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준의 목소리가 그리 크진 않았지만 사람들의 귀에 정확하게 때려 박혔다.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쳐다보았다.미리 마음의 준비를 마친 황보식마저도 진서준의 말에 여간 놀란 게 아니었다.“당신 정말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나 보네?”이승재의 낯빛이 더할 나위 없이 어두워졌다.그의 사부가 만든 보물은 늘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누군가 나타나서 이 법기들이 전부 고철이라고 한 것도 모자라 사부를 쓰레기라고 모욕했다.“저 사람 진짜 황보식 어르신의 지인 맞아요? 왜 일부러 어르신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 같죠?”“도사님의 사부를 쓰레기라고 하다니,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군요.”“오늘 황보식 어르신이 계신다고 해도 저 사람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사람들은 의견이 분분했고 저마다 오늘이 진서준의 제삿날이라고 생각했다.허사연도 긴장감이 도는 얼굴로 진서준의 손을 잡고 나지막하게 말했다.“서준 씨, 얼른 도사님께 사과드려요. 도사님은 진짜로 실력이 있는 분이시란 말이에요. 도사님의 사부는 남주성에서 명성이 자자한 풍수 대가시고요.”허사연이 손을 잡자 진서준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설렜다. 하지만 이내 다시 진정했고 입가에 미소가 새어 나왔다.이 법기들은 어제 황보식의 집에서 봤던 것과 똑같이 전부 다 풍수술로 위장한 쓰레기들이었다.현장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보아낼 수 있는 사람은 진서준밖에 없었다.“제가 이것들을 고철이라고 한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예요.”진서준이 무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어르신이 모셔 온 분의 안목이 참 남다르시나 봐요. 우리 하씨 가문은 황보 가문과 비할 바가 안 되죠. 어르신이 싫다고 하시면 그럼 제가 사겠습니다.”조금 전 법기를 사겠다던 유명 인사가 다시 나서서 말했다. 그의 이름은 하규천이었고 서울시 하씨 가문의 현 가주였다. 하씨 가문도 서울시에서는 나름 이름 있는 가문이었다.아까 그 한마디는 황보식이 사람 보는 눈이 없어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를 데려왔다
진서준은 침착하게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이승재를 힐끗거리며 피식 웃었다.“오늘 이 연회는 날 환영하는 자리인 동시에 당신의 속임수를 까발리는 자리이기도 하군.”그러고는 조금 전 가짜 법기를 산 가주들을 보며 말했다.“저 사람의 속임수에 당한 것도 모자라 돈까지 바친 걸 당신네 조상들이 안다면 무덤에서 기어 나와서라도 가만두지 않을걸요?”진서준의 말에 이승재와 가주들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인마, 죽고 싶어? 황보식 어르신이 계신다고 우리가 손을 못 댈 것 같아?”하규천 옆에 있던 한 청년이 발끈했다. 하규천이 말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진서준에게 달려가 주먹을 날렸을 것이다. 하규천의 두 눈에도 싸늘함이 스쳐 지나갔다.“나이도 어린놈이 입만 살아서는.”하규천의 목소리가 점점 서늘해졌다.“그럼 네가 이승재 도사님의 사부보다 더 강하단 말이야?”그 모습에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내저었다.고작 20대 초반인 진서준이 풍수에 대해 뭘 알겠는가? 그들 눈에 비친 진서준은 그저 자신의 체면 때문에 나선 것에 불과했다.이승재는 순간 불안감이 밀려왔고 두 눈에도 당황함이 스쳤지만 이내 다시 괜찮은 척했다.“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감히 우리 사부님과 비교하려 들어? 오늘 황보식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 기회는 줄게. 하지만 증거를 내놓지 못한다면 절대 가만 안 둬.”상황을 지켜보던 허사연이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황보식도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진서준은 덤덤하게 웃으며 오른손을 내밀어 구양 마법 거울을 가리키면서 몸속의 영기를 내뿜었다. 손을 다시 거두었을 때 영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지금 다시 봐봐요.”그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의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구양 마법 거울을 쳐다보았다.‘손으로 가리키기만 했잖아. 그게 뭐가 대단하다고?’그런데 곧이어 사람들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경악을 금치 못했다.“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조금 전까지도 법기에 빨아들이는 힘이 있다고
