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서 결혼한 남편과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여자가 안타까웠다.망막을 이혼 조건으로 내걸다니! 그건 빌려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이런 남자를 남편으로 맞은 유영이 안쓰러웠다.그 시각, 강이한의 본가에서도 싸늘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오늘 아침, 진영숙은 유경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어제 일로 사과하려고 전화한 건데, 전화를 받은 유경원의 모친은 돌려서 이 결혼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한지음 이 나쁜 년이!”굳이 이유를 묻지 않아도 한지음의 등장이 유경원 일가를 불쾌하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아직 이혼도 하지 않은 강이한이 와이프와 불륜녀를 둘 다 데리고 가족 행사에 참석한 일은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일이었다.세강의 세력이 워낙 막강해서 어떻게든 그들과 연을 맺고 싶어하는 가문이 많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아무리 재벌가가 정략결혼을 중시한다지만 딸을 귀하게 키운 집안이라면 당연히 이런 가문에 딸을 시집 보내는 게 달가울 리가 없었다.진영숙은 유경원의 가문이 마음에 들었다. 청하시에서 세강과 비등비등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고 유경원 본인의 조건도 재벌가 며느리가 되기에 완벽했다.그런데 전에 했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다.“됐어, 엄마. 화 풀어. 저쪽 집안도 너무하네!”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강서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겉으로는 진영숙을 위로하는 척했다.진영숙은 화가 치밀었지만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했다.“그쪽에서 잘못한 게 아니야. 다 그 한지음 때문이지!”딸을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생각하면 유경원 모친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구라도 귀하게 키운 딸을 사생활이 문란한 남자에게 시집 보내기 싫을 것이다.좋은 남편을 만나야 딸이 행복할 수 있다는 건 모든 엄마들이 아는 사실이었다.아들인 강이한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지만 최근 그가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졌다.“대체 한지음 걔를 왜 그렇게 신경 써주는 거야? 그래 봐야 비서실 직원이었을 뿐이잖아. 굳이 이한이
진영숙은 절대 한지음을 용납할 수 없었다.그녀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안 되겠다. 병원에 다녀와야겠어.”“같이 가, 엄마.”강서희의 두 눈이 간사하게 빛났다.이 판에 한지음을 끌어들인 건 강서희였다. 그랬기에 한지음의 생각에 대해 그녀보다 잘아는 사람은 없었다.이제 유영을 해결했으니 한지음도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었다.하지만 그녀의 생각과는 다르게 진영숙은 고개를 저었다.“넌 집에 있어. 네가 끼어들 상황이 아니야.”싸우러 가는 현장에 어릴 때부터 애지중지 키운 양녀를 데려가고 싶지는 않았다.아주 오래 전부터 진영숙은 나름 최선을 다해 강서희의 보호막이 되어주었다.“알았어.”고집을 부릴 상황이 아니었기에 강서희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진영숙이 떠난 뒤, 강서희의 입가에 진한 비웃음이 드리웠다.뒤에서 아줌마가 다가오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아가씨, 디저트를 새로 만들었는데 드셔보실래요?”“좋죠.”강서희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이 집에서 가장 까탈스러운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강서희였다. 고용인들이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버럭 화를 내던 그녀였다.하지만 왕숙은 달랐다. 진영숙이 가장 신임하는 고용인이었기에 강서희는 왕숙에게만큼은 예의를 갖춰서 대했다.“맛있네요.”“맛있으면 많이 드세요. 여기 코코넛 밀크도 있어요. 피부에도 좋다잖아요.”“고마워요, 아줌마.”“어서 들어요.”왕숙은 인자한 얼굴로 강서희를 바라보았다.한편, 유영은 씩씩거리며 스튜디오로 돌아왔다.조민정이 다가오며 물었다.“괜찮아요?”“네, 괜찮아요.”괜찮다고는 했지만 사실 속은 이미 뒤집어진 상태였다. 남자의 냉철함을 이미 경험해서 아는 그녀였지만 망막 기증 얘기를 다시 꺼냈을 때 저도 모르게 긴장되고 온몸이 떨려왔다.그 한마디로 인해 그에게 남았던 마지막 미련마저 사라지게 만들어 버렸다.지난 생에서 그랬듯이 결국 똑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민정 씨.”“네, 듣고 있어요.”“강서희 사생활 좀 조사해 줘요.”만약 강이한이
