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 교수는 도윤지의 언어가 조금 거슬려 불쾌했다.“다른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지 마. 특히 상황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면 안 돼.”도윤지는 입술을 비쭉 내밀고 감히 교수님의 말을 반박하지 못했다.국내에서 최면술을 받는 환자는 엄청 드물었다. 그래서 엄 교수는 심지안에 대해 인상이 꽤 깊었다.‘심지안이 고청민이랑 헤어졌으면 그녀의 병을 돌봐 줄 사람이 없는 거 아니야…’엄교진 교수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핑계를 대서 도윤지를 내보냈다.그러고는 심지안의 연락처를 찾으려고 혼자서 인터넷으로 그녀의 자료를 찾아 헤맸다.나이가 들고나서 컴퓨터를 쓰는 일이 적었다. 엄교진은 눈이 빠지도록 찾아서야 심지안의 SNS를 찾았다.DM을 어떻게 보내는지 몰라서 임 교수는 바로 심지안의 게시글에 댓글을 달았다.[심지안 씨, 안녕하세요. 저는 제명 심리연구소의 교수입니다. 당신과 소통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보면 연락해 주세요.]임교수는 이 댓글이 모든 사람한테 공개되는 줄도 모르고 댓글을 남겼다.[저기요, 연락처를 묻고 싶으면 DM을 하시지. 근데 유부녀를 이렇게 대놓고 건드리는 건 좀 아니지 않나?][하하하, 그 와중에 교수인 척을 하네. 네가 교수면 난 CEO다.][제발요. 나이도 많으신 분이 편히 남은 날을 즐기면 안 좋나? 여기서 웬 지랄!][잠깐만! 이 사람 진짜 교수님인 것 같은데. 실명인증이 되어있어!][참 나. 연구소의 엄 교수님이시네! 아주 업계에서 거물급인 사람이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보는 눈이 없었습니다.]엄 교수의 댓글 아래 하도 많은 사람들이 대댓글을 달아서 이 댓글은 엄청 빠르게 제일 위로 올라갔다.저녁에 자고 일어난 심지안은 이 댓글을 보고 새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매우 감격스러웠다.‘예약하기 너무 어려워서 못 갔는데 이렇게 제 발로 찾아오다니! 참 기적이야!’‘근데 엄 교수님께서 왜 주동적으로 나에게 연락을 주셨지?’이 점에 대해 심지안은 아주 이상하다고 생각했다.심지안은
이튿날 아침 7시, 심지안은 엄 교수가 아침 운동을 하는 공원에 도착했다.엄 교수는 태극권을 연습하고 있었다. 느리고 힘 있는 동작들은 아침에 특유의 푸른 식물들의 기운과 합쳐져 심지안의 팽팽한 정신을 살짝 풀리게 했다.엄 교수는 심지안이 온 것을 보고 동작을 멈추고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왔어요?”심지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동적으로 앞으로 다가가 존경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엄 교수님 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 오늘 제가 지안 씨를 불러낸건 지안 씨 최근의 몸 상황을 물어보려고 불렀어요.”최면술의 신기한 점은 최면을 당한 사람은 모든 사람과 기억을 잊지는 않는다. 그저 최면하는 사람이 설정해 놓은 대로만 최면 된다.그 말인즉 심지안은 그저 일부 일에 대해서만 기억이 없다. 고청민의 말대로라면 심지안은 예전에 몸이 안 좋아서 우울증에 걸렸었고 또 안 좋은 일이 조금 발생해 병세가 심해지면서 정상적인 생활에 영향을 주어서 그녀를 힘들게 하는 일부 기억을 선택적으로 삭제했다고 했다.심지안의 주먹만 한 얼굴에는 의혹이 가득 찼다.“전 교수님 외래를 예약한 적이 없는데요.”“맞아요. 그때 지안 씨는 혼수상태여서 고청민이 데리고 왔어요.”엄 교수는 아주 넌지시 물었다.“지안 씨는 내가 무슨 과 교수인지 아세요?”어떤 환자들은 자기한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걸 직면할 용기가 없었다.심지안은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녀의 심정은 아주 평온했으며 맑고 깨끗한 눈 밑에는 숭배의 감정이 들어있었다.“심리학 교수님이시잖아요. 그것도 전국 범위내에서 아주 뛰어난 심리학 교수님, 저도 최근에 계속 교수님 외래를 한번 잡고 싶었지만 예약하기 너무 힘들었어요.”“교수님께서 어제 저에게 댓글을 남기신 걸 보고 엄청 기뻤어요. 하지만 작은 의문이 하나 있어요. 교수님은 어떻게 해서 저한테 직접 연락을 주신 거예요?”“고청민이 제 학교 선배였어요. 얼마 전에 지안 씨를 데리고 절 찾아온 적이 있었어요.”엄 교수는 심지안이 아주 평온한
“저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엄 교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심지안이 자기의 병세에 관해 물어보는 줄 알고 그저 공교롭게 손을 흔들었다.“지안 씨의 건강 상태를 체크한 다음에 몸이 호전되었으며 그때 지안 씨의 실제 병세를 알려줄게요.”“그걸 물으려는 게 아니에요. 제가 묻고 싶은 건 고청민이 저를 여기로 데려왔을 당시에 그는 교수님께 저를 뭐라고 소개했었나요?”엄 교수는 발걸음을 잠깐 멈추고 열심히 생각했다.“아마 한 2, 3개월 전인데 구체적인 시간은 잘 생각이 안 나네요. 그리고 고청민이 지안 씨를 어떻게 소개했었지? 그저 정상적인 남자 친구가 여자 친구를 대하는 것처럼 지안 씨를 대했어요. 그리고 그때 두 사람 이미 약혼을 한 것 같았어요.”“하지만 외부인이 보기에도 고청민이 지안 씨한테 잘 대하는 게 보였어요.”지금의 사람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만약 한 사람이 아플 때 그의 옆을 떠나지 않고 지켜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 진정한 애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심지안은 바닥을 보며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진료실에 들어온 후 심지안은 엄 교수의 말에 따라 치료 침대에 누웠다.