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아는 또 소월에게 우유 하나를 주었다.“소월아, 꼭 힘내! 네가 시험 끝내면 우리가 데리러 올게. 저녁에... 큰 서프라이즈를 준비했어!”단모연은 차창에 손을 얹고 소월을 향해 흔들었다.“결과가 어떻든 나랑 허이준은 꼭 널 올해 수능 수석으로 만들 거야. 시장님께서 직접 너에게 상장을 수여하도록 말이야. 힘내!”허이준은 다른 말 대신 그냥 두 글자만 말했다.“힘내.”그들이 차를 몰고 떠나는 것을 지켜본 후에야 소월은 몸을 돌려 시험장에 들어가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도화지에 손이 닿는 순단, 소월은 최대한 마음을 안정시키고는 필을 들었다.저번 생에도 그림을 그리기는 했지만 정식으로 자신의 그림 실력을 검증받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니 긴장되지 않을 리가 없었다.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참 좋아했지만 이상하게도 아버지는 그렇게 반대했었다.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눈을 피해 가만히 그림을 그렸다.그 후... 강영수랑 함께 하고 나서부터 그 누구도 그녀를 막지 못했다. 소월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두 시간 동안의 스케치, 드로잉 등등을 완성한 후, 시험을 마치고나니 시간은 이미 많이 지났다.여섯 시 반, 소월은 시험장에서 나왔다.현아는 예전처럼 그녀를 향해 달려오며 흥분된 목소리로 소월의 이름을 불렀다.“소월아... 소월아... 소월아...”“시험 어땠어? 괜찮아?”소월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짓고는 차분하게 말했다.“내 생각엔 꽤 잘 쳤어. 넘을 수 있을 것 같아.”단모연은 한쪽 팔을 소월의 어깨에 두르면서 입을 열었다.“그럼 우리 이제 축하하러 갈까? 마침 잘됐네. 우리 한동안 제대로 놀지 못했잖아.”소월은 시간을 한눈 보았다.“아, 어쩌지. 난 가봐야 할 것 같아.”단모연: “쯧쯧. 아직 결혼식 올리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단속하니 원...”소월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내가 걱정되었나 봐. 우리 다음에 함께 놀자.”현아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빙그레 웃으면서 소월의 핸드폰을 들
저녁, 허이준이 해산물 구이 가게를 예약했다.가게가 위치하여 있는 대학가는 야시장이 열려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지금은 때마침 바닷가재 철이라 맥주와 함께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단모연이 말했다.“우리 밖에 나가서 먹을까?”소현아가 대답했다,“좋아. 난 상관없어.”장소월도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좋아.”처음 길거리 음식을 먹었던 건 강용과 함께 보냈던 작년 그믐날이었다. 하지만 당일 밤 곧바로 설사 때문에 고생을 했었다.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장소월은 애써 괜찮은 척하며 최대한 조금 먹을 수밖에 없었다.네 사람이 밥상 하나에 둘러앉았다.허이준과 단모연은 한눈에 봐도 처음 온 것 같지 않았다. 곧바로 쟁반 하나를 갖고 가 익숙하게 원하는 구이 재료를 와구와구 담았다. 장소월은 얼마 먹지 못할 것이니 조금만 담았다.네 사람은 추가로 바닷가재 4킬로를 주문했고, 단모연은 맥주 한 상자를 들고 가 자리에 앉았다.“너희 여자애들은 마시지 마. 나랑 이준이만 마실 거야.”장소월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넓은 마당 안 몇십 개의 자리에서 사람들이 시끌벅적 떠들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너희들 여기 자주와?”단모연이 대답했다.“자주는 아니고 가끔씩만 와. 우리 이준 남신께선 피아노 수업과 아르바이트로 스케줄이 꽉 차 있어 학교가 아니면 보지도 못한다니까.”허이준이 밀크티 두 잔을 소현아와 장소월에게 나누어 주었다.“내 마음대로 대충 샀어. 먹어봐.”장소월이 말했다.“고마워... 이거 밀크티야? 나 아직 이거 못 먹어봤어.”소현아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못 먹어봤다고? 거리에 널리고 널린 게 밀크티 가게인데 어떻게 못 먹어봤을 수가 있어. 그럼 빨리 마셔봐. 난 너무 좋아해서 하루에 몇 잔이나 마셔.”“자. 내가 빨대를 꽂아줄게.”소현아가 익숙한 손길로 포장을 뜯고 빨대를 꽂고는 그녀에게 건네주었다.“난 외출을 별로 안 하거든. 아버지께서 반대하셔서 이런 야시장에 온 것도 이번이 두 번째야.”단모연이 탄식을 내뱉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장소월에게로 향했다.