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신은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페달을 세게 밟았다. “왜 갑자기 속도를 내요?”“고청민은 왜 잠옷 차림으로 한남 더힐에 나타났어요?”“학교가 이 근처라고 했어요. 이곳에 사는 게 살기 편하다고요.”그 순간, 성연신은 핸들을 부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가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언제 이사 왔는데요?”“글쎄요. 나랑 비슷한 시기에 이사 온 것 같아요.”성연신은 안색이 어두워진 채 핸들을 꽉 부여잡고 있었고 힘을 너무 세게 줘서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해버렸다. “오늘부터 당신은 중정원으로 돌아가요.”“왜요?”“고청민은 지안 씨한테 순수한 마음이 아니에요.”그 말에 심지안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증거는요?”“일부러 당신이랑 같은 아파트로 이사 왔는데 더 설명이 필요해요?”“다니는 대학원이 이 근처라서 이사 온 거예요. 청민 씨가 나 때문에 대학원을 결정할 만큼 나 그렇게 매력있는 여자 아니에요.”성연신은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고청민은 진작부터 계획하고 있었어요.”“됐어요. 당신이랑 말이 안 통하네요.”화가 치밀어오른 그녀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성연신은 그녀를 힐끔 쳐다보고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당신이 말한 대로 진희수한테 문자 보냈어요.”그 말에 심지안은 미간을 살짝 움직였다. 오늘 아침 그녀는 성연신이 보낸 캡쳐 사진을 보았다. 사과는 적절한 시기에 해야 하는 것이다. 어젯밤에 그가 깔끔하게 이렇게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그러나 하룻밤이 지나서 하는 사과는 별 의미가 없었다. 그녀는 이미 화가 다 풀렸으니까.아무런 반응이 없는 그녀를 보며 성연신은 의문이 들었다. 그녀가 왜 아직도 기분이 안 좋은지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선진 그룹으로 가는 길에 보광 중신을 지나게 된다.심지안은 줄곧 생각에 잠겨있었고 갑자기 창밖에서 스쳐 지나간 누군가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차 좀 세워봐요.”“왜요?”성연신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진희수가 보광
이에 진희수는 목놓아 울기 시작했고, 청순한 스타일링까지 더해 보기만 해도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심지안은 팔짱을 끼고 빨간 입술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어떻게 보면 진희수와 심연아 같은 여자도 참 대단했다. 수도꼭지도 아니고 어떻게 툭하면 울음을 터뜨릴 수 있냐는 말이다.성연신은 진희수를 보더니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위로금으로 3개월 급여 준다고 해.”흠칫 놀란 진희수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대표님, 돈을 달라는 게 아니라...”“아닌데 왜 울어?”어제오늘 두 번 만났는데 그녀는 다 울고 있었다.한 번 울면 동정심이라도 유발하지만, 회수가 잦아지면 짜증밖에 더 나지 않겠는가?게다가 직장에서 울고불고하는 여자는 딱 질색이다.“전 보광 중신에 남고 싶어요. 열심히 일할 테니까 제발 자르지 마세요, 네?”진희수가 간곡하게 애원했다.“그쪽 오빠가 성형찬과 손잡고 우리를 고소한다는데 희수 씨를 스파이라고 충분히 의심해볼 만한 상황 아닌가요? 그리고 당신 아버지와 성형찬은 한패가 되어 남의 등을 처먹으려고 하잖아요. 이러든 저러든 서로 적대시하는 관계인데, 굳이 희수 씨를 남길 필요가 있을까요?”심지안이 성연신의 뒤에서 불쑥 튀어나와 조리 있게 분석하며 따졌다.그럴싸한 가정에 반박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그녀를 노려보는 진희수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저년이 아까부터 일부러 숨어서 자신이 망신당하는 꼴을 지켜보고 있었단 말인가?“지안 씨, 우리 오빠와 아빠 때문에 업무에 영향 주는 일은 없을 거로 장담할게요.”“정정할게요, 지안 씨가 아니라 사모님이라고 불러주세요.”심지안은 미소를 살짝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그리고 권고사직 관련 사유는 이미 전달했고, 보상으로 위로금도 주겠다고 했잖아요. 아직 볼 일이 남아서 이 정도로 협의하는 거로 합시다. 그래도 납득이 안 간다면 고소하세요.”다시 말해서 더는 그녀와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현재 상황에서 볼 때 회사 측은 적절한 해결 방안을 제시한 셈이다. 심지
