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소은지는 엔데스 명우의 말에서 피비린내를 맡았다.그 말에는 그녀를 상대하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예전에 소은지는 이미 이런 상황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보니 잠시 후는 더욱 독할 게 뻔했다...그렇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을지라도 소은지의 눈에는 한 푼의 두려움도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전에 이유영을 놓아달라고 엔데스 명우에게 빌 때, 소은지는 그때... 딱 한 번 약한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었다.설유나가 떠난 후, 엔데스 명우는 덥석 소은지를 안아 들어 위층으로 올라갔다. 소월은 마음속으로 겁이 났지만, 소은지의 건강 상태가 염려되어 얼른 앞으로 두 발짝 뛰어가 말했다.“여섯째 도련님, 의사 선생님께서 은지 아가씨 몸이 많이 안 좋으시다고 하셨습니다. 도련님...”쿵 소리와 함께 계단 위에 놓여있던 화분이 뚝 떨어졌다. 그건 마치 소월에게 하는 경고 같았다.그리고 이에 화들짝 놀란 소월은 하려던 말을 다시 도로 삼켰다.엔데스 명우는 소은지를 카펫에 세게 내동댕이쳤다.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접근했다.소은지는 꼼짝 안 하고 바닥에 누워있었다. 엔데스 명우가 그녀에게 뭘 하든, 소은지는 마치 마음이 이미 죽은 것처럼 그에게 마음대로 좌우지 당하고 있었다. 허리에는 묵직한 힘이 전해왔다.“욱!”소은지는 아픈 나머지 끙끙 소리를 내었다.엔데스 명우에게 접혀온 뒤로 소은지가 매번 감당하는 아픔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졌다.“난 당신이 아픔을 못 느끼는 줄 알았어!”말이 끝나자, 소은지는 엔데스 명우를 무섭게 째려보았다. 그녀의 완강함과 오만함은 아주 적당하게 한데 어우러져서 그녀의 눈 밑에 드러나 있었다.그 뒤로 엔데스 명우는 더욱 세게 했다!그는 마치 그녀가 용서를 빌어야 그만둘 것만 같았다.제일 뜨거운 타이밍에 엔데스 명우가 방심한 틈을 타 소은지는 그의 뺨을 짝하고 때렸다.이것이 바로 두 사람의 관계였다.엔데스 명우는 상대방이 빌도록 독하게 굴었고, 반대로 소은지도 꼭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격식으로 상대방을
정씨 가문에는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났다!정국진이 다시 회사에 나타났고 그 당시 일에 관련된 모든 사람을 당연히... 한 명도 빠짐없이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백산 별장의 거실에서, 이유영은 자기 맞은쪽에 있는 키가 1.85m 되는,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녀와 키가 비슷한 여진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온몸에서 고귀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이틀 동안, 이유영은 여진우를 만나기만 하면 그의 얼굴 곳곳을 샅샅이 들여보곤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드디어 자기랑 똑같이 생긴 여진우는 얼굴을 빼면 자기와 같은 점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뭘 봐?”입을 연 여진우에게서는 타고난 날카로움이 묻어있었다.이유영은 순간 정신이 바짝 들었다.반대편의 여진우를 보며 그녀는 말하려다가 말았다. 여러 번 뜸을 들인 뒤에 이유영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우리 둘 중에서 누가 먼저 태어났을까 생각 중이야.”“나!”이유영이 말을 마치자마자 여진우가 말했다.“너라고?”“응.”“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키를 봐서!”“...”이 말에 이유영은 순간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그동안 키는 줄곧 이유영의 트라우마였다.‘이틀 동안 지냈는데 이 사람한테 남의 고통을 밟기 좋아하는 습관이 있는 걸 왜 이제야 알았지?’“키가 나이랑 뭔 상관이야! 누가 그래?”‘이 사람도 뭐 이딴 논리가 있어.’여진우는 앞에 놓여있는 커피잔을 들어서 아주 우아하게 한 모금 마셨다.“그럼 우린 어떻게 가를 건데!?”필경 임소미는 그때 당시의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이유영은 여진우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일이 이렇게 복잡하게 된 걸 안 후, 이온유의 학교로 찾아가 몰래 꼬맹이의 머리카락을 뽑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과 자신의 유전자 샘플, 여진우의 유전자 샘플을 함께 해외로 택배를 보냈다.이번에는 그 누구의 손도 거치지 않았다.이 배후에 도대체 누가 있는지 이유영은 이번 기회에 단단히 알아보려고 했다.“무슨 생각하는 거야?”여진우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날카
