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씨 집안의 개인 의사는 우리 병원 의사 선생님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실력 있는 선생님들이에요.”“그리고 환자분이 직접 요청해 퇴원한 거예요. 그래서 저희도 별다른 수가 없었어요.”백윤서가 손에 쥐고 있던 꽃다발을 내려놓았다.“아쉽네요. 소월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을 사 왔는데 정작 소월이는 이곳에 없네요.”“하지만 강 대표님 좋은 분 같았어요. 그분과 함께라면 환자분은 분명 행복할 거예요.”백윤서는 전연우의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바다같이 깊은 그의 눈동자에선 한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병실에서 나갔다.그렇게 소리 없이 사라진 장소월은 2주 동안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그 사이 강영수는 줄곧 그녀의 옆에서 회복을 도왔다. 완전히 나아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따사로운 햇살이 창문 옆 장소월의 침대를 비추었다. 얇은 잠옷 치마를 입은 장소월의 손목은 햇볕 아래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정교하고 예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살짝 컬이 들어간 머리카락은 하나로 묶어 왼쪽 어깨에 늘어뜨렸고 달 모양 목걸이는 그녀의 매혹적인 쇄골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얼굴색도 거의 회복해 생기가 돌았고 입술은 붉은 꽃물이라도 들인 듯 눈길을 사로잡았다.창밖 나무에 무성히 뻗은 가지 곳곳엔 파릇파릇 아지랑이가 돋아나왔다.개인 의사가 장소월의 몸을 살피고는 청진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소월 아가씨, 몸은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감사해요. 선생님.”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별말씀을요.”강영수는 장소월의 곁에 앉아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손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장씨 집안 쪽은 잘 처리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학교엔... 내일 갈 거야?”장소월이 그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그럼 내일 가는 거로 하자! 그전에 밖에 나가서 좀 걷고 싶어. 오랫동안 나가지 못했잖아.”“그래. 나랑 같이 가자.”강씨 저택 후원에 많은 희귀한 품종들이 심어져 있었다. 강영수가 그중
그녀가 강영수를 선택한 것인가?정확히 말하면 강영수가 그녀를 선택한 것이다.강영수가 사귀자는 말을 꺼냈을 때, 장소월은 전생의 비극이 반복될까 봐 두려워 잠시 망설였었다.떠나는 것과 남는 것을 두고 끊임없이 고민하기도 했다.하지만 그녀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을 주겠다는 강영수의 말이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다. 또한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겠다는 말도 했었다.그의 자상함과 세심함은 조금씩 그녀가 세운 방어막을 허물고 있었다.그녀는 종래로 이런 사랑받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지금 강영수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다.그녀가 어떤 잘못을 하든 강영수는 늘 옆을 지키며 괜찮다고 말하고는 해결해줄 것 같았다.그가 그녀의 자유에 간섭하지 않는다면 한 번 기대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오부연이 예전에 말한 적이 있다. 강영수는 한 여자를 오랫동안 사랑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여자는 강영수가 차 사고를 당하자마자 그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와 함께 해외에 가버렸다.그 후 지금까지도 아무런 소식도 없다.강씨 저택에 오기 전, 오부연은 그녀에게 강영수를 도와 당시의 트라우마 속에서 걸어 나오게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강씨 저택에 온 건 오로지 숨을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장소월은 아직 자신에 대한 강영수의 감정이 정말 사랑인지, 아니면 그녀에게 기대고 싶은 건지, 그것도 아니면 전 여자친구의 대체품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게 뭐든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이 취하고 싶은 것을 얻으면 되는 것이다.시간을 계산해보니 전연우도 곧 장해진에게 손을 쓸 것이다.그녀는 아무나 칼질을 해댈 수 있는 도마 위의 생선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 살길은 도망치는 것 외엔 강영수의 곁에 머무르는 것밖에 없었다.장소월은 수술대에 오른 그 순간 이미 결심을 내렸어야 했다. 그녀는 처음으로 오직 자신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려고 마음먹었다.장소월은 집에서 몸을 회복하는 동안에도 학업을 놓지