심지안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황당한 말투로 물었다.“2억이요?”“네, 맞아요.”“희수 씨가 2억 원의 값어치를 하는 것 같아요?”정녕 생각을 거치고 이런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지 궁금했다.“물론이죠.”진희수가 단호하게 말하자 심지안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이유는?”“제가 보광 중신에 입사하지 않으면 성가신 일도 덜 시달릴 거예요. 회사에 기웃거릴 때마다 지안 씨는 위기감을 느낄 테니까.”그녀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그럼 입사해보든가.”심지안은 고개를 숙여 모니터만 바라보고 그녀를 무시했다.“정말 하나도 두렵지 않아요?”“어차피 입사할 수 없는 상황인데 2억까지 주면 괜한 짓 아닌가요? 바보도 이런 바보가 있나요?”심지안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아직 말이 안 끝났어요!”진희수가 되레 발끈하며 외쳤다.“네, 얘기하세요.”“3년 전 성원그룹에 면접하러 간 적이 있는데, 제 의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돈을 챙겨주면서 가보라고 했죠.”심지안이 흠칫하더니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도 모르는 사람인데 임시연의 사진을 몇 장 주면서 비슷하게 스타일링해서 면접 보라고 하더라고요.”“그래서요?”“그 사람이 임시연과 한패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죠. 아니면 임시연을 위해 일해주거나.”심지안은 임시연이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진작에 들었지만, 몇 년 전부터 계획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작 성씨 집안에 시집가려고 이렇게 먼 길을 돌아왔단 말인가?어쩌면 또 다른 거대한 음모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곰곰이 되씹을수록 소름이 돋았다.심지안은 저도 모르게 등골이 서늘했다.“그 사람 어떻게 생겼어요? 이름은 뭐죠?”진희수는 강하게 밀어붙였다.“이름이 뭔지는 몰라요. 하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줄 수 있는데 전제는 2억을 먼저 주는 거죠.”“나한테 거짓말하는지 어떻게 알아요?”“그때 녹음했거든요.”심지안은 넋을 잃고 말았다.“2억이 왜 필요하죠?”진희수의 눈에 별안간 분노와 슬픔이 차올랐다.“집에서 나가
성연신은 잠깐의 침묵을 끝으로 입을 열었다.“아마도 헛소리일 가능성이 커요.”임시연은 사생활이 깔끔한 편은 아니지만, 뒤를 봐주는 사람이 딱히 없었다.게다가 시골 출신이라서 어둠의 세계에 몸담은 세력과 접촉할 기회는 드물었다.만약 약간의 낌새라도 있다면 5년 전에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심지안이 발끈하면서 말했다.“그럼 지금 와서 저랑 같이 녹음 파일 확인해요.”“알았어요, 급한 일만 마무리하고 30분 뒤에 도착할게요.”“네.”진희수가 떠난 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 왕복하는데 30분 정도 걸릴 것이다.15분 뒤, 진희수는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빠른데요? 집에 가서 가져온 게 아닌가 봐요.”“당연하죠, 이렇게 중요한 물건을 집에 둘 리가 있나요?”심지안도 그녀의 말에 수긍했다.“올라와요.”“지안 씨가 내려와요. 공공장소에서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회사 맞은편에 있는 카페 어때요?”“좋아요.”심지안이 흔쾌히 동의한 이유는 그렇게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만약 진희수가 꿍꿍이를 꾸민다고 해도 공공장소에서는 불리하기 마련이니까.심지안은 옷걸이에 걸어 놓은 정장 재킷을 챙겨서 회사 로비를 나섰고, 맞은편에 긴장한 표정으로 서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진희수를 한눈에 발견했다.진희수가 손을 흔들자 심지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길을 건너려고 했다.이때, 빨간불임에도 불구하고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느닷없이 진희수를 들이받았다.진희수의 몸이 공중으로 붕 날아오르더니 바닥에 쿵 하고 떨어졌다.검은색 승용차는 만에 하나라도 숨이 붙어있을까 봐 그런지 아예 그녀를 깔고 지나갔다.심지안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마치 뼈가 우두둑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싶었다.진희수는 기괴하게 뒤틀린 자세로 바닥에 누워 있었고, 온몸에서 시뻘건 피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눈길은 마침 심지안이 서 있는 방향으로 향했는데, 두 눈에 채 가시지 않은 공포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사고 장면은 그야말로 끔찍했다.심지안은 그 자
