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입원한 지 보름 만에 퇴원했다. 이 시간 동안, 장소월은 마냥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몸을 회복하는 동시에 시험지도 잊지 않고 몇 세트 풀었다.그 사이 전연우는 아무리 바빠도 꼭꼭 와서 장소월이 풀었던 시험지를 봐주곤 하였는데 틀린 곳을 발견하면 제때 알려줬고 차근차근 설명도 해주었다.쉬는 시간, 전연우는 평소에 장소월이 시간을 느긋하게 보낼 수 있게 하려고 그녀의 핸드폰에 몇몇 자신의 회사에서 새로 개발한 심심풀이용 게임을 다운로드해주었다.하지만 장소월은 게임을 거의 하지 않았고 대부분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였는데 몇 개월 남지 않은 중간고사가 장소월이 장가네를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에 열심히 해야만 했었다.‘전연우와 장해진의 싸움에서 멀어져야 해...'전연우는 장소월의 퇴원 절차를 도와주었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통증은 가시지 않았지만, 전보다 많이 좋아졌고 몸의 상처도 겉의 딱지가 거의 모두 벗겨지고 그 위에 새로운 피부가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가려운 건 어쩔 수 없었다.이번에 전연우가 장소월한테 그나마 시간을 투자한 것은 단지 장해진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밖에서 모두가 말하기를 전연우는 그저 장해진이 옆에서 키운 개에 불과하다고 한다.하지만 장소월만이 알고 있었다. 사실 전연우는 한 마리의 호시탐탐 목표물을 노리고 있는, 어둠 속에서 배회하고 있는 야생 늑대라는 것을.언제든지 사람을 눈 깜빡 안 하고 죽일 수 있는 짐승이라는 것을 말이다.그는 무엇을 하든지, 그가 하는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다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었다.그의 친절은 여태껏 헛되이 준 적이 없다.장소월은 전연우의 뒤를 따라 아우디 차 앞으로 갔다.이미 조수석 뒷좌석에 앉아 있는 백윤서를 보자마자 장소월은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백윤서에게서 흘러나오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차 앞으로 돌아 운전석 문 앞에 서서 장소월을 바라보던 전연우는 무엇을 발견했는지 대뜸 설명하기 시작했다. “오늘 네가 퇴원했잖아. 마침 윤이도 같이 데리고 가서
“소월아.”장소월은 비몽사몽 해서 눈을 떴다. 그녀의 눈에 전연우의 예리하고도 어딘가 음침한 눈동자가 들어왔다. 장소월은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반응이 다소 과하게 몸을 뒤로 젖혔다. “오빠... 왜... 왜 그래요?”전연우는 그녀를 차갑게 보면서 말했다. “집에 도착했어. 어서 내려.”“아... 네...” 전연우는 곧바로 차에서 나왔고 장소월이 안전벨트를 풀려던 찰나, 차 위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보고는 곧바로 뜯어버렸다.그리고 차 위에 놓인 물건들, 냄새를 제거하는 향수까지 모조리 깨끗이 치웠다.장소월이 차에서 내리자, 전연우는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물건을 보았지만 모두 각자의 침묵을 지키며 서로 입을 열지 않았다.괜히 어떤 말을 꺼냈다가 자칫하면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더 멀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였다.장소월이 현관문에 들어서자, 아줌마가 반겨주셨다. “오늘 집에 손님이 오셨어요. 일단 먼저 손부터 씻고 나서 밥 드세요.”장소월은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손님? 누구요?”“아가씨 담임 선생님이라던데요.”‘강만옥?’장소월은 순간 가슴이 꽉 막힌 것만 같았다. ‘강만옥이 어떻게 여기에 왔지?’‘일부러 장해진인데 접근하려고 왔나?’‘아니면 전연우와의 계획이 앞당겨졌나?’장소월은 손이 덜덜 떨렸고 눈 밑에 어두운 빛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지만 너무나도 빨라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였다.“그럼 강 선생님은요?”그녀는 지금 서재에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듣자니 네가 학교에 있었던 그 일 때문이라고 한다.전생에 장소월에게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가 다시 태어나면서 원래의 운명이 흘러가야 하는 방향을 바꾸었기 때문에 지금의 어떤 일도 함께 바뀐 것 같았다.전연우는 그녀를 지나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백윤서의 곁으로 갔다.그때 위층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님,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소월에 관한 일은, 이후에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습
