩해졌을 것이었다.강이한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이렇게 큰 난리를 피우는 사람인데 만약 아이의 정체를 알아버리면 일이 어떤 지경까지 이르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그 얘기는 그만해줘.”“강이한이 아까 서주 쪽에 전화했대.”“또 너를 건드렸어?”이유영은 골치가 아파 나는 것만 같았다.강이한의 성격은 줄곧 이랬다. 일의 시비곡직을 따지지도 않고, 무슨 일인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매번 일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놨다.예전에 결혼하기 전에 이유영은 강이한의 성격이 이런 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이 인간은 왜 성격이 점점 더 지랄 같아지는 거 같지!?’“강이한이 너에게 나를 정씨 저택에서 내보내라고 제기했어?”“어.”확실히 그 말을 했었다.하지만 이유영은 그저 강이한이 미친 사람같이 느껴졌다. 이혼까지 한 마당에 이런 짓거리까지 만들어 내다니 이유영은 어이가 없었다.“연회는 3일 뒤에 진행될 거야.”“그럼, 네 쪽에는...”“넌 서재욱 씨 쪽이나 신경 써.”3일 뒤, 연회에서 여진우와 이유영의 신분은 드러나게 될 것이다.그럼, 강이한은 자연스럽게 더 이상 여진우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었다.하지만 서재욱 쪽은?강이한이 이유영에게 하는 짓거리를 보면, 서재욱과 이유영에게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안 이상, 강이한은 절대 서재욱을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 뻔했다.그 사람과는 얘기가 전혀 안 통하는 것이 문제였다. 자격이 없다고, 그가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말해도 그는 전혀 듣지를 않았다. 강이한은 그저
월이의 머리에 꽂혀있는 주삿바늘을 보더니 임소미는 마음이 정말 아팠다.이유영이 입을 열었다.“제가 이렇게 잘 보살피고 있었잖아요!”“그래도 병원에 들어갈 때 나한테는 말해 줬어야지.”임소미는 화병 나 죽을 것만 같았다.“저랑 진우가 다 있었는데요.”“진우라니. 넌 오빠라고 불러야지!”“...”만약 예전 같았으면 이유영은 꼭 말대꾸를 한마디 했었을 텐데 오늘은 특히 월이의 상황 때문에 이유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빠가 있으니 사실 좋은 것도 있네.’...이유영의 상황과 달리 강이한 쪽 이온유의 상태는 별로 심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날이 밝은 뒤 이온유는 퇴원했다. 병원의 로비에서 나갈 때, 여진우는 냉기를 한가득 내뿜으며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강이한의 차가운 두 눈동자랑 마주친 순간, 두 사람은 대 아침부터 눈빛으로 스파크를 일으키곤 하였다.“아빠.”잠에서 깬 이온유는 강이한의 옷깃을 살짝 잡아당겼다. 강이한은 정신을 차리고 안절부절못하며 품속에 있는 이온유를 쳐다보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가자. 집으로 가자.”“네.”이온유도 여진우의 적의를 선명하게 느꼈으며 조금 불편했다.아이들은 그런 것이었다. 일단 불편함을 느끼면 무조건 피하는 것을 선택하곤 하였다.차 안에서, 강이한은 이온유를 잘 안착시키고는 저린 미간을 주물럭 했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는 방금 만난 여진우의 쌀쌀한 눈빛이 계속 떠올랐다.그토록 낯익어 보였으며 그의 얼굴 윤곽이... 어딘가 모르게 익숙했다.“엄수현 씨.”“네, 도련님.”“조금 전 여진우를 봤을 때 무슨 느낌이었어요?”‘여진우?엄수현은 눈썰미가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그는 어젯밤에 월이와 강이한이 닮았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도 당연히 이상한 낌새를 눈치챌 수 있었다.하지만 그동안, 상류사회에서 떠도는 소문들은 무시할 수 없었다.“제가 느끼기에는 여진우 도련님이랑 사모님이 무척 닮았습니다!”‘그래, 무척 닮았어. 조금 닮은 정도가 아니야.’그저 남자와
3일이란 시간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전날, 이유영은 맞춤 예복을 여러 벌 받았으며 게다가 자기네 회사 크리스탈 가든에서 보낸 브랜드들도 있었다.메이크업 선생님도 다 안배해 놓았다.스케일이 이렇게 큰 것을 보면서 이유영은 골치가 아팠다.“엄마, 사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어요.”“왜 필요가 없어? 내일 너는 진우랑 같이 오프닝 댄스를 춰야 해. 우리 공주님은 당연히 제일 이쁘고 제일 아름다워야지.”임소미는 강조하면서 말했다.“그래도 이건 너무...”“...”“제 물건이 너무 많아서 넘칠 지경이에요.”이유영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의 물건은 정말 넘칠 정도로 많았다.정씨 가문으로 돌아온 후, 그 당시 외숙모인 임소미는 정말 온 천하에서 제일 좋은 것들을 다 이유영에게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자기와 정유라 사이의 차별에 대해 이유영은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알아차렸다.