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중요한 건 이 단어만으로 이 사람을 묘사하기엔 어림도 없었다.정말 사람을 쇼킹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이유영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당신 참 염치도 없어!”이유영은 또박또박 이를 악물며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특히 엔데스 명우가 이런 장난스러우면서도 진지한 말투로 말투를 말하는 것을 보자, 이유영도 그가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이 사람... 정말 진심이네.’이때 이유영은 갑자기 무언가가 떠올랐다. 예전에 엔데스 가문의 다섯째 도련님이 정국진에게 정유라와의 혼인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그 당시에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외삼촌은 대답하지 않았다.사실 엔데스 가문의 매 사람은 다 자기의 영역에서 아주 훌륭했다.이런 훌륭함에는 또 잠재적인 것들이 따라있었다. 어떤 건... 차마 견딜 수 없는 그런 것들이었다.정유라는 외삼촌의 하나뿐인 자식이었다. 그래서 외삼촌은 정유라 일생일대의 혼사 결정에 있어서는 가문의 이익은 둘째 치고 그녀의 행복을 무엇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사실 로열 글로벌이 파리에서 그런 위치에 있는 이상, 강대한 집안과 혼인을 맺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하지만 엔데스 가문의 이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엔데스 가문이 비록 강성하긴 하지만 이런 강성한 귀족 가문을 결국 누가 상속하게 될 것인가? 그렇게 되면 상속자는 당연히 제일 우수한 자격들을 구비해야 했다.어느 방면이든 제일 좋아야 했다.정씨 가문, 풍산 그룹, 엔데스 가문 이 3대 세력 중에서 혼인을 맺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이 엔데스 명우가 감히 조건을 제기한다고 하는 것이었다.이 엔데스 가문의 뒤에는 아직 유능한 사람이 많았다!“왜요? 싫어요?”“당신은 나를 투쟁의 마당에 밀어 넣으려는 건가요?”이유영은 아니꼽게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았다.지금 이유영이 정말로 엔데스 명우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그녀는 평생 파리에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건... 불가능했다.아니면 일단 파리에 돌아간다고 해도 과연 엔
이유영도 자기 키가 자신의 치명적인 단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키 문제 때문에 그녀는 예전에 많은 직장 기회를 잃었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인이 자신의 키를 공격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었다.이유영은 아주 매섭게 엔데스 명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그래서 당신은 우리가 같이 서 있는 게 어울린다고 생각해요?”어울리는가?엔데스 명우는 눈앞의 키가 지극히 작고 아담한 여인을 보면서 그녀에게서는 왕비의 위풍을 전혀 보아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자기처럼 이렇게 키가 크고 웅장한 남자 옆에 이렇게 아담한 여자 서 있는 건 너무 심각한 대비가 되었다.하지만 그녀는...“당신이 정씨 가문 사람이니 어쩔 수 없어요. 외적으로 어울리지 않아도 괜찮아요. 신분만 어울리면 되죠!”짝!바로 다음 순간, 참다못해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이유영은 자기를 짓누르고 있는 남자의 손을 내리쳤다. 엔데스 명우가 그녀를 풀어주자, 다시 자유를 획득한 그녀는 얼른 그의 품에서 3미터 떨어진 곳으로 도망쳤다.“내 생각이 맞는다면 외삼촌은 당신의 모든 조건을 다 들어줬을 거예요. 하지만, 이 조건만 빼고, 내 말이 맞죠?”엔데스 명우는 말문이 막혔다.“...”이 말을 들은 엔데스 명우는 순식간에 눈빛의 장난기를 거두었다.그것을 대신한 건 한없는 차가움이었다.“고추도 매운 고추가 맵다는 말이 일리가 있네.”이유영은 아주 총명했다.그러니 이 2년 동안 로열 글로벌을 그렇게 잘 관리하면서 정국진이 다른 작업을 할 수 있게 했던 것이었다.보기엔 무해한 아담한 여인이 바로 정국진의 제일 큰 조력자였다.이유영은 지금 엔데스 명우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다 자기를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그는 이유영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계속해서 물었다.“그럼, 당신 본인의 답안은 뭔데요?”이유영의 답안?외삼촌이 생각할 수 있는 건 이유영 쪽에서도 당연히 생각할 수 있었다.아무리 여기에 있는 보름 동안, 엔데스 명우가 모든 외부 소식을 다 차단해서 이유영이
