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정적이 흘렀고 모든 시선이 허윤진에게 집중되었다. 밥을 먹고 있던 허윤진도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고개를 들었다.“왜 그런 눈빛으로 보세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게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닌 것 같은데...”허윤진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허사연이 미간을 찌푸린 채 대답했다.“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서 그래.”진서준은 허윤진이 좋아하는 남자가 누군지 궁금했고 허윤진이 다른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언짢았다. 이유 모를 집착과 소유욕은 진서준을 끊임없이 괴롭혔다.진서준이 좋아하는 사람은 허사연뿐인데 왜 허윤진마저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다 저만 보고 있어서 그런지 너무 부끄러워요!”허윤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자 허사연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밥 먹은 뒤에 나한테만 알려줘. 우리 윤진이도 다 컸네, 좋아하는 사람도 생기고 말이야.”허윤진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언니, 난 어릴 적부터 남자를 좋아했지, 여자한테 관심 없다고!”“어머, 그랬어?”허윤진의 말을 듣고는 모두 깔깔 웃어댔고 답답했던 공기가 삽시에 유쾌한 분위기로 뒤바뀌었다. 식사를 마친 뒤, 진서준이 그릇과 수저를 치웠다.“오빠는 쉬고 있어, 내가 할게.”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미소를 지었다.“아니야, 우리 둘이 같이하면 더 빠를 거야.”“좋아!”진서라는 신이 나서 진서준과 함께 주방으로 향했다. 한편, 허사연은 허윤진을 데리고 별장 앞마당으로 나왔다.“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려줘.”허사연이 묻자 허윤진은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언니, 내 말 듣고 화내면 안 돼.”방에서 한참 동안 고민했던 허윤진은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더 참다가는 미쳐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내가 왜 화를 내겠어.”허사연이 미소를 짓자 허윤진은 심호흡하고는 말했다.“그럼 언니한테 솔직하게 말할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진서준 씨야.”허사연한테 알려주면 뺨을 맞을까 봐 걱정했던 허윤진은 말을 마친 뒤 두 눈을 질끈 감
허윤진은 제일 궁금한 점에 관해 물었다.“그럼 언니는 화도 안 나고 질투도 안 나?”허윤진은 진서준과 허사연이 꼭 붙어있을 때마다 속상했었는데, 친동생이 자신의 남자 친구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허사연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처음에는 그랬었지만 지금은 괜찮아.”허사연이 미소를 짓자 허윤진은 깜짝 놀라면서 두 눈을 크게 떴다.“뭐라고?”‘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지?’허사연은 농담 삼아 지난 일을 꺼냈다.“진서준이 우리 아빠를 구해줬을 때, 우리 두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다고 했었잖아.”“아니, 그 말은 웃어넘겼잖아.”이때 허윤진이 허사연의 손을 잡더니 물었다.“언니, 설마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어?”친자매가 한 남자와 결혼하게 된다면 무조건 소문이 퍼져서 난리 날 것이다.“나도 그저 넘기려고 했었는데, 네가 서준 씨를 향한 마음이 보이니까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어. 네가 다른 남자랑 결혼하면 괴롭힘당할까 봐 걱정했었는데 서준 씨랑 결혼하면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잖아.”허윤진은 허사연의 말을 듣더니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친자매가 한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받아들인 허사연이 대단해 보였다.“윤진아, 서준 씨랑 지내보면서 너도 알겠지만 일반인은 아니잖아. 앞으로 서준 씨 곁에 다른 여자들이 몰려들 거야. 강한 남자한테는 내조를 잘하는 여자가 한두 명이 아닐 테니 서준 씨와 끝까지 함께하려면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허사연이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우리 둘이 힘을 합쳐서 서준 씨가 다른 여자를 봐도 흥미가 생기지 않게 노력해야 해. 우리는 친자매니까 다른 여자에 비하면 유리하다고 볼 수 있어.”허윤진은 안절부절못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언니, 그럼 앞으로 형부 옆에 다른 여자가 함께할 수 있다는 뜻이야?”허사연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지금도 서준 씨 옆에 여러 여자가 붙어있잖아. 김연아, 한보영, 유정 그리고 서씨 가문의 그 여자까지...”허윤진은 주먹을 꽉 쥐고는 씩씩댔다.“우리 두 사람으로도 부족
