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장소월, 네가 뭔데 우리 2반 일에 참견이야?”허경아가 책상을 쾅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친구들의 편에 서서 장소월을 비난했다. 장소월은 그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설채윤과 함께 몰려다니는 패거리였다.“그러니까! 우린 소현아에게 심부름을 시킨 거지 너한테 시킨 게 아니야! 당장 너희 반으로 꺼져.”소현아는 덜컥 겁이 나 장소월의 앞을 막아섰다.“소월이는 괴롭히지 마. 내가 지금 가서 사 올게.”그녀는 이어 조심스레 장소월의 옷깃을 잡아당겼다.“소월아, 난 괜찮으니까 돌아가. 이미 너한테 많은 도움을 받았어. 나 때문에 너한테 피해를 줄 순 없어.”그들과 맞서던 3, 5명의 여학생들 중 한 명이 장소월의 노트를 펼쳐보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너 같은 바보가 이해할 수 있겠어?”“만지지 마. 그건 장소월의 노트야.”소현아가 빼앗으려고 손을 뻗자 그들은 원숭이를 놀리는 것처럼 노트를 이리저리 돌리며 그녀를 농락했다.“네가 만지지 말라고 하면 만지지 말아야 해? 난 찢기까지 할 건데?”소현아가다급히 말했다.“안 돼.”다른 사람들은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상대가 도발적인 눈빛을 희번덕거리며 노트 위쪽을 살짝 찢었다.장소월이 평온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찢기 전에 첫 장을 펼쳐봐. 누구 이름이 쓰여 있을까?”“잘난 척하기는. 고작 누더기 노트일 뿐이면서.”첫 장을 펼쳐 본 허정아의 얼굴이 순간 굳어버렸다.“뭐 대단한 거라고.”허정아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애써 숨기며 다시 노트를 내려놓고 돌아섰다.장소월이 말했다.“거기 서!”“너... 또 뭘 하려는 건데?”“현아한테 사과해.”“내가 왜 사과까지 해야 하는데?”“누구의 이름이 쓰여있는지 봤잖아.”장소월이 단호히 말했다.허정아는 겁에 질려 어쩔 수 없이 소현아에게 사과했다.“미안해. 소현아.”그녀는 이를 꽉 깨물고 말을 내뱉었다.하지만 마음속으론 장소월을 인정하지 않았다. 몸을 팔며 남자에게 꼬리친 주제에 뭐가
장소월이 강용에게 문 앞까지 끌려갔을 때, 선생님이 교실에 도착했다.“강용, 영어 수업 곧 시작하는데 교실에 안 들어올 거야?”“쓸데없는 일에 상관하지 말고 꺼지세요.”강용이 거칠게 쏘아붙였다.선생님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표출해내지 못하고 곧바로 교실에 들어갔다.강용은 학교에서 소문난 망나니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예전보단 많이 나아지긴 했다.장소월이 말했다.“할 말 있으면 수업 끝나고 해. 나 수업 들어야 해.”강용의 힘에 짓눌린 장소월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는 장소월을 벽에 밀쳐넣고는 다른 한 손으로 벽을 집고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아까 그 멍청이한테 한 말 무슨 뜻이야?”장소월이 예쁜 눈썹을 찌푸렸다.“걔한테도 이름이 있어. 존중해줘.”강용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소현아!”그의 눈빛에 짜증스러움이 잔뜩 피어올랐다.“왜 걔한테 과외를 해주겠다는 거야!”장소월은 그와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도 이미 교실에 들어가셨고 지금 그들의 자세는 다른 사람의 오해를 받기 십상이었으니 말이다.그녀는 그를 힘껏 밀어내고는 차갑게 말했다.“소현아는 내... 친구야.”장소월의 머릿속에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이름을 불러주던 소현아의 모습이 떠올랐다.“난 네가 연애하는 거 반대하지 않아. 앞으로 난 매일 도서관에서 현아에게 공부를 가르쳐줄 거야. 넌 오든 말든 마음대로 해. 지금의 네 성적으로도 충분히 서울대에 갈 수 있으니까. 설채윤을 데려오는 것도 반대 안 해. 하지만 난 너만 가르칠 거야. 내겐 설채윤까지 가르칠 의무는 없으니까. 차라리 네가 직접 가르쳐. 또한 난 우리가 서로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난 그저 네가 서울대에 진학하는 걸 돕겠다고 약속했을 뿐이야... 다른 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강용은 진지하고도 단호하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서 무언가를 읽고 싶었으나 아무것도 보아내지 못했다. 본래 희미하게 빛나던 등불이 돌연 불어온 바람에 휙 꺼져버
