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스 명우는 이유영의 차가운 손을 잡으며 그녀를 자기의 품속으로 끌어당겼다. 이 행동은 마치 그녀를 자신의 품속에 감싸는 것만 같았다.그래서 이 동작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숨을 들이켜게 했다.엔데스 명우에 관한 스캔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공식적인 자리에 사람을 데리고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심지어 지금 도는 소문에 의하면 엔데스 명우는 로열 글로벌의 대표 이유영을 위해 자신의 주변 여자들을 깔끔히 정리했다는 말까지 있었다. 그야말로 왕이 미인을 위해 주변의 여인들을 다 정리한 셈이었다.지금 이유영을 바라보는 그 눈빛들은 어디 증오뿐이겠는가?완전 이유영을 엔데스 명우의 품속에서 끌어내지 못해 안달 난 독기 가득한 눈빛이었다.“봐요. 이렇게 내 곁에 있으니, 당신도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상대가 되었잖아요.”이유영은 여전히 웃는 표정을 지었지만, 말투는 유달리 사나웠다.“저 사람들은 날 잡아먹으려는 거예요.”‘이 남자는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봐?”‘정말 내가 모든 사람의 선망 상대가 되는 걸 바란다고 생각하나 봐?’무도회에서의 춤 타임은 그야말로 친밀하고 애매했다.아담하고 뽀얀 이유영과 엔데스 명우가 무도장 플로어의 한가운데서 춤을 추는 것이 정말 독특한 풍경이었다. 비록 이유영의 외적인 모습은 전혀 고귀하고 패기 넘치는 왕비랑 서로 연상시킬 수 없었지만, 그녀가 엔데스 명우한테 품속에 안긴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졸이게 만들면서도 부럽게 만들었다.“저기 봐요. 저 여인들이 당신을 보는 눈빛이 더욱 뜨거워졌어요!”“나도 알아요.”이유영은 원래 화가 났지만 지금 엔데스 명우가 자기의 귀에 대고 이 말을 하는 것을 들으니 더욱 화가 났다.‘이 남자는 저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나를 그런 눈빛으로 보는지 알기나 한가? 저건 절대로 내가 미워서 잡아먹으려는 눈빛이야.’연회 한 번에 기세가 등등했다.전에 한번 공항 기사가 나서, 전 파리 사람들은 다 엔데스 가문의 여섯째 도련님과 정씨 가문의 후계자 사이에 경사가 날
여자의 일관적인 사유에 따르면, 남자는 일단 한 여인이 자기의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여자에 대해 어떤 감정이 있든지 다 그 여자가 떠나게 가만히 있고만 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만약 진짜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고 이 아이의 출생에 대해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이 아이가 태어나게 두지 않을 것이었다.아무튼, 어떤 상항이든 엔데스 명우가 이 아이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다면 절대로 지금처럼 소은지가 파리를 떠나게 놔두지 않을 것이었다.“여섯째 도련님은 아직 모르고 계십니다!”“그럼, 당신이 영원히 그 사람한테 알려주지 말길 바라요. 필경 당신도 은지가 여섯째 도련님의 아이를 낳는 것을 바라지 않을 거잖아요...”말을 마친 후 이유영은 배천명에게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바로 몸을 돌려 집으로 걸어갔다.하지만 배천명은 오만스러운 이유영의 뒷모습을 보며 미간을 찡긋했다.‘근데 정말이지 이 아담한 여자한테는 보기 드문 굳센 기운이 있네. 만약 여섯째 도련님이 정말 이 여자랑 함께한다면 이 여자가 도련님에게 도움이 많이 될 수도 있겠네.’‘근데...’뭐가 떠올랐는지 배천명의 눈초리에는 짙은 매서운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이유영은 집에 들어가자마자 정국진을 뵈러 들어가기도 전에 루이스의 전화를 받았다. 루이스의 전화는 발신자 표신 제한으로 되어있어서 전화번호도 알 수 없었고 어디서 전화를 걸어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그저 루이스가 이유영에게 알렸다.“이미 안전한 곳에 도착했습니다!”“그래요. 알겠어요. 그녀는 잘 있어요?”그녀는 소은지를 가리켰다.아까 배천명의 말이 떠올라 이유영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조여들었다.소은지는 엄청나게 오기 만만한 사람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소은지가 사랑 때문에 누군가의 아기를 임신했다고 하면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소은지가 엔데스 명우의 곁에서 당한 일들은 다시 한번 이유영의 마음을 세게 졸였다.“아뇨. 이분... 임신하셨습니다.”루이스는 조금 엄숙한 말투로 말했다.“...”이유영은 잠