“자, 릴랙스하시고 제가 지안 씨에게 문제 몇 개를 물어볼 거예요. 대답하고 싶으면 대답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셔도 돼요.”“네. 물어보세요.”“최근 한 달 동안, 지안 씨 수면 질량은 어떠세요?”“전에는 안 좋았는데 약을 먹은 후부터 좀 나아졌어요.”“무슨 약이에요?”심지안은 전에 성연신이 자기에게 준 약을 챙겨왔기에 가방에서 약을 꺼내어 엄 교수에게 보여주었다.엄 교수는 약병에 쓰인 글씨를 똑바로 보고는 얼굴에 의아함이 스쳐 지나갔다. 엄 교수는 중얼중얼 혼잣말했다.“어쩐지…”심지안은 긴장해 하며 물었다.“교수님 왜요? 이 약을 먹으면 안 되나요?”“먹어도 돼요. 이 약은 외국에서 갓 연구해 낸 약이에요. 돈이 있다고 해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이 아니에요. 지안 씨는 이 약을 어디에서 구했어요?”심지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이 말이 심지안의 귀에 들어가 마치 '위로'가 된 듯, 가냘픈 몸이 휘청거리고 얼굴빛이 종이처럼 하얗게 변했다.그녀는 어떻게 연구소를 나왔는지, 자신이 어떻게 성씨 집으로 돌아왔는지는 더더욱 모른다.흐리멍덩한 것이 영혼을 빼앗긴 꼭두각시가 같았다."저 왔어요."정신을 차린 심지안은 고개를 들다가 흠칫 놀랐다. 성동철이 하인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타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그는 며칠 병원에 입원했더니 몸이 매우 빠지고 눈두덩이가 꺼진 채 많이 초췌해졌다.심지안은 눈시울이 찡해지며 외할아버지에게 오늘 엄 교수님을 만났다는 사실을 잠시 말하지 않기로 했다.외할아버지는 더 이상의 충격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그녀는 얼굴에 미소를 짓고 성동철 뒤로 다가가 어깨를 주물러주고, 입을 삐죽 내밀며 불평했다. "네, 종일 바빠서 병원에 데리러 갈 시간도 없었어요. 일찍이 하지웅을 세움에서 쫓아내면 좋은 날을 하루라도 더 보낼 수 있어요.”"이건 긴 싸움이니 조급해할 필요가 없어. 그 자식도 그리 대단하지 않아. 뒤에서 고청민이 꾸미고 지시한 거야.”세움은 언젠가 성씨 가문에 돌아올 것이다.현재 그는 이미 여러 명의 이사와 연락을 취했다. 비록 몇몇 사람들은 피했지만, 추측을 더듬어 그는 고청민의 의도를 이해했다.고청민이 복수하고 있다.지안에게 복수하는 것이고 성연신에게 복수하는 것이며 그에게 복수하는 것이다."고청민..."심지안은 입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눈빛을 흐렸다."나이 든 비서 쪽에서는 그녀가 입만 떼면 증인으로 채택할 수 있어.”"입을 열려 하지 않는 게 문제죠." 심지안은 쓴웃음을 지으며 미간을 문질렀다. "밤새 그 비서의 입은 철문보다 튼튼했어요.”"아닐 텐데, 이사회의 그 능구렁이들은 확실히 말할 수 없지만, 그녀가 세움에 대한 충성은 내가 맹세할 수 있어.”"고철민에게만 충성하는 거 아닌가요?”"아니, 그녀는 내가 고용했어, 세움을 설립 후 들어온 첫 번째 직원이야." 성동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일 그녀를
성연신은 눈물로 얼룩진 양복바지를 바라보더니 벌떡 일어나 짜증을 내며 말했다.“차가 아래층에 있으니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소민정은 성연신의 짜증 어린 표정을 보더니 어안이 벙벙해졌다.‘내가 이렇게까지 울었는데 오빠는 달래주지 못해도 짜증을 내다니!’심지안이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좀 더 예뻤을 뿐이다.‘좀 더 이쁘다고 오빠를 홀려버렸어. 나도 이쁜데...’소민정이 떠나지 않자 성연신은 눈꼬리를 내리깔고 회의실에 성큼성큼 들어가 문을 콱 닫았다. 마치 그들을 회의실 밖에 격리하는 것 같았다.소민정은 표정이 굳어지며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그녀가 보광 그룹을 나서자마자 그녀를 바래다주는 안철수를 보았다.소민정의 마음에는 갑자기 계책이 떠올랐다. 그녀는 힘껏 허벅지를 꼬집고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안철수의 품 안으로 안겼다.“엉엉, 난 너무 슬퍼요. 나랑 술 한잔하실래요?”흰색 승용차 한 대가 빌딩 아래에 멈추자, 차창이 내리며 고운 얼굴이 드러났다.심지안은 여유롭게 이 장면을 지켜보다가 내친김에 휴대폰을 꺼내 그들에게 ‘찰칵’하고 사진을 찍어 민채린에게 보내주었다.민채린은 이내 답장을 보내왔다.“내 말이 맞아. 소민정은 여우 같은 년이야! 저 바보처럼 웃는 미련한 꼴을 봐. 징그러워 죽겠어.”심지안은 어쩔 수 없이 웃었고, 긴장이 조금 풀렸다. 민채린은 안철수를 마음에 두고 있음이 분명했다.그녀는 일부러 ‘알콩달콩’한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고 뒷문으로 차를 몰고 간 후 위층으로 올라갔다.심지안은 여우 같은 소민정에게 관심이 없었고 지금 더 중요한 일을 처리하러 가야 한다.이런저런 생각 끝에 그녀는 성동철과 함께 엄교진 교수를 만나러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외할아버지 외에는 가족이 없었다.어찌 보면 성우주의 아버지로서 성연신도 가족에 맞먹는 셈이다.성연신은 감당 능력이 강하고 생각이 민첩하여 돌발상황에 닥쳐도 잘 처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만약 운이 나쁘다면 심지안의 병은 치료할 방법이 없을