“이건 술법 중의 풍수술?!”하늘에 나타난 보랏빛 번개를 본 사람들은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10여 년을 수련한 사람들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사람의 힘으로 번개를 부를 수 있다니! 정말 전설 속의 술법이 아닌가! 현장의 많은 사람들은 일반인이라 다들 두려워했다.가장 높은 자리에 앉은 황보식이 이승재를 가리키며 화를 냈다.“이승재, 너 정말 이렇게 나올 거야?!”“그 새끼가 내 일을 망쳤는데 가만히 둘 수 없지.”이승재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그는 이미 너 죽고 나 죽자는 심정이었다.조철용은 하늘의 번개를 보며 표정이 심각해졌다.그는 무술 수련자와 싸워보기만 했지 이런 풍수술사와는 싸워보지 못했다.“저리 꺼져!”이승재가 손을 휘휘 젓자 하늘의 번개가 갑자기 조철용을 향해 쳤다.조철용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놀란 그는 뒤로 3미터 정도 멀어졌다.번개가 바닥에 떨어졌다. 조철용이 서 있던 곳에는 30센티미터 정도의 구덩이가 생겼다.하지만 이 바닥은 대리석 타일로 깐 바닥이다.그런데도 30센치미터의 구덩이를 만들어 내다니.이 번개가 사람의 몸에 떨어졌으면 뼈도 남지 않을 것이었다.조철용을 맞추지 못한 이승재는 손바닥을 들어 다시 번개를 내렸다.이번에는 아까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내리쳤다. 조철용은 제대로 서지 못했다. 마음속에 불안감이 피어났다.쿨럭.새빨간 피가 조철용의 허리에서 뿜어져 나왔다.연회장에는 어느새 피 냄새가 진동했다.사람들은 번개가 언제 친 것인지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조철용은 이미 당해버렸다.이승재가 들어온 소문보다 더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꺼져.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는 널 바로 죽일 수도 있으니까.”이승재가 화를 내며 얘기했다.조철용은 황보식의 사람이다. 만약 이승재가 조철용을 죽인다면 이승재와 황보식의 갈등은 더욱더 심해질 것이다.그래서 아까는 일부러 살살 했다.뒤쪽에 서 있던 진서준은 그 장면은 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허사연의 부드러운 손을
조철용은 황보식의 경호원이긴 하지만 황보식은 그를 하인처럼 대하지 않았다.황보식이 참석할 수 없는 자리에 조철용을 보내기도 할 정도였다.그런 조철용을 죽기 직전까지 패다니, 이승재가 얼마나 화가 난 것인지 알 수 있었다.놀란 허사연의 연약한 몸이 바르르 떨렸다.진서준은 이제 끝장이다.“이번에는 네 차례야!”이승재는 차갑게 진서준을 노려보았다.진서준은 미간을 약간 찌푸리고 이승재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조철용의 곁으로 왔다.진서준이 자기를 무시하자 이승재는 화가 치밀었다.“너 이 새끼! 지금 당장 너를 저승길 친구로 보내주지!”푸른 빛이 진서준을 향해 날아갔다.진서준은 조철용의 곁에 앉아 체내의 영기로 상처를 치유해 주고 있었다.이승재의 일격은 조철용의 심장을 꿰뚫었다.빨리 치유하지 않는다면 3분 안에 죽을 것이다.조철용은 황보식의 사람이고 또 진서준을 보호하기 위해 다친 것이다.이렇게 다쳐보면서 약간의 교훈도 얻는 것이 아니겠는가.“서준 씨! 얼른 피해요!”하늘에 빛이 번쩍인 순간, 허사연이 힘껏 소리쳤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번개는 진서준을 향해 내리쳤다.그 순간, 모든 사람들은 진서준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번개가 진서준의 몸에 내려친 후, 진서준의 몸 주변에는 전기가 튀었다.연회장은 정적에 휩싸였다.모든 사람의 시선이 진서준에게 집중되었다. 다들 놀라서 수군거렸다.“죽은 건가?”“죽었겠지! 조철용도 막아내지 못하는 번개를...”“그런데 왜 안 쓰러진 거야?”다들 수군거리고 있을 때, 번개를 맞은 진서준은 담담하게 웃었다.“이게 네 실력이야? 이런 허접한 실력으로는 나한테 자그마한 상처도 낼 수 없어.”진서준의 앞에서 이 번개는 아주 미약했다.주변의 사람들은 놀라서 웅성거렸다.모두가 무시하던 진서준이, 혈혈단신으로 번개를 막아내다니.이게 사람인가?창백하게 질렸던 허사연의 얼굴에도 약간의 핏기가 돌았다.그녀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미소 지었다.“무사하니까 됐어... 무사하니까.”이승재는 믿
이미 죽은 줄로만 알았던 조철용이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그 장면에 겁이 많은 사람은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황보식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아까 그는 분명 번개가 조철용의 가슴을 꿰뚫는 것을 보았다.그런데 조철용이 일어나다니.설마 이것도 진서준이...?“콜록...”치명상은 사라졌으나 가슴께의 상처는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난... 죽은 게 아니었던가? 왜 아직도 살아있는 거지?”조철용이 가장 크게 놀랐다.아까 번개 빛이 그의 가슴을 꿰뚫을 때, 조철용은 그대로 기억이 멈췄다.“진 선생님이 널 구한 모양이구나!”황보식이 흥분해서 조철용의 곁으로 걸어갔다.조철용이 죽지 않은 것은 황보식에게도 좋은 일이었다.‘진 선생님?’조철용은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그러다가 자기가 아까 이승재와 겨루고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하지만 지금 이승재를 쳐다본 그는 놀라서 눈알이 빠질 뻔했다.