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 30분.장소월은 차 뒷좌석에 앉아 괴로운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일찍 나오는 게 아니었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이들을 만나지 않았을 텐데.오늘은 집에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에 평소보다 일찍 교실을 나섰다. 하지만 하필 그때 학교에서 걸어 나오는 전연우와 백윤서와 맞닥뜨린 것이다.그들은 야식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전연우는 그녀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다짜고짜 끌고 차에 들이밀었다.전연우와 백윤서는 한창 신나게 야식 메뉴와 주말 데이트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장소월은 연인 사이인 두 사람의 행복한 시간에 끼어든 방해꾼이 되었다는 기분이 들어 너무나도 불편했다.백윤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물었다.“소월아, 너 뭐 먹고 싶어? 꼬치구이? 아니면 해산물?”잠시 다른 생각에 잠겨있다가 그제야 정신이 든 장소월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난 다 좋아요. 사실 난 별로 배가 고프지도 않아요.”“너 집에 다녀간 지 진짜 오래됐어. 오늘 같은 시간에 끝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만나지도 못했을 거야.”백윤서가 잠시 고민하고는 말했다.“그럼 우리 꼬치구이 먹으러 가자. 그 가게엔 훠궈도 있어.”순간 장소월은 백미러로 전연우의 깊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가 당황하며 재빨리 눈을 피했다.“그래요.”그녀는 훠궈를 먹어본 적이 없어 먹고 배탈이 나진 않을지 알 수 없었다.저번 강용과 길거리에서 먹은 꼬치구이로 인해 이미 충분히 곤욕을 치렀었다.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장소월은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진동하는 것을 느끼고 걸음을 멈추었다. 두 사람은 이미 가게에 들어가 있었다.이어 그녀가 옆으로 자리를 옮겨 전화를 받았다.백윤서는 전연우의 팔짱을 끼고 종업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몸을 돌려 뒤를 확인해보니 장소월은 아직 밖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듯했다.“오빠, 뭘 먹을 거야?”“네 마음대로 주문해. 난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백윤서가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전화를 건 사람은 강영수였다. 매번 통화할
그의 힘이 느슨해진 틈을 타 장소월은 힘껏 그를 밀쳐냈다. 그녀가 벗어나려고 한 순간, 전연우는 애써 반항하다가 도망치는 나약한 토끼를 잡듯 그녀의 목덜미를 낚아챘다.장소월은 속수무책으로 끌려가 다시 그의 품 안에 가둬졌다.“안 보이는 동안 살쪘네?”어둠 속에서 똑똑히 볼 순 없었지만 그녀를 한껏 농락하는 전연우의 눈빛을 선명히 상상할 수 있었다.“너랑 무슨 상관이야. 너희 집 밥을 먹은 것도 아니잖아.”전연우가 장소월의 뱃살을 꼬집으며 그녀의 목덜미에 깊게 키스했다. 찌릿한 전류가 온몸을 휘감았다.실은 장소월에게선 살집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전에 비해 약간 살이 쪘을 뿐이다. 예전 그녀는 너무 말라 침대에서 누군가 살짝 건드리기만 하면 허리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강씨 집안으로 도망치면 내가 널 건드리지 못할 줄 알았어? 응?”장소월은 가슴에 얹어진 몹쓸 남자의 손길을 느꼈다. 그가 손에 힘을 주자 장소월의 입에서 유혹적인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만 그건 몸이 닳아 올라 나온 본능적인 소리가 아니라 통증 때문이었다.그가 힘을 너무 많이 주었던 것이다.장소월이 불경스레 움직이는 그의 손을 잡고는 휙 밀쳐냈다.“전연우, 그만해! 윤서 언니가 알게 되는 게 두렵지도 않아? 아직 옆 가게에 있다는 거 잊지 마.”“너 무서워?”장소월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맞아. 무섭기도 하고 역겹기도 해. 백윤서 한 명으로도 부족해서 나한테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전연우, 너 이런 더러운 습관 대체 언제 고칠래? 윤서 언니는 널 많이 좋아하고 있고 너도 윤서 언니를 좋아하잖아. 만약... 윤서 언니에 대한 마음이 진심이라면 이런 행동을 해서는 안 돼. 분명 상처받을 거야.”전연우의 목소리가 어두워졌다.“네 입에서도 그런 말이 나온다고?”“난 윤서 언니가 힘들어하는 거 싫어. 미안한 일을 하고 싶지도 않고. 이제 이런 짓 그만해. 너도 윤서 언니가 상처받는 건 원하지 않잖아.”전연우가 장소월을 놓아주자 그녀는 옷에 잡힌 주름을 정리하고는