게다가 이 2년 동안, 정국진은 줄곧 여진우를 찾고 있었기에 로열 글로벌이라는 큰 짐은 자연스럽게 이유영의 어깨에 놓인 것이었다.지금 여진우도 돌아왔으니, 정국진의 정신도 돌아온 셈이었으며 이유영도 한결 편안해졌다.“유영아.”임소미는 이유영의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면서 부드럽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왜요?”“너무 좋다.”임소미는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그녀의 눈시울은 살짝 붉어졌다.지금 이런 삶은 진실을 알고 난 뒤 임소미가 꿈에도 그리던 장면이었다. 지금은 드디어 이뤄졌다... 딸과 아들이 다 돌아왔다.자고로 사람은 평소에도 선을 행하고 덕을 쌓아야 한다더니, 진실을 알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다 그녀의 품속으로 돌아왔다.이 2년 동안, 임소미는 자선을 엄청나게 중요시하게 여겼다.하나님의 연민에 감사드렸다.“엄마. 지금 이게 뭐 하는 거예요? 나랑 진우가 엄마 곁에 있잖아요.”“바보야. 진우는 네 오빠야.”임소미는 이유영의 호칭을 바로잡았다.이유영도 아마 혼자로 지내던 것이 습관 되어서인지 갑자기
박연준은 어둠 속 이유영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꼭 괜찮아져야 해...”그 말은 깊고 아픈 감정이 담겨 있었다.마치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한 말이었다.이유영은 비 내리는 소리에 집중하며 박연준의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강이한이 떠난 이후, 그들 사이의 관계는 언제나 이렇게 차가웠다.“탁탁탁!”하이힐 소리와 바퀴 소리가 뜰에서 울려 퍼지자 이유영은 미간을 찡그리며 일어섰다.“소은지 씨입니다.”이유영의 얼굴에 당황함이 스쳐 지나자 우지는 급히 이유영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누구도 알지 못했다.하이힐 소리가 들렸을 때, 이유영의 마음속에 느껴진 감정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괴로웠다.홍문동이 불타던 그날도 이유영은 그 하이힐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어둠 속에서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그것은 차가움의 상징처럼 느껴졌고 이유영에게 공포로 다가왔다.우지가 소은지라는 이름을 언급했을 때, 이유영은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소은지가 왜 여기에 온 건지 의문이었다.“유영아.”소은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은지야.”이유영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맞아, 나야.”“왜 갑자기...”소은지의 예고 없는 방문에 이유영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이유영에게 가장 답답한 일이 바로 소은지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는 소은지를 돕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 답답한 마음이 이유영을 괴롭게 했다.“현우 씨가 너한테 가라고 해서 왔어.”소은지가 말했다.그 말이 끝나자, 소은지는 이유영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은 약간의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이유영은 소은지의 손을 반대로 잡으며, 현우가 소은지를 보낸 것이라면, 아마 엔데스 명우는 이 시점에서 매우 바쁜 상황일 것임을 짐작했다.이유영은 소은지가 안쓰러웠다.소은지 역시 이유영의 텅 빈 눈을 보며 가슴 속에서 숨 막히는 고통이 퍼졌다. 현우가 이유영의 시력이 거의 없다고 말했을 때는 그저 듣기만 했지만, 이유영이 정말로 보
시간이 지나면서 이유영의 마음속에는 어쩔 수 없이 우울함이 서려 있었다. 이유영은 이런 기분이 싫었다.“오늘은 어때?”한 남자가 그녀의 옆에 나타나 덩굴 의자에 앉았다.이유영은 이미 이 의자의 냄새에 익숙해졌다.익숙함, 그건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처음 여기 왔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었고 의자나 의자에 앉을 때마다 딱딱한 느낌만 들곤 했다.강이한이 이유영을 위해 덩굴 의자를 가져다주었고 그 위에 부드러운 쿠션을 깔아 주었다. 이유영은 덩굴 의자에서 나는 냄새가 좋았다.화려한 소파는 아니지만 그 자리는 이유영에게 편안함을 주었다.그러나 박연준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그녀의 얼굴은 차가워졌다.“아니.”이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그는 매일 아침 마치 일과처럼 그녀에게 묻곤 했지만 여전히 같은 대답만 했다.