한방에 조철용을 죽일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이승재는 지금 진서준 앞에서 벌벌 떨며 무릎 꿇고 있었다.이게 무슨 일인가!‘설마 진서준이 나보다 강한 건가!?’하지만 무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진다. 진서준은 이제 20대인데, 태어나서부터 무술을 연마했다고 해도 그만큼 강할 수 없었다.진서준은 자기가 살려준 조철용을 신경 쓰지 않고 이승재를 보며 담담하게 얘기했다.“몇 년간 수련했으니 영골에 대해 알지?”이승재가 허리를 약간 펴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스승님한테서 이 물건에 대해 들어본 적 있습니다만,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이승재는 수련한 지 30여 년이 된다. 스승인 권해철이 영골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하지만 이승재는 그 물건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그래? 그럼 네 스승은 지금 어디 있는데?”진서준은 약간 기뻤다.어머니의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영골이 필요하다.다른 것은 다 준비되었으니 영골만 있으면 진서준은 조희선을 일반인으로 만들어줄 수 있었다.“스승님은 현재 폐관 수련 중입니다.”이승재는 진
오늘의 연회가 끝난 후, 진서준의 이름은 서울시에서 전설처럼 퍼졌다.앞으로 진서준의 위치가 황보식보다 더욱 높아질지도 모른다. 호텔 밖에서는 진서준과 허사연이 손을 잡고 산책하고 있었다.달빛이 허사연의 예쁘장한 얼굴을 비추었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같았다.“앞으로 진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아니면 진서준 씨라고 부를까요?”허사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장난스레 물었다.진서준은 허사연이 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작게 웃었다.“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요.”허사연의 눈이 달처럼 휘었다. 그녀의 두 볼이 어느새 복숭앗빛으로 물들었다.“서준이라고 부르고 싶은데요?”진서준은 걸음을 멈추고 허사연을 바라보았다.“제 가족만 저를 그렇게 부르는데. 혹시 제 가족이 되고 싶어요?”허사연은 또 얼굴이 붉어졌다. 다른 손으로는 진서준의 팔을 가볍게 때렸다.“또 날 놀리는 거죠!”진서준은 허사연의 손을 붙잡고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진서준이 뚫어져라 쳐다보자 허사연의 심장은 점점 빠르게 뛰었다. 얼굴뿐만이 아니라 목까지 붉게 달아올랐다.허사연은 마치 연애 중인 아가씨 같았다.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고 입술을 달싹였다. 그녀의 숨이 진서준의 얼굴에 닿았다.그 모습에 진서준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영화 속 한 장면 같은 그 순간, 한 여자의 목소리가 두 사람을 방해했다.“두 사람, 뭐 하는 거야?”그 목소리에 허사연은 깜짝 놀랐다.가까이 다가온 진서준의 얼굴을 보고 또 놀라서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키스하기 직전이었는데 방해받은 진서준은 조금 화가 났다.고개를 돌려보니 허윤진이 입가에 의기양양한 미소를 걸고 있었다.‘저거 분명 일부러...!’진서준과 허사연이 호텔에서 걸어 나온 후, 허윤진은 몰래 두 사람의 뒤를 밟았다.두 사람이 갑자기 멈춰서서 서로를 마주 볼 때, 허윤진은 자기 언니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진서준 씨, 오늘은 정말 멋졌어요. 그렇다고 아직 당신을 인정하는 건 아니에요.”허윤진은 진서준을
전화기 너머의 강성철은 아주 공손한 태도로 얘기하고 있었다.“진 선생님, 제가 휴식을 방해한 건 아니죠?”어젯밤 진서준이 번개를 부리는 것을 본 강성철은 진서준을 진심으로 인정하게 되었다.그리고 이씨 가문의 연회에서 진서준과 심하게 싸우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그렇지 않으면 진서준이 말하지 않아도 다른 세력들이 그를 죽이려고 들 테니.“아니요. 무슨 일이죠?”진서준이 물었다.“오늘 시간 되십니까? 제 몸에 깃든 피의 재앙을 해결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강성철이 얘기했다.“당연하죠. 아침을 먹고 회사로 찾아가죠.”진서준이 담담하게 얘기했다.“알겠습니다. 그럼 회사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강성철이 감격해서 얘기했다.아침을 먹은 후, 진서준은 운전해서 별장을 떠나 강성철의 호스텔 그룹으로 갔다.호스텔 그룹은 서울시의 남쪽에 있었는데 너무 외진 곳은 아니었다.20분 정도가 지나 진서준은 운전해서 호스텔 그룹으로 왔다. 15층의 빌딩이었는데 위의 7층은 호스텔 그룹이고 아래는 다른 개인 기업들이 사용하고 있었다.진서준은 차에서 내려 빌딩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장 높은 층을 눌렀다.강성철은 사무실에서 오고 가면서 진서준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사장님, 진 선생님이 오셨습니다.”한은호는 문을 열고 진서준을 데리고 들어왔다.진서준을 본 강성철은 다가가 바로 진서준의 손을 잡았다.“진 선생님, 안으로 드시죠. 얼른 차와 과일을 내와.”강성철이 비서에게 명령했다.진서준은 막지 않고 소파에 앉아 시원한 수박을 먹으며 사무실의 환경을 흘깃 쳐다보았다.“진 선생님, 어제저녁 연회장에서 보여준 도술은 정말 잊기 힘들 것 같습니다.”강성철은 바로 아부했다.“그저 간단한 도술일 뿐입니다. 자랑할 만한 실력도 아니고요.”진서준이 담담하게 웃었다.그게 간단하다니?예전의 진서준이 이렇게 말한다면 강성철은 그가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할 것이다.하지만 지금의 강성철은 진서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사무실에 이상한 물건이 있