돈으로 맺어진 관계라면 떳떳하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그게 아니기에 장소월은 당당히 강영수와의 관계를 드러낼 수 있었다. 신문에 강한 그룹과 장씨 집안이 손을 잡고 중요한 몇 개의 계약을 맺었다는 기사가 실렸다.장해진이 딸 덕분에 강씨 집안이라는 거대한 배에 올라타게 된 것이다.이제 장소월의 앞에선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감히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인시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오랫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올림피아드 팀 쪽엔 여전히 한 자리를 점하고 있었다.시험 시간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장소월은 남는 시간이면 과외 선생님의 건의에 따라 영어로 된 소설책을 펼쳤다. 처음엔 한 권을 읽는 것도 힘들었지만 이젠 책의 내용을 대부분 이해할 수 있었다.점심시간, 장소월이 가져온 도시락을 꺼냈을 때 백윤서가 책을 안고 걸어왔다.“소월아... 그동안 잘 지냈어? 저번에 연우 오빠와 함께 병원에 갔었는데 넌 이미 퇴원했더라고. 그 후 널 보러 강씨 저택에도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었어. 미안해.”장소월은 고개를 숙인 채 책을 펼치며 말했다.“난 잘 지내고 있어. 너도 오빠도 내 걱정은 할 필요 없어.”백윤서는 영문자가 가득 찍혀있는 장소월의 책을 보고는 물었다.“너 무슨 책을 보는 거야?”“war and peace. 전쟁과 평화.”백윤서가 약간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소월아, 아직은 이런 책을 볼 때가 아닌 것 같아.”“너 한동안 학교에 나오지 못했잖아. 내가 다 필기했으니까 가져가서 봐.”장소월이 말했다.“고마워... 난...”“그럼 여기에 놓고 갈게. 난 올림피아드 팀 수업에 가야 해.”백윤서가 필기장을 책상에 둔 채 교실을 나갔다.장소월의 말은 채 끝나지 않았다. 실은 그녀는 필요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그녀는 이번 특별반 시험에서 반드시 1등의 자리를 쟁취해야 한다.그 후 올림피아드 시합에서도 1등을 한다면 서울대에 직행할 수 있다.그녀는 강씨 집안에도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다.“야,
한 손으로 다 셀 수 없을 정도였다.그들이 함께 이렇게 많은 일을 했다니!장소월은 뭔가를 깨달은 표정이었다.“친구 사이에 이 정도는 정상 아니야? 밥 먹고 쇼핑하고, 전에... 너희도 윤서랑 하던 거 아니야?”과외를 해준 일은... 해변에서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강용이라는 걸 몰랐을 때, 그녀는 거절했다.거절한 이유는 간단했다. 강용이 그녀에 대한 태도 때문이었다.고등학교 2년 동안 강용은 항상 그녀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괴롭혔다. 그래서 6반 친구들이 하나둘씩 그녀와 멀어지고 따돌리게 했다.이것이 그녀의 성격이 괴팍해진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다른 사람과 왕래하지 않고 늘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졌다.그녀와 강용의 사이는 확실히 전보다 완화되었다.남들 눈에는 두 사람의 사이가 아주 가까워 보이지만, 2년 동안 강용이 그녀에게 한 나쁜 짓을 두 사람은 잊고 있었다.왜 백윤서를 해치려고 하냐며 그녀의 목을 조르던 강용...장소월은 그때 백윤서를 향한 그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만약 그때 윤서를 해치려 한다고 인정했다면, 남자는 자신을 진짜 목졸라 죽였을지도 모른다.‘하지만 방금 방서연의 말은 강용이 날 좋아한다고 오해한 것 같은데? 아니면 내가 강용을 좋아한다는 뜻인가?’어떤 오해를 했든 간에, 모두 황당한 일이었다.강용과 백윤서는 단둘이 도원촌의 해변에 가서 한 지붕 아래에 묵었었다.백윤서가 막 전학 왔을 때, 두 사람에 대한 스캔들이 난무했고, 전교생이 그들의 관계를 알고 있을 정도였다.장소월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스러운 표정으로 방서연을 보았다.“강용은 계속 윤서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나랑 뭔 상관이야? 네가 방금 말한 일들은 모두 나를 구해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것일 뿐 다른 감정은 전혀 없어. 강용에게도 진작 말한 부분이고.”장소월은 방서연의 말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하!”강용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방서연이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니, 강용은 딱딱한 벽을 주먹으로 내리쳤다.갈라진 벽 틈에 옅은 핏자국