이유영은 남자의 기운이 조금 더 강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염 선생은 의술이 뛰어난 분이시니 걱정하지 마.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히려 몸 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박연준은 사람을 위로하는 거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유영이 이렇게 오랜 시간 약을 복용했음에도 전혀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마음이 조금 다급해졌다.남자의 말을 듣고 이유영은 깊은숨을 들이쉬며 말했다.“이제 바로 네가 보고 싶었던 거 아니야?”“...”그 말을 들은 박연준의 마음은 점점 더 조여왔다.“유영아, 내가 너한테 무엇을 원하는지 너도 알잖아. 왜 이렇게 날 비꼬는 거야?”맞다, 이유영은 알고 있었다.이유영이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강이한과의 관계가 그렇게 엉망이 되어 버린 사람도 결국 중요한 순간에는 한 편에 서 있었다.그들이 이유영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녀는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우리 이러지 말자, 응?”박연준의 목소리는 씁쓸했다.박연준은 한때 이유영과의 관계가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박연준의 마음은 점점 더 조여오고 있었다.이유영은 차갑게 대답했다.“괴롭다면 떠나도 좋아.”이유영의 분위기와 태도는 박연준의 마음을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한쪽은 날카롭고 잔인했고 다른 한쪽은 두려움 없는 조롱을 던졌다.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소은지가 딱 그랬다.엔데스 명우가 아무리 강압적이고 위압적인 인물이라 해도 소은지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소은지의 눈빛에 비친 두려움 없는 모습이 그의 마음을 더욱 자극했다. 차라리 그녀의 눈을 빼버리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야만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여섯째 도련님!”여섯째 도련님이라니.엔데스 명우는 처음으로 이런 모욕감을 느꼈다. 그전에는 감히 아무도 그러지 못했다.특히 여자들은 그에게 끊임없이 구애했지, 감히 이렇게 대들지 못했다. 소은지는 정말 대단했다.남자는 소은지의 뺨을 찰싹찰싹 때리더니, 돌아서며 말했다.“소은지, 기다리고 있겠어.”“...”“현우가 너를 버리는 날을 기다리고 있을게.”남자의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묻어났다.마치 그 일이 눈앞에서 곧 벌어질 것처럼.남자가 더 말하지 않아도 소은지는 알 수 있었다. 일단 현우가 그녀를 버리면,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엔데스 명우의 무자비한 복수뿐이었다.그들의 앙숙 관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오히려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하지만 소은지는 이 사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마치 두려움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남자가 문까지 가다가 발을 멈추고 살짝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넌 엔데스 가문 남자들을 너무 쉽게 생각해!”심지어 너무 착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그들은 늑대들이었다...마지막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남자들. 소은지는 그들 사이에 갇혀 이제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소은지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엔데스 명우가 떠나고 소은지의 얼굴에는 짙은 어둠만 남아 있었다......파리는 지금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엔데스 현우는 사람을 보내 소은지를 전용기를 태웠다.비행기가 밤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 소은지는 파리