장소월은 15분이 지난 다음에야 학교에서 나가 강씨 집안에서 보낸 차에 탔다. 핸드폰을 열어보니 강영수로부터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그녀가 답장을 하려는 순간, 돌연 핸드폰이 울렸고 그녀는 망설이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아버지.”장해진이었다. 거의 처음으로 그녀에게 직접 걸어온 것이었다.“연우한테 들었는데 인씨 가문에서 파티에 너도 초대했다며?”핸드폰 너머의 그 사람은 평소와 같이 침착하고 퉁명스러운 말투로 그녀를 압박하고 있었다.“네.”“강 대표는 아직 해성에서 돌아오지 않아 참석하지 못할 거야. 오늘 집에 돌아와 준비하고 내일 나랑 같이 가자. 너한테 소개시켜줄 사람들도 있어.”“하지만...”모기처럼 기어들어가는 세 글자를 내뱉은 뒤, 장소월은 이내 말을 바꾸었다.“네. 아버지. 알겠어요.”길게 말할 필요도 없다.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이유로든, 그녀는 아버지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다.장소월은 운전 기사에게 말해 방향을 돌려 장씨 가문 남원 별장으로 향했다.집에 도착한 뒤 장소월은 운전기사를 돌려보냈다.인씨 집안의 인맥이라면 아마 서울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들을 초대했을 것이다.장해진의 목적은 서울 상업계에 자신의 딸과 강영수의 관계를 공표하는 것이다.예전 강영수 또한 그녀와 함께 여러 차례 파티에 참석하고 싶었었다. 하지만 모두 그녀에게 거절당했다. 가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말이다.강영수는 종래로 그녀에게 내키지 않은 일을 강제로 시킨 적이 없다.하지만 장해진은 다르다. 어렸을 때부터 강한 압박 속에서 자라온 그녀는 아버지의 말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남원 별장에 들어가자 장소월의 눈에 밥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다들 그녀를 기다리는 듯했다.전연우, 백윤서, 강만옥도 자리하고 있었다. 장해진이 그녀에게 말했다.“손 씻고 와서 밥 먹어.”“네. 아버지.”장소월이 책가방을 벗자 은경애가 받아안았다.강만옥이 일어나 그릇에 국을 담고는 장소월의 자리에 놓아주었다.“강씨 저택에서 잘 지냈어? 안
그 대답에 장해진의 찌푸렸던 이마가 스르르 풀렸다.“너도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니야. 남녀 간의 일은 만옥 이모가 너한테 가르쳐줄 거야. 될수록 3년 안에 아이를 가져.”아, 아이...장소월은 때때로 자신이 정말 가여웠다. 동시에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다.그녀는 영원히 아이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전생에도 없었고, 이번 생에도 없을 것이다. 두 번 모두...장소월에게 남은 유일한 아쉬움이었다.강만옥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쳐다보았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빙그레 웃으며 말이다.식사를 마친 뒤 장소월은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했다. 욕실에서 나와 마른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닦고 있을 때 갑자기 들려온 노크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그녀는 악마라도 만난 듯 잔뜩 경계하며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소월아, 자?”강만옥의 목소리에 장소월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가 문을 열어주었다.강만옥이 박스 하나를 안고 안으로 들어왔다.“이모, 무슨 일 있으세요?”“네 아버지가 이걸 가져다주라고 해서 왔어.”강만옥이 상자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장소월이 문을 닫고 상자를 열어보니 CD 하나가 들어있었다.“오늘 밤 이걸 봐.”CD에 붙어있는 그림을 본 순간 장소월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위엔 알아볼 수 없는 일본어와 섹시한 차림의 여자들이 야릇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장소월은 황당함에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강만옥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여자로서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야. 미리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지. 여자에겐 얼굴뿐만 아니라 침대 위에서의 스킬도 중요해. 소월아, 넌 이미 예쁜 얼굴을 타고났어. 절대 그 미모를 낭비하면 안 돼.”그녀의 말엔 다른 의미도 담겨 있는 듯했으나 장소월은 모르는 척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강만옥은 피식 웃으며 방을 나섰다.아버지는 그녀를 강만옥과 같은 여자로 만들려는 건가? 얼굴과 몸만으로 남자를 유혹