이유영은 뾰로통한 얼굴로 강이한을 만났다.마찬가지로 강이한의 안색도 별로 좋지 않았다.이유영은 지금 그가 결과를 손에 쥐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외숙모가 손을 쓴다고 했으니 지금 그의 손에 들고 있는 결과는 아마 그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설령 강이한이 원하던 결과를 손에 쥐고 있다고 하면 어쩔 건데? 이온유에 이어서 신지수! 하!’“결과가 나왔어?”이유영은 강이한을 보며 물었다.말이 끝나자, 그녀를 바라보는 강이한의 눈빛은 더욱 날카롭게 변했다.‘결과가 정말 나왔나 보네!’“서재욱에게 들킬까 봐 걱정된다면서? 왜 아이를 파리에 데리고 왔어?”날카로운 말투 속에는 질문들로 가득했다.”당신이 그렇게 대놓고 유전자 검사를 한 마당에 수단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면 알아내기 쉬운 죽 먹기잖아!”“...”“그러니까 제발 부탁이야. 검사 결과를 입 밖에 내지 말아 줘!”이유영이 당연한 말을 하자 강이한의 눈빛은 더욱 싸늘해졌다.지금 그는 냉랭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이 순간, 그들 사이에 있는 무언가가 이유영 때문에 철저하게 깨진 것처럼, 이유영은 강이한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쳤다.“그런 눈빛으로 날 보지 마. 난 당신한테 미안한 짓 한 거 없어.”맞는 말이었다. 그들 사이에 있던 모든 것은 다 이유영의 잘못한 게 아니었다!말이 끝나자 강이한 눈 밑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역력했다.“그날 밤은 정말 사고였어?”다시 입을 연 강이한의 말투에는 위험한 기운이 더 진해졌다.이유영은 말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녀는 이 일에 대해 더 이상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실은 말을 많이 하면 말실수를 할 까봐 이유영은 말을 아낀 것이었다,하지만 강이한의 눈에는 그녀가 더 이상 그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 하는 것으로 보였다.강이한은 자리에서 슉 일어서더니 그윽한 눈빛으로 이유영을 한눈 쳐다보았다. 비록 오직 한 눈이었지만 이유영은 그의 눈 속에 깃든 무거운 아픔을 제대로 캐치했다.그 후, 강이한은 아무
일주일 뒤, 이유영은 유전자 검사 센터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 안에서 직원분은 이유영에게 말했다.“진 여사님 안녕하세요.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진시아 씨와 여사님은 전혀 혈연관계가 없으십니다. 그리고 진동욱 씨의 수치는 여사님과 고도로 일치하며 혈족관계가 있습니다!”“...”이 말을 들은 이유영은 굳어져 버렸다!그 후 이유영은 전화에 대고 말했다.“감사합니다.”전에 유전자 검사에 손을 쓴 사람이 있는 것 때문에 이유영은 이번에 비밀리에 유전자 검사 샘플을 택배로 센터로 보내기 전에 특별히 허위 신분을 사용하였다.역시 전에 검사 결과는 누군가가 손을 쓴 것이 분명했다.전화를 끊은 후 이유영은 바로 정국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시간에 정국진은 회사에 있었으며 그동안 로열 글로벌 내부에서는 대폭적인 인사 변동이 있었다.이뿐만 아니라 정국진은 갑자기 회장 자리로 돌아왔으며 갑자기 회사의 일에 관여하기 시작했다!서주의 프로젝트에 대해 정국진이 나서서 정리를 하는 것도 모자라 한 기업에 직격탄을 날려 그 회사를 파산하기 직전에 이르게까지 했다...정국진이 이렇게까지 독하게 손을 쓴 것을 보면 이 기업의 배후 사람이 그 당시 일에 엮인 사람인 것이 분명했다.“유영아.”그토록 기세등등한 정국진은 이유영의 전화를 받은 순간, 그의 말투 속에는 온통 온화함과 자상함이었다.“외삼촌, 얘기 드릴게 한 가지 있어요.”“뭔데?”“제가 회사로 찾아갈게요.”“그래.”전화를 끊은 이유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주방에서 나온 임소미는 이유영이 외출하려는 것을 보고 물었다.“유영아, 어디 가?”“네. 저 회사에 잠깐 다녀오려고요.”“아. 잠시만, 이걸 진우한테 가져다줘.”말을 마친 임소미는 손에 든 도시락통을 이유영에게 건네주었다.이유영은 임소미가 건네준 도시락통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그녀는 원래 임소미에게 이렇게 고생하실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임소미의 행복이 가득 찬 눈을 보고는 입가까지 나온 말들을 다시 꾹 삼켜버
사실 이 2년 동안, 이유영 어깨의 부담이 크다는 것을 정국진도 보아낼 수 있었다. 이유영의 제일 큰 소원은 최대한 시간을 내서 아이의 곁에 있어 주는 것이었다.하지만 정국진의 건강 상태 때문에 철이 들고 마음이 착한 이유영은 이 일을 계속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휴가 때만 퀘벡으로 가서 아이와 함께하곤 하였다.요 며칠 정국진이 계속 회사에 나왔으니, 이유영도 회사에 나올 생각이 없었으며 매일 아이의 곁에 붙어있었다.하지만 지금은 저녁까지 기다릴 수 없는 걸 보니 중대한 일인 것이 분명했다!“이온유의 일이에요.”이 말을 할 때 이유영은 목이 조금 잠겨 있었다.“...”이 말에 정국진은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정국진은 이유영이 전에 유전자 검사를 한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결과에서 이유영과 이온유가 혈족관계가 있다고 나왔다. 지금 와서 보면 그 검사 결과에 누군가가 비밀리에 손을 쓴 것이 분명했다!정국진은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우리 주변에 심란한 일이 한두 개가 아니네. 네가 줄곧 매사에 조심한 것이 옳았네!”아마도 한지음 때문인지 이유영은 줄곧 이온유의 일에 대해서는 매우 무관심한 태도였다.하지만 무관심한 건 맞지만 이번 일에 뒤에서 누군가가 손을 쓴 것이 분명했다! 이유영은 정국진을 보며 말했다.“저는 누가 한 짓인지 알아내고 싶어요!”“누가 있겠어? 서주 쪽에서 벌인 일 빼고는 그럴 사람이 없어!”서주!이 말을 들은 이유영은 표정이 또다시 굳어졌다.틀림없었다...일이 이 지경에 이른 이상 두 사람도 이유영과 강이한의 사이가 오늘 이 상황에까지 이른 것은 다 서주라는 곳과 떼어낼 수 없는 관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분노가 솟구쳐 올랐다!사람에게는 다 성질이 있었다. 특히 이유영은 한지음의 일이 있고 난 뒤, 그녀는 누군가가 뒤에서 몰래 자기를 계산하는 것을 제일 못 견뎠다.하지만 이번 일의 배후 사람은 정말 선을 넘은 게 분명했다.“전 도대체 누가 한 짓인지 알아내야겠어요.”이유영의 뜻은
