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심지안은 숨 막히는 느낌에 주관민을 밀어내려고 했다.“지안 씨, 저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데 좀 도와주면 안 돼요? 나가면 지안 씨랑 결혼할게요.”“안 돼요, 저 건드리지 마요. 주관민 씨, 정신 차려요!”심지안은 갑자기 높은 소리로 소리쳤다.“지안 씨가 이렇게 예쁘니 손을 대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좀 도와줘요!”“전 주관민 씨를 좋아하지 않아요! 저 다시 건드리면 반드시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짝!”심지안은 뺨을 한 대 호되게 얻어맞았고, 그녀의 얼굴은 이내 붉게 부어오르며, 다섯 개의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나타났다.주관민은 심지안의 옷을 힘껏 찢으며, 얼굴은 흥분으로 인해 일그러졌다.“괜찮아요, 일단 자고 나면 저 말고는 아무도 지안 씨를 원하지 않을 거예요.”육체와 정신상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심지안은 괴로움을 참으며 목구멍으로부터 올라오는 피비린내를 필사적으로 삼켰다.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자기 몸에 걸친 옷들이 하나하나 줄어드는 것을 지켜보며 마치 삶의 희망을 잃은 듯 진흙탕에 누워 더 이상 발버둥 치려고 하지 않았다.천장을 바라보던 심지안은 끝내 참지 못하고 절망적인 눈물을 흘렸다.하지만 아직 젊은 나이에 남은 인생에 못 해본 것도 많은지라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정말... 내키지가 않았다!심지안은 분초를 세며 주관민이 다시 덤벼들려고 할 때쯤 그의 소중한 부위를 냅다 걷어찼다.“악!”심지안은 그가 아파하는 틈을 타서 괴로운 몸을 지탱하며 도망가려 했지만, 침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머리카락을 주관민에게 쥐여 잡혔다.“도망가고 싶어요? 꿈도 꾸지 마요.”주관민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심지안을 침대 위로 내동댕이쳤다.“지안 씨가 예전의 학교에선 도도한 여신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심씨 가문에서 쫓겨난 지금 반항할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해요?”심지안은 오장육부가 튀어나올 듯한 고통에 말할 힘을 잃었고, 온몸을 웅크리며 괴로워 죽을 것만 같았다.그녀가 더 이상 반항하지 않는 모습을
진현수는 차갑게 웃으며 녹화된 영상을 재생하여 보여주었다.“네 여자친구가 무슨 좋은 일을 했는지 좀 봐봐!”휴대전화를 들고 동영상을 보던 강우석은 긴장한 듯 침을 삼켰다.“외삼촌, 제 말 좀 들어봐요, 전 이 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어요, 우리 착한 연아도 이런 일을 할 리가 없는데, 여긴 분명 오해가 있는 거예요!”“사실이 눈앞에 있는데도 헛소리하는 거야? 눈이 멀었구나?”“정말 연아가 했다고 해도 심지안이 먼저 연아를 건드린 게 틀림없어요! 외삼촌은 심지안을 모르니, 그녀의 성격에 대해서도 잘 모를 거예요. 정말 복수심이 강하고 말솜씨가 대단한 여자예요, 어쩌면 연아는 그저 사람을 불러 심지안을 겁주려는 것일 수도 있어요.”‘영상에선 마당의 장면만 보이는데, 심지안이 방에 들어간 후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누가 알겠어? 돈이 좋아 재벌과 가깝게 지내는 여자이니 주관민과 즐겁게 보낼지도 모르는 일이지. 게다가, 주관민은 연설아가 방에 밀어 넣은 건데, 연아랑 무슨 관계가 있겠어?’ 진현수는 자신의 미련한 조카를 보며 기가 차서 웃었다.“지안 씨는 뭐가 좋다고 너 같은 멍청이랑 사귄 거야?”강우석은 진현수의 말에서 뭔가를 눈치챈 듯 했다.“외삼촌은 심지안이랑 아는 사이에요?”“알다마다! 그뿐 아니라 나중에 네 숙모가 될 수도 있으니 빨리 심연아와 헤어져! 헤어지지 않으면 강 씨 집 자산은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을 거야.”진현수는 분노를 억누르며 경고했다. 그는 강 씨 회사 지분의 3분의 1은 차지하고 있어 그의 누나와 형부도 그의 말이라면 존중해 주는 편이었다.제일 중요한 것은 심연아와 같이 악한 여자를 강 씨 집에 들이는 건 안 된다는 것이었다.“그때 외삼촌이 말한 그 여자가 심지안인 거예요?”“응, 왜?”“외삼촌! 그녀의 겉모습에 속으면 안 돼요! 그 여자는 외삼촌에게 어울리지 않는단 말이에요!”“이 말은 내가 너에게 하고 싶어! 심연아가 자기 여동생에게도 이렇게 잔인하게 굴 수 있다면, 네가 언젠가 그녀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심연아는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못 알아듣는 척했다.“우리 회사는 반드시 흥신 그룹에 최대의 이익을 가져다줄 거예요.”“내 말이 그런 뜻 아닌 거 알잖아.”주원재는 인내심이 사라져 손을 뻗어 그녀를 자신의 품속으로 끌어당겼다.심연아는 처음에 거절하려다가 주원재가 내일 그녀를 그의 아버지한테 소개해 프로젝트 협력에 대해 상담하게 해주겠다고 하자 부끄러운 듯 팔로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말했다.“약속한 거예요? 내일 절 소개해 준다고요.”주원재는 거침없이 대답하고는 그녀를 소파에 눕혔다.일을 끝낸 주원재는 술집에 놀러 갔고 심연아는 불쾌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수습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강우석은 밖을 한 바퀴 돌았지만, 심연아의 종적을 찾지 못하고 다시 심 씨네 집으로 돌아와 애타게 심연아를 기다렸다.그러다 집에 들어서는 심연아를 보고는 달려가 그녀를 꼭 껴안고, 서둘러 심지안의 보복이 두려워 밖으로 숨어버린 게 아니냐고 물었다.