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신이랑이 호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한곳을 가리켰다.“와. 진짜 부자시네요. 가요... 여기 한 달 월세 엄청 비싸지 않아요?”소민아는 그에게 끊임없이 말을 붙였다. 영화 한 편을 봤을 뿐인데 두 사람은 오래된 친구처럼 친해져 있었다. 소민아는 그가 말하기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별로 안 비싸요.”“피곤하면 매일 집에서 소설만 써요. 힘들게 인간관계를 신경 쓰지 말고요. 이랑 씨는 모를 거예요. 제 예전 회사 상사들이 얼마나 괴물 같았는지.”그의 시선이 지긋이 소민아에게로 향했다.“출근하는 게 행복하지 않으면 하지 말아요.”소민아는 피식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난 한 달에 몇억씩 손쉽게 버는 이랑 씨와 달라요. 출근 안 하면 누가 절 먹여 살리겠어요? 이제 더는 삼촌한테 신세 지고 싶지 않아요.”신이랑이 말했다.“나 돈 많아요. 내가 먹여 살려 줄게요.”그 말에 소민아는 하마터면 사레에 들릴 뻔했다. 돌연 불어온 바람이 그녀의 앞머리를 흐트러뜨렸다. 그녀는 희미한 조명 아래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그런 농담 안 웃기거든요.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절 먹여 살리겠대요!”“천천히 가까워져야죠. 처음부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신이랑은 잘못된 말을 내뱉은 아이처럼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한 고급 주택가에 들어서자 신이랑이 발걸음을 멈추었다.“도착했어요.”소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이 약 가지고 가요. 전 더는 안 따라갈게요.”“돈 줄게요.”신이랑이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려 하자 소민아는 그의 팔목을 잡았다.“됐어요. 얼마 안 돼요.”“곧 열 시네요. 저도 이만 집에 갈게요. 어서 들어가요.”신이랑은 뒤돌아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며 말했다.“잘 자요.”“이랑 씨도 잘 자요!”소민아는 그를 등진 채 팔을 흔들었다.소민아는 주택가를 떠나 택시를 잡으려 거리에 나왔다. 차가운 바람이 팔을 스치고 지나서야 아직 그의 장갑을 끼고 있다는 것을
차가 움직이자 소민아의 얼굴에 초조함이 깃들었다. 몸을 짓누르는 무형의 압력이 그녀로 하여금 숨이 막혀 말도 한마디 꺼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직하기 전이니 그녀는 아직 성세 그룹의 직원이다.소민아의 머릿속에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그를 흘겨보았던 오늘 낮 자신이 떠올랐다. 그는 정말 밴댕이 소갈딱지다. 누군가 듣기 싫은 말 한마디만 하면 줄곧 마음에 두고 괴롭힌다.설마... 복수하러 온 건 아니겠지.소민아는 이런 경직된 분위기 속의 고요함이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돌연 흘러나오는 박하 향기에 그녀는 잠시 긴장을 풀었다.창문 유리에 달린 디퓨저를 본 소민아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기 비서님도 이거 사셨네요! 저번에 제가 추천해준 건데 써보니까 어때요?”빨간색 신호등 앞에 차가 천천히 멈춰 섰다. 기성은은 손을 핸들에 올리고 전방을 주시하며 차갑게 말했다.“소피아 씨가 준비한 거예요. 요즘 함께 출장 가는 일이 많이 차에 토할까 봐 걱정된다면서.”“아, 네.”소민아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약간의 씁쓸함이 느껴졌다... 아무튼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이상한 감정이었다.차 안이 조용해지던 그때, 마침 그녀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익숙한 번호로부터 보내온 문자였다.[차 탔어요?]소민아가 살짝 도발했다.[밖에 나갈 때 핸드폰도 갖고 다니지 않는 사람이 문자도 다 보내네요!]신이랑은 그 말에 반응하지 않고 문자를 보냈다.[집에 도착하면 문자 보내요. 난 소설 올려야겠어요.][그래요. 최대한 많이 써서 저희 독자들의 기대감을 만족시켜주세요.]부드러운 조명 아래, 신이랑은 물컵을 들고 책상에 앉아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알겠어요.]그때 신이랑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의 엄마인 남지선이었다.“우리 아들! 선본 거 어떻게 됐어?”“좋았어요.”엄마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이놈 마음에 들었나 보네. 그럼 한번 잘 만나봐. 매일 집에 틀어박혀 소설에만 매달려있지 말고 같이 산책도 좀 하고. 민아 엄마랑 난 오랜