남해 항공 회사는 규모가 작은 편이긴 했지만 전 세계 500대 기업 순위에 들었다. 그런 회사를 단시간 내에 망하게 할 사람이라면 손꼽히는 재벌가의 사람일 것이다.그 남자의 건방진 말에 사람들은 수군거렸다.“비행기를 타는데 선글라스를 왜 끼는 거야? 너무 구려.”“조용히 해. 남해 항공 회사를 망하게 손 쓰겠다잖아.”“그렇게 돈이 많으면 전용 비행기를 샀겠지. 그럴 돈도 없으면서 허세 부리네.”구경하던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찼다. 재벌가 사람들은 일반 비행기의 비즈니스석 대신 전용 비행기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이런 소란을 피울 리가 없었다.“뻔하지, 서비스업 직원들한테만 화풀이하는 놈은 인생 글러 먹었어.”허윤진은 선글라스를 낀 남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주위에서 수군거리는 소리에 자존심이 상한 그 남자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닥쳐! 너희들 내가 누군 줄 알고 함부로 입을 놀려? 내 정체를 알게 되면 당장 무릎부터 꿇으려 할 거야.”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고객님, 진정하세요. 곧 이륙 시간이라 탑승구를 닫아야 하니 이코노미석이 불편하시다면 내일 항공편으로 바꿔드릴게요.”여승무원도 점점 인내심을 잃어갔다.“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정말 내가 누구인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그 남자가 선글라스를 벗자 뭇사람들은 깜짝 놀랐다.“어머, 오인혁이잖아!”“이상한 랩으로 갑자기 인기가 많아진 그 사람이네.”“곁에 있는 여자가 오인혁 여자 친구인가?”오인혁을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어떤 여성 팬들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오인혁 곁으로 다가갔다. 진서준은 평소에 영화와 예능을 즐겨보지 않았기에 그 사람이 오인혁이든 육인혁이든 신경 쓰지 않았다.주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오인혁은 전형적인 랩과는 다른 스타일의 랩으로 주목받았던 것 같았다. 이때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유명한 연예인이야?”“네, 국내에서 알아주는 톱스타죠.”허사연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회사에서 출시한 신제품 홍보대사로
“그깟 보상 때문에 이러는 줄 알아? 내가 반 시간 내에 쓴 신곡을 발매해도 당신 회사 한 달 수입 정도는 번다고!”오인혁 곁에 있던 여자가 나서서 말렸다.“인혁아, 진정해. 두 시간 정도만 참으면 서울에 도착할 거야.”진서준은 귀에 익은 목소리에 뒤돌아 그 여자를 쳐다보았다.“어쩐지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 같다 했어.”“아는 사람이에요? 누군데요?”허사연이 묻자 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사연 씨도 만난 적 있는 사람이야. 저 여자 조해영이잖아.”진서준과 조해영은 서울에서 큰 충돌이 있었던 사이기에 김연아도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정말 조해영이잖아? 저 여자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오인혁이랑 가까운 사이인가 보네.”김연아가 조성우 부부와 친하게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조해영과도 만나게 되었다. 김연아는 조해영이 제멋대로인 사람이라고 느꼈다. 만약 조성우가 서울에서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면 조해영은 진작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진서준이 일행과 얘기를 나눌 때, 조해영과 오인혁이 걸어들어오더니 진서준 바로 옆에 있는 자리에 앉았고 조해영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진서준과 시선이 마주쳤다.“진서준 씨, 여기서 다 뵙네요.”조해영은 깜짝 놀라면서 진서준을 쳐다보았다. 이창훈과 고양시에 갔을 때 진서준과 탁현수가 겨루는 모습을 보고는 진서준한테 복수하려던 계획을 접어야만 했다.진서준은 너무나도 강해서 조해영이 평생을 다 바쳐 노력해도 이길 수 없었다. 진서준은 그날에 조해영이 온 줄 몰랐기에 서울에서 만났을 때의 기억만 떠올랐다.진서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래서 뭐요?”오인혁은 진서준의 말을 듣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조해영은 오인혁의 여자 친구이기에 다른 사람이 조해영을 무시하는 건 오인혁을 무시하는 것과 같았다.“해영아, 네 친구야?”조해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아니, 우리 큰아버지 친구야. 예전에 한 번 만나 뵌 적이 있었을 뿐이야.”조해영은 진서준을 두려워했기에 오인혁과 진서준 사이에 충돌이 생기는 것을 막고
오인혁은 진서준이 조해영에게 사과할 때까지 그만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만약 두 사람이 계속 소란을 피운다면 비행기 내의 다른 승객의 불만을 일으킬 수 있기에 여승무원이 직접 나섰다. 그런데 여승무원이 입을 열기도 전에 오인혁이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목청을 높였다.“나 오늘 기분 정말 뭐 같으니까 당장 내 여자 친구한테 사과해! 너 오늘 잘못 걸렸어.”진서준은 오인혁의 말을 듣고는 미간을 찌푸렸다.“이쯤에서 그만해. 비행기에서 던져버리기 전에 그만하라고.”비행기는 이미 이륙한 상태였고 상공 수천 미터에서 오인혁을 던져버리면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하지만 오인혁은 진서준의 말을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고 계속해서 도발했다.“어디 한 번 해보든지, 네까짓 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진서준의 실력을 아는 조해영은 식은땀이 났다. 진서준은 한 손으로도 오인혁을 들 수 있기에 식은 죽 먹기였다.