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수의 얼굴에 예쁜 미소가 빙그레 지어졌다.“알았어. 무엇이든 난 영원히 네 미래를 지지할 거야. 여보.”두 사람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일 메뉴 정하기부터 시작해 졸업 후의 신혼여행까지...강영수가 고개를 숙여 장소월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 그녀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하지만 깊이 잠들지 못한 듯 괴롭게 이마를 찌푸리고 있었다. 폭포같이 늘어뜨린 검은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고 있는 모습에 강영수는 머리카락을 넘겨주고는 입술에 살짝 키스한 뒤 그녀를 안아 자신의 침실로 데려갔다.요즘 두 사람은 거의 한 침대에서 밤을 보낸다. 하지만 진한 스킨쉽은 하지 않는다. 강영수는 포옹만 하는 것으로도 큰 만족감을 느꼈다.그녀는 아직 어리다. 또한 지금까지 이렇듯 오랜 시간을 기다려왔는데 고작 몇 달을 더 기다리지 못하겠는가.장소월은 뜨거운 화로를 안고 있는 듯한 더위에 잠이 깼다. 허리엔 손 하나가 놓여있었고 등 뒤에선 강영수가 그녀에게 밀착해 감싸 안고 있었다. 온몸은 샤워라도 한 듯 흥건히 젖었다.장소월은 그가 행여 잠에서 깰까 봐 걱정돼 조심스레 일어나 슬리퍼를 신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이제 꽤 많이 안정된 듯했다. 곧게 뻗은 다리가 드러나는 긴 티셔츠를 입으니 매혹적인 그녀의 쇄골이 마침 완전히 가려졌다.그때, 탁자 위에 놓고 충전해두었던 핸드폰이 울렸다. 누가 이런 늦은 시간에 전화를 건 걸까. 문득 소현아일 거라는 생각이 든 그녀는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으며 발신자를 살펴보았다.순간 깜짝 놀란 그녀는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장소월이 전화를 받지 않고 수신 거부 버튼을 누르려고 한 순간, 창밖 커튼 사이로 비춰 들어오는 강렬한 불빛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핸드폰 벨 소리는 여전히 울리고 있었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천천히 걸어가 커튼을 열어보니 익숙한 차 한 대가 문 앞에 정차되어 있었다.전연우 미쳤어!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전화가 끊기자 이어 문자가 도착했다.「내려와!」장소월은 핸드폰 화면
장소월이 조명을 껐다. 그가 돌아갔는지 가지 않았는지는 모른 채 말이다.혹시라도 그가 정말 들어올까 봐 그녀는 잠옷 바지를 입고 강영수의 방으로 갔다.그녀가 침대에 눕자 남자가 다가와 등 뒤에서 꼭 끌어안고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어디 갔었어?”장소월이 정신은 딴 데 팔린 채 말했다.“네가 깰까 봐 내 방에 가서 씻었어. 자.”“응.”강영수는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향기로운 냄새를 맡으며 다시 꿈나라에 빠져들어 갔다.장소월이 침대 옆 무드등 스위치를 누르자 침실 전체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자꾸만 머릿속에 피어오르는 생각을 떨쳐냈다.지금 그의 능력으론 강씨 집안과 맞서지 못한다. 앞으로 그녀가 강씨 집안의 사모님이 된다면 더이상 그에게 얽매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비록 그녀는 여전히 전연우를 무서워하고 그의 협박과 잔인한 수단을 두려워하지만 말이다.예전의 일은 절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절대 시도 때도 없이 해오는 그의 협박에 사로잡혀 꼼짝달싹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불현듯 저도 모르게 피곤함이 몰려와 이내 잠이 들었다.다음 날 아침, 뜨거운 햇볕이 침실을 비추었다.장소월이 허리를 펴며 이불 사이로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입가에 미소를 띠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좋은 아침.”“좋은 아침.”“시간이 늦었어. 이제 일어나.”“몇 시야?”“12시.”장소월은 자신이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잤을 줄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넌 몇 시에 깼어? 왜 날 깨우지 않은 거야?”“넌 우리 강씨 집안 미래 사모님이니 더 자도 돼. 내가 가서 치약을 짜놓을게. 옷 갈아입고 와.”“알았어.”강영수가 옷을 갈아입은 뒤 그녀의 칫솔에 치약을 짜주었다. 그가 칫솔을 건네주며 거울 속 창백한 모습의 그녀를 보며 말했다.“심리 치료사한테 가 보는 거 어때? 어젯밤 너 밤새 잠꼬대했어.”이를 닦던 장소월의 손이 멈췄다.“내가... 뭐라고 말했어?”강영수가 등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고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