“디자인팀 팀장 연봉이 그 사람 한 달 수입에도 미치지 못한다니까요.”“그만!”기성은이 돌연 소리쳤다.소민아는 깜짝 놀라 입을 닫았다. 하지만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역시 그와는 세 마디 이상 주고받지 못한다.소민아는 어깨를 올렸다 내리고는 조용히 핸드폰을 만졌다.아파트 단지 입구에 도착하자 소민아는 갓 올라온 따끈따끈한 소설을 읽으며 만 원짜리 세 장을 꺼내 자리에 올려놓았다.“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어요. 택시비만큼 돈 드릴게요.”소민아는 핸드폰에 정신을 집중한 채 차에서 내렸다.“소민아 씨!”기성은이 핸들을 꽉 잡고서 소리쳤다.소민아가 몸을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네?”기성은이 창문을 내렸다.“내 여자친구 해요.”“?”소민아는 온몸이 경직되고 동공이 확장되었다. 그 한마디 말에 그녀는 호흡하는 방법조차 잊어버린 것 같았다. 밤하늘에서 빗방울 하나가 그녀의 콧등에 떨어져서야 천천히 조심스럽게 숨을 내쉬었다.기성은이 시선을 거두고 차갑게 말했다.“나 도착하려면 35분 정도 걸려요. 내가 목적지에 이르기 전에 민아 씨 대답을 들었으면 좋겠네요.”소민아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눈만 끔뻑거렸다. 빗줄기가 거세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복도에 뛰어 들어가 비를 피했다. 그녀는 힘껏 자신의 뺨을 두드렸다.“나 꿈꾸는 거 아니지?”소민아는 집에 돌아간 뒤 한동안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벽에 걸린 시계에서 흘러나오는 딸깍거리는 시곗바늘 소리에 최면이라도 걸릴 것 같아 좀처럼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얼마가 지났을까, 그녀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기성은의 문자였다.[생각해 봤어요?]소민아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심장이 너무 쿵쾅거려 가슴을 부여잡았다.“왜 이러지?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손이 부들부들 떨려. 죽을 것 같아.”“기성은이 나더러 여자친구가 되어달래. 이게 진짜라고?”“진짜라고?”소민아는 예전 그녀의 잘못으로 몇억이나 손해 볼 뻔했을 때도 이렇게까지 긴장되지는 않았다.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장소월, 31세, 암으로 사망.서울 강남병원, 소독수 냄새가 코를 찌른다.「연우야, 오늘 의사선생님이 투석한다고 주사를 놓아주셨는데 너무 아팠어.」「나 곧 죽어. 보러 와 줄 거지?」「제발, 연우야...」장소월이 힘겹게 머리를 돌려 전화기의 메시지 창을 보고 있다. 메시지를 몇 개나 보냈건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전연우는 여전히 답장이 없었다...그녀의 손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몸은 뼈만 남아 앙상했고 두 눈은 안쪽으로 푹 꺼져 있었다.사지는 이미 암 후유증으로 인해 썩어가고 있었다.몸을 까딱할 수 없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책임 간호사도 거의 보름 너머 와보지 않았다.원인: 더 이상 치료해도 의미 없음.그녀는 사실 엄살이 많았고 아픈 걸 끔찍이 무서워했다. 암 말기라 그녀는 매일 고통에 시달렸고 전연우에 대한 사랑만이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는 이유였다.하지만 이 넘쳐나던 사랑이 메말라가자 그녀에게 남은 건 뼈만 남은 몸뚱이였다.장소월은 전화기를 꺼버리고 조용히 죽기를 기다렸다.고통으로 그녀는 의식이 흐릿해졌다. 씁쓸하게 느껴졌다. 안 깐 힘을 다해 전연우와 결혼했고 8년간 그녀는 최선을 다해 좋은 아내가 되려 했다. 모든 걸 다 바쳐 그 사람 곁을 지켰는데 그녀가 얻은 건 무엇인가?사람들은 하나 둘 그녀의 곁을 떠났고 가난 외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그녀가 죽으면 제일 기뻐할 사람이 전연우다. 이제 그는 자유의 몸이다. 더 이상 징그러운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된다.전연우, 드디어 소원대로 송시아와 결혼할 수 있다.8개월 전.전연우의 생일날,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장소월은 소파에 앉아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다.테이블 위 그녀가 정성껏 차린 음식들도 이미 차갑게 식어갔다.기다리던 전연우는 오지 않고 비서가 이혼서류를 가져왔다. 비서가 싱겁게 입을 열었다.“사모님, 사장님도 별다른 방법이 없어요. 이렇게 큰 전 씨 집안 산업을 누군가는 물려받아야 되잖아요.”장