“서준 씨, 저런 사람은 상대하지 않는 게 나아요.”허사연은 일이 크게 번지는 것을 막고 싶었다. 만약 누군가 인터넷에 이 광경을 찍어 올린다면 오인혁의 순정 팬들이 진서준을 모욕할 것이고 극성팬들은 진서준의 정보를 캐내 직접 찾아올 수도 있었다. 진서준은 누가 찾아오든 두렵지 않았지만 평온한 삶에 영향을 줄 것이 뻔했다.허사연의 말을 들은 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눈을 감고는 오인혁을 무시했다. 이때 허사연과 눈이 마주친 오인혁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오인혁이 봤던 연예인 중에 허사연처럼 이쁜 여자가 없었다고 느꼈는지 눈을 떼지 못했다.오인혁은 허사연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부담스러운 시선이 느껴진 허사연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저... 안녕하세요.”오인혁은 조해영이 곁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허사연한테 먼저 말을 걸었다. 하지만 허사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진서준의 품에 안겨있었다. 조해영은 오인혁의 모습에 아주 실망한 것 같았다.“인혁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조해영의 말에 오인혁이 미소를 지었다.“저놈 미모에 속지 말라
조해영은 화가 솟구쳐 올랐다.“오인혁, 내가 경고하는데 그 사람 건드리면 정말 후회할 거야.”하지만 오인혁은 허사연한테 푹 빠져서 조해영이 뭐라고 하는지 듣지 않았다. 오인혁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건 톱스타여서일 뿐만 아니라 회사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회사의 대표는 권력을 손에 쥔 사람이라 레벨부터 남달랐다. 오인혁이 근 2년 이래 회사에 큰 수익을 가져다주지 않았다면 대표를 만날 자격조차 없었다. 여론이든 생활 속의 문제든 대표 한마디면 모두 해결할 수 있었기에 대표의 권세를 믿는 오인혁은 건방지게 행동했다. 두 시간 뒤, 비행기는 서울 공항에서 착륙했고 진서준과 일행들은 비행기에서 내렸다. 진서준 곁에 앉은 여자들이 허사연과 견줄 만큼 예뻤고 깜짝 놀란 오인혁은 입을 다물지 못하더니 동공이 흔들렸다.‘저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한둘이 아니라고? 두 사람은 친자매인 것 같은데...”예쁜 여자들을 물색하고 다니는 동안 처음 이렇게 많은 여자한테 마음을 빼앗겼을 것이다. 비행기에서 내린 오인혁은 매니저한테 전화를 걸었다.“인혁아, 너 어디 간 거야?”매니저는 전화를 받자마자 물었고 오인혁은 다급히 말했다.“나 지금 서울에 왔어. 회사 인맥 중에 서울 사람 있는지 알아봐.”“남주성에서 서울로 상경해서 자리 잡은 사람은 있는 것 같은데...”매니저의 질문에 오인혁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으니까 다 알아봐!”“그래, 조금 있다가 다시 연락할게.”오인혁이 전화를 끊은 뒤, 조해영은 팔짱을 끼고는 물었다.“너 그 여자를 만나려고 이러는 거지?”오인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조해영의 허리를 감쌌다.“아니, 내가 어떻게 우리 해영이를 두고 다른 여자를 만나겠어. 나한테는 네가 전부고 너밖에 없어.”오인혁의 달콤한 말에 넘어간 조해영은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흥, 허사연을 쳐다보는 눈에서 꿀이 떨어지던데?”오인혁은 허사연의 이름을 듣고는 바로 기억했다.“시간도 늦었으니 얼른 호텔로 가자.”오인혁은 느긋하게 일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허사
강성철은 모르는 번호인 것을 보고는 전화를 받자마자 소리를 질렀다.“미친놈이 감히 주제도 모르고 전화를 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죽여버릴 줄 알아!”오인혁은 강성철의 난폭한 모습에 피식 웃었다.“안녕하세요, 강성철 씨.”“내 이름은 어떻게 안 거야? 넌 누구지?”강성철의 질문에 오인혁이 재빨리 대답했다.“저는 태하 영화 제작사 소속 연예인 오인혁이에요.”강성철은 들어본 듯한 제작사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고 오인혁이 말을 이었다.“회사는 경성에 있고 진 대표님의 소개로 연락드렸어요.”강성철은 두 눈을 크게 뜨더니 애인을 뒤로하고 공손한 자세로 전화를 들었다.“진 대표님의 사람에게 제가 큰 실수를 저질렀네요.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로 전화주신 거죠?”강성철은 ‘진 대표’라는 사람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공손하게 말했다. 태하 영화 제작사는 진성 그룹의 산하 회사였고 진성 그룹은 한국에서 손꼽히는 진씨 가문의 회사였다. 오래전에 ‘진 대표’와 만난 적이 있었지만 지하 황제 강성철도 무시당했었다.강성철은 서울에서 영향력이 컸지만 서울을 벗어나면 일반인과 다름없었다. 진서준의 수하로 있으면서 지위가 높아졌으나 한국 4개 가문의 진씨 가문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했다.이때 오인혁이 입을 열었다.“저희 대표님께서 부탁할 것이 있다고 해서요.”강성철은 진씨 가문 사람의 부탁을 받을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여겼기에 무척 흥분했다.“진 대표님 부탁이라면 제 한 몸 바칠 테니 말만 하세요.”강성철이 가슴팍을 내리치며 말했다.“여자를 한 명 납치하면 돼요.”“누군데요?”“허사연이라는 여자인데, 서울 재벌가 아가씨래요.”오인혁의 말에 강성철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미쳤어... 감히 진 마스터님의 여자 친구 허사연을 납치하라고? 이건 나더러 죽으라는 말이잖아.’“진 대표님의 뜻인가요?”강성철은 손이 덜덜 떨렸다.“그럼요, 아니라면 제가 이 밤에 전화드릴 리가 없잖아요. 저는 대표님 말씀을 전달했으니 최대한 빨리해 주세요.
