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타라고 했어?”강지훈의 그 말은 선명히 소민아를 가리키고 있었다.뒤에 있던 부관이 말했다.“현아 아가씨가 차에 태우셨습니다. 함께 며칠 동안 머물러야 한다면서요. 현아 아가씨가 너무 기뻐하시는 걸 보니 저희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소민아는 차 가장 안쪽에 앉아 있었다. 한없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강지훈의 모습에 그녀는 그를 향해 올렸던 손을 빠르게 내려놓았다.소민아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소현아의 등 뒤로 조심스레 몸을 숨겼다.이 강지훈이라는 놈은 대표님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다.정말이지 사람을 등골이 오싹하게 만든다.대체 언니는 이런 사람과 어떻게 만났단 말인가.그들과 기성은을 비교해보니, 기성은은 그야말로 천사와 다름없었다.또한... 그녀를 보는 강지훈의 눈빛은 항상 그녀로 하여금 소름이 돋아오르게 만들었다. 서늘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볼 때마다 식은땀이 흘러내렸다.강지훈이 말했다.“외부인을 데려가는 게 그렇게 좋아?”소현아는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과자를 줍고는 톡톡 먼지를 털며 말했다.“민아는 제 동생이에요. 엄마가 언니는 동생을 잘 챙겨줘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민아는 좋은 사람이에요. 예전 절 도와 나쁜 사람을 쫓아주기도 했는 걸요. 저 민아와 함께 살고 싶어요.”“지훈 씨가 허락하지 않으면, 나도 민아랑 집에 갈 거예요.”소민아는 더러워진 과자를 입에 넣으려는 소현아를 보고는 재빨리 과자를 빼앗아 창밖에 던져버리고 말했다.“바닥에 떨어진 건 먹지 마.”왜인지 현아 언니의 병증이 더 심해진 것 같았다.그녀가 팔을 뻗으니 소매 안으로 멍이 든 흔적이 보였다. 색깔이 옅지 않은 거로 보아 적어도 3, 4일 전에 다친 것 같았다.저 상처는 대체 어떻게 생긴 거지?소민아는 최대한 얼굴로 드러날 뻔한 의심을 가라앉혔다.강지훈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소민아를 데리고 북경 감옥에 가는 걸 허락한 것이다.다만 소민아는 아직 그들이 가려는 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고 있었다.그때, 정장을 입
“흑흑흑... 이랑 씨, 저 죽을 것 같아요!”소민아는 쓰러질 듯 힘없이 신이랑에게 다가가 이마를 그의 가슴에 기댔다. 신이랑은 조금 놀라긴 했지만, 보이지 않는 얼굴엔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말해봐요.”신이랑이 손목을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아침밥 먹었어요?”“저 지금은 아무것도 못 먹겠어요.”“내가 집에 데려다줄게요. 일단 차에 타서 얘기해요.”쌀쌀한 아침이라 산장 길옆에 내린 서리는 아직 채 녹지 않았다. 신이랑이 손에 들고 있던 목도리를 소민아의 목에 걸어주었다. 그가 눈을 내리뜨리니 검은 속눈썹이 조금씩 떨려왔다.“아침엔 추워요. 얼른 타요.”신이랑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 머지않은 곳에 주차되어 있는 차로 향했다.조수석 문을 열어주고 소민아가 차에 탄 뒤, 신이랑은 운전석에 올라타 얼이 빠진 채 앉아 있는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해주었다.신이랑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평온하게 운전했다.“어젯밤 일은 미안했어요. 민아 씨를 또 귀찮게 했네요.”“괜찮으면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래요?”소민아는 입이 가벼운 사람이라 아무것도 숨기지 못한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몇 글자 내뱉었다가 무언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입을 닫았다.“아니에요. 이랑 씨까지 위험하게 만들 필요 없어요. 이번 일은 모르는 게 더 나을 거예요.”“알겠어요. 묻지 않을게요. 일단 조금 자요. 도착하면 깨워줄게요.”신이랑은 초췌한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필시 어젯밤 무슨 일이 있어 밤을 새웠을 거라 생각했다.신이랑은 차 속도를 늦추었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던 소민아는 조수석 의자에 기대어 앉아 빠르게 잠이 들었다. 시내에 들어와 신호등 앞에 멈춰 섰을 때, 돌연 소민아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가 희미한 정신으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서울 경찰서입니다.”소민아가 번쩍 눈을 떴다. 단번에 모든 졸음이 사라져버렸다.25분 뒤.소민아는 경찰서에 도착했다.그녀는 이유도 모른 채 취조실에 갇혀버렸다.4, 5