여진우가 몸을 돌려 회장 사무실로 들어가자, 정국진은 아까 이유영에게 들려있던 도시락통이 여진우의 품에 안겨있는 것을 보았다.“유영이가 방금 네게 뭐라고 했어?”조금 전, 블라인드를 투과해 정국진은 밖에서 일어난 일을 다 본 게 분명했다.이유영이 바로 전에 자신의 귀에 대고 한 말을 떠올리자, 여진우의 안색은 조금 어두워졌다.“당신들은 나를 찾아내고 날 안 믿는 거예요?”이 말을 들은 정국진은 순간 표정이 굳어져 버렸다.그러고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다소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너도 유영이를 이해해 줘야 해. 이 2년 동안, 유영이도 돌아온 후로 부담이 컸어. 주변에 일어난 일들은 다 그 아이가 못 보던 것들이어서 이토록 경비심이 강한 거야. 너도 이해해 줘!”여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파리에 온 후로, 그는 정씨 가문의 모든 사람에 대해서 뒷조사했었다. 그래서 이유영의 상황도... 당연히 잘 알았다.청하시에 있을 때, 대학교를 졸업하고부터 이유영은 줄곧 강이한이 곁에 두고 기르는 카나리아에 불과했다!가정주부인 그녀는 남편에게 배신을 당한 뒤, 아주 힘겹게 자기 노력으로 다시 일어섰다. 그 과정 중의 아픔과 고통은 아마 한 여자에게 있어서, 경험해 본 사람만 알 것이었다.하지만 이유영은 남들보다 더 빠르게 걸었고 더 높이 섰다.특히 이 2년 동안 정국진의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그래서 이유영은 아담한 체구와 작은 어깨로 거의 모든 부담을 다 자기 몸에 껴안았다. 아마도 한밤중이 되어야만 그녀는 낮에 사람들을 마주할 때의 가면을 벗어내고 자기의 귀여운 잠옷으로 갈아입고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약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서주 쪽에는...”정국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안절부절못하며 여진우를 바라보았다.여진우의 미간은 더욱 세게 찌푸려졌다!그리고 여진우는 입을 열었다.“죄송해요!”“...”이 말을 들은 정국진은 가슴이 한데 쪼여 드는 것만 같았다.다음 순간, 여진우는 계속해서 말했다.“아마 저는 유영이를 위해 부담을 나눠
“아니야. 내가 실수로 넘어진 거야.”“거짓말하지 마. 예전에 넌 10센티미터 되는 힐을 신고도 넘어진 적이 없었어.”‘지금에 와서 이렇게 쉽게 넘어진다고?’지난번에 강이한이 이유영에게 보여준 소은지의 사진에서도 소은지는 머리에 다섯 바늘 꿰맸다고 했다.‘그럼, 이번에는?’“유영아.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저 이렇게 날 안아주면 안 돼?!”“은지야!”“내 몸에 상처를 못 본 척해줘. 내게 조금의 체면이라도 남겨줘. 응?”나긋나긋한 소은지의 말투에는 애잔한 기도가 깃들어 있었다.소은지는 이유영이 자기의 안식처가 되었으면 했지만, 또 반대로 이유영이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으면 했다.소은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니, 이유영도 대충 마음속에 결론이 섰다!그리고 소은지가 엔데스 명우의 곁에 있으면서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난 구체적인 일은 알 수 없었지만, 소은지가 온몸으로 엔데스 명우와 투쟁하고 있다는 것을 이유영은 알 수 있었다.“네가 떠날 수 있게 내가 안배해 줄게!”이유영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그녀는 소은지를 더는 엔데스 명우의 손에 놔둘 수 없었다. 이렇게 놔뒀다가 정말 소은지가 죽을까 봐 이유영은 걱정이 되었다!“나 안 떠날 거야!”“은지야!”이유영은 조급한 말투로 말했다.하지만 소은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유영아, 너 그거 알아? 난 모든 것을 잃었어. 전부 다 그 사람이 망가뜨린 거야. 난 그 사람을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이 순간, 소은지의 말투 속에는 온통 증오로 가득했다. 마치 엔데스 명우를 찢어버리고 싶은 그런 증오였다.이유영의 마음속 소은지는 높은 곳에 서 있는 빛나는 여자였다. 그녀에게서 나는 빛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밝히곤 하였다.혼인 속에서 고통을 받은 사람들은 소은지 때문에 구원과 해방을 받을 수 있었다.소은지의 사전에는 증오가 없었으며 그녀는 온전히 제일 공정하고 정직한 방식으로 혼인 속에 갇힌 피해자들을 구해주었다.‘그런 은지가 어떻게 짓밟힘을 당할 수 있지? 은지가 누굴 증오하다