하지만 이유영은 엔데스 명우가 자기를 이곳에 데려온 후 족히 보름 동안이나 만나주지 않은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 이유영이 생각해 두었던 모든 협상은 다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었다.지금에 와서 보면 이유영의 그 협상 조건들은 엔데스 명우에게 있어서... 완전 보잘것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유영을 만나주지조차 않았다.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필요한 건 어쩌면... 처음부터 이유영의 뒷배경인 정씨 가문이었을지도 모른다.한참이 지나, 두 사람의 대치 상황에 현장은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라도 들릴 만큼 조용했다.갑자기, 엔데스 명우는 이유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이유영은 무의식적으로 피했지만, 엔데스 명우는 세게 그녀의 뒤통수를 잡았다.그러고는 아주 압박으로 그녀를 가까이 끌어당겼다...따뜻한 숨결, 차가운 기운이 이유영의 얼굴에 쏟아져 내렸다. 원래 날카롭던 엔데스 명우의 눈빛은 다시 변환되었다.부드러우면서도 다가가기 위험하게 느껴졌다.그러더니 엔데스 명우가 입을 열었다.“이 대표, 혹시 당신보고 길들이기 어려운 여우라고 한 사람이 있었나요?”‘여우?’이건 이유영을 여우처럼 교활하다고 하는 것이었다!이유영은 세게 엔데스 명우를 밀쳐내려 했지만, 그는 전혀 꼼짝하지 않았다.다음 순간, 엔데스 명우는 이유영의 귀에 대고 이를 갈며 말했다.“당신의 조건, 들어 줄게요!”말을 마치고는 바로 이유영을 냅다 밀쳐냈다.이유영은 너무 갑작스럽게 밀쳐진 것에 속으로는 엔데스 명우를 미친놈이라고 욕했다.‘하늘은 참 괜히 이 사람에게 이렇게 완벽한 얼굴을 줬어. 성격은 왜 이렇게까지 악랄한지.’엔데스 명우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지금 눈 밑에서 먼저 소은지를 이 사람의 마수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엔데스 명우의 날카로운 눈은 마치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만 같았다.엔데스 명우가 입을 열었다.“이유영, 나한테 괜한 수작 부릴 생각은 하지 말아요? 응?”수작!이 단어는 그토록 위험했다.사실 말하지 않아도 이유영
사인을 마친 이유영은 서류를 들어 엔데스 명우의 얼굴에다 세게 던졌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 일제히 숨을 한번 들이쉬었다.그들은 키가 이렇게 작고 아담한 여자가 성질이 이렇게나 큰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엔데스 명우는 줄곧 여자들이 우러러보는 남자였다.근데 갑자기 이유영에게 이런 대우를 받으니,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확 파래졌다,이유영은 전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지금이면 은지를 만날 수 있게 할 수 있어요?”“내일, 사람을 보내서 당신이랑 그 여자를 만나게 할게요.”말을 마친 엔데스 명우는 일어서며 결혼 협의서를 거두었다.그러고는 서류를 같이 온 변호사에게 넘겨주었다.변호사는 아주 공경하게 서류를 받아서 잘 챙겼다.엔데스 명우는 다시 한번 젠틀맨처럼 매너 있게 이유영에게 손을 내밀었다.“가시죠. 나의 왕비 전하!?”왕비?그제야 이유영은 엔데스 가문이 파리에서 역사가 유구한 왕족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만약 엔데스 명우가 정말 엔데스 가문을 상속한다면 그의 아내인 사람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왕비라는 존칭을 들을 게 뻔했다.세월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는데 파리에 아직도 왕족이 남아있는 것을 봐서라도 엔데스 가문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런 게 아니면 이렇게 긴 역사 동안 여전히 왕족의 자리를 차지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었다.“정씨 가문과 혼인을 맺으면 당신이 꼭 엔데스 가문을 물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자신이 있어요?”“이미 적은 노력으로 조금 성과를 이뤘으니, 당연히 내 손바닥 안이죠. 어때요? 나의 왕비 전하?”왕비 전하라는 호칭에 대해 이유영은 두피까지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왜요? 여기가 마음에 들어서 떠나기 싫어요?”이유영은 이를 악물며 자신의 작은 손을 그의 따뜻한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온몸의 기운은 마치 엔데스 명우를 먹어 치울 것만 같았다....비행기 안에서, 엔데스 명우는 손에 든 와인잔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는...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이유영은 고개를 돌려 창밖