연결음이 한참 울린 뒤에야 진서준이 전화를 받았다.“이 시간에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진서준은 피곤한지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진 마스터님, 꼭 말씀드려야 할 일이 있어요.”강성철의 말에 진서준은 미간을 문질렀다.“무슨 일인데 그래요? 조금 전에 서울로 돌아와서 피곤한데, 내일 다시 얘기하면 안 될까요?”조금 전 진서준이 집에 돌아온 뒤, 따뜻한 물에 몸을 씻고는 허사연의 입술 끝에 쾌락을 느꼈다. 허사연과 함께 잠에 들 시간이라 거절하려 했지만 강성철이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진 마스터님, 정말 중요한 일이라 그래요.”“그럼 이쪽으로 오세요.”진서준은 한숨을 쉬며 전화를 끊었고 칫솔질을 마친 허사연이 쑥스러워하며 화장실에서 걸어 나왔다. 진서준이 외출복으로 갈아입자 허사연이 물었다.“이 시간에 나가려고요?”“강성철 씨가 급한 일로 만나자고 해서 나가봐야 해.”진서준의 말에 허사연은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일이기에 갑자기 이러는 거죠?”“나도 몰라. 급한 일인 것 같았어.”진서준은 옷을 갈아입은 뒤 허사연을 침대에 눕혔다.“먼저 쉬고 있어. 빨리 들어올게.”“알겠어요.”허사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서준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진서준은 별장 앞에 서 있었고 10분 뒤, 강성철의 차가 별장 앞에 멈춰 섰다.“진 마스터님!”“무슨 일 있어요?”강성철이 한숨을 쉬며 진서준을 바라보았다.“혹시 예전에 경성 진씨 가문과 충돌이 있었나요?”진서준이 멈칫하더니 되물었다.“경성 진씨 가문이라고요?”“네.”진서준은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진씨 가문의 외척을 두 명 죽인 적 있어요.”진서준이 고양시에 갔을 때 진씨 가문 외척과 모순이 생겨서 싸움이 일어났지만 이건 오래전 일이었기에 아무도 진서준이 벌인 일이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그럼...”강성철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진서준이 진씨 가문의 사람을 죽여서 진씨 가문 도련님이 허사연을 납치하려는 것임을 확신했다.“무슨 일인지부터 말하세요.”진서준이 목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젊은 종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종사는 함부로 모욕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이 여자는 내 여동생이고 우리는 장씨 가문 사람이야. 너희가 정말 이런 사소한 일로 우리 장씨 가문과 적대할 작정이야? 나중에 자존심 때문에 목숨을 잃지나 말라고!”장문주는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로 냉정하게 말했다.종사는 모욕할 수 없다는 말을 장문주는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본인이 장씨 가문 사람인 이상, 종사라고 해서 그들을 쉽게 건드릴 수는 없었다.심지어 대종사라고 해도 장씨 가문과 정면으로 부딪치기를 꺼렸다.“그렇다면 네 여동생이 여기서 죽는 모습을 지켜보면 돼.”진서준은 눈을 살짝 감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사과하지 않으면 죽는 길밖에 없었다.진서준의 말은 언제나 실행에 옮겨졌다.“오빠... 제발 날 살려줘...”장문주의 여동생은 말할 기력조차 거의 다해 두 눈이 금방이라도 감길 듯했다.“조금만 버텨, 주호가 곧 올 거야!”장문주는 이제 말로 여동생을 격려하며 억지로 버티게 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간호사의 통통했던 얼굴이 공기가 빠진 농구공처럼 말라버렸다.여동생이 무언가를 말하려다 갑자기 눈을 감았고 입을 살짝 벌렸으나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영자야! 눈 떠 봐!”그 모습을 본 장문주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급히 이름을 외쳤다.아무 반응도 없는 여동생을 보자 이미 숨을 거뒀음을 알 수 있었다.“이 망할 놈아! 감히 내 여동생을 죽여? 네 피로 이 빚을 갚아야 할 거야!”장문주는 머리를 들고 광기에 찬 맹견처럼 머리카락을 곤두세우고 진서준을 쏘아보며 울부짖었다.하지만 진서준은 눈조차 뜨지 않고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푹!순식간에 장문주도 여동생처럼 바닥에 쓰러졌고 그의 허벅지에는 엄지손가락만 한 구멍이 생겼다.“아까 분명 경고했지? 종사는 모욕할 수 없다고.”진서준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천천히 말했다.장문주는 온몸을 떨며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인 눈빛을 보였다.