“가고 싶어?”“가면 안 돼?”소은지는 차갑고 비꼬는 표정으로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남자는 빠르게 다가와 그녀의 목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목이 부서질 듯한 압력이 느껴졌다.소은지의 등이 차가운 벽에 밀쳐졌고 집사와 하인들이 다가가려 하자 남자가 고함쳤다.“다 꺼져!”집사와 하인들은 그 자리를 떠날 용기가 나지 않아 얼어붙어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두려운 것이었다.“나가세요.”이 남자가 미친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소은지의 눈빛에는 오히려 두려움이 없었다.집사와 하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머뭇거렸다. 나갈 수도, 안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소은지는 목소리를 높여 다시 말했다.“다들 나가세요!”“...”사모님의 엄한 명령에 마음이 조여왔지만 결국 모두 급히 자리를 떠났다.엔데스 명우와 소은지만 남았을 때, 소은지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증인들은 다 나갔어. 네 마음대로 해.”소은지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았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표정은 예전에 그와 함께 있을 때와 똑같았다. 그가 아무리 고문해도 그녀는 항상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었다.명우가 소은지를 가장 아프게 해도, 소은지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행동했다.마치 그녀의 세계에는 고통도 두려움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소은지에게는 약점이 없었다.한때 엔데스 명우는 이런 여자가 길들여지면 엄청난 성취감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녀의 교만한 뼈 구조마저 너무 미워서 하나하나 뜯어내고 싶을 정도였다.그녀의 오만함은 뼈와 피에서부터 자라 세포로 뻗어 나온 듯했다. 그렇게 끈질기게 자라 아무리 짓밟고 억눌러도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엔데스 명우는 소은지의 두 눈을 직접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그녀의 눈빛이 싫었다.그녀는 항상 무관심하고 두려움 없는 눈빛으로 명우를 바라봤기 때문이다.“왜? 안 때릴 거야?”“그렇게 쉽게 내 손에 죽고 싶어?”“흥!”하긴, 이렇게 쉽게 그녀를 보내줄 순 없었
소은지는 누군가를 한 번도 깊이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송연미의 눈 속에서 마치 그런 깊은 사랑을 보는 것 같았다. 상대를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만큼의 사랑이었다.송연미의 눈에 담긴 감정은 차분하고 억제된 것이었으며 심지어 극단적이고 날카롭게 느껴졌다.모두 그 한 사람만을 위한 감정이었다.처음 송연미를 봤을 때, 엔데스 가문의 여자들 사이에서 송연미는 유난히 고독하고 차가운 아름다움으로 돋보였다.엔데스 가문에 변화가 생기자 송연미는 반산월에서 그녀는 네 번째 사모님과 송씨 가문의 아가씨답지 않은 태도를 보였고 미친 듯이 화를 냈었다.아버지가 사촌 여동생을 양녀로 삼으려는 얘기를 했을 때, 송연미는 절망적이면서도 차분한 모습이었다.이유영에게서 보았던 것, 즉 결혼의 끝을 생각하면 소은지는 감정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하지만 그런 사랑이 송연미에게서 보인 것이다. '그가 좋다면 나는 뭐든지 괜찮다'는 그런 사랑을.그 사랑은 소은지가 감정에 대해 가지고 있던 모든 생각을 뒤엎어 버렸다. 송연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소은지는 이제 송연미가 불쌍하고 애석하게 느껴졌다.엔데스 운빈과 송씨 가문과의 관계를 깨면서까지 현우에게 분노를 표출했고 송연미를 파리에서 떠나게 한 이유도 현우 때문이었다.그리고 지금, 아버지가 사촌을 입양한 사실을 참고 있는 이유도 현우 때문이었다.이런 여자가 감정적으로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 있을까?“난 오늘 밤 떠나.”잠시 후 소은지는 송연미에게 이렇게 말했다."..."송연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눈 속에 기쁨이 스쳤다.“진짜로 떠날 거야?”“응.”소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지는 진심이었다.송연미가 한숨을 돌린 듯했다. 마치 그 전까지의 모든 계획이 소은지에게 걸려 있었던 것처럼.이제 소은지가 입을 열었으니 그들도 다음 단계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소은지는 송연미의 반응을 보며 송연미의 눈 속에서 깊고 날카
대체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큰 압박감을 주었고 그 느낌이 너무나도 무겁고 답답했다.송연미는 단호하게 말했다.“왜냐하면 현우는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이기 때문이야.”그 말은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왜?”송연미의 아버지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이 일은 거의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엔데스 가문의 회장은 현우에게 무언가를 남겼을 거야. 그분이 가장 아끼던 사람은 바로 현우였으니까.”가장 아끼던 사람이 현우라고? 그렇다면 이렇게 복잡한 상황을 남겨둔 것 자체가 이상했다. 