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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5화

Author: 일설연우
“예.”

누구든 위험에 처한 이가 있다면, 그녀는 꼭 나서서 도울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봉구안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 능력에 맞는 범위 내에서 구하겠습니다.”

봉 부인은 늘 그녀에게 이르길, 이 목숨은 우선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소욱은 그녀의 그 한마디, “예”라는 말만을 신경 쓰고 있었다.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없지만, 그저 어쩐지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황 귀비 또한 그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고, 심지어 심혈을 기울여 자신의 수명을 줄이기까지 했다.

그에 비해 황후가 자신을 위해 천수의 독을 해독해 주고, 화살을 막아 준 것은 네 해 동안의 그녀의 희생에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의 마음은 오히려 황후에게서 움직였다.

어쩌면, 황 귀비는 그에게 주면서도 그에게 무언가를 바라기도 했지만, 황후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욱의 눈 속에 담긴 온화함은 다시 차가운 냉혹함으로 바뀌었다.

누가 알겠는가, 황후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게 아니라 뒤로 물러서며 전진하는 게 아니었을지.

요 며칠 그는 많은 생각을 했다.

연회장에서 황후가 자신을 위해 화살을 막아 준 것을 떠올릴 때마다, 알 수 없는 불편한 마음이 솟아올랐다.

그는 속이 깊은 여인을 싫어했으며, 그런 여인에게 끌려다니는 어리석은 사람을 더욱 혐오했다.

“짐은 그대의 마음을 알고 있소. 하지만, 짐은 그대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없소.”

“어미 집안의 영예나 그대의 오라비를 만호후로 봉하는 일, 혹은 후사를 들이는 일은 짐이 모두 들어줄 수 있소.”

‘그대의 마음?’

그가 무언가를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나, 겨우 화살 한 번 막아 준 일로 집안을 후하게 봉해 주겠다니, 제왕으로서 너무 성급한 처사가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생사를 건 싸움을 치르는 장수들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폐하, 신첩은 그런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태도는 단호했다.

소욱은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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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a Comments (2)
goodnovel comment avatar
박박난희
몇회까지가끝인가요?
goodnovel comment avatar
이호정
2025. 01. 05.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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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군의 장군 황후   제246화

    소욱은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 표정은 한겨울의 살을 에는 냉기를 띠었다. 그는 속으로 모든 것을 황후의 탓이라 여겼다.갑자기 깊은 내공을 지닌 봉구안이 그의 존재를 감지하였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는 그의 눈 속에 자리한 혐오감을 읽어낼 수 있었다.연상 또한 봉구안의 시선을 따라 황제를 바라보았고, 침상 위의 옷을 급히 집어 들고는 봉구안에게 걸쳐 주었다. 그녀는 황제가 자신의 여인을 바라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다행히도 상처는 방금 전에 감싸 두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전하를 뵙습니다.” 연상이 먼저 밖으로 나와 절을 올렸다.봉구안은 스스로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등에 난 상처가 다시 당겨졌으나, 그녀는 참아낼 수 있었다.소욱은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황후는 오늘도 고열이 가시지 않았느냐?”연상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예, 맞사옵니다.” 그녀는 어딘가 긴장한 듯 보였다. 언제 이 폭군이 들이닥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방금 전 주상과 함께 있을 때 아무런 은밀한 말을 나누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봉구안이 옷을 다 입은 후, 소욱은 연상을 지나 침상 앞으로 다가갔다. 봉구안은 침상 옆에 서서 절을 올리며 창백하고 수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소욱은 손을 들어 그녀의 팔을 안정된 힘으로 지탱해 주며 말했다.“상처가 낫지 않았으니 예를 갖출 필요는 없소.”봉구안은 속눈썹을 반쯤 내리며, 기운 없는 모습으로 말했다. “예.”“상처는 좀 나아졌소?”그가 물었다.봉구안이 그의 눈 속 혐오를 감지하지 못했다면, 정말로 그의 물음에 진정성이 담겨 있다고 착각할 뻔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아마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옵니다.”그때 연상이 발을 올리고 고리에 걸어두었다. 갑갑했던 공간이 조금은 숨을 틔우며, 분위기도 한결 부드러워졌다.“짐이 너에게 고려해 보라 하였던 일에 대해 생각해 본 바가 있소?”봉구안은 눈을 들어 그를