“은지야!”이유영은 가슴이 답답해 났다.“됐어. 괜찮아. 조용히 하고 날 좀 제대로 안아줘. 응?”이유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은지는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그리고 날씬한 허리에 힘을 더 주었다.이유영은 소은지를 안았다...이유영은 그녀가 자존심이 센 걸 알기에 지금 소은지는 엔데스 명우와 있은 일은 자기에게 알려주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결국 이유영은 자기가 어떻게 계화정에서 걸어 나왔는지 모른다. 그녀는 엔데스 명우에게 전화를 걸어 예원산장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햇빛 아래, 트레이닝 복을 입고 골프채를 휘두르는 순간, 엔데스 명우의 행동에서 우러나온 우아함은 사람을 숨이 막히게 했다.처음 엔데스 명우를 만났을 때부터, 이유영은 하나님이 엔데스 명우를 말이 안 될 정도로 편애한다고 생각했다.엔데스 명우는 우아하게 골프채를 옆에 있는 하인에게 건네주고는 이유영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그는 입가에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난 당신이 지금 나랑 그 여자의 일에 끼어들 시간이 없는 줄 알았어요.”엔데스 명우는 이유영이 계화정에서 나온 것을 이미 안 눈치였다.이유영은 입술을 꾹 오므리며 그를 바라보았다.그리고 그녀의 눈 밑에는 쌀쌀한 기운이 맴돌았다.이유영은 앞에 놓인 레몬 물을 한 모금 마셨는데 식감이 별로 좋지 않아서 불쾌해하며 컵을 내려놓았다.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말해봐요. 어떻게 하면 은지를 놓아줄 건가요?!”“결혼 얘기는 이미 깨졌고 당신의 이 작은 몸뚱아리가... 내게 뭘 가져다줄 수 있는데요!?”엔데스 명우는 비꼬며 말했다.이 말을 들은 이유영은 기분이 나빴다.말하려면 제대로 하지 왜 매번 남의 인생을 공격하는 말을 하는지, 정말 정이 뚝 떨어졌다.이유영은 그의 이 점이 유독 싫었다.“당신이 원하는 게 뭔데요?”“그 여자가 당신한테 엄청 중요한가 보네요!”이 말을 하는 엔데스 명우의 말투는 아주 복잡했다.이유영은 입술을 꾹 다문 채 대답하지 않았다.소은지가 그녀의
이유영이 집으로 돌아온 뒤, 임소미는 사람을 시켜 조사를 시작했고 이유영이 강이한 곁에서 결코 평온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지 못했다.며칠 동안 진영숙의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목격한 뒤에야 그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왜 서주로 떠나서 죽음을 가장했는지를.모두 이 여자 때문이었다. 진영숙이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것이다.남편뿐만 아니라 지금 강이한의 행방조차 그녀는 알지 못했다. 여자로서 그 책임은 결코 작지 않았다.임소미는 감정을 가라앉힌 후에야 이유영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진영숙이 사실은 월이를 데려가려 했다는 것을.“며칠 동안 데려가겠다고 했다고요?”“그래서 내가 화가 났던 거야.”진영숙의 행동을 보면 며칠은 말뿐인 핑계였다.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임소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이제 아무것도 없고 오직 손녀만 남았다고? 과연 손녀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 사람인가?’이유영은 말없이 얼굴을 굳혔다.진영숙은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유영아, 이번 일은 그녀에게 연민을 가질 필요 없어.”임소미의 목소리엔 단단한 결심과 냉기가 섞여 있었다.진영숙은 자신이 모든 걸 잃었기 때문에 아이라도 데려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런 상실에 대해 임소미는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알겠어요, 엄마. 제가 처리할게요.”이유영은 어머니를 안심시켰지만 그녀의 목소리 역시 차가웠다.“어떻게 처리할 거니?”‘어떻게 처리할까?’이유영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그녀는 당연히 생각한 방법이 있었다.임소미를 진정시킨 뒤, 이유영은 백산 별장을 나섰고 밖에선 지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가씨.”“풍산 그룹으로 가요.”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마음이 무거웠다. 가능하다면 평생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그곳은 과거가 덕지덕지 붙은 장소였고 이유영은 그것들과 멀어지고 싶었다.“윙윙윙.”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는 박연준이었고 이유영은 망설임