그는 마우스를 내려놓았지만,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성연신은 핸드폰을 가지고 놀며 고개를 들어 심지안을 보지도 않았다. 심지안은 화가 치밀었으며 작은 손으로 그의 책상을 힘껏 쳤다.“성연신!”‘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는 방법도 배웠어?’나무처럼 무덤덤한 성연신은 정말 미웠다. 성연신은 몸을 움찔하더니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눈앞의 사람을 똑똑히 보고는 얼굴의 먹구름 같은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왜 왔어요?”“환영하지 않아요?”“아니에요.”성연신은 살포시 웃었으며 온화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왔어요?”“오고 싶으면 올 수 있죠. 싫으면 말하세요. 다음부터 오지 않을 거예요.”심지연은 눈살을 찌푸렸다.“쓸데없는 생각 마세요.”성연신은 기뻐했다. 여태껏 혼자 주동적으로 연락하다가 오늘 그녀가 처음 찾아오자 꿀을 먹은 것처럼 달콤했다.심지안은 얼굴을 약간 붉히며 콧방귀를 뀌었다.“언제부터 능글능글하게 말하는 방식을 배웠어요?”“억울해요.”성연신은 그녀를 소파에 앉힌 후 직접 주스를 한 잔 따라 그녀의 손에 쥐여주며 진지하게 말했다.“내가 말한 것은 다 사실에요.”‘정말이에요?”“예전에 나는 혼자였어요. 당신을 알고 나서, 특히 우주를 가진 후에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달았어요.”평범한 일상이지만 행복했다.심지안의 눈빛은 멍해졌다. 성연신의 말을 듣고 있자니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왜 나를 멀뚱멀뚱하게 쳐다봐요? 지안 씨를 진심으로 대하고 더는 속마음을 숨기지 않는다고 했어요. 이러는 내가 싫은가요?”성연신은 웃음을 터뜨렸고, 그녀의 부드러운 얼굴을 애지중지 쓰다듬어 주었다.“그럼요, 제때 사랑을 표현하는 게 중요해요.”심지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말했다.“우주가 크면서 아빠 사랑이 빠져서는 안 돼요. 연신 씨는 내성적이고 냉정해서 아이는 당신이 그를 그렇게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할 수 있어요.”비록 사람들은 흔히 아버지의 사랑은 말이 없다고
심지안은 한숨을 쉬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위로를 해주지 않아도 돼요.”“제 말 좀 들어보세요.”그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나는 지안 씨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 알고 있어요. 불치병이 아니니 두려워하지 마세요.”심지안은 성연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거짓말을 하는지 의심했다.“불치병이 아닌지 어떻게 알았어요? 불치병이 아니면 도대체 무슨 병이에요?”‘전에 외국에서 두통약을 가져오더니, 설마 진작에 그녀의 상태를 알고 있었단 말인가?’‘그럼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어?’”나는 일찍이 지안 씨의 건강상태가 이상함을 발견하고 엄교진 교수를 찾아갔어요. 어르신도 당신의 병세를 알고 있어요. 당신에게 비밀로 한 건 엄 교수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재차 당신을 자극할까 봐 걱정되어 말하지 않았어요.”“대체 어떤 병이길래 자극할까 봐 알려주지도 않으세요? 난 당사자이니 진실을 알아야 해요.”심지안은 격동되어 고함을 질렀다. 분명히 자신의 사생활이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지라 세상 사람들에게 속히 운 것 같아 화가 났다.“엄 교수님을 믿지 못하면, 나와 어르신은 믿을 수 있으세요?”그녀가 불치의 병에 걸리면 그는 지금과 같이 침착할 수 없다.그는 그녀가 자신의 세계에서 또다시 사라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그녀가 죽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설사 세상에 다시 살아나는 약이 없다 하더라도, 그는 차라리 존재하지도 않는 기적을 만들지언정 그녀가 떠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우주가 없었다면 그는 저세상에 따라가 그녀와 함께 있었을 것이다.심지안은 힘껏 성연신의 손을 뿌리치면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당신을 믿기에 이제야 물어보고 있어요!”엄교진 교수 말대로 그녀를 위해서임을 알고 있으나 이렇게 하면 그녀는 오만 가지 생각에 더욱 힘들어진다.성연신은 눈을 감았다. 잘생긴 얼굴에는 여러 가지 생각 때문에 표정이 바뀌었다.심지안은 때마침 그의 표정의 변화를 포착하고 즉시 그의 약간 거친 손을 잡았다. 부드러운
성연신과 심지안이 보광에서 나와보니 안철수와 소민정은 이미 사라졌다.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팔꿈치로 옆 남자를 건드렸다. "안철수가 유혹당한 게 아닐까요?”성연신은 실눈을 뜨고 콧소리를 냈다.“응?”심지안은 계단을 오를 때 보았던 그 장면을 그대로 들려주었다.그러자 성연신은 안색이 변하며 안철수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통했으나 아무도 받지 않았다.안철수는 서민정을 공항으로 배웅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가 성연신의 명령을 어긴 것은 난생처음이었다.성연신이 안철수와 소민정을 찾아갔을 때 그들은 술집에 있었다.어두컴컴하고 시끄러운 환경, 남녀가 댄스장에서 요란하게 몸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저기에 있어요.”