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철은 모르는 번호인 것을 보고는 전화를 받자마자 소리를 질렀다.“미친놈이 감히 주제도 모르고 전화를 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죽여버릴 줄 알아!”오인혁은 강성철의 난폭한 모습에 피식 웃었다.“안녕하세요, 강성철 씨.”“내 이름은 어떻게 안 거야? 넌 누구지?”강성철의 질문에 오인혁이 재빨리 대답했다.“저는 태하 영화 제작사 소속 연예인 오인혁이에요.”강성철은 들어본 듯한 제작사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고 오인혁이 말을 이었다.“회사는 경성에 있고 진 대표님의 소개로 연락드렸어요.”강성철은 두 눈을 크게 뜨더니 애인을 뒤로하고 공손한 자세로 전화를 들었다.“진 대표님의 사람에게 제가 큰 실수를 저질렀네요.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로 전화주신 거죠?”강성철은 ‘진 대표’라는 사람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공손하게 말했다. 태하 영화 제작사는 진성 그룹의 산하 회사였고 진성 그룹은 한국에서 손꼽히는 진씨 가문의 회사였다. 오래전에 ‘진 대표’와 만난 적이 있었지만 지하 황제 강성철도 무시당했었다.강성철은 서울에서 영향력이 컸지만 서울을 벗어나면 일반인과 다름없었다. 진서준의 수하로 있으면서 지위가 높아졌으나 한국 4개 가문의 진씨 가문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했다.이때 오인혁이 입을 열었다.“저희 대표님께서 부탁할 것이 있다고 해서요.”강성철은 진씨 가문 사람의 부탁을 받을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여겼기에 무척 흥분했다.“진 대표님 부탁이라면 제 한 몸 바칠 테니 말만 하세요.”강성철이 가슴팍을 내리치며 말했다.“여자를 한 명 납치하면 돼요.”“누군데요?”“허사연이라는 여자인데, 서울 재벌가 아가씨래요.”오인혁의 말에 강성철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미쳤어... 감히 진 마스터님의 여자 친구 허사연을 납치하라고? 이건 나더러 죽으라는 말이잖아.’“진 대표님의 뜻인가요?”강성철은 손이 덜덜 떨렸다.“그럼요, 아니라면 제가 이 밤에 전화드릴 리가 없잖아요. 저는 대표님 말씀을 전달했으니 최대한 빨리해 주세요.
연결음이 한참 울린 뒤에야 진서준이 전화를 받았다.“이 시간에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진서준은 피곤한지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진 마스터님, 꼭 말씀드려야 할 일이 있어요.”강성철의 말에 진서준은 미간을 문질렀다.“무슨 일인데 그래요? 조금 전에 서울로 돌아와서 피곤한데, 내일 다시 얘기하면 안 될까요?”조금 전 진서준이 집에 돌아온 뒤, 따뜻한 물에 몸을 씻고는 허사연의 입술 끝에 쾌락을 느꼈다. 허사연과 함께 잠에 들 시간이라 거절하려 했지만 강성철이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진 마스터님, 정말 중요한 일이라 그래요.”“그럼 이쪽으로 오세요.”진서준은 한숨을 쉬며 전화를 끊었고 칫솔질을 마친 허사연이 쑥스러워하며 화장실에서 걸어 나왔다. 진서준이 외출복으로 갈아입자 허사연이 물었다.“이 시간에 나가려고요?”“강성철 씨가 급한 일로 만나자고 해서 나가봐야 해.”진서준의 말에 허사연은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일이기에 갑자기 이러는 거죠?”“나도 몰라. 급한 일인 것 같았어.”진서준은 옷을 갈아입은 뒤 허사연을 침대에 눕혔다.“먼저 쉬고 있어. 빨리 들어올게.”“알겠어요.”허사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서준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진서준은 별장 앞에 서 있었고 10분 뒤, 강성철의 차가 별장 앞에 멈춰 섰다.“진 마스터님!”“무슨 일 있어요?”강성철이 한숨을 쉬며 진서준을 바라보았다.“혹시 예전에 경성 진씨 가문과 충돌이 있었나요?”진서준이 멈칫하더니 되물었다.“경성 진씨 가문이라고요?”“네.”진서준은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진씨 가문의 외척을 두 명 죽인 적 있어요.”진서준이 고양시에 갔을 때 진씨 가문 외척과 모순이 생겨서 싸움이 일어났지만 이건 오래전 일이었기에 아무도 진서준이 벌인 일이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그럼...”강성철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진서준이 진씨 가문의 사람을 죽여서 진씨 가문 도련님이 허사연을 납치하려는 것임을 확신했다.“무슨 일인지부터 말하세요.”진서준이 목