한편 파리의 고요함은 점점 한 점씩 찢어졌다.여론에서 이유영이 엔데스 명우의 약혼자이며 남자 측에서 곧 고가의 예물로 결혼할 거라고 소문이 팔팔 들끓었을 때, 원래 조금씩 고요함을 잃고 있던 파리에는 또 갑자기 큰일이 한 개 일어났다.로열 글로벌에서 [이유영 대표의 로열 글로벌에서의 일체 직무를 해제한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순식간에 파리를 떠들썩하게 했다.전에 사실 이유영이 정국진 외동딸의 위치를 넘어서 이미 정식으로 로열 글로벌의 미래 후계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엔데스의 여섯째 도련님과 혼인을 맺기 직전인 이 타이밍에 로열 글로벌의 모든 직무를 해제한다고?그럼, 그 말인즉 이유영은 더 이상 로열 글로벌의 후계자가 아니란 말인가?심지어 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든 건, 이 소식이 발표된 지 불과 반날 만에 더욱 중대한 소식이 터져 나왔다는 것이었다. 그게 바로 [이유영은 앞으로 더 이상 정씨 가문과 털끝만큼의 관계가 없으며 이미 정씨 집안에서 나갔다]는 소식이었다.이 소식은 그야말로 핵폭탄 같은 소식이었다.심지어 오전에 나온 소식보다 더 충격적이었다.이건...지금 이유영이 로열 글로벌의 후계자가 아니라는 것뿐만 아니라 이제 정씨 가문에서 쫓겨났다는 말이었다.“그러니까 친 자식이 아닌 건 정말 남이라니까요.”“그러게, 말이에요. 전에 나대던 모습을 생각하니 이제 꼴이 좋네요. 지금은 아예 정씨 가문이랑 아무 사이가 아니니 별것도 아니네요?”“몰래 무슨 일을 범했는지도 몰라요!”“뭐겠어요? 엔데스 여섯째 도련님이랑 이유영이 가당키나 해요? 아무래도 자기 친 자식이어야죠.”“하긴, 걔가 정씨 가문에 들어선 후부터 조카라는 자가 친딸의 모든 풍조를 빼앗아 간 것도 모자라서 지금은 엔데스 가문과도 관계를 맺으니...”지금 파리는 온통 미친 여론 때문에 들썩이고 있었다.지금 사람들은 다들 이유영이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혀를 놀려대고 있었다. 다들 뱀은 뱀이지, 결국 용이 되진 못한다고 말하고 있었다.지금, 이유영도
성진남은 무의식적으로 배천명을 보며 그의 눈에는 그윽한 느낌이 스쳐 지나갔다.배천명도 엔데스 명우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험한 기운을 느껴서 다시 입을 열 때 말투도 따라서 바짝 긴장해졌다.배천명이 입을 열었다.“정 회장님 쪽 사람들도 어느 정도 능력이 있었습니다!”그 말인즉 소은지의 행방을 놓친 게 분명하다는 말이었다.배천명의 말이 끝나자마자 재떨이는 바로 그를 향해 날아왔다.그는 피할 엄두도 없어서 그저 제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날아오는 재떨이는 쿵 하고 그의 이마에 맞았다. 그는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고 피고... 이마를 따라 주르르 흘러내렸다.사무실 안의 분위기는 몇 점 더 싸늘해졌다.하지만 배천명은 여전히 제자리에 선 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배천명, 너 참 죽일 놈이야!”“네! 제가 최대한 빨리 74번을 찾아내겠습니다!”74번이라는 수자에 대해 배천명은 강조하였다. 마치 엔데스 명우에게 소은지가 그의 곁에서 어떤 존재였던지, 또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 지를 일깨워 주는 것만 같았다.성진남의 한데 일그러진 미간은 배천명을 볼 때 다시금 더 엄숙해졌다.엔데스 명우가 입을 열었다.“됐어!”다시 입을 열 때 그의 싸늘하던 말투는 더욱 차가워졌다.“너 먼저 나가 있어.”배천명을 보고 한 말이었다.배천명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무실을 나갔다.사무실에 엔데스 명우와 성진남만 남았을 때, 엔데스 명우는 탁탁 라이터를 켜서 담배에 불을 피우고는 매섭게 한 모금 들이켰다.한참 지나서야 엔데스 명우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지아 보고 알아보라고 해.”지아, 본명 도지아!성진남은 종래로 침착하고 듬직한 남자였다. 하지만 엔데스 명우의 이 말을 들었을 때 차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여태껏 지아한테는 아무렇게나 임무를 배정해 준 적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그녀가 나서서 처리해야 하는 일이면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었다.‘지금 고작 여자 한 명을 찾는데 지아를 시킨다고?’“네.”성진남은 수만 가지 생각을 거친 후에 바로 고개를 끄
엔데스 명우는 전에 로열 글로벌에 갑자기 뜬금없이 후계자가 나타난 것도 아주 의외롭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정국진이 이런 대응도 엔데스 명우가 보기에는 이유영의 꾀가 적지 않게 들어갔다고 생각되었다.이유영의 머리에는 잔꾀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보기에는 무심해 보여도 도리어 상대방에게 주먹을 한 대 날릴 수 있었다.그러니 이번 일도 엔데스 명우가 보기에는 이유영이 또 무슨 방법을 써서 일을 뒤엎을 게 뻔했다.당연히... 이번 일로 이유영을 자신의 여자로 만들지는 못한다고 해도 이번 일을 계기로 이유영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엔데스 명우는 생각했다....파리는 지금 난리법석이었다.그리고 정씨 가문에서는 그럴듯하게 정말 이유영을 집에서 내쫓은 행세를 보였다. 이유영은 정말 공개적으로 백산 별장에서부터 반산월 쪽으로 이사를 갔다.현재 반산월에서 이유영은 한가하게 소파에 누워서 엔데스 명우가 자신이 따로 숨겨둔 약혼녀가 있다는 소식 또는 이유영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입장을 발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에서 외숙모가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여섯째 도련님은 아주 교활한 사람이야. 