마음을 가다듬고 식탁에 돌아와 앉았다.장해진은 모처럼 나에게 관심을 주었다. “강 선생님이 말하기를 요즘에 성적이 아주 좋다며 지난번보다 진보가 아주 많다는데 어떤 보상을 원하는지 한번 말해보렴, 내가 다 들어주마.”평소에 장해진은 장소월에게 아주 엄격하였기에 밥상머리에서도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강만옥이 나타나서 그런지 기분이 아주 좋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장소월은 이때다 싶어 한 가지 요구를 부탁했다. “이번에 수능시험 다 보고 친구들과 함께 해성에 가서 놀고 싶어요. 그럴 수 있나요, 아버지?”“그래, 갈 때 운전기사를 데리고 가는 것이 좋겠어. 혼자는 위험해.”장소월은 크게 기뻐하는 내색이 없이 입꼬리만 살짝 올라갔다. “감사합니다, 아버지.”그러자 강만옥은 한마디 끼어들었다. “소월이 해성에 가서 바다를 보는구나? 듣기로는 그곳이 풍경이 아름답기로 소문이 났다던데... 수능 시험 다 보았으니 제대로 휴식은 해야지.”장소월은 대충 대답했다. “제가 오래 안 나가 놀긴 했어요.”옆에 있던 하인이 강만옥에게 주스를 따라주었다. “다니고 싶은 대학교 결정했어? 만약 사범대라면, 지금 네 성적으로 보았을 때 막판에 스프린트 하면 기회가 있어 보이긴 하는데.”서울사범대학교, 명문대학 중에서는 중간 정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경쟁이 너무 치열하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장소월의 문과 성적이 비교적 좋았기에 합격할 가능성은 그래도 컸다.전연우는 장소월의 성적 수준을 모를 리가 없었다. 병원에서도 장소월이 푼 시험지를 많이 봐줬기에 지금 장소월의 능력으로 보았을 때 서울대에 합격하고도 남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서울대학교는 국내에서는 최고의 대학교였다.장소월은 밥을 몇 숟가락 먹고는 담담하게 말하였다. “아직 생각 중이에요. 이제 나중에 보려고요.”“그래, 그때 가서 생각해 봐. 선생님이 네가 학습 계획 세우는 것을 도와줄 수도 있어. 너도 잊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야 해.” 강만옥은 그녀에게 신경을 많이 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전생에 장소
두 사람이 전후로 서재에 들어갔고 전연우가 문을 닫자, 압도적인 억압이 온 방 안을 엄습했다.장해진은 불상에 향을 피우며 물었다. “최근에 새로운 친구를 만들었니?”갑자기 던진 물음에 장소월은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하였다.“네... 네! 아버지, 혹시 제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장해진은 느릿느릿 책상 앞에 가서 앉았고, 전연우는 바로 그의 옆쪽에 가서 섰다. 두 눈길이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소월아, 아빠가 너를 무섭게 했니?”장소월은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하더니, 주눅이 들어 대답했다. “아니요... 아버지가 너무 엄격하셔서, 혹시라도 제가 뭔가를 잘못해서 벌을 받게 될 까봐 걱정했어요.”장해진은 이 말은 듣고는 오히려 희한했고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자기 딸이 어딘가 변한 것 같았다.예전의 퉁명스러운 성격이 많이 누그러진 것 같았다.“언제부터 강 씨 집안사람을 만나고 다녔어?”강 씨 성을 가진 친구라면 장소월은 한 명밖에 아는 사람이 없는데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지 궁금했다.장해진의 사소한 원한도 반드시 갚는 성격에 따르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장해진은 관여를 안 할 수가 없었다.이런 말들을 물어보면 유일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바로...‘설마... 강영수까지 여기에 끼어들었나?’이것은 장소월이 유일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다.그렇지 않으면 장해진이 굳이 따로 그녀를 불러내 대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강영수에 관한 일들을 장해진한테 평생 숨길 수는 없고 지금 말하지 않아도 장해진은 나중에 분명히 다 알게 될 것이다.장소월은 아예 사실대로 말했다. “저도 요 며칠 사이에 알게 된 친구인데, 바로 우리 집 옆집에 살았어요. 지난번에 제가 뒤뜰에 있는 대추나무에 갔을 때 그와 몇 마디 나누었을 뿐이에요.”“그래?”‘강 씨 집안사람들도 남원 별장에 있다고?’장소월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 사람 이름은 강영수예요. 아버지, 그 사람 사실 좋은 사람이에요.”장해진은 일어나 장소월에게
