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산에 왜 이유영의 옷이 있는지에 대해 그녀는 한 글자도 물어보지 않았다...강이한이 지금 무엇을 하든, 이유영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강이한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먼저 엄수현 보고 당신 상태를 좀 봐달라고 할게.”아까 강이한은 선명하게 이상함을 느꼈다!너무 급하게 한 나머지, 이성을 잃었으니 더 세게 해서 이유영을 다치게 한 것이 분명했다.이유영은 몸을 반대편으로 돌리면서 싸늘하게 외쳤다.“나가!’이유영은 강이한이 꼴도 보기 싫었다.강이한은 나가지 않고 침대맡에 앉고는 입을 열었다.“유영아, 내가 박연준을 네 곁에서 밀어낼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다 쫓아낼 수 있어! 나 말고 당신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강이한은 담배 한 대에 불을 붙이고는 말했다.그의 말이 끝나자, 순간 이유영의 온몸이 굳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얼굴색도 하얗게 질렸다.박연준... 그와 박연준 사이의 원한에 대해 이유영은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의 일은 두 사람이 알아서 처리하면 됐지, 그녀는 그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서재욱은...“당신 말대로 난 더 이상 서재욱과 어떠한 왕래도 하지 않을게.”“난 당신을 원해!”그는 아주 기세등등하게 세 단어를 내뱉었다.전에 박연준을 그녀의 세상에서 내쫓은 건 다 이유영을 갖기 위해서였다.“그건 불가능해!”“서재그룹은 얼마 버티지 못할 거야.”“...”이유영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으며 눈빛에는 울화가 가득했다.강이한이 이토록 뻔뻔하게 나올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서재욱과 왕래를 하지 않는 것도 모자라 자기와 같이 있어 달라고? 이런 뻔뻔한 수단은 아마 이놈만 할 수 있는 짓이야.’“강이한 당신을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뻔뻔하다고 해야 하나?’하지만 이건 뻔뻔한 것을 떠나서 완전... 형용할 수 없는 정도였다.“걱정하지 마, 난 그 아이를 내 친자식처럼 대할 수 있어.”“하!”이유영은 비꼬는 웃음을 지었다.그녀는 아니꼽게 말했다.“전에 나랑
“아니야!”강이한은 이미 등골에 땀이 송골송골 돋았다.서주에 있는 동안, 강이한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는 이유영이 자기와 같은 상황이 아니길 바랐다.만약 정말로 자기와 똑같은 거라면 그럼 이유영은... 두 사람 사이의 아픔과 미움에 대해 이유영은 절대로 내려놓을 수 없을 것이었다.하지만 진실은 정말로 이유영이 생각한 그런 것이 아니었다.근데 홍문동에서 일어난 화재를 떠 올리면 강이한 입가에 나온 해명은 또 아무런 신빙성이 없어지곤 하였다!그녀가 실명했던 것도 진짜였고 임신했던 것도 진짜였으며, 심지어 배 속의 아이마저 그때의 화재에서 같이 불타버린 것도 진짜였다.그건 전생이 이유영이 그와 함께하면서 지불한 대가였다.그녀가 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냈든, 지난번의 생에서 겪었던 고통은 다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이유영의 목에 있는 화상 상처들을 보며, 강이한은 이유영이 그 당시 도대체 어떤 고통을 감당했을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더 이상 서재욱을 괴롭히지 마. 내 감정에 있어서 난 진작에 아무런 선택도 할 수 없게 되었어.”이유영의 말투는 유달리 평온했다.하지만 그 평온함에는 허전함이 있었다.강이한은 자기 가슴이 더욱 턱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천만 가지 생각 끝에 강이한은 입을 열었다.“난 당신이 나랑 같이 이곳에서 살기만 바라. 다른 건 요구 안 할게!”그랬다. 이유영을 원하던 데서... 같이 살면 되는 것으로 변했다.이런 전변은 강이한에 있어서 양보나 마찬가지였다.“난 당신이랑 같이 살 리 없어.”이유영이 대답했다.‘절대 그럴 리 없지. 같이 살면서 강이한이 이온유를 어떻게 아끼는지를 보라고!?’“이건 내 최후의 양보야!”원래 아픔을 곁들인 강이한의 말투는 순식간에 싸늘해졌다.이유영의 마음은 그의 말투보다 백배 더 차가웠다....엄수현은 와서 이유영에게 간단하게 검사를 해주었다. 한 의사로서 환자의 여러 가지 병 증세를 봤었다고 해도 그녀는 이유영을 보고 깜짝 놀랐다!방에서 나올 때 엄수