불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기운은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도술을 몇 년 수련한 사람도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였다.그러니 강성철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은 일반인이 아닌 게 분명했다.적어도 어제 만난 이승재와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하지만 이승재처럼 유명한 사람은 이런 일을 맡아 하지 않을 것이다.굳이 이런 일을 할 필요도 없고 발각되면 자기만 손해이기 때문이다.진서준이 불상에 손을 갖다 댈 때, 강성철은 몸을 바르르 떨었다.음산한 기운이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기분이었다.“진 선생님, 해결해 주실 수 있는 거죠?”강성철은 놀라서 바로 진서준의 뒤로 숨었다.“이 불상을 해결하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배후를 찾아내는 건 조금 힘들 수도 있겠습니다.”진서준은 불상을 내려놓았다.이 불상에는 주문이 걸려 있었는데 바로 반경 3킬로미터 안의 원혼을 모두 이 불상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이 주문을 풀면 강성철의 살기는 자연히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배후가 눈치채고 도망칠 수 있다.그러면 상대는 또 기다리지 않고 바로 강성철을 죽이려고 들 수도 있었다.무인을 건드리면 적어도 죽기 전에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하지만 풍수술사를 건드리게 된다면 죽어서도 사인을 모를 것이다.“진 선생님,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강성철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어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전혀 없었다.진서준이 그한테 똥에 빠져야 한다고 해도 곧이곧대로 믿을 것이다.“아내분이 돌아오고 다시 보죠.”진서준은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았다.담담한 진서준에 비해 강성철은 초조하고 두려웠다.그는 그와 함께 10년을 산 사람이 자기를 해치려고 들 줄은 몰랐다.10분 후, 스포츠카가 별장의 주차장에 들어왔다.차 문이 열리자 화려하게 입고 치장한 여자가 차에서 내렸다.그녀는 바로 강성철의 아내, 한지안이었다.10년 전, 강성철과 술집에서 만난 후, 한지안의 신분은 크게 바뀌었다.아무나 괴롭히던 직원에서, 수천 명이 우러러보는 사모님이 된 것이다
결연한 표정을 지은 조슬기를 본 장강훈은 순간 당황했다.“뭐든 다 협상할 수 있어. 제발 흥분하지 말자.”장강훈이 받은 임무는 조슬기를 데려가는 것이었고 그녀를 절대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만약 조슬기가 다친다면 그야말로 큰일 날 상황이었다.“다시 물을게, 내 조건 받아들일 거야, 말 거야?”조슬기가 단호하게 묻자 결국 선택지가 없었던 장강훈은 마지못해 동의했다.“좋아, 저 여자는 보내주겠어.”“안 돼요, 아가씨. 절대 저 녀석들과 함께 가면 안 돼요.”신수란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만류했다.“란 언니, 걱정 마세요. 이 사람들은 절대 저를 함부로 다치진 않을 거예요. 언니는 먼저 몸부터 챙기세요.”조슬기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도대체 누가 자기를 잡으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대가 이토록 신중히 행동하는 걸 보니 이 사람들이 자기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건 확신했다.“조 아가씨, 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 나가자.”장강훈이 손짓하며 재촉하자 조슬기는 말없이 단검을 쥐고 천천히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방 안에 있던 킬러들은 신수란을 힐끔힐끔 주시하고 있었다.하지만 조슬기가 문턱에 거의 다다른 순간, 장강훈이 갑자기 신속하게 움직였다.쨍그랑!단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얼른 이 여자를 잡아!”장강훈이 명령하자마자 양쪽에 대기하던 킬러들이 조슬기를 단단히 제압했다.“왜 이렇게 비겁해? 약속을 지켜야지!”조슬기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조 아가씨, 내가 아까 한 자기소개를 잊었나 보네?”장강훈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여자는 생포해. 저 남자는 어디 보자, 그냥 죽여버려.”장강훈은 진서준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명령을 내렸다.“오빠,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이런 일이...”조슬기는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했다.“이봐, 당장 창문으로 뛰어내려. 내가 시간을 끌게.”신수란이 이를 악물며 지시했다.지금의 신수란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시간을 끄는 일
