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지막한 목소리가 폭죽 소리에 파묻혔다. 적잖은 사람들이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바깥으로 뛰어나왔다.장소월은 마지막으로 손바닥에서 녹아내린 눈송이를 말아쥐고 어두운 밤공기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등 뒤 화려한 불꽃은 그녀와 아무 상관도 없는 것처럼 고요함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갔다.그 불꽃놀이보다 장소월은 혼자 있는 게 더 좋았다. 예전엔 혼자가 싫었지만, 지금은 결국... 그녀 혼자만 쓸쓸히 남게 되었다.장소월은 목수건을 얼굴에 감싸고 시끌벅적한 번화가를 거닐었다.저녁 12시였지만, 여전히 수많은 오고 가는 사람들로 붐비었다...그녀가 기억하기로 예전 이 시간 서울 거리엔 별로 사람이 없었다.고개를 들어보니 거리는 설날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조용한 좁은 길을 선택했다.폭죽 소리는 그녀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검은색 차량 한 대가 천천히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장소월은 고개를 숙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느끼지 못했다.그녀가 좁은 골목길에 발을 들인 순간, 눈부신 상향등이 돌연 그녀의 등을 비추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걸음을 멈추지 않고 더욱 어두운 곳으로 걸어갔다.차 경적이 울렸음에도 그녀는 못 들은 척했다.얼마 후, 장소월의 눈에 자신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남자가 들어왔다.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그녀의 청초한 눈동자가 눈송이보다도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장소월은 그의 반대로 방향을 틀어 한 걸음 한 걸음 그와 멀리 떨어졌다...‘전연우, 넌 지금 모든 걸 다 가졌지만 무언가를 더 찾고 있어.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절대 손에 넣을 수 없을 거야.’‘전연우... 나 사실 마음 놓은 지 오래야. 더는 너 미워하지 않아.’‘예전엔 너 자체가 내 세상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넌 그저 보통 사람에 불과했어.’장소월은 스스로 택시를 잡아 남원 별장에 돌아갔다.도우미가 그녀를 마중 나왔다.“사모님, 드디어 오셨군요. 얼른 대표님한테 전화하세요. 대표님께서 너무 걱정하
현재의 그녀는... 모두 해탈한 사람처럼 태연하게 그와 마주한다.이제 그녀 얼굴에 서려 있던 증오까지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장소월은 그를 공기 대하듯 무시하고 마른 수건 하나를 잡아 방을 나가 침실이 아닌 화실로 향했다.오늘 밤 장소월은 한동안 야근해야만 마지막 프로젝트를 깔끔하게 완성할 수 있다.전연우는 술기운이 올라온 탓인지 가슴이 더 격렬하게 일렁거렸다. 줄곧 애써 유지해왔던 통제력도 그녀가 자신을 무시한 채 돌아서 버린 순간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그가 돌연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장소월이 들고 있던 붓을 빼앗았다. 그렇게 실랑이를 하는 바람에 종이가 절반으로 찢어지고 말았다.“너... 뭐 하는 거야!”장소월은 몸 전체가 창가로 확 밀려버렸다. 반응하기도 전에 그가 강제로 키스를 퍼부었다.장소월은 눈앞의 사람을 밀어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역시나 역부족이었다.그저 이 역겨움을 참아내며 그가 멈추기를 기다릴 뿐이었다.반항하던 힘이 점점 사그라들자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 꼭 감은 두 눈과 깊게 찌푸려진 눈썹이 그의 시선 속에 들어왔다. 반항 대신 결국 타협하는 쪽으로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모습이었다.그 모습에 가슴속에서 활활 타오르던 전연우의 불꽃은 조금씩 조금씩 꺼져버렸다.순간 전연우는 이제 그 무엇으로도 그녀를 통제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아이 역시 그녀에게 아무런 작용을 하지 못한다.전연우가 더는 움직이지 않자 장소월은 곧바로 그를 밀어냈다. 순간 위 속 깊은 곳에서부터 역겨움이 올라와 더는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뛰어가 미친 듯이 구토했다.장소월은 변기를 잡고 앉아 조금 전 마셨던 생강차를 모두 토해냈다.전연우가 가까이 다가오자 장소월은 팔을 뻗어 그를 멈춰 세웠다.전연우는 3보 떨어진 거리에 서서 괴롭게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녀의 등을 바라보았다.