  • 폭군의 장군 황후   제2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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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군의 장군 황후   제248화

    봉구안의 눈에 서늘한 냉기가 서렸다. 비록 어의가 고하지 않았더라도, 소욱은 그녀가 병을 가장하고 있음을 이미 알아챘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병을 가장할 수 없었고, 이를 기회로 삼아 가짜 죽음으로 궁을 떠나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되었다. 지금은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우선 오백과 연락을 취하여 가사약을 구해야 했다. 하지만 이 궁중은 연일 삼엄한 경계라, 쉽지 않은 문제였다.한편 소욱은 황후의 열병이 대부분 가장임을 알아챘으나, 감히 이를 말할 어의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국사가 많아 그녀의 일을 따질 시간이 없었다. 생각건대, 병을 가장하는 것도 그의 관심을 얻기 위함일 터. 이전에 그녀가 자신을 위해 화살을 대신 맞았던 것을 감안하여, 그는 이를 폭로하지는 않겠으나 그렇다고 방임하지도 않을 터였다. 그날 이후 소욱은 더 이상 영화궁에 들르지 않았다. 그 대신 가빈과 강빈 두 사람이 자주 찾아오곤 했다.가빈이 말했다. “황후마마, 정말 괜찮으신 건가요? 얼마 전부터 뵙고 싶었는데, 폐하께서 병간호를 방해하지 말라 하셔서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강빈 또한 덧붙였다. “맞아요. 연회 이후로 궁중 경비가 더욱 삼엄해졌지요. 저는 단지 영화궁으로 편지를 보내려 했을 뿐인데, 그마저도 거절당했답니다.”이토록 삼엄한 경비 덕분에, 봉구안이 필요한 가사약 또한 궁에 들여보낼 수 없었다. 좋은 기회를 이렇게 놓치게 되었다. 하지만 원래도 급히 시도한 것이었기에, 헛점을 보이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연회장에서 자객이 나타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황제를 대신해 그 화살을 막은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나라가 평안해야 국경에서의 전쟁도 줄어들 것이며, 군주는 나라의 주축이기 때문이다.가빈이 말했다. “황후마마, 하루빨리 쾌차하셔야지요. 다시 한번 경마 경기를 열고 싶습니다… 이제는 제 승마 실력도 많이 늘었답니다!” 봉구안은 간단히 대답하며 넘겼다. 강빈

  • 폭군의 장군 황후   제249화

    서재에서 느껴지는 황제의 위엄은 누구라도 압도당해 고개를 숙일 정도였다.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춘 모용선은 고개를 반쯤 숙인 채, 시선을 바닥에 두고 있었다. 전각 안은 고요하여 마치 그녀의 심장 소리가 들릴 듯했다.그때, 용상에 앉아 있던 황제가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대 오라비가 군량미를 횡령하고 남의 공을 빼앗은 데다, 이를 덮으려 비밀을 아는 자들을 살해하고 사형을 남용하여 황성까지 쫓아온 일이 있다 하던데, 그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모용선은 조심스럽게 입술을 깨물었다.“신첩은 어려서부터 사찰에서 자라, 기억 속의 오라비는 올바르고 선한 사람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 오라비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은… 전혀 몰랐습니다.”황제가 그녀의 말을 중단시키듯 무심히 입을 열었다.“추석 연회, 예물 말이다.”황제의 갑작스러운 말에 그녀의 마음이 잠시 흔들렸다. 이어서, 황제는 무심한 듯 손에 쥔 상소문을 펼쳐 들고는 느긋하게 물었다.“그 일도 너와 무관하다는 말이냐?”모용선은 추석 연회가 끝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 이제 와서 황제가 그 일을 언급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곧바로 부인했다.“신첩은 해를 끼칠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폐하께서 부디 제 마음을 알아주시길 간곡히 원하나이다.”황제의 입가에서 차가운 미소가 스치듯 지나갔다.“모두들 죽으면 증거가 사라진다 생각하겠지만, 죽은 자의 몸에서도 드러나는 증거가 있는 법이다.”모용선은 숨이 멎을 듯 긴장했다.이때, 황제는 고개를 들어 모용선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그가 과거에 사랑했던 영빈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영빈을 생각하여, 스스로 고백할 기회를 주겠다.”황제는 손에 쥔 상소문을 탁자 위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그 소리에 모용선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후궁에서는 총애를 얻기 위해 온갖 수단을 쓸 수 있었지만, 황제를 어리석은 자로 여겨서는 안 되었다. 모용선은 눈에 맺힌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들었다. 투명한 진주처럼 빛나는 눈망울이 마치 황제를 바

