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삼촌이 미 몇년간 바쁜적이 없었는데 방금 통화하니까 본부에 일이 생겼대! 무슨 일인지 알려줄수 있어?”이 일이 강이한과 관련이 있다고 이유영은 확신했다.그리고 바로 이 점이 그녀를 오한에 떨게 했다.이 남자, 능력이 대체 어디까지인거야?거기는 파리란 말이야!그의 손이 이미 파리까지 뻗어졌다고!?강이한이 말했다. “큰 문제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냥 좀 바쁘기만 할거야.”“강이한, 이런 행동이 로열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는거야 모르는거야!?”“니 외삼촌이 관리만 잘하면 바람이 새지는 않을거야. 그냥 바쁘기만 할거야. 그리고 니 쪽 일은 신경쓸 시간이 없겠지, 안그래?”너......”유영은 화가 머리 끝까지 차올랐다!지금 그녀는 그의 얼굴을 잡아 뜯고싶었다.그녀가 발작하려 할때 팔에서 힘이 전해지더니 한바퀴를 빙돌아 남자의 품으로 안겨졌다.가뜩이나 화가 난 유영은 더 화가 났다.“움직이지마.” 그녀가 발버둥을 치려할때 남자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아기를 달래는듯한 목소리였다.하지만 강압이 살짝 들어간 달램이었다. “니가 말을 잘 듣지 않으면 그 사람들은 더 바빠질거야!”그 사람들!정국진, 박연준!박연준은 청하시에서 대체 어떤 사람일까?강이한이 그 쪽 사람들까지 건드릴줄은 몰랐다.“대체 그 사람들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유영은 너무 궁금했다.강이한이 무슨 짓을 한건지.무작정 정국진을 물어보지도, 그렇다고 박연준을 물어보지도 못했다.모두 똑똑한 사람들이었다!괜히 물어봤다가 그들이 이상한 낌새라고 눈치챘을가봐 걱정이 되었다.“유영, 너는 정말 똑똑해!” 강이한은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것을 안다.역시, 그녀도 참을성 하나는 대단해.“근데 넌, 박연준과 정국진이 알게된다면 어떨것 같애?”유영의 눈커풀이 떨렸다!이걸 물어보네.온몸에 퍼지는 숨결을 누를수가 없었다.그녀의 모습을 본 강이한이 웃으며 말했다. “나쁘지 않아. 크리스탈 가든에서 일을 하더니, 역시 발전이 있어!”예전의 유영이라면
유영이 객실로 들어갔다!남자는 그녀에게 위협적인 눈빛을 주었다. 그녀는 결국 그들의 쓰던 안방으로 돌아갈수 밖에 없었다.익숙한 모든 것을 본 유영의 마음은 평화롭지 못했다.“정말 안 씻을거야?” 그녀가 방문앞에서 움직이지 않자 남자의 호흡이 그녀의 목에 닿았다. 놀란 유영은 온몸에 긴장감이 들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눈에는 온통 증오로 가득찼다.저번 생에 강이한은 나를 이곳에서 불태워 죽였다. 그런데 이번 샘에서도 그녀를 못살게 군다니! 그들의 전전생에 그녀는 대체 이 남자에게 무슨 빚을 졌길래.이번생에 이런 수난을 당하는걸까.유영이 열 받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르는 그때 핸드폰이 ‘지잉-’하고 울려 그들의 분위기를 깨뜨렸다.번호를 보니 소은지가 걸어온것이다.그녀는 전화를 받았다. “은지야!”“저녁에 순정동으로 돌아갔다며?”“응.” 지금 홍문동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소은지가 걱정할까봐 무서웠다.소은지한테는 강이한이 그닥 좋은 남자가 아니였다!“그럼됬어, 나 먼저 잘게.”“응.” 전화가 끊겼다.거센 팔힘이 그녀를 품으로 안겨지게 했다. 그 순간...... 유영은 본능적으로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남자에게 꽉 잡혀버렸다.“유영아, 정말 말 안들을거야?””강이한......” 그 순간, 유영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온 몸에서는 매서운 기운이 풍겼다.그녀는 그가 자신을 건드리는게 싫었다.그리고 강이한은, 그걸 눈치챘다!두 사람의 호흡이 무거워졌다. “보고싶었어!”“넌 나한테 이러면 안돼.” 유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녀는 지금 남자에게 한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그의 손에 대체 뭐가 들었길래! 박연준과 외삼촌이 연속으로 어려움에 처했는지 모르겠다.그녀는 할수없이 이 남자에게 잠시 굴복해야 했다.하지만 굴복한다고 해도 선은 지켜야 한다.그들사이에는 전생과 현생이 있는데 어떻게 예전으로 돌아갈수 있을까!?“내가 너 건드리는게 겁나?”, “왜, 응?” 그녀 몸의 떨림은, 강이한도 느낄수 있었다.그를
“세시요!”“그래요, 데리러 갈게요.” 박연준이 돌아온다고 하니왠지 모르게 유영은 마음이 편했다.강이한은 미친것 같다.강이한의 주변 사람들도, 미친 놈이다!......그날 밤!강이한은 대체 뭘 하러 간건지 밤새도록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유영은 좋았다!이튿날 아침.하인이 유영앞에 나타나 준비해둔 옷과 가방을 건냈다. “사모님, 이건......””이 아가씨!” 하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해 유여은 넌지시 주의를 줬다.그녀는 사모님이란 호칭이 싫다.이 호칭은 그녀가 이곳에서 겪었던 수단들만 떠올리게 할뿐이다.강이한 곁에서, 그녀는 적지않게 당했다.“네, 이 아가씨. 이건 도련님께서 준비하신 옷과 가방입니다.”“놔두세요!” 유영은 딱히 관심이 없었다.하인은 물건을 내려놓고 나갔다.유영은 힐끗 보더니 핸드폰을 들어 조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빨리 걸렸다. “이 사장님.”“홍문동으로 옷이랑 가방좀 가져다줘.”“홍, 홍문동으로요?”“응!”