“어제 일찍 잤거든. 영수야... 주말에 계속 집에 있어야 할 것 같아. 오늘 저녁 아버지가 나를 인씨네 파티에 데려가려고 해.”“넌 가고 싶어? 만약 싫다면 이따가 오 집사한테 너 데리러 가라고 할게. 아니면... 네가 해성에 와도 되고. 모레 마침 월요일이니까 같이 서울에 돌아가자.”인씨와 강씨 가문의 관계를 장소월은 잘 알고 있었다. 인하 그룹의 대표는 강영수의 어머니였다. 강씨 가문을 떠나고 인씨 가문을 인수하기 시작했다. 강영수와 어머니는 오랫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고, 두 그룹 사이에 그 어떤 협력관계도 없었다.외부인들이 보기에 강씨 가문은 인씨 가문과 협력할 가치가 없었다.예전에 강영수가 자신을 남원 별장에 가두었을 때, 그의 어머니는 자주 그를 보러 갔었다. 인시윤 못지않게 강영수를 사랑하는 어머니였다.장소월은 강영수가 계속 자신의 어머니를 밀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예전 일을 거론하는 건 강영수에게 좋은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버지가 화내실 거야.”“내가 나선다면 아버지도 감히 뭐라 못할 거야. 만약 너에게 뭐라고 하면 당장 나한테 일러바쳐. 내가 당장 화풀이해 줄 테니까.”“좋아. 그럼 지금 당장 일어나서 너 보러 갈게.”“음, 준비 마치고 메시지 보내.”“알겠어.”진봉은 차를 몰면서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그럼 오늘 밤 저희 돌아갈 필요 있나요?”원래 일주일이던 스케줄을 3일 앞당겨 완성한 이유를 진봉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바로 장소월이 강영수를 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그래서 이틀 밤을 새워 프로젝트를 완성했다.역시 사랑은 위대한 것이다.“안 돌아가. 점심에 식당 예약해 놔. 현지 특색이 있는 음식으로.”“네, 대표님.”서울은 해성과 그리 멀지 않았고 오는데 한 시간 반밖에 걸리지 않는다. 해성은 바다와 가깝고 밤에는 야시장도 많아서 그녀와 함께 구경하고 싶었다.장소월은 검은 모직 코트를 입었는데, 지난번에 강영수가 빌려준 코트였다. 해성이 추울
강영수의 사람이 직접 데리러 오고, 장소월이 가고 싶어 하니 아무도 뭐라 할 수 없었다.아버지와 파티에 참석하는 것보다 강영수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나았다.장해진은 강씨 가문을 두려워하니, 감히 강영수의 심기를 건드릴 수 없었다.오전 10시에 출발해 점심 11시 30분쯤 해성에 도착했다.운전기사는 그녀를 고급 식당 앞에 데려다주었다.“아가씨, 저는 먼저 돌아가겠습니다. 큰 도련님께서 바래다주실 겁니다.”“네, 귀찮게 해드렸네요.”“아가씨 별말씀을요!”진봉은 익숙한 차량을 보고 다가가 조수석의 문을 열었고 장소월은 체인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려 옷을 꼭 여몄다.“대표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럼 전 이만 방해하지 않겠습니다.”들어가기 전 장소월이 물었다.“일은 다 마치셨나요?”진봉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이미 막바지에 접어들었으니 대표님이 직접 나서지 않으셔도 됩니다.”장소월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감사합니다.”사실 그녀도 자신이 와서 강영수에게 폐를 끼칠까 봐 걱정했다. 만약 그가 바쁘다면 혼자 해성을 구경할 생각도 했었다.식당으로 들어서자 장소월은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듯했다. 장소월은 다가가 조용히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기다리고 있는 분이 아직 안 오셨나요? 왜 아직도 음식을 주문하지 않으셨죠?”강영수는 소리를 듣고 휴대폰을 내려놓고는 그녀에게 차를 따라주었다.“마침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왔네요. 전 다른 건 몰라도 돈이 좀 많거든요. 먹고 싶은 것 마음껏 주문하세요.”몇 명의 종업원이 디저트를 가져왔고, 또 메뉴판을 가져왔다.“이 디저트는 뭐야?”“일단 배부터 채우라고 내가 주문했어.”장소월은 많이 먹지도 못하니 조금만 주문했다.하지만 이 디저트들은 포장해야 할 것 같았다. 강영수가 너무 많이 시켰기 때문이다.강영수는 짙은 눈으로 맛있게 먹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먹고 있는 것을 보는 것도 일종의 즐거움이었다.“이