  • 폭군의 장군 황후   제250화

    영화궁.소욱이 도착했을 때, 봉구안은 약을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소박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더욱 그녀의 기품을 차갑고 맑게 돋보이게 하여 마치 밝은 달과도 같았다. 그 약은 냄새만 맡아도 쓰디썼는데, 하물며 입에 넣었을 때야 오죽할까. 봉구안은 몸을 일으켜 절을 올리며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짐이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아직 상처가 낫지 않았으니 굳이 예를 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예, 알겠사옵니다.” 소욱은 자리에 앉아 본래 묻고자 했던 상소문을 떠올리려 하였으나, 그녀의 얼굴이 몹시 창백하고 핏기가 하나도 돌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저 며칠 보지 않았을 뿐인데, 이렇게 초췌해지다니…’ ‘이 영화궁의 하인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게야, 주인도 제대로 보살피지 않고!’ “어의가 와서 맥을 짚어 보았느냐.” 마치 무심히 묻는 듯한 말투로 던졌다. 봉구안은 그저 초췌한 표정으로 소욱을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어의가 왔었사옵니다. 신첩의 몸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하였사옵니다.” 연상이 적절하게 말을 보탰다. “폐하, 중전마마께서는 부모님을 그리워하심에 편히 쉬지 못하고 계십니다.” 봉구안은 그 말을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고 온순한 태도로 대답하였다. 소욱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잠시 뒤 무거운 목소리로 반문하였다. “추석 연회가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 너는 중궁전의 주인으로서 후궁의 귀비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 봉구안의 눈빛 속에 어두운 빛이 스쳤다. “예, 신첩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궁궐 안에 들어오면, 원래 가족 인연은 얕아지는 법이옵니다.” 소욱은 이 말을 빌미로 그녀를 추궁하였다. “그 상소문은 그대가 명절 선물에 넣은 것이냐?” 연상은 놀라서 몸을 웅크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폭군이 그녀의 이상 행동을 볼까 두려워 어쩔 줄 몰라했다. 봉구안은 침착하게 대답하였다.

  • 폭군의 장군 황후   제251화

    “사모님, 저는 단지…”교먹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맹 부인은 재빨리 그 서신들을 챙겼다.그녀는 그것들이 봉구안의 물건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봉투에 ‘내 사랑 구안이에게’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다.맹 부인은 정색한 표정으로 교먹에게 따져물었다.“지금 뭘 하려고 했던 거지? 이것들을 불태우려고 했었니?”교먹은 옷소매를 꽉 잡고 불안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대낮에 병기를 들고 무예를 수련하던 위풍당당한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오해세요, 사모님. 저… 저는 단지… 이것들을 남겨두었다가 혹여나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언니의 명성에 누가 될까 봐 그랬어요.”그 말을 들은 맹 부인은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참 세심하기도 하지. 하지만 이것들은 네 언니가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들이다. 이것들을 불태우기 전에 구안이의 의중은 물어봤느냐?”교먹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사모님, 사실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단지 언니를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으니까요. 언니는 이제 일국의 황후가 된 몸인데 혹여나 폐하께서 언니가 진작에 사내랑 평생을 약속했던 것을 아신다면…”교먹은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생각이 단순하고 어리버리한 느낌을 주는 아이였다.그래서 맹 부인도 어릴 때부터 곱게 키우고 사랑을 주었지만 지금 보니 이 아이는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단순한 아이가 절대 아니었다.“네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하물며, 네 언니는 언젠가 이곳으로 돌아올 거야.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하는 사람은 구안이어야 한다.”교먹의 두 눈이 순간 어둡게 빛났지만, 이내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왔다.“예, 사모님.”‘언니가 과연 돌아올 수 있을까?’교먹이 또 부주의란 핑계로 봉구안의 물건들을 처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맹 부인은 말했다.“네 언니의 물건들은 내가 직접 보관할 테니 넌 일단 나가 있거라.”교먹은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분명 자신의 방인데 주인