“너희 둘 다 도망갈 생각 말고 얌전하게 따라오기나 해!”말을 마친 남자가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왔다.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남자는 한눈에 봐도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신수란의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났다.“장강훈!”최근 서남 지역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악당인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은 물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자였다.게다가 그 실력은 상당히 강력해서 범행은 그야말로 대담하기 그지없었다.국안부에서도 장강훈을 체포하려고 사람을 보냈지만 장강훈은 유령처럼 자취를 감췄고 한 달간 수색했음에도 잡히지 않았다.신수란은 설마 자신들을 습격한 자가 바로 악당 장강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국안부의 분석에 따르면 장강훈의 실력은 지의방에 오를 정도로 강력했다.“오호라? 너희 곤륜산 애송이들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이거 참 영광스러운 일이군.”장강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란 언니, 장강훈이 누구죠?”조슬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자 신수란이 이를 갈며 대답했다.“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짐승 같은 놈이에요.”장강훈의 말을 듣자 진서준의 눈에도 흥미로운 기색이 스쳤다.이 두 여자가 곤륜 종문의 사람이란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곤륜은 대한민국 4대 최정상 은세 종문 하나인데 그 제자들은 대체로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이번에 내려온 건 아마 한 달 후에 있을 숭산 대회 때문일 것이다.“이봐, 아가씨. 말은 가려서 하는 게 좋을걸?”장강훈이 차갑게 경고했다.“우리가 잡으려는 건 이 여자야. 넌 그냥 덤으로 딸려 온 상품일 뿐이고. 내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너 따위는 내 노예로 삼아도 된다 이거야.”장강훈이 쌀쌀하게 비웃으며 말했다.최근에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 중에 수많은 여자를 노예로 붙잡아 둔 상태였다.신수란처럼 보기 드문 미인은 장강훈이 탐나지 않을 수 없었다.“더 개소리를 지껄여봐. 내가 네 입을 찢어버릴 테니까.”신수란의 얼굴이 분노로 시퍼
“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별말씀을요. 얼른 옷 입혀주세요. 깨어나면 괜히 또 뭐라고 할 테니까.”진서준은 창가로 걸어가 바깥을 내다보았다.그림자 몇 개가 하나둘 진서준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모텔로 들어섰다.“귀찮게 됐군.”진서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겨우 잠깐 눈 붙였더니 이런 귀찮은 일이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곧이어 조슬기는 신수란의 옷을 전부 갈아입혔다.“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괜찮으니까 얼른 떠나세요.”진서준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이건 그냥 지나가던 인연일 뿐, 두 사람을 구해준 것만으로도 이미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었다.진서준은 낯선 사람들 때문에 더 이상 골치 아픈 일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지금 짊어진 문제만으로도 진서준은 이미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벅찼다.“알겠어요.”조슬기도 쫓아오는 자들이 무서워 서둘러 신수란을 데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바로 그때, 신수란이 눈을 떴다.“어라? 아가씨, 여기가 어디예요?”눈을 막 뜬 신수란은 아직 정신이 멍한 상태였기에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까맣게 잊었다.“란 언니, 깨어나셨군요. 몸 상태는 좀 어떠세요?”조슬기는 기뻐하며 급히 물었다.“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신수란은 자기 상처를 만지며 말했다.