계산하러 가려는데 갑자기 온화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렸다.“강 대표님? 여기서 또 만나네요?”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따라 보니 어느 부잣집 딸인지, 새하얀 피부에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장소월은 이 여자를 모르지만, 그녀 옆에 있는 사람을 알고 있었다.허이준, 바로 장소월과 같은 반 학생, 전교 1등 허이준이었다.장소월은 허이준을 보며 아마 두 사람이 남매일 것이라 짐작했다. 두 사람의 이목구비가 비슷해서 한눈에 알 수 있었다.허이준은 장소월과 시선이 마주쳤고,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나눴다.강영수는 허이경을 한 번 쳐다보았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장소월의 시선을 눈치챘다.“아는 사이야?”장소월은 사실대로 말했다.“같은 반 친구야.”강영수는 찡그렸던 미간을 조금 풀었다.카운터 직원은 계산서를 내밀며 말했다.“여기 계산서입니다. 확인해주세요. 네 분 함께 오셨나요?”장소월이 입을 열려고 하자 강영수가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잘 모르는 사이에요.”그리고 몸을 약간 돌리고는 장소월에게 말했다.“지갑 외투 주머니에 있어.”전보다 훨씬 부드러운 말투였다.허이경은 애써 웃으며 난처함을 달랬다.“우리는 12번 테이블이에요. 얼마죠?”“네, 잠시만요.”장소월은 손을 뻗어 그의 외투에서 검은 지갑을 꺼냈다. 지갑을 열고 보니 안에는 그녀의 사진이 끼어있었다. 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고, 타고난 곱슬머리의 그녀였다. 손질하기가 귀찮아서 파마를 했고 길면 자르곤 했다.“어느 카드?”장소월은 지갑에 자신의 사진이 있는 줄 몰랐고,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으니 순간 귀가 따가웠다.“아무거나.”장소월은 아무 카드나 뽑았고, 강영수의 눈빛이 조금 변하더니 이내 사라졌다.네 사람은 함께 계산을 마치고 식당을 나섰다.“강 대표님 기억력이 이렇게 나쁜 줄은 몰랐네요? 우리 저번 파티에서 만나서 얘기를 나눴었는데.”말하면서 허이경은 또 시선을 장소월에게 돌렸다.“이분은 동생?”동생?대체 어디를 봐서 남매란
장소월은 이런 일에 대해 더 이상 묻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녀의 인식 속에 돈과 지위가 있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찾는 것은 아주 정상적인 일이었다. 장해진도 그렇고 전연우도 그렇고...장소월이 다시 한번 자신의 감정에 용기를 낸 것은, 강영수가 그녀에게 한 번도 얻지 못한 안정감을 줬기 때문이다.장소월이 묻지 않는다고 해서 신경 안 쓴다는 뜻은 아니었다.그저 강영수가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심지어 육체적으로도 그녀를 저버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만약 강영수도 자신을 배신한다면, 장소월은 아마 그 누구도 믿지 못할 것이다.물건을 차에 놓고 강영수는 그녀를 데리고 해변으로 갔다.그들은 손을 잡고 해변을 거닐었고, 남자는 때때로 장소월의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손깍지를 끼고 산책하는 앞의 사람들을 보며 장소월은 순간 삶이 고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추워?”“아니.”강영수는 그녀의 코트 단추를 채워줬다.“여기 맘에 들어?”그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길을 계속 걷고 있었다.“응, 좋아. 전에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어. 고마워.”“못 와봤다고?”장소월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수업이 많아서 별로 나가 놀 시간이 없었어. 원래 작년 설 전에 겨울 캠프에 참가하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으셔서 못 갔어.”겨울 캠프?강영수의 눈빛이 조금 어두워졌다. 지난 겨울 캠프에 강용도 참가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러네, 이번에 졸업하면 나랑 여행 갈래?”강영수는 그녀가 승낙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거절했다.“아니야. 아버지가 흥취반 수업을 등록해줘서 이번 여름 방학 동안 아주 바쁠 거야.”“그래, 네 말대로 해.”멀지 않은 곳에 검은 캡 모자를 쓴 남자가 손에 고급 카메라를 들고, 타이밍을 맞춰 두 사람의 모습을 여러 장 찍고 있었다. 앞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옆모습은 볼 수 있었다.남자는 잘생긴 옆모습을 갖고 있었고, 손깍지를 낀 옆 사람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뒷모습만 봐도 아주 잘 어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