도원산의 밤은 아주 평온했다. 게다가 곤충의 울음소리, 대자연의 소리는 저도 모르게 사람을 안심시켰다.하지만 이유영은 지극히 피곤한 정도가 아니면 절대로 이곳에서 깊이 잠들 수 없었다.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르지만, 강이한이 있는 곳이라면 아무리 조용한 곳이라고 해도 그녀의 심란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잠결에 이유영은 누군가가 자신을 건드리는 것을 느꼈다.피곤한 채로 두 눈을 뜨자, 어둡고 따듯한 불빛 아래 강이한의 뚜렷한 옆모습은 아주 온화하게 보였다.마치 천사처럼 아름다운 것 같았다...하지만 순간 이유영은 정신이 번쩍 들었으며 피곤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그녀는 경계하면서 강이한을 쳐다보았다.특히 강이한의 움직임을 느낀 순간 그녀는 정신이 들면서 분노가 차올랐다.또렷한 짝 소리와 함께 이유영은 강이한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공기는... 순간 얼어붙었다!창밖 곤충의 울음소리는 이 순간에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심지어 이런 상황에서 방안은 고요한 나머지 바늘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조차 선명하게 들릴 정도였다!“당신, 이 미친놈!”이유영은 노호했다.차 안에서의 장면이 부단히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 올랐다. 그녀는 눈앞의 강이한을 매섭게 노려보며 마치 그를 찢어버릴 것만 같았다.강이한은 손에 연고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특히 그녀가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볼 때 강이한은 웃었다. 그 웃음은... 그토록 싸늘했다.“왜? 만지면 안 돼?”입을 연 강이한의 말에는 온통 풍자였다.이유영이 조용하게 있을 때 강이한이 느낀 양심의 가책만큼, 이유영이 경계하는 눈빛으로 강이한을 바라볼 때, 강이한은 그만큼 이유영을 길들여 주고 싶었다.‘만지면 안 돼? 그럼, 누가 당신을 만질 수 있는데? 서재욱? 아니면 박연준...?’강이한의 비꼬는 미소를 보며 이유영의 두 눈은 더욱 분노로 가득 찼다.이유영이 다시 손을 들어 강이한의 뺨을 내리치려고 할 때, 강이한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한 대로 모자라?”“날 만지지 마
여진우는 심지어 정씨 저택에 들어가 살기까지 했다!“유영아, 당신 외삼촌은 참으로 여우 같은 사람이야. 네가 서재욱의 아이를 낳은 걸 알면서도 여진우를 백산 별장에서 지내게 들이다니. 참으로 완벽한 수를 뒀네.”강이한의 말투는 쌀쌀맞았다.하지만 그보다 더 쌀쌀한 건... 이유영의 마음이었다. 강이한의 눈을 바라보며 이유영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이유영의 침묵은 강이한이 보기엔 묵인하는 거랑 마찬가지였다.쿵 소리와 함께 강이한은 문을 박차고 나갔다.이유영은 침대에 앉은 채 오랫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녀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졌고 점점 싸늘해졌다.이것이 바로 그녀와 강이한의 관계였다.전생이든 아니면 이번 생이든, 두 사람 사이의 이런 모순은 도무지 피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오해! 해명할 수 없는 오해, 해명해도 믿지 않는 오해, 이것이 바로 두 사람 사이 모순의 관건이었다. 도대체 마음속으로 편애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 이유영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이유영이 강이한에 대한 사랑과 온도는 바로 이런 것들 때문에 조금씩 조금씩 식은 것이었다.이유영은 최익준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녀가 파자마를 입고 계단을 내려왔을 때, 이온유가 물컵을 들고 물을 마시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유영을 보자마자 꼬맹이의 눈에는 두려운 기운이 드러났다.이유영은 이온유에게 눈길 한번 주고는 바로 눈길을 거두었다.하지만 입구까지 걸어갔을 때 뒤에서 쾅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이유영이 고개를 돌려 보니 이온유가 손에 든 물컵을 바닥에 떨군 것을 보았다. 유리 조각이 사방에 튀었으며 꼬맹이의 종아리에는 한 줄기 자국이 긁혀져 피가 났다.“흑, 흑...”순간, 이온유는 울음을 터트렸다!소리를 들은 도우미들은 얼른 달려 나왔다. 그리고 이온유가 다친 모습을 보더니 현장은 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강이한도 소란을 듣고 내려왔다.그가 다급하게 이온유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본 이유영은 눈에 가시가 든 것처럼 거슬렸다.