놀랍게도 상처에서 더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이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처치해도 피가 멈추지 않았었다.“오빠, 그럼 저희는 이제 가볼게요.”조슬기가 진서준에게 작별 인사하자 그제야 신수란도 진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신수란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자 표정이 살짝 변했다.“네가 날 구해준 거야?”“맞아.”진서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흥!”신수란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내 몸을 본 거, 네가 날 구해준 걸로 눈감아 줄게.”“란 언니,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죠. 오빠가 아니었으면 언니는 아마 지금쯤 사경을 헤맸을 거예요.”조슬기는 불쾌하다
“란 언니!”신수란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조슬기는 깜짝 놀라 황급히 신수란을 침대에 눕혔다.하지만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조슬기는 결국 간절한 눈빛으로 진서준에게 도움을 청했다.“오빠, 제발 우리 란 언니를 좀 도와주세요. 얼마를 드리든 상관없으니 제발 란 언니를 살려주세요.”눈물범벅이 된 조슬기의 얼굴은 누가 봐도 마음이 아려올 정도였다.진서준은 여자 눈물에 약했지만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하나만 묻죠, 왜 내 방에 온 거죠?”조슬기는 말문이 막혀 말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우리는 지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어요. 아까 여기 들어올 때, 프런트에서 이 방이 비어 있는 것 같아서 잠시 숨어 있으려고 했어요.”진서준은 바닥의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숨어 있으려면 최소한 자국은 남기지 말아야죠. 이렇게 허술하게 움직이면 쫓아오는 사람들에게 초대장이라도 준 격인데요?”조슬기가 뒤를 돌아보니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그녀는 금세 얼굴이 창백해지며 다급하게 외쳤다.“큰일이에요. 그럼 그 사람들이 곧 여길 찾아오겠네요.”어리바리한 조슬기의 모습을 보고 진서준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일단 이 사람부터 치료할게요. 상처가 낫는 대로 빨리 떠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감격에 겨워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진서준은 은침을 알코올로 소독한 후, 호주머니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냈다.병 안에는 하얀 가루가 들어 있었다.“이 여자 옷 좀 벗겨주세요.”“아, 네.”조슬기는 진서준의 말을 따르며 재빠르게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겼다.단숨에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겨내자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가 다시금 드러났다.물론 비밀의 숲을 포함한 그 신비로운 부분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났다.진서준은 갑자기 밀려온 충격에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이 여자는 진짜 멍청한 걸까, 아니면 일부러 저러는 걸까? 상처는 복부에 있는데 왜 바지를 벗기는 거지?’“바지는 벗길 필요 없어요
“누가 이기고 질지는 아직 모르는 거잖습니까.”고인권이 끼어들었다.“맞아, 우리 8대 특전대도 호락호락한 부대가 아니야.”“전신전 놈들에게 우리 8대 특전대의 실력을 똑똑히 보여주자.”나머지 사령관들도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였다.갑작스레 열정이 불타오르는 이들을 보며 상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좋아, 한 달 후에 자세한 일정을 알려주마.”영상 통화가 끊기자 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각자의 기지로 돌아가 장병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소식을 들은 모든 장병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전신전을 반드시 이겨야 해. 절대 진 교관님을 실망하게 하지 말자.”모두가 열기를 띠며 훈련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했다.한편,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서남 국경.진서준은 올기를 타고 국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마을은 크지 않았고 진서준은 대충 모텔을 한 군데 찾아 방을 얻었다.방에 들어서자마자 진서준은 침대에 몸을 던지고 곯아떨어졌다.진서준은 너무 피곤했다.어젯밤의 전투로 지금의 진서준은 모든 힘을 소진한 상태였다.올기가 진서준을 등에 태우지 않았더라면 진서준은 아마 울창한 숲속 어딘가에서 쓰러졌을 것이다.진서준이 잠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느닷없이 열렸고 이어 아름다운 두 여자가 방으로 들어왔다.