  • 폭군의 장군 황후   제25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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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군의 장군 황후   제253화

    서재.대리사경이 엄숙한 얼굴로 보고를 올렸다.“폐하, 관병들이 모용걸의 저택에서 수색해낸 장부입니다. 군량만 횡령한 것이 아니라 운성상인들로부터 뇌물까지 받은 정황이 드러났습니다.”적우부 전쟁에서 승리한 후, 남제는 홍매강의 관할권을 장악하고 선박과 매매 금지령을 내렸다. 모용걸은 그들에게 관선으로 위장하여 홍매강을 통행할 수 있는 특권을 주었던 것이다.“운성 상인들은 고가로 자철광을 적우부에 팔고 모용걸은 그들로부터 3할의 수고비를 받았던 거로 알려졌습니다.”소욱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했다.몰래 자철광을 타국에 내다 팔다니.나라를 팔아먹은 죄로 모용걸은 열 번 죽여도 모자란 놈이었다.오마분시로도 그가 저지를 죄를 처벌하기엔 부족한 것 같았다.당일, 감옥에 수감된 모용걸은 혹독한 심문을 못 견디고 모든 죄를 자백하였다.그의 말에 따르면 운성의 관료와 상인, 도적들이 결탁하여 나라가 운영하는 자철광으로 수많은 이득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관부에 납부하는 자철광은 대부분 다른 광석으로 채워졌다. 관부의 매수가가 너무 낮다는 것이 이유였다.반면 적우부에 파는 자철광은 상등품이었다.이런 비밀 거래는 이미 선황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사실을 전해들은 소욱은 화가 나서 헛웃음이 나왔다.“운성이 아주 썩어들어가고 있었구나!”분명 엄격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대리사경이 계속해서 말했다.“폐하, 모용걸 사건을 듣다 보니 몇몇 흠차 대신들의 죽음이 떠올랐습니다.”“선황께서 즉위하셨을 때, 여러 번 흠차 대신을 운성으로 보내 자철광의 채굴 과정을 감독하게 하였죠.”“하지만 그 관원들은 모두 인황산을 경과할 때 벼랑에서 추락하여 숨졌습니다.”“귀안록에 따르면 인황산은 산세가 가파르고 험준한 산봉오리로 이루어져 있어 평소에도 원혼이 자주 출몰한다는 괴담이 돌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곳을 지나던 흠차 대신들이 모두 벼랑에서 추락하여 시신도 찾지 못하게 되었지요.”“그 뒤로 황성의 대신들은 운성으로 가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었습니다.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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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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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구안은 자신이 직접 그려둔 지도를 꺼내어 소욱에게 펼쳐 보였다.“황성을 총타로 삼아 사방에 명령을 내리는 것. 이것이 바로 그들의 지령 경로입니다.”“그들의 평소 수법을 보면, 지금처럼 조정과 무림이 손잡고 그들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모든 연락선을 끊고 총타부터 지키는 것이겠지요.”“그러기 위해서는 내부 인물들을 정리하는 게 먼저입니다.”소욱이 그녀의 말을 받아 이었다.“그렇다면 우리가 그 틈을 노려 분타부터 하나씩 무너뜨릴 수 있다는 뜻이로군.”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그녀는 지도 위 몇 군데를 손가락으로 짚었다.“여기 표시된 곳들이 현재 저희가 확인한 그들의 은신처입니다.”“대부분 외진 산골이나 황량한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요. 죽산진 근처 산속 동굴처럼 말이지요.”“폐하께서도 기억하시겠지요. 예전에 황성 도관 아래에서 많은 약쟁이들을 발견했을 때를요.”소욱은 그 일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그때 봉구안은 약쟁이에게 상처를 입었고, 그가 그녀를 등에 업고 간신히 빠져나왔었다.봉구안의 눈빛이 차갑게 식어갔다.“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도관 자체가 약쟁이의 은신처였을지도 몰라요.”“그리고 기억하시겠지요. 천룡회가 황성을 공격했을 때 약쟁이 대군을 풀었는데, 그 시각이 바로 늦은 밤이었어요.”소욱은 그녀가 전하려는 의미를 곧장 알아차렸다.그는 지도 위에 찍힌 지점들을 살펴보았다.“은신처의 위치와 약쟁이들의 활동 시각을 보면, 그 자들은 어둠 속 환경에 익숙한 존재들이겠구나.”봉구안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어둡고 외진 곳이야말로 약쟁이들의 은신처로는 가장 알맞은 곳일 거예요.”“저희가 죽산진에서 약쟁이 소굴을 조사했을 때도, 산속 동굴 안은 손을 뻗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했지요.”“강주에서 발견한 은신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연이라고 보기엔 너무 겹치는 것들이 많아요.”소욱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그렇다면… 이 사실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겠느냐?”봉구안은 냉정한 눈빛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9화