전화 반대편에서 잠시 침묵하더니 빠르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전화가 끊겼다.유영은 욕실에 들어가 씻었다. 그녀는 강이한이 준비한 것들을 입지 않았다.어젯밤 박연준의 전화를 받은 뒤강이한의 수법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더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그녀는 계단을 내려갔다.강이한이 식탁앞에 앉아있었다. 그녀가 옷을 갈아입지 않고 내려온것을 본 강이한은 아주 잠깐 눈썹을 지푸렸다. 하지만 잠깐이었다.대충 왜 그랬는지 알것 같았다.유영은 그의 맞은켠에 앉아 죽을 한입 떴다.강이한이 물었다. “박연준이 전화했어?”이유영은 잠시 멈칫했다!그리고 그를 바라봤다. 눈빛은 예리했다.그녀의 이런 눈빛을 본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어젯밤 전화를 받았나봐? 아침에는, 받았어?”“무슨 뜻이야?”유영은 아침잠이 많았다.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얘기들은 그녀의 급한 성질을 더 돋구웠다.강이한이 뭐라 말하려고 하는 순간, 유영이 방금 내려놓은 핸드폰이 식탁위에서
강이한은 이미 화가 날 대로 난 이유영을 보고도 태연하게 그릇 안의 핸드폰을 슬쩍 쳐다보았다.“이리 와.” 세 글자, 날카롭고도 위엄 있다.이유영은 자리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순종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분명했다.강이한이 호통쳤다. “다 나가!”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특별사면이라도 받은 것처럼 뿔뿔히 자리를 떴다.이유영과 강이한 둘만이 남았다. 강이한이 일어서더니 길쭉한 다리로 성큼성큼 그녀에게로 다가왔다.이유영은 의식적으로 도망치고 싶었으나, 오기로 자리에 계속 눌러앉아 있었다.남자의 강한 기세가 덮쳐와 그녀의 온몸을 감쌌다. 그녀가 정신도 차리기 전에 남자는 병아리 낚아채듯이 그녀를 좌석으로부터 끌어올렸다. “이유영, 내가 그 동안 너한테 너무 오냐오냐했지?”강이한이 어금니를 깨물고 말했다.그는 아예 그녀를 안고 소파에 몸을 내던졌다. 이유영이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강이한이 바로 옴짝달싹 못하게 꽉 눌렀다.“어디서 겁대가리 없이, 감히 외간 남자 때문에 나한테 대들어, 어?”강이한이 그녀의 목을 점점 더 세게 졸랐다.이 때, 이유영이 안간힘을 써서 눈을 뜨자 강이한의 표독스러운 눈과 마주쳤다.그의 눈에 비친 독기를 보니 그들 사이는 마치 전생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때, 이유영은 의지할 곳 하나 없었고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강이한이였다. 그런데 강이한이 자신을 이처럼 대했을 때, 그때 느꼈던 절망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재간 있으면 날 죽여!”“죽여?”“……”“내가 왜?”“……”“난 너를 지켜주는 놈들만 하나하나 없애버릴 거야!” 강이한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독기가 차있다.이런 독기를 이유영은 본 적이 있다.전생에서 그가 한지음을 위해 이유영의 각막을 뺏어가려고 할 때이다.“그래?” 이유영이 냉소하며 도발했다.박연준과 정국진도 다들 보통 인물은 아니지만 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그들이 알고 나면 강이한 쪽도 머리가 좀 아플 것이다.강자 간의 대결이라!그런 상황은 강이한도 원치 않을
그러나 지금의 이유영은 달라졌다.안된다.그걸로는 부족하다.잘 정리하고 문을 나섰다. 홍문동 밖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던 조민정이 이유영을 보자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괜찮아요? 전화했었는데 폰이 꺼져있더라고요.”“괜찮아요.”핸드폰을 강이한의 죽 그릇에 던졌으니 전원이 당연히 꺼졌을 것이다.하지만 조민정이 이렇게 걱정해 주니 이유영은 가슴이 뭉클해났다.조민정이 그를 바라보며 쇼핑백을 건넸다.“옷이랑 가방 챙겨왔어요.”“고마워요.”“뭘요.”이유영 목에 난 멍 자국을 본 조민정은 입술을 파르르 떨다가 결국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어차피 자신은 이유영의 부하직원일 뿐이다. 상사의 사생활에 대해 묻는 것은 좀 그렇다.하지만 그녀와 강이한의 관계를 생각하니 또 갈등이 생겼다.이유영은 말없이 옷을 갈아입고 벗어놓은 옷을 차창 밖으로 버렸다. “......”그렇다.이 모습은 분명히 강이한과 눈곱만큼도 얽히기 싫다는 뜻이다.......이유영은 회사에 도착한 후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누가 다가오기만 하면 화를 내서 임직원들까지도 그녀가 기분이 언짢다는 것을 알았다.지현우가 문서를 들고 들어와서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 있습니까?”들어오면서 울상을 하고 나가는 직원을 본 모양이다.“별일 없어요.”말은 그렇게 했으나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지현우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 외삼촌께서 친히 보낸 사람이기에 아무리 기분이 안 좋아도 지현우에게는 화를 낼 수 없다.하지만 강이한을 생각하면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사생활로 직장에 영향 주는 것은 별로 안 좋습니다. 특히... 여성이라면.”이 말을 들은 순간, 펜을 들고 있던 이유영의 손이 멈칫했다.지현우를 바라보는 눈동자에도 적의가 어렸다.지현우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말했다.“여성이라고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 분위기가 그렇습니다.”“흥.”워낙 불편하던 심기가 더 불편해졌다.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 모든