여학생은 마침 문 앞에서 지나가는 장소월과 마주쳤다.장소월은 입구에서 소리를 들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쓰러진 의자를 보고 장소월은 다가가 일으켜 세웠고, 방서연과 허철의 시선이 그녀에게 떨어졌다.방서연은 속으로 아직도 여기 올 낯이 있냐고 나무랐다.장소월은 그들을 보고, 또 온몸에 포악한 기운이 가득한 강용을 보았다. 손가락을 따라 내려온 피는 땅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갑자기 폭발하는 강용의 모습을 그녀는 6반에 있을 때 이미 본적이 있었다.‘이 자식은 분명 조울증일 거야!’장소월은 더 묻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노트를 그의 책상에 올려놓았다.“이건 윤서가 나한테 준 노트야. 다 베껴쓰면 돌려줘. 그리고 의무실에 꼭 가봐.”말을 마친 그녀는 교실을 떠났다.옆에 있던 두 사람은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강용의 안색이 더 어두워졌으니, 지금 입을 열면 죽은 목숨이었다.강용은 핑크색 노트를 집어 들고 펼쳐보니, 확실히 장소월의 필체가 아니었다. 첫 페이지에 백윤서의 이름이 쓰여있었다.그는 가차 없이 노트를 반으로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학교가 끝날 때까지 장소월은 노트가 찢어진 사실을 몰랐지만, 옆 반에서 백윤서에 관한 안 좋은 소문이 퍼졌다.장소월은 복도 옆의 창턱에 앉아 화장실에 가는 2반 여학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오늘 누가 쓰레기통에서 백윤서 노트를 봤대. 그것도 반으로 찢어진 채로!”“그 두 사람 대체 무슨 상황이야! 휴, 우리는 시험이나 걱정하자! 강용이 왔으니 나도 이젠 꼴찌를 면하겠네.”강용이 백윤서의 노트를 찢었다?망했다!장소월은 고개를 돌려 뒷줄에 앉아 있는 백윤서를 보고 망설였다.마지막 교시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장소월은 2반으로 갈 생각이었다.청소하는 아주머니는 매일 교실에 아무도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와서 청소하곤 했다.학생들이 거의 교실을 떠나고 백윤서는 두 손을 뒤로하고 장소월에게 다가가더니 갑자기 바나나 우유를 건넸다.“오늘 네 것까지 챙겨왔어. 수업도 끝났는데 왜 아
고건우의 교무실에 가서 자료를 받고 특수반으로 향했다.특수반이라기보다는 변태반에 가까웠다.원래 3시간 수업으로 9시에 하교할 수 있었지만 기어코 10시까지 질질 끌었다.그들을 가르치는 사람은 돋보기를 낀 60~70대 노인이었다.남은 시간 1시간 30분으로 시험지를 풀어야 했고, 다 풀지 못하면 떠날 수 없었다.시험지를 빨리 푼다고 해도 먼저 갈 수 없었고, 끝까지 앉아 있어야 했다.장소월은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며 문밖의 사람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소월 아가씨 고생이 많으시네요. 매일 아침 7시에 등교해서 저녁 10시에 하교하고, 집에 돌아가 또 숙제를 12시까지 하시다니.”강영수는 창문을 통해 그녀를 바라보며 검은 눈동자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가득했다.“단지 이 나이에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야. 소월이는 늘 훌륭했어. 안 그래?”진봉은 고개를 끄덕였다.어떤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공부에 재능이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천부적인 재능이 아닌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야만 한다.이때 누군가 문밖의 사람을 발견했고, 적지 않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저 사람 누구야?”“설마 강영수 아니야?”“그럴 리가. 강한 그룹 대표가 왜 여기 와?”특수반에는 다른 학교 학생 말고도 지방 학교의 학생들도 있었다.강한 그룹의 대표는 10대 영향력 있는 표지 잡지에 실린 인물로 외모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는지 모른다.평소에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장소월은 손으로 이마를 짚고 눈을 가늘게 뜨고는 잠시 잠이 들었다. 교실 안의 소리를 듣고 궁금해서 문밖을 내다보았다.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을 보고 장소월은 흠칫 놀랐다.‘언제 돌아왔지?’교단에 앉아 돋보기를 끼고 있는 선생님은 눈을 치켜뜨고 기침을 몇 번 했다.이러면 학생들이 조용해질 줄 알았는데, 누군가 먼저 뛰쳐나갔다.“대박!”하나둘씩 뛰쳐나가기 시작했다.장소월의 책상이 하마터면 밀려서
“왜 학교에 왔어?”장소월은 가슴을 감싸고 숨을 헐떡였다.“오 집사한테 전화하니까 네가 아직 집에 안 돌아갔다고 하더라고. 또 학교에 있겠구나 싶어서 걱정돼서 와 봤지.”강영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여기 학생들이 이렇게 열정적일 줄은 몰랐어.”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장소월은 아직 내려오지 않은 진봉을 걱정했다.“네가 어디 보통 사람이야? 다음부터는 그냥 나한테 전화해.”“전화가 안 통하는 걸 어떡해?”장소월은 ‘아’하고 그제서야 생각났다.“시험 보느라 전화를 꺼놨어. 미안! 앞으로 나 기다리지 않아도 돼. 회사 일도 바쁠 텐데.”“널 혼자 두고 내가 어떻게 마음이 놓여?”장소월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지금까지 그녀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사람은 없었다.“진봉이 차를 학교 앞에 세웠어. 좀 걸어야 하는데, 내가 업어줄까?”장소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괜찮아. 나 안 힘들어. 