속 안 모든 음식물을 토해낸 탓에 온몸에 힘이 풀린 그녀는 자리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 전연우는 그녀를 안아 침대에 눕혔다.그녀는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성세 그룹이 어떻게 되든 장소월은 관여할 수 없다. 그의 옆엔 송시아 한 명만 있으면 충분하다.또한 장소월의 일에 관해서도 전연우는 종래로 무어라 말하지 못한다. 그 역시 장소월의 몸이 성치 않다는 것을 알기에 충분히 휴식해야 한다는 당부만 할 뿐이었다.오늘은 그녀가 가장 늦게까지 일한 날이었다. 작업을 끝마치고 나니 바깥에서 해가 밝아오고 있었다.화상 회의는 아직 진행되고 있었다. 장소월, 박원근, 주시윤 외 다른 사람들은 늦게까지 회식하는 바람에 어젯밤 야근엔 참여하지 않았다.박원근이 말했다.“소월아, 이제 그만하고 들어가서 쉬어! 나머지는 우리가 할게.”“괜찮아요. 이제 조금 밖에 안 남았잖아요.”끝마치고 같이 쉬면 된다.주시윤이 말했다.“나 아침 식사 준비했는데 소월이 집은 너무 멀어서 보내지 못했어. 다음에 기회 되면 같이 먹자.”“네. 그래요.”“요즘 배달 어플이 잘 되어 있어서 30분이면 집에 도착하더라고.”음식을 주문하자마자 주시윤의 얼굴이 다시 화면에 나타났다.“원근 선배, 큰일 났어. 소희랑 정현이가 알코올 알레르기 때문에 병원에 실려 갔대.”“뭐라고? 대체 어떻게 된 거야?”장소월도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아직은 잘 모르겠어. 병원에서 방금 나한테 전화 왔어.”장소월의 목소리가 영상 속에서 흘러나왔다.“제가 먼저 알아볼 테니까 선배님들은 계속 작업 완성하세요.”박원근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내가 같이 갈게.”박원근은 밤새 휴식 없이 일한 그녀가 걱정되어 함께 가기로 마음먹었다. 또한... 작업실 총 관리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직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못 본 척할 수가 없다.“그래요.”장소월은 자리에서 일어선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빠르게 책상을 잡지 않았다면 의식을 잃고 쓰러져버렸을지도 모른다.그녀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침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패딩을 집어 들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밥상을 차리고 있던 도우미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사모님, 오늘 왜 이렇게 일찍 깨셨어요? 밖에 나가시려
그녀가 시선을 거두고 그의 눈길을 피했다.“전연우... 제발 다른 사람 하찮게 여기는 그 더러운 습관 좀 버려. 그 사람들 목숨도 똑같이 소중해! 앞으로 다른 사람이 날 욕하든 말든 상관하지 마! 그건 어디까지나 내 일이니까. 넌 네 회사 일이나 신경 쓰면 돼. 그리고 나 스스로 내 밥벌이는 할 수 있으니까 절대 너한테 손 안 내밀어.”장소월이 그의 손을 뿌리쳤다.“난 방에 들어갈게. 아침밥은 혼자 먹어.”그녀는 한 걸음 내디딘 순간 조금의 예고도 없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소월아!”전연우가 곧바로 그녀를 끌어안았다.그의 첫 반응은 그녀의 호흡을 확인하는 것이었다.“당장 구급차 불러요.”도우미가 다급히 대답했다.“네네... 지금 바로 전화할게요.”가만히 있다가 왜 갑자기 쓰러진단 말인가!병원에 도착한 뒤, 서철용은 일련의 검사를 진행했다.“큰일은 아니야. 그냥 좀 피곤했어서 그래.”서철용이 이마를 찌푸리고 전연우를 쳐다보았다.“돈을 그렇게 많이 벌면서 대체 어디에 쓴 거야? 몸이 안 좋다는 거 뻔히 알면서 밤새 일을 하게 만들어? 돈 벌어서 다 송시아한테 주기라도 한 거야?”“나랑 송시아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야. 장소월이 믿지 않으니 나도 이제 방법 없어.”방법이 없다고?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다 나오다니.서철용은 무언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엔 다시 삼켜버렸다. 언젠간 그녀는 반드시 떠날 것이기에 그가 무슨 말을 해도 무용지물일 테니 말이다.“그건 소월 씨가 깨어나면 직접 설명해. 나한테 말하는 건 아무 소용 없어.”“언제면 깨어날 수 있는데?”“조금 더 자면 깨어날 거야. 이 링거 다 맞고 나서 퇴원해.”서철용이 나간 뒤 전연우는 침대 옆에 앉아 장소월을 아프게 지켜보았다.가까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에 그가 눈을 떴다.“대표님, 그 두 사람 이틀 뒤면 퇴원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성세 그룹 입사를 요구해 제가 인사팀 사람을 보냈습니다.”알코올 중독과 성세 그룹에 입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맞바꾼 것, 그들에겐