불과 이틀 시간이다.소탈하고 대범하던 이유영이 강이한에게 이렇게 짓눌리게 되다니. 하지만 그녀도 보통내기는 아니다.달갑게 받아들이고 넘어갈 리가 없다.게다가 이유영과 강이한은 어디 보통 사이인가. 원래는 이혼 후 각자 제 갈 길을 가고 서로 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강이한의 기세를 보니 이유영을 놔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것 같았다.그리고 또 하나……강이한의 수단을 보니 대단한 가문과 정략결혼을 시켜 강씨 가문을 키우려는 것도 진영숙의 일방적인 생각이다.강이한은 그런 것 따위 필요없었다.……점심시간이 되었다.강이한으로부터 걸려온 전화가 이유영을 골치 아프게 했다.“지금 바로 내려와.”이유영이 대답이 없자 강이한이 다시 말했다.“내려오라면 내려와!”이유영은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금 이유영은 이를 악물고 강이한을 참고 있다.그런데 이 갑작스러운 행동은 뭐지?그녀는 순간 당황해났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머리를 굴려보았다. 다시 합치는 건……아니야, 이건 아니야!“난 식사 생각 없어. 좀 이따 회의가 있어서 이만.” 이유영의 말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회의 약속이 잡혀 있었다.상대방이 뭐라 하기도 전에 이유영은 전화를 끊어버렸다.지현우의 말을 새기고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회의실로 들어갔다.“시작하시죠.” 이유영이 입을 열었다.의심할 여지 없이 오늘 회의 주제는 어제 있었던 일에 관해서이다.이유영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강이한이 자료를 회사 내부로부터 전해 받았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유영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지현우에게 말했다.“재무실장 좀 오라고 하세요.”“네.”지현우는 영문을 몰랐다.원래대로라면 오늘 회의는 재무실에서 참석할 필요가 없었다.필경 전 대표가 남겨놓은 것들이고 자료만 봤을 땐 재무와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그래도 이유영의 지시대로 재무실에 전화해서 회의 참석 요청을 전했다.얼마 지나지 않아서 재무실장이 올라왔다.“대표님.”그의 얼굴에서 불안함이 보였
“대표님도 그동안 힘드셨을 텐데.”지현우가 조곤조곤하게 말했다.이유영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지 비서님, 어떻게 처리할 계획인지 말씀해 보세요.”이번 일은 작은 일이 아니다.자칫하면 아무리 크리스탈 가든 같은 대기업이라도 불필요한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그것은 이유영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지현우도 그것쯤은 알고 있다.두 사람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지현우가 뭐라고 더 말하려는 순간, 펑 하는 굉음과 함께 회의실 문이 열렸다.누군가 밖에서 발로 찼다.순식간에 이유영에게 집중되어 있던 시선들이 일제히 문 쪽으로 돌려졌다.문 어구에는 강이한이 얼음장 같은 얼굴을 하고 서있었다.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워낙 화가 나있던 이유영은 지금 폭발하기 직전이다.하지만 강이한이 위협하는 눈짓을 보고 애써 화를 꾹꾹 누르고야 말았다.“강이한 씨, 이건 좀 실례인 것 같습니다만?”강이한이 길쭉한 다리로 이유영에게로 다가갔다.기세등등한 모습이 다가올수록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조마조마해났다.그들도 당연히 강이한의 얼굴을 안다. 그리고 그와 이 대표가 이혼 한 사실도 알고 있다.그런데 지금 이건 무슨 상황이지?헉! 강이한의 행동에 다들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어떻게 사람들 보는 앞에서...이유영은 입술이 따가워났다.방금 전 강이한의 위협에 화는 이미 어느 정도 가라앉혔었다.하지만 지금은 참으려야 참을수가 없다. 이유영은 강이한의 뺨을 치려고 손을 올렸다.찰나, 강이한이 손목을 잡아당겨 그녀를 품안에 꽉 껴안았다. 이유영은 화나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조그마한 몸집이 강이한 품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강이한이 가정폭력 버릇은 없었기 망정이지 아니면 이유영의 덩치로 진작에 맞아죽었을 것이다.강이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외투로 품에 있는 그녀를 감쌌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당황해서 멍해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 대표가 피곤하답니다. 오늘 회의는 끝났습니