조민정이 나간 뒤, 유영은 사무실 전화로 정국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까 강이한의 회사에서 핸드폰을 박살냈을 때 전화가 걸려와서 못 받은 것 같았다.“외삼촌.”수화기 너머로 정국진의 진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영아, 한지음 걔 좀 이상해.”“뭐가요?”“둘이 전에 만난 적 없는 게 확실해?”“네, 확실해요.”그 사고가 있기 전까지 유영은 한지음을 만난 적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그럼 다시 확인해 봐야겠구나.”“무슨 문제라도 있어요?”유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한지음 걔 일부러 너만 물고늘어지는 것 같은데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그러고 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납치사건부터 시작해서 여론전, 그리고 망막 기증을 강요하는 것까지 모든 화살이 유영을 겨냥하고 있었다.“제가 그만큼 미운 거겠죠.”어제 한지음을 만났을 때 그녀가 하는 말을 듣고 무언가 느끼는 게 있었다.그래서 일이 그녀가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다.“단순히 강이한을 좋아해서 그런 거라면 이혼만 하면 끝나는 일인데 굳이 망막까지 요구할 필요는 없었어.”정국진이 심각한 말투로 말했다.전화기를 잡은 유영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정국진은 계속해서 말했다.“어쩐지 너한테 보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지난 생에서도 한지음은 끝끝내 유영을 죽게 만들었다. 하지만 유영은 한지음의 동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전에는 진짜 접점이 없었는데요.”학창시절에도 그랬고 사회에 나와서도 한지음이라는 인물을 만난 적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알았어. 내가 더 조사해 볼게.”정국진이 말했다.이미 어느 정도 단서는 확보한 상태였다.한지음의 의도를 알았다면 이제 그 동기를 알아볼 차례였다.얼핏 보면 남자를 두고 치정극을 벌인 것 같지만 정말 그랬다면 유영이 이혼을 선언한 순간부터 멈추어야 했다.하지만 한지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줄곧 망막 기증을 빌미로 유영에게 압력을 가
“이대로 상처를 내버려두면 환자 생명까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예요.”의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강이한은 귀에 이명이 들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조금만 더 기다려봅시다!”말은 그렇게 해도 산 사람에게서 기증을 받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곧 죽을 사람이라고 해도 가족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강이한이 암울한 기분에 빠져 있을 때, 진영숙이 다가와서 의사에게 말했다.“선생님은 먼저 나가 있어요.”“네, 사모님.”의사는 진영숙의 기세에 눌려 고개를 푹 숙이고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왜 이렇게까지 걔를 챙기는 거야?”의사가 자리를 비운 뒤, 진영숙은 다짜고짜 강이한에게 따져 물었다.최근 들어 강이한이 한지음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데 대해 이미 불만이 많았던 진영숙이었다.강이한은 어머니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낫게 해줘야 하니까요.”“그렇다고 네가 친히 나설 이유는 없잖아.”안 그래도 한지음이 거슬리는데 강이한이 이렇게까지 감싸고 돌자 진영숙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그녀는 당장이라도 아들에게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강이한은 고집스럽게 말했다.“어머니는 상관하지 말고 일단 돌아가세요.”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안 그래도 화가 나 있던 진영숙인데 아들이 이런 태도를 보이자 점점 더 짜증이 치밀었다. 그녀는 길게 한숨을 쉬고 정색하며 말했다.“넌 집으로 돌아가. 차라리 엄마한테 맡겨.”진영숙의 태도는 강경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더 이상 아들의 행동을 방관할 수 없었다.유경원 모친에게 거절당한 일을 생각하면 한지음을 당장 청하에서 쫓아내도 모자랐다.“또 무슨 일을 벌이려고 이러세요?”강이한이 싸늘한 눈빛으로 모친을 바라보며 물었다.말투에서 깊은 짜증이 묻어났지만 진영숙은 물러서지 않았다.“너 엄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아직도 부족하세요? 엄마는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아요?”“얘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가 뭘 어쨌다고?”강이한이 버럭 고함을
