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을 입고 온 심지안은 골프장에 도착해 탈의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블랙 컬러의 슬림하고 스포티한 원피스는 그녀의 늘씬한 몸매를 더 돋보이게 만들었고 훤히 드러난 하얗고 매끄러운 팔은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심지안은 거울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녀는 골프를 잘 치지 못하지만 어떤 자리에서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상대방의 취미를 존중할 줄 아는 센스도 가지고 있었다. 여자 탈의실을 나와 남자 탈의실을 지나칠 때 그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주 대표님인 것 같은데...’발걸음을 멈추고 잠깐 서 있자 주 대표가 주원재를 데리고 안에서 걸어 나왔다. 환하게 웃으며 다가가 인사를 건네려고 할 때 그녀는 두 사람의 뒤에 서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하게 되었다.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있는 성연신은 귀티가 넘쳐흘렀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그의 검은 눈동자가 살짝 떨리더니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어떻게 인사를 건네야 할지 몰랐던 심지안은 그 자리에서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두 사람을 쳐다보던 주 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혼자예요? 우리랑 같이 칠래요?”“아니요. 사업 파트너와 함께 왔어요.”옆에 있던 주원재가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어느 구역으로 갈 건데?”심지안은 솔직하게 대답하고는 이내 자리를 떴고 파트너를 찾으러 갔다. 그녀의 파트너는 유정호라는 사람이었다. 그녀를 본 유정호는 눈빛을 반짝였다.“역시 세움의 모델은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정말 예쁘시네요!”그 말에 심지안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과찬이세요. 일단 사업 얘기부터 할까요? 아니면 골프부터 칠까요?”“당연히 공부터 쳐야죠. 골프 칠 줄 알아요?”유정호는 골프채를 그녀에게 건네주며 입을 열었다.“조금요. 잘 치지는 못해요.”“자자자, 내가 가르쳐줄게요.”말을 마친 그가 그녀의 뒤로 다가가 그녀를 안았다. “아니요!”심지안은 이내 그를 밀어내고 뒤로 두 걸음 물러나 그와 거리를 유지했다
“아니야, 난 모르는 사람인데.”그리고 성연신이 불편했던 그녀는 단번에 거절했다.“괜찮아, 채영이 까칠한 사람 아니야. 가자. 내가 방금 유정호도 쫓아내 줬잖아. 그러니까 네가 날 좀 도와줘.”주원재는 결국 심지안을 끌고 갔다. 한편, 주 대표와 성연신은 한창 골프를 즐기고 있었고 그 옆에는 약간 통통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160CM 쯤 되어 보이는 키에 통통한 몸매,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는 그녀는 한눈에 봐도 귀티 나는 부잣집 딸 같아 보였다. 심지안은 성연신의 옆으로 가서 앉았고 그런 그녀를 성연신은 뚫어지게 쳐다보았다.그러나 그녀가 입을 열려고 할 때 성연신은 차갑게 시선을 거두고 그녀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주 대표와 성연신은 비즈니스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고 그 사업에 관한 관여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조용히 옆에서 듣고만 있었다.그러나 주 대표는 그녀를 끌어들일 생각인지 가끔 그녀의 의견을 물었다. 심지안은 완곡하게 그를 거절했다. 돈도 없고 인맥도 없는 자신이 이런 사람들 사이에 끼는 게 자격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 대표는 성연신이 그녀를 도와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한 시간 동안, 쌀쌀맞은 성연신과는 달리 주원재와 박채영은 끊임없이 그녀에게 말을 걸어왔다. “지안 씨가 왠지 모르게 낯이 익어요.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아줌마와 많이 닮은 것 같은데.”박채영은 두 손으로 오동통한 얼굴을 받들고 심지안을 쳐다보았다. “푸흡. 요즘 사람들이 자꾸만 내가 누구랑 닮았다고 하던데. 내가 흔한 얼굴이라서 그런 가 봐요.”심지안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이에요. 성동철 할아버지의 따님과 많이 닮았어요. 그분 사진 본 적 있거든요.”주원재는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많이 닮았어?”“많이 닮은 건 아닌데. 눈매랑 얼굴형이 많이 닮았어.”박채영은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두 사람 혹시 먼 친척 사이 아니에요?”‘먼 친척 사이라...’심지안은 흠칫했다. ‘엄