이유영은 다짜고짜 강이한을 때리기 시작했다.이유영이 참다못해 발광하자 강이한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그녀의 손목은 참 가늘었다. 조금만 힘을 주면 부러질 것만 같았다.이유영은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그녀는 강이한을 무섭게 쏘아보았다. 분노로 인해 그녀의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이 되어있었다.“이제야 눈이 뒤집히는 느낌을 알겠지? 더 설쳐봐 어디? 어?”강이한이 키스를 했다.그는 시비를 걸고 있다.이유영은 알고있다. 강이한이 지금 그녀가 이혼하자고 한 일을 가지고 시비 걸고 있다는 것을.“우리가 왜 이혼했는지 몰라? 무슨 낯짝으로 날 찾아와서 시비 걸어?”“네가 이혼하자고 설친 거잖아. 너 아니면 누굴 찾아?”“감정 따위 그렇게 정리가 안돼? 내려놓지 못하겠어?”이유영은 이성을 잃었다.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그냥 이혼을 했을 뿐인데 강이한이 이렇게 복수할 줄은.하긴 예전에...이유영은 큰 숨을 들이쉬고 물었다.“너 요즘 한가해 보인다?”“응, 네가 프로젝트 두 개 가로채간 덕분에 한가해.”이유영은 말문이 막혔다.“......”또 부지 얘기다.“그건 내 실력으로 얻은거야.”“그 프로젝트 원래는 내 거거든. 내 거 뺏으면 안 될 텐데?”뺏으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이유영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지금의 강이한은 참...재결합의 ‘재’자도 꺼내지 않았지만 그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재결합을 위해서이다.점심 식사 중이다.이유영은 음식이 무슨 맛인지 음미할 겨를도 없이 빨리 먹었다.다 먹고 나서 여유만만한 강이한을 바라보았다.“나 이제 가도 되지?”냅킨을 테이블에 내치며 말했다.강이한은 그녀를 힐끗 보더니 대답했다.“가봐.”이유영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강이한이 옆 테이블에 대고 소리쳤다.“시욱아, 해외에 전화 좀 걸어봐.”이유영이 다시 풀썩 주저앉았다.강이한은 입꼬리를 올리고 그녀를 봤다.“됐다. 안 걸어도 돼.”이유영이 무섭게 째려보았다.눈빛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강
이유영이 집으로 돌아온 뒤, 임소미는 사람을 시켜 조사를 시작했고 이유영이 강이한 곁에서 결코 평온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지 못했다.며칠 동안 진영숙의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목격한 뒤에야 그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왜 서주로 떠나서 죽음을 가장했는지를.모두 이 여자 때문이었다. 진영숙이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것이다.남편뿐만 아니라 지금 강이한의 행방조차 그녀는 알지 못했다. 여자로서 그 책임은 결코 작지 않았다.임소미는 감정을 가라앉힌 후에야 이유영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진영숙이 사실은 월이를 데려가려 했다는 것을.“며칠 동안 데려가겠다고 했다고요?”“그래서 내가 화가 났던 거야.”진영숙의 행동을 보면 며칠은 말뿐인 핑계였다.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임소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이제 아무것도 없고 오직 손녀만 남았다고? 과연 손녀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 사람인가?’이유영은 말없이 얼굴을 굳혔다.진영숙은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유영아, 이번 일은 그녀에게 연민을 가질 필요 없어.”임소미의 목소리엔 단단한 결심과 냉기가 섞여 있었다.진영숙은 자신이 모든 걸 잃었기 때문에 아이라도 데려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런 상실에 대해 임소미는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알겠어요, 엄마. 제가 처리할게요.”이유영은 어머니를 안심시켰지만 그녀의 목소리 역시 차가웠다.“어떻게 처리할 거니?”‘어떻게 처리할까?’이유영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그녀는 당연히 생각한 방법이 있었다.임소미를 진정시킨 뒤, 이유영은 백산 별장을 나섰고 밖에선 지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가씨.”“풍산 그룹으로 가요.”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마음이 무거웠다. 가능하다면 평생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그곳은 과거가 덕지덕지 붙은 장소였고 이유영은 그것들과 멀어지고 싶었다.“윙윙윙.”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는 박연준이었고 이유영은 망설임