떠나기 전, 소월 언니의 몸엔 핏자국이 가득했었다... 설마... 그 피... 소월 언니가 다쳐서 묻은 게 아니라 대표님의 것이었던 거야?경찰이 물었다.“소민아 씨, 더 하고 싶은 말 있어요?”소민아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문득 신이랑이 떠오른 그녀가 말했다.“저 제 친구랑 몇 마디 얘기 나눠도 될까요?”“용의 선상에서 벗어나기 전엔 소민아 씨와 친구분 모두 풀려날 수 없습니다. 누군가 이 일이 두 사람과 관련이 없다는 걸 증명해 주어야만 나갈 수 있습니다.”소민아의 머릿속엔 기성은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오직 기성은 만이 당시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그녀는 정말 자신이 신이랑을 위험에 빠뜨릴 줄은 몰랐다.그녀가 기성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이 울린 지 1분이 다 되어가고 있었지만 좀처럼 연결이 되지 않았다.소민아는 인내심을 갖고 한번 또 한 번 반복해 걸었다.마지막으로 그 번호에 걸었을 땐 이미 전원이 꺼진 상태가 되어버렸다.분명 기성은도 대표님이 다친 일이 그녀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그녀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소민아는 실망스러운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누군가 제 결백을 증명해 주어야만 나갈 수 있는 거예요?”“이번 건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저흰 성세 그룹 사람이 직접 와 두 사람이 이번 일과 확실히 관련이 없다는 걸 확인시켜줘야만 풀어드릴 수 있습니다.”소민아가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바깥에 서 있는 저 사람은 성세 그룹의 편집장이에요, 소설 을 쓴 작가님이기도 하고요. 저 사람은 절대 이번 일과 아무런 연관이 없어요. 몸도 좋지 않은데 먼저 보내면 안 될까요? 전 계속 여기에 있을게요.”옆에 있던 여경이 보내온 서류를 훑어보고는 말했다.“이 일은 저희가 처리할게요.”옆 유치장.여우림은 소식을 듣고 경찰서에 달려와 신이랑의 알리바이를 증명한 뒤 그를 유치장에서 빼냈다.신이랑이 형사에게 물었다.“민아 씨 상황은 어떤가요?”“죄송하지만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여우림은 그 말을 끝으로 씩씩거리며 자리를 떴다.얼마나 기다렸을까. 아침부터 시작된 기다림은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이어져가고 있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경이 더는 참지 못하고 그에게 다가가 설득했다.“신이랑 씨, 이렇게 기다리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여자친구분이 신이랑 씨 건강을 걱정하고 있어요. 여자친구를 위해서라도 집에 돌아가세요.”신이랑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계속 이렇게 기다리는 건... 휴. 됐어요! 그럼 음식이라도 좀 드세요.”얼마 후 그녀가 경찰서 안에서 빵과 따뜻한 물을 들고 나왔다.물이 담겨 있는 컵을 감싸니 얼음장같이 차가워진 그의 손에 따스한 온도가 전해졌다.눈을 내리뜨니 차갑고 무거운 무언가가 속눈썹에서 느껴졌다. 쌀쌀한 날씨에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다 보니 서리가 내려앉은 것이다.신이랑은 고개를 들고 눈을 깜빡이며 가로등 아래 내리는 눈송이를 바라보았다...그는 들고 있던 물이 차갑게 식어버린 뒤에야 다시 내려놓았다.마지막으로...신이랑은 핸드폰을 꺼내 그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문밖에 홀로 서 있는 그의 얇은 뒷모습은 너무나도 고독하고 쓸쓸해 보였다...몇 초 뒤, 전화기 너머로 두꺼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이야?”10년 전 이후로 처음 연결된 통화였다.남자는 애써 흥분한 감정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신이랑이 입을 열었다.“도움을 청할 일이 하나 있어서요...”“그래...”얼마 후.“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어.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시간이 있으면 이쪽으로 와. 어쨌든 난 네 아버지잖아. 네가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들 난 자랑스럽게 생각해.”신이랑은 아무런 감정 없이 차갑게 한 글자만 내뱉었다.“네.”“다음 주 월요일 시간 되면 우리 가족 같이 밥 한 끼 먹자. 장소는 네가 정해.”“그럴 필요 없어요. 이번 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상대방이 한동안 침묵하자 신이랑이 다시 말했다.“다음번엔 꼭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릴게요.”전화를 끊고 난
소민아는 신이랑의 차에 올라탔다. 똑같이 경찰서 문 앞에 정차되어 있던 검은색 승용차 안에서 기성은이 깊은 눈동자로 멀어져가는 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 그들의 꼭 맞잡은 두 손까지도 그는 똑똑히 보았었다.조수석에 앉아 있던 소피아가 어두워진 기성은의 얼굴을 보고는 조심스레 물었다.“기 비서님, 소민아 씨 이제 괜찮은 것 같은데 그래도 들어가실래요?”전화 한 통이면 해결될 일에 기성은이 직접 여기까지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대표님은 지금 병원에 입원해 사경을 헤매고 계신다. 하여 성세 그룹이 직격탄을 맞은 이 혼란한 시점에 소민아에게 낭비할 시간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기성은은 차가운 얼굴로 액셀을 밟아 경찰서를 떠났다.