성연신보다 시력이 좋은 심지안은 사방을 스캔하여 구석에 있는 안철수와 소민정을 찾아냈다.철수가 손에 술잔을 들고 술을 마시려고 했다.갑자기 아름다운 그림자가 튀어나와 그의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땅에 떨어뜨렸다.'우당탕'하는 소리는 술집 안에서 주의를 끌지는 못했지만, 안철수의 분노를 일으켰다.안철수는 의아한 눈빛으로 민채린을 보았다. 민채린은 깨진 유리 조각을 가리키며 말했다.“마시지 마! 그녀가 안에 약을 넣었어!”소민정의 눈에는 알 수 없는 표정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더니 애꿎은 말투로 말했다.“언니 오해한 거 아니에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어요.”“시치미 떼지 마세요. 당신의 수작은 다 내가 써봤던 수단이에요! 좋으면 대범하게 따르고, 저질한 수작을 부리지 마세요.”성연신을 갖고 싶으면서 안철수에게 곁눈질했다.욕심쟁이!안철수는 갑자기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소민 씨가 너처럼 염치없을 줄 아니?”계집애가 한계가 없을 줄이야!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한 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소민정은 보수적이고 수줍음이 많아 민채린과는 달랐다.민채린은 기분이 언짢아져서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뻔뻔해? 네가 내 물건을 가지려다 발생한 일이야!”“솔직히
흥분을 가라앉힌 후, 심지안은 자신이 5년 전 해외에서 살았던 작은 별장과 흡사한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외부 경관이 달라 의아해하며 말했다.“5년 전과 똑같은 별장을 지었어요?”고청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다가 기침을 몇 번 하며 대답했다.“맞아요. 거의 차이가 없죠?”심지안은 방 안의 모든 물건을 둘러보며 고청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부드러워졌고, 마치 그를 가족으로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어떻게 하지원을 설득했어요?”그녀는 고청민이 하지원을 이용하여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못했다.“한마디 했더니 바로 승낙했어요.”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하지원은 이처럼 온 마음을 다해 고청민을 따랐다.심지안은 복잡한 마음으로 물었다.“하지원 씨에게 미안하지 않아요?”고청민은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보상해 줄 거예요.”‘보상? 어떻게 보상할 건데? 여자의 청춘을 어떻게 보상할 건데...’심지안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하지원에게는 그저 사랑이었으니까...“밤새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고프죠? 지안 씨가 좋아하는 비빔면을 준비해 뒀어요. 게살 비빔면이요.”고청민은 웃으며 심지안에게 말했다.“지안 씨가 분명 좋아할 거예요.”심지안은 배가 고파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탁에 다가가기 전, 그녀는 게살 비빔면의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고청민은 게살 비빔면을 그녀 앞에 놓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먹어요. 제철 대게는 정말 맛있거든요.”심지안은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맛있었다. 커다란 게살이 면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미를 더했다.고청민의 뜨거운 시선에 심지안은 불편해하며 말했다.“청민 씨도 먹어요. 나만 보지 말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들어 면을 집어 먹으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침이 그를 멈추게 했다.연달아 몇 번의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점차 그의 가냘프고 쇠약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침이 점점 심해지자 그
집에 돌아온 후, 성연신은 성우주를 재우고 나서 긴급한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이미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성연신은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어 고청민의 상황을 물어볼까 했지만, 숙면을 방해할까 봐 포기했다.다음 날 아침, 성연신은 일찍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었다. 그는 심지안이 오늘 세움의 신제품 출시 준비로 일찍 출근할 거로 생각하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려 했다.이때 손이 미끄러져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주어 보니 액정이 나가 있었다.갑작스러운 실수에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깨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불안감이 스며들었다.