“걔는 우리 엔데스 가문의 일곱째에요.”“...”“나랑 이복동생이에요.”‘이복동생.’‘동생? 전설로만 듣던... 그 엔데스 가문에서 제일 신비로운 일곱째 도련님? 단 한 번도 공식적인 자리에 나타난 적이 없다는 그 일곱째 도련님?’이유영의 머릿속에는 마치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것처럼 좀처럼 반응할 수 없었다.그리고 이유영은 당연히 자기의 주변에 이렇게 뛰어난 능력자들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지현우는 능력이 뛰어났다. 무슨 일이든 그에게 맡기기만 하면 다 일사불란하게 정리해 내서 결과를 제출해 내는 그런 사람이었다.‘근데 그런 지현우가 소문으로만 듣던 전설의 일곱째 도련님이라니?’‘그럼, 지현우가 갑자기 내 곁을 떠난 건 엔데스 가문이 지금 상속자를 두고 제일 긴장한 시기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이유영은 조금 숨이 막혔다.엔데스 명우가 그녀에게 가져다준 이 소식은 그녀를 깜짝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녀의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 분명했다.“일곱째 도련님이라고요?”“그래요.”“...”‘일곱째 도련님, 지현우... 걔가 일곱째 도련님이라니.’하지만 엔데스 명우의 소문과는 달리, 일곱째 도련님의 실제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주 신비스럽고 정해진 것이 없었다.소문에는 좋은 것도 있었고 나쁜 것도 있었지만, 여섯째 도련님처럼 극단적인 소문들은 없었다.이렇게 신비스러운 남자가 이유영의 곁에서 그렇게나 오랫동안 비서로 있었다니!?이 점만 해도 이유영은 충분히 충격적이었고 믿어지지 않았다.지금 이유영의 마음속 기분이 어떤지, 도대체 어느 정도로 충격적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어쨌든 너무나도 말이 안 되었다......파리 공항으로 돌아오자, 루이스와 최익준 모두 있었다. 최익준... 줄곧 외삼촌의 곁을 지키는 사람이었다.엔데스 명우는 내내 이유영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들의 등장은 엔데스 명우의 완벽한 비주얼 때문에 적지 않은 이목을 끌었다.많은 사람들은 핸드폰을 꺼내 들어 촬영
돌아서서 점점 멀어져 가는 이유영의 강인한 뒷모습을 보면서, 그 거리감은 마치 평생의 미움을 갖고 있는 것만 같았다.아무리 수천 가지 방법을 생각한다고 해도 반드시 멀어질 것 같은 거리감이었다.이렇게 생을 건너서까지 가져다주는 미움 때문에 강이한은 온몸이 굳은 채, 제자리에 서 있으며 그의 눈 밑에는 속상함이 스쳐 지나갔다.그의 유영, 정말로 그와 같이... 전생에서 넘어온 걸까?그런 거라면 강이한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녀의 몸에 흐르는 피에 담긴 고통을 지울 수 있을까?이시욱은 어두운 안색으로 이유영이 떠나는 방향을 보고는 강이한에게 다가가서 엄숙한 말투로 말했다.“도련님, 그분께서 이미 직접 3번이나 전화를 해왔습니다. 도련님더러 얼른 서주 쪽으로 오시라고 하십니다!”그분...!서주라는 곳은 강이한의 세상에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이다. 이유영이 모를 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인 진영숙도 모르는 곳이었다.서주, 강이한의 배후에서 제일 강대하고 깊숙한 존재인 곳이었다.그의... 아버지!강씨 가문 사람들 전부 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사실은 계속 제일 어두운 곳에서 살아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하지만 강씨 가문은 대대로 한 사람이 그 중대한 임무를 짊어져야 했다. 그리고 이 일맥의 남자 후손은 강이한 뿐이었다.이번에 그쪽에서 이미 3번이나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그러니 강이한이 서주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그런데 이 보름 동안, 줄곧 이유영의 소식이 없어서 강이한도 떠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지금 이유영이 돌아왔으니, 앞으로 파리에는 더 큰 문제들만 일어날 게 분명했다.강이한은... 이유영이 걱정되었다.“그분의 기분을 상하게 하시면 사모님은 더욱 많은 번거로움에 빠질 겁니다.”이시욱은 심각한 말투로 강이한을 일깨웠다.그리고 이 일깨움 덕분에 강이한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렇지. 그분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하고도 남지.’‘만약 그분이 내가 이유영 때문에 발목이 잡혀 계속 파리에 있는 것을 안
“아니긴 뭐가 아니야?”이유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국진은 아주 엄숙하게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이유영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보름 전 통화 할 때부터 이유영은 외삼촌이 화가 단단히 났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 보름 동안 엔데스 명우는 그녀의 핸드폰을 몰수해 갔다.비록 보름 동안 이유영은 아주 편안하게 지냈지만, 시간은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받아야 할 벌은 결국 여전히 받게 되어 있었다!보름 동안이나 화가 풀리지 않은 것을 봐서라도 외삼촌이 정말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말해봐. 너 그놈의 어떤 요구를 들어줬어?”정국진은 퉁명스럽게 물었다.사실 정국진도 마음속으로 대충 이유영이 엔데스 명우의 어떤 조건을 들어줘서 그녀를 파리로 돌려보냈는지 짐작이 갔다.하지만 가장으로서 외삼촌은 그래도 이유영이 조금 더 총명하게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해 내기를 바랐다. 비록 정국진은... 자기 자신도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했지만, 엔데스 가문과 엮이는 것에 비하면 다른 건 뭐든 다 좋다고 생각했다.이유영이 입을 열고 물었다.