백윤서는 잠시 밖에서 기다리다가 전연우가 서재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는 바로 그에게 다가갔다. “연우 오빠, 왜 그래요? 얼굴색이 안 좋아 보여요... 그 사람이... 오빠를 난처하게 했죠?”전연우는 팔에 양복 외투를 걸쳤다. 원래 얼굴이 오만상이었지만 그녀를 보자마자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아무것도 아니야, 들어가 봐.”차에 앉아 핸들을 잡은 채 서재에서 나눈 대화를 떠올리는 전연우의 눈빛은 날카로웠다.“이건 일주일 뒤 주최되는 자선 파티 초대장이야. 그때 내가 사람을 보내 협조하게 할 테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겠지?”전연우는 초대장을 받았다. “의부님, 혹시 인가네를 끌어들일 생각이십니까?”“아니, 이건 두 집안의 정략결혼이야. 너도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가정을 꾸려야지. 지금으로서는 인가네가 너의 가장 좋은 선택인 것 같다.”“네, 의부님을 실망하게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전연우는 무엇 때문인지 차를 세웠다. 백윤서는 이해가 안 가는 듯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연우 오빠, 왜요?”말이 끝나기 바쁘게 전연우는 갑자기 손을 뻗어 조수석에 앉아 있던 백윤서를 끌어안고 그녀의 향긋한 동백꽃 냄새를 맡았다.백윤서는 흠칫하더니 몸이 뻣뻣해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가 전연우와 이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하면서 전에 그들 사이에는 항상 큰 틈이 있는 것 같았고 아무도 그 틈을 넘을 수 있는 한 발자국을 내딛지 않았다. 설령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하지만 지금 백윤서는 전연우의 이상함을 감지하였다. 줄곧 자기 분수를 알고 있던 사람이 인제 와서 적극적으로 그녀를 안다니.차 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변하기 시작했다. 백윤서는 천천히 몸을 느슨하게 풀더니 고개를 젖히고 턱을 전연우의 어깨에 얹은 채 두 손으로 그의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연우오빠... 왜... 왜 그래요? 무슨 일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요?”얼마 지나지 않아 전연우는 그녀를 놓아주었다. “윤아, 내가 최근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네가 학교로 돌아가
장소월은 거의 빠른 속도로 답장하였다.「앞으로 또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날 불러. 내가 다 해줄게.」「알았어.」전연우는 위의 메시지를 보더니 눈빛에 많은 생각들이 담겼다.웬일로 장소월이 한 남자에게 메시지를 답장하는 모습을 본다.전연우는 원래 자신의 것이었는데 갑자기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 느낌이 들어 왜인지 모르게 불편했다.위의 메시지들은 모두 장소월의 핸드폰을 감시하여 얻은 내용이었다.지난번의 병원에서 장소월의 틈을 타서 몰래 감시하는 앱을 다운했던 것이었다.이어서 장소월은 강영수와 거의 3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모두 아이들의 일상적인 공유와 취미뿐이었다.무미건조했지만 전연우는 끝까지 모든 내용을 다 읽었다.그는 장소월이 확실히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이야기가 다 끝나가서야 전연우는 이에 대해 감흥이 없어졌다.시간을 보니, 8시 30분이었다. 전연우는 자기가 장소월한테 한 시간 이상의 시간을 허비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하였다.같은 시각 장가네.장해진은 술자리에 나갔고 언제 돌아올지 모르지만, 장소월은 그가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장해진은 워낙 밖에서 여자를 많이 만드는지라 그에게 있어서 어느 곳에서 밤을 지내든지 마찬가지였다.마지막 메시지를 보낸 후, 장소월은 위층으로 올라가 샤워를 했다.사실 그 밤떡은 모두 아줌마가 만든 것이고 그녀는 그냥 밀가루를 반죽하고 물을 부어 넣는 등, 옆에서 거들기만 하였다. 장소월은 할 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줌마가 너무 걱정해서 혹시라도 상처가 날까 봐 손을 대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전생에 전연우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장소월은 요리부터 간식까지 미슐랭 요리사 못지않는 요리 솜씨를 발휘했었다.하긴 남자를 정복하려면 그 남자의 위부터 정복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으니...전연우는 확실히 그녀의 요리 솜씨에 붙잡혔고, 나중에는 입맛이 점점 까다로워져서, 밖에서 먹는 음식도 익숙지 않게 되었다.그녀가 요리를 배우게 된 것은 전연우의 위장병 때문이었는데 방금 장