심연아는 그 마당에 카메라가 있을 줄 몰랐고, 진현수가 쫓아갈 줄은 더더욱 몰라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몇 초 동안 표정이 굳어있다가 이내 강우석의 품에 안기며 눈물을 흘렸다.“그래, 맞아, 난 그저 지안이를 좀 혼내려고 한 것뿐이지 다른 생각은 없었어. 설아와 주관민은 우연히 만난 거고, 설아는 주관민이 술에 취한 것을 본 김에 데려가서 쉬게 한 거야. 나 믿어, 난 절대 지안이를 해치는 일을 안 해. 난 그저 우리 가족이 함께 모이기를 바라서 몇 마디 말한 것뿐이야...”“응, 너 믿어, 지안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어! 그러니 널 탓하지 않아.”심연아를 부드럽게 달래던 강우석은 심연아의 섹시한 옷에 눈길을 멈추었다.그러자 심연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애교를 부렸다.“오전에 설아와 함께 옷 사러 갔는데, 설아가 이 옷이 예쁘다고 해서 샀어. 입지 말라고 하면 앞으로 안 입을게.”“그럴 리가, 이렇게 입으니 정말 예쁜데.”심연아의 옷 취향은 언제나 부드럽고 단정한 스타일이었는데, 이렇게 섹시한 치마는
“모함당한 줄도 모르는 바보 같은 여인의 시체 수거하러 온 거에요.”“제가 지금 이렇게 아픈데 좀 좋은 말로 위로해 주면 어디가 덧나요?”주눅이 든 여자를 보며 성연신은 침대 옆 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상체를 앞으로 숙이더니 큰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 위에 얹고는 원이를 만지듯 어루만졌다.“위로는 못 하겠어요, 하지만 구해줄 수는 있어요!”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치자, 심지안은 왠지 그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되었다.진정한 사나이는 말을 적게 하고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행동파여야 한다!순간 심지안은 감동이 복받쳐 올라 정중하게 인사했다.“고마워요.”“지안 씨 일이나 빨리 해결해요, 저 귀찮게 하지 않는 게 제일 고마운 일이에요.”여러 번이나 속임수에 넘어가 다쳤으니, 그녀의 몸은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울 것이다.그러나 이 말을 들은 심지안은 성연신이 그녀를 귀찮아하는 것이 아니면 이미 무슨 소식을 듣고 그녀와 강우석의 관계를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맞아,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닌 그저 계약 관계일 뿐이야. 나한테 관심 줄 필요가 있겠어?’심지안은 입술을 깨물더니 크지 않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알겠어요.”심 씨네는 그녀를 사람으로도 여기지 않고 어머니가 남겨준 혼수품까지 빼앗아 버렸으니, 그녀도 마음이 약해질 필요가 없는 것이고, 성연신한테는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운명에 맡기는 것이다.이때 성연신은 시간을 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간병인을 구할까요, 아니면 친구를 부르겠어요?”“친구를 부를게요.”화장실에 가는 것과 같은 사적인 일은 낯선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이 매우 어색했다.“좋습니다.”“참, 아시는 변호사가 있으세요? 소송하려고요.”심지안이 막 나가려는 성연신을 불렀다.“정 비서보고 연락처를 보내라고 할게요.”발걸음을 멈춘 성연신이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네, 고마워요!”성연신이 떠난 뒤 심지안은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링거액이 떨어지는 것을 멍하니 쳐다보며 생각에
“별일 아니예요... 오늘 무슨 일정인지 여쭤보고 싶어서요, 제가 밥을 사고 싶은데...”“오늘은 안 돼요.”심지안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고, 이미 예상했던 대답이지만 다시 물었다.“혹시 무슨 볼일이라도...?”“할아버지를 모시고 재검사하러 가야 할 것 같아요.”“할아버지께서 편찮으세요?”“심장이 안 좋아 정기적으로 재검사를 받아야 해요. 뭐 별거 아니에요.”“그럼... 저는 퇴원하고 나서 할아버지를 뵈러 갈게요, 2주 동안이나 어르신을 뵈러 가지 않았어요.”약혼식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에 비하면 어르신들의 건강이 더욱 중요하니 성연신이 어르신과 함께 재검사를 가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성연신은 눈꺼풀을 치켜올리며 웃었다.“할아버지께서 괜히 아끼신 게 아니네요.”“당연한 거죠, 할아버지께서 저를 얼마나 아끼셨는데요.”심지안이 머리를 무겁게 끄덕였다.성수광이 그녀에게 잘해줬다는 것을 그녀는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고, 동시에 그녀도 친근하고, 성격이 좋으며, 배경 없는 자신을 많이 보살펴준 어르신을 매우 좋아했다.갑자기 고개를 든 성연신은 그녀의 얼굴을 위아래도 훑어보다가 눈썹을 치켜올렸다.“속에 묻어 둔 말을 아직 안 한 것 같은데...”물어보는 말이 아니라 확신하는 말이었다.원래 마음이 불안하던 심지안은 지금 질문을 받고는 눈길을 피하면서 감히 그를 쳐다보지 못하고 연신 손을 흔들었다.“감추지 말고 어서 말해봐요. 난 인내심이 없어요!”“저...”성연신은 커다란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고는 그녀가 강제로 자신을 마주 보게 하고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명령했다.“말해봐요.”그의 손은 매우 커서 한 손으로도 심지안의 얼굴 전체를 감쌀 수 있었고, 이렇게 두 손으로 감싸니 둘 사이가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만 같았다.이 순간, 심지안의 코끝은 은은한 비누 향기로 둘러싸였고, 그의 손바닥의 온기를 느끼며, 마음속에서는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귀신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 그녀는 뜬금없이 물었다.“만약 내가