“외삼촌은 이미 다 알고 있잖아요?”“이유영!”이유영의 말이 끝나자 정국진은 화가 잔뜩 났다.그 순간 정국진이 아직 정정해서 그렇지 만약 진짜 육칠십 살 되는 늙은이였다면 아마 화가 나서 혈압이 쭉 올랐을 것이다.나이가 어린 덕에 정국진은 그나마 그런 비극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정국진은 자기 가슴이 끊임없이 두근대고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이 느껴졌다.“외삼촌 화내지 말아요. 네? 이번 일은 나도 방법이 없었어요.”“방법이 없다고 해도 그렇지. 너 엔데스 여섯째 도련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 몰라? 그 사람을 감히 건드리다 못해 엮이기까지 하냐!”“...”이유영도 이번 일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이유영도 정말 달리 방법이 없었다.아무것도 부족한 게 없는 사람인 데다가 그의 유일한 약점은 죽은 사람이었다. 이유영은 그런 사람과 맞바꿀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었다.
정국진은 차갑게 이유영을 힐끔 보고는 물었다.“너 그게 무슨 뜻이야?”“외삼촌이 저랑 연을 끊고 제가 로열 글로벌에서 나가기만 하면 그 사람도 자동으로 자와의 혼인을 취소할 거예요.”그랬다. 사인을 하는 순간의 이유영은 마치 핍박을 당한 것처럼 허둥대 보였지만 사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이미 수천만 가지 궁리했으며 심지어 이미 퇴로까지 생각해 두었다.엔데스 명우는 그저 정씨 가문이라는 강대한 뒷받침이 필요했다.그건 엔데스의 여섯째 도련님뿐만이 아니라 다섯째 도련님, 넷째 도련님들도 다 원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정국진이 화가 난 원인이었다.왜냐하면 그들이 원하는 건 오직 정씨 가문이었다.이유영이라는 여자가 아니라...정국진은 감정이 없는 정약 혼인을 하도 많이 보았다. 비록 강이한과 이유영은 서로 사랑해서 함께 하게 되었지만, 그들의 혼인도 역시 그토록 힘들었다.그런 것을 뻔히 알고 있는 정국진은 도무지 이유영이 이익을 위해 두 번째 결혼하게 허락할 수 없었다.이것이 바로 아무리 이유영이 엔데스 명우의 손에 있다고 해도 정국진이 오랫동안 엔데스 명우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이유였다.“너 이 바보야.”“전 그저 외삼촌의 조카이지 딸아 아니잖아요. 제가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죠. 안 그래요!?”정국진은 이유영의 말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그윽한 눈빛으로 이유영을 한 눈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었다.“그래. 네 말도 일리가 있어.”“제가 내일 은지랑 만나고 은지를 파리에서 내보낸 후에 외삼촌이 발표하시죠?”‘유영이를 정씨 가문에서 내쫓는다고 발표하라고?’‘유영이더러 로열 글로벌에서 나가라고 하라고?’정말이지 사람은... 높은 자리에 있으면 있을수록 귀찮은 일이 많았다. 지금 정국진은 이유영을 그 자리에 앉힌 걸 조금 후회하고 있었다.전에는 박연준, 지금은... 엔데스 가문....한편, 같은 시각의 다른 섬 위의 별장에서, 소은지는 어둠 속에서 손에 든 서류를 보면서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엔데스
이유영은 그 말을 듣고 온몸이 굳어버렸다.어머니가 자신의 현재 상태를 알게 된다면, 틀림없이 크게 걱정하실 것이 분명했다.마음속에서 요동치던 불안과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간절함은 이 순간 잠잠해지며 차분함이 찾아왔다.“아가씨.”“우지 씨, 물 좀 가져다주세요.”이유영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네, 알겠습니다.”우지는 서둘러 나갔다가 금방 물을 들고 돌아왔다.강이한은 밖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방 안이 차분해진 모습을 보며 강이한의 눈에 안도감이 비쳤다.역시, 익숙한 사람들이 곁에 있으니, 상황이 달랐다.지금 이유영은 강이한의 말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고 그것이 강이한을 가장 답답하게 했다.하지만 지금은 우지와 우현이 함께 있으니, 이유영도 차분해진 것 같았다.비행기가 유천에 착륙했다.그 순간, 마치 공기까지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파리와 서주의 날씨는 좋지 않은 날이 많았지만 유천은 달랐다.사람들 사이에서 ‘살기 좋은 곳’으로 불리며 은퇴한 사람들이 여생을 즐기기 위해 즐겨 찾는 곳이었다.독특한 지역 문화를 담은 공항의 건축 양식을 바라보며 강이한은 그곳에 한눈에 반한 듯했다.“나 혼자 갈 수 있어.”이유영은 강이한의 손길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그가 느끼는 편안함을 감지하고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그는 이곳을 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이유영도 과거 유천의 특별한 매력을 들었을 때 한 번쯤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이유영과 강이한은 늘 긴박한 환경 속에서 지내왔기에 이렇게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오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유영아, 조금만 얌전히 있어. 여긴 낯선 곳이니 내 옆에 있는 게 안전해.”강이한은 이유영이 어둠에 얼마나 민감한지 알고 있었다.하지만 아무리 민감해도 지금 있는 이곳은 완전히 낯선 환경이었다.그가 기억하는 지난 생애에서 이유영이 시력을 잃은 뒤 거의 홍문동을 벗어나지 않았다.그곳에서는 기본적인 생활은 어느 정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
