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대답에 장해진의 찌푸렸던 이마가 스르르 풀렸다.“너도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니야. 남녀 간의 일은 만옥 이모가 너한테 가르쳐줄 거야. 될수록 3년 안에 아이를 가져.”아, 아이...장소월은 때때로 자신이 정말 가여웠다. 동시에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다.그녀는 영원히 아이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전생에도 없었고, 이번 생에도 없을 것이다. 두 번 모두...장소월에게 남은 유일한 아쉬움이었다.강만옥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쳐다보았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빙그레 웃으며 말이다.식사를 마친 뒤 장소월은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했다. 욕실에서 나와 마른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닦고 있을 때 갑자기 들려온 노크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그녀는 악마라도 만난 듯 잔뜩 경계하며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소월아, 자?”강만옥의 목소리에 장소월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가 문을 열어주었다.강만옥이 박스 하나를 안고 안으로 들어왔다.“이모, 무슨 일 있으세요?”“네 아버지가 이걸 가져다주라고 해서 왔어.”강만옥이 상자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장소월이 문을 닫고 상자를 열어보니 CD 하나가 들어있었다.“오늘 밤 이걸 봐.”CD에 붙어있는 그림을 본 순간 장소월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위엔 알아볼 수 없는 일본어와 섹시한 차림의 여자들이 야릇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장소월은 황당함에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강만옥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여자로서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야. 미리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지. 여자에겐 얼굴뿐만 아니라 침대 위에서의 스킬도 중요해. 소월아, 넌 이미 예쁜 얼굴을 타고났어. 절대 그 미모를 낭비하면 안 돼.”그녀의 말엔 다른 의미도 담겨 있는 듯했으나 장소월은 모르는 척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강만옥은 피식 웃으며 방을 나섰다.아버지는 그녀를 강만옥과 같은 여자로 만들려는 건가? 얼굴과 몸만으로 남자를 유혹
“어제 일찍 잤거든. 영수야... 주말에 계속 집에 있어야 할 것 같아. 오늘 저녁 아버지가 나를 인씨네 파티에 데려가려고 해.”“넌 가고 싶어? 만약 싫다면 이따가 오 집사한테 너 데리러 가라고 할게. 아니면... 네가 해성에 와도 되고. 모레 마침 월요일이니까 같이 서울에 돌아가자.”인씨와 강씨 가문의 관계를 장소월은 잘 알고 있었다. 인하 그룹의 대표는 강영수의 어머니였다. 강씨 가문을 떠나고 인씨 가문을 인수하기 시작했다. 강영수와 어머니는 오랫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고, 두 그룹 사이에 그 어떤 협력관계도 없었다.외부인들이 보기에 강씨 가문은 인씨 가문과 협력할 가치가 없었다.예전에 강영수가 자신을 남원 별장에 가두었을 때, 그의 어머니는 자주 그를 보러 갔었다. 인시윤 못지않게 강영수를 사랑하는 어머니였다.장소월은 강영수가 계속 자신의 어머니를 밀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예전 일을 거론하는 건 강영수에게 좋은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버지가 화내실 거야.”“내가 나선다면 아버지도 감히 뭐라 못할 거야. 만약 너에게 뭐라고 하면 당장 나한테 일러바쳐. 내가 당장 화풀이해 줄 테니까.”“좋아. 그럼 지금 당장 일어나서 너 보러 갈게.”“음, 준비 마치고 메시지 보내.”“알겠어.”진봉은 차를 몰면서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그럼 오늘 밤 저희 돌아갈 필요 있나요?”원래 일주일이던 스케줄을 3일 앞당겨 완성한 이유를 진봉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바로 장소월이 강영수를 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그래서 이틀 밤을 새워 프로젝트를 완성했다.역시 사랑은 위대한 것이다.“안 돌아가. 점심에 식당 예약해 놔. 현지 특색이 있는 음식으로.”“네, 대표님.”서울은 해성과 그리 멀지 않았고 오는데 한 시간 반밖에 걸리지 않는다. 해성은 바다와 가깝고 밤에는 야시장도 많아서 그녀와 함께 구경하고 싶었다.장소월은 검은 모직 코트를 입었는데, 지난번에 강영수가 빌려준 코트였다. 해성이 추울