장소월이 말했다.“사실이에요? 그럼 전연우는 왜 그 사람을 잡으려고 한 거죠? 경찰을 도왔을 리는 없고. 분명 죽이려고 하는 것 같던데.”그 사람에게 무슨 원한이 있기에 강지훈까지 보내 직접 쫓은 걸까?장소월은 해바라기 하나를 가져왔다. 자주 가던 꽃집에서 마지막 남은 한 송이를 사 온 것이었다.병실엔 소현아의 가족들이 와있었고 허이준과 단모연도 아직 자리하고 있었다.소현아는 사과와 복숭아를 번갈아 가며 베어 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장소월은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많이 회복된 것 같은 그녀를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도 했다. 장소월은 소현아에게 고마움과 죄책감 모두를 갖고 있었다.문 앞에 서 있는 장소월을 보자 소현아가 아이처럼 붕방거리며 소리쳤다.“소월아!”강영수는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아 진봉과 함께 병실 밖에서 기다렸다.장소월이 안으로 들어가자 건장한 몸집의 중년 남자와 여린 몸집의 중년 여자가 보였다. 그녀는 소현아가 누구를 닮았는지 한눈에 보아낼 수 없었다.소현아의 아버지가 말했다.“우리 현아를 보러 온 거지?”장소월이 고개를 끄덕였다.“네.”소현아의 어머니가 말했다.“너희끼리 얘기해. 난 현아 아버지와 같이 아래로 내려가 간식거리를 사 오마.”“네.”장소월은 소현아의 부모님이 병실을 나서며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다.“저 아이는 뭘 먹고 자랐길래 저렇게 예쁜 걸까요? 한 끼에 만두 다섯 접시를 먹는 탓에 얼굴도 만두랑 점점 닮아가는 우리 현아와는 완전히 딴판이네요.”“그러니까 말이야. 다행히 우리 집이 가난하지 않아서 망정이지 웬만한 집안에선 키우지도 못할 거야.”소현아가 이내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아빠, 엄마, 다 들려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친구들이 제가 만두 다섯 접시를 먹는다는 거 알게 되잖아요.”단모연이 옆쪽으로 물러서며 고개를 숙이고 쿡쿡대며 웃었다.부부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곧바로 자리를 떴다.장소월이 침대 옆에 걸터앉았다.“소월아... 쟤들 아직도 웃어.”
백윤서가 자살 시도를 한 건가?인사를 하기도 전에 전연우와 백윤서는 병원으로 들어가 버렸다.장소월은 종래로 이렇듯 만신창이가 된 백윤서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직접 보지 못했다면 절대 믿지 못했을 것이다.백윤서는 전연우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저 지경이 되도록 놔뒀단 말인가?강영수의 목소리가 들려와서야 그녀가 정신을 차렸다.“가서 볼래?”장소월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잘 해결하겠지.”이건 그들 두 사람 사이의 일이다. 장소월은 조금도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이번 백윤서의 상처는 저번보다 훨씬 더 깊었다.그녀의 상처 소독을 맡은 간호사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얇은 팔목에 나 있는 원래 상처 위에 또 날카로운 칼을 그었으니 살에 파묻혀있던 봉합선이 끊기고 허연 뼈가 드러났다.간호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생명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거예요. 이렇게 자해하면 남자친구가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요!”요즘 세상엔 자살 시도를 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잔혹하게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간호사가 남자친구를 언급하자 백윤서의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가 옆에 서 있는 남자의 손을 잡으며 그를 바라보았다.“맞아요. 제 남자친구는 저밖에 몰라요. 이번엔 제가 너무 충동적이었어요.”지금의 백윤서와 오늘 아침 전연우 앞에서 울며불며 소리를 지르던 백윤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간호사가 전연우를 나무랐다.“앞으론 여자친구한테 더 신경 쓰세요. 만에 하나 살리지 못한다면 평생 후회할 거예요.”전연우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백윤서는 전연우를 두둔하고 나섰다.“오빠 탓이 아니라 다 제 잘못이에요. 오빠, 저 목말라요. 물을 한 컵 가져다줄래요?”전연우는 복도에 놓여있는 정수기에서 물을 받으러 병실을 나섰다.백윤서와 간호사가 그 뒤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모른다. 전연우가 돌아왔을 때 간호사는 이미 자리를 뜬 뒤였다.전연우는 컵에 빨대를 꽂은 뒤 백윤서에게 건