이유영이 백산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 여진우는 아직 깨어있었으며 마침 통화 중이었다. 전화에 대고 서주 얘기를 하는 그의 안색은 별로 좋지 않았다.이유영의 마음은 다시 목구멍까지 차올랐다.여진우는 급히 전화 반대편의 사람에게 몇 마디 한 후 전화를 끊고는 이유영을 향해 걸어왔다.“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어? 그리고 너 옷차림이...”‘심지어 잠옷을 입고 있네!?’“서주 쪽에 또 무슨 문제가 생겼어?”이유영은 여진우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도리어 그에게 되물었다.서주 얘기가 나오자, 여진우는 미간을 찡그렸다.여진우는 입을 놀리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파리에 돌아온 후의 신분 변화에 대해 그는 여태까지도 아직 어색해했다.그런 여진우가 유일하게 말을 많이 하는 상대는 아무래도 이유영이었다. 그랑 똑같이 생긴 이유영은 태어나기 전부터 한 공간에 같이 있었던 존재이기에 아무리 몇십 년간 서로 떨어져서 지냈다고 해도 두 사람 사이에는 아직도 케미가 남아있는 것만 같이 저도 모르게 서로에게 마음이 끌리곤 하였다.“별로 큰 문제가 아니야. 걱정하지 마.”여진우가 말했다.“강이한 때문이야?”이 질문을 할 때 이유영의 말투는 점점 날카로워졌다!“그 자식이 널 협박해?”여진우는 거의 이를 꽉 깨물며 이유영에게 물었다.“...”여진우의 눈 밑에 반짝이는 독기를 본 순간, 이유영은 입가에 씩 미소를 짓고는 손을 내밀어 여진우의 얼굴을 어루만졌다.“너...”“걱정하지 마. 나랑 그 인간은 이 몇 년 동안 계속 이렇게 지내왔어. 나도 이젠 익숙해.”전과 다른 건 예전에는 사이가 엮어있는 관계였다면 지금 아무런 사이가 없는 관계였다. 그래서 강이한의 행동은 마음이 이미 다 식어버린 이유영을 다치게 할 수 없었다.여진우는 이유영의 말을 듣더니, 저도 모르게 분노와 애틋한 감정이 살짝 드러났다.여진우는 사람을 시켜 이유영이 강이한과 함께 하면서 그동안 도대체 어떤 날을 보냈는지 알아보라고 했다.“그 사람의 협박에 넘어가지 마. 그 사람은 지금 미친
월이를 품에 안으니, 아이의 따스하면서도 고른 숨결을 들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월이의 향기도 잘 맡을 수 있었다.“잘자. 우리 아기.”이유영은 부드럽고 애틋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월이의 이마에 살랑 뽀뽀를 남겼다.어찌 됐든 요 며칠은 비록 강이한의 집착 때문에 짜증 나긴 했지만 그래도 이유영에게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매일 밤 이유영은 월이와 함께 자면서 꼬맹이의 숨결과 온도를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앞으로 직면하게 될 상황들을 생각하자, 순간 이유영의 눈빛은 짙은 걱정으로 역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뒤에는 엄청 굳건한 눈빛이었다.아침 7시가 될 무렵, 월이는 자동으로 깨어나서 이유영의 몸 위로 바라 올라갔다.“엄마, 엄마. 맘마. 우유. “이유영은 얼떨결에 눈을 뜨면서 자기 몸 위에 있는 월이를 보고는 다정한 표정을 지었다.그러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그래. 잠깐만 기다려.”이유영은 월이를 침대 위에 앉혀놓고는 아래층으로 가서 우유를 풀었다.임소미는 이미 깨어났으며 이유영을 보더니 멈칫했다.“어젯밤에 돌아온 거야?”“네.”“난 또 네가 안 돌아오는 줄 알고 윤씨 아주머니보고 네 방에서 지키라고 했어.”임소미는 원래 월이를 데리고 같이 자려고 했었다.하지만 이유영과 같이 지내더니 월이가 침대를 가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죽어도 임소미의 방에서 같이 자는 것을 거부했다.습관이라는 것이 정말로 무서웠다. 임소미도 도무지 이유영의 방에서 잠들 수 없어서 결국 침지 못하고 도우미 아주머니더러 지키라고 했다.이유영은 우유를 풀면서 임소미에게 대답했다.“저는 매일 저녁 다 월이의 곁에 있을 거예요.”‘아무리 늦더라도 다 돌아올 거예요!’이것이 바로 부모가 아이에 대한 일종의 걱정이며, 또한 아이가 부모에 대한 의지였다!임소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이 없었다.이 순간, 분위기는 조금 가라앉았다.방으로 돌아온 이유영은 까치집 머리를 하는 월이가 얌전히 침대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월이에게 우유병을 건네주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이 순간, 아무리 통화하고 있다지만 두 사람은 상대방의 기운과 싸늘하게 대치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한참 지나서야 강이한은 깊게 숨을 한 모금 들이켜고는 이유영에게 말했다.“아이도 몸이 아플 때 마음도 제일 여러. 열이 난 후로 온유는 줄곧 당신만 찾았어.”“그 아이는 엄마를 찾은 거지 날 찾은 게 아니야. 난 그 아이의 엄마가 아니야!”이유영의 말투는 점점 냉랭해졌다.핸드폰을 통해 강이한의 귀에 들린 이유영은 정말 남남처럼 낯설기 그지없었다... 마치 완전히 낯선 사람 같은 느낌이 들었다.“이정이가 그리고 가고 있어.”한참 뒤에, 강이한의 말투는 조금 더 무거워졌다.게다가 강요의 느낌도 조금 들어있었다.이유영은 헛웃음을 지었다.“왜 웃어?”“강이한, 당신이 지금 무슨 꼴인지 알아?”“...”강이한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이유영은 계속해서 얘기를 마저 했다.“당신은 그 아이의 엄마를 위해서 여러 번이고 나를 강요했었지.”“...”“당신이 나한테 무슨 짓을 하라고 강요했는지 기억해? 