내일 아침이 되어서야 허사연을 만나게 될 줄 알았던 오인혁은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강성철이 이렇게 빨리 임무를 수행할 줄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먼저 씻어야겠어. 상쾌한 기분으로 그 여자를 맞이하는 거야!”오인혁은 재빨리 옷을 벗어 던지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얼마 후, 진서준과 강성철이 시즌 호텔에 도착했고 곧바로 오인혁의 방으로 향했다.“오인혁 씨, 저예요.”샤워하고 나서 쉬고 있던 오인혁은 강성철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신이 났고 아무 의심도 없이 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 뒤로 나타난 건 예쁜 여자가 아니라 커다란 주먹이었다.퍽!진서준은 오인혁의 콧대를 향해 주먹을 날렸고 통증과 함께 코뼈가 끊어졌다. 오인혁이 소리를 지르려 하자 진서준은 침으로 오인혁의 목을 찔렀다. 오인혁은 입만 뻐끔거렸고 얼굴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감히 내 여자를 납치하려 들다니, 살고 싶지 않은 모양이야.”진서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오인혁을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 진서준은 오인혁을 죽이기로 진작에 마음먹었고 경성 진씨 가문의 충견도 모조리 찢어 죽일 각오가 되어있었다. 갑자기 정신이 든 오인혁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허사연을 납치하랬더니 이놈이 왜 여기에 나타난 거야?’“어... 어...”오인혁은 벙어리와 흡사한 소리를 내며 버둥거렸다.“네가 찾은 강성철이 누군지 알아?”진서준은 말하면서 오인혁의 뺨을 후려갈겼고 오인혁은 뒤로 넘어졌다. 진서준은 이빨이 여러 개 떨어져 나간 오인혁의 얼굴을 딛고는 오만하게 말했다.“강성철은 내 수하인데, 감히 수하한테 내 여자를 납치하라고 지시해? 무식하면 제대로 알아보기나 해.”오인혁은 서울 지하 황제가 진서준의 수하인 줄 몰랐기에 이 상황이 무척 당황스러웠다. 강성철은 진서준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다급히 말렸다.“진 마스터님, 이 사람은 태하 영화 제작사 연예인이라 여기서 죽인다면 진씨 가문 도련님이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죽이시면 안 된다고요.”태하 영화 제작사에서는 오인혁을
강성철은 멈칫하더니 진서준을 쳐다보았고 진서준은 오인혁을 가리키며 피식 웃었다.“머릿속에 죄다 추잡한 생각뿐인 놈이니 재미난 걸 알려주려고요.”“지금 연락해 볼게요.”강성철은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 후, 몸매가 좋은 남자 8명이 들어왔는데 팔뚝이 오인혁 다리보다 더 굵었다. 그 광경을 본 오인혁은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이러다 오늘 여기서 죽는 거 아니야?’진서준은 오인혁의 입에 약을 한 알 넣어주며 차갑게 웃었다.“이것만 먹으면 오늘 밤 힘이 남아돌 거야.”오인혁은 약을 토해내려 했지만 입에 들어간 약은 순식간에 녹았다. 몇 분 후, 구석에 기대있던 오인혁은 온몸에 힘이 솟는 것 같았다.이때 진서준이 강성철을 향해 말했다.“오늘 밤 내내 영상을 찍어서 내일 아침에 인터넷에 올리세요. 톱스타 행세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실컷 하게 해줘야죠!”강성철은 고개를 끄덕였고 오인혁을 쳐다보며 혀를 끌끌 찼다. 진서준을 건드린 대가는 어마어마했고 그동안 건방지게 행동한 오인혁의 처참한 후과였다.진서준과 강성철이 떠난 뒤, 8명의 남자는 끓어오르는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오인혁을 덮쳤다. 진서준이 침으로 찔러서 소리를 내지 못하는 오인혁은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그리고 진서준이 먹인 약 덕분에 오인혁은 오늘 밤 내내 지치지 않을 것이다.진서준과 강성철은 차에 올라탔고 진서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저에게 경성 진씨 가문에 관한 얘기를 해주세요.”강성철은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진 마스터님, 저도 사실 아는 게 별로 없어요. 진씨 가문은 4대 가문 중 하나이고 세력이 전국을 뒤덮을 정도로 규모가 커요. 정체를 숨긴 종문도 진씨 가문과 연관된 것 같더라고요. 처음에 진 마스터님을 알게 되었을 때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인 줄 알았어요.”전국을 통틀어 소년 종사는 아주 드물었고 설사 존재한다고 해도 손꼽히는 재벌가에서만 양성할 수 있었다. 강남 소씨 가문과 서남 유씨 가문에서 감히 토 달지 못할 절대적
별장 대문 앞으로 다가간 진서준은 백발홍안의 노인과 마주쳤는데 그 사람은 숨겨진 내공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했다. 진서준은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을 경계하며 말했다.“당신은 누군데 이 시간에 날 찾아온 거지?”진서준은 노인을 지그시 쳐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내 아들과 손주를 죽였으면서 감히 날 모른다고 해?”노인의 두 눈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소름 돋는 살기가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고 진서준과 원한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진서준은 노인이 거짓말하는 것 같지 않았지만 확실한 건 두 사람은 초면이었다.“내가 한두 명 죽인 게 아니라서 기억이 안 나니까 아들이랑 손주 이름부터 말해.”진서준은 경계심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노인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별장 앞에서 싸우게 된다면 허사연을 비롯한 여자들을 놀라게 할 수 있기에 최대한 일을 크게 벌이지 않으려고 했다. 