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수는 그레이 색 셔츠와 조끼 차림으로 손에 정장 재킷을 걸치고 이마를 짓누르며 내려왔다. 어젯밤 푹 쉬지 못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아직 식탁에 앉아 천천히 아침을 먹고 있는 장소월의 모습에 조금 놀랐다. 평소라면 이 시간이면 이미 학교에 갔을 테니 말이다.장소월이 그에게 인사했다.“좋은 아침이야!”“그래, 좋은 아침. 왜 아직도 안 갔어?”장소월이 덤덤히 말했다.“깜빡하고 핸드폰 충전을 못 했거든. 알람이 울리지 않아 일찍 깨지 못했어. 하지만 괜찮아. 이미 선생님한테 얘기했어.”“아침밥 먹을래? 오늘 죽 맛있어.”강영수가 그릇을 들고 힐끗 시간을 보고는 말했다.“그래.”이어 외투를 의자에 걸쳐놓았다.아침 식사를 마친 뒤 강영수는 차를 몰고 장소월을 학교에 데려다주었다.마침 첫 번째 수업이 시작되는 시간이었다.강영수는 몸을 기울여 장소월의 안전벨트를 풀어주었다.“고마워. 그럼 난 갈게.”“하교 시간은 여전히 평소와 같은 그 시간이야? 내가 데리러 올까?”장소월이 대답했다.“나도 잘 모르겠어. 고 선생님께서 날 특별반에 넣어주셨거든. 그래서 저녁엔 수업하러 가야 해. 몇 시에 끝나는지는 아직 몰라.”강영수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끝나면 나한테 문자를 보내. 저녁에 나도 야근할 테고 마침 방향도 같으니 함께 집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장소월이 말했다.“그래.”차에서 내린 뒤 장소월은 다시 몸을 돌렸다. 강영수가 그녀를 바라보며 차 창문을 내렸다.“왜?”장소월은 책가방 끈을 꽉 쥐며 말했다.“강영수, 매일 꼭 끼니를 챙겨 먹어야 해.”그녀가 물건을 차에 두고 내렸을 거라 생각한 강영수는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지극히 일반적인 걱정어린 당부였지만 정말 기뻤다.강영수의 검은 눈동자에서 따뜻함이 더 짙게 일렁였다.“알았어.”“갈게!”장소월이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집을 나설 땐 그녀가 가장 늦게 등교하는 사람일 거라 생각했지만 학교에 도착해보니 그녀보다 늦게 온 사람이 한 명 더 있었
그때 밖에서 농구를 치던 남학생 몇 명이 걸어왔다.강용은 이마에 검은색 머리띠를 한 채 농구공을 안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공표란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본 순간, 강용은 손에 들고 있던 농구공을 휙 던져버렸다. 방서연이 곧바로 공을 받아안았다.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들을 버려두고 장소월에게 가는 강용의 모습에 한 아이가 중얼거렸다.“대체 장소월이 어디가 좋다는 거야? 술집에 안 가는 건 그렇다고 쳐. 심지어 게임까지 끊었어. 저번 학기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니까? 나 진짜 강용의 몸에 다른 누군가의 영혼이 들어온 건 아닌지 의심이 들어.”허철이 콧등에 걸린 안경을 올리며 못마땅한 듯 말했다.그는 그저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갈 뿐이다.좋아하는 사람이 이토록 훌륭한데 강용이 어떻게 노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만약 장소월을 햇살에 비유한다면 강용은 해를 따라가는 해바라기와도 같다.“이봐, 아가씨... 날 못 믿어서 직접 확인하는 거야?”강용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난 그저 내 성과를 보고 싶었을 뿐이야. 잘했어. 계속 노력해.”장소월은 칭찬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뜨려 했다.“그냥 이렇게 가려고? 상은 안 줘?”장소월이 몸을 돌리고 걸어갔다.“상은 이제 매일 아침 자습을 할 수 있다는 거야! 난 이만 수업하러 갈게!”참 장소월 다운 말이다.점심엔 전교에서 대이동이 진행되었다.강용은 단번에 1층 교실에서 장소월의 옆 반에 옮겨왔다.그가 문신이 새겨진 길고 곧게 뻗은 손으로 한창 문제를 풀고 있는 장소월의 책상을 두드렸다.“아가씨, 밥 먹으러 안 가?”장소월이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난 됐어. 혼자 먹으러 가. 난 아까 매점에서 빵을 사 왔으니까 대충 먹으면 돼. 아직 몇 문제 남았어.”그때 화장실에서 나온 백윤서가 창문에 몸을 기대고 있는 강용을 발견했다.“강용, 이번 시험 잘 봤더라? 축하해!”백윤서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소월이랑 밥을 먹으려고 온 거야? 우리 같이 가자!”장소월은 이미