이유영에게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그녀는 임소미의 품에 파고들며 가느다란 팔로 어머니의 허리를 꼭 안았다.“엄마,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녀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다.오래전 소은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강이한은 연애 상대론 괜찮지만 결혼은 다르다고.그때 변호사였던 소은지는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맞지 않는 결혼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강이한과 결혼을 결심했을 때, 소은지는 그녀를 말렸었다. 소은지는 그녀의 결혼을 말렸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결국 소은지의 말은 모두 옳았음이 증명됐다.끝났다고 믿었던 그 관계는 여전히 그녀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었다.그때, 등에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앞으로는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이유영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눈가에 가득 차올랐다. 참으려 해도 눈물이 뺨을 따라 끝없이 흘러내렸다.예전에도 어머니는 그녀를 이렇게 품어주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나면 모두 혼자 견뎌야만 했다.임소미가 감싸안아 주자 이유영의 마음은 다시금 따뜻함으로 물들어갔다.그리고 이 감정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앞으로는 아무도 엄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거예요.”그녀가 말한 '아무도'는 명백히 진영숙을 가리키고 있었다.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사람에게서 다시 이런 고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엄마가 널 지켜줄게. 꼭 지켜줄게.”임소미는 그 말을 반복하듯 속삭였다.오늘 밤, 임소미의 마음속에 일어난 파장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다.진영숙이 막말을 퍼붓고 손까지 쓰는 모습을 보며 이유영이 강씨 가문에서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임소미는 문득 깨달았다.사모님의 우아한 모습은 진영숙에게서 찾아보기 힘들었다.불편한 감정이 들 때마다 손부터 나가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과 살아야
이유영이 돌아오고 그녀는 진영숙과 임소미 사이에서 벌어진 격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 명의 도우미가 진영숙을 붙잡아 끌어내고 있었다.임소미의 얼굴은 창백했고 가슴은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그녀는 순간적으로 분노가 솟구쳤다.임소미는 이유영을 보자마자 재빨리 붙잡고 말했다.“너 먼저 위로 올라가.”“무슨 일이 있었어?”이유영이 물었다.정씨 가문에 돌아온 지 오래된 만큼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우아하고 온화한 사람인 만큼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임소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진영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이유영, 넌 누가 너한테 눈을 기증해 줬는지 모르지? 강이한이 네게 빚을 졌다고 하지만 사실은...”“입 다물어!”진영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소미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유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서 있었고 진영숙은 여전히 무언가 더 말하고 싶어 했지만 더는 이어가지 않았다.그녀는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이유영을 노려보았고 그 눈빛엔 전례 없는 증오가 서려 있었다.예전에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도 진영숙은 이유영을 이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한 번도 따뜻한 시선을 준 적이 없었다.그리고 지금, 용성시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 증오가 더욱 깊어진 듯했다.“유영아, 너 먼저 위로 올라가.”“엄마.”“올라가!”임소미는 이유영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격하게 소리쳤다.임소미가 이런 식으로 이유영에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의 상황이 임소미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이유영은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말문이 막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뒤돌아 안으로 들어갔다.그 순간, 진영숙은 자신을 붙잡고 있던 도우미들의 손을 뿌리치고 이유영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이유영, 강이한은 너에게 빚진 게 없어. 강이한은 오히려 너 때문에 모든 걸 잃었어. 너야말로 가장 잔인한 사람이야. 네 눈조차..