“손님, 그런 게 아닙니다. 날이 더워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 겁니다.”직원은 안절부절못하며 다급히 설명했다.“그건 당신들 사정이고요.”“네... 죄송합니다.”성연신은 심지안을 끌고 이내 자리를 떴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맞잡은 두 손을 쳐다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오후 내내 아는 척도 안 하더니. 왜 또 이러는 거야?’그의 손에서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 쳤지만 워낙 힘이 세서 전혀 소용이 없었다.“뭐 하는 거예요?”“데려다줄게요.”“그럴 필요 없어요.”“조용히 해요.”심지안은 말을 하려던 찰나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 급히 입을 틀어막으며 헛구역질했다. 그 모습에 성연신은 안색이 어두워졌다.“날 보는 게 구역질이 날 만큼 싫은 거예요?”“아니요. 그냥 속이 좀 울렁거려서요.”그 말을 듣고 그제야 그의 얼굴이 조금 환해졌다.“속 안 좋아요?”“아니요, 나도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어요.”심씨 가문에서 나온 뒤로 그녀의 삶은 많이 여유로워졌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군것질도 챙겨 먹어서 위병이 많이 좋아진 상태였다. 최근에는 거의 위가 아픈 적이 없었다.“병원에 갈래요?”“아니요, 괜찮아요.”그녀는 구역질하는 건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뭘 잘못 먹은 것이겠지.’성연신도 더 이상 뭐라 하지 않고 그녀한테 안전벨트를 매라고 했다.그의 변덕스러운 행동이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던 심지안은 고분고분 그의 뜻에 따랐다. 집으로 가던 길에 주얼리를 맡긴 전당포를 지나쳤는데 여전히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녀가 처음 이곳을 왔을 때도 문을 열지 않았었다. 만약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가게라면 이렇게 오랜 시간 가게 문을 닫을 리가 없는데 말이다...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 앞쪽 도로가 무너져 내려 길이 막혀있었다. “여기서 내릴게요. 골목길로 돌아가면 돼요.”가로등조차 없는 깜깜한 골목길을 보고 성연신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마음대로 해요.”‘여기까지 데려준 게 어디야? 이 여자의 안전까지 내
흠칫하던 그녀는 한참이 지나서야 그의 말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턱을 치켜올리며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어때요? 나 똑똑하죠?”방금 울고 난 그녀의 눈시울은 아직도 약간 붉어있었지만 여전히 톡톡 튀는 아이 같은 매력은 감출 수가 없었다. 그녀를 쳐다보며 성연신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죽을 까봐 걱정하는 게 안쓰럽군. 아무 걱정 없이 살아야 할 사람이... 예전처럼...’“경호원 붙여줄까요?”심지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지금 날 걱정하는 거예요?”“그래요.”그 말에 그녀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그녀가 기뻐할 새도 없이 그가 말을 이어갔다. “당신한테 사고라도 나면 날 대신해 우리 할아버지를 상대할 사람이 없으니까.”“필요 없어요!”성연신은 허리를 숙이고는 그녀의 두 볼을 감싸며 장난스럽게 말했다.“내가 당신 걱정하는 줄 알았어요?”그에게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그녀는 화를 벌컥 내며 그를 밀어냈다.“아니요! 착각하지 말아요.”“쳇.”성연신은 말끝을 흐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심지안을 별장 단지 입구까지 데려다주고 돌아갔다. 집 앞에 도착한 심지안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진현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턱에 잔수염이 가득했고 예전에 혈기 왕성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게다가 아직 다리가 회복되지 않아 지팡이를 짚고 있어 많이 초라해 보였다. “지안 씨, 며칠 동안 생각해 봤는데 교통사고에 관해 당신한테 속이지 말았어야 했어요. 내가 잘못했어요.”“아니요.”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하게 말했다. 사실 진현수가 거짓말한 걸 알고 화는 내지 않았다. 단지 그가 그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을 뿐.진현수는 심지안이 아직도 화가 난 줄 알고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알아요. 지안 씨한테 신뢰를 잃었다는 걸. 하지만 다시 한번 나에게 기회를 주길 바라요. 날 시험해도 좋고 어떻게 해든 좋아요. 난 다 받아들일 수 있어요.”“이러지 말아요. 우린 이미 끝났어요.”긴 아픔보다는 짧은 아픔이 낫다는 생각에 심지안은