차가운 달빛이 창가에 드리웠다. 장소월은 잠옷을 입고는 아래층 거실로 내려왔다.장소월은 평소에 밤에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아까 깨어났을 때 물을 마시고 싶었는데 주전자의 물을 다 마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아래층으로 내려온 장소월이 졸린 눈으로 돌아서자, 갑자기 소파에 앉아 있는 검은 그림자에 놀라 펄쩍 뛰었다.“악!”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소파에 앉아 있던 사람은 일어나 벽에 있는 불을 켰다.눈 부신 불빛에 장소월은 눈을 가늘게 뜨고서야 비로소 사람이 똑똑히 보였다.“오빠가 왜 여기에 있어? 아직도 안 돌아간 거야?”거실에는 은은한 술 냄새가 났는데 전연우한테서 나는 냄새였다.‘방금 술자리에서 돌아왔나?’‘아니... 가서 백윤서와 같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와서 뭐 하는 거지?’전연우는 원래 치밀한 사람이라, 그와 8년 동안 부부였는데도 그의 속내를 짐작할 수 없었다.‘도대체 무슨 속셈인 거야?’말을 하고 있는데 전연우는 서서히 다가오면서 둘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장소월의 뒤에는 벽이 있어 물러설 길이 없었다.그는 앞으로 걸어가서, 눈빛으로 여자아이를 힐끗 보았다.아무리 그의 가벼운 눈빛일지라도 장소월은 여전히 포착할 수 있었다. 전연우 눈 밑의 이상한 기색도.그의 호흡이 잠시 흐트러졌다.장소월이 아는 바에 의하면, 전연우는 함부로 하는 습관이 없다.백윤서가 사고가 나기 전뿐이었지만.그녀가 죽은 후, 전연우는 사치스러운 생활에 취해 수많은 여자와 놀아났었다.장소월은 알고 있었다. 현재 장해진이 있는 한, 전연우는 그녀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장소월의 속눈썹이 가볍게 흔들렸다. 눈치채지 못한 척 도망치려 했다.그러자 전연우는 갑자기 손을 뻗어 벽을 짚더니 그녀의 앞길을 막았다.장소월은 순간 숨이 멎는 듯했고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오빠... 오빠... 또 무슨 일 있어요?”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이는 점점 더 빨라졌다. 예리하게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그 눈빛은 아무리 두꺼운 갑옷을 입어도
자신을 지긋이 바라보는 전연우의 눈길에서 장소월은 너무나도 낯선 다정함을 느꼈다. 왜일까, 백윤서를 마주할때만 보이던 그 눈빛으로 이 남자는 지금 왜 날 보고있는걸까. 그녀에게 익숙한 것은 얼음 같은 냉혹함, 혐오, 무시... 수년간 변하지 않던 그의 태도에 익숙해지려 하는 지금, 갑자기 나타난 다정함은 그녀를 순식간에 긴장케 했다. 어디 긴장 뿐일까, 행여나 자신이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건 아닐까 하나하나 되새겨보는 장소월이였다.Comment by 만든 이: 랭혹하다 : ‘냉혹하다’의 북한어.북한어와 혼용하지 않도록 반드시 유의Comment by 만든 이: 긴장케 만들었다. - 번역체 문구둘 다 사용에는 무관하나 한국식 표현 지향Comment by 만든 이: 오타Comment by 만든 이: 搭配不当올바른 호응 : 행여나 ~ 한 건 아닐까 “네가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거 윤이가 알면 참 좋아할 텐데. 그럼 넌? 진짜 강영수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거야?”“네? 그게 무슨...”연우의 한마디에 소월은 귀를 의심했다. 여기서 강영수가 왜 나오는 거지? 참, 오늘따라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니까. 당황함에 할 말을 잃은듯해 보이는 소월을 바라보던 연우는 뭔가 떠오른 듯 잡은 손을 놓았다. 순간 방금전의 따스함은 사라지고 전연우의 얼굴에는 늘 하던 그대로 차가움만이 남아있다. 마치 방금 이 모든 것들이 그저 착각인것마냥...“됐어, 아무것도 아냐, 신경 쓸 필요 없어.”후. 조금은 긴장이 풀린 장소월의 머릿속엔 그저 빨리 이 곳에서 탈출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슬며시 자리를 피하려던 그녀의 손목이 뜨겁고 거친 손에 잡혔다. 전연우였다.Comment by 만든 이: 맞춤법 오류Comment by 만든 이: 맞춤법 오류. 띄어쓰기“더 할 말이라도 있어요?”“배고파, 주방에 가서 뭐라도 좀 해와.”“...”그녀가 요리에 소질이 없다는 걸 전연우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라면 하나조차 끓일 줄 모르는 소월에게 요리를 시키다니, 어딘가 단단히
