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회복기 3개월을 보내고 살펴보니 확실히 그는 실망시키지 않았다.황유나는 서철용의 그 말을 3년 내내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그녀가 부자연스러운 얼굴로 남자의 시선을 피했다.“왜 피해요?”매혹적인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남자가 황유나의 턱을 들어 올리자 그녀의 얼굴에 발그레 홍조가 일었다. 입술에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진 순간,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그가...황유나가 채 반응을 하기 전에 남자가 현란한 스킬로 여자의 입술을 열고 거칠게 몰아붙였다.황유나는 저도 모르게 끓어오르는 욕망에 남자의 키스를 받아주었다.그녀가 순순히 응하자 키스가 더더욱 깊어졌다. 다가오는 여자는 종래로 거절하는 법이 없는 서철용이다.남자의 손이 돌연 황유나의 치마 밑을 휘젓고 들어가 여자의 탐스러운 엉덩이를 어루만졌다.황유나가 거친 숨을 내쉬며 잠시 입을 뗐다.서철용이 눈을 맞추며 말했다.“침대로 올라갈까요?”황유나가 쑥스러운 듯 발그레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서철용은 그녀를 번쩍 들어 올린 뒤 사무실에 숨겨진 은밀한 방으로 들어갔다.여자의 몸이 거칠게 침대에 던져졌다. 침대가 움푹 파여 내려갔다가 다시 위로 튕겨 올라왔다. 남자가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여자의 몸을 돌린 뒤 마지막 남은 얇은 속옷을 벗겼다.아랫배에서 무언가를 느낀 황유나가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오랫동안 하지 못한 탓에 찢어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한 번 또 한 번, 점점 더 거세지는 강도와 함께 쾌감 또한 점점 더 극에 달하고 있었다. 마치 하늘 위 구름 사이를 거닐다가 단번에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반복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얼마가 지났을까, 그녀가 화끈 달아오른 몸을 가누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을 때, 남자가 돌연 움직임을 멈추었다.“계속해요. 나 괴롭단 말이에요.”문 앞에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는 사람을 본 순간, 몸 아래에서 애원하고 있는 여자에게 흥미가 떨어져 버렸다.서철용은 단정히 옷을 입고는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배은란은 의자에 앉아
“이거 놔!”그의 것이 아닌 향수 냄새가 배은란의 코를 찔렀다. 목과 셔츠엔 여자의 립스틱 자국까지 남아있었다. 두 사람이 그 방에서 얼마나 격렬히 엉켜있었는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배은란은 그의 품에서 도망치려 몸부림치며 역겨움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질투하는 거야?’배은란의 손톱이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요망스러운 얼굴에 생채기가 나자 서철용은 따끔함에 얼굴을 움켜쥐었다. 그 사이에 배은란은 곧바로 몸을 일으켜 셔츠를 정리하고는 분노에 찬 얼굴로 힘껏 그의 따귀를 내리쳤다.“그 더러운 손으로 나 만지지 마!”서철용의 얼굴이 충격에 한쪽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분노하기는커녕 허허 웃으며 말했다.“너무 살살 때렸어. 난 형수님이 날 거칠게 굴렸으면 좋겠는데?”그 허기짐과 욕망이 가득 담긴 눈빛엔 흥분감까지 일렁이고 있었다.배은란이 이마를 찌푸리고 미치광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저번 두 번은 내 뜻이 아니었어. 당시 우리 사이의 일은 없었던 걸로 생각할 거야. 그 사진들로 날 협박한다고 해도 난 너와 타협하지 않아.”그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난 지금 너와 민용 씨가 형제라는 것 때문에 애써 부드럽게 말하고 있는 거야. 성욕을 채우기 위해 여자와 침대에서 뒹군다고 해도 널 말릴 사람은 없어.”“난 지금도 앞으로도 네 형수야.”무슨 일이 생기든 그녀는 절대 민용과 이혼하지 않을 것이다.서철용은 떠나는 사람을 쳐다보며 엄지손가락으로 얼굴 상처를 쓸어내렸다. 손가락에 묻은 피를 보며 그가 미치광이처럼 웃어댔다.등 뒤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배은란은 역겨움이 극에 달해 걸음을 재촉해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하강 버튼을 눌렀다.문 앞 휠체어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남자를 본 그녀는 곧바로 마음을 다잡고 그에게로 걸어갔다.배은란이 마스크를 하고 있는 서민용의 수건을 정리해주며 말했다.“아버님의 일은 도련님에게 얘기했어. 책임지고 보살필 거야.”서민용이 말했다.“떠나기 싫으면 억지로 떠나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초대해야 해? 약혼식일 뿐이잖아.”아직 물이 마르지 않아 장소월은 한 번 본 뒤 제자리에 내려놓았다.“당연하지. 넌 강씨 가문 사모님이 될 사람이야. 언젠가는 이 사람들과 접촉하게 될 거야. 리스트를 봐. 