난 너희가 이렇게 한다고 해도 그 사람이 그렇게 쉽게 관두지 않을까 봐서 걱정이야.”이번 일이 터진 후 외숙모는 당장 퀘벡에서 돌아오려고 했다.하지만 퀘벡 쪽에 일 때문에 도무지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다행히 파리에 정국진이 있어서 외숙모도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근데 지금 파리가 들썩일 정도로 일이 커진 이상 아무리 멀리 퀘벡에 있는 외숙모도 거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정씨 가문...요 몇 년이래, 아무리 정국진이 일을 크게 벌였다고 해도 이 정도로 난리가 난 적이 거의 없었다.지금 눈이 뜨인 셈이었다.“엔데스 명우가 그 당시에 그런 요구를 제기한 것도 원래 정씨 가문의 지원을 받으려고 그런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정씨 가문이라는 배경이 없어진 이상 그 사람도 더 이상 나한테 관심이 없을 거예요.”이유영을 투덜거리며 말했다.
이유영은 손에 든 핸드폰을 꽉 쥐었다.그녀는 기사를 두고도 엔데스 명우가 자기를 향해 도발하는 모습이 상상되었다.“이런... 빌어먹을 남자!”지금의 이유영은 그야말로 화가 나 폭발할 것만 같았다.가슴이 턱턱 막히고 혈압이 오르는 것만 같았다. 분명한 건 지금 그녀는 엔데스 명우에게 한 방 먹은 것이었다.그러기도 한 것이 엔데스 명우의 예전 소문들은 다 만만하지 않았다. 그런 남자를 이유영이 갖고 놀자고 하니 그리 쉬운 일일 수가 없었다.지잉 지잉.전화가 울렸다.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정국진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이유영은 이 진동이 마치 손을 데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지금 이유영은 정말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어떡하지!? 정말 미쳐버리겠네.’우지는 아주 걱정스레 이유영을 바라보았다.이유영은 숨을 깊게 몇 번 들이마셨지만, 여전히 가슴속의 답답한 느낌을 짓누를 수 없었다.그러자 이유영은 입을 열어 자신을 달랬다.“괜찮아. 괜찮아.”그러고는 전화를 받았다!“외삼촌.”“기사는 봤어?”전화 반대편 정국진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네. 봤어요.”이 순간 분위기는 얼어붙는 것을 넘어 정지된 것만 같았다. 이유영은 지금 어이가 없어 미칠 것 같았다.‘이게 다 무슨 일이래?’이유영은 정말 화가 나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외삼촌, 저도 엔데스 명우가 이렇게 드세게 나올 줄 몰랐어요.”‘상황이 이렇게 되었는데도 결혼을 견지하다니?’‘도대체 누굴 화나게 하려는 것이야?’지금 파리 사람들은 엔데스 명우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명찰을 줬을 뿐만 아니라 전 파리 사람들은 다 이유영을 여우라고 욕할 것이었다.정국진의 별로 좋지 않던 말투는 지금 더욱 엄숙해졌다.“너 지금 반산월에 가만히 있어. 어디도 가지 마.”“그럼, 삼촌...”“이번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어떻게 처리해요?”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이상 엔데스 명우더러 결혼을 취소하라고 하는 건 아무리 봐도 불가능해 보였다.지금 엔데스 명우는 자기에게 좋은 이미지를 벌
엔데스 명우는 이런 방식으로 이유영의 모든 계략을 부숴버린 것이었다. 그러고는 강제로 자기랑 이유영을, 그리고 정씨 가문을 엮어 놓았다.저녁 시간이 되자 엔데스 명우가… 왔다!식탁에서 이유영은 마치 상대방을 잡아먹을 기세로 매서운 눈빛으로 엔데스 명우를 쳐다보았다.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왜? 이런 밑지는 장사는 처음이에요?”“…”‘처음!?’당연히 이렇게 엄청나게 밑지는 장사는 처음이었다.이유영이 입을 열기도 전에 엔데스 명우는 계속해서 말했다.“전에 강이한도 참, 어떻게 당신의 이런 서투른 수작에 속아 넘어간 거죠?”‘서투른 기교라고?’맞는 말이긴 했다. 이번 생… 이유영은 깨어난 순간부터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어떻게 하면 강이한이랑 연을 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그래서 그녀는 깨어난 그 순간부터 강이한과 관계를 단절할 생각이었다.이혼을 위해, 그녀는 한 발짝 한 발짝 압박했다!처음에 강이한은 매번 이혼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다가 동의를 한 거였지?’이유영은 이때 그제야 생각이 났다. 이혼에 동의한 건… 이유영이 하도 난리를 피워서였다.그랬다. 이유영이 너무나도 세게 난리를 피웠으며 한 발짝 한 발짝 압박을 가했다. 그녀의 시달림 때문에 강이한은 결국 이성을 잃고 이혼에 동의했다.“뭘 어떻게 했겠어요?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어서 그것에 눈이 멀어서 그랬겠죠.”그리고 강이한의 마음은 줄곧 자기한테 있지 않았다고 이유영은 생각했다.“하!”엔데스 명우는 콧방귀를 뀌었다.이유영은 이런 엔데스 명우가 꼴 보기 싫어서 눈앞에 있는 와인잔을 들어 와인을 몇 모금 마셨다.하지만 가슴속의 그런 답답함은 여전히 내려가지 않았으며 생각할수록 화가 났고 열받았다.“그럼, 이번에는 꼭 기억해요. 사랑과 마음이 없는 남자를 절대 함부로 건드리지 말 것을, 나의 왕비 전하님?”이유영은 와인잔을 든 손이 순간 멈칫했다.엔데스 명우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몇 푼 더 날카로워지더니 말투는 더욱 쌀쌀해졌다.“그래요. 고