전연우가 깊은 눈동자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블랙홀과도 같아서 도저히 그 무엇도 보아낼 수 없었다.무슨 이유에서인지 사귄 지 꽤 되었음에도 백윤서는 그를 완전히 얻은 것 같지 않았고 진정으로 그를 이해하지도 못한 것 같았다.손을 잡는 것 외에 연인 사이에서 흔히 하는 스킨쉽인 키스도 해본 적이 없었다.백윤서는 그저 자신이 너무 조급했다고 생각하며 애써 실망감을 숨겼다.전연우는 아직도 예전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녀를 동생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전연우는 프런트에서 계산을 한 뒤 가게를 나섰다.오늘 그들은 가든 아파트가 아닌 장씨 저택으로 향했다.백윤서는 웅장하게 서 있는 별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오빠, 우리 집에 안 가?”백윤서는 해외에서 돌아온 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줄곧 이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더더욱 싫었던 건 바로... 장해진이 그녀를 보는 눈빛이었다.“윤서는 여기가 싫어?”“아니요.”백윤서가 고개를 저었다.하지만 전연우는 그녀의 표정에서 무언가 말하기 어려운 것이 있을 거라 추측했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오빠한테 말해.”전연우의 눈빛은 그녀의 머릿속을 훤히 꿰뚫어 보는 듯했다.백윤서는 당황스러움을 애써 감추며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말했다.“아니. 아무 일도 없었어요.”그녀는 말을 마친 뒤 전연우의 뺨에 살짝 입을 맞추고는 발그레해진 얼굴로 말했다.“오빠, 잘 자요. 난 먼저 들어갈게요.”백윤서는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양 차 문을 열고 부랴부랴 달려들어 갔다.남자의 얼굴엔 소녀가 남겨놓은 향기가 따스하게 남아있었다. 하지만 전연우의 표정은 여전히 냉담했다.백윤서가 거실로 들어가 아직 깨어있는 강만옥에게 인사하고는 위층으로 총총 올라갔다.백윤서가 돌아왔다는 건... 전연우도 왔다는 걸 의미한다.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전연우가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열쇠를 선반 위에 내려놓고 주방에 앉아있는 사람을 힐끗 쳐다보고는 이내 시선을 돌렸다.“여자친구
강만옥은 그의 눈빛을 읽고 싶었으나 깊게 감춘 그의 속내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그녀의 마음엔 비참함만 자리 잡았다.“질투하는 거야?”전연우가 컵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는 정장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이어 더러운 물건이라도 만진 것처럼 손을 슥슥 닦고는 바닥에 버렸다.강만옥이 씁쓸하게 웃음을 지었다.“맞아. 원하는 남자를 얻지 못했으니 당연히 질투가 나지.”전연우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하찮은 듯 쳐다보았다.“내 옆에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붙어있어 놓고 고작 알아낸 게 그거야? 아쉽네. 난 깨끗한 여잘 좋아하거든.”가볍게 툭 뱉어낸 그의 말이 강만옥의 심장을 후벼팠다. 힘들게 봉합된 상처에서 또다시 시뻘건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그렇다. 확실히 그녀의 몸은 더럽혀졌다. 더욱이... 그녀는 전연우와 어울리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그런 눈빛으로 날 보지마. 역겨우니까.”이 말은 장소월이 그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에게도 그 말 곧이곧대로 다른 사람에게 할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그야말로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장소월이 강씨 저택에서 산다고 해도 그에게는 그녀를 돌아오게 할 몇백 가지의 방법이 있다.“전연우, 우린 같은 류의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마. 최선을 다해 백윤서를 보호하는 게 좋을 거야. 네가 지금까지 했던 그 모든 일들을 알고도 네 옆에 있어 줄 것 같아?”“그리고 장소월... 만약 네가 갖은 방법을 동원해 장씨 집안에 들어온 목적이 이곳 모든 사람들을 죽이기 위함이라는 걸 안다면 어떻게 될까? 강씨 집안을 이용해 네 목숨을 끊어버릴 수도 있겠지.”전연우가 차갑게 말했다.“어디 한 번 해봐. 내가 먼저 죽는지 네가 먼저 죽는지 보자고.”...다음날은 주말이었다.전연우는 백윤서와 함께 놀이공원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두 사람이 데이트를 하고 있는 모습은 누군가의 카메라에 찍혀 한장 한장 장해진의 눈앞에 놓였다.분노에 휩싸인 장해진의 가슴팍이 아래위로 움직였다. 그의 얼굴은