지금 그 애의 엄마가 죽으니 이젠 또 그 애를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거야?”공기는 다시 조용해졌다.예전에는 한지음, 지금은 한지음의 딸!강이한의 일생은 참말로... 한지음하고 떼어내려야 떼어낼 수 없었다.한참 동안, 침묵이 흐르더니 이유영이 전화를 끊으려고 한 순간 전화 안에서 강이한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이 아이의 이름은 이온유야.”“...”“온유의 마음속에는 네가 자기 엄마라고!”“난 아니야.”이유영은 화가 치밀어 올라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하지만 월이가 옆에 있는 이유로 또 분노를 꾹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이유영의 선의는 그 누구에게나 베풀 수 있었다. 다만 한지음의 딸만 제외해야 했다.전화를 끊은 후, 엄청나게 오랫동안 이유영은 심정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그녀가 지금 강이한에 대한 감정이 어떻든 한지음이라는 사람 얘기만 꺼내면 감정을 공제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속은 마치 큰
지금의 임소미는 아마도 여진우를 되찾은 이유 때문인지, 밖의 일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부모라는 것이 다 그런 게 아닐까?노년이 된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들이 모두 건강하게 그들의 곁에 있는 것보다 더 행복하고 뿌듯한 일은 없을 것이다.밤낮 없이 눈물을 흘리는 나날은 이미 임소미에게 끝이 났다. 이젠 그저 외손녀를 잘 돌보다가, 여진우가 결혼하면 손자나 손녀를 돌보면 되었다... 얼마나 좋은가...아침 식사가 끝난 뒤 정국진과 여진우가 돌아왔다.두 사람의 안색은 별로 좋지 않았다. 딱 봐도 밖에 또 무슨 일이 터진 것이 분명했다. 이유영은 임소미를 힐끔 보았는데 다행히 임소미는 눈치채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임소미는 월이를 안고 놀러 갔다.이유영은 왕 아주머니를 보며 말했다.“왕 아주머니, 간단하게 아침 좀 부탁드려요.”이 시간에 돌아온 것을 보니 아직 밥을 안 먹은 것이 분명했다.왕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왕 아주머니는 아침을 이유영에게 준비해 주었다. 이유영은 아침을 들고 서재에 올라갔을 때, 문은 비스듬히 열려있었다.안에서 정국진의 엄숙한 목소리가 들렸다.“유영이가 그 사람에게 너희 둘 사이를 얘기 안 했어?”‘그 사람? 누구를 말하는 거지?’“그 사람은 상관하지 않으셔도 되세요.”“그래도...”“무슨 걱정을 하시는지 알겠는데 강이한은 이유영과 어울리지 않아요.”정국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진우는 그의 말을 끊어먹었다.“...”‘강이한, 이놈! 설마... 강이한이 또 진우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아침에 전화에서 다툰 기억이 이유영의 머릿속에 떠올랐다.이유영의 마음은... 조금씩 가라앉았다.‘강이한! 좋아...!’’이유영이 들어가기도 전에 방안의 대화는 계속되었다.“강이한은 너무 과격해요. 일단은 유영이에게 비밀로 하죠. 어렵게 아이의 곁에서 함께 할 시간을 얻었는데 유영이는 일단 모르게 해요.”여진우는 아주 엄중하게 얘기했다.이에 정국진도 고개를 끄덕이었으며 눈 밑에는 일말의
강이한 때문에 이유영은 이미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는데, 박연준 역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였다.특히 소은지가 연서의 존재를 알게 된 후부터는 더욱 그렇다. 박연준과 강이한이 이유영에게 어떤 보호를 해주었는지와 상관없이 이유영은 그 둘에게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했다.그 이유는 그들이 이유영에게 접근한 이유가 처음부터 너무나도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이유영이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자존심 강한 이유영은 진영숙의 억압 속에서도 강이한을 위해 참았지만, 이제 더는 참을 이유가 없었다.이유영의 현재 모습이 바로 그 고통스러운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소은지가 부엌으로 간 사이, 박연준은 이유영의 손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이유영은 손을 빼려 했지만 박연준은 더욱 힘을 주었다.“박연준!”이유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박연준은 이유영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답답한 듯 말했다.“대체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박연준의 질문은 이유영의 마음을 더욱 흔들었다.어떻게 하면 좋을까?이미 다 설명했는데, 왜 이유영은 서로 힘들게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이유영의 차가운 대답은 박연준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요즘 이유영은 박연준이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항상 차가웠다. 마치 높은 벽을 쌓아놓은 듯, 넘어설 수 없을 만큼 차가운 태도였다. 박연준은 이유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괴로워했다.이유영은 냉담한 시선으로 박연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박연준은 말없이 이유영을 바라보았다.이유영의 차가운 말에 박연준의 끈기와 노력은 무너져 내렸고 결국 그는 답답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섰다.“오늘, 약 먹고 어땠어?”박연준은 다시 물었다. 하지만 이유영이 대답하기 전에 박연준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유영아, 진심으로 대답해 줘. 네 건강과 관련된 문제야.”박연준은 이유영이 진심으로 이야기해 주기를 바랐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아무런 느