소현아가 말하는 사람은 아마 유월일 것이다. 혹시 그녀의 존재 때문에 강영수가 무언가를 기억해낸 것일까? 그렇다. 지금 강영수는 유월과 결혼한 상태다. 그녀가 계속 옆에 있는 것은 그들의 관계에 악영향만 끼칠 뿐이다. 집에 도착한 뒤, 장소월은 소현아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다. “현아야, 오늘 밤엔 우선 여기서 자. 옷장 안에 옷도 좀 있으니까 샤워하고 갈아입어. 난 내려가서 저녁 준비할게.” 소현아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장소월이 아래층으로 내려가 냉장고를 뒤져 재료를 찾고 있을 때, 강용이 들어왔다. “정말 저 바보를 데리고 다닐 생각이야?” “강용, 현아 그렇게 말하지 마. 어렸을 때 병을 앓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거잖아.” 강용은 어깨를 위로 쭉 올렸다가 내리며 말했다. “알았어. 네가 이렇게까지 끔찍하게 감싸는데 내가 어떻게 뭐라 하겠어. 하지만 소현아는 다시 돌려보내는 게 낫지 않아? 쟤랑 같이 있으면 너무 위험해. 자칫하면 우리 위치가 강지훈에게 노출될 수도 있어!” “너도 알다시피 전연우랑 강지훈은 한통속이나 다름없어. 전연우가 해외에 얼마나 큰 세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 재산 대부분을 해외로 넘긴 상태야. 국내 성세 그룹이 망하더라도 전연우는 눈도 깜짝하지 않을 거라고.” “윗선에서 일찌감치 막지 않았다면, 지금쯤 성세 그룹은 아마 성세 글로벌 그룹이 되어 있었을 거야.” “그리고 네가 모르는 게 하나 있어.” 장소월은 채소를 썰다 멈추고 물었다. “그게 뭔데?” “전연우는 이미 회사를 팔아넘겼어!” “무슨 뜻이야?” “몰랐어? 전연우는 아주 오래전에 나라에 회사 지분을 넘겼어. 그래서 송시아가 아무리 서울을 헤집고 다녀도 전연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거야. 그리고 전연우가 요구한다면, 언제든 지분과 회사 통제권을 되돌려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 “하지만 한낱 성세 그룹 따위는 해외에 두고 있는 재산의 백 분의 일도 안 돼. 지금까지 해외에서 수도 없이 많은 기업들을 인수했거든. 나중에 집안
장소월은 낙일 마을에 길을 잃은 친구가 있으니, 빨리 와서 데려가라는 전화를 받았다. 친구? 낙일 마을에 그녀의 친구가 있었던가?장소월은 강용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경찰서로 향했다. 그녀가 상황파악도 채 하지 못했을 때, 누군가 뛰어와 그녀를 꽉 껴안았다. “소월아, 소월아, 소월아... 드디어 찾았어. 너무 좋아!” 익숙한 목소리에 장소월은 화들짝 놀랐다. “현아?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온 거야?” “그 바보 아가씨?” 차를 세우고 내리자마자 그 광경이 강용의 눈앞에 펼쳐졌다. “강용...” 소현아는 배시시 웃으며 강용을 향해 뛰어갔다. 반가운 마음에 와락 껴안으려 했지만, 그는 팔을 쭉 내밀어 그녀의 이마를 밀었다. 소현아는 키가 작은지라 아무리 팔을 휘저어도 겨우 강용의 옷자락만 잡을 수 있었다. “강용, 너도 보고 싶었어. 한 번 안아보자.” 강용은 눈썹을 씰룩이며 말했다. “난 순결한 몸이라서 말이야. 아무나 만지면 안 돼. 몇 년 만에 보는 건데... 소월아, 얘 왜 그사이에 더 멍청해진 것 같냐?” 장소월은 강용을 노려보며 말했다. “강용, 현아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 이어 고개를 돌려 경찰에게 말했다. “현아는 확실히 제 친구 맞아요. 폐를 끼쳐서 죄송했습니다. 이제 현아 데려갈게요.” 장소월은 소현아와 함께 뒷좌석에 앉았다. 소현아는 장소월의 팔짱을 끼고 그녀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소월아... 네 몸에서는 여전히 좋은 향기가 나는구나. 정말 보고 싶었어! 이렇게 멀리까지 놀러 왔으면서 왜 난 안 데리고 온 거야?” “현아야, 말해봐. 여긴 어떻게 왔어? 넌 서울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소현아가 대답했다.“응! 근데 강지훈이 나 바보라고 싫다면서 치료받으라고 여기에 쫓아 보냈어. 날 감시하라고 도우미 두 명까지 보냈고. 나 겨우 도망쳐 나온 거야. 소월아, 나도 데리고 가면 안 돼? 그 사람들한테 다시 잡혀가면 끝이야. 나 밥도 못 먹게 하고, 밤마다 수갑으로 묶어놓고 채찍으로 때리기까지 한단 말이야.