    봉구안은 놀란 듯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황성에도 홍련초가 자란다고요?"소욱은 곧바로 진지하게 대답했다."누가 심었는지,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모른다. 서쪽 교외에 사람을 보냈으니 곧 소식이 올 거야."봉구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소욱은 그녀의 그릇에 반찬을 더 담으며 말했다."일단 밥부터 먹으렴. 요즘 부쩍 더욱 말라 보이는구나. 아이를 품은 몸이라면 더 잘 챙겨야 하지."하지만 봉구안의 눈빛은 여전히 다른 데 머물러 있었다."혹시… 열무신의 소식은 아직도 없는거죠?"소욱은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서둘러 그녀가 더 걱정하지 않도록 화제를 돌렸다.소탁을 황성으로 데려온 뒤 그는 곧장 태의원을 불러 진찰을 받게 했다. 하지만 상처가 눈에 있는 탓에 회복이 쉽지 않았고 지금은 사실상 눈이 먼 사람처럼 지내고 있었다. 혼자 사는 데 어려움이 컸지만, 하녀를 붙여 주겠다는 제안도 번번이 거절했다.봉구안은 차분하게 물었다."폐태자께서는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나요?""마땅한 집을 하나 찾아 그곳에 머물게 하였다. 혹시나 있을 위험을 대비해 그림자 호위도 붙여 두었다."그가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단순한 걱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소욱이 다시 입을 열었다."예전에 널 시중들던 연상을 혹시 기억하느냐?"봉구안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되물었다."연상… 기억하죠.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여쭤 보시는 거죠?"소욱은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요 며칠 사이 그 아이가 소탁을 여러 번 찾아갔다는구나. 꽤 신경을 쓰는 듯했다."봉구안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그게 그렇게 문제될 일인가요?""그 아이는 아직 시집을 안 가지 않았느냐."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봉구안은 곧장 말을 끊으며 단호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론 연상은 궁을 떠난 뒤 곧장 진가 저택으로 돌아갔습니다. 혼자서 글씨와 그림으로 생계를 꾸려 왔고요. 살림은 넉넉지 않지만 나름대로 삶의 방향은 확실합니다. 진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뜻을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8화