현우에 대한 생각은 소은지와는 달랐다.그들 사이의 관계는 처음부터 그런 방식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강제로 바꿀 수는 없었다.또한 그녀와 엔데스 명우의 관계는 그녀의 인생에서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치욕이었다.온몸이 더럽혀진 자신이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남자, 현우와 어울릴 수 있겠는가?그는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존재였고, 그녀는 그에게 손을 내밀 자격도 없었다....소은지는 이유영의 곁으로 다가갔다.파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유영에게는 그것이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정확히 일주일이 지났고 소은지는 우천시의 날씨가 생각보다 불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여기는 정말 비가 자주 오네.”소은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지는 비 오는 느낌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 기분은 정말 좋지 않았다.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시간이 지나면 마음도 답답해지곤 해.”처음 이곳에 왔을 때, 밤에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게 좋았다. 이런 곳에서 자면 꽤 편안함을 느꼈었다.하지만 밤이 되자, 소은지는 바로 이유영의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여기 밤에 정말 추워!”소은지는 이불을 두 겹 덮어도 여전히 추웠다.사람들은 우천시가 살기 좋은 곳이라고 했지만, 소은지는 이곳이 춥기만 했다. 여름밤에도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니. 겨울이 오면 이곳 날씨는 정말 아무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소은지는 이곳이 벌써 싫어졌다.이유영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넌 정말!”그 목소리에는 살짝 애정 어린 톤이 담겨 있었다. 소은지는 이유영을 보며 말했다.“요즘 너 기분이 훨씬 좋아진 것 같아.”소은지는 이유영의 세상이 정말 간단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를 그렇게 보호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그리고 박연준과 강이한 덕분에, 그녀는 비록 눈은 보이지 않지만 서주나 파리 어디에서도 그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 없었다.이유영은 대답했다.“네가 왔으니까, 당연히 행복하지.”“그렇구나.”소은지
소은지는 이유영이 어둠 속에서 익숙하게 그릇을 들고 숟가락을 집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며, 마음속에서 더 깊은 안타까움과 아픔을 느꼈다.“그 사람은... 떠났어?”그는 강이한을 말한 거였다.박연준은 아침에 이유영과 불편한 대화를 나눈 후, 일 보러 밖으로 나갔다.게다가 엔데스 회장의 별세는 서주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고, 박연준은 이유영 곁에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를 둘러싼 일이 정말 많았다.“응.”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지는 말없이 이유영을 바라보았고 눈빛은 더욱 깊어져 갔다.여기에 오고 나서, 현우의 사람들은 이곳 주변이 아주 평온하다고 했다. 확실히 이곳은 아무도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안전한 곳이었다.소은지는 송연미의 말을 떠올렸다. 송연미는 그 이유를 말하길, 이유영 뒤에 있는 박연준과 강이한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그들이 엔데스 가문이 원하는 중요한 것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엔데스 가문 사람들은 이유영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그와의 관계는 정말 끝난 거야?”소은지가 이유영에게 물었다.“응.”이유영은 아주 간단하게 답했다. 마치 그들 사이에 깊은 감정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그녀의 한마디는 그렇게 단호했다. 그 말은 마치 그들 사이에 애초에 아무 감정도 없었다는 듯이, 끝났다는 말조차 아무 감정 없이 무덤덤하게 말하는 듯했다.소은지는 웃었다.“예전부터 난 네가 행복하기만 바랐어, 강이한과 멀리해.”“맞아, 그때 넌 모든 걸 다 알고 있었지.”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유영은 그 가운데서 무엇도 보지 못했다.소은지는 여러 번 말했었다. 여자가 감정에 휘둘리면 이성이 사라진다고.그러나 그때의 이유영은 소은지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강이한에게 큰 상처를 받게 되었다.만약 그때 소은지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이렇게 고통스러운 결말을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은지야.”“응?”“엔데스 가문의 남자들, 조심해.”이유영은 소은지를 향해 깊고