진서준은 배신과 약속을 어긴 사람들을 누구보다도 증오했다.그동안 바빠서 장씨 가문에 대한 복수를 미뤘지만 공교롭게도 그들이 제 발로 진서준을 찾아왔다.이번 기회에 장씨 가문과 그때 일을 철저히 결산할 작정이었다.“네가 장씨 가문 사람이었어? 참 잘됐네. 너희 가주 장조인을 여기로 당장 불러.”진서준의 냉담한 목소리에 장문주는 순간 자기가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다시 문지르고 믿기 힘들다는 듯 진서준을 바라봤다.“뭐라고? 우리 가주를 여기로 부르라고?”장문주는 이 녀석이 무슨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하는 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장씨 가문은 비록 강남에서 세 번째로 영향력 있는 가문이었지만 서씨 가문과 진씨 가문을 제외하고는 어느 세력도 감히 그들을 건드리지 못했다.그런데 이 애송이가 감히 그런 오만한 말을 내뱉다니, 장씨 가문을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 같았다.“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진서준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장문주를 향한 눈빛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그 시선에 장문주는 소름이 끼쳐 심장이 멎을 뻔했다.이렇게 살기를 띤 눈빛은 태어나 처음으로 보는 것 같았다...“좋아! 네가 죽고 싶다면 내가 기꺼이 들어주지.”장문주는 즉시 휴대폰을 꺼내 장씨 가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장문주는 장씨 가문의 외척일 뿐, 직계가 아니었다.장문주의 신분과 지위로는 장조인에게 직접 연락할 수 없었지만 장씨 가문의 다른 사람에게 연락해 무인을 데려올 수는 있었다.곧이어 장문주는 휴대폰에 대고 병실 내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전화 너머의 목소리는 차갑게 세 글자를 던졌다.“기다려!”전화를 끊은 후, 장문주는 진서준을 향해 오만한 눈빛을 보냈다.“곧 우리 장씨 가문 사람들이 올 거야. 네 놈이 어떻게 비참하게 끝장날지 두고 보겠어.”장조인이 아닌 다른 장씨 가문 사람이라는 말에 진서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이 자식이 멍청해서 자기 말을 못 알아듣는 건지 의심스러웠다.장씨 가문에서 진서준과 마주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오직
다음 순간, 진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차가운 눈빛으로 수간호사를 바라보았다.“1분 줄 테니 얼른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가족에게 네 장례 준비하라고 전화해야 할 거야.”장례 준비라니, 수간호사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단지 이 영감에게 몇 마디 욕설을 날렸을 뿐인데 장례 준비하라고 하다니, 이 남자는 너무 뻔뻔했다.수간호사 오빠를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렇게 대놓고 무시하는 건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과연 누가 장례 준비를 하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야. 우리 오빠가 곧 올 거야. 네가 끝장나는 건 시간문제야.”수간호사의 눈빛은 독기를 품고 있었고 그녀는 머릿속으로 이따가 진서준을 어떻게 괴롭힐지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수간호사가 자기 말을 믿지 않자 진서준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수간호사가 부른 사람을 기다렸다.약 30초 후, 병실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잠시 후, 수간호사와 살짝 닮은 중년 남자가 병실로 들어왔다.여동생의 참담한 모습을 본 남자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오빠, 드디어 왔어?”중년 남자를 본 수간호사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수간호사는 병원 교수인 오빠가 자기를 위해 복수해 줄 거라고 굳게 믿었다.장문주는 바닥에 흥건히 고인 피와 피가 멈추지 않는 여동생의 다리를 보다가 마침내 시선을 진서준에게 고정했다.병실 안에서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은 앉아 있는 이 청년뿐이었다.“이 사람이 병원 경호원을 때려 다치게 했고 그것도 모자라 무슨 수를 써서 내 다리를 이렇게 뚫었어. 오빠, 얼른 복수해 줘.”장문주가 침묵을 지키자 수간호사는 또 비명을 지르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다들 영자를 옆방으로 옮겨서 상처를 먼저 지혈해.”장문주는 뒤에 있는 경호원들에게 지시했다.경호원들이 수간호사를 들고 나갈 때, 그녀의 얼굴은 이미 창백해져 있었다.“아직 사과를 안 했어. 못 나가.”그때, 진서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고 그 평온한 목소