임소미는 혈압이 치솟았고 화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내 말이 틀렸나요?”“틀렸냐고? 제대로 된 일을 한 적은 있고? 당신만 제대로 된 선택을 했더라면 유영이와 강이한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거야.”임소미는 참았던 감정을 폭발시키며 격렬히 외쳤다.진영숙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임소미의 말이 맞았다. 진영숙은 두 사람 관계에서 많은 잘못을 했다.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강이한은 사라졌고 강서희도 여전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남은 건 오직 월이 뿐이었다.오늘 이곳에 와서 월이를 보게 된 순간, 월이를 자신의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자리 잡았다.“사람 불러!”임소미가 크게 외치자 집사들과 도우미들이 급히 달려왔다.“이 여자를 당장 내쫓아!”“당신이 감히 그럴 수 있을까?”“뭐라고?”임소미는 잠시 귀를 의심했다.‘이 여자는 지금 도대체 뭐 하려는 걸까?’조금 전 아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을 보며 아이에게 조금의 정이라도 남아 있는 줄 알았다.하지만 모든 것은 착각에 불과했다.결국 그녀는 후회라는 감정을 모르는 인간이었다.진영숙이 오늘 여기 온 것도, 월이에게 다정하게 굴었던 것도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한 마지막 발악이었다.그녀의 말은 그저 그럴싸한 포장일 뿐 사실은 월이를 자신의 곁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리고 뻔뻔하게도 무례하기까지 했다.진영숙은 임소미의 눈을 응시했다.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따뜻함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매서운 날카로움뿐이었다.그녀는 침착하게 말했다.“우리 아들이 왜 서주를 떠났는지 내가 정말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임소미, 당신들은 정말 단 한치의 양심 가책도 못 느꼈어?”왜 강이한이 서주를 떠났는지 시간대와 상황을 조합해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추측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특히 떠나기 전, 시윤이 건넨 말이 결정적이었다. 이유영이 용성시에서 수술을 받았던 그 시기에 강이한은 서주에
강이한은 그렇게 어둠 속에서 절망의 고통을 몸소 겪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괴로워도 수술을 받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한때 이유영이 어둠 속에서 얼마나 무섭고 무력했는지를 그는 이제서야 조금씩 체감하고 있었다....파리에서 진영숙은 다시 백산 별장을 찾았다. 여전히 강이한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시윤은 강이한이 이정과 신시욱을 데리고 떠났다고 말했다.그 두 사람의 능력을 생각하면 강이한이 스스로 나타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그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진영숙은 어머니로서 절망에 가까운 마음으로 그를 수소문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그리고 알면 알수록 그녀의 마음은 점점 더 불편해졌다.“정말이지, 당신은...”백산 별정까지 찾아온 진영숙의 뻔뻔함에 임소미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굳은 표정으로 응수했다.진영숙은 한때 유능한 여성이었고 그런 그녀에게 감히 저런 얼굴을 하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녀에겐 익숙하지 않은 대우였다.“저는 아무것도 없어요. 저 좀 봐주세요.”그녀의 목소리에는 전에는 없던 고통이 서려 있었다.그렇다. 지금의 진영숙에겐 주변에 기댈 친척도 함께할 가족도 없었다. 그녀의 앞에 있는 건 손녀인 월이 뿐이었다.오늘도 그녀는 월이를 위해 여러 장난감을 준비해 왔지만 임소미는 그 모든 행동이 불쾌하게만 느껴졌다.“당신도 어머니였잖아요. 제 마음이 얼마나 불편한지 알잖아요.”임소미는 차가운 목소리로 잘라 말했다.‘봐준다고? 당신이었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이유영이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 진영숙은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심지어 뱃속의 아이조차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 이토록 헌신적인 할머니 행세를 하니 임소미는 화가 났다.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극으로밖에 안 보였다.진영숙의 눈엔 고통이 어렸다.“저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어요.”임소미의 말에 그녀는 도무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아무리 자존심 강한 진영숙이라 해도 진실을 알게 된 지금, 과거