심지안은 간단히 씻은 뒤 집을 나섰다. 이상하게도 오지석은 그녀를 경찰서로 부른 것이 아니라 경찰서 옆에 있는 공원으로 그녀를 불렀다. 심지안은 그를 만나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조사 결과는 어떻게 됐어요? 범인이 다 털어놓았나요?”그녀를 침범하려 했던 그 남자는 고청민의 칼에 찔려 피를 많이 흘렸고 체포 당시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다행히 치료를 받고 어제 의식이 돌아왔다. 그 물음에 오지석은 고개를 저었다.“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자살 시도까지 했어요. 하지만 다 털어놓을 때까지 취조할 생각이에요.”심지안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 인간이 이렇게 의리가 깊을 줄은 몰랐네. 자살하면서까지도 동료들을 말하지 않은 걸 보면.’“지안 씨가 생각하는 그런 이유 아닐 거예요. 그 사람이 자살한 이유는 아마 더 이상 정상적인 남자로 살 수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죠. 그리고 조사한 결과 그의 가족은 그가 체포당하는 날 실종되었어요.”“가면을 쓴 여자가 가족을 빌미로 협박했을 거라는 말인가요?”“네.”그 말에 심지안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들이 날 납치한 목적이 뭐예요?”‘내가 왜 이런 무서운 사람들과 엮이게 된 걸까?’“일단은 돈을 목적으로 저지른 납치 사건이라고 정했어요.”오지석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지안 씨 인간관계에 대해 조사해 본 결과 원한에 의한 납치는 아닌 것 같아요. 반면, 세움의 후계자인 고청민 씨를 노리고 납치한 확률이 높아요. 게다가 범인들은 성씨 가문에 편지를 보내 2000억을 요구했었어요. 가면을 쓴 여자가 지안 씨 목숨을 원한다는 건 아직 그 진위를 밝혀내지 못해서 조금 더 조사해 봐야 할 것 같아요.”그의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만약 그들의 목적이 고청민 씨였다면 왜 그 가면을 쓴 여자는 화장실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생각에 잠긴 그녀를 보고 오지석은 말을 이어갔다.“사건을 조사하는 건 우리의 책임이에요. 오늘 지안 씨를 여기로 부른 건 혈액 검
의사가 하는 말을 심지안은 한 글자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혼자 중얼거렸다.“매번 피임약 꼭 챙겨 먹었는데.”“피임약을 먹었다고 해서 꼭 피임되는 건 아니에요.”의사는 그녀의 표정을 관찰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이 아이 낳을 거예요? 지워버릴 거면 최대한 빨리 입원해서 수술하는 게 좋을 거예요. 아이가 크면 지우려고 해도 지울 수 없을 테니까.”“저도 잘 모르겠어요...”“일단 돌아가서 잘 생각해 봐요.”심지안은 넋을 잃은 채 병원을 나섰다. 그녀는 손을 들어 평평한 배를 만지며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한편, 그녀는 택시를 타지 않고 천천히 걸어갔다. ‘임신 1개월이라는 건 남해 별장에서 생겼다는 거잖아. 이혼 후의 임신이라니... 참 웃기는 일이군.’ 가는 길에 한 중년 부부가 갑자기 머리를 감싸며 절망적으로 울기 시작했고 그들의 손에는 병원 기록이 들려있었다. “벌써 다섯 번째야. 이번에도 시험관 실패했어. 도대체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 하느님은 왜 우리를 이렇게 벌하는 거야?”“울지 마, 우리 이제 그만 포기하자. 당신 고생하는 거 더는 못 보겠어. 내 마음이 너무 아파...”“하지만 난 아이를 갖고 싶단 말이야...”“여보, 우리 그냥 아이 입양하자. 그만 울어.”남자는 다정하게 여자를 위로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심지안은 저도 모르게 산부인과 검사 기록을 움켜쥐었다. 더 이상 들을 용기가 없었던 그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누군가의 영향도 받지 않고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해.’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그녀는 성연신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임시연과 헤어지라고 강요해야 하는 걸까? 연신 씨가 그걸 원할까? 한발 물러나 그가 승낙한다고 해도 그럼 임시연의 아이는? 그 아이가 무슨 죄가 있어서...’임시연의 아이를 데려다 키울 만큼 그녀는 너그럽지도 않았고 마음이 강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성연신이 외도한 사실을 절대 잊을 수가 없다.심지안의 마음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바로 이때 진유진한테서 같이 밥을