그 말을 들은 경찰은 창백한 안색의 심지안을 바라보며 동료에게 증거를 수집한 봉투를 가져오라고 했다.휴대폰을 몇 분 동안 만지작거리더니 마침내 심지안과 진희수의 통화 기록과 4천만 원이 입금되었다는 알림을 찾았다.“심지안 씨, 저희랑 경찰서로 가서 진술서를 작성해 주세요.”“제가 한 게 아니에요!”심지안은 절박하게 해명했다.이때, 진성태는 사방에 침을 뱉으며 버럭버럭 호통쳤다.“당신 말고 있을 리가 없어. 어제 우리 희수가 성씨 집안 안주인 자리를 뺏어갈까 봐 질투했던 거잖아!”“그 입 다물어요.”성연신의 싸늘한 눈빛이 진성태를 향했다.진성태는 깜짝 놀라 부르르 떨더니 씩씩거리며 입을 다물었다.진용택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끼어들었다.“설마 찔리는 구석이 있어서 화를 낸 건 아니죠?”성연신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차갑게 식어간 심지안의 작은 손을 꼭 잡고 경찰에게 말했다.“변호사한테 연락할게요.”“네.”변호사라는 말을 듣는 순간 진용택은 온몸이 바짝 긴장했다.경찰차.심지안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물었다.“나 믿어주는 거예요?”성연신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당연하죠.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녹음기를 확인해보면 모든 게 밝혀질 거예요.”“네...”녹음기가 있는 한 그녀가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 테니까....장학수가 경찰서에 도착하자 오지석도 나타났다.진희수의 교통사고 현장이 관할 구역은 아니라서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기에 조언 정도밖에 해 줄 수 없었다.자초지종을 전해 듣고 오지석은 그리 심각하지는 않다며 의자에서 일어섰다.“일단 수사에 협조해서 진술서를 작성해. 내가 가서 녹음기를 미리 확보할 수 있는지 경찰과 얘기해볼게.”이곳에 지인은 별로 없지만 안면이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었다.장학수도 고개를 끄덕였다.“진희수가 다시 찾아왔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라는 가능성이 크다는 뜻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성연신이 기다란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고, 잘생긴 얼굴은 먹구름이 드리웠다.“혹
아무리 돈에 눈이 먼 장학수라 할지언정 진성태의 꼴을 보자 비웃음을 금치 못했다.“죽은 지 고작 3시간밖에 안 되었는데, 딸의 죽음을 이용해서 돈을 벌기 급급한 모습이라니, 이런 아버지가 있다는 자체가 너무 비참하군요.”진용택이 맞받아쳤다.“당신이 뭘 알아? 죽은 사람은 부활할 수 없는 법, 살아서 집에 도움이 안 되었으니 죽음으로 힘을 보낼 수 있다면 저승에 가서도 영광으로 생각할 거야.”“호랑이도 제 새끼는 이뻐한다고, 가족은 더더욱 챙겨줘야 하지 않겠어? 네 일거수일투족을 하늘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기억해. 이름이 거창하면 뭐 해? 매번 이름값도 못 하는데, 지은 죄가 너무 커서 업보를 치른 탓에 그렇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은 진용택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진성태가 엄한 목소리로 호통쳤다.“입만 살면 뭐 해? 당신도 사랑하는 아내가 감옥에 갇혀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겠지?”성연신은 꼿꼿이 서서 턱을 살짝 치켜든 채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물론이죠.”진성태가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조건을 제시하려던 찰나, 성연신이 대뜸 화두를 바꿨다.“이번 사건에 개입한 사람을 찾아낸다면 한 놈도 봐주지 않을 테니까 무사히 넘어가길 기도나 하세요.”진성태의 표정이 돌변하더니 말투도 차갑게 변했다.“지금 겁을 줘도 아무 소용 없어. 굴복하는 게 그렇게 어렵나? 아니면 고작 여자 한 명 때문에 체면 잃을 정도는 아니라는 건가?”그의 예상이 맞는다면 심지안은 성연신의 마음을 어느 정도 사로잡은 사람이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진용택도 맞장구를 치더니 자신만만하게 조건을 내걸기 시작했다.예전 같았으면 진씨 집안에서는 감히 성연신에게 이런 어조로 말을 걸 엄두조차 못 냈을 테지만, 지금은 사업 얘기를 하는 게 아니었다.그는 성연신이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해도 경찰서에서 용의자를 구해낼 정도는 아니라고 굳게 믿었다.입꼬리를 살짝 올린 성연신의 모습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장학수는 저도 모르게 부르르 떨었다.