박연준은 어둠 속 이유영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꼭 괜찮아져야 해...”그 말은 깊고 아픈 감정이 담겨 있었다.마치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한 말이었다.이유영은 비 내리는 소리에 집중하며 박연준의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강이한이 떠난 이후, 그들 사이의 관계는 언제나 이렇게 차가웠다.“탁탁탁!”하이힐 소리와 바퀴 소리가 뜰에서 울려 퍼지자 이유영은 미간을 찡그리며 일어섰다.“소은지 씨입니다.”이유영의 얼굴에 당황함이 스쳐 지나자 우지는 급히 이유영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누구도 알지 못했다.하이힐 소리가 들렸을 때, 이유영의 마음속에 느껴진 감정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괴로웠다.홍문동이 불타던 그날도 이유영은 그 하이힐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어둠 속에서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그것은 차가움의 상징처럼 느껴졌고 이유영에게 공포로 다가왔다.우지가 소은지라는 이름을 언급했을 때, 이유영은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소은지가 왜 여기에 온 건지 의문이었다.“유영아.”소은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은지야.”이유영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맞아, 나야.”“왜 갑자기...”소은지의 예고 없는 방문에 이유영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이유영에게 가장 답답한 일이 바로 소은지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는 소은지를 돕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 답답한 마음이 이유영을 괴롭게 했다.“현우 씨가 너한테 가라고 해서 왔어.”소은지가 말했다.그 말이 끝나자, 소은지는 이유영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은 약간의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이유영은 소은지의 손을 반대로 잡으며, 현우가 소은지를 보낸 것이라면, 아마 엔데스 명우는 이 시점에서 매우 바쁜 상황일 것임을 짐작했다.이유영은 소은지가 안쓰러웠다.소은지 역시 이유영의 텅 빈 눈을 보며 가슴 속에서 숨 막히는 고통이 퍼졌다. 현우가 이유영의 시력이 거의 없다고 말했을 때는 그저 듣기만 했지만, 이유영이 정말로 보
시간이 지나면서 이유영의 마음속에는 어쩔 수 없이 우울함이 서려 있었다. 이유영은 이런 기분이 싫었다.“오늘은 어때?”한 남자가 그녀의 옆에 나타나 덩굴 의자에 앉았다.이유영은 이미 이 의자의 냄새에 익숙해졌다.익숙함, 그건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처음 여기 왔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었고 의자나 의자에 앉을 때마다 딱딱한 느낌만 들곤 했다.강이한이 이유영을 위해 덩굴 의자를 가져다주었고 그 위에 부드러운 쿠션을 깔아 주었다. 이유영은 덩굴 의자에서 나는 냄새가 좋았다.화려한 소파는 아니지만 그 자리는 이유영에게 편안함을 주었다.그러나 박연준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그녀의 얼굴은 차가워졌다.“아니.”이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그는 매일 아침 마치 일과처럼 그녀에게 묻곤 했지만 여전히 같은 대답만 했다.이유영은 남자의 기운이 조금 더 강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염 선생은 의술이 뛰어난 분이시니 걱정하지 마.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히려 몸 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박연준은 사람을 위로하는 거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유영이 이렇게 오랜 시간 약을 복용했음에도 전혀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마음이 조금 다급해졌다.남자의 말을 듣고 이유영은 깊은숨을 들이쉬며 말했다.“이제 바로 네가 보고 싶었던 거 아니야?”“...”그 말을 들은 박연준의 마음은 점점 더 조여왔다.“유영아, 내가 너한테 무엇을 원하는지 너도 알잖아. 왜 이렇게 날 비꼬는 거야?”맞다, 이유영은 알고 있었다.이유영이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강이한과의 관계가 그렇게 엉망이 되어 버린 사람도 결국 중요한 순간에는 한 편에 서 있었다.