장소월이 대답했다.“응. 떠났어.”소현아가 물었다.“그럼 언제 돌아오는 거야?”소현아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번 강용은 농구를 칠 때 그녀의 손에서 막대 사탕 하나를 빼앗아갔었다. 며칠 후 그녀에게 새로 하나 사주겠다고 했으나 지금까지도 미동조차 없다.“나도 몰라. 강용 어머니의 병 치료가 끝나면 아마 돌아오겠지.”단모연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걔가 간 이후로 우리 이준이가 고달파졌어. 책상 서랍에 편지가 가득 쌓여있다니까. 그 소녀들을 피하기 위해 수업에도 별로 안 들어와.”30분이 지나고 8시가 막 지난 시간, 장소월의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화기애애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분위기가 단번에 조용히 가라앉았다.장소월이 핸드폰 화면 속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전화를 받았다.“나 끝났어. 학교 문 앞으로 나 데리러 오면 돼.”“...”“그래. 기다릴게. 조심히 와.”간단한 몇 마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난 이제 가야겠어.”단모연이 말했다.“우리가 학교까지 데려다줄게. 그다음에 현아를 집에 데려다주면 돼.”소현아가 곧바로 손을 저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택시 타고 가면 돼. 이렇게 늦은 시간에 너희들을 귀찮게 할 수 없어.”단모연이 친절한 말투로 말했다.“여자아이가 혼자 택시를 타는 건 위험해. 오늘 차를 몰고 나왔으니까 같이 가자.”장소월도 그녀에게 말했다.“허이준의 차를 타고 가. 아니면 나 걱정돼.”소현아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허이준은 마침 차를 학교 문 앞에 세워두었다.그들이 도착했을 때, 문 앞엔 아무도 없었다.돌연 머지않은 곳 어딘가에서 공포에 질린 목소리가 들려왔다.“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풀숲에서 갈기갈기 찢긴 옷을 입고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남자 한 명이 힘겹게 달려 나왔다. 남자는 다리 한쪽까지 잘려있었는데 아직도 피가 흐르는 걸 보니 잘린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살려주세요. 누가 절 죽이려고
전연우가 별장에서 이런 일을 저지른 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는 종래로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한 사람을 고통에 몸부림치게 만들었다.장소월은 처음엔 너무 무서워 눈물까지 흘렸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어느덧 점차 무덤덤해졌다.그는 처음부터 이렇듯 잔인한 방법으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행했다. 그 손에 묻은 피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만약 그가 언젠가 서울의 패권을 잡게 된다면 그 자리는 수많은 시체를 쌓아 올려 올라가게 된 것일 것이다.시간이 많이 지났기에 대부분의 기억이 흐릿해졌다. 반면 이 복면을 쓴 사람에 대한 기억은 뚜렷했다. 그는 전연우의 수하인 강지훈이라는 사람이다하지만 전연우가 그를 찾은 시간은 3년 후가 아니었던가? 왜 벌써?설마... 모든 일이 앞당겨져 일어나는 건가?장소월은 당황스러움과 걱정에 휩싸였다. 그런 감정이 왜 생겼는지 알 순 없었지만 말이다.전생의 일은 결국 바뀌지 않는다는 건가? 당시의 운명을 바꾼다고 해도 언젠가는 벗어날 수 없는 게 아닐까?죽어야 할 사람은 역시나 죽게 된다!그럼 그녀는?전생의 삶이 되풀이되어 또다시 천명을 다하지 못하게 되는 걸까?진무현은 뒤로 물러서며 손의 칼을 꼭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의 몸 전체는 두려움에 휩싸여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가까이 오지마... 오지마... 난 잘못한 게 없어. 사람 잘못 봤어.”강지훈이 손에 쥐고 있던 몽타주를 들여다보았다.“아니, 내가 오늘 찾을 사람은 너 맞아.”소현아는 곧 눈물이라도 터뜨릴 것처럼 울먹였다.“우리 얼른 가자. 나 너무 무서워.”장소월이 생각에 잠겨 있을 그때, 돌연 비명소리가 귀를 때렸다.“소월아, 조심해!”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누군가에 의해 저만치 밀려났다.허이준이 휘청거리는 그녀를 부축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 남자가 소현아를 감싸 안은 뒤 칼로 목을 겨누고 있었다.진무현이 말했다.“다가오지 마. 경고하는데 조금만 더 오면 이 여자 죽여버릴 거야.”장소월이 소리쳤다.“현아야!”