그녀는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강이한을 떠난 뒤 어둠 속에서의 삶을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고 있었다.신시욱과 이정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침묵에 잠겼다. 그 질문은 그들 사이에서도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기 때문이었다.이유영이 그때 얼마나 오랜 시간을 그렇게 보냈는지, 사실 그들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또렷하게 남아 있는 건 그녀가 깊은 괴로움 속에 잠겨 있었다는 사실뿐이었다.그리고 그녀가 괴로워할수록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의 고독이 얼마나 잔혹한 감정인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그녀는 깊은 절망 속에 빠져 있었다.그리고 지금의 강이한은 어쩌면 그때의 이유영보다 더한 심연 속에서 절망을 겪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벌하고 있었다. 그녀가 겪었던 고통을 똑같이 겪기 위해 같은 어둠 속에 몸을 던졌다.“선생님. 각막 이식 수술 관련 소식이 들어왔습니다.”신시욱은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천시에 머무는 동안, 신시욱과 이정은 한 번도 수술 신청을 멈춘 적이 없었다.그들은 강이한을 잘 알고 있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지만 이유영이 원하지 않는 일이라면 그도 절대 강행하지 않았다.이유영이 시력을 잃었을 때, 그녀는 가족들이 몰래 준비했던 이식 수술조차 그녀는 단호히 거절했었다.그리고 지금의 강이한도 마찬가지였다.오랫동안 기다려 온 기회 앞에서 강이한은 조용히 거절했다.“필요 없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두 사람은 말문이 막혔다.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던 두 사람은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필요 없다고? 그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선생님.”신시욱의 목소리는 긴장감에 더욱 떨려왔다.그 어떤 강인한 남자라고 해도 이 순간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떨림을 억누를 수 없었을 것이다.최근 며칠간 그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두 사람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강이한은 자신을 벌하며 살고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정말 이미 충분했다.‘받아야 할 벌은 다 받았는데 왜 여전히 자신을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어둠 속에서 지낸 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어둠 속에서 사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새들의 지저귐이 더 또렷하게 들리고 사소한 바람 소리 하나에도 감각이 예민해졌다.강이한은 우천시에 있는 주택 마당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우천시에 오늘같이 이렇게 따스한 햇살이 비추던 때가 언제였던가?이정이 조심스레 다가와 담요를 덮어주며 말했다.“햇살은 있어도 아직은 쌀쌀하네요.”말은 없었지만 강이한은 이정의 발걸음 소리와 숨소리로 그가 신시욱이 아님을 알아차렸다.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그때의 이유영도 지금처럼 감각이 예민했을까?“이정.”“네.”“유영이는 이 마당이 어떤 모습인지 전혀 보지 못했겠지?”“네.” 이정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이유영은 이곳에서 몇 개월을 머물렀지만 실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이 마당은 끝내 그녀에게 낯선 곳으로 남게 되었다.지금 그녀를 우천시로 다시 데려온다 한들 스스로 길을 찾아올 수도 없을 것이다.강이한은 낮게 중얼거렸다.“하지만 유영이는 이 마당에 뭐가 있는지는 알고 있었어.”그렇다. 보지 못했어도 그녀는 감각으로 모든 것을 구분했다. 마치 지금의 강이한처럼.이정이 조심스레 물었다.“이럴 가치가 있었습니까?”그가 이곳에 온 이후, 누군가가 처음으로 던진 질문이었다. 그는 말할 수 없이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가치가 있었는지는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야.”그것은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그리고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유영에게 진 빚은 결코 눈 한 쌍으로는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이건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다.예전에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던 이유영의 손짓을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졌다. 지금 자신이 어둠 속에서 겪고 있는 공포는 당시 그녀가 느낀 감정에 닿을 수조차 없었다.점심 식사 시간.“쨍그랑.”강이한이 손을 뻗는 순간, 접시와 그릇이 떨어지며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공기는 순간 얼어붙었다