그냥 좀 졸려. 우리 가자.”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영수는 몸을 구부려 그녀의 두 다리를 잡고 가로로 안았다. 장소월은 놀라서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아직 수업 안 끝났어. 다른 애들이 봐.”“보면 어때? 내 여자친구를 안는데 누가 뭐라 하겠어?”장소월은 아직 완쾌되지 않은 그의 다리가 걱정되었다.“힘들면 그냥 내려줘.”“아니, 안 힘들어.”한적한 오솔길, 길가에 불빛이 비치고 광선이 마치 하얀 눈송이처럼 떨어졌다.강영수는 천천히 걸으며 이 길을 최대한 오래 걷고 싶었다...함박눈이 어깨에 떨어졌고, 그는 고개를 젖혔다.“소월아, 눈 와.”고개를 숙여 품에 안긴 여자를 보니, 그녀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까마귀 깃털처럼 긴 속눈썹에 하얀 눈이 떨어지고, 피부는 마치 눈송이처럼 하얗고 부드러웠다. 동화 속에 나오는 잠자는 미녀와 꼭 닮은 모습이었다.학교를 나서니, 진봉은 이미 차를 몰고 다가왔다.반대편 멀지 않은 곳, 검은색 승용차가 한 대 서있었다.“저거 설마 소월이예요? 이 시간에 왜 아직도 학교에 있죠? 오빠..
그렇다, 감기로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다음날 하인이 열이 40도까지 오른 걸 발견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는 의사를 부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때 이후로, 장소월은 풍습을 앓게 되었고 매일 많은 보약을 마셔야 했다. 약은 모두 독성을 가진 데다 오랜 지병을 앓고 있었기에 장소월의 몸은 점차 망가졌다.알고 보니... 사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를 관심하고 있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었다.다음날, 장소월은 역시나 늦게 깨어났다.아침 자습에 계속 참여하지 않으면 한 선생님이 그녀를 찾아와 담화를 나눌지도 모른다.그러니 내일은 절대 지각을 해서는 안 된다.“아가씨, 도련님이랑 같이 내려오지 않으셨어요?”장소월은 약에 꿀을 넣어 마셨더니, 그다지 쓰지 않았다.“아직 안 깨어나셨어요? 도련님이 내려오는 걸 못 봤어요.”“제가 올라가 볼게요.”위층에 올라간 장소월은 문이 닫히지 않은 것을 보고 손을 들어 두드리자 문이 휙 열렸다.웃옷을 입지 않은 그의 건장한 몸에는 근육이 가득했고, 손등부터 목까지 문신이 새겨졌다. 처음으로 완전한 문신 모양을 본 장소월은 모양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어떤 짐승의 무늬는 아닌 듯 보였다.장소월은 이내 시선을 돌렸고, 강영수도 그제야 그녀가 뒤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침대 위의 회색 셔츠를 입고 단추를 채웠다.“학교 지각하는 거 아니야?”“오늘은 너도 왜 늦게 일어났어?”“해성에 일주일 동안 출장 갈 거야. 내가 없는 동안 오 집사가 너 약 잘 챙겨 먹는지 감독할 거니까 절대 거르지 마.”“그럼... 내가 출장 가서 입을 옷 좀 챙겨줄까?”강영수가 그녀를 위해 많은 일을 했으니, 그녀도 무언가 해주고 싶었다.“당연히 좋지.”이미 지각했으니, 몇 분 더 늦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출장 짐을 싸는 건 장소월에게 아주 익숙한 일이었다. 트렁크 지퍼를 잠그고 일어서는데, 강영수가 갑자기 허리를 끌어안았고, 그녀는 몸이 굳어졌다.“왜... 왜 그래?”“네가 빨리 컸으면 좋겠다.”그는 여
과연 정말 그럴까?강지훈이 내뱉은 말, 그리고 소현아 배 속의 아이...소씨 부인을 돌려보낸 후, 규영은 별장 거실로 돌아와 살기를 가득 내뿜고 있는 주인님에게 용기를 내어 다가가 말했다. “주인님, 현아 아가씨는 외국에 있는 동안, 사실 주인님을 많이 그리워했습니다...”“나를?” 어지럽게 흩어졌던 남자의 시선이 다시 한곳에 모였다. 도우미들은 처음 보는 감정이 그의 얼굴에 드러났다.미경도 서둘러 다가가 말했다. “맞습니다! 현아 아가씨는 병원에서 매일 주사를 맞으셨습니다. 주인님도 아시겠지만, 아가씨는 주사 맞는 걸 제일 무서워하십니다. 감기에 걸려 의사가 올 때마다 주인님 품에 숨곤 하셨지요. 현아 아가씨는 주사를 맞을 때마다 늘 주인님의 성함을 부르셨습니다.”“그리고... 현아 아가씨 방에서 주인님에게 쓴 편지 한 통을 발견했습니다.”강지훈은 처음으로 옆에 있는 미인을 무시해 버린 채 그들에게 집중하고 있었다.천효연이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지훈 씨.”규영이 건넨 편지를 받은 뒤, 강지훈은 분홍색 봉투를 열었다. 삐뚤빼뚤한 글씨가 눈에 들어오자, 그는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강지훈 씨, 내가 잘못했어요. 사실 당신 없이 사는 거 하나도 즐겁지 않아요. 여기 의사들 매일 나한테 주사를 놔요. 팔이 아파 죽겠다고요! 심지어 머리에도 주사를 놔요. 내가 말을 안 들으면 의사는 화까지 내면서 주사를 놓는 것도 모자라 밥도 안 줘요. 주사 맞고 나면 팔뚝이 멍투성이가 되는데, 지금 글씨 쓰는 것도 아파요.규영과 미경의 말로는 내 배 속에 아기가 생겼대요. 하지만 이 사실을 강지훈 씨한테 말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지훈 씨는 아기를 싫어하기 때문에.흑흑흑... 그럼 나도 아기 안 낳을래요.강지훈 씨, 이 병원 안엔 재미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집에 가서 아빠랑 엄마 보고 싶어요. 그리고 민아, 소월이...나 언제 데리러 올 거예요!너무 배고파요!규영과 미경은 또 나한테 먹을 것을 아무것도 안 줬어요.강지훈 씨,