“강지훈, 저 여자 끌어내.”강지훈은 이어폰으로 명령을 들었지만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장소월이 말했다.“그 아이보다 제 몸값이 더 높아요. 전 장해진의 딸이니까요. 그러니까 현아는 놔줘요.”소현아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 되어있었다.“소월아... 난... 난 하나도 무섭지 않아. 그러니까 오지 마.”“너 저놈들과 한패였구나.”진무현이 원수 보듯 장소월을 쏘아보며 오싹한 웃음을 지었다.“좋아! 네가 와! 허튼짓을 부렸을 때 그 후과가 무엇일지는 잘 알겠지?”“안 돼... 소월아, 안 돼!”장소월이 그녀를 안심시켰다.“괜찮을 거야. 현아야.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게 내가 놔두지 않아.”그때 전연우가 소리쳤다.“강지훈!”모든 사람들이 장소월에게 주목하고 있을 때 강지훈이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저 여자가 죽으면 대표님의 약점도 사라지게 됩니다. 전 그 누구도 대표님의 위협이 되지 못하게 할 겁니다.”“날 배신한 후과가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겠지!”진무현은 8년 전 백윤서를 범한 한 무리의 사람들 중 한 명이다. 당시 전연우는 백방으로 그를 찾았으나 결국엔 놓치고 말았다. 그러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오늘 강지훈의 손에 잡혔고, 때마침 우연히 장소월이라는 기회를 거머쥐게 된 것이다.진무현이 말했다.“좋아. 네가 와. 허튼짓은 부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장소월은 등 뒤에 서 있는 허이준과 단모연에게 눈빛을 보냈다.단모연은 긴장한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장소월이 가까이 다가가자 진무현도 손에 힘을 풀었다. 두 사람이 교환되는 찰나, 복면을 쓴 강지훈이 돌연 입을 열었다.“아가씨의 체면을 봐서 오늘은 이만 물러간다. 최대한 멀리 도망가는 게 좋을 거야. 다시 우리한테 잡히는 날은 오늘처럼 운이 좋지 않을 거야.”말을 마친 뒤 강지훈은 사람들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차, 사람들... 모두 빠른 시간 안에 자취를 감추었다.진무현이 소현아를 놔주고는 돌연 칼을 들고 장소월을 향해 달려갔다.“죽어!”탕!
어느 은밀한 지하실.강지훈이 바닥에 꿇어앉아 누군가의 발에 짓밟혀 있었다. 그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고 가슴팍의 통증을 견뎌내고 있었다.그가 다시 일어서려 바닥에 팔을 짚었으나 허리를 채 펴기도 전에 전연우의 발이 또다시 그의 가슴팍에 내리꽂혔다. 강지훈은 더는 일어서지 못하고 지하실 구석에 나뒹굴었다. 입에선 검붉은 피까지 뿜어져 나왔다.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나서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오늘 어찌 된 영문인지 전연우가 7, 8년 만에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이렇게나 불같이 화를 내면서 말이다.이런 상황에선 그 누구도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들지 못한다.전연우가 오만한 얼굴로 강지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다음은 없어.”그의 몸에서 위험하기 그지없는 날카로운 분위기가 풍겨 나왔다.그때, 마른 몸집의 남자 한 명이 전연우에게 달려와 보고했다.“진무현이 죽었습니다.”전연우가 못마땅한 듯 이마를 찌푸렸다.“누가 죽였어?”남자가 허리를 굽신거리며 말했다.“잘은 모르겠지만 강씨 가문의 차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진무현이 아가씨를 해치려는 그 순간, 한 명이 총으로 진무현의 머리를 쏴 죽였습니다.”지금은 예전처럼 혼란한 때가 아니다. 길 한 가운데서 사람에게 총을 쏘는 일은 강씨 가문 사람이 아니면 그 누구도 감히 하지 못할 것이다.“강씨 집안에서 우리에게 이 일을 추궁하면 어떻게 하죠? 또한... 어르신께서 아가씨가 하마터면 목숨까지 잃을 뻔했다는 걸 아신다면, 우린 다 죽은 목숨이에요.”전연우가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번 일은 내가 해결할 거야. 나머지 둘은 찾았어?”부하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그중 한 명은 저희한테 쫓기다가 차에 치어 절벽 아래로 떨어졌으니 아마 죽었을 겁니다. 다른 한 명은 듣기론 미얀마로 도망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쪽 조폭 세력과 결탁해 있어 저희들이 손을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계속 사람을 시켜 감시해.”“네.”전연우는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진무현이 왜 하