소민아는 밤새 휴식하지 못했던 탓에 조수석에 올라타자마자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신이랑도 차 속도를 늦추었다. 아파트 단지 아래 도착한 뒤 조심스레 그녀를 안고 집으로 올라갔다.소민아는 깊이 잠이 든 것 같았다. 신이랑이 침대에 눕히고 신발을 벗겨주자 그녀는 이불 속으로 쏙 파고 들어갔다.신이랑의 입꼬리가 슥 올라갔다. 하루종일 쌓였던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는 침대 옆 서랍 안에서 진통제 한 통을 꺼내고 이미 차가워진 물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다음 날, 소민아는 오후 한 시가 되어서야 깨어났다. 거실에서 음식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자신이 신이랑의 방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화들짝 놀라 일어나 앉았다.침대 옆 정연하게 개어진 깨끗한 옷 위 쪽지 한 장이 놓여있었다.[새 옷이니까 깨면 갈아입고 나와서 밥 먹어요.]다정한 그 한 마디를 본 순간 마음속에서 따스함이 피어올랐다.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소민아는 누군가에게 따뜻하게 보살핌을 받아본 적이 없다. 늘 혼자였기에 외로운 생활에 익숙해질 때로 익숙해진 상태였다.처음으로 이런 대접을 받아보니... 기분이 꽤나 좋았다.소민아는 편한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신이랑이 입으려고 샀던 옷이라 그녀가 입으니 사이즈가 조금 커 긴 소매를 말아 올렸다.
소민아는 핸드폰을 들고 방에서 나갔다. 본래 낯설었던 곳이 어느새 점점 더 제집 같이 익숙해졌다. 그녀는 방을 나서며 문을 닫는 것도 잊지 않았다.“이랑 씨, 밥 먹고 나서 회사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기 비서님이 절 찾으시네요.”신이랑이 그녀에게 삼계탕을 떠주며 말했다.“아침에 내가 말해뒀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먹어요. 그러고 나서 나랑 같이 회사 가요. 아직 시간 많아요.”“그래요.”식사를 마친 뒤, 소민아는 방에 돌아가 옷을 갈아입었다. 이번에도 신이랑의 차를 타고 회사에 출근했다.회사 지하주차장에 도착하자 그녀는 두말없이 기성은의 사무실로 향했다. 문밖에 다다른 뒤 잠시 고민하고는 똑똑 문을 두드렸다.“들어와요.”지금 비서팀에는 직원이 몇 명 남아 있지 않았다. 대표님이 결혼식 기념으로 직원들에게 휴가를 준 것이다.소민아가 들어간 뒤에야 기성은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한동안 그녀를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내 전화 왜 안 받았어요?”“배터리가 없었어요. 밤에 이랑 씨가 충전해줘서 그나마 빨리 확인할 수 있었어요.”그 말에 기성은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려왔다. 하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머리를 떨구고 서류에 시선을 돌렸다.“같이 있었어요?”소민아가 대답했다.“그건 제 사생활이에요. 기 비서님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잖아요? 기 비서님, 무슨 일로 절 부르신 거예요?”“대표님은 아직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해 중환자실에 계세요. 내가 병원에 가봐야 하는데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거기에 갈 수 있는 사람은 민아 씨밖에 없어요.”“하지만 전 송 부대표님의 비서예요.”기성은의 눈동자가 위험하게 번뜩였다.“이제부턴 아니에요. 송 부대표님한테는 내가 얘기할게요. 이번 결혼식에서 있었던 일은 민아 씨가 똑바로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거예요. 대표님은 의식을 되찾으면 분명 민아 씨한테 그 죄를 물을 거예요. 그래서 내가... 조금이나마 속죄할 기회를 주는 거예요.”그 말에
기성은은 펜을 돌리던 손을 멈추고 의자에 등을 기대고는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10분 줄 테니까 서류 가져와요. 내가 사인할게요.”“누가 무서워할 줄 알고.”소민아는 몸을 홱 돌려 사무실에서 나갔다. 그녀는 십 분도 채 되지 않아 서류를 기성은의 눈앞에 내밀었다.기성은이 빠르게 사인했다.“지금 하고 있는 일은 알아서 인수인계해요. 인사팀 쪽엔 내가 말해둘게요. 내일부턴 아래층에 출근하면 돼요.”소민아는 그를 더 화나게 만들려는 듯 쏘아붙였다.“내일까지 기다릴 필요 없어요. 지금 당장 갈게요.”기성은은 그녀에게 더는 눈길을 주지 않고 서류 페이지를 넘겼다.“나가요. 갈 때 문 닫는 거 잊지 말고요.”소민아는 나가며 일부러 문을 닫지 않았다. 그때 마침 들어오고 있던 소피아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녀의 도발적인 눈빛은 마치 드디어 속 시원히 꺼지는구나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그런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고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소민아가 아니었다. 그녀는 바로 눈을 까뒤집고는 소피아의 어깨에 몸을 부딪쳤다. 그 바람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소피아는 분노가 잔뜩 실린 눈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소민아는 종이 박스를 들고 와 자신의 물건을 모두 안에 집어넣었다.