이 순간, 아무리 핸드폰을 통해 전자파로 교류하고 있었지만, 엔데스 명우는 상대방 몸의 서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것만 같았다.정국진은 마치 예상하기라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엔데스 명우가 이토록 직접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던 것 같았다.그리고 파리에서 지낸 세월 동안, 정국진은 남을 밑지게 하면 했지, 자신이 밑지는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지금 정국진이 이처럼 불만을 가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제가 안도베스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전화 반대편 정국진의 말투는 아주 날카로웠다.“네. 좋아요.”전화를 끊은 뒤, 차 안의 기운은 여전했다.엔데스 명우의 입가에 걸친 미소는 더욱 진해졌다.“어떻습니까?”성진남은 조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엔데스 명우를 쳐다보았다. 필경 정국진은 사람들이 다 인정하는 늙은 여우였다.이 사람은 종래로 교활했다.엔데스 명우는 성진남의 물음에 대답했다.“아무리 내가 이렇게 큰 소란을 일으킨다고 다고 해도 저 사람은 절대로 쉽게 이유영을 내게 시집보내지 않을 거야.”까놓고 말해서 정국진은 엔데스 가문이라는 똥물과 엮이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게다가 그동안, 엔데스 가문의 많고 많은 사람들이 정국진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당기려고 했지만, 정국진은 여전히 중립 태도를 유지했다.누구도 그 사람 앞에서 뜻대로 되는 사람은 없었다.정국진의 태도는 확실했다. 지금 이유영과 연을 끊었다고 선포한 건 그저 엔데스 명우를 물리 치우기 위해서였다.“후...”엔데스 명우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아주 느긋한 느낌이었다. 마치 오랜만에 이렇게 자신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일을 만난 것처럼.삽시에 엔데스 명우의 머릿속에는 고집이 세고 차가운 두 눈이 번뜩 떠올랐다. 아무리 자신이 그녀를 세게 괴롭혀도 자기를 바라보는 그런 불굴의 두 눈을 가진 여인.정말이지 만약 그녀가 그 일과 상관이 없었더라면 엔데스 명우는 정말 그녀를 꽤 맘에 들어 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녀가 날카로운 두 눈으로 그렇게 재판에서 설선비를 빤
엔데스 명우는 비록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이 소은지에게 철저히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백산 별장 쪽 상황.아침부터 백산 별장은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백산 별장은 이유영의 실종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유영이 편지 한 장만을 남기고 없어졌다. 그런데 그 편지의 글씨는 이유영의 필체가 아니었다.정국진이 편지를 들고 살펴본 뒤 이 글씨는 강이한 것임을 확신했다. 편지 내용은 단 한 문장이었다.“무사한 상태로 데려올 겁니다.”“무사한 상태? 무사한 상태라는 의미를 알고 하는 말인 건가?”분명한 것은, 임소미도 이 편지가 누가 쓴 것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어제 강이한이 여기 나타났고 오늘 아침 이유영이 사라졌다.백산 별장의 모든 보안 시스템을 무사히 뚫고 사람을 데리고 나가다니, 강이한의 능력은 확실히 대단했다.그러나 강이한의 이런 능력은 사람들의 이를 갈게 만들었다.정국진의 눈빛 역시 날카로웠다.“국진 씨, 반드시 유영이를 데려와야 해요. 반드시...”임소미는 이미 감정이 북받쳐 올라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는 상태였다.많은 일이 벌어진 뒤였다.임소미는 이제 강이한이 이유영에게 재앙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그와 함께 있는 한, 무사할 리가 없었다. 이유영이 무사히 돌아오기만 해도 다행일 정도였다.“알겠어.”정국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정국진의 눈에도 살기가 번뜩였다.이유영은 지금 누구보다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심지어 수술을 앞둔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시기에 이유영을 데려가다니.다른 때는 마음대로 날뛰어도 괜찮다 쳐도, 지금은... 여진우의 사람들까지 이유영을 찾으러 나갔다.그 순간, 반산월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집사가 전화를 받은 뒤, 엄중한 표정으로 다가왔다.“사모님, 선생님!”“무슨 일이야?”“반산월 쪽에서...”여기까지 말하고 집사가 잠시 머뭇거렸다.“반산월에 무슨 일이야?”이미 충분히 긴장한 상황에서 반산월 이야기가 나오자, 사람들은 더욱 긴