그 회장이 정말로 자신의 사람을 아꼈다면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 리가 없었다.“내 아버지가 쥐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파리에서의 권력이었어. 네 좋은 친구인 이유영에게 물어보면, 내 아버지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거야.”송연미도 소은지를 오랫동안 지켜보며 소은지는 강압적인 방식보다는 부드러운 접근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써왔던 여러 방법이 소은지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결국, 이 모든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소은지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일이 너무 복잡하고 방대하기도 했고 현우가 이 사건에 소은지를 전혀 끌어들이지 않아서 이 복잡한 관계를 파악하기 힘들었다.“정씨 가문은 이 일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거야?”소은지는 문득 그렇게 물었다.정씨 가문은 매우 큰 상업 제국이었다. 정국진은 언제나 무사히 지나갔고 그만큼 이 사람이 능숙하다는 뜻일 것이다.정씨 가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송연미는 이렇게 말했다.“만약 이유영 옆에 강이한과 박연준이 없었더라면, 엔데스 가문이 정국진을 그냥 놔뒀을 리가 없어.”하지만 아쉽게도 정씨 가문의 유일한 딸 이유영은 강이한과 박연준과 관계가 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손에 쥐고 있었다.따라서 이유영을 함부로 다룰 수 없다는 것이었다.사실 송연미가 가장 부러워한 사람은 바로 이유영이었다.왜냐하면 이유영이 이 파리에서 보았던
송연미는 소은지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버지께서 아직 현우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지 않으셨어.”그 말을 하면서 송연미의 목소리에는 묵직한 느낌이 담겨 있었다. 소은지는 그 무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소은지가 송연미를 바라보는 눈빛은 침묵 속에서 날카로움을 띠고 있었다.“네가 아직 여기 있기 때문이야.”송연미의 말은 직설적이었고 어느 정도 압박감이 배어 있었다.소은지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송연미는 오늘 밤 소은지가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소은지는 품에서 잠든 고양이를 조용히 쓰다듬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송연미가 그 고양이를 보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왜냐하면, 송연미도 고양이를 좋아했기 때문이다.아마 현우는 그것을 잊었을 것이다. 송연미와 현우의 사이가 좋았을 때, 송연미는 현우에게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좋아, 예쁜 고양이 한 마리 찾아 줄게.”그의 말은 여전히 소은지의 귀에 생생하게 들려왔다.그때 그들은 정말 행복했다. 그 누구도 그때가 마지막 평화로운 순간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 후, 그들은 각자의 길을 갔고 서로 다른 인생의 궤도로 나아갔다.송연미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가 기다린 것은 현우가 약속한 예쁜 고양이가 아니라 아버지가 그녀를 엔데스 운빈에게 시집보내려는 계획이었다.송연미는 강하게 반항했다. 미친 듯이 도망치려 했지만 결국 가문 내의 압박과 협박에 못 이겨 결국 무너지게 되었다.송연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하루를 겪었다.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모든 것이 단번에 깨져버렸고 그녀는 고통과 분노 속에서 절망했다.그래서 그녀는 그 사건에 연루된 모든 사람을 미워하게 된 것이다.“너랑 엔데스 운빈의 관계 때문에 네 아버지가...”소은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송연미를 바라보았다.도대체 이 가문은 어떤 집안인 걸까?소은지가 말을 끝내지 않았지만 송연미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얼굴에는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는