“손 함부로 움직이지 마.”전연우가 백윤서의 손을 멈춰 세우고 그녀의 앞에서 전화를 받았다.“의부님.”전연우는 이어 그녀를 살짝 밀어내고 자신의 손목을 꽉 움켜쥔 손을 뿌리치고는 창문옆 발코니로 걸어갔다.그들의 통화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희미하게나마 들을 수 있었다. 문이 닫히는 찰나, 인시윤이라는 세 글자가 백윤서의 귀에 들어왔다.장해진이 말했다.“미국 연수는 너한테 인맥을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직위는 걱정하지 마. 내가 이미 잘 안배해 두었으니까.”“의부님의 결정이신가요, 아니면 인씨 가문의 결정인가요?”“인시윤은 인씨 가문의 후계자이고 넌 내 아들이야. 난 소월이보다 널 더 심혈을 기울여 키웠어. 그러니 내 고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번 일은 그렇게 결정하는 거로 해. 소월이와 영수의 약혼식이 끝나면 너도 시윤이와 같이 미국으로 떠나. 회사 일은 잠시 내가 진봉에게 맡기마. 진봉은 몇 년 동안 함께 일한 네 심복이니 너도 안심할 수 있겠지.”“알겠습니다. 생각해보겠습니다.”“처신을 잘하는 게 좋을 거야. 인시윤과 더 많이 접촉하도록 해. 강씨 집안과 인씨 집안 모두와 손을 잡는 건 우리한테 분명 도움이 될 테니까. 업계에서 견고하게 자리 잡으려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해. 쓸데없는 사람한테 네 시간을 낭비하지 마. 끊기 힘들다면 내가 대신 네 주변을 깔끔하게 처리해주마.”“네.”전연우의 눈가에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늘이 드리웠다. 그는 장해진이 전화를 끊은 뒤에야 핸드폰 화면을 껐다.전연우가 병실로 들어가자 백윤서는 상처받은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오빠도 떠나려고요? 소월이를 가질 수 없게 됐으니 이제 인시윤한테 가려는 거예요? 오빠,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요.”전연우는 그녀가 얼마나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초지일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다음에 얘기해.”“인시윤과 결혼하려는 거죠? 권력과 부를 위해!”백윤서가 흥분하며 소리 지르자 피가 링거 관을 타고 역류했다.
그때, 서철용의 핸드폰으로 재미있는 문자가 도착했다.감옥에 들어갔던 김남주가 출소했다는 내용이었다.참으로 흥미롭다.하필 약혼식이 한 달 남은 지금 모습을 드러내다니.이렇게 빨리 움직이려는 건가?“서 선생님, 황유나라는 아가씨가 선생님을 찾아왔습니다.”서철용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조교에게 물었다.“어디에 있어?”“선생님의 사무실에 모셔다드렸습니다.”“그래.”서철용이 사무실에 들어가니 누군가와 똑 닮은 여자의 뒷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옅은 색 원피스에 금색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팔짱을 끼고 있었다. 등 뒤에서 들려온 발걸음 소리에 황유나가 몸을 돌렸다.“오랜만이에요. 서 선생님.”흥분감이 가득 섞여 있는 목소리였다.서철용이 손을 저어 자신을 따라온 조교를 돌려보내고는 사무실 문을 닫았다.“황유나 씨, 3년 만에 뵙는군요. 보아하니 회복이 잘 된 것 같네요. 여긴 무슨 일로 오셨어요?”황유나가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그에게 다가갔다.“그때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요? 이 얼굴의 주인과 아는 사이라고 말이에요! 귀국한 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았는지 알아요?”서철용이 덤덤한 웃음을 지으며 손에 쥐고 있던 검사 차트를 책상에 내려놓았다.“우리 성형외과는 고객님의 생각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당시 표본은 고객님께서 직접 선택하셨고 전 그 선택을 존중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제 와 저에게 책임을 묻는단 말입니까?”그 말에 황유나는 더더욱 분노가 치밀었다.“네. 맞아요! 하지만 난 AI가 임의로 합성한 사진인 줄로 알았다고요! 그때 아는 사람의 얼굴이라고 말해줬다면 난 결코 그 얼굴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예요. 이건 분명 병원 책임이에요!”서철용이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실실 웃으며 한 손으로 그녀를 확 끌어당기고는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섰다.황유나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그를 경계하며 뒤로 물러섰다.“당신... 뭐 하려는 거예요!”허리가 책상에 부딪혀 더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그녀가 다른