경호원 대장은 말하면서 고무 막대기로 진서준의 머리를 톡톡 치려고 했다.그러나 대장의 고무 막대기가 진서준의 머리에 닿기도 전에, 갑자기 대장의 배에서 엄청난 힘이 전해졌다.다음 순간, 경호원 대장은 고속으로 달리는 화물차에 부딪힌 것처럼 뒤로 날아갔다.쿵!둔탁한 소리와 함께 경호원 대장의 몸은 병실 벽에 박혀버렸다.대장은 이미 기절한 상태였고 온몸의 뼈 역시 모두 부러졌다.수간호사와 나머지 경호원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눈이 휘둥그레졌다.이 남자가 정말 사람이 맞은가?단 한 번의 발차기로 10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를 저렇게 쉽게 날려버리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하지만 진서준과 권해철은 이 상황에 익숙한 사람처럼 아무런 동요 없이 담담하게 치료를 계속했다.모두가 놀라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방 안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울렸다.“10초 안에 내 눈앞에서 사라져.”진서준은 권해철에게 약을 바르면서 경호원들에게 경고했다.진서준의 말을 듣고서야 경호원들은 정신을 차렸다.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몇몇 경호원은 곧바로 대장을 들어 올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허겁지겁 병실을 나갔다.순식간에 병실에 남겨진 건 멍하니 서 있는 수간호사뿐이었다.수간호사는 오랫동안 멍해 있다가 겨우 공포를 이겨내고 이성을 되찾았다.“건방진 이유가 바로 이거였어? 무도 쪽 사람인가 보네?”수간호사는 이를 악물고 흉측한 표정으로 진서준을 노려보았다.“이건 마지막 경고야, 얼른 사과해.”진서준은 수간호사를 바라보지도 않고 차갑게 말했다.“사과하라고? 꿈 깨. 이따가 너희 둘 다 무릎 꿇고 내게 사과해야 할 거야.”수간호사는 돌아서서 다시 사람을 부르려고 했다.하지만 이번엔 진서준이 기회를 주지 않았다.조금 전 진서준은 이미 수간호사에게 기회를 줬지만 수간호사는 그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진서준이 손가락을 튕기자 보이지 않는 기운이 수간호사의 허벅지에 닿았고 한순간에 수간호사의 허리보다 더 두툼한 허
철썩!중년 여자는 따귀를 맞고 제자리에서 거의 여덟 바퀴 돌았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그리고 동시에 입안의 이가 시뻘건 피와 함께 입 밖으로 튕겨 나갔다.진서준의 이 귀싸대기는 중년 여자를 어안이 벙벙하게 했다.여자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한 눈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이 병원에서 여자에게 대들거나 소리친 사람은 한 번도 없었고 여자의 얼굴에 손을 대는 사람은 더욱 있을 수 없었다.“감히 날 때려? 오늘 넌 이 폐인이랑 함께 끝장날 거야!”중년 여자의 눈이 붉게 달아올랐고 미친 사자처럼 화를 버럭 내며 고함을 질렀다.하지만 진서준은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쌀쌀한 눈빛으로 여자를 쳐다보며 한 번 더 강조했다.“사과해.”“죽어도 안 할 거야.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 지금 당장 사람을 부르러 갈 거니까.”중년 여자는 말을 마치고 돌아서 병실을 나갔다.진서준은 그 여자를 제지하지 않았다. 작은 수간호사가 과연 어떤 엄청난 배경이 있는지 지켜보려고 했다.“진 상경님,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사실 저 여자가 말한 것도 틀린 건 아니에요. 전 죽음을 앞둔 사람이에요...”눈에 서글픈 감정이 넘쳐나는 권해철은 자기 인생을 한탄하며 한숨을 내쉬웠다.여태껏 유명세를 누리며 살아온 자기 인생이 이렇게 비참하게 끝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런 우울한 말 하지 마세요. 오늘 점심 식사 전에 권 마스터님을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모습으로 치료해 드릴게요. 그리고 권 마스터님의 끊어진 경맥과 단전도 제가 해결해 드릴 방법을 찾아낼 거예요.”경맥과 단전은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진서준이 절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수간호사가 오지 않자 진서준은 간호사 스테이션에 가서 나이 많은 간호사 두 명에게 권해철의 옷을 벗기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권해철이 노인이란 사실을 알고 두 중년 간호사는 별다른 생각이 없이 권해철의 옷을 벗겨주었다.권해철의 옷이 벗겨진 후, 진서준은 어젯밤에 서씨 가문에서 준비한 고약을 꺼냈다.이 검은색 고약