하지만 소은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그녀는 어딘가 고독한 기운이 스며드는 걸 느끼며, 자신이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넌 어떻게 생각해? 나와 현우 씨, 나름 함께 고난을 겪어온 사이 아닌가?”소은지는 송연미에게 시선을 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소은지의 말에 송연미는 순간적으로 멍해졌다.송연미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고 눈 속에는 질투의 불씨가 번뜩였다.하지만 송연미는 엔데스 가문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인 만큼 그런 감정들은 금세 억누를 수 있었다.“엔데스 가문이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어.”중대하다?소은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현우가 자신을 이렇게 급하게 파리에서 떠나게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다섯째 도련님이 큰형수를 데려갔어.”“...”그 말을 듣고 소은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송연미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송연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렴풋이 알았지만 사태가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에 여전히 충격을 받았다.“소은지, 너 모르지?”“뭘 말하는 거야?”“예전에 회장님 세대 때, 집안 권력을 둘러싼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소은지는 조용히 송연미의 말을 들었다.송연미가 소은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송연미 말대로 소은지는 그들의 권력 다툼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아버지가 그러셨어. 그 당시 엔데스 회장님은 정말 무서운 분이었다고. 지금의 여섯째 도련님보다 훨씬 더 무서웠대.”“...”그 말을 들은 소은지는 온몸이 얼어붙은 듯 굳어졌다.소은지는 가족 모임 때 한 번 마주쳤던 차가운 눈빛의 백발 회장님을 떠올렸다.단 한 번의 시선으로도 그녀를 얼어붙게 할 만큼 날카로운 눈빛을 지닌 분이었다.엔데스 명우조차 이미 충분히 무서운 존재였는데, 회장님은 그보다 더했다니. 엔데스 가문이란 현우가 말한 것처럼, 정말로 끝없는 심연이었다.“다섯째 도련님이 큰형수를 데리고 간 이유는 미도로 여행을 간다고 했지만 사실은 큰형이 중요한 단서를 발견했기 때문이야.”단서 하나로
한때 청하시에 머물던 시절.소은지는 너무 많은 것을 보아온 탓에 결혼이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본 적이 없었다.남자를 광적으로 사랑한다는 것 역시 그녀에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불같이 뜨거운 사랑이 결국 아픔으로 끝난다면, 그런 사랑은 애초에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특히 현우의 내면을 어느 정도 들여다본 지금, 그녀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하지만 여자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감정 문제에 있어서는 순진하다는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과거에 소은지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비웃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그래, 여자가 순진할 수도 있지. 그렇지만 마지막에 우는 건 그 여자가 아닐 수도 있어.”소은지의 말은 냉소적이었고 태도는 언제나 가벼워 보였다. 마음을 주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소은지는 여자가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아야 더 행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왜 굳이 목숨까지 걸어야 할지 모를 그런 감정에 휘말려야 할까?사랑은 진심을 다한 사람이 결국 패배자가 되는 잔인한 게임 같았다.소은지는 너무 많은 상처받은 여자들을 보아왔다.그리고, 너무나 많은 상처받은 남자들도 보아왔다.하지만 그 모든 걸 알고 있음에도 스스로 감정을 억누르려 애썼던 소은지는, 현우를 마주하는 순간 이미 마음이 깊이 흔들리고 있었다.“얼마나 걸릴까요?”소은지는 현우를 바라보며 물었다.우천시로 떠나는 것에 관한 질문이었다.현우가 소은지를 우천시로 보내려 한다는 건, 현재 파리의 상황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걸 암시하는 것이었다.시간은 얼마나 필요한 걸까?“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한 달 정도 걸릴 거예요.”한 달이라는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소은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졌다.엔데스 가문이 정말로 벼랑 끝에 다다른 걸까?소은지는 깊은숨을 내쉬며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답답함을 억눌렀다.“네.”짧은 한마디.그러나 그 짧은 대답 안에 담긴 복잡한 감정은 오직 소은지만이 느낄 수 있었다....소은지에게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