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희는 따뜻한 왕숙의 품에 안겨 아이처럼 울었다.“아줌마….”한편, 병원.진영숙이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병상에 누워 있던 강이한이 사라졌다.그리고 침대 위에는 그가 벗어놓은 환자복이 놓여 있었다.“이 비서!”진영숙은 다급히 이시욱을 호출했지만 이시욱도 자리에 없었다.그녀는 급급히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나야.”“네, 사모님.”수화기너머로 왕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진영숙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장 서희를 노부인한테로 데려가!”“무슨 일인데요?”왕숙이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진영숙은 뭔가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잘 알고 있었다.한지음이 시력을 잃은 일로 그는 이유영을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괴롭혔다. 그랬던 이유영이 사망하게 되었고 아마 그 심정은 누구라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지금 그에게는 화풀이할 상대가 필요했다.그리고 그 상대는 분명 강서희가 될 것이다.그날 밤 구치소에 화재가 나지 않았더라면 강이한은 이미 강서희의 목을 졸라 죽였을 수도 있었다.“이한이가 본가로 갈 것 같아.”진영숙이 말했다.강이한이 돌아온다는 얘기에 왕숙 역시 뭔가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다급히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창가에 서 있는 강서희에게로 다가갔다.“아가씨.”“왜?”“일단 노부인 있는 곳으로 가요.”말을 마친 왕숙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강서희는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왕숙을 보고 저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했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인데?”“일단 가서 얘기해요.”진영숙이 다급히 연락했다는 건 강이한이 이미 오는 길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노부인은 별장 맨 뒤쪽에 있는 별채에 살고 있었다. 강서희는 멍한 얼굴로 왕숙을 따라 현관을 나섰다.그런데 갑자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차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강서희의 두 눈에는 강이한을 향한 미련과 그리움이 가득 담겼다.매번 강이한이 본가에 올 때마다 짓던 표정이었다.“우리
강서희와 왕숙은 경직된 자세로 고개를 돌렸고 강이한은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며 거실에 서 있었다.그의 뒤에는 이시욱과 형사가 따르고 있었다.강서희는 애처로운 얼굴로 왕숙과 강이한을 번갈아보았다.“오빠, 이게 다 뭐야?”그녀가 멍한 얼굴로 물었다.이틀 사이 그녀는 자신과 강이한이 다시 만났을 때 벌어질 무수히 많은 가능성을 생각했다.싸늘한 질문과 실망스러운 얼굴, 그리고 차가운 태도까지 다 각오했지만 이런 상황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아무런 얘기도 해보지 않았는데 다짜고짜 형사를 데리고 올 줄이야!그녀는 싸늘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강이한을 바라보며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그와 함께 한 모든 시간이 어쩌면 자신만의 상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형사가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오며 사무적인 말투로 말했다.“강서희 씨, 강이한 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습니다. 최근 조사 중인 한지음 씨 납치사건과 연관해서 새로운 증거가 제출되어서요. 저희와 함께 서로 가서 조사에 협조해 주시죠.”“아… 나 아니야.”강서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강이한을 바라보며 말했다.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친 순간 강서희는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오빠, 어떻게 내 말을 안 믿어줄 수가 있어? 내가 한 일 아니야. 한지음이 시킨 거라고.”“내가 사람에게 상해를 입힐 리가 없잖아.”강서희는 최대한 간절하고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뒤늦게 정신을 차린 왕숙도 강이한을 바라보며 다급히 말했다.“그래요, 도련님. 아가씨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아시잖아요. 사람을 해칠 분은 절대 아니에요.”그는 강서희에게 변명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이유영에게 했던 것처럼 바로 경찰에 연락한 것이다.물론 어떤 면에서는 이유영에게 했던 것보다 잔인했다.이유영을 대할 때는 천천히 숨통을 조이는 방법을 선택했고 그녀에게 빠져나갈 기회도 주었다.그가 마지막에 이유영을 몰아붙인 이유는 그녀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아서 실망했기 때문이었