진유진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서백호를 쳐다보다가, 다시 그 옆에 있는 롤스로이스를 쳐다보더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어색함을 애써 감추며 말했다.“너에게 꽤 잘해주는 것 같네. 사람을 보내 널 데리러 오기도 하고 말이야. ”심지안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가끔 이래.”그녀는 정말 성연신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진유진은 엄숙한 표정으로 심지안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의미심장하게 말을 이었다.“충분히 가능성이 있으니 더 노력해 봐.”“말도 마. 저번에 네 말대로 했다가 쫓겨날 뻔했어!”심지안은 빨개진 얼굴로 단둘이 들을 수 있는 정도의 목소리로 진유진에게 속삭였다.“아무것도 안 입은 내 몸을 보고도 저 남자는 아무 반응도 없었어. 분명 많이 놀아봤거나 발기부전이야.”그 어떤 상황이든 그녀에게는 속수무책이었다.하지만 진유진은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그 어떤 달콤한 말보다도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며 강우석의 외삼촌은 심지안에 대해 좋아하는 정도는 아닐지 몰라도 호감은 있으리라 생각했다.서백호는 그녀들을 중정원까지 데려다주고는 차를 몰고 떠나갔다.심지안이 집에 들어서자, 원이가 달려들어 애교를 부리며 며칠 동안의 그녀에 대한 그리움을 온몸으로 표현했다.그녀는 원이를 쓰다듬다가 위층으로 올라가서 메모리카드와 인쇄된 사진을 넣어 놓았다.심지안은 돌아서서 화장대 앞으로 다가가 립스틱을 세워놓은 곳에서 얼굴색이 좋아 보이는 짙은 빨간색을 골라 발랐다.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안색이 한층 좋아진 모습을 바라보다 갑자기 위화감이 들어 립스틱을 내려놓고는 티슈로 갓 바른 립스틱을 닦아냈다.점심은 매우 더웠다.심지안은 택시를 타고 곧장 안텐 호텔로 갔다.심연아는 단정한 베이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흰색 정장 차림의 강우석과 나란히 로비에 서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심지안이 온 것을 본 강우석의 얼굴빛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여긴 뭐 하러 왔어?”심지안은 휴대전화를 든 손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반쯤 열린 비단 상자 안에는 상등의 옥으로 만들어진 백옥 반지가 들어 있었는데, 심지안의 어머니가 생전에 친정에서 가져온 물건이었다.심지안은 심연아의 행동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으며 그저 아무 말 없이 웃었다.고작 이런 물건으로 그녀를 보내려 하다니, 참으로 웃길 일이었다.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녀는 너무 어려서 구체적으로 얼마의 혼수를 남겼는지 기억나지 않았고, 또 그녀에게 준 그 계약서에도 쓰여 있지 않았다. 그녀는 줄곧 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어린 나이에 그런 것들을 알 리가 없었고, 지금에 와서야 겨우 하나둘씩 알게 되었지만, 이미 혼수를 다 빼앗겨 버렸다.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심연아가 준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아직도 만족하지 못해?”심연아는 입을 삐죽거리며 심지안이 혐오스러워 났다. 심지안이야말로 욕심이 끝없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때 심지안은 의아한 표정으로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말했다.“내가 왜 만족해야 하는데? 이것들은 원래 모두 내 것이잖아. 난 다 돌려받아야겠어. 손가락 하나도 건드릴 생각 하지 마.”“너 이게 무슨 뜻이야? 우리 집에서 힘들게 널 지금까지 키웠어... 엄마는 널 하나부터 열까지 돌봐주셨고, 아빠도 널 먹여 살렸어, 넌 어떻게 감사함을 몰라?”“감사드리는 거랑 도둑질은 별개의 일이야.”심연아는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눈시울을 붉히며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하지만 상대하기조차 귀찮은 심지안은 심연아가 들고 있는 비단 상자를 힘껏 빼앗고는 일어나 떠나가려고 하였다.심연아는 협상에 실패하자 손을 뻗어 다시 빼앗아 오려고 하다가, 계속 옆을 주시하고 있던 강우석과 눈이 마주치자 내민 손의 방향을 바꿔 탁자 위의 종이를 한 장 뽑아 눈가의 눈물을 닦았다.강우석은 눈물을 닦고 있는 심연아를 보고는 얼른 달려가 심지안을 가로막으며 엄숙하게 말했다.“연아에게 사과해.”심지안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난 잘못한 것 없어.”“연아의 물건을 빼앗고서 잘못한 게