사무실에서 나선 순간, 무슨 이유에서인지 눈물이 흘러나와 손등으로 슥 닦았다. 그녀는 등 뒤에서 기성은이 그런 자신의 모습을 모두 눈에 담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소피아가 품 한 가득 서류를 안고 들어왔다.“기 비서님, 오늘 사인해야 할 서류입니다.”기성은은 그 한 무더기 서류 속에서 한참 동안 무언가 찾다가 말했다.“중동 석유 그룹과 개발했던 프로젝트에 관한 건 어디에 있어요?”소피아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송 부대표님의 부하직원이 가져갔어요. 부대표님이 직접 전화하셔서 저도 막을 수가 없었어요. 회사에 대표님이 안 계시니 부대표님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거 비서님도 아시잖아요.”기성은의 눈동자에 날카로움이 번뜩였다.“송시아 핑계 대지 말아요. 됐어요. 나가
얼마 후, 단톡방이 또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빅뉴스예요. 오늘 인사팀 쪽 누군가가 흘린 소식인데요, 기 비서님이 사직서를 내셨대요. 다들 사표를 수리할 수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대요.][뭐라고요? 기 비서님이 사직한다고요? 흑흑흑... 내 남신님이 떠난다고요? 그럼 회사 밖 여자들이 또 들러붙을 거잖아요. 짜증 나요. 어떻게 하면 제 남자를 붙잡을 수 있을까요?][기 비서님이 언제부터 당신 남자가 된 거예요? 당신 남자는 남편이겠죠!][난 누구처럼 지조 없는 여자가 아니에요. 왜 관심도 없다가 이제 와 내 남자를 빼앗으려 하는 거죠?][가정이 있는 아줌마는 이만 입 닫으시죠. 정말 걱정이에요. 성세 그룹은 휘청거리고, 기 비서님은 사직서를 내시다니요! 세상에,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요.]...신이랑이 외근을 마치고 편집팀에 돌아왔다. 사무실에서 안절부절못하며 핸드폰만 붙잡고 있는 여자를 본 그가 다가가 걱정스레 물었다.“누구한테 전화하는 거예요?”소민아가 한 통 한 통 반복적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야속한 통화음만 들려올 뿐이었다.“누구한테 전화하는 건데요?”소민아가 핸드폰을 내려놓고 말했다.“기성은이 사직서를 냈대요. 알고 있었어요?”신이랑이 고개를 끄덕였다.“저도 금방 들었어요.”소민아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왜 그랬을까요? 그것도... 하필 제가 부서이동하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아 떠나버렸어요. 회사에 정말 큰일이 생긴 걸까요?”신이랑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민아 씨, 우리 구르미 시리즈는 성세 그룹에서 단독으로 분리된 독립적인 회사예요. 성세 그룹의 상황이 어떻든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어요. 또한... 그건 회사 기밀이에요. 일반적으로 쉽게 외부에 흘리지 않아요.”“회사에 안 좋은 일이 있다 하더라도 기성은 본인만 알고 있겠죠.”“안 되겠어요. 저 꼭 똑똑히 알아야겠어요. 대체 왜 제가 부서 이동하자마자 기성은이 사직서를 냈는지 말이에요.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예요.”소민아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신이랑이
... 이토록 당장이라도 질식할 것 같은 느낌... 장소월은 처음이 아니었다.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떠보니 팔짱을 낀 채 문틀에 기대선 강용이 보였다. 언제부터 그곳에 서 있었는지 모를 그를 향해, 장소월은 심호흡을 하고 침대에서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언제 왔어? 소리도 없이!” 강용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바람 때문에 문이 열렸더라고. 소리가 들려서 와봤어.” “그럼 현아는?” 강용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걔 걱정은 안 해도 돼. 돼지처럼 쿨쿨 자고 있어.” 장소월의 말투가 바로 차갑게 가라앉았다. “강용!” “알았어, 알았어. 최대한 참아볼게. 하지만 말인데, 너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설마 정말 아이까지 낳게 하려고? 나중에 결국 우리 둘 중 한 명이 키울 거잖아. 소현아 한 명 데리고 다니는 것도 충분히 부담스러운데.” 장소월이 말했다. “그 아이는 현아의 목숨, 더 나아가 소씨 가문의 운명까지 구할 수도 있어.” 강용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무슨 뜻이야?” “강지훈은 전연우보다 더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사람이야. 전연우라면 어쩌면 살아남을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겠지만, 강지훈은 가차 없이 죽여버릴 거야. 그 누구에게도 자비를 베풀어 살길을 열어주지 않거든. 혹시 어느 날 현아가 실수를 저질렀을 때, 어쩌면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한 번 용서해줄지도 몰라.” “하지만 강지훈이 아예 아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건데? 소현아와 배 속 아이 모두 화를 입게 될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 장소월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생각도 했어.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저 도박을 해보는 수밖에 없어. 강지훈이 현아를 마음에 두고 있을 거라고 말이야. 그러면 현아를 해치지 않을 테고, 아이는 더더욱 무사할 수 있을 거야. 어쨌든 그 아인 강지훈의 핏줄이잖아.” “강지훈은 승부욕이 센 사람이라 전연우와 겨루는 걸 좋아해. 전연우에겐 아이가 있는데 그 사람에겐 없잖아. 그래서 좀 더 확신하게 된 거