이때 박만년이 입을 열었다.“박주혁, 박주신 그리고 박인성. 이제 좀 기억이 나?”진서준은 그 이름을 듣고는 멈칫했다. 가족을 몰살한 기억은 없었지만 삼성 무도 대회에서 랭킹 10위였던 남조인을 죽인 것이 떠올랐다.“박인성은 기억나지만 박주혁은 잘 모르겠군.”그도 그럴 것이 박주혁 형제는 누렁이한테 맞아 죽었기에 진서준은 그 형제를 만난 적이 없었다. 박만년을 유심히 지켜보던 진서준은 박만년과 박인성이 닮았다는 것을 눈치챘다.두 사람은 모두 눈이 작았는데 남조인에 관한 기사의 내용과 비슷했다. 외꺼풀에 작은 눈이 특징이라더니 사실이었다.진서준은 팔짱을 낀 채 박만년을 차갑게 바라보았다.“아들이 안되면 아버지가 오고 당신마저 죽으면 당신 아버지도 오는 건가?”박만년은 10여 년 전에 세상을 뜬 아버지를 떠올리더니 눈에 분노가 이글거렸다. 진서준이 도발한다고 여긴 박막년이 목청을 높였다.“이 나쁜 놈, 입을 함부로 놀린다면 갈기갈기 찢어놓을 테야!”“왜 화를 내고 그래? 설마 아버지가 돌아가신 거야?”진서준은 박만년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눈치챘기에 일부러 얄밉게 웃으며
진서준은 몇 걸음 물러나는 박만년을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왜, 내가 함정이라도 팠을까 봐 두려워?”진서준의 말이 허를 찌르자 박만년은 발끈했다.“헛소리 집어치워. 오늘 난 내 아들과 손주를 위해 복수하러 온 거야.”박만년은 몸속에 있는 강기를 모으더니 총알처럼 빠르게 날아가 진서준을 덮쳤다. 박만년의 주먹 위에 강기로 만들어낸 늑대가 두 마리 나타났다. 이것은 박씨 가문에서 5대째 내려오고 있는 늑대 권법이었는데 위력이 어마어마했다.아무리 종사라도 박씨 가문의 늑대 권법을 타파할 수가 없을 정도였기에 진서준은 박만년의 맹렬한 공격을 수비하는 것에 집중했다. 체내의 영기와 혈해가 동시에 모여들어 솟아올랐고 손바닥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박만년은 늑대 권법에도 겁먹지 않고 대응하는 진서준을 비웃었다.“박씨 가문 늑대 권법을 들어보지 못했나 봐? 30년 전, 나의 아버지는 오로지 늑대 권법으로 국내의 오급 대종사를 죽였어. 난 사급 대종사가 되었고 우리나라에서 나를 능가할 놈은 없었지.”박만년은 3년 전에 이미 사급 대종사가 되었고 권법으로 겨룰 수 있는 사람이 적었다. 유일하게 실력을 겨루어 볼 수 있는 사람은 이씨 가문의 괴물뿐이었다. 그 괴물 같은 사람은 박만년의 아버지보다 더 오래 살았기에 실력이 뛰어난 것도 납득이 되었다.하지만 고작 스무 살을 넘긴 진서준이 아무리 내공이 있다고 해도 연륜의 차이는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남조에 고수가 적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진서준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남조는 인구수가 적잖아. 내가 살았던 어느 지역과 비겨도 적으니 그중에서 뛰어난 사람이 뭐 몇 명이나 있겠어?”진서준의 말대로 큰 숲이 더 많은 새를 품을 수 있을 것이다. 남조와 대한민국의 인구수 차이는 몇만 명 정도가 아니었다. 대한민국 인구수의 10분의 1정도 밖에 되지 않는 남조는 경제나 무술 방면으로는 대한민국과 비교할 수 없었다.“닥치지 못해? 우리 남조의 역사를 네까짓 게 뭘 안다고 함부로 말해?”박만년은 남조를 위해 공헌한 사
“겨우 이 정도 실력이었어?”진서준의 담담한 말투에 박만년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젊은이한테 모욕당하기는 처음이었던 것이다.“이마에 피도 안 마른 놈, 이제 시작이야!”박만년은 울부짖으며 체내의 강기를 모아 두 주먹을 힘껏 뻗었다. 진서준은 강한 압력에 의해 두 팔이 덜덜 떨렸고 박만년은 득의양양하게 웃었다.“하, 대단한 놈인 줄 알았더니 겉만 번지르르한 거였어.”진서준의 두 주먹에 모인 영기와 혈해가 점점 흩어지고 있었지만 진서준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다. 이때 진서준이 박만년을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내가 온 힘을 다 쏟았을 것 같아?”박만년은 멈칫하더니 다시 주먹에 힘을 주며 소리를 질렀다.“이 상황에서도 센 척하고 싶어? 네가 온 힘을 다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날아갔을 거야!”박만년은 자신의 힘이 더 강하다고 믿었고 두 주먹의 강기를 감당하려면 진서준이 200퍼센트의 힘을 써야 할 것이라고 여겼다. 박만년이 승리를 예감하고 있을 때 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진기하라!”진서준의 말에 박만년은 표정이 굳어졌고 눈앞에 나타난 금색 실오라기를 쳐다보더니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네가 진을 칠 줄 안다고? 내가 이딴 걸로 겁낼 것 같아?”박만년이 소리를 질렀지만 진서준은 박만년 주먹의 힘을 빌려 뒤로 20미터 물러났다. 공중에 떠 있던 금색 실오라기가 이어지더니 반경이 3미터가 되는 원형 진을 이루며 박만년을 에둘러 쌌다. 대진중의 금색 실은 엉겨 붙어 수백 개의 칼이 되었고 금색 칼은 폭우가 내리듯 위에서 쏟아 내리며 박만년을 공격했다.투둑!박만년은 비명을 지르더니 강기로 간신히 공격을 막는 듯싶었지만 금속이 충돌하는 소리가 들리며 박만년 발밑의 땅은 점점 갈라졌다. 박만년은 아무런 상처도 없었고 계속해서 강기로 보호막을 만들었다.“이딴 게 무슨 진법이야! 