장학수가 멈칫했다.“그 관계를 잊을 뻔했네.”어르신도 평생 군에 몸담고 계셨으니 많은 공을 세우셨다. 퇴직한 지 몇 년 되셨다. 직위는 없어졌지만, 명망은 여전하셨다.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심지안을 인맥을 통해 빼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 일 것이다.심지안은 통보를 받았을 때 정말 기뻤다. 마침내 불안했던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그녀는 사인을 하러 따라가던 중에 다른 경찰 두 명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들 사이에는 이제 막 자백을 마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 여자가 있었다.그 여자는 머리 길이가 허리까지 왔다. 검은색 머릿결이 윤기가 날 정도로 좋아 보였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얼굴을 보진 못했다. 하지만 나이가 어려 보이진 않았다. 분위기가 꼭 부잣집 사모님 같았다.경찰은 동료에게 상황을 설명했다.“공공장소에서 절도했습니다.”“자주 있는 일이잖아. 근데 표정이 왜 그래?”“절도는 흔하죠. 흔하지 않은 건 이 여자가 도둑맞은 사람한테 자기가 훔쳤다고 먼저 알려줬답니다. 그러니 빨리 신고하라고 재촉했답니다. 꼭 빨리 감옥에 가고 싶은 것처럼요.”“... 너무 거만하네.”심지안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그 여자를 바라보았지만, 그럴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절차를 마치고 경찰서를 나오니 성연신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괜찮아요?”심지안은 고개를 젓다가 또 끄덕였다.“네, 괜찮아요.”단지 그녀는 오늘 놀랐을 뿐이다. 덕분에 배가 살살 아팠다. 아이에게 문제가 없는지 모르겠다.성연신은 눈을 가늘게 떴다.“저 사람들이 괴롭혔어요?”성연신은 경찰을 가리키며 말했다.“아니요. 그냥 몸이 좀 안 좋아서요. 쉬면 괜찮을 것 같아요.”“기사님한테 먼저 지안 씨부터 데려다 달라고 할게요.”성연신은 머뭇거리더니 눈썹을 치켜올리며 진지하게 말했다.“어머니의 행방에 대한 소식을 들어서 가 봐야 해요.”심지안은 깜짝 놀랐다. 이렇게 빨리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는 바로 동의했다.“그래
“저 밖에 볼일이 있었어요.”성연신은 핸드폰을 꽉 잡은 채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지안씨가 병원에 갔어요?”“사랑하는 내 손자며느리보다 더 중요한 일이 뭐야?”“어떤 사람이 해신 광장에서 어머니를 봤다고 해서요.”성수광은 잠시 침묵했다.“찾았니?”“아니요. 아마 잘못 본 것 같아요.”“아니면 송씨 가문에서 널 속이기 위해 헛소리를 하고 있을 가능성은 없는 거니?”“할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하시든 전 어머니가 살아서 도망쳤다고 믿어요. 절대로 오래전에 돌아가신 건 아니에요.”성수광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그런 뜻이 아니라. 나는 우리 성씨 가문이 평안하길 바랄 뿐이야.”“성씨 가문의 평안과 어머니가 살아계신 건 아무런 관련도 없어요. 애초에 저희가 나약해서 생긴 일이에요.”“됐다. 나도 이 나이까지 살 만큼 살았는데 뭐가 더 무섭겠어. 네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이놈의 자식.”성수광은 말하다가 기침했다.기침 소리가 마치 거대한 돌이 심장을 누르는 것처럼 압박감이 있었다.성연신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화제를 바꿨다.“할아버지는 지안 씨가 병원에 갔다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장 의사가 병원에 약이 떨어졌다고 하더구나. 백호한테 다른 병원에 가보라고 했더니 우연히 지안이를 봤대.”“백호 아저씨가 지안 씨한테 물어봤대요?”“아니, 지안이는 통화 중이어서 못 봤을 거야.”“알겠어요. 할아버지 요즘 전우분들하고 밖에 다니지 마세요. 집에서 요양 잘하세요.”“난 상관하지 마라. 어서 지안이한테 무슨 일인지 가 봐. 몸이 어디 불편한지.”“네.”심지안은 돌아가는 길에 성연신의 전화를 받았다.그녀는 핸드폰에 뜨는 번호를 보며 의문이 들었다.“기사님, 길가에 차 좀 세워주세요.”“네.”그녀는 차의 창문을 올려 밖에 시끄러운 소리를 차단했다. 그다음 손가락으로 수락 버튼을 가볍게 터치했다.“어디예요?”성연신이 물었다.“나 유진이하고 같이 있어요. 왜요? 일 끝났어요?”그는 몇 초간 침묵했다.“집에 안 있고 어디를 돌아다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