그중 청순한 외모의 여자는 나이가 스무 살 조금 넘어 보였다.다른 여자는 타이트한 검은색 옷차림에 글래머와 세련된 얼굴을 지닌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다.하지만 지금 그 여자의 얼굴은 창백했고 배 부분에선 피가 잔뜩 흘러내리고 있었다.딱 봐도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사람이 있네요.”두 여자가 곤히 자는 진서준을 보자 살짝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아래층 투숙 기록을 확인했을 땐 이 방에 투숙객이 없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저 사람 자고 있으니 조용히 움직이죠. 깨우지만 않으면 될 거예요.”젊은 여자가 말했다.“근데 자칫 중간에 깨어나면 어쩌죠...”성숙한 여자는 이를 악물었다.“란 언니,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
아침, 설표 특전대 기지.단잠에 빠져 있던 소정태와 고인권 등 사령관은 갑작스러운 군부의 전화 소리에 깨어났다.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회의실에 집합했다.“어젯밤, 묘강에서 폭동이 발생했어. 그러나 배논국 군부가 폭동을 단숨에 진압하며 묘강은 다시 배논국의 영토로 돌아갔어.”상부의 이 한마디에 현장에 있던 여덟 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소정태 일행은 서남 국경에서 묘강의 사수들과 적지 않게 맞닥뜨린 경험이 있었다.다들 묘강의 사람들은 전부 목숨을 걸고 움직이는 미친놈일 뿐만 아니라 주술과 독충술까지 능숙히 다루는 존재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그들은 자기들만의 군대와 탱크와 같은 대형 무기를 갖추고 있었다.배논국 군부가 강제로 공격했다간 양측 모두 피바다가 될 게 뻔했다.그런데, 단 하룻밤 만에 묘강이 평정되다니 너무나 기묘한 일이었다.“혹시... 진 교관이 한 일이 아닐까?”고인권이 불쑥 입을 열었다.어제까지만 해도 여덟 사령관은 진서준이 묘강으로 갈 가능성을 두고 논쟁을 벌였었다.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이렇게 어마어마한 소식이 터진 것이다.“설, 설마 그랬겠어? 진 교관님이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 묘강 전황을 뒤집을 수는 없잖아?”누군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맞아. 그건 너무 황당한 얘기야. 게다가 진 교관이 대체 어떻게 묘강에 갔단 말이야? 그곳은 철통같이 방어되어 있어서 전신전 병사들조차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하는 곳이야.”“난 오히려 가능성이 있다고 봐.”소정태가 갑자기 말했다.“너희들 기억하지? 예전에 너희가 설표 특전대가 최고 특전대로 올라설 거라는 내 말을 믿지 않았지? 근데 진 교관님 덕분에 우리는 그 어려운 걸 해냈어, 그것도 한 달도 안 걸려서 말이야. 지금도 난 똑같이 믿어. 진 교관님은 묘강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야.”소정태는 진서준에 대해 백 퍼센트 신뢰하고 있었다.소정태는 그야말로 진서준의 열렬한 팬이었다.“그럼, 진 교관님께 전화라도 걸어볼까
레이더 화면에 수많은 적기가 포착됐고 곧이어 포탄이 몇 발 날아왔다.조종사들은 반응할 틈도 없이 폭격을 정면으로 맞았다.쾅!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칠흑 같은 밤하늘에 거대한 불꽃이 튕기며 대낮처럼 환해졌다.지상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오스프리 전투기 두 대는 완전히 파괴되어 잔해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유문기는 도망치는 걸 멈추지 않았다.유문기가 두려워하는 건 오스프리 전투기가 아니라 바로 그 괴물 같은 존재, 진서준이었다.묘왕은 자기 비장 카드인 오스프리 전투기가 파괴된 것을 보며 분노로 눈이 뒤집혔다.“누가 한 짓이야? 어떤 미친놈이 감히 내 전투기를 부쉈어?”그 순간, 배논국 군대 로고가 새겨진 전투기 수십 대가 시야에 들어왔다.이 광경에 묘왕은 땅을 치며 후회했다.‘아까 상황 좀 더 제대로 파악하고 행동할 걸...’전투기 편대가 먼저 도착하고 이어 대규모 부대가 들이닥쳤다.지도자를 잃은 묘강은 머리를 잃은 파리 떼처럼 혼란에 빠졌다.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진서준은 더 이상 이들과 놀아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진서준은 참선검을 손에 잡고 단 일격으로 묘왕의 허리를 두 동강 냈다.눈을 뜬 채 죽은 묘왕의 눈에는 끝없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게 분명했다.그러나 아무리 억울해도 묘왕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는 있을 수 없었다.“날 죽여.”이때의 유기철은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그 모습은 마치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 이른 것 같았지만 사실은 유기철이 본인이 아무리 애원해도 진서준이 살려주지 않을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넌 네 친조카까지 해쳤어. 널 만 번 죽여도 내 분노가 풀리지 않을 거야.”진서준의 얼굴은 여전히 냉랭했다.“난 널 죽이지 않겠어. 대신 널 평생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 살게 해주지.”그 말과 함께 진서준은 손바닥으로 유기철의 가슴을 내리쳤다.유기철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유기철은 진서준이 자기를 죽이는 건 두렵지