그들이 이유영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녀는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우리 이러지 말자, 응?”박연준의 목소리는 씁쓸했다.박연준은 한때 이유영과의 관계가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박연준의 마음은 점점 더 조여오고 있었다.이유영은 차갑게 대답했다.“괴롭다면 떠나도 좋아.”이유영의 분위기와 태도는 박연준의 마음을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한쪽은 날카롭고 잔인했고 다른 한쪽은 두려움 없는 조롱을 던졌다.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소은지가 딱 그랬다.엔데스 명우가 아무리 강압적이고 위압적인 인물이라 해도 소은지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소은지의 눈빛에 비친 두려움 없는 모습이 그의 마음을 더욱 자극했다. 차라리 그녀의 눈을 빼버리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야만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여섯째 도련님!”여섯째 도련님이라니.엔데스 명우는 처음으로 이런 모욕감을 느꼈다. 그전에는 감히 아무도 그러지 못했다.특히 여자들은 그에게 끊임없이 구애했지, 감히 이렇게 대들지 못했다. 소은지는 정말 대단했다.남자는 소은지의 뺨을 찰싹찰싹 때리더니, 돌아서며 말했다.“소은지, 기다리고 있겠어.”“...”“현우가 너를 버리는 날을 기다리고 있을게.”남자의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묻어났다.마치 그 일이 눈앞에서 곧 벌어질 것처럼.남자가 더 말하지 않아도 소은지는 알 수 있었다. 일단 현우가 그녀를 버리면,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엔데스 명우의 무자비한 복수뿐이었다.그들의 앙숙 관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오히려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하지만 소은지는 이 사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마치 두려움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남자가 문까지 가다가 발을 멈추고 살짝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넌 엔데스 가문 남자들을 너무 쉽게 생각해!”심지어 너무 착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그들은 늑대들이었다...마지막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남자들. 소은지는 그들 사이에 갇혀 이제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소은지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엔데스 명우가 떠나고 소은지의 얼굴에는 짙은 어둠만 남아 있었다......파리는 지금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엔데스 현우는 사람을 보내 소은지를 전용기를 태웠다.비행기가 밤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 소은지는 파리
“가고 싶어?”“가면 안 돼?”소은지는 차갑고 비꼬는 표정으로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남자는 빠르게 다가와 그녀의 목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목이 부서질 듯한 압력이 느껴졌다.소은지의 등이 차가운 벽에 밀쳐졌고 집사와 하인들이 다가가려 하자 남자가 고함쳤다.“다 꺼져!”집사와 하인들은 그 자리를 떠날 용기가 나지 않아 얼어붙어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두려운 것이었다.“나가세요.”이 남자가 미친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소은지의 눈빛에는 오히려 두려움이 없었다.집사와 하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머뭇거렸다. 나갈 수도, 안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소은지는 목소리를 높여 다시 말했다.“다들 나가세요!”“...”사모님의 엄한 명령에 마음이 조여왔지만 결국 모두 급히 자리를 떠났다.엔데스 명우와 소은지만 남았을 때, 소은지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증인들은 다 나갔어. 네 마음대로 해.”소은지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았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표정은 예전에 그와 함께 있을 때와 똑같았다. 그가 아무리 고문해도 그녀는 항상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었다.명우가 소은지를 가장 아프게 해도, 소은지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행동했다.마치 그녀의 세계에는 고통도 두려움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소은지에게는 약점이 없었다.한때 엔데스 명우는 이런 여자가 길들여지면 엄청난 성취감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녀의 교만한 뼈 구조마저 너무 미워서 하나하나 뜯어내고 싶을 정도였다.그녀의 오만함은 뼈와 피에서부터 자라 세포로 뻗어 나온 듯했다. 그렇게 끈질기게 자라 아무리 짓밟고 억눌러도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엔데스 명우는 소은지의 두 눈을 직접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그녀의 눈빛이 싫었다.그녀는 항상 무관심하고 두려움 없는 눈빛으로 명우를 바라봤기 때문이다.“왜? 안 때릴 거야?”“그렇게 쉽게 내 손에 죽고 싶어?”“흥!”하긴, 이렇게 쉽게 그녀를 보내줄 순 없었