강이한은 엄마를 바라보며 실망감이 커져만 갔다.언제부터 엄마가 이렇게까지 냉철하게 변했을까? 그가 어렸을 때는 종종 복지센터로 가서 자원봉사도 했었던 사람이었다.강서희는 보육원에 봉사하러 갔다가 입양한 아이였다. 비록 양녀로 들였지만 진영숙은 친딸처럼 그녀를 아껴주었다.“왜 이렇게 변했나요?”한참이 지난 뒤, 강이한이 실망한 어투로 물었다.갑자기 달라진 아들의 태도에 진영숙이 당황했다.분노에 이성을 잃어서 말이 좀 심했던 건데 갑자기 정신이 확 들었다.진영숙은 눈을 질끈 감고 분노를 억눌렀다.그리고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이한아, 나도 그 아이의 처지가 안타깝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걸 다 네가 떠안을 필요는 없어. 안 그래?”평생 옆에 끼고 살 게 아니면 차라리 관심을 주지 않는 게 나았다.세강의 이미지를 생각해서라도 장님을 며느리로 들일 수는 없었다.강이한은 말없이 모친을 빤히 바라만 보았다.진영숙이 계속해서 말했다.“너 잊었어? 나랑 네 아버지가 여기까지 오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세강은 전대 회장이 돌아가고 방계 가족들과 치열한 경영권 다툼을 겪었다. 집안 싸움에 회사가 공중분해 될뻔한 것을 겨우 살려냈다.강이한이 그만큼 능력이 뛰어났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그때 진영숙은 다른 가문들과 암암리에 정략결혼을 약속해서 세강의 입지를 다졌다. 그때부터 그녀는 정략결혼이 가져다 주는 이득에 맛을 들였다.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것도 좋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가문에 도움이 된다면 더 좋은 일이 아닌가.그래서 강이한이 유영을 데리고 왔을 때 그토록 그녀를 싫어하고 배척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한지음의 존재는 더 받아들일 수 없었다.엄마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강이한의 표정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세강이 여기까지 오는데 풍파가 적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초기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여기까지 왔고 그가 그룹 경영을 맡으면서 비로소 입지를 튼튼히 다질 수 있었다.“이한아, 엄마도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사람은 멀리
강이한에게는 유영에게조차 말하지 않은 과거가 있었다.그가 가장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었다.그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던 그때를 평생 잊을 수 없었다.강이한은 한지음이 예뻐서, 그녀에게 반해서 잘해준 게 아니었다. 한지음이 세강에 입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아픈 과거와 연관이 있었다.그때 강이한의 할아버지가 돌아가고 방계 친척들의 물밑 공격이 시작되었다.진영숙도 그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전대 회장이 세상을 뜨고 회사의 주주들과 지분을 보유한 방계 친척들은 합세해서 세강을 차지하려고 했다.그들은 어린 강이한을 납치하고 강이한의 아버지에게 경영권에서 물러나라고 협박했다.강이한은 가까스로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한 소년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그 사고가 있은 후, 가족들은 소년의 가족을 찾아가서 보상을 해주려 했지만 강이한에게서 그 아이가 고아라는 말을 들었다.강이한은 침통한 얼굴로 진영숙에게 말했다.“한지음 걔는… 지석이 동생이에요.”진영숙의 눈빛이 심하게 요동쳤다.“너 뭐라고 했어?”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강이한을 바라보며 다급히 물었다.강이한은 침통한 얼굴로 대답했다.“저도 우연히 알았어요.”“그때는 걔가 고아라고 했잖아.”“동생이 있는데 행방불명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계속 그 아이를 찾고 있었어요.”강이한은 일부러 그 사실을 가족에게 숨겼던 것이다.진영숙은 손발이 떨려왔다.지금 강이한이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을 수 있었던 건 모두 한지석 덕분이었다.그래서 모든 걸 잊어도 세강의 사람이라면 한지석은 잊을 수 없었다.그런데 한지음이 그의 동생이었다니!“지석이 동생이라고? 확실해?”진영숙이 확실치 않은 얼굴로 다시 물었다.한지음에 대한 진영숙의 생각이 바뀌고 있을 때, 유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에 몰두했다.점심을 조민정과 대충 때우고 업무에 열중하는데 문 비서에게서 연락이 왔다. 박연준이 식사를 같이 하자는 요청이었다.유영은 그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그래서 모든 일정을 미루고 박연준과