쓰레기 같은 무술을 익혔군.”박만년은 금색칼의 폭격을 맞으면서도 진서준을 조롱했다. 진서준이 친 대진은 박만년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간을 끌어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박만년은 스무 살을 금방 넘긴 젊은이가 이런 실력의 소유자라는 것이 놀라웠다. 평생 권법으로 천여 번 전투했던 박만년은 오늘처럼 평정심을 잃은 적이 없었다.진서준과 60살 차이가 나지만 진서준은 나이에 맞지 않는 내공을 가지고 있었다.‘신선이 환생한 건가?’“겁먹었어?”진서준은 한 손에 검을 든 채 오만하게 박만년을 내려다보았다. 박만년의 두 눈에 공포가 서려 있었고 하는 말과 달리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내가 널 무서워할 리가 없잖아? 난 남조의 일인자이고 국안부 랭킹에 오를 만큼 강해!”박만년이 울부짖자 뼈에서 강기가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서준은 차가운 표정을 짓고는 체내에 남은 모든 영기를 천문검에 주입했다.‘축기가 없으니 힘이 꽤 드네. 사급 대종사를 너무 만만하게 봤어.’진서준은 한숨을 내쉬었다.영기가 주입된 천문검이 빛을 내뿜으며 달빛을 가르더니 박만년의 강기를 뚫고 어깨를 찔렀고 새빨간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푹!박만년은 질겁했고 뒤로 물러나려 할 때 진서준의 한쪽 주먹에 맞아 공중으로 날아갔고 흩뿌린 피는 호선을 그리며 박만년의 전패를 알렸다.“꼭 복수하러 다시 올 테니 기다려!”박만년은 바닥에서 기어가다가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 진서준은 체내의 영기와 혈해가 바닥났기에 추격하지 않았고 이 전투를 통해 사급 대종사를 상대하기 버겁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약당의 단약이 아니었다면 오늘 밤에 다친 사람은 진서준일 것이다.“수련 계획을 앞당겨야겠어.”진서준은 천문검을 거두고는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별장 안의 모든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본 진서준은 바짝 긴장한 채 별장으로 달려갔다.“박만년의 수하가 온 건가?”허사연을 비롯한 사람들이 별장 안에 있었기에 박만년의 수하가 온 것이라면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다. 진서준이 별장 안으로 들어가자 모두 잠옷 차림으로 거실에 앉아 있었다. 다행히 별일이 없었던 모양이었다.“사연 씨, 안 자고 뭐 해?”“서준 씨가 걱정되어서 그렇죠.”허사연은 진서준을 훑어보더니 멀쩡한 것을 확
진서라는 재빨리 움직여 유정에게 물을 떠다 주었다.“고마워, 서라야.”유정은 물컵을 받아 들고 천천히 마셨다.“몸은 어때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요?”진서라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이제 괜찮아.”유정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참 다행이네요.”진서라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근데 진서준 오빠는 어디 있어? 왜 안 보이지?”유정이 문밖을 바라보며 물었다.지금 유정이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은 진서준이었다.진서라는 급히 둘러대기 시작했다.“볼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어요. 금방 돌아올 거예요.”“나갔다고? 혹시 묘강으로 간 건 아니겠지?”유정도 바보는 아닌지라 진서라의 표정을 보니 뭔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이다.“아, 아니에요. 묘강은 워낙 위험한 곳이라 우리 오빠도 그렇게 무모하진 않아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서라의 마음은 누구보다 더 초조했다.벌써 하루가 지나도록 진서준에게서 아무 소식도 없었다.점심때 국제 뉴스를 본 진서라는 배논국의 묘강 지역에서 큰 소란이 있어 배논국이 결국 묘강 지역을 접수했다는 소식을 확인했다.하지만 진서준의 소식은 단 한 줄도 없었다.그러니 자연스레 진서준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그때 유기명이 방으로 들어왔다.딸이 깨어난 걸 보자 유기명은 눈물을 글썽이며 격동한 말투로 말했다.“유정아, 드디어 깨어났구나!”“죄송해요, 아버지. 걱정 끼쳐드려서...”유정의 마음속에 죄책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그동안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아버지의 머리카락은 절반이 희끗희끗해졌고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바보 같은 소리 마. 사과할 사람은 나야.”유기명은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때 내가 진서준의 말을 듣고 그 자식을 죽였더라면 네가 중독될 일도 없었을 거야.”“이미 지난 일이에요. 이제 그 얘긴 그만하세요.”진서라가 서둘러 다독였다.“그래, 그래. 이미 지나간 일이야. 더 이상 골치