“몰라요.”손이준이 짧게 대답했다.강용은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오만하기 그지없는 그의 모습에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그 멍청이의 일은 더는 미루면 안 된다.강용은 밖으로 나가 자전거 한 대를 빌렸다. 하지만 알아보니 가장 번화한 시내로 가려면 100km도 훌쩍 넘는 거리라 반드시 차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는 곧바로 렌터카 매장에 전화해 차를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다만 차는 내일이나 되어야 도착한다고 한다.오늘 밤 짐을 정리하고 내일 떠나면 될 것이다.두 남자는 아래층 거실에 남아 만두를 빚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금만 빚어 놓으려고 했건만, 한번 시작하니 한 시간도 훌쩍 넘겨버렸다.서울.강지훈은 소현아의 행적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러시아 전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그녀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 최고급 호텔부터 기차역, 심지어 눈에 띄지 않는 지하 클럽까지 그의 세력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데도 말이다.어쩌면 무소식이 희소식일 수도 있다.북경 감옥 전체는 살얼음판을 걷듯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강지훈은 평소 가장 아끼던 여자한테조차 흥미를 잃은 듯 보였다.그녀는 남자의 사랑을 잃고 말았다.“소씨 집안 쪽에선 아직 소식 없어?” 강지훈은 왕좌에 앉아 아랫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물었다.부관이 말했다. “명령하신 대로 소씨 집안을 며칠 동안 지켜봤습니다. 그 사람들은 소현아 씨가 해외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소현아 씨의 아버지는 심장이 좋지 않습니다. 만약 실종 사실을 알게 된다면 버티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럼 소현아 씨가 돌아와 슬퍼할 테니, 현재 가장 좋은 방법은 소 씨 집안 사람들에게 숨기는 것입니다.”규영과 미경이 밖에서 걸어 들어와 보고했다.“주인님, 소씨 집안 사람들이 또 찾아왔습니다.”강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번뜩였다. “돌려보내. 그쪽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후과가 있을지 알지?”“네, 주인님.”그 바보는 임신한 몸으로 대체 어디까지 도망간 걸까?천
강용 역시 장소월이 우울증 때문에 오랫동안 몰래 항우울제를 복용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장씨 집안에 있을 때도, 전연우의 곁을 떠나도...그녀의 병은 좀처럼 나아질 줄을 몰랐다.강용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괴로워하며 눈물 흘리는 장소월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다. 그녀는 이미 너무나 많은 고통을 감내해 왔다.전연우가 그녀에게 남긴 상처와 흉터는 이제 모두 옅어졌지만, 마음속의 상처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그녀의 손은... 무거운 물건조차 들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다른 힘든 일은 더더욱 할 수 없다.그녀는 붓을 쥘 때마다 손목이 욱신거렸지만... 그럼에도 그림은 포기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강용은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의 곁에서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그녀는 가족도 없이 늘 혼자였다...사실 장소월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 만났을 땐 오만하고 도도한 성격의, 모든 이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귀하디귀한 아가씨였는데...그녀는... 이렇게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선 안 되는 사람이다.“가끔은 나도 현아처럼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현아처럼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면...”“강용... 나 떠나고 싶지 않아... 하지만 혹시라도 버틸 수 없을까 봐 너무 두려워.”강용은 너무 마음이 아파 온몸이 굳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를 품에 와락 껴안고 온기를 나누어주었다.“아니, 그럴 일 없을 거야. 너한텐 내가 있잖아.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네 곁에 있을 거야. 네가 원하는 건 뭐든 다 해줄게. 나 현아도 조금도 싫어하지 않아. 정말이야!”“나는 단지 걔가 너한테 자꾸 들러붙는 게 질투 났을 뿐이야.”“소월아, 여기서 지내는 게 불편하면 내일이라도 떠나자. 걸어서라도 가지 뭐.”“강용, 나한테 재앙이라고 했던 송시아의 말이 맞는 것 같아. 내 곁에 있던 사람들은 다 불행해졌어. 너, 강영수, 인시윤, 그리고