진서준이 도착했을 때, 류재훈은 이미 강남을 떠나 동부 국경으로 향했다.하지만 류재훈이 떠나기 전, 간호사를 따로 배정해 권해철을 돌보게 했다.진서준이 들어오자 권해철은 몹시 흥분을 표정을 지으며 진서준을 반겼다.이전에 진서준이 이곳을 떠날 때, 권해철은 진서준이 가짜 천기각 각주의 손에 죽을까 봐 내심 걱정했었다.이제 진서준이 무사히 돌아온 모습을 보니 권해철은 가슴에 걸려있던 돌을 내리고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진 상경님...”권해철은 일어나고 싶었지만 몸의 뼈가 전부 부러져 힘을 쓸 수가 없었다.“편히 누워 계세요. 오늘 저는 권 마스터님 부러진 뼈를 맞춰주러 왔어요.”진서준이 침대 옆으로 가서 권해철에게 말했다.“정말 고마워요, 진 상경님...”권해철은 진서준의 말을 듣자 감격스러워 눈물이 고였다.“권 마스터님 상처는 저 때문에 입은 거잖아요. 제가 없었다면 권 마스터님도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예요. 오히려 제가 권 마스터님에게 미안해요.”진서준의 눈에는 죄책감이 가득했다.권해철이 진서준과 가까운 사이가 되지 않았다면 구지범도 굳이 권해철에게 손을 대지 않았을 것이다.“자, 시간이 촉박해요. 긴말은 필요 없고 이제 뼈를 맞춰줄게요.”말을 마친 후, 진서준은 침대 옆의 벨을 눌렀다.잠시 후, 몸매가 흐트러진 중년 여자 수간호사가 들어왔다.“뭐예요?”수간호사는 진서준을 보며 냉담하게 물었다.“이분 옷을 벗겨주세요.”진서준이 정중하게 말했다.“당신은 손이 없나요?”수간호사는 팔짱을 끼고 되물었다.수간호사가 이런 당당한 태도를 보이자 진서준은 순간 당황했다.환자를 돌보는 게 간호사의 의무 아닌가?그런데 그 의무를 우리가 너에게 빌며 부탁해야 하는 것처럼 건방지게 굴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진서준의 표정이 즉시 굳어졌다.“당신이 류재훈이 배정한 이분을 간호하는 간호사 맞죠?”“그게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당신이 돈을 준 것도 아닌데, 내가 어떻게 하든 내 마음이에요.”여자 간호사는 귀찮은 표정을 지
“원망하지 않아, 하지만 반드시 무사하게 전투에서 살아남겠다고 약속해.”서지은은 고개를 들고 맑은 눈동자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응.”진서준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더 이상 혼자만을 위해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진서준의 아버지는 신농산의 금지구역에 갇혀 그의 구출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진서준의 여동생 진서라 몸속의 독소도 진서준이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임씨 가문과 서씨 가문에서 각각 약초 하나를 제공한 지금, 필요한 약초는 아직 일곱 가지가 남아 있었다.진서준은 이번 대한민국 무도 위기가 해소된 후, 서남쪽 성약당에 다시 방문하기로 결심했다.어쩌면 성약당에서 필요한 약초 일부분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서준아...”서지은은 고개를 젖히고 눈을 살짝 감으며 진서준의 이름을 부드럽게 중얼거렸다.달빛을 받으며 품에 안은 아름다운 여성을 바라보는 진서준의 숨결이 조금 가빠졌다.“응...”얼굴이 붉어지는 나지막한 목소리의 속삭임이 정자 안에 울려 퍼졌다.어둠 속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이미 서광문이 명령해 철수한 상태였다.이제 주위 백 미터에는 진서준과 서지은만 남았다.순간, 분위기는 매우 애틋해졌다....경성, 국안부.진서훈은 아직 경성을 떠나지 않았다.진서훈 외에도 천자진군 송경식이 경성에 있었다.두 사람은 해외의 악당들이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경성을 지키고 있었다.“진 장군님 집안 손자 성장 속도가 좀 놀랍더군요.”송경식이 진서훈을 바라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그 아이는 요한의 자식이니까 재능이 뛰어난 건 당연한 겁니다. 게다가 창욱 어르신이 3년 동안 정성스레 교육했으니까 성장 속도가 빠른 거지요.”진서훈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이번 용멸 계획 중에 많은 해외 무인들이 호시탐탐 그 아이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는데 정말 변경에 보내 전투에 참여시키는 겁니까?”송경식이 탁자 위의 차가운 차를 집어 들자 2초도 안 돼서 차가 김을 내기 시작했다.그러나 그 맞은편에 앉아 있는 진서훈은 송