조슬기의 피부 온도는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었지만 몸속은 한기로 가득했다.조슬기의 오장육부는 이미 일반인의 체온을 한창 밑돌고 있었다.옥패가 어느 정도 억제하는 기능이 있긴 했지만 효과가 너무 미미했다.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조슬기 몸속에 쌓인 한기가 완전히 폭발할 것이다.그 순간이 오면, 조슬기의 목숨도 위험해질 것이다.“이봐, 헛소리하지 마. 너야말로 정신 상태가 안 좋은 거 아냐?”신수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었고 심지어 조슬기 본인도 몰랐다.조슬기가 알면 괜히 걱정할까 봐 일부러 숨겨왔던 것이다.그런데 지금 이 녀석이 대놓고 말해버리다니,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놓은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사실을 알아챈 신수란이 충격을 받아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하면 누구도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었다.“란 언니, 오빠를 탓하지 마. 사실 오빠가 말 안 해도 난 대충 짐작하고 있었어.”조슬기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자기 몸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건 결국 자신이었다.진서준이 말한 대로 조슬기의 상태는 결코 낙관적이지 않았다.사실 진서준이 어느 정도 에둘러 말해서 그렇지 지금의 상태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수도 있었다.신수란은 진서준을 매섭게 노려본 뒤, 급히 조슬기를 달랬다.“아가씨,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종주님과 장로님들이 반드시 치료법을 찾으실 거예요. 게다가 전 대한민국에 용존이라는 천재 소년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 천재는 실력도 강하지만 의술 또한 모든 사람을 압도한다고 해요. 그런 인재라면 분명 아가씨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진서준은 듣자마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용존이라니, 그건 진서준이 아닌가?“뭐야, 그 표정은?”신수란이 진서준의 표정을 눈치채고 불쾌한 얼굴을 했다.“아, 별거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그런데, 너희는 용존에 대해 어디서 들었어?”“우릴 뭐로 보는 거야? 우리가 원시인인 줄 알아? 우리도 휴대폰 쓸 줄 알아.”신수란이 불쾌한 표정으로 받아치
진서준은 이 주제에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이 녀석은 알아서 수습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고마움을 표하고는 신수란을 바라봤다.신수란은 속에 쌓인 화를 주체하지 못해 단검을 뽑아 장강훈의 목에 겨누며 말했다.“말해! 누가 너희를 보낸 거야? 그리고 우리가 미리 산에서 내려온 걸 어떻게 알았어?”“돈 받은 만큼 일할 뿐이야. 우린 돈만 받으면 그만이고,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는 모른다니까.”장강훈은 이를 악물며 사실을 털어놨다.“말 안 하겠다 이거지?”신수란은 냉소를 지으며 더 이상 긴말하지 않고 바로 장강훈의 다리 힘줄을 단칼에 끊어버렸다.“아악!”끔찍한 비명을 지르는 장강훈의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정말 몰라! 나도 온라인에서 의뢰를 받았을 뿐, 누군지는 몰라.”“이래도 고집을 부려? 말 안 하면 내가 널 고자로 만들어버릴 줄 알아.”말을 마치며 신수란은 단검을 장강훈의 아래쪽에 갖다 댔다.그러자 장강훈은 순간 몸을 덜덜 떨며 깜짝 놀라 눈물까지 찔끔 날 뻔했다.“말할게, 말할게!”머리가 잘리거나 피가 나는 건 참을 수 있어도 그 부위만큼은 절대 잃을 수 없었다.“우리에게 조 아가씨를 납치하라고 시킨 사람은...”그 순간, 장강훈은 갑자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검은 피를 뿜어내고 그대로 푹 쓰러졌다.“죽은 척하지 마!”신수란은 앞으로 다가가 장강훈을 툭 밀었다.하지만 장강훈은 이미 숨통이 끊어져 완전히 사망한 상태였다.“진짜 죽었네.”신수란은 생각지 못한 상황에 동공이 순간적으로 수축했다.분명 조금 전까지 멀쩡했는데 어떻게 갑자기 죽은 걸까?그 광경을 본 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상황을 대충 이해했다.묘왕은 죽었지만 묘강의 사수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진서준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장강훈의 머리가 갑자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그 모습은 마치 머릿속에 뭔가가 있는 듯했다.신수란이 앞으로 다가가 확인하려는 순간, 장강훈의 귀에서 새까만 지네들이 한 마리씩 기어 나오기