이유영은 자신의 몸에 강이한과 관련된 어떤 흔적도 남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남은 인생에서도 강이한과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얽히는 일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월이의 일로 인해 그녀는 너무도 깊은 상처를 입었고 강이한을 평생 용서할 수 없었다.그런 사람의 눈을 자신이 기증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그리고 강이한 역시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수술 전에 모든 철수 준비를 마친 것이고 이유영에게는 아무것도 알리지 말라고 지시했다.이미 많은 상처를 준 이후, 아무리 많은 것을 베푼다 해도 이유영의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자신과 이유영 사이에는 어떠한 선택지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래서 과감하게 그녀의 손을 놓은 것이다.‘이렇게 되면 두 사람 사이에 더 이상 빚진 것이 없게 되는 걸까?’하지만 단순히 눈을 기증했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유영아, 왜 강이한에 관해 묻는 거야? 혹시...”소은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결국 그녀는 언제나 이유영 편이었다.특히 수술 전, 마지막으로 강이한을 마주했을 때 그가 남긴 말을 들은 후로 그녀조차도 강이한을 용서할 수 없다고 느꼈다.“나랑 장난해?”소은지의 말에 이유영의 표정은 단숨에 싸늘해졌다.그 차가운 기색을 확인한 소은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렇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래, 그렇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소은지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나는 그냥 권력에 그토록 집착했던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서주를 내려놓았는지 궁금했을 뿐이야.”“음모일지도 모르지.”소은지는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화제를 서둘러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 했다.“...”‘음모’라는 단어에 이유영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소은지는 그녀의 웃음을 보고 또 한 번 안도했다.“ 월이 보러 왔을 때, 그 사람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뭐라고 했는데?”“일어날 일은 언제든지 다시
강이한은 서주에서의 모든 일을 철수하고 사라졌다. 그와 함께하던 사람들도 함께 자취를 감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그저 강이한의 또 다른 속임수일 거라고 생각했다.강이한과 박연준, 두 사람은 누군가를 철저하게 속이는 데에 능숙한 사람들이었다.박연준은 진짜로 서주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었고 진영숙은 파리에서 집요하게 강이한의 행방을 묻고 다녔다. 그걸 보며 이유영은 강이한이 정말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무슨 생각해?”반산월에서 소은지는 이유영의 어두운 얼굴을 보고 조심스레 물었다.이유영은 고개를 들며 말했다.“은지야.”“응?”“어떻게 된 거라고 생각해?”서주의 현 상황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았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이유영은 점점 확신에 가까워졌다.강이한은 정말 그의 사람들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그는 마치 세상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 듯했다.권력을 중시하던 인물이었기에 은둔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강이한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로 조용히 지낼 성격이 아니었다.“뭐라고?”소은지는 이유영의 갑작스러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듯 되물었다.이유영은 소은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강이한이... 정말 사라졌어.”“그래. 그 얘기 예전에도 했었잖아.”이유영이 이제서야 이 사실을 믿게 되었다는 것을 소은지는 알아챌 수 있었다.예전엔 믿지 않았던 이유영의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녀는 강이한의 실종을 인정하고 있었다.강이한과 박연준은 이유영의 마음속에서 그리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연서의 사건이 터진 이후, 그녀는 두 사람을 음모로 가득 찬 사람들로 생각했고 그래서 처음 강이한이 사라졌다고 했을 때도 이유영은 그것을 단순한 음모의 연장이라 여겼다.두 사람은 늘 서로 무관한 척 행동했지만 그 뒤에는 누구도 상상 못 할 거대한 연관성이 있었던 것이다.신지수는 여러 번 전화를 걸어왔다.강이한이 서주를 떠난 후, 신씨 가문도 연쇄적으로 피해를 보았고 그녀는 그 일을 처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