“그 바보 같은 여자... 충고하는데, 당장 내쫓거나 아니면 단체 여행이라도 보내요. 최대한 멀리요. 그 여자가 소월 씨 곁에 있으면, 강지훈이 언젠간 반드시 찾아갈 거예요.”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서철용의 말투에 장소월의 마음도 불안해졌다. 그녀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알잖아요. 전 현아를 혼자 내버려 둘 수 없어요. 게다가 현아는 임신까지 했는 걸요.”“뭐, 뭐라고요?” 서철용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그 여자가 어떻게 임신을 할 수가 있어요!”장소월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뜻이에요!”이미 뱉어낸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으니, 그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예전 강지훈이 나한테 피임약을 달라고 했었어요. 소현아에게 먹이려고 했던 것 같은데...”“만약 약에 문제가 있어서 제때 피임을 하지 못했고 지금 임신까지 했다면, 아이는 90% 확률로 기형아거나 사산아로 태어날 거예요. 아직 임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테니까 지금이라도 아이를 지우게 해야 해요.”그 소식을 들은 순간 장소월은 충격에 입을 틀어막았다. 심장이 짓눌리는 듯한 통증에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손에서 힘없이 휴대폰이 미끄러 떨어졌다.서철용도 그녀의 괴로움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했다. “소현아가 임신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강지훈이 소현아를 러시아에 보낸 건, 뇌 치료를 받게 하기 위해서였어요. 내가 확인해봤는데, 소현아가 맞은 약물은 뇌 속의 어혈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지만, 아이에게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요. 때문에... 그 아이는 낳으면 안 돼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소현아의 가족 쪽은... 알아보고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요...”서철용은 전화를 끊었다. 그녀에게 너무나 청천벽력 같은 잔인한 말이라는 건 알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다.위층에서 나는 소리를 들은 강용은 바로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다급히 위층으로 달려갔다. 장소월의 방에서 흘러나온 소리라는 걸 알
강용은 자신의 자리를 뺏기자 눈에 띄게 불쾌해했다. 장소월은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얼굴에 드러내는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내가 할게. 너는 좀 쉬어.” 강용은 장소월이 하던 일을 빼앗았다.장소월은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손이준과 함께 있는 것이 불편했기에, 흔쾌히 그에게 일을 넘겨주기로 했다. “소금은 조금만 넣어. 현아 짠 거 잘 못 먹어.”“알았어.”이제 한가해진 장소월이 강용에게 물었다.“방 청소해 줄까?”강용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대충 치워주면 돼.”“그래.”강용은 성격이 깔끔한 편이라 방 청소하는 데 큰 힘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소현아에 비해 훨씬 수월했다.장소월은 소파에 누워 잠들어 있는 소현아를 깨웠다. 소현아는 비몽사몽한 상태로 장소월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깨끗하게 정리된 침대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의 침구 세트를 본 그녀는 잔뜩 신이 난 듯 장소월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고마워, 소월아.”“됐어. 얼른 쉬어. 밥 다 되면 깨워줄게.”소현아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약간 울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월아, 나 방금 엄청 무서운 꿈 꿨어. 강지훈이 내가 몰래 도망친 걸 알고 엄청 화냈어. 날 잡아서 가둬놓고 다시는 바깥에 나가지 못하게 하더라고.”“소월아, 나 강지훈은 만나고 싶지 않은데, 부모님이 너무 보고 싶어.”장소월은 침대 옆에 걸터앉았다. 사실 그녀는 이토록 걱정에 잠겨 있는 소현아의 모습은 별로 본 적이 없었다. 소현아는 만날 때마다 마냥 즐거워만 보였는데... 아무래도 북경 감옥에 있는 동안 고생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괜찮아, 현아야. 여긴 강지훈이 없잖아. 너무 걱정하지 마. 그 사람이 널 붙잡아가는 일은 없을 거야. 부모님이 보고 싶으면, 전화하면 되잖아.”소현아는 걱정스러운 듯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지난번에 몰래 전화 해봤는데, 강지훈이 우리 집에 있는 것 같았어. 소월아... 나 부모님한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너무 무서워.”“강지훈은 항상 날 괴롭히기만 해.”