혹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내가 바로 지울게.”A4 용지 위에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장소월이 고개를 저었다.“약혼식이 이렇게 복잡할 줄은 정말 몰랐어. 내가 맡아 했다면 머리가 터져버렸을 거야.”그 말을 내뱉는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희미해졌던 옛 기억이 떠올랐다.당시 그녀는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검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녀는 대학 졸업식에 가지도 못한 채 전연우의 집에서 결혼식 준비 때문에 바삐 돌아치고 있었다.그녀는 인터넷에서 결혼식에 필요한 물품을 조사했다.그녀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전연우에게 다가가 애교스러우면서도 원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결혼식을 하는데 이렇게나 많은 물건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아요. 이건 청첩장을 보낼 사람 명단이에요. 한 번 봐줘요.”“오빠, 이 답례품 괜찮을까요?”“오빠, 혼인 신고하러 갈 때 이 옷 입고 갈까요?’“오빠, 빨리 카메라를 봐요. 난 우리가 혼인신고를 하는 아름다운 날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할 거예요. 그리고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오빠와 함께 꺼내 볼 거예요.”장소월은 온몸이 찢기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왜 갑자기 그런 기억이 떠오른 걸까.장소월은 왠지 전생에 있었던 그 일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강영수가 고개를 들었다.“왜 그래? 어디 불편한 거야?”장소월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괜찮은 척 미소를 지었다.“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도울 거 있어?”“심심해?”“그냥 돕고 싶어서.”“강씨 가문 예비 사모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심심하면 내려가서 TV 봐. 나도 곧 내려갈게.”그가 자신에게 잘해줄수록 장소월은 그에게 빚진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여자 교도소 교도소장이 직접 독방에 갇힌 김남주를 보러 발걸음을 했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본 순간, 그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강씨 가문에서 그녀를 고생시켜야 한다고 특별히 언질을 주었었다. 하지만 결코 죽이라고 하지는 않았다.그가 갑자기 살피러 오지 않았다면 정말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오늘은 김남주가 병원에 실려 와 치료를 받고 의식이 돌아온 지 5일째 되는 날이다. 그녀는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져있었다.그녀는 막무가내로 강한 그룹의 대표를 만나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 하지만 강영수가 어디 만나고 싶다고 하여 만날 수 있는 사람인가.모두가 그녀를 정신병 환자 취급했다.예전 적지 않은 사람들이 TV에서 그녀의 인터뷰를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김남주 같은 사람이 하는 말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그저 미치광이로 생각할 뿐.김남주는 정신병원에 던져졌다.한 번 갇히면 기본이 5일이었다.그녀는 침대에 묶인 채 강제로 진정제를 투여받았다.김남주는 이곳에서 괴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남자 의사를 만날 때면 그가 자신의 몸을 범하는 것까지 인내해야 했다. 그녀는 이런 모욕을 혼자 쓸쓸히 감당하고 있었다.이 모든 고통은 강영수가 그녀에게 안겨준 것이다.그녀는 매일매일 사람들에게 짓밟혔다. 겨우 딱지가 앉은 상처에 또다시 날카로운 칼날이 파고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흘린 단 한 방울의 피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틀림없이 이 나쁜 놈들이 대가를 지불할 날이 올 것이다!강영수!반드시 날 이런 절벽에 내던진 걸 후회하게 만들 거야!김남주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힘만 빼는 헛수고라는 걸 알게 되었다.하여 오늘 간호사가 진정제를 놓으러 왔을 땐 조금도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모든 걸 받아들였다.설사 의사가 그녀의 몸에 손을 댈지라도 말이다.김남주는 핸드폰을 빼앗겼다. 그녀의 주변엔 도박에 중독되어 매일 돈을 요구하는 아버지 외에 다른 친척이나 친구는 없다.그녀는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지만 도움을 청할 사람이라곤 단