날이 어두워지고 저녁밥까지 먹고 나서야 전연우는 백윤서를 데리고 가든 아파트로 향했다.백윤서에게 오늘은 가장 기쁜 날이었다. 하여 그녀는 들뜬 마음에 와인도 몇 잔 마셨다.돌아올 땐 술에 취한 탓에 전연우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집에 들어온 뒤 전연우는 발로 문을 닫았다.백윤서는 몸을 돌려 전연우의 목을 끌어안았다. 몽롱한 두 눈동자엔 취기가 잔뜩 어려있었다.“오빠... 약속해. 나랑 영원히 함께할 거라고.”‘쿵.’그때 방안에서 돌연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움직임은 작았지만 전연우의 귀를 피할 순 없었다.이내 그의 시선이 문틈으로 향했다. 불이 켜져 있는 걸 보니 안에 누군가 있는 듯했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장소월이었다.장소월은 부딪힌 이마를 부여잡고 다른 한 손으로 캐리어를 끌고 백윤서의 방에서 걸어 나왔다. 나온 순간 환히 불빛이 켜져 있는 거실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두 사람의 친밀한 자세를 보니 무언가 하려는 것 같았다. 그녀는 당황스러움을 애써 감추며 황급히 사과했다.“미안해요! 전에 이곳에 둔 옷을 가지러 온 거예요. 찢어진 윤서 언니의 필기 노트는 내가 모두 새로 베낀 뒤 책상에 놓아두었어요. 그럼 계속해요. 전 이만 갈게요.”당시 남원별장에서 인테리어를 할 때 그녀는 이곳에서 한동안 머물렀었다. 당시 꽤 많은 물건을 가져왔었는데 그중엔 그녀가 평소 자주 입던 옷과 올림피아드 반에서 받은 자료들도 있었다. 그 후 너무 급히 떠난 탓에 물건을 가져갈 겨를이 없었었다.그녀는 오늘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오는 길에 이곳에 들린 것이다. 하지만 물건을 모두 챙기고 방을 나서려고 할 때, 전에 침대 밑에 떨어뜨렸던 영어 테이프가 생각났다.하여 손을 뻗어 줍는 과정에서 이마를 부딪친 것이다.그때 마침 그들이 집에 돌아왔다.그녀는 오기 전 전연우의 집에 전화를 걸어 그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이곳에 발을 들였다.이럴 줄 알았다면 절대 오지 않았을 것이다.장소월은 전연우가 입을 열기도 전에
백윤서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것을 빼앗길까 봐 크나큰 두려움이 엄습했다.가장 큰 감정은 바로 질투였다.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 아무것도 할 필요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반면 그녀는 아무리 발버둥 치고,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했다. 심지어 역겨운 눈빛까지 참아내야 했다.장소월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문을 나섰다. 행여 그 지옥에서 탈출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으니 말이다.그녀가 차에 타자 운전기사가 물건을 트렁크에 실었다.“아가씨, 물건은 모두 챙기셨나요?”“네. 얼른 가죠!”가장 중요한 것은 영어 테이프였다. 이곳에 있었으니 며칠 내내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강씨 저택.장소월이 돌아왔을 때, 저번 그 노부인이 또다시 집안에 들어와 있었다.밖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노부인이 지팡이를 잡고 현관을 내다보았다. 그녀는 동으로 만든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두 개의 끈이 양쪽으로 드리워져 있었다.“할머니, 여긴 무슨 일로 오셨어요?”“이 몸이 늙어 또 길을 잃었네요. 집에 먹을 거 있어요? 너무 배고프네요.”장소월이 집안을 둘러보니 도우미들은 보이지 않았다.“제가 지금 차려드릴게요.”장소월이 목에 둘렀던 수건과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놓았다. 그녀는 안에 입은 아이보리색 니트 소매를 거두며 주방으로 들어가 따뜻한 물을 가져와 노부인의 앞에 놓아주었다.“일단 물을 마시고 과일을 드시면서 허기를 달래세요. 제가 최대한 빨리 만들게요.”장소월은 평소 항상 꺼져있던 텔레비전을 켜고 드라마 채널로 돌렸다.“내가 드라마를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예전 할머니와 한동안 산 적 있는데 저희 할머니도 드라마를 좋아하셨어요.”노부인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장소월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오늘도 혼자 있는 거예요? 도련님은요?”“출장 갔어요. 며칠 뒤에야 돌아올 거예요.”장소월은 주방에 들어가 식자재들을 가득 꺼냈다.노부인이 물었다.“도련님이 이렇게 어린 아가씨를 집에 데려온 건 처음 봤어요. 두 사람 사귀는 거예요?”장