한때 이유영은 강이한과의 갈등이나 의견 차이가 있을 때마다 둘 사이의 아름다웠던 기억들에 기대어 버텼다.이유영은 자신과 강이한의 만남은 아름답고 추억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 믿었던 적이 있었다.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아무리 아름다웠던 기억도 이유영의 마음을 지탱해 주지 못했다.결국 이유영은 그를 완전히 놓아버렸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를 일찌감치 떠나온 것을.만약 아직도 미련을 붙잡고 있었다면, 가장 소중했던 추억들이 거대한 음모 속에서 무너져 내린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유영은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사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지금도 이유영의 마음은 여전히 편치 않았다.“다른 건 모두 네 뜻대로 해도 돼. 하지만 유천에 가는 건 반드시 내 말대로 해!”강이한의 목소리는 한층 더 단호해졌다.이유영은 강이한의 말에 가슴이 내려앉았다.강이한은 이유영을 조심스레 침대 위로 눕혔다. 지금 강이한에게서 풍겨오는 기운은 너무나 강압적이었다. 이유영은 그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그리고 그 감각은...이유영의 마음을 한없이 불안하게 했다.이유영은 깨달았다. 마치 자신이 지난 생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 시절, 이유영은 너무 오랫동안 어둠 속에 머물며 어둠에 대한 감각이 지나치게 예민해져 있었다.그리고 그 기억들이 너무도 생생하게 이유영의 머릿속으로 몰려들었다.강이한이 방을 나갔다.잠시 후, 우지와 우현이 방으로 들어왔다.“아가씨.”우지가 이유영의 곁으로 다가왔다.우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이유영은 온몸이 떨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우지 씨, 어떻게 여기 있는 거예요?”“아가씨… 혹시, 눈이...”우지는 이유영의 두 눈을 보고 시선이 자신을 향할 때조차 초점 없이 공허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순간, 우지의 가슴은 덜컥 내려앉았다.이유영은 예상하지 못했다. 강이한이 이유영을 여기로 데려온 것도 모자라 반산월에서 우지까지 데려올 줄은.“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강이한은 이유영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이유영은 이 말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미칠 듯 서글펐고 동시에 눈물까지 흘러내릴 만큼 절망적이었다.“유영아...”강이한은 이유영의 웃음에 가슴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두 사람 사이가 이렇게 돼서는 안 됐다. 왜 꼭 이런 지경까지 와야만 했을까? 그리고 이렇게까지 오게 된 게, 과연 누구 탓인가?이유영은 광기가 폭발하듯 웃음을 터뜨리더니 어느 순간 갑자기 평온을 되찾았다.하지만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이유영의 몸은 여전히 떨고 있었다. 강이한은 그 떨림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이유영이 입을 열었다.“강이한, 네 인생에서 나는 언제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것 같아.”한때 함께했던 시간, 그리고 전생의 기억까지 모두 떠올랐다...사람들은 말했다. 이유영은 복 받은 여자라고. 강이한에게 아낌없이 사랑받으며, 그저 강씨 가문의 작은 부인으로 편안히 지내기만 하면 되는 인생이라고.강이한과 함께하는 동안, 자신이 스스로 결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이유영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유영이 무엇을 하든, 무엇을 선택하든, 항상 강이한이 결정했고 이유영은 강이한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이유영이 혼자 선택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이제 와서 그 시절을 떠올리며 말했을 때, 강이한 역시 깨달았다. 자신이 이유영의 삶에서 어떤 존재로 자리 잡았는지를.그는 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남성 중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다.그래서 무엇이든 그의 결정이 절대적이었다.이유영의 삶을 세세히 돌보는 데도 강이한의 성격이 드러났다.작은 것 하나까지 강이한의 뜻에 따라야 했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이유영은 그에게 철없는 아이처럼 보이게 되었다.“유영아...”과거, 모두 이유영을 위한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우리는 이미 이혼했어, 알아?”“...”이유영이 계속해서 강이한에게 상기시켰던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 이유영이 다시금 이혼 이야기를 꺼냈