    녕비는 자기가 무슨 심각한 말을 했는지도 모른 채 해맑게 웃으며 현비를 바라보았다.“언니, 우리 자매처럼 지냈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남한테 덜미 잡히기 전에 차라리 폐하께 먼저 말씀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어차피 결백한 사람은 당당해도 되는 법이지 않겠어요?”“홍련초는 그 자체로는 죄가 없는 약초예요. 죄가 있는 건 그걸로 독을 만든 자들이죠.”“언니처럼 착한 분이 약쟁이랑 엮일 리가 없잖아요, 그쵸?”그녀의 웃음은 현비의 눈에 유난히 싸늘하고 따갑게 느껴졌다.현비는 얼굴이 희미하게 질려가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녕비, 네가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맹세컨대 내가 마시는 약은 약쟁이 사건과는 정말 아무 관련도 없어.”녕비는 굳이 대꾸하지 않은 채 조용히 말을 이었다.“제가 언니를 믿느냐 마느냐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폐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느냐죠.”현비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깊은 숨을 고르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맞는 말이야.”“자, 할 말은 다 했으니까 전 이만 자녕궁으로 가볼게요. 태후마마께 기도드릴 시간이네요. 굳이 배웅하지 않으셔도 돼요.”녕비가 자리를 뜬 뒤, 곁에 있던 시녀 동하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마마, 녕비 마마 말씀이 틀린 것도 아니에요. 폐하께서 약쟁이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고 계시다 하니, 홍련초가 얽히는 일은 아무래도 너무 커요.”현비의 눈빛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그녀는 그저 이 궁 안에서 살아남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녀는 그 어떤 죄도 짓지 않았다. 정말로 아무 잘못도 없었다.“…종이랑 붓을 준비하거라. 폐하를 뵙기 전에 아버지께 먼저 편지를 써야겠다.”“예, 마마.”……그날 밤.자유각.소욱은 이날 밤도 자유각에 머물며 봉구안과 시간을 보내려 했다.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은 상소문을 검토하는 데 쓰였고 그녀 곁에 있어도 여유를 누릴 틈은 많지 않았다.그는 문서를 펼쳐든 채 농담처럼 말했다.“황제가 된 건, 아마 전생의 업보였던 모양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7화

    그해 봉구안은 스스로 천지설산에 올라 자욱화를 채취하려다 목숨을 잃을 뻔하였다. 그때 그녀를 구해준 이가 바로 염 신의였다.그 후 인연이 닿아 둘은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 무렵 염 신의는 약쟁이 독의 해독제를 연구하고 있었다.이에 봉구안은 그를 황성으로 데려왔다.그는 예전에도 한 차례 해독제를 만들어낸 바 있었으나, 중독자들에게 써보았을 때 뚜렷한 효과는 없었다.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진정한 해독제가 완성된 것이다.분명 기쁜 소식이었다.“염 신의 말로는, 홍련초 덕분에 그동안 풀지 못했던 원리를 비로소 깨달았다고 합니다.”“이미 중독자들에게 해독제를 복용시켰고 모두 회복되었습니다. 장순의 어머니까지도요.”장순은 아직 어린 유생이었으나, 과거 제후국들이 남제를 포위했을 당시 봉구안이 특별히 데려갔던 소년이었다.그는 적국을 향한 설전에서 통쾌한 활약을 펼친 바 있었다.그의 어머니는 오래전 약쟁이 독에 중독되어, 살아 있으되 정신이 나간 채 살아온 사람이었다.해독제가 생겼다는 건 의심할 여지 없이 경사였다.허나 좋은 일과 화는 언제나 함께 오는 법. 봉구안이 눈짓 하나만 보내도 소욱은 그녀의 속마음을 단박에 알아차렸다.그녀가 입을 떼기도 전, 소욱은 그녀의 팔을 가볍게 두드리며 오백에게 명을 내렸다.“사람을 붙여 염 신의를 철저히 보호하라. 해독제 이야기는 절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라.”오백은 곧장 명을 따랐다.밖에서 듣고 있던 진한길은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폐하께서는 왜 이렇게 오백을 쓰시는 걸까?’오백이 물러난 뒤, 소욱은 봉구안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해독제가 완성되었으니 약쟁이 독이 아무리 퍼져도 더는 위협이 되지 못할 것이다.”봉구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해독제는 결정적인 열쇠예요. 폐하, 문득 떠올랐는데… 담대연도 약쟁이 독에 중독된 사람이었죠?”소욱은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그 자에게도 해독제를 줄 것이다. 이제는 마음 놓고 쉴 수 있겠지?”“네.”봉구안도 지쳐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6화