민선화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들 또한 지금처럼 변한 유월의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대문이 굳게 닫혔다. 해이는 문밖에 서서 힘겹게 말했다. “나한테 조금만 시간을 줘. 모든 걸 똑똑히 알고 난 뒤 다시 올게. 만약 그 여자와 나 사이에 정말 무슨 일이 있었다면, 그것 또한 너한테 다 얘기할게.” 소현아는 바닥에 떨어진 닭 다리를 주웠다. 방금 전 유월이 던진 의자가 그녀를 향해 날아오는 바람에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닭 다리를 떨어뜨렸던 것이다. 그녀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떨어진 지 3초 안 지났으니까 먹어도 괜찮아.” 밖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유월은 문을 열었다. 텅 비어버린 마당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갔어... 정말 가버렸어!” 넋이 나간 채 멍하니 서 있는 유월의 모습에 민선화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가 말했다. “유월아, 왜 그래? 유월아...” “유월아, 엄마 무섭게 이러지 마!” “유월아, 제발 말 좀 해 봐!” “언니... 왜 그래요.” 민선화가 유월에게 손을 뻗은 순간, 그녀는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 모두가 깜짝 놀라 허둥지둥 그녀에게 달려갔다. 희미하게나마 어둠을 비추던 달빛이 사라졌다. 달님은 어디론가 숨어버린 듯했고, 짙은 먹물 같은 하늘에는 별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밤은 점점 더 깊어져 갔지만, 강영수에게는 절대 잠들지 못할 밤이었다... “오늘 밤엔 일단 여기서 자요. 내가 내일... 장소월 씨한테 데려다줄게요.” “네, 강영수 씨.” 소현아는 기지개를 켜고 침대에 몸을 뉘운 뒤 몇 초도 채 지나지 않아 바로 깊이 잠들었다. 강영수는 문밖에 앉아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이 집은 그가 유월과 함께 살려고 지어놓은 신혼집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각, 유월을 향한 그의 마음은 자신도 모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바뀌었는지 그 또한 알 수 없었다... 규영과 미경은 밤새도록 낙일 마을에서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해이야, 이 사람 도대체 누구야? 이 여자가 한 말이 정말 사실이야? 송 선생님이 아니라 장소월이였다고? 그리고 오늘 친정으로 돌아오는 날인데 왜 너 혼자 돌아온 거야? 유월이는 어쩌고?” 소현아는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풍성하게 차려진 식탁에서 닭 다리 두 개를 집어 들고 해이 뒤로 몸을 숨겼다. “너무 무서워.” 소현아의 몸은 온통 흙투성이였다. 진흙탕에 넘어져 울먹거리고 있던 차에 마침 순찰을 돌고 있던 경찰에게 발견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그들과 함께 경찰서로 향했다. 그녀가 찾으려는 사람에 대해 설명하자, 경찰은 곧바로 이곳으로 그녀를 데려왔다. 이곳에서 해이를 본 소현아는 분명 소월이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쫓아내려 했지만, 소현아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그곳에 눌러앉았다. 다행히 낙일 마을 사람들은 모두 선하고 순박했고, 치안도 좋은 편이었기에 소현아는 무사히 지낼 수 있었다. 해이는 뛰쳐나간 유월을 쫓아가지 못하고 먼저 처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소현아를 다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부모님의 질문에 그는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저 역시 그 답을 찾고 있어요. 유월이는 괜찮을 거예요.” “시간이 늦었는데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잖아. 거기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얼른 나가서 찾아봐.” “찾을 필요 없어요!” 돌연 유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돌아온 것이다. 유월은 문턱을 넘어 들어와 벽에 걸려있던 그림을 집어 던졌다. “장소월은 네 약혼녀고 저 여자도 널 아는 친구라잖아. 다들 널 찾아왔는데 우리 집에서 뭐 하는 거야! 당장 우리 집에서 나가. 그리고 우리 결혼은 오늘부터 없던 일로 해. 나 양유월, 아무리 남자가 좋아도 남이 버린 걸 주워서 같이 살진 않아. 다른 여자와 결혼까지 한 남자는 더더욱 싫어.” “나가! 다 나가라고!” “너무 무서워! 소월이 그림...” 소현아는 내던져진 그림을 보고 재빨리 뛰어나갔다. 액자 유리는
규영과 미경은 재빨리 그녀를 부축하며 물었다. “사모님, 어디 아프세요? 지금 당장 병원에 가요!” “혹시 여기가 아픈 거예요?” 규영이 소현아의 아랫배에 손을 올렸다. 행여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주인님은 그들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소현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응가 마려워요.” 미경은 곧바로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건넸다. “사모님, 이 근처에는 화장실이 없어요. 정 급하시면 저쪽 구석에서 볼일 보세요. 저희가 망봐드릴게요.” 소현아는 휴지를 받아들고 나무 뒤로 달려갔다. “잘 지켜봐야 해요. 아무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요. 안 그러면 나 화낼 거예요.” “알겠습니다, 사모님.” 