그녀가 말을 이어 나갔다.“사실 저는 누명을 써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거예요. 휴대폰 한 번만 쓰게 해주시면…. 당신이 무슨 짓을 하든 장단 맞춰드릴게요.”“그래도 제가 미덥지 않으시면, 제가 당신의 모습을 보는 게 두렵다면 제 눈을 가리셔도 좋아요. 절대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을게요. 제가 여기에서 나간다고 해도 당신한텐 피해 없도록 할게요.”설광수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 병상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가슴 쪽을 더듬거렸다.김남주는 매혹적인 교성을 내며 가볍게 콧소리를 냈다.“더~ 조금만 더 세게.”남자의 눈빛 속에서 점점 정복욕이라는 것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니 손길이 점점 더 거칠어지기 시작했다.욕망이라는 감정에 꺼지기 힘든 불이 붙으며 타오르기 시작했다.김남주는 아무렇게나 휘둘리는 장난감과도 같이 그녀의 몸 위에서 악취를 풍기며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는 한 남자를 감당하고 있었다.그 공허하고 텅 비어버린 눈빛은 흉악해 보이기도, 약간은 사나워 보이기도 했다.강영수... 평생!우리는 절대 죽지 않아!시간은 어느덧 한 시간이나 흘러버렸다. 김남주의 몸 위에서 상하운동을 반복하던 그 남자는 그제야 움직임을 멈추고 그녀의 몸 위에서 내려왔다.흐트러진 옷매무시를 가다듬더니 친절하게도 김남주의 몸을 닦아주었다.김남주는 가쁜 숨을 헐떡이며 얘기했다.“제가 부탁한 일 잊으시면 안 돼요.”남자는 대답 한마디 안 하고 조용히 자리를 떴다.다음 날, 잠에서 깬 김남주의 손에 채워져 있던 수갑이 풀렸다.수갑을 풀어준 간호사가 얘기했다.“요즘 컨디션 괜찮아 보이셔서 우선 수갑 풀어드릴게요. 하지만 또 소리 지르시면서 액팅 아웃 증상 보이시면 다시 수갑 채워드릴 수밖에 없어요.”김남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수갑이 사라진 자기 손목을 어루만졌다. 간호사가 주는 약을 건네받은 그녀는 익숙하다는 듯 약을 한입에 털어 삼켰다.간호사가 자리를 뜬 것을 확인한 그녀는 베개 밑에
기다리는 하루의 시간이 그녀에겐 감옥에서 보냈던 날들보다 길게 느껴졌다.그녀는 이미 더 이상 이곳에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았다.늦은 밤, 시곗바늘은 정확히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그 시각, 정신병원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복도의 불빛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초록빛이 감도는 고요한 통로의 끝은 칠흑 같이 어두웠고 끝없는 심연과도 같이 느껴졌다. 가끔 차디찬 화장실에서는 수도꼭지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소리가 들려왔다.아무리 봐도 어딘가 모르게 기괴한 분위기가 풍겨왔다.병실 문이 쓱 열리고 김남주는 자신의 곁을 조용히 스쳐 지나가는 검은 그림자가 차 열쇠와 예리한 단검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가는 것을 목격했다.그 의문의 인물이 어떻게 병원에서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하지만 이미 원망의 감정이 김남주의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그녀에게 다른 것에 신경을 쓸 여력 따위는 없었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천천히 주워들었다. 빨리 병실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그녀의 마음과는 달리 어딘가로 서둘러 출발하려는 기색 하나 없이 느긋했다.그녀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조용히 침대 위에 가만히 앉아있었다.시곗바늘이 12시를 가리켰다.병실 문이 다시 한번 열렸다. 설광수는 자신을 숨기려는 의도조차 없어 보였다. 바로 침대 위에 보이는 사람한테로 달려간 그는 많이 참았다는 듯 그녀는 꼭 끌어안았다.“씻었어요? 냄새 좋네요.”그 순간, 설광수는 숨 한번 내쉬지도 못하고 무방비 상태로 가슴에 단검이 꽂혔다.김남주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악의에 번뜩이는 눈빛을 내보였다.“얘기 계속하지 그래? 왜 더 안 떠들어?”그렇게 얘기를 하면서도 김남주는 손에 들고 있는 단검을 더욱더 깊게 찔러넣었다. 그녀가 단검을 빼내는 순간 단검 끝에 피가 맺히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얼굴 위에 비친 미소가 기괴했다. 마치 지옥의 문턱까지 기어 올라와 목숨을 구걸하는 처녀 귀신처럼.단검을 빼내는 순간, 피가 튀어 올랐다. 그 피는 그녀의 눈가로 튀어 눈앞을 붉
그 고민은 대체 누구 때문에 생긴 건지….장소월은 대충 생각해봤을 때 짚이는 것이 있긴 했지만, 굳이 따져 묻지는 않았다.두 사람은 각자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학교에 도착했다.장소월은 얇은 목소리로 얘기했다.“나 갈게. 점심 꼭 챙겨 먹어.”강영수는 그런 장소월을 보며 대답했다.“응.”장소월이 차에서 내렸다. 평소였다면 조금이라도 더 머물러있었을 차인데 오늘은 왜인지 바로 출발해버렸다.그녀는 나름 일찍 도착한 편이었다.“소월아! 소월아!”소현아가 가방끈을 손에 꼭 쥔 채 달려오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소월의 곁에 다다랐을 때쯤 소현아가 물었다.“소월아, 무슨 일 있어? 내가 널 몇 번이나 불렀는데, 왜 대답을 안 해? 무슨 일 있는 거야?”장소월이 대답했다.