심지안은 강우석의 다급해진 얼굴을 쳐다보며 말 못 할 큰 상쾌함이 밀려왔다.그녀는 급히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이마의 잔머리를 귓가에 쓸어 넘기며 웃으며 말했다.“다 알았네?”과연 그녀의 추측이 맞았다. 성연신이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날 그녀를 천 리 밖에서까지 구하려 했을 때 분명 그녀와 강우석의 관계를 알게 된 것이다. 심지안은 마음이 간질간질하며 무슨 느낌인지는 정확히 형용할 수 없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결과가 너무 좋았다.“심지안! 너 정말 뻔뻔하구나?”강우석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가슴이 아파 났고,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목소리가 커지자, 주변 하객들이 이상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심지안은 흰토끼처럼 순진한 표정을 지었다.많은 사람은 상황을 잘 알지 못했고, 그중 누군가가 그녀를 알아보고 말했다.“어머, 심씨 집안의 막내딸인가 보네요...”“심씨 집안에 아이가 둘이나 있었어요? 줄곧 심연아만 있는 줄 알았어요.”“심연아보다 훨씬 예쁘고 분위기 있어 보이는군... ”이렇게 말하자 모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오늘 심연아는 오랜 시간을 들여 정교한 화장을 하여 꽤 아름다웠지만 맨얼굴에 청순한 미모의 심지안과 비교하면 무기력했다.화장을 한 심연아와 안 한 심지안의 상태는 서로 비교할 수가 없었다.마침 이 말을 들은 심연아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애써 괴로움을 감추며 하객들을 헤치고 들어가 강우석의 손을 잡았다.“그만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고 있잖아.”“심지안이 우리 몰래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강우석은 이를 갈며 심지안을 가리켰고 심연아는 그가 이렇게 분노하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해 났다. 하지만 입을 열어 상황을 묻기도 전에 심전웅이 와서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이 많은 사람 앞에서 무슨 짓들이야? ”엊그제 일어난 일 때문에 심지안은 그를 보고 싶지도 않았고 혼수를 되찾으면 더 이상 심씨 집안과 연락하지 않을 예정이었다.이성을
흥분을 가라앉힌 후, 심지안은 자신이 5년 전 해외에서 살았던 작은 별장과 흡사한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외부 경관이 달라 의아해하며 말했다.“5년 전과 똑같은 별장을 지었어요?”고청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다가 기침을 몇 번 하며 대답했다.“맞아요. 거의 차이가 없죠?”심지안은 방 안의 모든 물건을 둘러보며 고청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부드러워졌고, 마치 그를 가족으로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어떻게 하지원을 설득했어요?”그녀는 고청민이 하지원을 이용하여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못했다.“한마디 했더니 바로 승낙했어요.”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하지원은 이처럼 온 마음을 다해 고청민을 따랐다.심지안은 복잡한 마음으로 물었다.“하지원 씨에게 미안하지 않아요?”고청민은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보상해 줄 거예요.”‘보상? 어떻게 보상할 건데? 여자의 청춘을 어떻게 보상할 건데...’심지안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하지원에게는 그저 사랑이었으니까...“밤새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고프죠? 지안 씨가 좋아하는 비빔면을 준비해 뒀어요. 게살 비빔면이요.”고청민은 웃으며 심지안에게 말했다.“지안 씨가 분명 좋아할 거예요.”심지안은 배가 고파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탁에 다가가기 전, 그녀는 게살 비빔면의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고청민은 게살 비빔면을 그녀 앞에 놓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먹어요. 제철 대게는 정말 맛있거든요.”심지안은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맛있었다. 커다란 게살이 면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미를 더했다.고청민의 뜨거운 시선에 심지안은 불편해하며 말했다.“청민 씨도 먹어요. 나만 보지 말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들어 면을 집어 먹으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침이 그를 멈추게 했다.연달아 몇 번의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점차 그의 가냘프고 쇠약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침이 점점 심해지자 그