    황제는 용좌에 앉아 날카로운 눈빛으로 문무백관을 훑었다.“과인이 황성을 비운 지 몇 달이 되었다. 그 사이 그대들은 더욱 해이해졌구나.”문무백관들은 몸을 낮추고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었다.소욱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조정에서 명하여 각지에서 약쟁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라 했거늘. 과인이 묻겠다. 너희는 이 사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대부분의 신하들은 멍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사건 수사는 지방 관아의 일 아닌가.그들은 각자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면 되는 줄 알았다.그중 몇몇 관료만이 그나마 성의를 보이며 대답했다.“폐하, 신이 아는 바에 따르면 이 약쟁이 사건은 독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독에 중독되면 사람은 이성을 잃고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예전에 천용회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약쟁이로 구성된 군단이 실제로 나타난 바 있습니다. 반드시 철저히 조사해야 할 사안입니다.”“폐하, 신이 들은 바에 따르면 동산국이 비밀리에 약쟁이를 양성하고 있으며, 병력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약쟁이 독도 동산국에서 흘러들어온 것일 가능성이 있습니다.”소욱은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향해 눈빛을 더욱 날카롭게 세웠다.“약쟁이 사건은 백성의 생사뿐 아니라 나라의 존망에도 관련된 일이다. 너희 가문의 안위와도 맞닿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어찌 이리 무감각할 수 있느냐.”꾸짖음을 들은 관료들은 줄줄이 엎드려 스스로 죄를 청했다.“부끄럽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소서.”소욱은 그들을 곧장 벌하지는 않았다.대신 명을 내렸다.“과인이 너희들에게 직접 수사하라 명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것이다. 오늘부터 약쟁이 사건에 연루된 자가 있다면 스스로 고하라. 훗날 과인이 직접 밝혀낸다면 그 자는 반역죄로 다스릴 것이며 구족이 멸문당하게 될 것이다.”이것이 그가 내릴 수 있는 마지막 자비였다.신하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고, 감정은 드러내지 않았다.그중 몇몇은 속삭였다.“폐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5화

    봉구안이 약쟁이의 본거지가 황성에 있을 것이라 단언한 것은 근거 없는 말이 아니었다.그녀는 남제 전역의 지도를 꺼내어 소욱에게 설명했다.“정말 막다른 길에 몰려야 그들도 허점을 보입니다.”“이번에 문제가 생긴 도시들. 그 위치와 거리로 계산해 보면, 명령이 어디에서 내려졌는지 역산할 수 있어요.”지도 위에는 이미 여러 곳의 약쟁이 거점이 붉게 표시되어 있었다.최근 발생한 약쟁이의 운송 경로와 이동 시간, 중간에서 방향을 바꾼 흔적까지 더하면 본거지가 어느 지역인지 대략 짚어낼 수 있었다.이런 판단력은 전장을 누비는 장수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었다.봉구안은 시간과 거리의 계산만으로도 적의 주둔지가 어디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그래야 곧장 본진을 겨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소욱은 그녀의 말을 다 듣고 나서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황성이라니… 정말 그곳인가.”역시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었다.……그들은 황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죽산진을 들렸다.황성으로 돌아가기 전 소탁을 보기 위함이었다.보아하니 소탁은 눈에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의원의 치료에도 차도가 없어 실명에 위험까지 있었다.소욱은 그를 데리고 황성으로 돌아가 태의에게 맡기기로 했다.이 작은 죽산진에서는 명의라 할 만한 자를 구하기도 어려웠다.자객의 습격을 떠올린 소탁은 마음이 무거웠다.그는 형인 소욱을 걱정하며 말했다.“약쟁이 때문에 미쳐 돌아가는 자들이 많아졌습니다. 폐하께선 이번 여정 내내 각별히 조심하셔야 합니다.”결국 피를 나눈 형제였기에 자신의 상처보다 제왕의 안위가 더 걱정되었다.봉구안은 하얀 천으로 눈을 가린 소탁을 바라보았다.그 모습이 유난히 연약해 보였다.그녀가 물었다.“열무신은 아직 소식이 없습니까?”소탁은 고개를 저었다.“그 자객을 쫓아 한참을 달아났습니다. 호위들도 따라잡지 못했지요. 혼자서 움직였으니, 살아있다면 다행이고… 혹시 도중에 남긴 흔적이라도 있다면 좋겠습니다.”봉구안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아무리 무공이 뛰어난 자라도,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4화