강영수의 얼굴에 예쁜 미소가 빙그레 지어졌다.“알았어. 무엇이든 난 영원히 네 미래를 지지할 거야. 여보.”두 사람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일 메뉴 정하기부터 시작해 졸업 후의 신혼여행까지...강영수가 고개를 숙여 장소월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 그녀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하지만 깊이 잠들지 못한 듯 괴롭게 이마를 찌푸리고 있었다. 폭포같이 늘어뜨린 검은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고 있는 모습에 강영수는 머리카락을 넘겨주고는 입술에 살짝 키스한 뒤 그녀를 안아 자신의 침실로 데려갔다.요즘 두 사람은 거의 한 침대에서 밤을 보낸다. 하지만 진한 스킨쉽은 하지 않는다. 강영수는 포옹만 하는 것으로도 큰 만족감을 느꼈다.그녀는 아직 어리다. 또한 지금까지 이렇듯 오랜 시간을 기다려왔는데 고작 몇 달을 더 기다리지 못하겠는가.장소월은 뜨거운 화로를 안고 있는 듯한 더위에 잠이 깼다. 허리엔 손 하나가 놓여있었고 등 뒤에선 강영수가 그녀에게 밀착해 감싸 안고 있었다. 온몸은 샤워라도 한 듯 흥건히 젖었다.장소월은 그가 행여 잠에서 깰까 봐 걱정돼 조심스레 일어나 슬리퍼를 신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이제 꽤 많이 안정된 듯했다. 곧게 뻗은 다리가 드러나는 긴 티셔츠를 입으니 매혹적인 그녀의 쇄골이 마침 완전히 가려졌다.그때, 탁자 위에 놓고 충전해두었던 핸드폰이 울렸다. 누가 이런 늦은 시간에 전화를 건 걸까. 문득 소현아일 거라는 생각이 든 그녀는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으며 발신자를 살펴보았다.순간 깜짝 놀란 그녀는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장소월이 전화를 받지 않고 수신 거부 버튼을 누르려고 한 순간, 창밖 커튼 사이로 비춰 들어오는 강렬한 불빛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핸드폰 벨 소리는 여전히 울리고 있었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천천히 걸어가 커튼을 열어보니 익숙한 차 한 대가 문 앞에 정차되어 있었다.전연우 미쳤어!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전화가 끊기자 이어 문자가 도착했다.「내려와!」장소월은 핸드폰 화면
장소월이 조명을 껐다. 그가 돌아갔는지 가지 않았는지는 모른 채 말이다.혹시라도 그가 정말 들어올까 봐 그녀는 잠옷 바지를 입고 강영수의 방으로 갔다.그녀가 침대에 눕자 남자가 다가와 등 뒤에서 꼭 끌어안고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어디 갔었어?”장소월이 정신은 딴 데 팔린 채 말했다.“네가 깰까 봐 내 방에 가서 씻었어. 자.”“응.”강영수는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향기로운 냄새를 맡으며 다시 꿈나라에 빠져들어 갔다.장소월이 침대 옆 무드등 스위치를 누르자 침실 전체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자꾸만 머릿속에 피어오르는 생각을 떨쳐냈다.지금 그의 능력으론 강씨 집안과 맞서지 못한다. 앞으로 그녀가 강씨 집안의 사모님이 된다면 더이상 그에게 얽매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비록 그녀는 여전히 전연우를 무서워하고 그의 협박과 잔인한 수단을 두려워하지만 말이다.예전의 일은 절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절대 시도 때도 없이 해오는 그의 협박에 사로잡혀 꼼짝달싹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불현듯 저도 모르게 피곤함이 몰려와 이내 잠이 들었다.다음 날 아침, 뜨거운 햇볕이 침실을 비추었다.장소월이 허리를 펴며 이불 사이로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입가에 미소를 띠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좋은 아침.”“좋은 아침.”“시간이 늦었어. 이제 일어나.”“몇 시야?”“12시.”장소월은 자신이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잤을 줄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넌 몇 시에 깼어? 왜 날 깨우지 않은 거야?”“넌 우리 강씨 집안 미래 사모님이니 더 자도 돼. 내가 가서 치약을 짜놓을게. 옷 갈아입고 와.”“알았어.”강영수가 옷을 갈아입은 뒤 그녀의 칫솔에 치약을 짜주었다. 그가 칫솔을 건네주며 거울 속 창백한 모습의 그녀를 보며 말했다.“심리 치료사한테 가 보는 거 어때? 어젯밤 너 밤새 잠꼬대했어.”이를 닦던 장소월의 손이 멈췄다.“내가... 뭐라고 말했어?”강영수가 등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고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