월이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 평화도 잠시, 양념을 만들던 장소월은 시커멓게 변해버린 밀가루 반죽을 입에 넣고 있는 월이를 발견했다.“월아, 안 돼!”장소월은 재빨리 뛰쳐나가 월이의 입안에 있던 밀가루 반죽을 꺼내 쓰레기통에 버렸다.“강용, 냉장고에 뭐 먹을 거 있나 봐 봐. 배고픈 것 같으니까 뭐라도 좀 줘야겠어.”강용은 손에 묻은 밀가루를 털고 냉장고에서 오이 하나와 삶은 감자 하나를 찾아냈다.강용은 감자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살짝 데운 후 휴지로 감싸서 전해줬다. 평소 같았으면 분명 투덜거렸을 텐데, 오늘은 말없이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다.“여기.”장소월은 감자를 건네받아 월이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많이 먹으면 안 돼. 탈 날 수도 있으니까 꼭꼭 씹어 먹어. 조금만 기다리면 밥 먹을 수 있어.”월이는 정말 배가 고팠는지 한입 크게 베어 물려고 했지만 그 작은 입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결국 입가에 침만 잔뜩 흘리고 말았다. 그 귀여운 모습에 장소월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장소월의 눈에 강용의 얼굴 군데군데 묻어 있는 하얀 밀가루가 들어왔다. 아까 만두피를 밀 때 실수로 묻은 듯했다. 장소월은 손을 뻗었지만 키가 닿지 않았다. “머리 숙여 봐.”강용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머리를 숙였다.하지만 그때, 남자 한 명이 얼음장같이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며 문 앞에 서 있었다. 손이준은 빨래한 옷을 쾅 하고 거칠게 바닥에 내던졌다.그 소리에 소파에 누워 쉬고 있던 소현아까지 깜짝 놀라 깨어났다. 그녀는 입가에 묻은 침을 닦으며 눈을 떴다가 아무 일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장소월은 강용의 얼굴에 묻은 밀가루를 닦아주며 말했다. “됐어.”“오빠, 오셨어요? 수고하셨어요.” 장소월은 강용에게 말했다. “빨래 너는 거 좀 도와줄 수 있어?”강용은 기분 좋게 걸어가며 말했다.“그렇게 하지, 동생.”강용도 장소월이 곧 생리를 시작할
장소월은 월이를 집으로 데려와 의료 상자를 꺼내 바늘로 물집을 터뜨리고 물을 짜냈다. “아파?”월이는 침까지 흘리며 배시시 웃어 보였다. “아파, 엄마... 호호.”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는 월이를 보며, 장소월은 머리를 다친 아이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휴지로 아이 입에서 흘러나온 침을 닦아내며 말했다. “우리 월이 정말 용감하구나.”“하지만 다시는 그런 위험한 일은 하지 마. 머리카락이 타서 하나도 안 예쁘잖아.” 장소월은 월이가 입고 있는 원피스에서도 불에 타서 생긴 커다란 구멍 하나를 발견했다.“이봐, 여기도 탔네. 벗어봐, 이모가 꿰매줄게.”약을 다 바른 후, 장소월은 월이를 안고 위층으로 올라가 옷을 벗기고 자신의 옷을 입혀주었다. 그러고는 바늘과 실을 가져와 옷을 꿰매기 시작했다.바느질 솜씨도 훌륭한 장소월이었다. 전생에 한가할 때면 수공업을 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장소월은 옷을 다 꿰매고 아이에게 입혀주었다.그녀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점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손이준에게 또 신세를 질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는 이미 충분히 많은 도움을 주었다.“너 정말 사람 이렇게 피곤하게 만들어야겠어? 조금만 먹으라고 했잖아.”문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장소월은 들고 있던 물건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눈앞에 뜻밖의 화목한 장면이 펼쳐졌다. 강용이 어깨에 크고 작은 짐을 걸친 채 소현아를 부축해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현아야, 무슨 일이야?”강용은 한바탕 욕설을 퍼붓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아냈다. “병이 나았다고 금세 또 돼지가 되어버렸어. 먹을 것을 사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발목을 접질렸어. 그건 그렇고, 어제 저녁 우리한테 밥 가져다주기로 했잖아. 왜 안 왔어?”장소월이 대답했다. “너무 피곤해서 나도 모르게 잠들었어.”“혹시 저혈당 아니야? 병원에 같이 가볼까?”장소월은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돼. 현아는 괜찮은 거야?”강용은 이마를 짚었다. “저 얼굴 좀 봐. 어디 문제 있는 사람처럼 보