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왕숙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녀는 당황한 시선을 피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도… 도련님….”하지만 지옥을 닮은 강이한의 눈빛을 마주하자마자 고개를 푹 숙였다.“오빠, 어떻게 내 말을 안 믿을 수가 있어?”강서희가 울며 말했다.강이한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왕숙을 바라볼 때 저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했다.그녀는 눈물을 잔뜩 머금고 강이한을 바라보며 그가 예전처럼 다가와서 자신을 보듬어 주기를 바랐다.예전에는 그녀가 무슨 잘못을 해도 항상 따뜻하게 품어주던 오빠였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정말 결백하다면 조사를 받으면 나오겠지. 네가 한 게 아니라면 조사에 협조하는 게 현명한 선택 아니겠어?”조사라는 말에 강서희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전에는 모든 흔적을 깔끔하게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카드를 치우지 않은 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카드가 발견되기 전에는 조사를 받으면서도 빠져나갈 수 있다고 굳게 믿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이유영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결국 구치소에서 목숨을 잃지 않았는가?게다가 그녀가 모두 참여한 일이니 빠져나간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강서희 씨!”형사가 짜증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불렀다.진영숙이 다급히 집에 도착했을 때, 노부인도 별채에서 나와 현관으로 들어오고 있었다.형사들을 본 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이한아.”진영숙은 땀을 뻘뻘 흘리며 강이한에게 다가가서 말했다.“너 서희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노부인도 다가와서 강이한을 말렸다.“어떻게 된 거니? 집안 일은 집안 사람끼리 해결해야지 왜 형사까지 끌어들여?”극도로 보수적인 성향인 노부인은 더 이상 집안의 허물이 세간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안 그래도 여러 가지 일로 집안이 혼란스러운데 더 이상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진심으로 강서희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어쨌든 세강의 양녀이고 나중에 이용해 먹을 가치가 있는 아이였다.만약 이대로 경찰에 잡혀간다면 세강은 사람들의 비웃
“오빠, 나 믿어줘. 한 번만 내 말을 들어줘!”강서희는 울음을 터뜨리며 그의 뒷모습에 대고 애원했다.진영숙과 노부인도 조바심이 났다.“엄마!”강서희는 끌려가면서도 진영숙을 애타게 불렸다.이번에 들어가면 조사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녀도 직감하고 있었다.강이한이 직접 형사들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는 것은 그의 의지를 표명하고 있었다.아마 그는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강서희를 감옥에 보내려고 할 것이다.강서희의 얼굴에 깊은 절망이 깃들었다.진영숙과 노부인도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 중에 반응이 가장 격한 사람은 왕숙이었다.“아가씨! 우리 아가씨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예요? 그거 다 제가 했어요! 모든 건 제가 했다고요!”왕숙은 달려가며 강서희의 옷깃을 잡았지만 형사가 달려들어 그녀를 떼어냈다.왕숙은 그대로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았다.강서희가 울며 소리쳤다.“나 억울해! 오빠, 내가 한 거 진짜 아니야! 한 번만 내 말을 들어줘. 엄마!”그녀는 미친 사람처럼 발버둥쳤지만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형사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손목에 차가운 수갑이 채워진 순간, 강서희는 절망했다.왕숙이 달려오다가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아가씨!”왕숙은 미친 사람처럼 애타게 강서희를 불렀다.진영숙과 노부인도 밖으로 나왔다. 강서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던 절망을 느꼈다.‘안 돼! 이대로 끌려갈 수는 없어!’이곳은 그녀에게 유일하게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 집이었다.“엄마, 할머니!”그녀는 미친 사람처럼 차에서 내리려고 발버둥쳤다.점점 조여오는 불안감이 그녀를 미치게 만들었다.강이한은 한 번도 이런 식으로 그녀를 대한 적이 없었다. 전에는 그녀가 울기만 하면 주저 없이 그녀의 편에 서주던 사람이었다.하지만 오늘은 완전히 바뀌었다.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강서희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잔인함은 상상을 초월했다.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그녀