이유영에게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그녀는 임소미의 품에 파고들며 가느다란 팔로 어머니의 허리를 꼭 안았다.“엄마,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녀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다.오래전 소은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강이한은 연애 상대론 괜찮지만 결혼은 다르다고.그때 변호사였던 소은지는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맞지 않는 결혼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강이한과 결혼을 결심했을 때, 소은지는 그녀를 말렸었다. 소은지는 그녀의 결혼을 말렸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결국 소은지의 말은 모두 옳았음이 증명됐다.끝났다고 믿었던 그 관계는 여전히 그녀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었다.그때, 등에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앞으로는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이유영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눈가에 가득 차올랐다. 참으려 해도 눈물이 뺨을 따라 끝없이 흘러내렸다.예전에도 어머니는 그녀를 이렇게 품어주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나면 모두 혼자 견뎌야만 했다.임소미가 감싸안아 주자 이유영의 마음은 다시금 따뜻함으로 물들어갔다.그리고 이 감정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앞으로는 아무도 엄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거예요.”그녀가 말한 '아무도'는 명백히 진영숙을 가리키고 있었다.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사람에게서 다시 이런 고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엄마가 널 지켜줄게. 꼭 지켜줄게.”임소미는 그 말을 반복하듯 속삭였다.오늘 밤, 임소미의 마음속에 일어난 파장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다.진영숙이 막말을 퍼붓고 손까지 쓰는 모습을 보며 이유영이 강씨 가문에서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임소미는 문득 깨달았다.사모님의 우아한 모습은 진영숙에게서 찾아보기 힘들었다.불편한 감정이 들 때마다 손부터 나가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과 살아야
이유영이 돌아오고 그녀는 진영숙과 임소미 사이에서 벌어진 격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 명의 도우미가 진영숙을 붙잡아 끌어내고 있었다.임소미의 얼굴은 창백했고 가슴은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그녀는 순간적으로 분노가 솟구쳤다.임소미는 이유영을 보자마자 재빨리 붙잡고 말했다.“너 먼저 위로 올라가.”“무슨 일이 있었어?”이유영이 물었다.정씨 가문에 돌아온 지 오래된 만큼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우아하고 온화한 사람인 만큼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임소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진영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이유영, 넌 누가 너한테 눈을 기증해 줬는지 모르지? 강이한이 네게 빚을 졌다고 하지만 사실은...”“입 다물어!”진영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소미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유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서 있었고 진영숙은 여전히 무언가 더 말하고 싶어 했지만 더는 이어가지 않았다.그녀는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이유영을 노려보았고 그 눈빛엔 전례 없는 증오가 서려 있었다.예전에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도 진영숙은 이유영을 이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한 번도 따뜻한 시선을 준 적이 없었다.그리고 지금, 용성시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 증오가 더욱 깊어진 듯했다.“유영아, 너 먼저 위로 올라가.”“엄마.”“올라가!”임소미는 이유영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격하게 소리쳤다.임소미가 이런 식으로 이유영에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의 상황이 임소미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이유영은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말문이 막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뒤돌아 안으로 들어갔다.그 순간, 진영숙은 자신을 붙잡고 있던 도우미들의 손을 뿌리치고 이유영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이유영, 강이한은 너에게 빚진 게 없어. 강이한은 오히려 너 때문에 모든 걸 잃었어. 너야말로 가장 잔인한 사람이야. 네 눈조차..