강영수의 사람이 직접 데리러 오고, 장소월이 가고 싶어 하니 아무도 뭐라 할 수 없었다.아버지와 파티에 참석하는 것보다 강영수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나았다.장해진은 강씨 가문을 두려워하니, 감히 강영수의 심기를 건드릴 수 없었다.오전 10시에 출발해 점심 11시 30분쯤 해성에 도착했다.운전기사는 그녀를 고급 식당 앞에 데려다주었다.“아가씨, 저는 먼저 돌아가겠습니다. 큰 도련님께서 바래다주실 겁니다.”“네, 귀찮게 해드렸네요.”“아가씨 별말씀을요!”진봉은 익숙한 차량을 보고 다가가 조수석의 문을 열었고 장소월은 체인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려 옷을 꼭 여몄다.“대표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럼 전 이만 방해하지 않겠습니다.”들어가기 전 장소월이 물었다.“일은 다 마치셨나요?”진봉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이미 막바지에 접어들었으니 대표님이 직접 나서지 않으셔도 됩니다.”장소월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감사합니다.”사실 그녀도 자신이 와서 강영수에게 폐를 끼칠까 봐 걱정했다. 만약 그가 바쁘다면 혼자 해성을 구경할 생각도 했었다.식당으로 들어서자 장소월은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듯했다. 장소월은 다가가 조용히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기다리고 있는 분이 아직 안 오셨나요? 왜 아직도 음식을 주문하지 않으셨죠?”강영수는 소리를 듣고 휴대폰을 내려놓고는 그녀에게 차를 따라주었다.“마침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왔네요. 전 다른 건 몰라도 돈이 좀 많거든요. 먹고 싶은 것 마음껏 주문하세요.”몇 명의 종업원이 디저트를 가져왔고, 또 메뉴판을 가져왔다.“이 디저트는 뭐야?”“일단 배부터 채우라고 내가 주문했어.”장소월은 많이 먹지도 못하니 조금만 주문했다.하지만 이 디저트들은 포장해야 할 것 같았다. 강영수가 너무 많이 시켰기 때문이다.강영수는 짙은 눈으로 맛있게 먹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먹고 있는 것을 보는 것도 일종의 즐거움이었다.“이
계산하러 가려는데 갑자기 온화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렸다.“강 대표님? 여기서 또 만나네요?”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따라 보니 어느 부잣집 딸인지, 새하얀 피부에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장소월은 이 여자를 모르지만, 그녀 옆에 있는 사람을 알고 있었다.허이준, 바로 장소월과 같은 반 학생, 전교 1등 허이준이었다.장소월은 허이준을 보며 아마 두 사람이 남매일 것이라 짐작했다. 두 사람의 이목구비가 비슷해서 한눈에 알 수 있었다.허이준은 장소월과 시선이 마주쳤고,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나눴다.강영수는 허이경을 한 번 쳐다보았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장소월의 시선을 눈치챘다.“아는 사이야?”장소월은 사실대로 말했다.“같은 반 친구야.”강영수는 찡그렸던 미간을 조금 풀었다.카운터 직원은 계산서를 내밀며 말했다.“여기 계산서입니다. 확인해주세요. 네 분 함께 오셨나요?”장소월이 입을 열려고 하자 강영수가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잘 모르는 사이에요.”그리고 몸을 약간 돌리고는 장소월에게 말했다.“지갑 외투 주머니에 있어.”전보다 훨씬 부드러운 말투였다.허이경은 애써 웃으며 난처함을 달랬다.“우리는 12번 테이블이에요. 얼마죠?”“네, 잠시만요.”장소월은 손을 뻗어 그의 외투에서 검은 지갑을 꺼냈다. 지갑을 열고 보니 안에는 그녀의 사진이 끼어있었다. 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고, 타고난 곱슬머리의 그녀였다. 손질하기가 귀찮아서 파마를 했고 길면 자르곤 했다.“어느 카드?”장소월은 지갑에 자신의 사진이 있는 줄 몰랐고,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으니 순간 귀가 따가웠다.“아무거나.”장소월은 아무 카드나 뽑았고, 강영수의 눈빛이 조금 변하더니 이내 사라졌다.네 사람은 함께 계산을 마치고 식당을 나섰다.“강 대표님 기억력이 이렇게 나쁜 줄은 몰랐네요? 우리 저번 파티에서 만나서 얘기를 나눴었는데.”말하면서 허이경은 또 시선을 장소월에게 돌렸다.“이분은 동생?”동생?대체 어디를 봐서 남매란