“아무것도 아니야.”소현아가 덧붙였다.“난 또, 너 이미 미술 아카데미 붙었다고 학교 안 오는 줄 알았어. 네가 이렇게 대단한 줄 몰랐어. 이미 합격까지 한 사람이 나보다 부지런하냐.”장소월은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뭐, 좀 더 배운다고 손해 볼 건 없으니까.”그녀가 서울 미술 아카데미 시험을 치르고 있을 때, 성적은 이미 엊그제 공개되어 있었다. 그녀는 수석이라는 성적으로 당당하게 합격자 명단에 올라가 있었다.도리대로라면 그녀는 학교에 올 필요가 전혀 없었다.하지만 학교에 오는 것 말고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이곳에는 그녀가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고, 그녀의 친구들도 있었다.“그럼 너는? 오늘 왜 이렇게 일찍 왔어?”소현아가 대답했다.“아, 오늘 부모님께서 고향으로 내려가신다고 하셨거든. 비행기 시간 맞춰드리느라 일찍 나온 거야. 그런데 이렇게 우연히 널 만나게 될 줄이야, 너무 좋다.”그녀는 뭐가 그렇게 신나는 것인지 혼자 헤실거리며 웃어댔다.장소월은 그런 느긋한 그녀를 보는 것이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고민도 없어 보이고, 시험 망칠 걱정 따위 안 해도 되고, 그녀의 가정환경으로 미루어 봤을 때 그녀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평생을
설마 벌써 인시윤한테 손을 댄 거야?고작 그놈의 인맥 하나 때문에?아니면 돈 때문에!이번 생의 인시윤과 저번 생의 인시윤이 다른 게 없다. 전연우의 손아귀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겠지.전연우가 갑자기 앞으로 한걸음 걸어가더니 손을 뻗어 장소월의 이마 위에 붙어있던 머리카락을 슬쩍 떼어냈다.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그녀로서도 미처 방어할 수가 없었다."아무리 오랜만에 보는 거라고 해도 그렇지, 오빠라고 부르지도 않을 생각이야?“장소월은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전연우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깊은 눈동자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정복욕, 소유욕과 광기의 감정들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었다.하지만 소월의 눈에는 보였다. 그 위선적인 웃음 뒤에 감추어진 진짜 그의 모습이 어떤지 말이다.그는 짐승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장소월은 뒷걸음질 치며 가까스로 시선을 그에게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나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볼게.“소현아가 소월의 오빠를 바라보았다. 둘의 눈이 마주친 순간, 전연우의 미소는 삽시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살벌한 표정만이 소현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표정에 지레 겁을 먹은 소현아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무서워."소월아!“소현아는 황급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소월아, 인시윤 너희 오빠랑 결혼하는 거야?“그게 그녀와 무슨 상관인가?소현아는 괜히 손가락을 만지작대며 말했다."아니, 인시윤이랑 너희 오빠가 결혼하고, 너는 또 인시윤 오빠랑 결혼하면 인시윤은 너한테 아가씨라고 불러야 하는데, 그럼 너는 인시윤을 뭐라고 불러야 해? 너도 아가씨라고 부르는 거야?“"소월아! 나 진짜 어지러워!“그 천진난만하고 맑은 눈동자에는 호기심이 가득 차 있었다.장소월은 급히 그녀의 입을 틀어막으며 얘기했다."조용히 해.“그들은 아직 자리를 뜨지 않았을 텐데 방금 그녀들이 그렇게 큰 소리로 얘기해버리는 바람에 대화 내용을 들어
그녀는 장소월과 전연우가 행복하게 함께 사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연우 씨, 남원 별장이 없어지고, 두 사람의 아이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나면 마지막은 장소월 차례예요... 장소월까지 죽은 후, 난 영원히 이 별장에서 당신과 함께 살 거예요.” ... 신이랑의 이직 소식이 성세 그룹 전체에 퍼졌다. 그중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소민아였다. 사무실, 소민아는 손에 회의 자료를 들고 신이랑 앞으로 걸어가 따지듯이 물었다. “왜 회사에서 나가는 거예요? 처음에는 정말 안 믿었는데, 회의하러 잠깐 올라갔다가 와보니 정말 이직한다네요.” “신이랑 씨, 정말 송시아랑 손잡은 거예요?” 신이랑이 말했다. “민아 씨, 내가 본가로 들어가는 건 언제든 일어날 일이었어요. 민아 씨 눈에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요? 내가 민아 씨한테 결혼을 강요하려고 이러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냈는데도 결국 민아 씨는 날 한 번도 믿지 않은 거네요!” 소민아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순간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듯한 감정이 눈동자에 비쳤다. 