집에 돌아온 후, 성연신은 성우주를 재우고 나서 긴급한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이미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성연신은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어 고청민의 상황을 물어볼까 했지만, 숙면을 방해할까 봐 포기했다.다음 날 아침, 성연신은 일찍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었다. 그는 심지안이 오늘 세움의 신제품 출시 준비로 일찍 출근할 거로 생각하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려 했다.이때 손이 미끄러져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주어 보니 액정이 나가 있었다.갑작스러운 실수에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깨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불안감이 스며들었다.성연신은 다른 휴대폰으로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부재중으로 받지 않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성씨 가문으로 출발했다.성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 성동철은 막 깨어나서 정원에서 산책 중이었다.성연신으로부터 두 사람이 지난밤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직전에 했던 말이 떠올라 이마를 찡그렸다.‘그 녀석이 설마...’성연신은 성동철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물었다.“어르신, 혹시 지안 씨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어디죠?”“해외에 있을 가능성이 크네.”성연신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말씀입니까?”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전에 했던 특별한 부탁을 성연신에게 말해주고, 동시에 고청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신은 주먹을 꽉 쥐고 심지안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지안 씨, 어디에 있어요?”“성연신 대표님, 접니다.”고청민의 평온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성연신의 신경을 자극했다.성연신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이 자식아, 지안 씨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우리는 해외에 있어요.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고청민은 계속해서 말했다.“지안 씨를 며칠만 빌리는 셈이에요. 너무 무리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 흥분하지 마세요
“네. 할아버지, 그러니 제발 막지 말아 주세요.”“지금 나와 상의하는 게 아니라 통보하는 거구나!”“할아버지, 용서해 주세요.”성동철은 입을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순간에 십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고, 무력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한참 후에야 그는 천천히 말했다.“해외 전문가와 이미 연락을 취했으니, 너는 안심하고 치료에 전념해라.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청민은 그의 고집을 읽고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갑자기 젖어 들었다.사실, 그도 할아버지와 몇 년 더 함께하고 싶었다.집에 돌아오니, 성동철이 연락한 해외 전문가로부터 답변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신의라 불리는 의사가 이미 고청민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들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청민은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성동철을 안심시키며 주제를 돌렸다.“할아버지, 해외로 며칠 다녀오고 싶어요. 오랫동안 여행을 못 갔어요.”“안 돼. 네 몸 상태로는 그렇게 멀리 갈 수 없어!”성동철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아직 민채린의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고청민은 말했다.“민채린이 해외에 있어요. 그녀가 옆에 있으면 할아버지도 안심하실 거예요.”“민채린?”성동철의 얼굴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그렇다면 민채린의 스승에게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거니?”“제 병에 대해 이미 채린이의 스승님께 여쭤봤어요.”“결과는 어땠니?”“스승님께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알려 주셨어요. 하지만 정말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래요.”성동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을 느꼈다.결국,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래. 가고 싶다면 가도 좋아.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것이 네 몸에도 좋을 거다.”게다가 민채린이 옆에 있으니, 문제가 생기더라도 신속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오늘 바로 떠나려고 해요.”“이렇게 갑자기?”“그냥 즉흥적으로 생각한 거예요. 가고 싶을 때 가야죠.”고청민은 말하며 눈치를 보지 않았다