“서울 강남 병원으로 가. 도착하면 전연우한테 연락해. 수술할 때 보호자의 사인이 필요해.”“알았어.”장소월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서철용을 불렀다.수술 전, 서철용은 검사를 진행했다. 그녀의 자궁에서 감염이 일어나 큰 출혈이 생긴 것이었다.“왜 이제야 온 거예요. 이미 감염이 일어났잖아요.”장소월은 수술대에 누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이게 바로 당신들이 원했던 거잖아요.”서철용이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전연우는 소월 씨를 너무 많이 봐줬어요. 나였다면... 그 정도 약으론 턱없이 부족했을 거예요.”그가 고개를 돌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는 말했다.“환자복으로 갈아입으면 수술을 시작할 수 있어요. 잘 생각해요. 자궁을 들어내면 영원히 임신할 수 없어요.”장소월이 처량하게 미소를 지었다.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려 머리카락을 적셨다.“... 나한테 다른 선택은 없잖아요.”당장 목숨이 끊어져도 이상할 것 없는 나약한 모습이었다. 그때 서철용의 머릿속에 예전 그 여자가 떠올랐다. 그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시름시름 앓다가 2년도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었다.전연우가 소식을 듣고 수술실로 급히 달려와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어떻게 됐어?”“지금으로선 적출 수술을 제외하고 아무런 방법도 없어.”그때 강용은 벽에 기대어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당신들 장소월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장씨 집안 아가씨가 굴러온 돌에 처참히 당하다니. 이봐, 전씨... 대단하네!”서철용이 그를 힐끗 보고는 다시 전연우에게 시선을 돌려 물었다.“아는 사람이야?”전연우의 깊은 눈동자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강용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수술은 언제 끝나?”“한 시간 정도 뒤면 끝나.”서철용이 빙그레 웃으며 강용에게 말했다.“간단한 맹장 수술이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여자친구는 곧 나올 거예요.”“내가 바본 줄 알아요? 대체 누가 맹장염으로 그렇게 많은 피를 흘려요!”휴. 이 아이도
더러워진 수술 도구를 폐기하러 소각실로 향하던 간호사는 안에서 들려오는 싸움 소리에 다급히 멀리 몸을 피했다.사무실 안엔 옅은 피비린내가 가득 차 있었다.용기 안에 들어있는 이상한 모양의 붉은 고깃덩어리엔 감염 흔적이 확연히 드러나 있었다. 바로 장소월의 몸에서 나온 기형 자궁이었다.“처음에 아직 되돌릴 기회가 있다고 했던 건 널 위로하는 말일 뿐이었어. 이걸 좀 봐. 이미 감염이 진행됐어. 본래의 모양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잖아. 계속 장소월의 몸에 남아있으면 악화만 될 뿐이야. 빨리 적출해내지 않는다면 목숨도 보장하지 못해.”서철용이 용기를 들어 전연우에게 보여주고는 덤덤히 휴지통에 던져버렸다.“아이를 낳지 못하면 입양하면 되잖아. 불임임에도 불구하고 장소월에게 목맬 남자는 많을 텐데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게 그렇게 중요해?”서철용이 그의 검은 눈동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의 몸에선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오싹한 분위기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왜 그래? 마음이 약해졌어? 아니면 후회라도 하는 거야?”서철용이 책상 위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는 돌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전연우, 너 설마 장소월한테 다른 감정이 생긴 거야? 그런 장난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너와 장소월이 연인이 되면 하느님도 노할 거라고!”“쓸데없는 말 하지 마.”전연우는 짧게 한 마디 내뱉고는 방에서 걸어 나가다가 입구에서 다시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일을 깨끗이 처리해야 해. 아무도 이번 일을 알아선 안 돼.”“날 믿지 못하는 거야?”서철용은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담뱃불을 끄고는 이어 흰 의사 가운을 벗고 개인 휴식실에 들어갔다. 안엔 실 한 오리 걸치지 않은 아름다운 여자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듯 눈을 감고 있었다.서철용은 그녀가 자든 말든 개의치 않고 곧바로 이불을 들어 올린 뒤 여자의 몸을 뒤집고는 애무 하나 거치지 않고 곧바로 여자의 가장 깊은 곳으로 비집고 들어갔다.그때 잠에서 깬 여자는 두 다리를 남자의 허리에 올리고