임소미는 혈압이 치솟았고 화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내 말이 틀렸나요?”“틀렸냐고? 제대로 된 일을 한 적은 있고? 당신만 제대로 된 선택을 했더라면 유영이와 강이한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거야.”임소미는 참았던 감정을 폭발시키며 격렬히 외쳤다.진영숙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임소미의 말이 맞았다. 진영숙은 두 사람 관계에서 많은 잘못을 했다.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강이한은 사라졌고 강서희도 여전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남은 건 오직 월이 뿐이었다.오늘 이곳에 와서 월이를 보게 된 순간, 월이를 자신의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자리 잡았다.“사람 불러!”임소미가 크게 외치자 집사들과 도우미들이 급히 달려왔다.“이 여자를 당장 내쫓아!”“당신이 감히 그럴 수 있을까?”“뭐라고?”임소미는 잠시 귀를 의심했다.‘이 여자는 지금 도대체 뭐 하려는 걸까?’조금 전 아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을 보며 아이에게 조금의 정이라도 남아 있는 줄 알았다.하지만 모든 것은 착각에 불과했다.결국 그녀는 후회라는 감정을 모르는 인간이었다.진영숙이 오늘 여기 온 것도, 월이에게 다정하게 굴었던 것도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한 마지막 발악이었다.그녀의 말은 그저 그럴싸한 포장일 뿐 사실은 월이를 자신의 곁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리고 뻔뻔하게도 무례하기까지 했다.진영숙은 임소미의 눈을 응시했다.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따뜻함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매서운 날카로움뿐이었다.그녀는 침착하게 말했다.“우리 아들이 왜 서주를 떠났는지 내가 정말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임소미, 당신들은 정말 단 한치의 양심 가책도 못 느꼈어?”왜 강이한이 서주를 떠났는지 시간대와 상황을 조합해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추측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특히 떠나기 전, 시윤이 건넨 말이 결정적이었다. 이유영이 용성시에서 수술을 받았던 그 시기에 강이한은 서주에
강이한은 그렇게 어둠 속에서 절망의 고통을 몸소 겪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괴로워도 수술을 받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한때 이유영이 어둠 속에서 얼마나 무섭고 무력했는지를 그는 이제서야 조금씩 체감하고 있었다....파리에서 진영숙은 다시 백산 별장을 찾았다. 여전히 강이한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시윤은 강이한이 이정과 신시욱을 데리고 떠났다고 말했다.그 두 사람의 능력을 생각하면 강이한이 스스로 나타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그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진영숙은 어머니로서 절망에 가까운 마음으로 그를 수소문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그리고 알면 알수록 그녀의 마음은 점점 더 불편해졌다.“정말이지, 당신은...”백산 별정까지 찾아온 진영숙의 뻔뻔함에 임소미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굳은 표정으로 응수했다.진영숙은 한때 유능한 여성이었고 그런 그녀에게 감히 저런 얼굴을 하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녀에겐 익숙하지 않은 대우였다.“저는 아무것도 없어요. 저 좀 봐주세요.”그녀의 목소리에는 전에는 없던 고통이 서려 있었다.그렇다. 지금의 진영숙에겐 주변에 기댈 친척도 함께할 가족도 없었다. 그녀의 앞에 있는 건 손녀인 월이 뿐이었다.오늘도 그녀는 월이를 위해 여러 장난감을 준비해 왔지만 임소미는 그 모든 행동이 불쾌하게만 느껴졌다.“당신도 어머니였잖아요. 제 마음이 얼마나 불편한지 알잖아요.”임소미는 차가운 목소리로 잘라 말했다.‘봐준다고? 당신이었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이유영이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 진영숙은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심지어 뱃속의 아이조차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 이토록 헌신적인 할머니 행세를 하니 임소미는 화가 났다.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극으로밖에 안 보였다.진영숙의 눈엔 고통이 어렸다.“저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어요.”임소미의 말에 그녀는 도무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아무리 자존심 강한 진영숙이라 해도 진실을 알게 된 지금, 과거