30분 후, 성동철과 고청민이 병실에서 나왔다. 성동철은 걱정스럽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의사가 병원에 며칠 더 있으라 했잖니? 왜 말을 안 들어? 적어도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아. 치료 시간을 늦출 수도 있다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햇살처럼 부드러워 보였다.“괜찮아요. 집에 있는 의료 장비로도 충분해요.”성동철은 한숨을 쉬며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집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집에 있으면 이 녀석을 더 볼 수 있잖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고...’성동철은 운전기사에게 차를 병원 앞에 대라고 지시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병원 입구의 벤치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해했다.“지안이 여기 앉아 있지 않았니? 어디 갔지?”고청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고운 속눈썹은 한껏 아래로 드리워 있었다. 눈에 감춰진 복잡한 감정이 보이지 않게 덮여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지원이도 보이지 않네. 네가 전화를 걸어 연락해 봐.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성동철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청민에게 말하며,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부재중이었다.고청민은 하지원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바로 말했다.“지원이 오빠가 찾으러 왔어요. 아마도 지안 씨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 것 같아요. 저희 먼저 집에 가죠.”성동철은 방금 의사가 자신에게 따로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빨리 집에 가서 외국의 의료 전문가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 우리라도 먼저 가자.”‘성연신이 지안이를 데려갔을 수도 있어. 어쨌든 지안이는 다 큰 어른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넓은 승용차 안에서, 고청민이 갑자기 성동철에게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죽으면 제 심장을 지원이에게 주세요.”어차피 죽으면 남겨둘 이유가 없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일 것이다.성동철은 얼굴빛이 변하며 호통쳤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심지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하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모든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니야.”심지안은 사랑의 위대함에 감탄했지만, 그런 희생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냐하면 난 인간미가 있고, 지안 씨는 없으니까요. 임시연이 당신 앞에서 죽었을 때, 살아있던 한 생명이 죽었는데도 지안 씨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관심했잖아요.”심지안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지금까지의 무심한 태도를 거두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지원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맞아요. 임시연은 내 아이를 훔치고, 내 남자를 빼앗고, 내 결혼을 망쳤어요. 게다가 여러 번 나를 죽이려고 했었죠. 이번에 죽은 사람이 임시연이 아니었다면, 다음번에 죽을 사람은 나일 수도 있어요. 지금 임시연이 죽어서 폭죽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니까, 자기 일 아니라고 그런 쉬운 소리 하지 마세요!”처음에는 임시연의 죽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곧 심지안은 깨달았다. 임시연의 죽음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녀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임시연은 살아서 더 많은 사람을 해치려 했기에 어쩌면 이렇게 죽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고, 잠시 말을 잃었다.“지원 씨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에요. 날 냉정하다고 생각해도 좋아요.”심지안은 하지원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하지원도 불쌍한 사람일 뿐이었다. 심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로 들어가려 했다. 한 발을 내딛자, 하지원이 다시 말을 걸었다.“정말로 청민 선배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거예요? 사람 하나 구한다고 생각해 줘요... 평생 고마워할게요.”심지안은 잠시 멈칫했지만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그건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도덕적 강요에요.”심지안은 친구로