그녀는 이마를 매만지며 말했다. “이랑 씨, 제 말은 그게 아니고... 미안해요. 제가 요즘 감정 기복이 심해서 헛된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있어요. 그냥 이랑 씨가 왜 갑자기... 회사를 나가는 건지 궁금했을 뿐이에요.” 신이랑이 말했다. “민아 씨, 전에도 말했듯이, 난 구르미 시리즈에 줄곧 머무르지는 않을 거예요. 나한텐 다른 해야 할 일이 있거든요.” 소민아가 말했다. “무슨... 무슨 일인데요? 왜... 지금까지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요?” 신이랑은 깊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난 이미 민아 씨한테 말했었어요. 다만 민아 씨가 내 말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을 뿐이죠.” “난 이만 갈게요. 나머지 업무는 이미 우림 씨에게 인계했어요. 우림 씨가 내 자리를 대신할 거예요.” 소민아는 그가 떠나는 모습을 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이 회사에서 유일하게 신뢰
“의사 선생님... 선생님...” 송시아는 가득 흥분한 채 의사를 불렀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의사가 달려와 전연우를 진찰하고 상처를 확인했다. “환자분 상처는 아주 잘 아물고 있습니다. 아까 정말로 손가락이 움직이는 반응이 있었다면, 신경이 스스로 반응한다는 뜻입니다. 아마 곧, 혹은 예정보다 더 빨리 깨어날 수 있을 겁니다.” “정말 다행이네요.” 송시아는 환희가 가득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먼저 들어가세요.” 좋은 소식이었다. 송시아는 전연우의 침대에 앉아 연고를 꺼내 손가락에 조금 묻히고는 그의 옷을 걷고 이미 아문 상처에 발랐다. “연우 씨, 이 팔찌 장소월이 준 거 맞지? 서철용이 당신에게 한 말 전부 다 들은 거야?” “당신도 지금 당장이라도 깨어나서 장소월을 보고 싶겠지?” “당신들은 날 너무 얕잡아 봤어.” “당신의 흉터... 없어지지 않도록 몸에 남겨둬야겠어. 이 흉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평생 잊지 못하게 말이야.” 송시아가 그에게 쓰는 연고는 최고급이라 시중에서 개당 200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팔린다. 흉터 제거뿐 아니라 상처 회복도 빠르게 해준다. 그녀는 휴지를 꺼내 연고를 닦아냈다. 그때 송시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확인해보니 답장이 와 있었다. “송 대표님, 그 팔찌는 비슷한 디자인이 너무 많아서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바닷가 쪽에서 파는 팔찌는 거의 다 흡사한 유형이거든요. 완전히 똑같은 건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송시아는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로 일어나 휴대폰을 들고 문밖으로 나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마지막 3초를 남기고 연결되었다. 송시아가 말했다. “전연우는 곧 깨어날 거예요. 이직 준비는 다 됐어요? 이랑 씨 마음만 굳건하다면, 내가 꼭 민아와 순조롭게 결혼할 수 있게 할게요. 마음이 변한다 해도 상관없어요. 신씨 집안은 나에게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니까.” 신이랑이 물었다. “성세 그룹 주식은 왜 팔았어요? 뭘 하려는 거죠?” 송시아는 한쪽 팔을 가
서철용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전 나중에 갈 거예요. 거긴 아주 안전한 곳이에요.” 도우미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사모님을 모시러 가겠습니다.” 군병원 아래에는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정차되어 있었다. 운전기사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 흰색 장갑을 끼고 운전석에 앉아있었다. 배은란은 딸을 안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랑 같이 가면 안 돼?” “민용 씨, 나 혼자 가는 거 무서워. 같이 가자, 응?” 서철용은 그녀를 안심시키듯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이 끝나면 금방 너한테 갈게. 네가 가는 곳은 내 스승님과 사모님의 댁이야. 그분들은 평생을 의학에 헌신하셨고, 자녀가 없어서 날 친아들처럼 여기셨어. 너에게도 잘해주실 테니까 불편해하지 않아도 돼. 그분들은 분명 너 좋아하실 거야.” 배은란은 그에게 더 이상 부담을 주거나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차에 올라탔다. “그럼 꼭 빨리 나한테 와야 해.” “그래.” 점차 멀어져가는 차를 보며 서철용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배은란, 이건 내가 너한테 진 빚이야. 우리가 다시 만나는 그땐 진짜 서민용이 네 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할게. 완전한... 서민용을 너에게 돌려줄게!’ 그날 밤, 서민용은 분명히 죽었었다. 하지만 마지막 숨이 끊어지기 직전, 서철용이 그를 지옥에서 구출해 냈다. 다만, 그의 상황은 아직도 좋지 않다. 여전히 스승님의 병원에 누워 연명 치료만 받고 있을 뿐이다. 전연우 외에, 지금 가장 골치 아픈 사람은 바로 서민용이다...배은란이 계속 그의 곁에 있으면, 서철용은 그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일 때문에 그녀가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배은란은 정신과 약을 더 이상 복용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기억도 천천히 회복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른다. 반산 별장. 송시아는 바로 그 소식을 들었다. “쯧, 그렇게 많은 공을 들여서 형수를 얻