그녀는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강이한을 떠난 뒤 어둠 속에서의 삶을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고 있었다.신시욱과 이정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침묵에 잠겼다. 그 질문은 그들 사이에서도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기 때문이었다.이유영이 그때 얼마나 오랜 시간을 그렇게 보냈는지, 사실 그들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또렷하게 남아 있는 건 그녀가 깊은 괴로움 속에 잠겨 있었다는 사실뿐이었다.그리고 그녀가 괴로워할수록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의 고독이 얼마나 잔혹한 감정인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그녀는 깊은 절망 속에 빠져 있었다.그리고 지금의 강이한은 어쩌면 그때의 이유영보다 더한 심연 속에서 절망을 겪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벌하고 있었다. 그녀가 겪었던 고통을 똑같이 겪기 위해 같은 어둠 속에 몸을 던졌다.“선생님. 각막 이식 수술 관련 소식이 들어왔습니다.”신시욱은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천시에 머무는 동안, 신시욱과 이정은 한 번도 수술 신청을 멈춘 적이 없었다.그들은 강이한을 잘 알고 있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지만 이유영이 원하지 않는 일이라면 그도 절대 강행하지 않았다.이유영이 시력을 잃었을 때, 그녀는 가족들이 몰래 준비했던 이식 수술조차 그녀는 단호히 거절했었다.그리고 지금의 강이한도 마찬가지였다.오랫동안 기다려 온 기회 앞에서 강이한은 조용히 거절했다.“필요 없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두 사람은 말문이 막혔다.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던 두 사람은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필요 없다고? 그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선생님.”신시욱의 목소리는 긴장감에 더욱 떨려왔다.그 어떤 강인한 남자라고 해도 이 순간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떨림을 억누를 수 없었을 것이다.최근 며칠간 그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두 사람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강이한은 자신을 벌하며 살고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정말 이미 충분했다.‘받아야 할 벌은 다 받았는데 왜 여전히 자신을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어둠 속에서 지낸 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어둠 속에서 사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새들의 지저귐이 더 또렷하게 들리고 사소한 바람 소리 하나에도 감각이 예민해졌다.강이한은 우천시에 있는 주택 마당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우천시에 오늘같이 이렇게 따스한 햇살이 비추던 때가 언제였던가?이정이 조심스레 다가와 담요를 덮어주며 말했다.“햇살은 있어도 아직은 쌀쌀하네요.”말은 없었지만 강이한은 이정의 발걸음 소리와 숨소리로 그가 신시욱이 아님을 알아차렸다.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그때의 이유영도 지금처럼 감각이 예민했을까?“이정.”“네.”“유영이는 이 마당이 어떤 모습인지 전혀 보지 못했겠지?”“네.” 이정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이유영은 이곳에서 몇 개월을 머물렀지만 실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이 마당은 끝내 그녀에게 낯선 곳으로 남게 되었다.지금 그녀를 우천시로 다시 데려온다 한들 스스로 길을 찾아올 수도 없을 것이다.강이한은 낮게 중얼거렸다.“하지만 유영이는 이 마당에 뭐가 있는지는 알고 있었어.”그렇다. 보지 못했어도 그녀는 감각으로 모든 것을 구분했다. 마치 지금의 강이한처럼.이정이 조심스레 물었다.“이럴 가치가 있었습니까?”그가 이곳에 온 이후, 누군가가 처음으로 던진 질문이었다. 그는 말할 수 없이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가치가 있었는지는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야.”그것은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그리고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유영에게 진 빚은 결코 눈 한 쌍으로는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이건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다.예전에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던 이유영의 손짓을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졌다. 지금 자신이 어둠 속에서 겪고 있는 공포는 당시 그녀가 느낀 감정에 닿을 수조차 없었다.점심 식사 시간.“쨍그랑.”강이한이 손을 뻗는 순간, 접시와 그릇이 떨어지며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공기는 순간 얼어붙었다