“소은지, 네가 그 사람과 정말 오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그 사람 마음속에 네 자리는 없어. 언젠가 너는 버려질 거야. 그리고 그때가 되면...”“그때쯤이면, 여섯째 도련님, 네가 수모를 당하는 모습을 실컷 봤겠지. 너의 모든 추한 꼴을 확인했으니 나는 손해 볼 게 없어.”“...”말이 끝나자, 남자의 분위기는 한층 더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소은지는 단순히 다루기 어려운 상대를 넘어 강철 같은 의지를 가진 난공불락의 존재였다.결국, 엔데스 명우는 화를 억누르며 소은지를 뒤로하고 자리를 떠났다.지금의 소은지는 그야말로 어떤 말도 통하지 않는 상태였다. 엔데스 명우가 내놓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제안했음에도 소은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소은지의 이런 태도는 엔데스 명우에게 증오와 답답함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차 안에서.옆자리에 있던 배천명이 어색한 공기를 감지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은지 아가씨 쪽에서 여전히 거절이신 건가요?”‘아가씨’라는 호칭은 엔데스 명우의 측근들 사이에서 소은지를 지칭하는 통상적인 표현이었다.과거에, 누군가 그녀를 ‘일곱째 사모님’이라 불렀다가 엔데스 명우에게 바로 응징당해 입에 피를 흘리며 쫓겨난 일이 있었다.이런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듯, 엔데스 명우는 소은지와 엔데스 현우의 관계를 절대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소은지의 완강한 태도에 관해 이야기하는 배천명의 물음에, 엔데스 명우는 한 손으로 짓눌리듯 아픈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이 여자를 너무 쉽게 본 것 같다.”이 말 속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엔데스 명우가 처음 소은지를 자신의 곁에 두기 위해 어떤 수단을 썼는지는 이제 기억도 나지 않았다.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소은지를 굴복시켰던 걸까?분명한 것은, 소은지가 끝내 그에게 완전히 굴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겉으로는 순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소은지의 눈 속에 담긴 강인한 고집은 언제나 선명했다.수년간 얼마나 많은 여자가 그에게 몰려들었는가? 그들이
언제 조건을 말했다는 건데?도대체 언제였다는 걸까?눈 내리던 날, 설선비의 추락 사건과 자신은 무관하다며 반복적으로 항변했던 그때를 말하는 걸까?‘넌 나를 이렇게 대할 자격이 없어.’라고 했었던 말을 가리키는 걸까?그 모든 말 속에는 소은지가 엔데스 명우에게 내건 조건들이 담겨 있었다.하지만 결과는?결과는 뻔했다.소은지는 똑똑히 보았다. 그가 청하시 사업을 하나씩 무너뜨리며 소은지의 명성을 어떻게 철저히 짓밟았는지.청하시에서는 패배를 모르는 전설적인 변호사 소은지의 진짜 얼굴에 대한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떠들썩했지만, 그 기사를 본 소은지의 마음은 고통과 분노로 폭발 직전이었다.“과거에 나를 파멸로 몰아넣을 때 그토록 신속하고 냉혹하더니, 여섯째 도련님도 감정에 얽매일 때가 있다니 놀랍군.”소은지의 말은 점점 더 얼음처럼 차갑고 날카로워졌다.그랬다.그날, 소은지는 엔데스 명우에게 모든 진실과 자신의 요구를 분명히 전했다.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소은지의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조건을 듣겠다니! 소은지의 삶에는 더 이상 조건이라는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설령 소은지가 내건 모든 조건이 하나하나 충족된다고 해도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그건 소은지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나는 항상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나아가는 사람이야.”소은지는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네가 나한테 주는 보상들이 지금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어?”설령 같은 사회적 위치를 되찾아준다 해도 그것은 소은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자신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이 모든 것을 소은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어떤 보상도 소은지에게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게 지금의 소은지였다.“정말 잘난 척하는군. 스스로 대단하다고 착각하지 마. 사실 너도...”“맞아, 난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해. 하지만 예전에 내 대단함은 절대 착각이 아니었어