소현아는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입을 가린 채 큭큭 웃어댔다. “내가 바보라고? 너희들이야말로 바보야.” 소현아는 재빨리 시내로 돌아가 다시 그곳으로 향했다. 그녀는 손에 든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다. “혹시 이 사람 못 봤어요? 제 언니인데, 언니가 사라졌어요.”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못 봤어요, 본 적 없어요.” 소현아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물었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그렇게 어느덧 밤이 되었고, 그곳 지리에 익숙지 않은 그녀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헤매고 있었다. 10분 뒤, 규영과 미경도 소현아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챘다. 주변을 다 찾아보았지만 그녀는 좀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이 빛나고 있었다. 미경이 울먹이며 말했다. “사모님이 사라지셨어. 이제 어떻게 해!” “주인님이 아시면 분명 우릴 가만두지 않으실 거야. 우리 그냥 주인님께 얘기하자” “안 돼... 안 돼. 절대 주인님이 알게 해선 안 돼.” “노부인께선 사모님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기를 바라셔. 만약 주인님께서 아시면 틀림없이 아이를 없애려 하실 거야. 노부인의 명령을 완수하지 못하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어. 사모님은 복이 많은 사람이니까, 아이와 함께 무사히 계실 거야
“저를 아세요?” 소현아는 눈앞의 남자가 왜 이런 이상한 질문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연히 알죠! 예전 소월이가 괴롭힘을 당하고 쓰러졌을 때, 제가 병원에 데려다줬었잖아요. 당신은 저한테 정말 고맙다고 하면서 꼭 인사를 하고 싶다고 했고요. 그리고 학교에서 소월이를 잘 챙겨주라고 부탁도 했잖아요. 저 당신 말대로 잘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소월이 괴롭히려고 하면 제가 다 막아줬다니까요. 그런데 소월이랑 결혼식 앞두고 어디에 가셨던 거예요? 그 후로 소월이도 사라져 버렸어요.”“저 소월이를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몰라요...”“됐어요! 그만 해요!” 유월이 갑자기 발작하듯 소리쳤다.해이는 그 자리에 굳은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조각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가며 격렬한 두통을 유발했다.규영과 미경은 눈앞의 남자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무슨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두려워 서둘러 변명했다.“선생님, 아가씨...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사모님께서 머리를 좀 다치셔서 가끔 헛소리를 할 때가 있어요. 마음에 두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모님, 이제 가시죠. 밖에 비도 그쳤어요.”두 사람은 소현아를 반강제로 끌고 나갔다. 하지만 소현아의 입술은 멈출 줄을 몰랐다. “헛소리 아니에요. 다 사실이란 말이에요. 하지만 당신한텐 이제 기회가 없을 거예요, 소월이는 이미 다른 놈이랑 결혼했거든요.”규영은 재빨리 소현아의 입을 틀어막고 서둘러 그곳에서 벗어났다.유월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는 해이를 바라보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그의 모습을 보니 불안한 마음에 돌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너 지금 나랑 결혼한 걸 후회하는 거야?”해이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를 바라보는 해이의 눈빛이 변해버렸다. 그의 눈동자엔 더이상 예전의 부드러움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변하고 있다. 그 여자가 낙일 마을에 온 이후부터 그의 마음은 점점 예전과 달라지고 있었다.해이
“제 과거에 대해선 여전히 말해주고 싶지 않은 거죠? 그리고 아까 옆에 있던 그 사람 저랑 많이 닮았던데, 혹시 저 그 사람과도 아는 사이인가요?” “지나간 일은 그냥 과거에 묻어두는 게 나을지도 몰라. 네 옆에는 이제 유월 씨가 있잖아. 나는 네가 위험에 처하는 걸 원치 않아. 네가 무사하게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야. 그 사람이 너에게 빚진 것들은 앞으로 내가 모두 갚아줄게.” 정말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널 원래의 강영수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난 기꺼이 내 목숨도 내던질 거야. 내가 너한테 큰 빚을 졌어... “소월아!” 강용의 목소리였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우산을 든 강용이 다급한 표정으로 그녀를 찾고 있었다. 강영수와 가까워지자 강용은 애써 마음속 두려움을 누르려 그의 시선을 피했다. 과거 강영수는 그에게 자비 따위 베풀지 않았었다. 다리를 분질러 놓았을 때엔 2주가 넘도록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아주 잠깐 눈을 뗐는데, 고새를 못 참고 사라져?” 장소월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만하고 물기부터 닦아. 그리고 얼른 집에 가서 옷 갈아입어야 해. 감기 걸리면 안 되잖아.” 강용은 우산을 든 채로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네가 닦아줘!” 한 번 던져본 농담이었지만, 장소월은 정말로 휴지로 그의 이마에 묻은 빗물을 닦아주었다. “기분 좋아?” 강용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너무 좋아.” “만족해?”“만족하지, 그럼 만족하고말고.” “이제 가자.” 장소월은 옆에 서 있는 해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난 이만 갈게.” “네.” 강용의 차는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되어 있었다. 그가 들고 있는 우산은 대부분 장소월에게 치우쳐 있었기에, 강용의 어깨는 흥건히 젖어 있었다. 차에 탄 뒤 강용이 그녀에게 깨끗한 담요를 건네주었다.“우선 이걸로 닦아, 감기 걸리지 않게.” “혹시 괜찮다면, 깨끗한 옷이 있으니까 여기서 갈아입어. 내가 차에서 내려줄 테니까.” 장소월은 담담하