우천시?그곳은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유영이 예전에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이유영이 언젠가 강이한에게 시간이 나면 꼭 데려가 달라고 했던 곳이었다.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잠시 머물러 그곳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정서를 느껴보고 싶다던 곳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가게 될 줄은 몰랐다.“날... 집으로 보내줘!”단호한 목소리의 이유영에게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이유영은 우천에 가고 싶지 않았다. 이유영이 지금 원하는 것은 그저 이 남자에게서 멀리 떨어지는 것뿐이었다. 특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어둠 속에서 무력감에 휩싸인 채 그와 함께 있는 건 더더욱 견딜 수 없었다.이유영은 지금 원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강이한의 곁에 있고 싶지는 않았다. 단 한 순간도.“조금만 더 견뎌.”강이한은 이유영 옆으로 다가가 얼음처럼 차가운 이유영의 손을 잡았다.이유영은 강이한의 손을 단번에 뿌리치려 했다. 그러나 이번엔 강이한이 손에 힘을 주며 단단히 붙잡았다. 이유영은 결국 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온몸이 떨렸다.강이한도 이유영의 떨림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유영아.”“내 손… 놓으라고 했잖아!”이유영의 목소리 역시 떨렸다. 그 떨림은 이 남자에 대한 완전한 거부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강이한은 이유영이 자신을 거부하고 있다는 걸 뚜렷이 느꼈다. 그 거부감은 강이한의 마음을 더 답답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다.“절대로 널 놓지 않을 거야.”강이한의 목소리는 무겁고 쓸쓸했다.그래, 놓지 않겠다고.“...”놓지 않겠다고? 지금에서야 이런 말을 하는 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이유영은 강이한의 손을 뿌리치려 안간힘을 썼지만, 강이한은 이유영을 완전히 끌어안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강이한이 팔에 힘을 주자 이유영은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강이한!”“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이유영의 몸이 끊임없이 떨리고 있었고 그 떨림은 강이한의 가슴을 더
머리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눈을 뜬 이유영은 곧 이상한 점을 느꼈다. 침대가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심하게 흔들렸다.상황을 확인하려고 눈을 떴다.그러나 눈을 뜨는 순간, 이유영의 온몸이 얼어붙었다. ‘휙’ 하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이유영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보았다. 그러나… 어둠뿐이었다. 눈앞은 온통 깜깜했다.손을 뻗었지만, 손끝조차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이었다.눈앞에서 손을 흔들어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아무리 어두워도 시력이 있다면 손그림자 정도는 보인다고. 그러나 지금 이유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이유영이 이런 상태로 정신을 차리려 애쓰는 동안, 강이한이 움직임을 느꼈다.다가가 보니, 이유영이 침대에서 일어나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두 눈은 공허하고 생기를 잃은 채 텅 비어 있었다. 강이한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의 눈이 저토록 생기 없이 죽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그리고 지금 이유영은…“유영아…”가슴이 답답하고 아프기까지 했다. 입을 열었을 때, 강이한의 목소리는 떨림을 감출 수 없었다.이유영은 강이한의 목소리를 듣고 몸이 더욱 긴장했다. 그의 방향을 향해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를 보려는 듯했다.설마…“너…”설마 지난 생으로 돌아온 건가? 아니, 그럴 리 없어!“대체 무슨 일이야?”강이한이 앞으로 다가와 이유영을 단단히 끌어안았다.이유영은 창백한 얼굴로 귀신이라도 본 듯 강이한을 밀어냈다. 그 순간, 이유영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과 가능성이 스쳐 지나갔다.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지만, 진정은커녕 점점 더 불안해졌다. 마치 폭풍처럼 이유영의 신경과 이성을 휘몰아쳤다.“여기가 어디야?”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이유영은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강이한이 답했다.“비행기 안이야.”비행기?이유영은 지난 생을 떠올리려 애썼다. 강제로 수술을 받은 뒤로 강이한이 이유영을 홍문동 밖으로 데리