이번 해외 강자들이 대한민국을 포위해서 공격하는 건 절호의 기회였다.만약 진서준이 이번 용멸 계획에서 큰 공을 세운다면 서광문이 언급한 전용 권리를 얻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대한민국 무도계를 공격하는 해외 강자는 결코 실력이 형편없는 사람들이 아니었다.국안부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이번에 공격에 참여한 해외 강자들은 기본적으로 지의방과 인의방에 오른 강자였다.대한민국 국안부의 종사 수는 본래 많지 않은 데다 지의방과 인의방에 오른 사람은 더욱 적었다.이번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국안부는 산이나 농촌에 은거하고 있는 구시대 종사를 여러 명 초청했다.하지만 서씨 가문 같은 명문대가 내의 종사들은 거의 출동하지 않았다.그 이유는 단순했다. 가문 내 종사가 출동한 틈을 타서 다른 세가에 습격당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이것이 왕안석과 이한석이 아직 서씨 가문에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진씨 가문의 대종사도 물론 출동하지 않았다.나라가 없으면 가정이 없다고 했다.하지만 이런 이치를 아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드물었다.적어도 서광문은 그렇게 할 수 없다.서광문은 자기 가족과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게 최우선이었다.식사가 끝난 후, 서지은은 진서준을 데리고 자택의 정원을 한가롭게 거닐었다.잠시 후, 서지은과 진서준은 호수 가운데 있는 정자에 도착했다.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정자에 앉았다.“서준아, 넌 아빠가 방금 한 말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너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난 명분 따윈 없어도 괜찮아.”서지은이 고개를 돌려 진서준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대다수 여성은 감성이 뛰어난 동물이다.여자 서지은은 일반 여성보다 더더욱 감성적이었다.서지은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이 거지라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권력이나 재물을 추구하는 다른 여성들과 비교하면 서지은이 원하는 건 단순하기 그지없었다.하지만 이 단순한 행복은 서지은이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일이
“좋아, 나도 더 이상 널 가르치려고 하지 않을게, 건가 잘 챙기고 이 전투에서 죽지 않도록 해.”전화를 끊고 난 후, 진서준은 다시 식탁으로 돌아갔다.“서준아, 얼른 밥 먹어.”서지은이 진서준에게 손짓했다.“알았어, 곧 갈게.”진서준이 미소를 지으며 서지은의 옆에 앉았다.진서준이 식탁에 앉자 서광문 가족이 드디어 젓가락을 들었다.이전에는 서광문이 서지은의 체면을 고려해 진서준에게 평온한 태도를 보였지만 이제는 진서준에게 약간의 경외심이 생겼다.만난 지 겨우 석 달 만에 단 일격으로 고성운과 육위준을 처치했으니 1년이 더 지나면 서씨 가문은 이 용존 앞에서 진짜 하찮은 가족에 불과할 것 같았다.“진서준, 다음 계획이 무엇인가?”서광문이 물었다.진서준은 서지은이 집어준 그릇 안의 고기를 먹은 후 담담하게 대답했다.“용멸 계획이 곧 시작될 예정이니, 국경으로 갈 생각입니다.”서광문은 그 대답에 한순간 눈살을 찌푸렸지만 금세 인상을 풀었다.진서준이 오늘 보여준 실력으로 보아 만약 해외 강자와 맞닥뜨려 아쉽게도 패배하게 되더라도 적어도 그 상황에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았다.그래서 서광문은 진서준을 굳이 설득하지 않았다.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고 분투하는 건 모든 국민이 응당 해야 할 일이다.진서준이 그런 능력이 있으니 서광문은 자연스럽게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우리 서씨 가문에서 도와줄 건 없어?”서광문이 진서준를 바라보며 물었다.“혹시 이 약재들, 서씨 가문에서 구할 수 있을까요?”진서준은 진서라의 체내 독소 치료에 필요한 약재 리스트를 꺼냈다.그중 하나는 임씨 가문 가주가 진서준이 떠나기 전에 이미 준비한 것이었다.서광문이 대충 훑어보더니 마지막 약재를 보았을 때, 시선이 그 약재에 고정되었다.“그래, 이 약재는 네게 주지. 우리 서씨 가문에 두어도 큰 의미가 없으니까.”서광문이 집사에게 손짓했다.“가서 얼른 이 약재 가져와.”오하늘이 위에 적힌 약재를 보고 흠칫 놀라며 물었다.“저기... 가주님, 이 약재는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