남원 별장 버려진 창고 안, 전연우는 눈앞 당황함에 어쩔 줄 모르는 여자를 향해 말했다. “너도 무서운 건 있는가 보네.” 이곳은 예전 장소월이 갇혀 있던 곳이다. 그 오랜 시간 얼마나 외롭게 버텨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여자가 울부짖으며 애원하고 있음에도, 그의 깊은 눈동자에는 조금의 자비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녀를 볼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른 전생의 기억들이 그가 장소월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있었다. 그는 장소월이 자신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 하나로, 그녀의 사랑을 함부로 짓밟고 그녀의 모든 것을 무시해 버렸었다. 그녀가 혼자 외롭게 병들어 죽어간 그 순간에야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그녀가 죽어도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숨을 거둔 순간 그녀를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8년의 결혼 생활 동안, 그는 오직 자신의 목적만을 위해 한 번, 또 한 번 그녀에게 상처를 입혔다. 이제 그가 전생의 기억을 갖고 돌아왔다. 지금의 송시아를 포함해 과거 그녀의 등에 칼을 꽂은 놈들 모조리 그의 손으로 직접 제거할 생각이었다. “여기 들어오고 싶어 했던 거 아니었어? 목적을 달성했는데 기쁘지 않아?” 송시아의 주위엔 험악한 인상의 건달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전연우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녀였기에, 이어 그가 무슨 행동을 할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당신 애초부터 다 기억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동안 날 감쪽같이 속인 거고요? 난 당신한테 최선을 다했어요. 전연우 씨... 내 뱃속에 우리 아이가 있다는 거 잊으면 안 돼요.” “또 입만 열면 거짓말이군. 송시아... 전생에 쓰던 그 더러운 수법이 이번에도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전생... 그 단어가 전연우의 입에서 흘러나온 순간, 송시아의 낯빛이 순식간에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뒷걸음질 쳤다.“말도 안 돼. 당신까지 환생했을 리 없어.” 남자는
언제부터 문밖에 서 있었는지 모를 강용이 갑자기 나타나 시선을 내리깔고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장소월은 소현아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먼저 들어가서 밥 먹고 있어.” 소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어. 가서 그릇이랑 젓가락 갖춰놓을게.” 장소월이 문 앞까지 걸어 나가자 강용이 그녀의 팔목을 붙잡았다.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그건 너무 위험해. 강지훈이 세상 곳곳을 뒤져서 소현아의 행방을 찾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소현아에, 그 아이까지 계속 곁에 두는 건, 우리 위치를 드러내는 꼴밖에 안 돼. 너... 설마 다시 잡혀가고 싶은 건 아니지?” “그 외에 우리한테 다른 방법이 있을까? 나는 현아가 서울로 돌아가 강지훈에게 잡혀가는 걸 두고 볼 수 없어. 강지훈은 그 사람과... 똑같은 부류의 인간이거든! 절대 현아의 아이를 살려두지 않을 거야. 어쩌면 현아까지 목숨을 잃게 될 지도 몰라.” “강용, 강지훈이든 그 사람이든 모두 막강한 권력을 거머쥐고 있는 사람들이야. 그놈들 말 한마디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릴 수도 있어. 저항할 수 없으니, 도망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현아는 바보가 아니야, 그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아이일 뿐이지. 누군가 천천히 가르쳐 준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네가 현아 같은 상황에 처했다고 해도, 난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야.” 강용이 되물었다. “소현아 때문에 다시 잡혀가게 될까 봐 두렵지도 않아?” 장소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워.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두려운 건, 나 한 사람으로 인해 너희 모두 위험에 빠지는 거야. 