송시아는 그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한다. 전연우가 관심을 두는 건 그저 그녀 배후의 그 사람일 뿐이다.송시아가 겁도 없이 그의 턱 밑에서 이런 일을 꾸미는 건 분명 성세 그룹을 장악하기 위함이다.그녀를 이대로 놔두는 건 등 뒤의 그 사람이 그녀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송시아의 손이 어디까지 뻗어있는지 지켜보기 위함이었다.지금의 성세 그룹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단번에 먹어버리겠다고?송시아에겐 어림도 없는 일이다.전연우가 침대에 누워있는 장소월을 응시했다.“대체 언제면 나 걱정 안 시킬래.”“넌 나한테 송시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해.”남자의 손이 그녀의 체온을 느끼며 천천히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침대 위 여자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전연우는 그녀를 머릿속에 새기기라도 할 것처럼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그들은 혼인 신고를 했지만 장소월은 줄곧 반지를 끼지 않았다. 그녀가 원하지 않았기에 전연우도 강요하지 않았다.장소월이 깨어났을 때, 날은 어느덧 밝아있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의식을 잃었는지 머리가 어지럽고 목이 바짝 타들어 갔다. 손 하나가 그녀를 부축하자 장소월은 힘없이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귓가에 익숙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왜 아직도 낫지 않는 거야?”“그냥 감기라고 하지 않았어?”서철용이 대답했다.“면역력이 약하다는 거 너도 알잖아. 보통 감기 맞아. 우리도 신은 아니야. 예상과 빗나갈 수도 있어.”그녀 일에 대면한 전연우는 늘 이렇듯 냉정함을 유지하지 못한다. 왜 처음부터 이러지 않았단 말인가.“물...”그들의 실랑이를 들으니 장소월은 머리가 더더욱 지끈거렸다.은경애는 집에 돌아갔다가 장소월이 병원에 갔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다시 돌아왔다.장소월 또한 고작 하룻밤 샌 것 때문에 이렇게까지 오래 누워있을 줄은 몰랐다.시끌벅적한 그믐날도 그녀는 의식을 잃은 채로 보내야 했다.장소월 때문에 성세 그룹에서도 연말 파티를 취소했다.전연우는 스카이 테크놀로지와 계약을 체결한
서철용은 한숨을 내쉬고는 책상 위 종래로 움직인 적 없는 약을 들어 전연우의 손에 쥐여주며 말을 돌렸다.“네 와이프가 약을 제때에 먹지 않아서 하는 말이야. 네가 잘 타일러. 난 이만 빠질게.”그는 전연우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부드럽게 말해. 어린아이한테 하듯 말이야.”틀린 말은 아니다. 전연우는 서른 살 중반이 되었고 장소월은 이제 고작 스무 살을 갓 넘겼다. 삼촌 조카 사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나이 차이다. 하여 늘 공통 화제가 없었기 때문에 전연우는 그녀에게 강요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서철용이 떠나니 병실엔 두 사람만 남았다. 시끌벅적하게 들려오는 불꽃놀이와는 달리 이 좁은 병실에선 숨이 턱턱 막혀오는 분위기가 사람을 옥죄고 있었다. 희미한 조명 몇 개가 병실을 비추었다.장소월은 힘없이 보온병을 들어 자신의 컵에 물을 따랐다. 물은 이미 식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입가에 가져갔다. 전연우가 이마를 찌푸리며 그녀를 제지했다.“누워서 쉬고 있어. 내가 물 끓여올게.”이 자리까지 올라오기 전 전연우는 빛도 들어오지 않는 지하 세계에서 뒹굴며 갖은 고생을 했었다. 심지어... 돈을 벌기 위해 죽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을 겪기도 했다.그는 고급 정장 자켓을 벗고 회색 색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밖에 나가 뜨거운 물을 받았다. 그믐날 저녁이었지만 그 어느 날보다도 쓸쓸했다.왜 하필 이런 때에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단 말인가.장소월은 냉수욕을 한 탓인지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 정신을 차릴 수조차 없었다.전연우가 다시 돌아왔을 때 장소월은 침대 옆에 앉아 고통스럽게 구토하고 있었다.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탓에 나오는 거라곤 시큼한 위산밖에 없었다. 전연우가 다가가 그녀의 등을 두드리고는 입가심할 따뜻한 물을 가져다주었다.입원한 지 5일이나 지났지만 호전되기는 커녕 오히려 점점 더 심각해지고만 있었다.“이런 골칫거리 같으니라고.”오랫동안 애지중지 보살펴 겨우 붙었던 살이 이 짧은 며칠 사이에 다시 빠져버리