장소월은 이런 일에 대해 더 이상 묻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녀의 인식 속에 돈과 지위가 있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찾는 것은 아주 정상적인 일이었다. 장해진도 그렇고 전연우도 그렇고...장소월이 다시 한번 자신의 감정에 용기를 낸 것은, 강영수가 그녀에게 한 번도 얻지 못한 안정감을 줬기 때문이다.장소월이 묻지 않는다고 해서 신경 안 쓴다는 뜻은 아니었다.그저 강영수가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심지어 육체적으로도 그녀를 저버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만약 강영수도 자신을 배신한다면, 장소월은 아마 그 누구도 믿지 못할 것이다.물건을 차에 놓고 강영수는 그녀를 데리고 해변으로 갔다.그들은 손을 잡고 해변을 거닐었고, 남자는 때때로 장소월의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손깍지를 끼고 산책하는 앞의 사람들을 보며 장소월은 순간 삶이 고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추워?”“아니.”강영수는 그녀의 코트 단추를 채워줬다.“여기 맘에 들어?”그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길을 계속 걷고 있었다.“응, 좋아. 전에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어. 고마워.”“못 와봤다고?”장소월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수업이 많아서 별로 나가 놀 시간이 없었어. 원래 작년 설 전에 겨울 캠프에 참가하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으셔서 못 갔어.”겨울 캠프?강영수의 눈빛이 조금 어두워졌다. 지난 겨울 캠프에 강용도 참가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러네, 이번에 졸업하면 나랑 여행 갈래?”강영수는 그녀가 승낙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거절했다.“아니야. 아버지가 흥취반 수업을 등록해줘서 이번 여름 방학 동안 아주 바쁠 거야.”“그래, 네 말대로 해.”멀지 않은 곳에 검은 캡 모자를 쓴 남자가 손에 고급 카메라를 들고, 타이밍을 맞춰 두 사람의 모습을 여러 장 찍고 있었다. 앞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옆모습은 볼 수 있었다.남자는 잘생긴 옆모습을 갖고 있었고, 손깍지를 낀 옆 사람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뒷모습만 봐도 아주 잘 어울리
창밖에서 날이 저물 때까지 자고 있던 장소월은 책을 넘기는 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그녀의 침대 옆에 강영수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베이지색 스웨터를 입고 목의 푸른 문신을 드러내고 있었고 부드러운 불빛이 그의 옆얼굴에 떨어졌다.하지만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때 전연우의 얼굴이 보였다.장소월은 화들짝 놀라 손을 짚고 일어나 거리를 두었고, 그의 얼굴을 완전히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강영수는 책을 덮고 말했다.“미안, 시끄러웠지?”장소월은 벌렁이는 가슴을 안고 쉽게 진정할 수 없었다.“아니야, 방금 악몽을 꿨어.”그녀는 머리를 쓸어넘기고 이불을 껴안고 침대에 걸터앉았다.“왜 여기 왔어?”“방금 너한테 전화했는데 안 통하더라고.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들어왔는데 자고 있어서, 잠시 보다가 가려고 했어.”장소월은 그의 다리 위에 똑같이 덮인 이불을 보았고, 강영수는 덤덤하게 입꼬리를 치켜 올리며 그녀가 오해할까 봐 설명했다.“추워서, 담요를 못 찾았거든...”장소월은 걱정스러운 듯 다가가 말했다.“또 다리가 아프기 시작한 거야? 내가 좀 주물러줄까?”강영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붙어 있으면 따뜻해서 안 아파.”장소월이 이번에 느낀 심장 박동은 놀라움이 아니라 두근거림이었다.그녀는 그의 어깨에 기대어 손을 뻗어 머뭇거리다가 그의 허리를 껴안았다. 이것도 동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장해진 쪽에도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이번 한 번만.그의 다리 위에 놓인 책을 보며 물었다.“이 책 재밌어?”“그럭저럭, 소련 전쟁 시기 사랑 이야기인데 들어볼래?”“응, 듣고 밥 먹으러 갈래.”밤하늘의 달빛이 내리쬐고 은빛 빛이 어두운 방에 녹아들어 유리를 통해 창문 앞에 떨어졌다.따뜻하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방에서 울려 퍼졌고, 남자는 여자의 작은 몸을 끌어안고 있었다. 참으로 아늑한 모습이었다...같은 시각. 서울.백윤서는 상인들의 모임 규칙에 익숙하지 않고 술을 마실 줄도 몰랐기 때문에 혼자 조용