이정은 그제야 깨달았다. 강이한이 내리는 모든 결정이 결코 그에게도 쉽지 않았다는 사실을.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선택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적어도 이유영은 끝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이번에 우천으로 간다면, 최소 반년은 걸립니다.”이정은 무거운 목소리로 강이한에게 말했다.반년.평소라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지금처럼 서주가 긴박한 상황에서는 반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이정은 강하게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강이한의 태도를 보니 이미 마음을 굳힌 듯했다.여진우의 말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중요한 것, 그리고 포기.삶에는 지켜야 할 것이 많지만, 때로는 과감히 선택하고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강이한은 이유영에게 너무 많은 것을 빚지고 있었다. 전생에서도, 그리고 이번 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유영이 지금 이 상황에 처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결국 자신 때문이었다.“알겠습니다.”이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강이한의 눈빛은 단호했다. 이 순간, 이정이 강이한에 대한 모든 의문과 흔들림이 경외심으로 바뀌었다.이 남자는 냉혹한 사람이 아니었다.강이한의 삶에는 지키고자 하는 소중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주위 사람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결코 눈을 감고 지나칠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한편.서주의 상황은 점점 더 긴박해지고 있었다. 엔데스 가문 역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엔데스 명우가 서주에 나타났다. 최근 들어 그는 반산월을 드나드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소은지.”남자는 커피잔을 우아하게 들어 올리는 여자를 바라보았다.엔데스 명우의 눈빛은 깊고 차가웠다.하지만 소은지는 그를 비웃듯 바라보며 그의 이가 갈릴 정도로 억눌린 분노를 아무렇지 않게 감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 여자, 곧 죽어?”소은지의 입가에 비웃음이 떠올랐다.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남자의 차가운 기운은
서주가 이런 상황인데도 강이한은 굳이 파리로 찾아갔다.이유영 때문만은 아니었다. 또 다른 이유는 아마도 아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번 사건 이후, 아이의 마음속에서 강이한은 어떤 존재로 비치고 있을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이정은 깊게 숨을 고르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아가씨를 보셨습니까?”소월이...강이한의 머릿속에는 자신을 보자마자 이유영 품으로 달려갔던 작은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월이는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강이한의 가슴은 답답함으로 꽉 찼다.아무리 숨을 고르려 해도 가슴 깊은 곳의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소파에 몸을 기댄 채 담배를 하나 피워 물며 무겁게 말했다.“그 사람... 소식은 들었어?”강이한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그 사람에 관해 묻기 시작하자 이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이한 가까이 다가가서 말했다.“염 선생님은 지금 우천에 머물고 있습니다.”“우천?”“네, 주소는 이미 알아냈습니다. 몇 년간 그곳에서 은거하며 지내고 계셨습니다.”염 선생님은 명망 높은 의학자였다. 그는 70세에 서주 국제병원에서 은퇴한 후 행방을 감추었는데 그의 진료는 항상 예약이 어려웠으며 그의 손을 거친 환자는 어떤 이유로 실명을 겪더라도 결국 시력을 회복했다는 소문이 있었다.강이한은 이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과거 그는 한지음을 데려가려 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염 선생님이 이미 은퇴한 후라, 아무리 애를 써도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그런데 지금, 드디어 찾아내게 되었다. 강이한은 이유영과 함께 전생을 경험했기에, 이유영이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유영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어둠이었다. 수술을 계속 미뤄왔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차라리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것을 선택했다.수술이 실패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무서웠기 때문이다. 만약 수술이 실패한다면, 평생 어둠 속에 갇히게 될 터였다.이유영은 이미 한 번 어둠 속에서 그 모든 고통과 무력함을