성동철은 깜짝 놀라 지팡이도 잊은 채 급히 움직였다. 카펫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휘청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집사는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남은 하인들은 손님들을 휴식 공간으로 안내했다. 연회 내내 활기찼던 분위기가 갑자기 혼란스럽고 긴장된 분위기로 바뀌었다.심지안은 찡그린 얼굴로 성동철의 뒤를 따라 고청민의 방으로 들어갔다.커튼은 빛 한 줄기도 들어오지 못하게 꽉 닫혀 있었지만, 문을 열자 짙은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하인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전원 스위치를 켜자, 방 안은 갑자기 밝아졌다.우드톤 가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옷들도 정리되어 소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심지안은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고청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심지안은 약간 열려 있는 화장실 문을 바라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이때, 하지원이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안에 있어요.”성동철은 떨리는 손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바닥에는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고청민은 욕조 안에 누워 있었다. 옷은 물에 젖어 축축하게 몸에 붙어 있었고, 두 손은 욕조 가장자리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어 원래 창백한 피부가 더욱 하얗게 보였다.고청민은 말라비틀어진 채 생기가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성동철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손가락을 고청민의 코 밑에 대어 보았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며 하인들에게 소리쳤다.“구급차가 일찍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빨리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데리고 가!”하인들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고청민을 욕조에서 꺼냈다.심지안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겁에 질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녀는 혼이 나간 하지원을 바라보았다.“청민 씨...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왜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 건가요?”이 상황이 마치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았지만, 하지원은 그 말을 입 밖에
심지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말 좀 해봐요. 정말 시연 씨가 죽길 바란 거예요? 시연 씨가 죽으면 속 시원할 것 같았냐고요!”변석환은 심지안에게 소리쳤다. 울부짖는 변석환의 두 눈은 심하게 충혈되어 무섭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큰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변요석과 성연신이 먼저 달려왔다. 성연신은 심지안을 보호하며 변석환을 몇 걸음 뒤로 밀어냈다. 성연신의 행동은 냉담하면서도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지안 씨 앞에서 임시연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마. 다시 한번 실수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하하하! 살인범을 감싸고 도는 건가요?”변석환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맞아요. 시연 씨의 죽음에는 당신과 심지안 씨도 책임이 있어요.”“퍽!”변요석은 변석환의 얼굴을 한 대 때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정신 차려. 임시연은 원래 죽어 마땅한 여자야! 더 이상 나를 창피하게 만들지 마!”변석환은 변요석을 바라보며, 맞은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중얼거렸다.“원래 죽어야 했고... 맞아... 나를 속이고 이용했어... 죽어 마땅한 여자야...”하지만 변석환은 스스로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임시연이 죄를 지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변석환은 여전히 너무나도 힘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를 미워하면서도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변요석은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의식하며 분노를 억누르고 변석환에게 경고했다.“지금 당장 성씨 가문을 떠나. 네가 정신 차리고 지안 씨에게 사과할 준비가 되면... 그때 돌아와.”변석환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비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사람들 사이로 문득 익숙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변석환은 그 그림자를 쫓아갔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변석환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고, 그제야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임시