“국진 씨, 제발 유영이를 꼭 데려와 주세요!”임소미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유영을 반드시 빨리 찾아와야 한다. 절대로 강이한 곁에 남겨둬선 안 된다.현재 서주의 분위기 또한 심상치 않았다. 게다가 강이한이 서주에서 가진 특별한 신분을 생각하면 이유영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리 없었다.그 순간, 여진우가 모습을 드러냈다.임소미는 재빨리 여진우에게 다가가 물었다.“진우야, 소식 있어? 설마 서주로 간 건 아니지?”서주!강이한이 이유영을 데려갔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이 처음 떠올린 건 서주였다.지금 서주의 상황을 보았을 때 강이한이 이유영을 서주로 데려갔을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그런데 서주의 상황 자체가 이미 그리 좋지 않은데 강이한이 하필이면 지금 이유영을 데려갔으니... 임소미는 이미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여진우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이 답변은 모두의 마음을 더욱 초조하게 했다.아니라고? 서주로 간 게 아니라고?“강이한과 함께 파리에서 온 이정은 돌아갔지만, 강이한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이 말을 듣자, 임소미는 완전히 기운이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서주의 상황이 지금 이상하긴 하지만, 만약 강이한이 이유영을 서주로 데려갔다면 최소한 목적지가 있어 이유영을 데려올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강이한은 자신이 데려온 사람을 되돌려보냈을 뿐, 이유영을 데리고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유영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저런 사람과 엮인 걸까!”임소미는 분노와 좌절감에 휩싸였다.정국진도 임소미와 마찬가지로 긴장된 상태였다.이 소식은 그들에게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상황을 모를수록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기 쉽다.게다가 그들은 이미 연서라는 사람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유영이 강이한에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란 사실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이런 상황에서는 더욱 위험이 따를 가능성이 높았다.중요하지 않은 존재는 언제든 필요에 따라 희생될 수 있는 운명이었다.그것은
엔데스 명우는 비록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이 소은지에게 철저히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백산 별장 쪽 상황.아침부터 백산 별장은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백산 별장은 이유영의 실종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유영이 편지 한 장만을 남기고 없어졌다. 그런데 그 편지의 글씨는 이유영의 필체가 아니었다.정국진이 편지를 들고 살펴본 뒤 이 글씨는 강이한 것임을 확신했다. 편지 내용은 단 한 문장이었다.“무사한 상태로 데려올 겁니다.”“무사한 상태? 무사한 상태라는 의미를 알고 하는 말인 건가?”분명한 것은, 임소미도 이 편지가 누가 쓴 것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어제 강이한이 여기 나타났고 오늘 아침 이유영이 사라졌다.백산 별장의 모든 보안 시스템을 무사히 뚫고 사람을 데리고 나가다니, 강이한의 능력은 확실히 대단했다.그러나 강이한의 이런 능력은 사람들의 이를 갈게 만들었다.정국진의 눈빛 역시 날카로웠다.“국진 씨, 반드시 유영이를 데려와야 해요. 반드시...”임소미는 이미 감정이 북받쳐 올라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는 상태였다.많은 일이 벌어진 뒤였다.임소미는 이제 강이한이 이유영에게 재앙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그와 함께 있는 한, 무사할 리가 없었다. 이유영이 무사히 돌아오기만 해도 다행일 정도였다.“알겠어.”정국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정국진의 눈에도 살기가 번뜩였다.이유영은 지금 누구보다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심지어 수술을 앞둔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시기에 이유영을 데려가다니.다른 때는 마음대로 날뛰어도 괜찮다 쳐도, 지금은... 여진우의 사람들까지 이유영을 찾으러 나갔다.그 순간, 반산월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집사가 전화를 받은 뒤, 엄중한 표정으로 다가왔다.“사모님, 선생님!”“무슨 일이야?”“반산월 쪽에서...”여기까지 말하고 집사가 잠시 머뭇거렸다.“반산월에 무슨 일이야?”이미 충분히 긴장한 상황에서 반산월 이야기가 나오자, 사람들은 더욱 긴