갑자기 쓰러진 장강훈을 바라보며 현장 사람들은 전부 멍해졌다.이게 무슨 상황이지?본래 시나리오대로라면 저 건방지고 거만한 청년이 장강훈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마지막엔 처참하게 죽어야 하는 거 아닌가?그런데 저 극악무도한 악당 장강훈이 갑자기 바닥에 쓰러지다니, 모두의 예상을 빗나간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모두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얼이 빠져 있었다.심지어 신수란조차도 미간을 찌푸리며 이 장면을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네놈이 감히 암기로 날 공격해?”장강훈은 고통에 찬 얼굴로 진서준을 노려봤다.그 눈빛은 당장이라도 진서준을 산 채로 잡아먹을 기세였다.“내가 말했지? 넌 나와 겨룰 자격이 없다고.”진서준은 여전히 평온하게 말했다.“암기라니? 너도 저놈들처럼 제대로 된 인간은 아니었구나.”신수란이 콧방귀를 끼며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신수란 복부의 상처는 바로 암기의 공격으로 다친 것이었다.그리고 방금도 장강훈이 신수란을 비겁하게 기습하려 했다.그래서 신수란은 이런 비열한 수법을 쓰는 인간들에게 혐오감을 느꼈다.진서준은 신수란의 말을 듣고 살짝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굳이 반박하지 않고 대신 속으로 이 여자가 멍청하긴 짝이 없다고 생각했다.진서준이 두 여자를 구하려고 선뜻 나섰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같은 인간쓰레기 취급을 당하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어서 저놈을 해치워! 암기든 뭐든 다 부숴버려! 내 무기와 똑같은 걸 쓸 자격이 있기나 해?”장강훈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장강훈은 진서준이 자기와 같은 종류의 암기를 사용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그러나 진서준이 사용한 건 단순한 은침 두 개였을 뿐이고 다만 그것이 일반 은침보다 좀 더 단단했을 뿐이었다.남아있던 부하들은 우르르 진서준에게 몰려들었다.개미도 많이 모이면 코끼리를 잡는다고 했다.하지만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아무리 개미가 많아도 결국 희생될 뿐이었다.진서준이 발을 내딛자마자 서 있던 바닥이 산산조각이 났다.이어지는 진서준의 움직임은 유령처럼 사
결연한 표정을 지은 조슬기를 본 장강훈은 순간 당황했다.“뭐든 다 협상할 수 있어. 제발 흥분하지 말자.”장강훈이 받은 임무는 조슬기를 데려가는 것이었고 그녀를 절대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만약 조슬기가 다친다면 그야말로 큰일 날 상황이었다.“다시 물을게, 내 조건 받아들일 거야, 말 거야?”조슬기가 단호하게 묻자 결국 선택지가 없었던 장강훈은 마지못해 동의했다.“좋아, 저 여자는 보내주겠어.”“안 돼요, 아가씨. 절대 저 녀석들과 함께 가면 안 돼요.”신수란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만류했다.“란 언니, 걱정 마세요. 이 사람들은 절대 저를 함부로 다치진 않을 거예요. 언니는 먼저 몸부터 챙기세요.”조슬기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도대체 누가 자기를 잡으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대가 이토록 신중히 행동하는 걸 보니 이 사람들이 자기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건 확신했다.“조 아가씨, 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 나가자.”장강훈이 손짓하며 재촉하자 조슬기는 말없이 단검을 쥐고 천천히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방 안에 있던 킬러들은 신수란을 힐끔힐끔 주시하고 있었다.하지만 조슬기가 문턱에 거의 다다른 순간, 장강훈이 갑자기 신속하게 움직였다.쨍그랑!단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얼른 이 여자를 잡아!”장강훈이 명령하자마자 양쪽에 대기하던 킬러들이 조슬기를 단단히 제압했다.“왜 이렇게 비겁해? 약속을 지켜야지!”조슬기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조 아가씨, 내가 아까 한 자기소개를 잊었나 보네?”장강훈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여자는 생포해. 저 남자는 어디 보자, 그냥 죽여버려.”장강훈은 진서준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명령을 내렸다.“오빠,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이런 일이...”조슬기는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했다.“이봐, 당장 창문으로 뛰어내려. 내가 시간을 끌게.”신수란이 이를 악물며 지시했다.지금의 신수란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시간을 끄는 일