장소월이 전화를 받았다. 통화 내용은 늘 그랬듯 밥은 먹었냐, 뭘 먹었냐 등 일상적인 대화였다. 강영수는 매일 시간을 보며 그녀의 일정을 체크하는 것 같았다. 대부분은 강영수가 장소월에게 전화를 걸었다. 반면 장소월은 핸드폰을 별로 쓰지 않아 가끔씩 생각날 때마다 문자를 보냈다.7,8분 뒤 면이 거의 익자 장소월은 젓가락으로 냄비에서 면을 꺼내 그릇에 담았다.“강 대표님, 파티를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열어 죄송해요. 저한테 함께 술 한 잔 할 수 있는 영광을 주실 수 있을까요?”부드러운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 아마 해성 명문가의 아가씨일 것이다.장소월은 잠시 딴생각을 하다가 조심하지 않아 뜨거운 물에 손이 데었다.조금 전 파티장에서 걸어 나온 허이경은 베란다에 서 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가까이 다가왔다. 그가 통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내 입을 닫았다.강영수가 못마땅한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자 허이경은 순간 깜짝 놀랐다.그가 설명하려고 할 때, 장소월이 말했다.“바쁜 것 같으니까 더 방해하지 않을게. 얼른 호텔에 돌아가 쉬어.”말을 마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분명 똑똑히 들었음에도 그에게 아무런 설명도 요구하지 않았다.순간 강영수에게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의 눈동자엔 약간의 실망감도 스쳐 지나갔다.강영수가 핸드폰을 정장 호주머니에 넣고 차가운 분위기를 내뿜으며 허이경을 무시해버린 채 그녀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그녀가 입을 열었다.“죄송해요. 통화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강영수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래요? 그럼 앞으로 조심하세요. 당신은 아직 나와 말을 섞을 수 있는 자격을 갖고 있지 못해요.”그때 밖에 나갔던 진봉이 핑크색 선물 박스를 들고 들어왔다.“대표님, 소월 아가씨가 원하셨던 선물 사 왔습니다. 하지만 무슨 맛을 원하는지는 말씀하지 않으셔서 종류별로 모두 사 왔습니다.”강영수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래층으로 향하는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잘했어.”그날의 통화 이후 두
장소월의 존재가 강영수에게 구원이라면, 소현아는 장소월에게 치유 같은 존재였다.그녀는 소현아의 성적을 본 적이 있다. 2반에서 가장 마지막 등수였고 심지어 6반에서도 꼴등일 것이다.장소월은 성적이 가장 낮은 학생이 강용인 줄로 알았으나 알고 보니 소현아였다.소현아는 몸이 아파 저번 기말고사를 보지 못했다. 하여 공표란에 그녀의 성적이 없었던 것이다.이런 성적이라면 2반이 아니라 6반에 있어야 마땅하다. 그 원인에 대해 장소월은 묻지 않았다.점심밥을 먹고 난 뒤 장소월은 소현아와 함께 도서관에 갔다. 예전 그녀는 매일 강용에게 과외를 해주었지만 이젠 매주 화요일, 목요일, 금요일에만 하기로 했다. 사실 지금 그의 성적으로도 충분히 서울대에 진학할 수 있다. 그는 저번 시험에서 2반 10등 안쪽에 진입하기도 했다.최근 며칠간 강용은 계속 여자친구와 함께 도서관에 왔고 장소월은 마치 방해꾼과도 같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있었다.오늘 장소월은 먼저 도서관에 도착해 강용이 오기 전까지 소현아를 가르쳤다.소현아는 정말...가장 기본적인 문제도 풀지 못하는 수준이었다.소현아는 펜을 잡고 고개도 들지 못했다.“소월아, 나 진짜 멍청하지? 아무리 가르쳐줘도 모르잖아.”“나 여러 차례 반을 바꿨었어. 그때마다 친구들이 다 날 바보라고 놀리더라고.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머리가 나빴던 건 아니었어. 예전엔 진짜 총명했거든. 하지만 어렸을 적 고열을 앓았을 때, 가정형편이 너무 가난해 제때에 치료를 받지 못했어. 그 바람에 뇌를 다쳤고 기억력이 퇴화한 거야. 소월아, 걱정하지 마. 난 꼭 너처럼 노력할 거야. 저번에 네가 가르쳐준 문제는 이제 풀 수 있어.”장소월이 물었다.“반을 바꿨다고?”소현아는 한껏 고개를 떨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친구들이 날 바보라고 놀리고 괴롭혀서 연속 반을 바꿨어. 2반에 오니까 별로 괴롭히지 않더라고. 선생님께서 다시 반을 바꾸면 퇴학시키겠다고 하셨어.”그런 거였구나.“걱정하지 마. 이젠 아무도 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