전연우가 어떻게 성세 그룹 주식 매각을 허락할 수 있지? 혹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건가? 끝없이 펼쳐진 바닷가, 파도가 넘실거리며 해안에 부딪히고 있었다.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녀가 해초와 물고기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머리를 질근 묶고는 조개껍데기를 꿰어 만든 목걸이를 손에 들고 불안정한 발걸음으로 장소월 앞으로 걸어와 유창한 러시아어를 말했다. 이곳은 외딴곳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산골 마을이었다. “예쁜 언니, 이 목걸이 선물로 줄게요.” 전설에 따르면, 예전 이곳은 황량한 사막이었는데, 신의 딸이 잘못을 저질러 벌을 받아 이곳에 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물을 찾지 못해 결국 목숨을 잃었고, 그 후 바다가 되어 이 해역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이곳에선 조개껍데기와 소라를 신의 은총을 받은 물건이라고 믿고 있다. 이걸로 만든 장신구를 선물하면 상대방이 신의 축복과 보호를 받는다고 한다. 이곳에서 조개껍데기 목걸이를 주는 것은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 외에 남녀가 서로에게 프러포즈 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휴대폰에 서철용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지난번에 보낸 팔찌, 전연우가 아주 좋아하네요. 수고했어요.] 장소월은 그의 상황을 묻고 싶은 마음에 휴대폰 메시지를 지웠다 썼다 반복했다. 시간이 꽤 오래 흘렀는데도 전연우에 대한 소식은 전혀 알 수 없었다. 어이없게도 유일한 소식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신뢰성이 떨어지는 유튜브 계정에서 올린 결혼식 다음 날 그녀와 전연우가 신혼여행을 떠났다는 영상뿐이었다. 그 외에는 어떤 소식도 없었다. 이곳에 머무른 이후로 그녀의 마음은 단 한 순간도 편안하지 못했다. 산장 신혼 방에서 칼날을 전연우의 가슴에 꽂아 넣었을 때, 두 사람 모두 시뻘건 피를 온몸에 뒤집어썼었다. 그날 밤 손바닥에 스며든 붉은 피는 아무리 씻어도 도저히 지워낼 수가 없었다. 장소월은 한참을 갈등하다가 휴대폰을 들어 한마디 물었다. [그 사람은 괜찮나요?] 어린 소녀가 말했다. “언니, 나랑 같이 놀러
기성은이 독립적으로 자신의 일을 했다면, 전연우보다 못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잔혹한 그의 출신이 늘 발목을 잡았다. 모든 사람의 출생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성은도 남에게 드러낼 수 없는 자신만의 아픈 고충이 있을 것이다. 그의 과거는 그저 과거라는 단어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소민아가 정말로 기성은과 함께하려 한다면, 그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그들 손으로 직접 극복해야 할 것이다. 소민아는 이 난관을 스스로 떨쳐내고 성장해야 한다. 그녀가 지금처럼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고 모든 일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한다면, 그녀와 기성은의 관계는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다.소민아는 일을 해결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전혀 몰랐다. 송시아는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걸까! 대표 사무실. 소민아는 결국 송시아와 직접 대면하여 분명히 따져 묻기로 했다. 송시아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냥 회사 경영이 좀 힘들어서 누군가 도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뭐 문제 있어?”소민아가 말했다. “전 대표님은 곧 깨어나실 거예요. 지금 이 행동은 회사를 망치는 거예요.” 송시아는 전혀 개의치 않으며 말했다. “팔려고 내놓은 주식은 내가 갖고 있던 거야. 문제 있어?” “혹시 다른 일 없으면, 언니랑 같이 밥이나 먹으러 갈까?” “당신을 보면, 입맛이 뚝 떨어져요.” 소민아는 곧바로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섰다. 송시아가 한 말은 단 한 글자도 믿을 수 없었다.그녀는 대체 왜 주식을 팔고 있는 걸까, 도대체 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던 중, 마케팅팀 직원 몇 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소민아는 구석에 서 있었던지라 아무도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저 다음 주부터 연차 시작이에요. 외국에 다녀올 생각인데, 지유 씨는요? 연차 다 썼어요?” “아직이요.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 너무 짜증 나요!” 그 순간 소민아의