이유영은 자신의 몸에 강이한과 관련된 어떤 흔적도 남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남은 인생에서도 강이한과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얽히는 일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월이의 일로 인해 그녀는 너무도 깊은 상처를 입었고 강이한을 평생 용서할 수 없었다.그런 사람의 눈을 자신이 기증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그리고 강이한 역시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수술 전에 모든 철수 준비를 마친 것이고 이유영에게는 아무것도 알리지 말라고 지시했다.이미 많은 상처를 준 이후, 아무리 많은 것을 베푼다 해도 이유영의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자신과 이유영 사이에는 어떠한 선택지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래서 과감하게 그녀의 손을 놓은 것이다.‘이렇게 되면 두 사람 사이에 더 이상 빚진 것이 없게 되는 걸까?’하지만 단순히 눈을 기증했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유영아, 왜 강이한에 관해 묻는 거야? 혹시...”소은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결국 그녀는 언제나 이유영 편이었다.특히 수술 전, 마지막으로 강이한을 마주했을 때 그가 남긴 말을 들은 후로 그녀조차도 강이한을 용서할 수 없다고 느꼈다.“나랑 장난해?”소은지의 말에 이유영의 표정은 단숨에 싸늘해졌다.그 차가운 기색을 확인한 소은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렇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래, 그렇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소은지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나는 그냥 권력에 그토록 집착했던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서주를 내려놓았는지 궁금했을 뿐이야.”“음모일지도 모르지.”소은지는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화제를 서둘러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 했다.“...”‘음모’라는 단어에 이유영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소은지는 그녀의 웃음을 보고 또 한 번 안도했다.“ 월이 보러 왔을 때, 그 사람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뭐라고 했는데?”“일어날 일은 언제든지 다시
강이한은 서주에서의 모든 일을 철수하고 사라졌다. 그와 함께하던 사람들도 함께 자취를 감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그저 강이한의 또 다른 속임수일 거라고 생각했다.강이한과 박연준, 두 사람은 누군가를 철저하게 속이는 데에 능숙한 사람들이었다.박연준은 진짜로 서주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었고 진영숙은 파리에서 집요하게 강이한의 행방을 묻고 다녔다. 그걸 보며 이유영은 강이한이 정말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무슨 생각해?”반산월에서 소은지는 이유영의 어두운 얼굴을 보고 조심스레 물었다.이유영은 고개를 들며 말했다.“은지야.”“응?”“어떻게 된 거라고 생각해?”서주의 현 상황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았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이유영은 점점 확신에 가까워졌다.강이한은 정말 그의 사람들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그는 마치 세상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 듯했다.권력을 중시하던 인물이었기에 은둔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강이한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로 조용히 지낼 성격이 아니었다.“뭐라고?”소은지는 이유영의 갑작스러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듯 되물었다.이유영은 소은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강이한이... 정말 사라졌어.”“그래. 그 얘기 예전에도 했었잖아.”이유영이 이제서야 이 사실을 믿게 되었다는 것을 소은지는 알아챌 수 있었다.예전엔 믿지 않았던 이유영의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녀는 강이한의 실종을 인정하고 있었다.강이한과 박연준은 이유영의 마음속에서 그리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연서의 사건이 터진 이후, 그녀는 두 사람을 음모로 가득 찬 사람들로 생각했고 그래서 처음 강이한이 사라졌다고 했을 때도 이유영은 그것을 단순한 음모의 연장이라 여겼다.두 사람은 늘 서로 무관한 척 행동했지만 그 뒤에는 누구도 상상 못 할 거대한 연관성이 있었던 것이다.신지수는 여러 번 전화를 걸어왔다.강이한이 서주를 떠난 후, 신씨 가문도 연쇄적으로 피해를 보았고 그녀는 그 일을 처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