장소월은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죄책감에 눈을 피했다. 그녀는 왜 이런 죄책감에 사로잡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를 이용했다는 생각 때문일까? 아니면 그를 속였다는 것 때문에?강영수가 말했다.“의사 선생님께서 간단한 맹장 수술이니까 곧 몸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했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넌 그냥 병원에서...”장소월은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침대 머리에 기대어 앉아 눈을 내리깔고 이불 위 강영수의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백옥같이 하얗던 그녀의 얼굴은 가엽도록 창백해져 있었다.“맹장 수술이 아니라 자궁 적출 수술이야.”강영수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솔직히 털어놓자 장소월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와 눈을 맞추지는 못했다.“맹장 수술이라고 한 건 아버지를 속이기 위함이야. 하지만 난 너까지 속이고 싶지 않아.”강영수가 물었다.“왜 그래야 하는데?”장소월은 용기를 한껏 끌어 올려서야 그와 시선을 맞출 수 있었다. 그녀가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아버지가 아신다면 난 애를 낳는 도구가 될 수 없어. 난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할 거고 대학에도 들어가지 못할 거야... 아마 누군가에게 팔려 가겠지.”결혼한 늙은 남자한테 팔려갈 가능성이 컸다. 그 연령대 사람은 이미 아이가 있으니 장소월이 아이를 낳든 말든 상관이 없을 테니 말이다.젊음과 아름다운 미모야말로 그녀의 최고의 자본이고 무기였다.“난 그러고 싶지 않아. 그래서 숨기려는 거야.”장씨 집안에서 그런 대접을 받으며 살았던 거였어?강영수가 그녀의 얼음장같이 차가운 손을 잡아주었다.“소월아, 두 사람이 정말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아이는 중요하지 않아!”하지만 장소월은 여전히 심장이 저려왔다. 의연히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 속엔 슬픔이 가득 담겨 있었다.“날 위로해줄 필요 없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 아무리 감정이 깊다고 해도 언젠가는 틈이 벌어지는 도화선으로 작용할 거야.”“영수야, 내가 강씨 집안에 가기로 결정한 건
“강씨 집안의 개인 의사는 우리 병원 의사 선생님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실력 있는 선생님들이에요.”“그리고 환자분이 직접 요청해 퇴원한 거예요. 그래서 저희도 별다른 수가 없었어요.”백윤서가 손에 쥐고 있던 꽃다발을 내려놓았다.“아쉽네요. 소월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을 사 왔는데 정작 소월이는 이곳에 없네요.”“하지만 강 대표님 좋은 분 같았어요. 그분과 함께라면 환자분은 분명 행복할 거예요.”백윤서는 전연우의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바다같이 깊은 그의 눈동자에선 한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병실에서 나갔다.그렇게 소리 없이 사라진 장소월은 2주 동안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그 사이 강영수는 줄곧 그녀의 옆에서 회복을 도왔다. 완전히 나아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따사로운 햇살이 창문 옆 장소월의 침대를 비추었다. 얇은 잠옷 치마를 입은 장소월의 손목은 햇볕 아래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정교하고 예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살짝 컬이 들어간 머리카락은 하나로 묶어 왼쪽 어깨에 늘어뜨렸고 달 모양 목걸이는 그녀의 매혹적인 쇄골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얼굴색도 거의 회복해 생기가 돌았고 입술은 붉은 꽃물이라도 들인 듯 눈길을 사로잡았다.창밖 나무에 무성히 뻗은 가지 곳곳엔 파릇파릇 아지랑이가 돋아나왔다.개인 의사가 장소월의 몸을 살피고는 청진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소월 아가씨, 몸은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감사해요. 선생님.”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별말씀을요.”강영수는 장소월의 곁에 앉아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손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장씨 집안 쪽은 잘 처리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학교엔... 내일 갈 거야?”장소월이 그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그럼 내일 가는 거로 하자! 그전에 밖에 나가서 좀 걷고 싶어. 오랫동안 나가지 못했잖아.”“그래. 나랑 같이 가자.”강씨 저택 후원에 많은 희귀한 품종들이 심어져 있었다. 강영수가 그중