“하지 말아야 할 질문은 하지 말고 내가 지시한 일이나 해요.”소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대표님.”송시아는 회사 대부분의 주식을 던져버렸다. 성세 그룹이 설립된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호시탐탐 주식이 시장에 풀리기를 노렸다. 하지만 주식은 줄곧 전연우와 송시아의 수중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않았었다. 다들 그들의 주식은 그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절대 한 푼도 빼내 오기 힘들다며 혀를 내둘렀다.지금 팔려나가는 10%만으로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주식을 차지하려고 아우성이다. 소민아도 이 소식을 듣고 서철용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성세 그룹이 주식을 처분한다는 소식은 30분도 안 되어 이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서철용은 발코니에 있는 등나무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코웃음을 쳤다. “전연우, 송시아가 정말 네 성세 그룹을 완전히 거덜 내려고 하고 있어.”“너와 송시아가 갖고 있는 주식 지분율은 똑같고, 인씨 가문이 3% 지분을 갖고 있어. 만약 인씨 가문이 그 3%를 양도한다면, 네 성세 그룹 대표 자리는 언제든지 빼앗길 수도 있겠어.” “송시아가 하는 꼴을 보니 너를 완전히 새장 속에 가둘 모양이야.” 서철용은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전연우, 다 자업자득이야. 배은란은 도우미의 부축을 받으며 서철용 앞으로 걸어와 휴대폰을 건넸다. “민용 씨, 전화 왔어.” 서철용은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을 내려놓고 서두르지 않고 일어서 배은란을 부축해 의자에 앉혔다. 익숙한 전화번호에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 “아직도 안 끝났어요?”소민아는 미안한 듯 말했다. “서 선생님,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서 선생님이 제 전화번호를 차단해서 와이프분에게 전화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정말로 중요한 일이라서 연락드린 거예요. 뉴스 보셨죠? 송시아가 성세 그룹 주식을 매도하고 있어요. 서 선생님, 송시아는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요?” 서철용은 한 손을 허리에 얹고 앞에 있는 여자를 보고는 애써 감정을
송시아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목적을 달성한 듯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꼬았던 다리를 풀고 일어나 경호원에게 말했다.“퇴원 준비해요.”경호원이 말했다.“송 대표님, 간호사가 대표님은 상처가 아물기 전엔 한동안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쓸 필요 없어요.”송시아는 아랫배를 만지며 빙그레 웃었다.“이 고비만 넘기면 나도 한동안 푹 쉬어야겠어요.”“알겠습니다.”저녁 12시 커다란 승합차 안, 송시아는 누워있는 남자와 함께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은밀한 어떤 곳에 도착했다. 핸드폰 신호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 곳이었다.천 명은 족히 담을 수 있을 것 같이 커다랗고, 쥐 죽은 듯 고요한 그곳 별장 안은 의료시설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어 병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개인 주치의 또한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주위엔 높디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전연우를 가두기 위해 만든 새장 같았다.안방은 수영장 하나도 담을 수 있을 만큼 드넓은 면적을 자랑하고 있었다. 전연우는 침대에 누워있었고, 의사는 그의 손등에 다시 링거 바늘을 꽂고 있었다.하루 종일 바삐 돌아친 탓에 송시아도 많이 피곤했던지라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고 옷을 벗고는 반신욕을 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녀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우유를 마시며 이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얼마 후, 그림자 하나가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발걸음 소리를 들은 그녀는 순간 번쩍 눈을 떴다. 남자 한 명이 문을 열고 다가왔다.송시아는 매끄러운 긴 다리를 뻗어 눈앞의 남자를 도발했다.“여기 찾지 못할 줄 알았어요.”“나한테 누군가를 찾는 건 아주 간단한 거라고 했잖아.”송시아가 싱긋 웃어 보였다.“내가 알아봐달라고 한 건 어떻게 됐어요?”“그건 알려줄 수 없어. 너희들 사이 일엔 끼어들지 않을 거야. 난 그냥 네 뱃속 아기가 무사히 태어나 내 대를 잇게만 하면 돼.”송시아는 씁쓸한 얼굴로 컵 안