    그 닭장수들은 고문을 당해 사람 꼴이 아니었다.그들은 결국 사실대로 털어놓았다.“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저희는 정말 모릅니다. 그 닭들을 거래한 뒤, 그걸 어디에 쓰는지도 몰랐습니다.”“누가 높은 값을 제시하길래, 그냥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열무신은 무고한 이를 죽이지 않았다.그들이 실토한 이상 그는 더는 손을 대지 않았다.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마침 소탁과 마주쳤다.소탁은 내내 문밖에 서서 안에서 들려오는 말들을 모두 들을 수 있었다.소탁은 성품이 부드럽고 인자했다.이런 고문이나 심문 같은 일은 애초에 잘하지 못했다.황제가 곁에 붙여준 암위들도 제법 실력은 있었지만, 닭장수들을 떨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하지만 열무신은 달랐다.그는 그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지옥불에서 기어나온 귀신 같았다.맑은 날임에도 사람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 만큼, 존재감 하나로 공포를 자아냈다.소탁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보아하니 저들은 그저 도구일 뿐이군요.”열무신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손에 묻은 피를 닦고, 수건을 바닥에 던지듯 놓으며 말했다.“잔챙이들이지. 아무리 캐물어도 쓸만한 정보는 없었습니다.”배후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닭장수 몇 명을 잡아봤자 소용없었다.열무신의 마음엔 짙은 짜증이 피어올랐다.약쟁이의 수법은 치밀하고 조심스러웠다.겹겹이 함정을 깔아놓은 듯, 쉽게 뿌리를 드러내지 않았다.그는 입술을 꾹 다물고 어둡게 눈을 떴다.속이 타들어갔고, 분노를 쏟아낼 데도 없었다.소탁은 그의 좌절과 혼란을 읽고 조심스레 말했다.“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제 집에서 따뜻한 밥이라도 드시고 길을 나서시지요.”그의 말 뜻은, 강주로 돌아가 황제와 황후에게 상황을 전하라는 뜻이었다.하지만 어쩐지 그 말은 사형수에게 마지막 식사를 권하는 것처럼 들렸다.열무신은 입꼬리를 비뚤게 올렸다.“이런 와중에도 밥이 넘어간단 말입니까.”소탁은 전혀 언짢은 기색 없이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제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03화

    봉구안은 자신의 친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그녀는 몰랐다.그가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는 기억력을 지녔고, 내용을 명확히 꿰뚫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그의 말에 따르면, 어릴 적부터 그런 재능이 있었다고 했다.하지만 점쟁이는 이렇게 말했었다.지나치게 총명하면 오래 못 간다.그래서 그는 일부러 자신의 능력을 억눌렀고, 남 앞에서는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다.다만 집중만 한다면, 단 한 번 본 것도 전부 기억할 수 있었다.“이 십수 년간 강성에 들어온 외지인들의 성씨, 이름, 무슨 일로 들어왔는지, 머문 날짜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우선 가족을 동반하거나, 노약자와 함께 들어온 이들은 제외했습니다. 대부분은 친척을 만나거나 생계를 위해 온 이들이니까요.”“그리고 또 걸러냈습니다. 강주에 지인이 있는 사람들 말이예요. 그런 이들은 약쟁이와 같은 은밀한 조직과는 어울리지 않지요. 저들은 언제나 혼자 움직이니까요.”봉 대인의 말은 모두 일리가 있었다.결국 그의 탁월한 기억력이 있었기에, 수많은 인원을 기억하고 하나하나 대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최근 2년간 입성한 외지인에 대해서는 여관마다 숙박 기록이 남아 있어, 그것도 판단 기준이 될 수 있었다.물론 개인적인 판단이 섞이긴 했지만, 봉구안은 이 명부가 충분히 쓸 만하다고 보았다.봉 대인은 말을 덧붙였다.“폐하, 특히 수상하다 여겨지는 인물들은 모두 붉게 표시해 두었습니다.”소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럽게 말했다.“알겠다. 만약 이 명부에서 약쟁이의 흔적을 찾아낸다면, 자네는 큰 공을 세운 셈이니라.”그러자 봉구안이 단호하게 나섰다.“설령 단서가 나온다 해도, 그건 시작일 뿐입니다.”“이전에 잡은 자들도 그랬지만, 약쟁이는 각자 다른 방식과 규율을 따르고 있어, 흔적을 따라간다 해도 본거지에 닿기는 어렵습니다.”소욱 역시 같은 생각이었지만, 장인어른에게는 현재 채찍보다는 당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하지만 봉구안의 태도는 여전히 차가웠다.봉 대인의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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