“이 비서.”“네, 대표님.”“왜 화장을 선택했대?”그녀가 지난 생과 같은 고통을 겪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지난 생에서 이곳은 완전히 불에 탔고 이유영은 구조되었지만 중도 화상으로 병원에 실려갔다가 끝내는 깨어나지 못했다.그때 그녀는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그 기억들이 지금의 강이한을 더 숨막히게 했다.이시욱은 긴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말했다.“대표님, 다 지나간 일이에요.”그는 이유영의 마지막을 더 이상 그에게 말해주고 싶지 않았다. 알면 알수록 고통만 더해질 뿐이었다.“나서원 좀 불러줘.”강이한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시욱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지금 그가 알고 있는 일을 강이한에게 말하지 않아도 그는 끝까지 파헤칠 기세였다.“대표님, 사실은….”“말해!”그가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이시욱은 움찔하며 고개를 숙이고 입을 열었다.“사실 이유영 씨는 구조되었을 때 숨이 붙어 있었습니다.”강이한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이시욱은 계속해서 말했다.“하지만 한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사망했어요. 정국진 회장과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침통한 이시욱의 얼굴을 보고 강이한은 숨이 멎을 것 같았다.이시욱은 가늘게 떨고 있는 상사를 보며 말을 이었다.“게다가 돌아가실 때 이유영 씨는….”그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그때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일개 비서인 자신마저도 그런데 강이한은 얼마나 충격을 받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계속해.”강이한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재촉했다.살아 있을 때도 뜨거운 것을 싫어하던 여자였는데 얼마나 아팠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두 번의 삶을 경과하면서 이유영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강이한은 자결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이시욱은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돌아가실 때 이유영 씨는 임신한 상태였다고 합니다.”강이한은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유영아… 그리고 우리 아이까지!’털썩 하는 소리와
먹구름이 가시고 밝은 햇살이 다시 대지를 비추었지만 강이한의 마음까지 비춰주지는 못했다.그 시각, 홍문동.강이하는 공허한 얼굴로 거실에 앉아 있고 그의 앞에는 심각한 얼굴을 한 한지음이 앉아 있었다.이런 일이 발생했으니 둘의 결혼식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이유영이 그토록 비참하게 세상을 떠날 줄을 누가 알았을까?한지음도 이유영을 증오하고 그녀가 고통스럽기를 희망했지만 정말로 죽일 생각은 없었다.단지 자신이 가져야 할 모든 것을 가져간 이유영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유영이 평생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한지음이 바라는 것이었다.하지만 정작 그녀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한지음은 별로 기쁘지 않았다.“아줌마한테 짐 정리 부탁할 거야. 네가 살 곳은 따로 마련했어. 이곳은 네가 있기에 적절하지 않아.”강이한이 무거운 침묵을 깨고 말했다.모두의 접촉을 거부하는 싸늘한 목소리에 한지음은 어깨가 흠칫 떨렸다.예전이었다면 이유영 때문에 그러느냐고 불쌍한 척이라도 했겠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사람이 죽었는데 굳이 이곳을 차지하고 있어도 알아줄 사람이 없었다.“알았어요.”그녀는 강서희처럼 비굴하게 매달리지 않고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였다.강이한은 약간 의외라는 듯이 고개를 들었다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그는 자옥한 연기를 통해 한지음을 바라보며 물었다.“강서희가 한 일, 너도 참여했니?”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한지음은 가슴이 철렁하며 저도 모르게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강서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간병인을 통해 전해 들은 바가 있었다. 그랬기에 저도 모르게 겁이 났다.감옥에서 남은 생을 받아들이는 일은 그 누구라도 두려운 일이었다.“아니요!”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한지음이 대답했다.강이한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이한 오빠.”남자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한지음은 처량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이미 그에게서 온기를 나눠 받으며 그녀의 마음 속