소은지는 누군가를 한 번도 깊이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송연미의 눈 속에서 마치 그런 깊은 사랑을 보는 것 같았다. 상대를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만큼의 사랑이었다.송연미의 눈에 담긴 감정은 차분하고 억제된 것이었으며 심지어 극단적이고 날카롭게 느껴졌다.모두 그 한 사람만을 위한 감정이었다.처음 송연미를 봤을 때, 엔데스 가문의 여자들 사이에서 송연미는 유난히 고독하고 차가운 아름다움으로 돋보였다.엔데스 가문에 변화가 생기자 송연미는 반산월에서 그녀는 네 번째 사모님과 송씨 가문의 아가씨답지 않은 태도를 보였고 미친 듯이 화를 냈었다.아버지가 사촌 여동생을 양녀로 삼으려는 얘기를 했을 때, 송연미는 절망적이면서도 차분한 모습이었다.이유영에게서 보았던 것, 즉 결혼의 끝을 생각하면 소은지는 감정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하지만 그런 사랑이 송연미에게서 보인 것이다. '그가 좋다면 나는 뭐든지 괜찮다'는 그런 사랑을.그 사랑은 소은지가 감정에 대해 가지고 있던 모든 생각을 뒤엎어 버렸다. 송연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소은지는 이제 송연미가 불쌍하고 애석하게 느껴졌다.엔데스 운빈과 송씨 가문과의 관계를 깨면서까지 현우에게 분노를 표출했고 송연미를 파리에서 떠나게 한 이유도 현우 때문이었다.그리고 지금, 아버지가 사촌을 입양한 사실을 참고 있는 이유도 현우 때문이었다.이런 여자가 감정적으로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 있을까?“난 오늘 밤 떠나.”잠시 후 소은지는 송연미에게 이렇게 말했다."..."송연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눈 속에 기쁨이 스쳤다.“진짜로 떠날 거야?”“응.”소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지는 진심이었다.송연미가 한숨을 돌린 듯했다. 마치 그 전까지의 모든 계획이 소은지에게 걸려 있었던 것처럼.이제 소은지가 입을 열었으니 그들도 다음 단계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소은지는 송연미의 반응을 보며 송연미의 눈 속에서 깊고 날카
대체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큰 압박감을 주었고 그 느낌이 너무나도 무겁고 답답했다.송연미는 단호하게 말했다.“왜냐하면 현우는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이기 때문이야.”그 말은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왜?”송연미의 아버지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이 일은 거의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엔데스 가문의 회장은 현우에게 무언가를 남겼을 거야. 그분이 가장 아끼던 사람은 바로 현우였으니까.”가장 아끼던 사람이 현우라고? 그렇다면 이렇게 복잡한 상황을 남겨둔 것 자체가 이상했다. 그 회장이 정말로 자신의 사람을 아꼈다면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 리가 없었다.“내 아버지가 쥐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파리에서의 권력이었어. 네 좋은 친구인 이유영에게 물어보면, 내 아버지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거야.”송연미도 소은지를 오랫동안 지켜보며 소은지는 강압적인 방식보다는 부드러운 접근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써왔던 여러 방법이 소은지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결국, 이 모든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소은지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일이 너무 복잡하고 방대하기도 했고 현우가 이 사건에 소은지를 전혀 끌어들이지 않아서 이 복잡한 관계를 파악하기 힘들었다.“정씨 가문은 이 일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거야?”소은지는 문득 그렇게 물었다.정씨 가문은 매우 큰 상업 제국이었다. 정국진은 언제나 무사히 지나갔고 그만큼 이 사람이 능숙하다는 뜻일 것이다.정씨 가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송연미는 이렇게 말했다.“만약 이유영 옆에 강이한과 박연준이 없었더라면, 엔데스 가문이 정국진을 그냥 놔뒀을 리가 없어.”하지만 아쉽게도 정씨 가문의 유일한 딸 이유영은 강이한과 박연준과 관계가 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손에 쥐고 있었다.따라서 이유영을 함부로 다룰 수 없다는 것이었다.사실 송연미가 가장 부러워한 사람은 바로 이유영이었다.왜냐하면 이유영이 이 파리에서 보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