“헤헤, 알아챘네.”진유진은 머리를 몇 번 쓸어내리고는 정색하며 말했다.“사실 이 일은 여러 가지 각도로 봐야 해. 예를 들어 네가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치자. 비록 탑티어의 부자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먹고 사는 거나 도우미를 고용해서 아이를 돌보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어. 하지만 가정형편, 학벌, 업무처리 수준이 모두 평범한 월급쟁이가, 그것도 한창 사업 상승기에 있는 여성이 싱글맘이 되는 건 하나의 큰 도전일 거야.”“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애를 번듯한 성인으로 키우면 보람 있지 않을까?”심지안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몽골몽골해지고 눈에서 빛이 났다.“이건 성취감뿐만이 아니야. 구원이라고.”진유진의 지지하에 그녀는 단번에 납득이 되었다.섭섭해할 것도 없으니 그냥 여기에 남도록 하자.어차피 못 키울 것도 아니었다.성연신은 성연신이고 그녀는 그녀였다.어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는 죄가 없었다.갑자기 싱글벙글 웃고 있던 그녀를 본 진유진은 이상하다는 듯이 다가가서 물었다.“너 혹시 임신했어?”심지안은 두 눈을 깜빡이며 담담하게 말했다.“아니.”진유진은 입이 무겁지 않은 사람이었다. 따라서 저번처럼 말이 새어나갈까 봐 아예 그녀에게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그럼 갑자기 이런 걸 물어보는 이유가 뭐야?”“길 가다가 출산 문제로 싸우면서 대성통곡하는 부부를 보고 생각이 좀 많아져서.”진유진은 “아.”라고 응답을 했다. 직원이 새우요리를 식탁에 올려두자 그녀는 곧장 음식에 주의를 기울였다....오지석은 심지안과 헤어지고는 경찰로 돌아왔고 고청민도 거기에 있었다.다른 동료들이 고청민에게 검사 보고서를 보여주었다. 오지석은 대충 곁눈질해 보고 사무실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그의 손에 있는 보고서를 똑똑히 보고 안색이 변했다.“심지안의 검사 보고서를 가지고 뭐 하는 거지?”동료는 순간 당황했다. “이분이 심지안 님과 친구라고 해서...”“이건 남의 프라이버시라고, 그것도 몰라?”“대장님, 다신 안 그럴게요.
심지안은 당황해서 얼굴이 붉어지며 말했다.“아니에요!”“그 사람 말고 또 다른 사람일 리가 없잖아요!”고청민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전 진현수를 싫어합니다.”진현수와 함께 있는 것은 보답과 감동 때문이었다. 하필 사랑이 아니었다.만일 어느 정도의 사랑이 있다면 그가 그렇게 비열한 수단을 써가면서까지 심지안과 함께 있으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어떻게 아셨어요?”“제 말이 맞았네요.”그는 애써 본인의 감정을 숨기고 제3자의 시선으로 호기심과 안타까움으로 가득 찬 말투로 물었다. “한 달 전 성연신과 이혼한 거 아니었어요? 그가 강요한 건가요?”심지안의 몸이 굳어버렸다.“묻지 마세요.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미안해요. 당신의 사적인 일에 끼어들면 안 되는 거 알지만, 친구로서 듣기 안 좋은 말 몇 마디만 할게요. 난 당신이 아파하는 걸 원하지 않아요.”“임시연이 지금 성연신의 별장에서 머무는 걸 보니 아무래도 배 속의 아이를 낳도록 허락한 모양인데 만일 남자아이를 낳는다면 성씨 집안의 첫 증손자가 되고 성 어르신께서도 기뻐하면서 그녀의 신분을 인정하실 겁니다.”“그때가 되면 당신은 완전히 남이 될 겁니다. 그냥 지금 아이를 지우고 새 출발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심지안 씨의 인생은 이제 곧 시작인 거잖아요.”심지안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전 안 지울 겁니다.”그녀는 확실히 이 아이가 때아닌 곳에 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혈육을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이는 것은 그녀로서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고청민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가 이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말했다.“당신이 애를 지우지 않는다고 해도 성연신은 다른 아이의 아빠입니다.”심지안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는데 마치 수많은 유리 조각이 살갗에 깊이 박혀 피가 흐르는 듯 아파왔다. “아이 저 혼자 키울 거예요.”“그러면 당신이 많이 힘들 겁니다.”“괜찮아요. 사는데 고생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