“너희 둘 다 도망갈 생각 말고 얌전하게 따라오기나 해!”말을 마친 남자가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왔다.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남자는 한눈에 봐도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신수란의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났다.“장강훈!”최근 서남 지역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악당인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은 물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자였다.게다가 그 실력은 상당히 강력해서 범행은 그야말로 대담하기 그지없었다.국안부에서도 장강훈을 체포하려고 사람을 보냈지만 장강훈은 유령처럼 자취를 감췄고 한 달간 수색했음에도 잡히지 않았다.신수란은 설마 자신들을 습격한 자가 바로 악당 장강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국안부의 분석에 따르면 장강훈의 실력은 지의방에 오를 정도로 강력했다.“오호라? 너희 곤륜산 애송이들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이거 참 영광스러운 일이군.”장강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란 언니, 장강훈이 누구죠?”조슬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자 신수란이 이를 갈며 대답했다.“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짐승 같은 놈이에요.”장강훈의 말을 듣자 진서준의 눈에도 흥미로운 기색이 스쳤다.이 두 여자가 곤륜 종문의 사람이란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곤륜은 대한민국 4대 최정상 은세 종문 하나인데 그 제자들은 대체로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이번에 내려온 건 아마 한 달 후에 있을 숭산 대회 때문일 것이다.“이봐, 아가씨. 말은 가려서 하는 게 좋을걸?”장강훈이 차갑게 경고했다.“우리가 잡으려는 건 이 여자야. 넌 그냥 덤으로 딸려 온 상품일 뿐이고. 내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너 따위는 내 노예로 삼아도 된다 이거야.”장강훈이 쌀쌀하게 비웃으며 말했다.최근에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 중에 수많은 여자를 노예로 붙잡아 둔 상태였다.신수란처럼 보기 드문 미인은 장강훈이 탐나지 않을 수 없었다.“더 개소리를 지껄여봐. 내가 네 입을 찢어버릴 테니까.”신수란의 얼굴이 분노로 시퍼
“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별말씀을요. 얼른 옷 입혀주세요. 깨어나면 괜히 또 뭐라고 할 테니까.”진서준은 창가로 걸어가 바깥을 내다보았다.그림자 몇 개가 하나둘 진서준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모텔로 들어섰다.“귀찮게 됐군.”진서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겨우 잠깐 눈 붙였더니 이런 귀찮은 일이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곧이어 조슬기는 신수란의 옷을 전부 갈아입혔다.“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괜찮으니까 얼른 떠나세요.”진서준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이건 그냥 지나가던 인연일 뿐, 두 사람을 구해준 것만으로도 이미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었다.진서준은 낯선 사람들 때문에 더 이상 골치 아픈 일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지금 짊어진 문제만으로도 진서준은 이미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벅찼다.“알겠어요.”조슬기도 쫓아오는 자들이 무서워 서둘러 신수란을 데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바로 그때, 신수란이 눈을 떴다.“어라? 아가씨, 여기가 어디예요?”눈을 막 뜬 신수란은 아직 정신이 멍한 상태였기에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까맣게 잊었다.“란 언니, 깨어나셨군요. 몸 상태는 좀 어떠세요?”조슬기는 기뻐하며 급히 물었다.“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신수란은 자기 상처를 만지며 말했다.놀랍게도 상처에서 더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이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처치해도 피가 멈추지 않았었다.“오빠, 그럼 저희는 이제 가볼게요.”조슬기가 진서준에게 작별 인사하자 그제야 신수란도 진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신수란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자 표정이 살짝 변했다.“네가 날 구해준 거야?”“맞아.”진서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흥!”신수란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내 몸을 본 거, 네가 날 구해준 걸로 눈감아 줄게.”“란 언니,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죠. 오빠가 아니었으면 언니는 아마 지금쯤 사경을 헤맸을 거예요.”조슬기는 불쾌하다