“소은지, 네가 그 사람과 정말 오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그 사람 마음속에 네 자리는 없어. 언젠가 너는 버려질 거야. 그리고 그때가 되면...”“그때쯤이면, 여섯째 도련님, 네가 수모를 당하는 모습을 실컷 봤겠지. 너의 모든 추한 꼴을 확인했으니 나는 손해 볼 게 없어.”“...”말이 끝나자, 남자의 분위기는 한층 더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소은지는 단순히 다루기 어려운 상대를 넘어 강철 같은 의지를 가진 난공불락의 존재였다.결국, 엔데스 명우는 화를 억누르며 소은지를 뒤로하고 자리를 떠났다.지금의 소은지는 그야말로 어떤 말도 통하지 않는 상태였다. 엔데스 명우가 내놓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제안했음에도 소은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소은지의 이런 태도는 엔데스 명우에게 증오와 답답함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차 안에서.옆자리에 있던 배천명이 어색한 공기를 감지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은지 아가씨 쪽에서 여전히 거절이신 건가요?”‘아가씨’라는 호칭은 엔데스 명우의 측근들 사이에서 소은지를 지칭하는 통상적인 표현이었다.과거에, 누군가 그녀를 ‘일곱째 사모님’이라 불렀다가 엔데스 명우에게 바로 응징당해 입에 피를 흘리며 쫓겨난 일이 있었다.이런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듯, 엔데스 명우는 소은지와 엔데스 현우의 관계를 절대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소은지의 완강한 태도에 관해 이야기하는 배천명의 물음에, 엔데스 명우는 한 손으로 짓눌리듯 아픈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이 여자를 너무 쉽게 본 것 같다.”이 말 속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엔데스 명우가 처음 소은지를 자신의 곁에 두기 위해 어떤 수단을 썼는지는 이제 기억도 나지 않았다.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소은지를 굴복시켰던 걸까?분명한 것은, 소은지가 끝내 그에게 완전히 굴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겉으로는 순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소은지의 눈 속에 담긴 강인한 고집은 언제나 선명했다.수년간 얼마나 많은 여자가 그에게 몰려들었는가? 그들이
언제 조건을 말했다는 건데?도대체 언제였다는 걸까?눈 내리던 날, 설선비의 추락 사건과 자신은 무관하다며 반복적으로 항변했던 그때를 말하는 걸까?‘넌 나를 이렇게 대할 자격이 없어.’라고 했었던 말을 가리키는 걸까?그 모든 말 속에는 소은지가 엔데스 명우에게 내건 조건들이 담겨 있었다.하지만 결과는?결과는 뻔했다.소은지는 똑똑히 보았다. 그가 청하시 사업을 하나씩 무너뜨리며 소은지의 명성을 어떻게 철저히 짓밟았는지.청하시에서는 패배를 모르는 전설적인 변호사 소은지의 진짜 얼굴에 대한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떠들썩했지만, 그 기사를 본 소은지의 마음은 고통과 분노로 폭발 직전이었다.“과거에 나를 파멸로 몰아넣을 때 그토록 신속하고 냉혹하더니, 여섯째 도련님도 감정에 얽매일 때가 있다니 놀랍군.”소은지의 말은 점점 더 얼음처럼 차갑고 날카로워졌다.그랬다.그날, 소은지는 엔데스 명우에게 모든 진실과 자신의 요구를 분명히 전했다.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소은지의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조건을 듣겠다니! 소은지의 삶에는 더 이상 조건이라는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설령 소은지가 내건 모든 조건이 하나하나 충족된다고 해도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그건 소은지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나는 항상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나아가는 사람이야.”소은지는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네가 나한테 주는 보상들이 지금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어?”설령 같은 사회적 위치를 되찾아준다 해도 그것은 소은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자신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이 모든 것을 소은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어떤 보상도 소은지에게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게 지금의 소은지였다.“정말 잘난 척하는군. 스스로 대단하다고 착각하지 마. 사실 너도...”“맞아, 난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해. 하지만 예전에 내 대단함은 절대 착각이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