“안돼, 안돼...”백윤서는 힘껏 몸부림쳤다.“순진한 척하지 마, 애기야.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이 오빠가 느끼게 해줄게.”“연우 오빠... 살려줘! 연우 오빠!”백윤서는 몸을 뒤틀며 연회장에서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는 전연우를 바라보았다. 가까운 누군가가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지만, 누군가 들어와서 전연우의 시야를 가렸다.인시윤과 시선이 마주쳤지만, 그녀는 덤덤하게 시선을 거둘 뿐이었다.백윤서는 절망적이었고, 입이 가려진 채로 물속에 끌려 들어갔다.그녀는 남자의 물건이 자신의 부드러운 곳에 닿는 것을 느꼈고, 황준엽은 흥분하며 성공을 예감했을 때, 여자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백윤서의 얼굴은 창백했고, 가슴이 답답하여 큰 숨을 들이쉬고 있었다.황준엽이 손을 놓자, 그녀는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 마치 물에 빠진 물고기처럼 조금도 허우적대지 않고 수영장으로 가라앉았다.‘젠장, 이 여자 무슨 병이라도 있는 거야?’너무 놀란 황준엽은 어찌할 바를 몰랐고, 여자가 죽을까 봐 서둘러 도망쳤다. 하지만 그녀는 올라오지 않았고, 위에 둥둥 떠 있는 긴 머리카락만 보였다.전연우는 디저트 코너를 바라보았지만 백윤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눈빛이 차가워졌다.인시윤은 입꼬리를 올리고 손에 든 샴페인을 흔들었다.“제가 이렇게 많은 사람을 소개해줬고 덕분에 큰 프로젝트까지 따냈는데, 저한테 어떻게 감사할 생각이에요?”전연우가 백윤서를 찾던 중 갑자기 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악! 누가... 누가 사고를 당했어요!”전연우는 사라진 백윤서가 가장 먼저 떠올랐고 술잔을 내려놓고 곧바로 뛰쳐나갔다.수영장 옆에서 여러 명이 함께 물에 빠진 백윤서를 구했다.전연우는 양복 코트를 벗어 그녀의 몸에 덮었다. 그의 강렬한 카리스마에 모두 옆으로 물러섰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윤서야, 윤서야!”전연우는 그녀의 얼굴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답도 들을 수 없었다.“구급차,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네, 알겠어요.”곧 수영장 옆에 많은 사람들이 둘러싸였다.
추워서 벌벌 떨며 얼굴에 핏기가 없는 백윤서를 바라보며, 전연우는 그녀를 품에 끌어당겨 안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괜찮아, 이제 괜찮아.”“오빠, 너무 아파요. 연우 오빠.”“약 어딨어?”백윤서는 숨이 막힐 것 같았고, 겨우겨우 숨을 쉬었다. “가방, 가방에.”전연우는 서둘러 백윤서를 소파에 앉혔고, 하인은 백윤서의 가방을 가져왔다.남자는 가방을 열고 안에 든 약을 찾아 백윤서에게 두 알 먹였다.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백윤서는 약을 먹고 난 후 호흡이 점차 가라앉았다.마침 구급차가 도착했고, 전연우가 백윤서를 안아 들자, 인시윤이 나섰다.“저도 같이 갈게요.”“그럴 필요 없어요.”전연우가 그녀를 보는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구급차에서 백윤서는 줄곧 전연우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연우 오빠, 무서워요.”“괜찮아. 이제 괜찮아. 다 나으면 다시 얘기해.”전연우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사실을 알게 된 장해진은 크게 화를 냈다.인시윤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방 안의 물건들을 모두 박살 냈고, 바닥은 온통 난장판이 되었다. 하인들은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아무도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나쁜 놈, 감히 나를 그렇게 대해? 내가 초대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번 파티에 올 자격도 없었다고! 고작 백윤서 때문에 나한테 화를 내?”“내가 백윤서를 물에 떨어뜨린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 그 꼴을 보이냐고! 전연우! 미치겠네 정말!”하인 중 한 명이 다가가 위로하듯 말했다.“아가씨, 이런 일로 화내실 필요 없으세요. 사모님께서 분명히 잘 조사하실 겁니다. 그래도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인데.”“네, 아가씨. 그분도 너무 걱정되는 마음에 잠시 말이 심하게 나왔을 거예요!”인정아가 밖에서 들어와 난장판이 된 방을 보고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고작 남자 때문에 이 난리를 쳤어? 시윤아, 너 전에는 이런 애 아니였잖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거야?”인시윤은 서둘러 물었다.“엄마, 조사한 건 어떻게 됐어요? 누가 밀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