“지음아.”“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이제 나에게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그녀는 고독이라는 표현으로 그와 공감을 이끌어내고 싶었다.강이한은 대답 없이 현관을 나섰다.잠시 후, 간병인이 짐 정리를 마치고 내려왔다.“아가씨, 가시죠.”간병인은 한지음의 처지를 동정했다. 젊은 나이에 시력을 잃고 약혼도 깨지게 되었으니 얼마나 절망적일까?한지음은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그 미소가 그녀를 지켜보는 사람들을 더 안타깝게 했다.그녀의 인생을 책임진다던 강이한을 제외하고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인생은 길고 단지 책임감만으로 한 남자의 옆에서 일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도 불쌍한데 그것마저 변고가 생긴 것이다.“겨우 이곳 환경에 적응했는데 또 옮겨야 하네요.”한지음이 쓸쓸한 목소리로 말했다.시력을 잃은 그녀가 환경에 적응하는데는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또 새로운 환경으로 가서 그곳 생활에 적응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한지음은 공허한 표정으로 홍문동을 나섰다.그녀가 나가자마자 집사는 강이한의 연락을 받았다. 모든 것을 이유영이 떠나기 전으로 돌려놓으라는 지시와 함께 한지음의 흔적을 모두 지우라는 지시가 내려졌다.“빨리 움직여!”집사는 일사분란하게 고용인들을 지휘했다.한지음이 이곳에 온 뒤로 강이한은 의도적으로 이유영의 물건들을 창고에 처박았었다.하지만 어쩐 이유인지 그것을 버리라는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그들은 창고를 정리하며 물건을 버리지 않은 게 다행이라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홍문동에 이런 변고가 생길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진실은 밝혀졌는데 이유영은 이제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한편, 한지음은 차를 타고 이동하며 해외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이어폰으로 전화를 받았기에 간병인과 다른 사람들은 상대가 그녀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듣지 못했다.다만 한지음에게서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느꼈다.한참이 지난 후, 그녀는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알겠어요.”누군지는 몰라도 한지음이 상대
그 말을 들은 이시욱은 당황한 얼굴로 상사를 바라보았다.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결과였다. 조형욱은 한지음에게 굉장히 친절하게 굴었고 이번 사건이 완전히 한지음과 무관하다는 증거도 없었다.강서희가 혼자서 이런 짓을 벌였다는 것도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강이한이 왜 강서희에게만 벌을 내리고 한지음은 내버려 두었는지, 아무도 그의 의도를 알지 못했다.한지음을 홍문동에서 내보내는 것 이외에 강이한은 그녀에게 어떤 추궁도 하지 않았다.증거가 부족해서일까?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강이한의 신변에 오래 있은 이시욱마저도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대표님, 어디 가십니까?”이시욱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강이한은 어느새 외투를 챙기고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이시욱의 부름에 그는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며칠 전에 비해 많이 야윈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이시욱은 한숨을 내쉬었다.강이한은 눈을 질끈 감고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이유영의 사람들과 박연준의 사람들을 방해하지 마.”지현우의 필적 감정은 그가 이시욱을 시켜 결과를 조작한 것이었고 박연준의 직원들도 적지 않게 그들의 방해를 받고 있었다.하지만 그 말 한 마디로 모든 인원이 철수하게 될 것이다.이시욱은 충격 어린 얼굴로 상사를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대표님….”대체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걸까?지현우와 박연준의 사람들이 진실을 밝혀낸다면 세강은 속절없이 무너지게 될 것이다.강이한은 이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고 최악의 경우 실형을 살게 될 수도 있었다.하지만 가늘게 떨고 있는 상사의 어깨를 보자 이시욱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의 모습이었다.그가 이유영을 오해했기 때문에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망가뜨렸고 그녀를 구치소에 보내고 말았다.10년을 함께한 정 때문에 흔들린 적은 있었지만 그녀 역시 그들의 10년 때문에 괴로웠을 것이다.이유영은 생전에 계속해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증거를 찾고 있었고 강이한은 계속해서 그 증거들을 모두 파멸시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