장소월은 그릇을 들고 일어서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그녀는 부엌으로 가서 그릇을 깨끗이 씻었다. “오늘은 빨래도 해야 해서요. 그냥 집에서 기다릴 거예요.”손이준이 짧게 말했다.“마음대로 해요.”부엌을 다 사용한 후, 손이준은 깨끗하게 치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장소월은 위층으로 돌아가 소현아의 방을 정리했다. 소현아에겐 이불 속에 간식을 숨겨두고 밤중에 몰래 먹는 버릇이 있었다. 임신 중인 그녀를 위해 과자 섭취를 금지했지만, 이불을 들춰보니 아직 다 먹지 않은 과자 봉지가 놓여 있었다. 장소월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녀는 침대 시트와 이불, 그리고 베갯잇까지 모두 새것으로 갈아 놓았다. 이곳은 경제 발전이 더딘 곳이라 세탁기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물조차 마음대로 쓰지 못했다.장소월은 세숫대야를 들고 공동 세탁실로 향했다. 평소 사람들로 붐비는 그곳이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소매를 걷어 올리고 땅바닥에 쭈그려 앉아 수돗물을 틀려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아이가 끌어안는 바람에 그녀는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월아? 머리카락 왜 이렇게 됐어?”“불에 탔어요.”“뭐라고?”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에 장소월은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 옆에 손이준이 물통을 들고 서 있었다. “이준 오빠? 빨래하러 오신 거예요?”“네.”장소월은 월이의 머리카락에서 불에 그을린 탄 냄새를 맡았다. “월아, 너 머리 왜 탄 거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나쁜... 나쁜 거 잡으려고... 몰래... 먹었어.”“무슨 뜻이야?”손이준은 물통에 물을 반쯤 채우고 그녀에게 설명했다. “쥐가 나타나서 월이의 과자를 먹어치웠어요. 잠시 다른 일을 하는 사이에 쥐를 잡겠다고 아궁이에 들어갔더라고요. 그 바람에 머리카락이 탄 거예요.”장소월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큰일 날 뻔했네요. 다른 곳은 안 다쳤어요?”“아파! 엄마... 호호.”월이는 조심하지 않아 뜨
송시아를 처리했으니, 다음은 서철용 차례다.두 번의 삶의 기억을 가진 전연우는 잠시 그를 남겨두는 것에 나름의 목적이 있었다.전화가 끊어졌다.장소월은 마치 물에 빠진 듯, 몸이 둥둥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예전 그녀는 늘 깨어났다가 다시 잠들기를 수십 번 반복했었다. 오늘처럼 깊이 잠든 건 그야말로 처음이었다.평소에는 작은 소리만 들려도 깨어나기가 일쑤였는데...사실 전연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우연히 옷장 속에 숨겨둔 약병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그 약이 우울증 치료제라는 것을 전연우가 모를 리 없었다.과거 장소월이 죽은 후, 전연우는 그녀가 쓰던 옷방에서 엄청난 양의 이런 약을 발견했었다.장소월은 그야말로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몸이 묘하게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시간을 확인하니, 겨우 아침 9시였다.옷을 갈아입던 중, 그녀는 침대 옆에 놓인 두 개의 약병을 발견했다. 혹시 어젯밤 실수로 수면제를 먹은 걸까? 하지만 옷장에서 약을 꺼냈던 기억은 꽤나 선명했다.어젯밤 어떻게 기절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방에서 나온 순간 아래층에서 소리가 들려왔다.‘왜 이렇게 일찍 돌아왔지?’음식 냄새를 맡은 장소월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음식을 만들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손이준이였다.“이준 오빠? 왜 여기에...?”손이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프라이팬 속 음식을 저으며 말했다. “어젯밤 어떻게 된 거예요? 갑자기 쓰러지더라고요. 혹시 어디 아픈 데라도 있는 거예요?”장소월이 하려던 질문을 그가 쏟아내자 이상하게 상황이 역전된 것 같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장소월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별일 아니에요. 저혈당 때문에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아요.”“그럼... 이건...”손이준이 말했다. “가게에 손님이 왔는데 가스가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잠시 여기 주방을 빌렸어요. 그 보답으로 점심은 내가 만들어줄게요.”장소월은 기억이 나지 않아 미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