그녀가 강영수를 선택한 것인가?정확히 말하면 강영수가 그녀를 선택한 것이다.강영수가 사귀자는 말을 꺼냈을 때, 장소월은 전생의 비극이 반복될까 봐 두려워 잠시 망설였었다.떠나는 것과 남는 것을 두고 끊임없이 고민하기도 했다.하지만 그녀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을 주겠다는 강영수의 말이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다. 또한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겠다는 말도 했었다.그의 자상함과 세심함은 조금씩 그녀가 세운 방어막을 허물고 있었다.그녀는 종래로 이런 사랑받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지금 강영수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다.그녀가 어떤 잘못을 하든 강영수는 늘 옆을 지키며 괜찮다고 말하고는 해결해줄 것 같았다.그가 그녀의 자유에 간섭하지 않는다면 한 번 기대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오부연이 예전에 말한 적이 있다. 강영수는 한 여자를 오랫동안 사랑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여자는 강영수가 차 사고를 당하자마자 그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와 함께 해외에 가버렸다.그 후 지금까지도 아무런 소식도 없다.강씨 저택에 오기 전, 오부연은 그녀에게 강영수를 도와 당시의 트라우마 속에서 걸어 나오게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강씨 저택에 온 건 오로지 숨을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장소월은 아직 자신에 대한 강영수의 감정이 정말 사랑인지, 아니면 그녀에게 기대고 싶은 건지, 그것도 아니면 전 여자친구의 대체품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게 뭐든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이 취하고 싶은 것을 얻으면 되는 것이다.시간을 계산해보니 전연우도 곧 장해진에게 손을 쓸 것이다.그녀는 아무나 칼질을 해댈 수 있는 도마 위의 생선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 살길은 도망치는 것 외엔 강영수의 곁에 머무르는 것밖에 없었다.장소월은 수술대에 오른 그 순간 이미 결심을 내렸어야 했다. 그녀는 처음으로 오직 자신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려고 마음먹었다.장소월은 집에서 몸을 회복하는 동안에도 학업을 놓지
돈으로 맺어진 관계라면 떳떳하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그게 아니기에 장소월은 당당히 강영수와의 관계를 드러낼 수 있었다. 신문에 강한 그룹과 장씨 집안이 손을 잡고 중요한 몇 개의 계약을 맺었다는 기사가 실렸다.장해진이 딸 덕분에 강씨 집안이라는 거대한 배에 올라타게 된 것이다.이제 장소월의 앞에선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감히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인시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오랫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올림피아드 팀 쪽엔 여전히 한 자리를 점하고 있었다.시험 시간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장소월은 남는 시간이면 과외 선생님의 건의에 따라 영어로 된 소설책을 펼쳤다. 처음엔 한 권을 읽는 것도 힘들었지만 이젠 책의 내용을 대부분 이해할 수 있었다.점심시간, 장소월이 가져온 도시락을 꺼냈을 때 백윤서가 책을 안고 걸어왔다.“소월아... 그동안 잘 지냈어? 저번에 연우 오빠와 함께 병원에 갔었는데 넌 이미 퇴원했더라고. 그 후 널 보러 강씨 저택에도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었어. 미안해.”장소월은 고개를 숙인 채 책을 펼치며 말했다.“난 잘 지내고 있어. 너도 오빠도 내 걱정은 할 필요 없어.”백윤서는 영문자가 가득 찍혀있는 장소월의 책을 보고는 물었다.“너 무슨 책을 보는 거야?”“war and peace. 전쟁과 평화.”백윤서가 약간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소월아, 아직은 이런 책을 볼 때가 아닌 것 같아.”“너 한동안 학교에 나오지 못했잖아. 내가 다 필기했으니까 가져가서 봐.”장소월이 말했다.“고마워... 난...”“그럼 여기에 놓고 갈게. 난 올림피아드 팀 수업에 가야 해.”백윤서가 필기장을 책상에 둔 채 교실을 나갔다.장소월의 말은 채 끝나지 않았다. 실은 그녀는 필요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그녀는 이번 특별반 시험에서 반드시 1등의 자리를 쟁취해야 한다.그 후 올림피아드 시합에서도 1등을 한다면 서울대에 직행할 수 있다.그녀는 강씨 집안에도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