성연신은 다른 휴대폰으로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부재중으로 받지 않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성씨 가문으로 출발했다.성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 성동철은 막 깨어나서 정원에서 산책 중이었다.성연신으로부터 두 사람이 지난밤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직전에 했던 말이 떠올라 이마를 찡그렸다.‘그 녀석이 설마...’성연신은 성동철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물었다.“어르신, 혹시 지안 씨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어디죠?”“해외에 있을 가능성이 크네.”성연신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말씀입니까?”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전에 했던 특별한 부탁을 성연신에게 말해주고, 동시에 고청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신은 주먹을 꽉 쥐고 심지안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지안 씨, 어디에 있어요?”“성연신 대표님, 접니다.”고청민의 평온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성연신의 신경을 자극했다.성연신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이 자식아, 지안 씨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우리는 해외에 있어요.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고청민은 계속해서 말했다.“지안 씨를 며칠만 빌리는 셈이에요. 너무 무리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 흥분하지 마세요
“네. 할아버지, 그러니 제발 막지 말아 주세요.”“지금 나와 상의하는 게 아니라 통보하는 거구나!”“할아버지, 용서해 주세요.”성동철은 입을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순간에 십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고, 무력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한참 후에야 그는 천천히 말했다.“해외 전문가와 이미 연락을 취했으니, 너는 안심하고 치료에 전념해라.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청민은 그의 고집을 읽고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갑자기 젖어 들었다.사실, 그도 할아버지와 몇 년 더 함께하고 싶었다.집에 돌아오니, 성동철이 연락한 해외 전문가로부터 답변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신의라 불리는 의사가 이미 고청민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들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청민은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성동철을 안심시키며 주제를 돌렸다.“할아버지, 해외로 며칠 다녀오고 싶어요. 오랫동안 여행을 못 갔어요.”“안 돼. 네 몸 상태로는 그렇게 멀리 갈 수 없어!”성동철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아직 민채린의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고청민은 말했다.“민채린이 해외에 있어요. 그녀가 옆에 있으면 할아버지도 안심하실 거예요.”“민채린?”성동철의 얼굴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그렇다면 민채린의 스승에게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거니?”“제 병에 대해 이미 채린이의 스승님께 여쭤봤어요.”“결과는 어땠니?”“스승님께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알려 주셨어요. 하지만 정말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래요.”성동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을 느꼈다.결국,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래. 가고 싶다면 가도 좋아.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것이 네 몸에도 좋을 거다.”게다가 민채린이 옆에 있으니, 문제가 생기더라도 신속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오늘 바로 떠나려고 해요.”“이렇게 갑자기?”“그냥 즉흥적으로 생각한 거예요. 가고 싶을 때 가야죠.”고청민은 말하며 눈치를 보지 않았다