강용... 나 정말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살고 싶어. 5년 전부터 계속 생각해 왔어, 내가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하지만 세상일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나 많아.”사실 그녀가 낙일 마을에 간 이유는 강영수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머리가 정말 정상은 아니네. 그렇게 심심하면 병원에나 가봐.” 강용은 그녀를 보기만 해도 짜증이 밀려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들어가고는 쾅 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소현아는 슬픈 눈으로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용, 왜 이 아이를 싫어하는 거야? 규영과 미경은 분명 네가 좋아할 거라고 했는데...” “규영과 미경도 내 좋은 친구 거든. 그 두 사람이 나를 속일 리는 없어.” “강용 너까지 이 아이를 원하지 않으면, 나도 필요 없어.” 그때 잠에서 깬 장소월이 아래층으로 내려오다 소현아의 목소리를 들었다. 실은 강용이 부엌으로 들어간 뒤부터 모두 똑똑히 들었었다. 장소월은 입술을 앙다물고 잠시 망설이다가 소현아에게 다가갔다. “현아야... 무슨 일이야?” 소현아는 장소월의 목소리를 듣고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소월아, 강용이 내 배 속에 있는 이 아이 싫대. 이제 나도 싫어. 지워버릴 거야.” 장소월은 미간을 찌푸리고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리 와, 우리 이야기 좀 하자.” 강용은 밖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장소월은 소현아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정원에 있는 그네에 앉았다. “현아야, 너 강용 좋아하지?” 그녀는 망설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리고 소월이 너도 좋아해.” 장소월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현아야, 좋아하는 마음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어. 나랑 너처럼 친구로서 좋아하는 감정도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이성으로서 사랑하는 감정도 있어. 그건 평생을 변함없이 함께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이야. 현아는 어때? 네 마음은 어느 쪽인 것 같아?” 소현아가 대답했다. “난 강용과 평생 함께 살고 싶어. 현아는 강용을 좋아하지만, 강용은 현아를 좋아하지 않아. 그리고 내 배 속에 있는 아이도 싫대. 현아는 너무 슬퍼.” 그녀의 배 속에 있는 아이는 틀림없이 강지훈의 핏줄이다. “그럼 강지훈은? 너 그 사람 좋아하는
소현아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간신히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참아냈다. 평소 까불까불 장난기 많고 히죽거리기만 하던 사람이 예고도 없이 돌연 사납게 돌변한 것이다. 그녀는 두려움에 황급히 방으로 달려가 침대에 웅크린 채 이불 속에 숨어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녀는 강용이 강지훈과 같은 사람일까 봐 덜컥 겁이 났다. 그녀가 눈물을 흘릴 때면, 강지훈은 더욱 심하게 그녀를 괴롭히곤 했었다. 강용은 예전 장소월의 발자취를 따라다니다 이곳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때문에 주변 환경에 꽤나 익숙했다. 그는 시장에 가서 신선한 닭, 오리, 생선, 고기 등을 사 왔다. 사막 근처라 물가가 다른 곳보다 훨씬 비쌌다. 특히 물은 가까운 곳에 오아시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가격이었다.강용은 민박집으로 돌아와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방음 시설이 좋지 않기 때문에 행여 위층에 잠들어 있는 장소월을 깨울까 염려되어 말이다. 집에 들어가 보니 또다시 소현아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는 소파에 웅크린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는데, 그를 보고 싶어 하면서도 감히 쳐다보지 못했다. 강용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그러자 소현아는 소파에서 내려와 조용히 그의 뒤를 따라가서는 입으로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며 속삭였다. 강용은 앞치마를 두르고 능숙한 솜씨로 야채를 씻고 다듬었다. 허리를 굽혀 찬장 아래에 있는 기름을 꺼내려다가 뒤에 있는 여자를 발견한 그가 말했다. “내가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말했을 텐데?” 소현아는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세 걸음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아. 내가 확실하게 세어봤어. 지금은 네 걸음이나 떨어져 있어.” 그 말에 강용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바보라는 말도 너한테는 과분하네.” 강용은 더 이상 그녀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장소월에게 줄 삼계탕을 요리하는 데에 집중했다.소현아는 줄곧 말없이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음식이 거의