자책하는 심지안을 보는 성연신은 가슴이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연히 아니죠. 임시연의 죽음은 지안 씨와 아무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혼자 그런 생각 하지 마요.”심지안도, 성연신도, 그 누구도 임시연이 거기서 뛰어내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임시연이 심지안 앞에서 그리고 성원 그룹에서 죽은 건 심지안과 성연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제가 잘못되어 죽는다 해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하진 않을 테니까 그걸 노리고 뛰어내렸던 것 같다.성연신도 놀라긴 했지만 직접 본 게 아니니 그리 큰 충격은 받지 않았는데 문제는 심지안이었다.물론 임시연도 죽을 줄은 모르고 뛰어내렸겠지. 그냥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감옥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뛰어내린 걸 텐데 이렇게 죽어버려서 심지안만 힘들어하고 있었다.심지안은 공허한 눈으로 성연신을 보며 웃어보려 했지만 표정이 잔뜩 굳어있어서 웃는 게 우는 것보다 더 이상했다.“당신 말이 맞아요. 임시연은 천벌 받아서 죽은 건데 내가 기뻐하는 게 맞죠.”“그래요, 안 뛰어내렸어도 경찰한테 잡혀서 자유롭진 못했을 거예요.”성연신은 심지안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내가 지안 씨더러 임시연 잡아놓으라고 한 거잖아요. 귀신이 되어도 날 찾아올 거니까 지안 씨는 아무 걱정 하지 마요.”그때 오지석이 사실은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오려 했지만 임시연이 미리 눈치를 채고 송준에게 도움을 청할까 봐 성연신이 말렸었는데 임시연이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심지안을 절대 혼자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알겠어요.”긴장이 풀렸는지 심지안이 눈을 살짝 감으며 말했다.“나 아까 제대로 못 쉬어서 좀 잘래요.”“그래요, 내가 옆에 있을게요.”“네, 할아버지랑 우주한테는 나 병원에 있단 말 하지 마요.”“네.”가족들이 괜히 걱정할까 봐 신신당부를 하고서야 심지안은 침대에 누웠다.제 앞에 앉아있는 듬직한 성연신을 보니 안심이 되는지 그렇게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한편 성연신은
그렇게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누구는 임시연을 구하겠다고 1층으로 달려 내려가고 누구는 창가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아직 살아있어요!"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심지안은 사람들의 인영이 환영처럼 눈 앞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도 어지럽고 귀에 까지 이명이 들려 온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임시연이 뛰어내리는 결말을 예상해본적은 없었는데, 3층이 아주 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층수도 아니었다.조금 정신을 차린 심지안은 사람들의 질책이 담긴 시선을 느꼈다. 그들은 저들끼리 수군대며 심지안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사모님도 너무 하시지, 어떻게 사람을 뛰어내릴 때까지 몰아붙여? 저러면 밤에 악몽 안 꾸나?""그리고 왜 자꾸 연다빈 씨한테 임시연이라고 하는 거야? 너무 간 거 아니야?""다빈 씨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럼 사모님이 살인자 되는 거야?""다빈 씨가 귀신 돼서 사모님한테 복수하겠다고 찾아올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있던 심지안은 이마에 힘을 주며 소리질렀다."내가 몰아붙인 거 아니고 본인이 뛰어내린 거야. 나랑 상관 없다고."심지안의 호통에 수군거림은 사라졌지만 그녀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매정했다.다들 "연다빈"에게 일이 생기면 심지안 책임으로 돌릴 준비가 되어있는 듯 싶었다.심지안은 애써 심호흡을 하며 현기증을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구급차를 부르려고 뒤를 돌 때 마침 이곳으로 뛰어오는 성연신과 오지석을 발견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성연신이 빠르게 다가와 심지안의 어깨를 잡으며 주드럽게 다독였다."괜찮아, 내가 왔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속눈썹이 떨릴 정도로 긴장하고 있던 심지안은 마침 다가오는 성연신을 보고 무슨 말이 라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시간이 조금 흘러 심지안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흰 벽과 소독약 냄새, 그리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성원 그룹 직원 자살 사건은 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