“잠시 뒤면 퇴원할 수 있을 거예요.”전연우가 옆에 걸어두었던 정장을 입으며 기성은에게 분부했다.“물건 챙기고 퇴원 준비해.”기성은이 대답했다.“네. 대표님.”전연우가 장소월의 옷을 꺼내자 그녀는 차갑게 거절했다.“나가 있어. 나 혼자 갈아입을 수 있으니까.”“아직 몸도 안 좋은데 내가 해줄게.”장소월은 결국 거부하지 못하고 전연우의 손을 빌려 옷을 갈아입은 뒤 그의 품에 안겨 병원을 나섰다.떠나기 전 서철용이 장소월에게 약 두 개를 건넸다.“저번에 잠을 잘 못 잔다고 했잖아요. 이건 수면을 돕는 약이고 이건 면역력을 높여주는 약이에요.”장소월이 받지 않자 서철용은 약봉지를 뜯어 자신이 한 알 삼켰다. 그렇게 그녀를 안심시킨 뒤에야 그녀의 손을 들어 손바닥에 넣어주었다.“집에 가서 몸조리 잘해요. 밥 잘 먹고 약도 잘 챙겨 먹고요.”서철용이 그녀의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이제 가요.”장소월은 그의 스킨쉽이 싫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전연우가 말했다.“그 손 함부로 움직이지 마.”서철용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족보대로라면 전연우는 응당 그를 형님이라고 불러야 한다.장소월은 무표정한 얼굴로 전연우의 차에 올라탔다. 출발하고 몇 분 뒤 그녀는 창문을 열고 바깥으로 약을 던져버렸다.전연우는 그녀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꼭 잡아 다리 위에 올려놓았다.“약 먹기 싫으면 먹지 마. 널 위해 준비한 새해 선물이 이미 집에 도착해 있어. 당분간은 일 뒤로 미루고 최대한 집에서 너랑 같이 있어 줄게.”“결혼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저번에 너무 성급하게 결정했어.”장소월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창밖을 지나가는 나무와 꽃들만 멍하니 내다보고 있었다. 전연우가 그녀 손등에 키스하고는 깊고도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전연우, 나 엄마한테 인사드리러 가고 싶어.”전연우는 별다른 생각 없이 동의했다.“그래. 기성은에게 준비하라고 할게. 오후에 가자.”장소월은 고개를 돌려
고귀하다고?‘전연우... 전생의 넌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넌 매번 날 더러운 흙더미에 짓밟아 넣었었잖아.’장소월은 그의 목을 끌어안고 몸에 기대어 있었다. 그녀가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저 반항하지 못할 뿐이었다.‘전연우, 예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지금 아무리 잘해준다고 해도 이미 너무 늦었어!’전연우는 그녀가 심심해할까 봐 가끔씩 그녀에게 말도 걸었다. 서철용이 그에게 해준 충고가 효력을 발휘하는 듯했다. 그와 장소월 사이엔 정말로 세대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는 틀림없이 세대차이를 극복하고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그때 가져온 웨딩드레스 다른 사람이 만진 적도 없는 새것이야. 모두 다 내가 직접 디자인했고.”그가... 직접 디자인했다고?장소월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에 반해 전연우의 심장은 침착하고도 묵직하게 뛰고 있었다.“3년 전, 네가 떠나갔을 때...”“만약 송시아에게 마음이 있었다면 절대 인시윤과 이혼하려 애쓰지 않았을 거야. 내가 강씨 집안에 저지른 일은 되돌리려 노력하고 있어. 그리고... 네가 믿을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강영수의 죽음은 정말 나랑 관련 없어. 강씨 저택과 강한 그룹은 모두 인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어. 강한 그룹을 다시 살리겠다고 한다면 난 반대 안 할 거야.”장소월은 눈을 감고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그의 설명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공동묘지에 도착해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두꺼운 눈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지만, 유독 성예진의 묘지만큼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장소월의 얼굴이 약간 발갛게 얼어가고 있었다. 전연우는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며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강영수는 안 죽었어.”장소월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그녀의 눈동자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전연우가 그녀의 손을 들어 올렸다.“요즘 계속 강영수의 유골을 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