30분 후, 성동철과 고청민이 병실에서 나왔다. 성동철은 걱정스럽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의사가 병원에 며칠 더 있으라 했잖니? 왜 말을 안 들어? 적어도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아. 치료 시간을 늦출 수도 있다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햇살처럼 부드러워 보였다.“괜찮아요. 집에 있는 의료 장비로도 충분해요.”성동철은 한숨을 쉬며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집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집에 있으면 이 녀석을 더 볼 수 있잖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고...’성동철은 운전기사에게 차를 병원 앞에 대라고 지시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병원 입구의 벤치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해했다.“지안이 여기 앉아 있지 않았니? 어디 갔지?”고청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고운 속눈썹은 한껏 아래로 드리워 있었다. 눈에 감춰진 복잡한 감정이 보이지 않게 덮여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지원이도 보이지 않네. 네가 전화를 걸어 연락해 봐.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성동철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청민에게 말하며,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부재중이었다.고청민은 하지원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바로 말했다.“지원이 오빠가 찾으러 왔어요. 아마도 지안 씨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 것 같아요. 저희 먼저 집에 가죠.”성동철은 방금 의사가 자신에게 따로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빨리 집에 가서 외국의 의료 전문가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 우리라도 먼저 가자.”‘성연신이 지안이를 데려갔을 수도 있어. 어쨌든 지안이는 다 큰 어른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넓은 승용차 안에서, 고청민이 갑자기 성동철에게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죽으면 제 심장을 지원이에게 주세요.”어차피 죽으면 남겨둘 이유가 없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일 것이다.성동철은 얼굴빛이 변하며 호통쳤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심지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하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모든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니야.”심지안은 사랑의 위대함에 감탄했지만, 그런 희생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냐하면 난 인간미가 있고, 지안 씨는 없으니까요. 임시연이 당신 앞에서 죽었을 때, 살아있던 한 생명이 죽었는데도 지안 씨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관심했잖아요.”심지안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지금까지의 무심한 태도를 거두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지원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맞아요. 임시연은 내 아이를 훔치고, 내 남자를 빼앗고, 내 결혼을 망쳤어요. 게다가 여러 번 나를 죽이려고 했었죠. 이번에 죽은 사람이 임시연이 아니었다면, 다음번에 죽을 사람은 나일 수도 있어요. 지금 임시연이 죽어서 폭죽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니까, 자기 일 아니라고 그런 쉬운 소리 하지 마세요!”처음에는 임시연의 죽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곧 심지안은 깨달았다. 임시연의 죽음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녀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임시연은 살아서 더 많은 사람을 해치려 했기에 어쩌면 이렇게 죽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고, 잠시 말을 잃었다.“지원 씨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에요. 날 냉정하다고 생각해도 좋아요.”심지안은 하지원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하지원도 불쌍한 사람일 뿐이었다. 심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로 들어가려 했다. 한 발을 내딛자, 하지원이 다시 말을 걸었다.“정말로 청민 선배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거예요? 사람 하나 구한다고 생각해 줘요... 평생 고마워할게요.”심지안은 잠시 멈칫했지만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그건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도덕적 강요에요.”심지안은 친구로