세 사람은 근처 민박집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장소월은 불안한 마음에 문밖 가게 앞에 서 있는 소현아를 바라보며 말했다.“강용, 현아 좀 살펴봐 줘. 길을 잃으면 안 되니까.” 강용은 팔짱을 낀 채, 귀찮다는 듯 눈을 까뒤집으며 말했다. “정말 성가시단 말이야. 애초에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어.”장소월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됐어. 체크인 마치고 현아랑 같이 주변 좀 돌아봐. 나는 먼저 올라가서 쉴게.” “난 너만 신경 쓸 거야. 쟤는 내 알 바 아니야.” “강용, 여기 오기 전에 내가 너한테 했던 말 잊었어?” “소현아는 지금 임신한 상태라 옆에서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어. 이왕 데려오겠다고 결정했으면 혼자 내버려 두면 안 된다고도 했고. 하지만... 내가 하루 종일 쟤만 보고 있을 수는 없잖아.” 소현아가 꽃 세 송이를 들고 다가왔다. “소월아, 소월아... 이것 봐, 내가 방금 산 꽃이야. 예쁘지?” 장소월은 꽃을 받아들며 말했다. “예쁘네.” 소현아는 들뜬 얼굴로 강용의 손을 잡고 말했다. “강용, 나랑 같이 놀러 가자.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강용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나 바빠. 가고 싶지 않아. 너... 나한테서 멀리 떨어져.” 소현아는 입술을 삐죽이며 장소월에게 일렀다. “소월아, 소월아, 강용이 나한테 화냈어.” 장소월의 입꼬리가 위로 예쁘게 호선을 그렸다. “그만해, 애도 아니고. 강용, 잠깐 현아랑 놀아주고 있어. 난 너무 피곤해서 방에 가서 쉬어야겠어.” 말을 마친 장소월은 바로 몸을 돌려 발걸음을 뗐다. 강용은 불안한 얼굴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손에 들고 있던 꽃을 프런트에 올려놓고 말했다. “나도 가서 짐 풀어야겠어.” “강용, 나랑 같이 놀기로 했잖아.” 이곳은 총 3층 건물로, 1층은 거실, 2층은 방, 3층은 창고로 구성되어 있었다. 마침 방도 3개가 구비되어 있고, 빨래를 널 수 있는 베란다도 있어 세 사람이 살기엔 적당한
“누가 쫓아오면 막아요. 남원 별장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해요.” “네, 대표님...” 은경애는 눈치껏 바로 호칭을 바꾸었다. 아이를 안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분명 전연우가 확실한데,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한 낯선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으니 말이다. 은경애는 머리가 지끈거려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전연우는 방으로 돌아온 뒤, 늘 그랬던 것처럼 바로 금고가 있는 서재로 향했다. 금고를 열자 중요한 서류나 돈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금고 비밀번호도 단순하게 그녀의 생일 날짜였다. 그는 사진첩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밝게 웃고 있는 장소월의 모습을 아프게 바라보았다. 그녀를 잃은 고통은 정말이지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그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 다 내 잘못이야. 널 혼자 두는 게 아니었어.’‘내 아내, 소월아!’그때 별이가 전연우 옆으로 다가와 사진 속 여자를 보고는 옹알거리며 말했다. “엄마, 엄마...” 전연우는 한 손으로 아이를 안아 들었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우리 곁으로 데려올 테니까.” 그는 두 번의 삶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는 전생의 전연우이자, 또 현생의 전연우이다. 침실의 모든 것은 결혼식 날 그대로였다. 침대에 깔려있는 신혼 이불, 그리고 액자 안에 담긴 세 사람의 웨딩사진까지... 순백의 웨딩드레스 차림의 장소월은 그야말로 경국지색의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아이를 안고 있는 그 순간 미소는 짓지 않았지만, 그 눈동자에는 아이를 향한 애틋한 모성애가 가득 담겨 있었다. 과거 그는 너무나도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다시 되돌아갈 조금의 여지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자신의 목숨을 바쳐 속죄했다. 결혼식 날 호텔에서 장소월이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면, 그에게 목숨을 부지할 조금의 여지도 남겨두지 않았을 것이다. 전연우 역시 그녀가 마음이 약해지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 아이는 전연우가 손에 쥐고