이후 회복기 3개월을 보내고 살펴보니 확실히 그는 실망시키지 않았다.황유나는 서철용의 그 말을 3년 내내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그녀가 부자연스러운 얼굴로 남자의 시선을 피했다.“왜 피해요?”매혹적인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남자가 황유나의 턱을 들어 올리자 그녀의 얼굴에 발그레 홍조가 일었다. 입술에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진 순간,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그가...황유나가 채 반응을 하기 전에 남자가 현란한 스킬로 여자의 입술을 열고 거칠게 몰아붙였다.황유나는 저도 모르게 끓어오르는 욕망에 남자의 키스를 받아주었다.그녀가 순순히 응하자 키스가 더더욱 깊어졌다. 다가오는 여자는 종래로 거절하는 법이 없는 서철용이다.남자의 손이 돌연 황유나의 치마 밑을 휘젓고 들어가 여자의 탐스러운 엉덩이를 어루만졌다.황유나가 거친 숨을 내쉬며 잠시 입을 뗐다.서철용이 눈을 맞추며 말했다.“침대로 올라갈까요?”황유나가 쑥스러운 듯 발그레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서철용은 그녀를 번쩍 들어 올린 뒤 사무실에 숨겨진 은밀한 방으로 들어갔다.여자의 몸이 거칠게 침대에 던져졌다. 침대가 움푹 파여 내려갔다가 다시 위로 튕겨 올라왔다. 남자가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여자의 몸을 돌린 뒤 마지막 남은 얇은 속옷을 벗겼다.아랫배에서 무언가를 느낀 황유나가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오랫동안 하지 못한 탓에 찢어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한 번 또 한 번, 점점 더 거세지는 강도와 함께 쾌감 또한 점점 더 극에 달하고 있었다. 마치 하늘 위 구름 사이를 거닐다가 단번에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반복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얼마가 지났을까, 그녀가 화끈 달아오른 몸을 가누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을 때, 남자가 돌연 움직임을 멈추었다.“계속해요. 나 괴롭단 말이에요.”문 앞에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는 사람을 본 순간, 몸 아래에서 애원하고 있는 여자에게 흥미가 떨어져 버렸다.서철용은 단정히 옷을 입고는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배은란은 의자에 앉아
“이거 놔!”그의 것이 아닌 향수 냄새가 배은란의 코를 찔렀다. 목과 셔츠엔 여자의 립스틱 자국까지 남아있었다. 두 사람이 그 방에서 얼마나 격렬히 엉켜있었는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배은란은 그의 품에서 도망치려 몸부림치며 역겨움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질투하는 거야?’배은란의 손톱이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요망스러운 얼굴에 생채기가 나자 서철용은 따끔함에 얼굴을 움켜쥐었다. 그 사이에 배은란은 곧바로 몸을 일으켜 셔츠를 정리하고는 분노에 찬 얼굴로 힘껏 그의 따귀를 내리쳤다.“그 더러운 손으로 나 만지지 마!”서철용의 얼굴이 충격에 한쪽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분노하기는커녕 허허 웃으며 말했다.“너무 살살 때렸어. 난 형수님이 날 거칠게 굴렸으면 좋겠는데?”그 허기짐과 욕망이 가득 담긴 눈빛엔 흥분감까지 일렁이고 있었다.배은란이 이마를 찌푸리고 미치광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저번 두 번은 내 뜻이 아니었어. 당시 우리 사이의 일은 없었던 걸로 생각할 거야. 그 사진들로 날 협박한다고 해도 난 너와 타협하지 않아.”그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난 지금 너와 민용 씨가 형제라는 것 때문에 애써 부드럽게 말하고 있는 거야. 성욕을 채우기 위해 여자와 침대에서 뒹군다고 해도 널 말릴 사람은 없어.”“난 지금도 앞으로도 네 형수야.”무슨 일이 생기든 그녀는 절대 민용과 이혼하지 않을 것이다.서철용은 떠나는 사람을 쳐다보며 엄지손가락으로 얼굴 상처를 쓸어내렸다. 손가락에 묻은 피를 보며 그가 미치광이처럼 웃어댔다.등 뒤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배은란은 역겨움이 극에 달해 걸음을 재촉해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하강 버튼을 눌렀다.문 앞 휠체어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남자를 본 그녀는 곧바로 마음을 다잡고 그에게로 걸어갔다.배은란이 마스크를 하고 있는 서민용의 수건을 정리해주며 말했다.“아버님의 일은 도련님에게 얘기했어. 책임지고 보살필 거야.”서민용이 말했다.“떠나기 싫으면 억지로 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