성동철은 깜짝 놀라 지팡이도 잊은 채 급히 움직였다. 카펫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휘청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집사는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남은 하인들은 손님들을 휴식 공간으로 안내했다. 연회 내내 활기찼던 분위기가 갑자기 혼란스럽고 긴장된 분위기로 바뀌었다.심지안은 찡그린 얼굴로 성동철의 뒤를 따라 고청민의 방으로 들어갔다.커튼은 빛 한 줄기도 들어오지 못하게 꽉 닫혀 있었지만, 문을 열자 짙은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하인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전원 스위치를 켜자, 방 안은 갑자기 밝아졌다.우드톤 가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옷들도 정리되어 소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심지안은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고청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심지안은 약간 열려 있는 화장실 문을 바라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이때, 하지원이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안에 있어요.”성동철은 떨리는 손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바닥에는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고청민은 욕조 안에 누워 있었다. 옷은 물에 젖어 축축하게 몸에 붙어 있었고, 두 손은 욕조 가장자리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어 원래 창백한 피부가 더욱 하얗게 보였다.고청민은 말라비틀어진 채 생기가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성동철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손가락을 고청민의 코 밑에 대어 보았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며 하인들에게 소리쳤다.“구급차가 일찍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빨리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데리고 가!”하인들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고청민을 욕조에서 꺼냈다.심지안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겁에 질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녀는 혼이 나간 하지원을 바라보았다.“청민 씨...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왜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 건가요?”이 상황이 마치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았지만, 하지원은 그 말을 입 밖에
심지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말 좀 해봐요. 정말 시연 씨가 죽길 바란 거예요? 시연 씨가 죽으면 속 시원할 것 같았냐고요!”변석환은 심지안에게 소리쳤다. 울부짖는 변석환의 두 눈은 심하게 충혈되어 무섭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큰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변요석과 성연신이 먼저 달려왔다. 성연신은 심지안을 보호하며 변석환을 몇 걸음 뒤로 밀어냈다. 성연신의 행동은 냉담하면서도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지안 씨 앞에서 임시연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마. 다시 한번 실수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하하하! 살인범을 감싸고 도는 건가요?”변석환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맞아요. 시연 씨의 죽음에는 당신과 심지안 씨도 책임이 있어요.”“퍽!”변요석은 변석환의 얼굴을 한 대 때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정신 차려. 임시연은 원래 죽어 마땅한 여자야! 더 이상 나를 창피하게 만들지 마!”변석환은 변요석을 바라보며, 맞은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중얼거렸다.“원래 죽어야 했고... 맞아... 나를 속이고 이용했어... 죽어 마땅한 여자야...”하지만 변석환은 스스로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임시연이 죄를 지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변석환은 여전히 너무나도 힘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를 미워하면서도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변요석은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의식하며 분노를 억누르고 변석환에게 경고했다.“지금 당장 성씨 가문을 떠나. 네가 정신 차리고 지안 씨에게 사과할 준비가 되면... 그때 돌아와.”변석환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비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사람들 사이로 문득 익숙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변석환은 그 그림자를 쫓아갔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변석환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고, 그제야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임시