두 명의 익숙한 시선이 장소월에게 고정되었다. “...아가씨, 내가 뭘 사 왔는지 봐봐.”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소월이 고개를 돌려보니 선글라스를 낀 강용이 탕후루 두 개를 들고 서 있었다. 그녀는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강용에게 다가가 말했다. “어디에서 산 거야?” 강용은 유월의 곁에 있는 남자를 차마 쳐다볼 수가 없어 탕후루를 장소월에게 건네준 뒤 홱 뒤돌아 가 버렸다. 장소월은 그들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전에 어떤 모순이 있었든, 어쨌든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기에 길에서 마주친 그들을 못 본 척할 수는 없었다. 장소월이 멀어진 뒤, 유월은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해이의 팔을 세게 꼬집었다. “뭘 봐. 왜 아직도 보고 있어. 이미 저 멀리 갔잖아. 도대체 누가 네 와이프야? 차라리 그냥 저 여자한테 가 버리지 그래!” “그 여자가 아니라, 옆에 있던 남자. 익숙한 얼굴이었어. 전에... 어디선가 봤던 것 같아.” “됐어. 더이상 생각하지 마. 오늘은 친정으로 돌아가야 하잖아. 부모님께 무슨 선물을 사드릴지나 생각해.” 유월은 무언가 두려웠는지 급히 그의 생각을 끊어놓았다. 강용은 자연스럽게 장소월의 뒤쪽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그를 보며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직도 영수가 무서워?” “무서운 게 아니야. 핏줄이 짓누른다고 해야 하나.” 장소월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답 괜찮네.” “내가 형을 구해 낙일 마을에 데려오고 난 뒤 며칠 후, 형은 혼자서 몰래 병원을 뛰쳐나갔어. 그러다 다행히 저 집안사람들을 만나서 잘 지내게 된 거야. 돈으로 보상을 하겠다고 했는데도 한사코 거절하더라고” “유월 씨네 가족 말하는 거야?” 강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어쩌다 보니 저 둘을 맺어준 꼴이 됐네.” “차라리 잘 됐지 뭐. 형이 아무것도 기억 못 하니까 난 당분간 편히 살 수 있겠어. 형이 뭐라도 기억해내면 나 죽여버릴지도 모르잖아!” 담담하게 이런 말들을 쏟아내는 걸 보니, 강용은 과거의
온웅정은 그녀를 살펴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나는 사람을 치료할 때 다른 사람이 옆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네. 자네 혼자 들어오고, 저 버릇 없는 녀석은 밖에서 기다리게 하게.” “어이, 늙은이, 내가 누군지 알아요?” 장소월이 소리쳤다. “강용!” 강용은 주머니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 “알았어. 밖에서 기다릴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불러. 저 영감이 널 속이려고 하면 내가 대신 혼내줄게.”“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 망둥이 같은 놈.” 장소월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강용, 어른한테 그렇게 무례하게 굴면 안 돼. 밖에 나가서 산책 좀 하고 있어. 나중에 여기서 다시 만나자.” “알았어.” 장소월은 그를 따라 내당으로 들어갔다. “앉게. 손은 이쪽에 올려놓고.” 장소월은 그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온웅정은 그녀의 맥을 30초 정도 짚고 난 뒤 손을 내려놓았다. “...심장 박동이 좀 불규칙하네. 이곳 환경이 몸에 안 맞는 건가?” “몸에 큰 이상은 없으니, 돌아가서 푹 쉬고, 일찍 자고, 맛있는 거 많이 먹으면 금방 나을 걸세.” 장소월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제가 알고 싶은 건 그게 아닙니다. 제가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 그게...”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자네가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난 그런 건 봐줄 수 없네. 자네가 마음의 매듭을 풀지 못하고 계속 이 상태로 살아간다면, 누구도 자네를 구할 수 없네. 자네의 가슴엔 기가 꽉 막혀 있어...” “오랫동안 억누르고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니, 몸이 망가질 수밖에.”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제대로 쉬어 본 지가 얼마나 되었는가?” “전에 내가 처방해 준 약을 먹고도 효과를 보지 못했나?” 장소월은 고개를 저었다. “... 저는 아직 기회가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슬픔이 드리워져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걸세. 자네처럼 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