남자의 따뜻한 손끝이 이유영의 눈가를 살며시 스쳤다.아주 조심스럽게...이유영은 마치 그 온기가 자신을 태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웠다.여진우가 부드럽게 말했다.“의사 말로는 상황이 심각하대. 이번엔 제발 말 좀 들어줘, 응?”“응.”그동안 가족들은 계속해서 이유영이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유영은 전생에 겪었던 어둠 속에서의 공포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이유영은 다시 과거의 어둠 속으로 빠지기 싫었기에 항상 핑계를 대며 수술을 미뤘다.사실은... 두려움 때문이었다.눈 수술은 본래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실패라도 한다면 이유영에게 남는 것은 끝없는 어둠뿐이었다.그 고통은 전생에 이미 충분히 겪었다.그렇기에 이유영은 다시는 그런 어둠 속에서 단 한 순간도 살고 싶지 않았다.그 어둠은.마치 악마의 동굴과 같았다. 그곳에서는 어떤 출구도 찾을 수 없었다. 그 고통이 얼마나 깊은지, 그것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이었다.“유영아.”“응?”“수술 전까지는 최대한 마음을 가볍게 가져봐. 그러면 수술에도 좋을 거야.”여진우의 말은 단호하고도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그는 마치 곧 기증자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말투였다.여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이유영이 갑자기 그의 손을 붙잡았다.“왜?”여진우가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이유영이 조용히 말했다.“모든 건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기자, 알겠지?”이유영의 목소리는 단호했다.여진우는 잠시 멈칫하며 이유영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유영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정씨 가문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최상의 수술 환경을 준비하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이유영이 지금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이유영은 너무 많은 고난을 겪었다.강이한, 한지음, 이온유... 이들은 모두 이유영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유영은 이런 고
여진우가 돌아왔을 때, 강이한은 여전히 정원 한가운데 서 있었고 떠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여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무심코 집 안쪽을 힐끗 보았다.여진우는 주먹을 가볍게 쥔 채 천천히 강이한에게 걸어갔다. 두 사람이 마주 선 순간, 공기는 팽팽하게 얼어붙었다.“지금 상황에 여기까지 올 여유가 있다니, 놀라운 일이군.”여진우가 말했다.서주의 상황은 어떠한가? 정국진이 발을 뗀 이후 이유영은 서주와 거리를 두었지만 여진우만큼은 그곳의 변화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지금 서주는 강이한과 박연준에게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서주의 혼란 속에서도 강이한은 이곳까지 올 결심을 한 것이다.강이한은 여진우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이유영을 떠올리게 할 만큼 닮아 있었다. 그 얼굴을 보며 강이한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전생에, 강이한은 이유영과 여진우가 남매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사실 조금만 더 주의 깊게 봤더라면 그들의 닮은 점을 쉽게 알아차렸을 것이다.그랬다면 서주에서 여진우를 만났을 때 이유영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바로 알았을지도 모른다.“널 과소평가했어. 이렇게 빠져나올 줄이야!”강이한은 서주를 언급하며 말했다.여진우가 만약 능력이 없었다면, 이번 서주 사태는 여진우에게도 큰 위기가 되었을 것이다.하지만... 여진우는 담담히 말했다.“인생은 많은 선택지로 이루어져 있지만 때로는 중요한 것 중 일부를 포기해야 해!”여진우의 말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강이한은 여진우의 말을 곱씹으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중요한데 포기한다고?여진우는 강이한이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이어갔다.“하지만 너한텐 포기라는 건 없어 보이네.”“...”“예를 들면, 이온유...”이온유. 그렇다.강이한과 이유영 사이의 핵심 갈등은 연서였고 그 문제를 가로막는 가장 큰 존재는 바로 이온유였다.강이한은 여진우를 바라보며 입술을 다물었다.여진우는 더는 말을 덧붙이지 않고 등을 돌려 집 안으로 걸어가며 조용히 말했다.“서주로