유영은 당황한 얼굴로 상대를 바라보았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녀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그 사람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에요?”둘의 관계를 생각해 봤을 때 절대 좋은 말이 나올 수 없는 관계였다.“꼭 그렇지만은 않아요.”박연준이 말했다.최근 유영과 강이한의 이혼설은 청하시 사람들의 관심사였다.그들의 이혼을 바라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그런데 강이한에 대해 좋게 말한 사람이 그의 오랜 라이벌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그렇게 비교해 보니 강이한이 더 속 좁은 인간으로 보였다.“저와 그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정말 되돌릴 여지가 있었더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죠.”유영이 아픈 표정으로 말했다.박연준은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로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남자의 눈동자에 유영의 슬픈 얼굴이 담겼다.강이한과 이혼 싸움을 하면서 그녀는 항상 강압적이고 당당한 태도를 유지했다.그런데 모든 가면을 벗어 던진 그녀에게서는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이 느껴졌다.박연준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그러네요. 둘이 오래 사귀고 결혼했다는 말은 들었어요.”10년의 사랑, 그건 전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그들이 헤어지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사랑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10년을 함께한 커플마저 마지막이 이토록 진흙탕 싸움인데 세상에 과연 변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게 존재할까?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유영은 묵묵히 고기를 입안에 넣고 잘근잘근 씹었다.입맛이 썼다.“그래요. 10년을 함께했죠.”그녀는 다시 지난 생 같은 고통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불 타서 죽어갈 때 그 절망적인 감정은 지금도 생생하다.그 경험이 없었더라면 아마 지금처럼 단호하게 이혼을 주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매정해 보일지라도 그녀에게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아무도 그녀의 선택을 비난할 수는 없었다.식사가 끝난 뒤, 둘은 함께 동교 개발 현장으로 갔다. 늦은 시간임에도 현장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지난번에 이 남자 때문에 직장을 잃을 뻔한 걸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렸다.그 로펌은 그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찾은 직장이었고 지금까지 성징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녀의 노력과 피땀이 작용했다.만약 정말 피치 못할 사정으로 로펌을 나오게 된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과 같았다.소은지는 처음부터 이 재벌가 도련님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자신의 이득만을 쫓으며 서민의 생계를 아무렇지 않게 짓밟는 이들을 보면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그들이 사는 세상에는 평등과 존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더 혐오스러웠다.강이한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그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조형욱에게 전화를 걸었다.“네, 대표님.”“이유영 지금 어디 사는지 당장 알아봐.”남자의 싸늘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조형욱에게 전해졌다.홍문동을 나간 뒤로 줄곧 소은지의 오피스텔에 같이 사는 줄로만 알았는데 또 어디로 갔는지 궁금했다.그는 저도 모르게 해외 기사를 떠올렸다.소은지네 집에서 나갔다면 지금은 어디로 갔을까?생각할수록 의심만 깊어졌다.잠시 후, 조형욱에게서 답장이 왔다. 유영이 순정동에 산다는 소식이었다.보고를 들은 순간 강이한의 분노가 폭발했다.“지금 순정동이라고 했어?”“네, 옮긴지 좀 된 것 같아요.”조형욱이 말했다.순정동 땅이 얼마나 비싼지, 강이한은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그곳에 저택을 구매하기 위해 수많은 인맥을 동원했는데도 구매하지 못한 땅이었다.그런데 유영이 순정동으로 이사했다니!대체 그 집 주인이 누굴까?“그 집 누구 명의로 되어 있어?”강이한이 이를 으드득 갈며 물었다.순정동 집주인의 신상은 여태 공개된 적 없었다.그래서 아무리 능력 좋은 조형욱이라고 해도 단기간에 알아내는 건 불가능했다.“당장 그것부터 조사해!”강이한이 차갑게 명령했다.전화를 끊은 강이한의 주변으로 싸늘한 냉기가 스멀스멀 풍겼다.대체 무슨 재주로 순정동에 들어갔을까?그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그의 두 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