강지훈은 지금처럼 사랑에 이성을 잃은 듯한 전연우보다는, 예전의 그가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권력을 손에 움켜쥐고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강자는 절대 감정 따위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여자 한 명 때문에 저토록 나약해진 모습이라니. 사람을 바다에 빠뜨려 죽게 하고도 눈 깜짝하지 않던 그 냉정함은 어디에 갔단 말인가. 반산 별장. 송시아는 미친 듯이 발광하며 집 안의 물건들을 집어 던지고 있었다. “빌어먹을, 기성은! 빌어먹을, 엄기준! 다 죽여버릴 거야! 모조리 다 죽여버릴 거라고! 감히 나한테 싸움을 걸어? 이까짓 글자 몇 줄로 날 묶어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다니!”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내가 알아보라고 한 건 어떻게 됐어? 민아는?” “부대표님, 아가씨와 신이랑 씨가 해외로 떠나신 후 잠시 동안은 추적 가능했지만, 지금은 연락이 끊긴 상태입니다. 현재 그곳 정세가 혼란스러워 저희 세력이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최대한 다른 인맥을 동원해 찾고 있습니다.” 송시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기성은, 넌 면북에 있을 때 죽었어야 했어. 빌어먹을 놈,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이미 한 번 죽여봤으니, 두 번 못할 것도 없지!” 송시아는 소민아만 장악하면 기성은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한 계획이었다. 그때, 도우미가 전화를 받고 뛰어와 송시아에게 말했다. “사모님, 대표님께서 남원 별장으로 가셨다고 합니다.”“뭐라고?” 짜증스러운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었다. 전연우가 그곳에 가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설마 기억이 다 돌아온 거야? 그... 그럴 리가 없어! 내가 먹인 약에 문제가 있을 리는 없는데.” “양이 부족했나 보네. 전연우, 내가 평소에 너한테 너무 잘해줬나 봐. 깨어나자마자 그 잡종을 찾아가게 만든 걸 보니.” “지금 장소월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아무도 몰라. 누가 먼저 찾는지 두고 보자고.” 그녀의 잔인함만 탓할 일은 아니다. 이 모든 것은
귀를 찢을 듯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미경은 비명을 지르며 허벅지를 붙잡았다. 강지훈이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감히 함부로 판단하고 행동한 벌이야. 이번엔 다리 하나를 분지르는 것으로 끝내지만, 다음번에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거야!” 미경은 두려움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주인님, 목숨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지훈은 옆에 있는 천효연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 아이... 키우고 싶어?” 그는 확실히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줄 후계자가 필요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마음이 너무나도 복잡했다. 특히 그 바보 같은 여자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전에 없던 미묘한 감정이 그의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그 어떤 여자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 말이다. 천효연은 교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요. 어차피 저는 아이를 가질 수 없으니까요.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지만, 한번 키워보죠 뭐.” 강지훈이 말했다. “그럼 소현아를 찾아 데려와. 아이를 출산하고 나면 본가로 돌려보낼 거야.” “네, 주인님.” ... 천하 일성 야간 업소. “당신 여자가 내 애완동물 데려갔어요. 이 빚 어떻게 갚을 거예요?” 전연우는 사진 속 여자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그 깊고 어두운 눈동자엔 이루 말할 수 없는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대가로 무기랑 정보 지원해줄게. 대신 찾으면 장소월은 털끝 하나 다치게 해선 안 돼. 무사히 이곳으로 돌아와 내 아내로 살게 할 거야.” 사랑에 눈먼 듯한 전연우의 모습에, 강지훈은 핏물처럼 검붉은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당신답지 않은 대답이네요. 오랜 시간 동안 옆에서 지켜봐 왔던 당신은 여자 한 명한테 이렇게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전연우는 사진 속 여인을 애처롭게 쓰다듬었다. 어쩐지 예전보다 더욱 야윈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눈은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난 이미 그 사람을 한 번 잃었어.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