송시아는 전연우의 손을 잡고 그 걸리적거리는 물건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팔찌에 손을 댄 순간, 행동을 멈추고 느긋하게 그의 옆에 앉아 핸드폰으로 팔찌 사진을 찍고는 저장되지 않은 누군가의 번호에 전송했다.[이 물건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봐 줘요.]이어 그녀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천천히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전연우 씨, 지금 내가 하는 말 다 듣고 있다는 거 알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연우 씨가 깨어났을 땐 성세 그룹은 이미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전생에서 당신은 날 망가뜨렸어요. 이번엔 내가 당신의 모든 걸 빼앗아 빈털터리로 만들 거예요. 그래야 내가 더 쉽게 당신을 통제할 수 있잖아요.”“당신은 권력을 너무 욕심낸 탓에 제일 중요한 걸 잃은 거예요.”소민아는 회사에 돌아간 뒤 기성은에게 문자를 보냈다.[서 선생님이 대표님은 곧 깨어나실 거라고 했어요. 기성은 씨도 이제 돌아오는 거 맞죠?]쨍그랑.컵이 깨지는 소리에 소민아가 고개를 돌렸다. 신이랑이 일어나 유리 조각을 주우려하자 그녀는 급히 다가갔다.“움직이지 말아요. 다쳐요.”하지만 신이랑의 손가락은 이미 유리 조각에 찢어져 있었다. 소민아는 휴지로 그의 손가락을 감쌌다.“왜 그래요? 집에 돌아온 뒤로 쭉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것 같았어요.”신이랑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다른 한 손은 소민아에게 잡혀 있었다.“난 괜찮아요. 요즘 제대로 쉬지 못해서 그래요.”소민아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신이랑이 결혼 때문에 복잡해 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솔직히 이게 더 좋은 상황 아니에요? 이랑 씨는 내 상사고, 우린 친구잖아요. 이랑 씨... 난 무슨 이유로든 지금의 관계를 변화시키고 싶지 않아요.”신이랑은 자신의 손을 빼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바람 좀 쐬러 나갈게요.”급히 나가는 모습이 영락없이 무언가 회피하는 것 같았다.늘 차분했던 신이랑은 평소와는 달리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발코니에서 주먹을 꽉 말아쥐고 눈을 감았다. 머리가 으스러지는 듯한 두통이 또다시 밀려오기
“됐어. 너 같은 냉혈한이 그런 걸 어떻게 알겠어.”서철용은 침대 옆에 앉아 호주머니에서 조개껍질 팔찌를 꺼냈다.“너 지금 모든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거 알아.”“전연우, 기억해. 깨어나면 소월 씨한테 죄를 묻는 게 아니라... 예전 네가 저질렀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 해.”“소월 씨는 줄곧 강영수의 죽음이 너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너희 두 사람 사이에 벽이 생긴 거야. 하지만... 이건 기억해야 해, 소월 씨는 너에게 아무것도 빚진 게 없다는 거. 소월 씨에겐 감정을 선택할 권리가 있어. 지금 강영수는 죽지 않고 잘 살아 있어.”“네가 계속 고집부리면서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면, 너한텐 영원히 소월 씨를 잃어야 하는 처벌이 내려질 거야.”“소월 씨가 성까지 바꾸고 강영수와 결혼하면 넌 어떻게 할까!”서철용은 전연우의 손가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반지를 끼고 있는 무명지가 살짝 움직였다. 서철용의 입꼬리가 위로 씩 올라갔다.“이제야 조급해졌어? 지금까지 뭐 하다 이제야 온 거야!”소민아가 일정을 말하기 시작한 지 1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안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이 보이자 소민아는 바로 일어섰다.“서 선생님, 대표님은 어떻게 됐어요?”“뭐 어떻겠어요. 당연히 식물인간 상태죠. 하지만 이번 달 안엔 깨어날 거예요.”소민아는 활짝 웃어 보였다.“그래요? 정말 잘됐네요.”서철용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 신이랑을 향해 말했다.“두 사람 언제 결혼해요? 나한테도 청첩장 보내는 거 잊지 말아요.”그 말에 신이랑과 소민아의 사이는 더 어색해졌다.소민아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며 말했다.“서 선생님, 오해예요.”서철용은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내가 찾아가지 않았는데 제 발로 왔네요?”송시아가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민아와 이랑 씨 결혼 청첩장은 내가 직접 보내줄게요. 걱정하지 말아요.”서철용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