새벽 12시.장소월이 악몽에 놀라 벌떡 몸을 일으킨다. 이마엔 땀이 맺혀있다.순간 익숙한 소독제 냄새가 코끝에 스친다.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냄새다.장소월은 잠시 멍해졌다. 죽은 거 아니었나?왜 아직 살아있는 거지?‘탈칵’하는 소리와 함께 깜깜했던 병실이 밝아졌다. 눈부신 불빛에 그녀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악몽이라도 꾼 거야?”긴 다리로 침대 곁에 다가왔다. 큰 체구가 그녀의 왜소한 몸에 비친 빛을 막아주기엔 넉넉했다.“전...전연우?”장소월이 머리를 들어 뼈속까지 증오하는 그 남자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놀라움에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다가오지 마!”왜 또 이 악마의 곁으로 돌아온 걸까?그녀는 본능적으로 거부하며 뒤로 물러선다.장소월의 머리는 지금 복잡하기 그지없다. 전연우를 본 순간 크나큰 두려움과 절망이 몰려와 숨이 막혔다.전연우가 멈칫한다. 이내 가느다란 눈은 차가움으로 가득 찬다. 불쾌한 듯 그녀를 쳐다보았고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졌다.“의사 불러줄게.”남자의 차가운 저음이 칼처럼 위험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문이 쾅 하고 닫기고 나서야 장소월도 긴장이 풀렸다.남자가 떠난 후 방안에 떠돌던 강렬한 압박감도 사라졌다. 장소월은 황급히 이불을 걷어냈다. 순간 째질듯한 아픔이 손목에 전해졌다.손목을 보니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손목을 그은 건가?장소월은 아픔을 견디면서 다른 한 손으로 침대맡의 테이블에서 구식 전화기를 들어 달력을 찾아보았다.시간을 본 순간 장소월은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지금은 무려 2000년, 그녀가 18살 되던 그해였다.장소월은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그녀는 지금 입원 중이고 손목을 그어 전연우를 협박해 고백을 받아달라는 중인 것 같았다.전연우는 장소월이 10살 되던 해에 장해진이 밖에서 데려온 양자였다.장소월이 그를 사랑한다고 느끼게 된 건 그녀가 15살 되던 해 집에서 키우던 티베탄 마스티프가 갑자기 실성해 그녀한테 달려들어 물
장소월이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는 전연우에게 웃으면서 담담하게 말했다.“오빠, 미안해. 전에는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어! 내가 잘못했어. 그렇게 오빠를 궁지로 내몰면 안 되는 거였는데. 이제 깨달았어. 앞으로도 꼭 기억할게. 오빠는 오빠일 뿐이라고.”난리를 피우지도 떼를 쓰지도 않았다. 너무나도 평온한 나머지 아무런 생기 없는 인형 같았다.전연우의 어두운 눈동자가 빛나더니 얇은 입술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비웃음이었다. 그녀의 새로운 수작인 건가?전연우가 입을 열었다.“알았다니 다행이네. 밤새우지 말고 얼른 쉬어. 내일 데리러 올게.”그러고는 어른처럼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장소월은 피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고 수긍하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돌아선 전연우의 눈에 부드러움은 찾아볼 수 없었고 차가움만이 남아 있었다.병실에서 나온 전연우는 주머니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 장소월을 만졌던 손을 닦았다.엘리베이터 앞까지 걸어간 그는 옆에 놓인 쓰레기통에 손수건을 던졌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전연우가 지하 주차장으로 가는 버튼을 누른다.아우디 한 대가 라이트를 킨 채로 있다. 조수석에는 긴 파마머리를 한 여인이 앉아있다. 섹시한 옷차림에 손에는 담배가 들려있다. 야릇한 붉은 입술은 담배연기를 뿜어냈다.여자의 시선은 차에 타는 남자의 잘빠진 몸을 따라 움직였다.“잘 달래줬어?”전연우가 차에 올라 안전벨트를 했다. 그의 눈에 역겨움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여자의 손에 들린 담배를 뺏아 창밖으로 던졌다. 그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시는 내 차 안에서 담배 피우지 마.”여자가 매혹적으로 웃어 보이더니 다리를 꼬았다.“안 피면 어린 아가씨 향수 냄새를 어떻게 덮어.”아이라인을 그린 예쁜 눈이 차 안에 놓인 핑크색 향수병으로 향한다. 거기엔 글자가 쓰여있는 스티커도 붙여져 있었다: 장소월 전용 좌석.그녀가 살짝 웃어 보이더니 말한다.“18살밖에 안되는 여자애가 점유 욕은 굉장히 강하단 말이야. 왜? 장가에 데릴 사위로 들어갈 생