“란 언니!”신수란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조슬기는 깜짝 놀라 황급히 신수란을 침대에 눕혔다.하지만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조슬기는 결국 간절한 눈빛으로 진서준에게 도움을 청했다.“오빠, 제발 우리 란 언니를 좀 도와주세요. 얼마를 드리든 상관없으니 제발 란 언니를 살려주세요.”눈물범벅이 된 조슬기의 얼굴은 누가 봐도 마음이 아려올 정도였다.진서준은 여자 눈물에 약했지만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하나만 묻죠, 왜 내 방에 온 거죠?”조슬기는 말문이 막혀 말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우리는 지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어요. 아까 여기 들어올 때, 프런트에서 이 방이 비어 있는 것 같아서 잠시 숨어 있으려고 했어요.”진서준은 바닥의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숨어 있으려면 최소한 자국은 남기지 말아야죠. 이렇게 허술하게 움직이면 쫓아오는 사람들에게 초대장이라도 준 격인데요?”조슬기가 뒤를 돌아보니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그녀는 금세 얼굴이 창백해지며 다급하게 외쳤다.“큰일이에요. 그럼 그 사람들이 곧 여길 찾아오겠네요.”어리바리한 조슬기의 모습을 보고 진서준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일단 이 사람부터 치료할게요. 상처가 낫는 대로 빨리 떠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감격에 겨워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진서준은 은침을 알코올로 소독한 후, 호주머니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냈다.병 안에는 하얀 가루가 들어 있었다.“이 여자 옷 좀 벗겨주세요.”“아, 네.”조슬기는 진서준의 말을 따르며 재빠르게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겼다.단숨에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겨내자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가 다시금 드러났다.물론 비밀의 숲을 포함한 그 신비로운 부분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났다.진서준은 갑자기 밀려온 충격에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이 여자는 진짜 멍청한 걸까, 아니면 일부러 저러는 걸까? 상처는 복부에 있는데 왜 바지를 벗기는 거지?’“바지는 벗길 필요 없어요
“누가 이기고 질지는 아직 모르는 거잖습니까.”고인권이 끼어들었다.“맞아, 우리 8대 특전대도 호락호락한 부대가 아니야.”“전신전 놈들에게 우리 8대 특전대의 실력을 똑똑히 보여주자.”나머지 사령관들도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였다.갑작스레 열정이 불타오르는 이들을 보며 상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좋아, 한 달 후에 자세한 일정을 알려주마.”영상 통화가 끊기자 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각자의 기지로 돌아가 장병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소식을 들은 모든 장병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전신전을 반드시 이겨야 해. 절대 진 교관님을 실망하게 하지 말자.”모두가 열기를 띠며 훈련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했다.한편,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서남 국경.진서준은 올기를 타고 국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마을은 크지 않았고 진서준은 대충 모텔을 한 군데 찾아 방을 얻었다.방에 들어서자마자 진서준은 침대에 몸을 던지고 곯아떨어졌다.진서준은 너무 피곤했다.어젯밤의 전투로 지금의 진서준은 모든 힘을 소진한 상태였다.올기가 진서준을 등에 태우지 않았더라면 진서준은 아마 울창한 숲속 어딘가에서 쓰러졌을 것이다.진서준이 잠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느닷없이 열렸고 이어 아름다운 두 여자가 방으로 들어왔다.그중 청순한 외모의 여자는 나이가 스무 살 조금 넘어 보였다.다른 여자는 타이트한 검은색 옷차림에 글래머와 세련된 얼굴을 지닌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다.하지만 지금 그 여자의 얼굴은 창백했고 배 부분에선 피가 잔뜩 흘러내리고 있었다.딱 봐도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사람이 있네요.”두 여자가 곤히 자는 진서준을 보자 살짝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아래층 투숙 기록을 확인했을 땐 이 방에 투숙객이 없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저 사람 자고 있으니 조용히 움직이죠. 깨우지만 않으면 될 거예요.”젊은 여자가 말했다.“근데 자칫 중간에 깨어나면 어쩌죠...”성숙한 여자는 이를 악물었다.“란 언니,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