“정 선생임...”강이한은 믿기 어렵다는 듯 정국진을 바라보았다.강이한이 정국진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정국진은 냉정하게 말했다.“설마 또 ‘그저 아이일 뿐’이라는 말을 꺼내려는 건 아니겠지?”과거에.강이한은 이유영 앞에서 여러 차례 그저 아이일 뿐이라는 말을 강조해 왔다.그저 아이일 뿐이니까 이유영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는 뜻인가? 월이가 희생해도 괜찮다는 의미였던 걸까?그 순간.정국진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강이한의 가슴에 무거운 돌처럼 내려앉았고,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의 마음을 깊이 찔러 들어왔다.누구나 이성적으로는 옳고 그름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일이 되면 감정은 편애를 피할 수 없다.그리고 강이한의 편애는 분명히 한지음과 한지음의 딸에게 쏠려 있었다.그는 당시 상황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자기 입장에서만 내린 판단이었을 뿐이었다. 이유영과 아이에게는 그의 모든 행동이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강이한, 이번이 마지막이다.”정국진은 강경하고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장 여기서 떠나!”그의 말투에는 명백한 경고와 위협이 담겨 있었다.정국진은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강이한은 그 자리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정국진이 이렇게 많은 말을 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긴 대화 속에서 드러난 결론은 단 하나였다.강이한에게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이유영과 월이가 그들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처음부터 끝까지.한지음도, 한지음의 딸도 그저 강이한에게 중요한 존재일 뿐이었다.월이와 이유영은 어떤 의무도 없었고 받아들일 이유도 없었다.하지만 강이한은?그는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 강이한과 이유영의 관계는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백산 별장.임소미는 아이를 안고 집 안을 천천히 걸으며 달래고 있었다. 아이의 감정은 이제서야 조금씩 진정되고 있었다.월이는 강이한의 딸이었다. 그러나 그를 본
강이한은 눈썹을 찌푸린 채, 여전히 이유영과 임소미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만 쳐다봐!”정국진이 말했다.정국진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훨씬 날카롭고 단호했다. 외조카와 친딸의 무게는 결코 같을 수 없었다.많은 일이 있었다. 비록 이유영이 서주에서 돌아온 후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더라도 정국진은 여진우를 통해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다.그렇기에 지금 정국진의 태도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강이한은 정국진을 쳐다보며 조용히 말했다.“방금...”“네가 본 대로다. 유영이의 시력은 급격히 악화했고 의사 말로는 수술하지 않으면 시력을 잃는 건 시간문제라고 하더군.”정국진의 차가운 말이 강이한을 가로막았다.강이한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숨 막히는 답답함에 사로잡혔다.이유영이...“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유영이 엄마 말로는, 박연준이 유영이를 알프산으로 데려갔다더군.”알프산? 강이한의 표정이 굳었다.“...”박연준이 이유영을 알프산으로 데려갔다는 사실을 들은 순간, 강이한의 마음은 불안과 긴장으로 가득했었다.이유영의 몸 상태로는 그런 추운 지역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예상하지 못했다. 문제가 단순히 추위뿐만 아니라 두 눈까지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눈부신 설원과 강한 햇빛이 유영이의 눈에 치명적인 자극과 손상을 남겼어. 지금 시력이 이렇게 된 것도 그 탓이지.”정국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강이한은 이미 느끼고 있던 가슴속 고통이 정국진의 이 말로 인해 더욱 심해졌다.결국... 박연준이 이유영을 알프산으로 데려간 탓에 그녀의 시력이 이렇게 빠르게 악화한 것인가?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강이한은 마치 폭풍우가 휘몰아치듯 혼란스러웠다. 얼어붙은 광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정국진은 강이한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다시 찾아오지 마라.”기회는 이미 넘칠 만큼 주어졌다. 강이한은 그 소중한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말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