택시에 탄 지 한 시간쯤 지나 장가 별장 앞에 멈춰 섰다.장소월은 집으로 들어가 신발을 바꿔 신었다. 아줌마가 그 모습을 보더니 인츰 다가왔다.“아가씨, 왜 혼자에요? 연우 도련님이랑 같이 들어오시는 거 아니었어요?”아줌마는 아직 많이 젊었고 주름이 많지는 않았다.장소월은 대뜸 아줌마를 꼭 끌어안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녀를 친자식처럼 아껴준 사람은 아줌마뿐이었다.그러나 뒤에는 전연우가 강제로 전가에 남겨 그와 송시아를 모시게 했다.“아줌마, 너무 보고 싶었어.”“어... 저기... 아가씨, 왜 그래요? 혹시 아직 다 안 나으신 건가요?”아줌마가 장소월을 밀어내더니 걱정스레 손을 그녀의 이마에 갖다 댔다.괜찮은 거 같은데?아줌마는 오늘 장소월이 약간 이상해 보였지만 딱히 뭐라 표현할 수는 없었다.“아니 그냥 안아보고 싶었어.”“이제 막 들어왔는데 배 안 고파요? 죽 끓여놨는데 얼른 오세요.”“입맛 없어, 그냥 올라가서 좀 잘래. 점심때 다시 불러줘!”밤을 꼬박 새우고 차를 탔더니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다.“아 맞다, 아가씨, 아까 회장님 전화 오셨는데 집 들어오시면 다시 전화 달라고 했어요. 아가씨한테 하실 말씀이 있어 보였어요. 그리고 이건 회장님 출장 가시기 전에 아가씨께 전달하라고 하신 거예요.”장소월은 실버 쇼핑카드를 건네받고는 머리를 끄덕인다.“응”장해진이 전연우 대신 그녀에게 주는 보상인가?장해진이 무슨 말을 꺼낼지 장소월은 알고 있었고 담담하게 전화를 걸었다.장해진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는 확실히 좋은 아버지였다. 하지만 그것도 허울뿐이었다...그는 사실 좋은 아빠가 아니었다.그녀는 알고 있었다. 장해진이 늘 가업을 물려받을 아들을 갖고 싶어 했다는 것을. 하여 많은 애인을 두고 있었지만 그중 누구도 아들이나 딸을 낳지는 못했다.그래서 결국 전연우를 입양한 거다.나날이 커가고 있는 딸은 장해진에게 정략결혼의 도구일 뿐이었다.이익을 위해서라면 장해진은 수단을 가리지 않았고 자신의
장소월은 저녁을 먹고 일찍 잠에 들었다. 자기 전 그녀는 따듯한 우유 한 잔을 마시곤 했는데 오랫동안 고치지 못한 습관이었다.얇은 커튼 밖 어둠은 유난히 짙었다. 한줄기 라이트가 창문으로 비쳐들었다.타이어가 땅에 마찰되면서 나는 소리가 시끄럽게 귀청을 때렸다.전연우의 아우디 A6은 장해진이 회사에서 그에게 상으로 준 새 차였다.차에서 내려 현관으로 들어왔고 손에 든 차 키를 내려놓았다.날카로운 눈빛으로 한번 훑었지만 익숙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전에는 항상 가냘픈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 무미건조한 드라마를 보는 누군가가 있었건만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테이블도 평소처럼 간식이 널브러져 있지 않고 깨끗했다.전연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아줌마가 주방에서 나왔다.“연우 도련님, 저녁 식사하셨나요?”“소월이는?”전연우가 묻는다.“아가씨는 몸이 불편하시다면서 일찍 잠에 드셨어요.”“올라가서 한번 볼게.”전연우가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어려있었다. 계단을 세 개쯤 올라가더니 발걸음을 멈추고는 말했다.“내일 점심에 윤이 돌아오니까 윤이 좋아하는 음식 몇 개 더 하고.”“네, 알겠습니다, 연우 도련님.”아줌마가 답한다.3층에 도착한 전연우, 손잡이를 돌렸지만 전처럼 열리지 않았다.안에서 잠군 것이다.전연우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와 장소월의 방은 모두 3층에 있었고 장해진의 방은 2층이었다. 2층은 평소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고 4층은 윤이가 단독으로 쓰고 있었다.예전 같았으면 그는 장소월의 방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고 안에서 잠근 적은 없었다.하지만 이번만큼은 그의 예상을 벗어났다. 장소월이 진짜 그에게서 마음을 거둔 것일까?전연우는 문을 두드렸다.“소월아, 자?”악마의 노크 소리에 정소월은 이불 속에 몸을 감추고 귀를 틀어막았다. 대꾸하기가 싫었다.사실 아까 전연우가 차를 끌고 돌아올 때부터 그녀는 소리를 듣고 깨어있었다.전연우는 밖에 집을 하나 샀다. 방 2개에 거실 2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