자책하는 심지안을 보는 성연신은 가슴이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연히 아니죠. 임시연의 죽음은 지안 씨와 아무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혼자 그런 생각 하지 마요.”심지안도, 성연신도, 그 누구도 임시연이 거기서 뛰어내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임시연이 심지안 앞에서 그리고 성원 그룹에서 죽은 건 심지안과 성연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제가 잘못되어 죽는다 해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하진 않을 테니까 그걸 노리고 뛰어내렸던 것 같다.성연신도 놀라긴 했지만 직접 본 게 아니니 그리 큰 충격은 받지 않았는데 문제는 심지안이었다.물론 임시연도 죽을 줄은 모르고 뛰어내렸겠지. 그냥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감옥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뛰어내린 걸 텐데 이렇게 죽어버려서 심지안만 힘들어하고 있었다.심지안은 공허한 눈으로 성연신을 보며 웃어보려 했지만 표정이 잔뜩 굳어있어서 웃는 게 우는 것보다 더 이상했다.“당신 말이 맞아요. 임시연은 천벌 받아서 죽은 건데 내가 기뻐하는 게 맞죠.”“그래요, 안 뛰어내렸어도 경찰한테 잡혀서 자유롭진 못했을 거예요.”성연신은 심지안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내가 지안 씨더러 임시연 잡아놓으라고 한 거잖아요. 귀신이 되어도 날 찾아올 거니까 지안 씨는 아무 걱정 하지 마요.”그때 오지석이 사실은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오려 했지만 임시연이 미리 눈치를 채고 송준에게 도움을 청할까 봐 성연신이 말렸었는데 임시연이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심지안을 절대 혼자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알겠어요.”긴장이 풀렸는지 심지안이 눈을 살짝 감으며 말했다.“나 아까 제대로 못 쉬어서 좀 잘래요.”“그래요, 내가 옆에 있을게요.”“네, 할아버지랑 우주한테는 나 병원에 있단 말 하지 마요.”“네.”가족들이 괜히 걱정할까 봐 신신당부를 하고서야 심지안은 침대에 누웠다.제 앞에 앉아있는 듬직한 성연신을 보니 안심이 되는지 그렇게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한편 성연신은
그렇게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누구는 임시연을 구하겠다고 1층으로 달려 내려가고 누구는 창가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아직 살아있어요!"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심지안은 사람들의 인영이 환영처럼 눈 앞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도 어지럽고 귀에 까지 이명이 들려 온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임시연이 뛰어내리는 결말을 예상해본적은 없었는데, 3층이 아주 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층수도 아니었다.조금 정신을 차린 심지안은 사람들의 질책이 담긴 시선을 느꼈다. 그들은 저들끼리 수군대며 심지안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사모님도 너무 하시지, 어떻게 사람을 뛰어내릴 때까지 몰아붙여? 저러면 밤에 악몽 안 꾸나?""그리고 왜 자꾸 연다빈 씨한테 임시연이라고 하는 거야? 너무 간 거 아니야?""다빈 씨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럼 사모님이 살인자 되는 거야?""다빈 씨가 귀신 돼서 사모님한테 복수하겠다고 찾아올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있던 심지안은 이마에 힘을 주며 소리질렀다."내가 몰아붙인 거 아니고 본인이 뛰어내린 거야. 나랑 상관 없다고."심지안의 호통에 수군거림은 사라졌지만 그녀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매정했다.다들 "연다빈"에게 일이 생기면 심지안 책임으로 돌릴 준비가 되어있는 듯 싶었다.심지안은 애써 심호흡을 하며 현기증을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구급차를 부르려고 뒤를 돌 때 마침 이곳으로 뛰어오는 성연신과 오지석을 발견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성연신이 빠르게 다가와 심지안의 어깨를 잡으며 주드럽게 다독였다."괜찮아, 내가 왔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속눈썹이 떨릴 정도로 긴장하고 있던 심지안은 마침 다가오는 성연신을 보고 무슨 말이 라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시간이 조금 흘러 심지안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흰 벽과 소독약 냄새, 그리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성원 그룹 직원 자살 사건은 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