유령처럼 갑자기 나타난 진서준을 보자 유문기 일행은 순간 얼어붙었다.유문기와 묘왕은 내부 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진서준은 그들의 공동의 적이었다.진서준이 살아있다면 그들 모두 죽을 운명이었다.유문기와 묘왕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묘왕과 유기철은 모든 걸 쏟아부었다.두 사람의 몸은 거의 한계에 다다랐고 더는 버틸 수 없을 정도였다.“너 폭탄에 맞아 죽은 줄 알았는데 왜 아직 살아 있는 거야?”유문기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졌다.방금 폭탄이 터진 후, 묘왕 혼자만 폭발의 중심에서 걸어 나오는 걸 본 유문기는 진서준이 틀림없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현실은 유문기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유문기의 예측은 현실을 완전히 빗나갔다.“네 생각에 그 포탄 따위가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네 눈엔 내가 저 늙은 영감탱이만도 못해 보이나?”영감탱이는 당연히 묘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진서준, 네가 묘왕을 죽여준다면 내가 묘강의 재산 절반을 네게 주마. 어때?”진서준과 맞설 수 없음을 깨달은 유문기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했다.바로 진서준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속셈이었다.진서준을 자기편으로 영입하면 진서준이 자기를 건드릴 이유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묘강의 재산은 거의 배논국의 절반과 맞먹는 수준이었다.배논국은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의 국가였기에 그 재산은 실로 천문학적인 숫자였다.하지만 진서준에게 이 돈은 전혀 필요 없었다.진서준이 이번에 온 이유는 단 두 개, 유문기를 죽이고 묘왕을 없애기 위해서였다.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진서준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더군다나 묘강의 돈은 대부분 불법적인 경로에서 온 더러운 돈이었다.그런 돈은 진서준이 원하지 않았다.유문기가 진서준을 설득하려는 걸 본 묘왕은 즉시 눈을 굴리며 외쳤다.“이봐 청년, 네가 저놈을 죽인다면 내가 묘왕의 자리를 네게 물려주겠어. 사실 너와 나 사이엔 그렇게 큰 원한도 없어. 유씨
묘왕의 온몸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옷은 다 찢어졌으며 고약한 타는 냄새가 났다.그 냄새는 묘왕의 옷 속에 숨어 있던 독충들이 조금 전의 고온에 의해 증발한 냄새였다.지금의 묘왕은 바람에 꺼져가는 촛불 같았고 누구든지 쉽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는 유문기는 유기철에게 소리쳤다.“아버지, 저놈을 죽여요! 저놈을 죽이면 우리는 묘강을 손에 넣을 수 있어요!”유기철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다.“내가 묘왕을 공격하라고?”유기철의 단전도 파괴되어 공격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제 단전도 저 진서준이란 자에게 쥐어박혀서 망가졌어요. 제가 공격할 수 있다면 왜 굳이 아버지를 시키겠어요?”유문기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유문기도 직접 전장에 나서서 묘왕을 죽이고 싶었다.그동안 유문기는 묘왕에게 개처럼 부려지며 살아왔다.때때로 독을 시험하는 일도 겪었는데 그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몇 년째 묘왕을 죽이고 싶었던 유문기는 드디어 적절한 기회를 잡았지만 아쉽게도 방금 진서준에게 단전이 파괴되어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렸다.“내 단전도 파괴된 거 잊었어?”유기철의 말에 유문기는 주머니에서 약을 꺼냈다.“이걸 드시면 일시적으로 예전의 힘을 조금 되찾을 수 있습니다.”유기철은 약을 받아 들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이거 부작용 없겠지?”부작용이 없다면 유문기는 자기가 먼저 먹었을 것이다.“부작용 있습니다. 먹으면 온몸의 뼈가 부서지고 폐인이 됩니다.”유문기는 솔직하게 부작용을 실토했다.“아버지. 지금 이게 우리 유일한 기회예요. 저놈을 죽이고 제가 묘왕이 되면 뼈가 다 부서져도 제가 아버지를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둘 다 저놈 손에 죽을 겁니다.”유문기의 분석을 듣자 유미철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묘왕의 손에 죽거나 이 기회에 한 번 싸워보고 나중에라도 누군가 그를 돌봐 줄 수 있는 것,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유기철은 더 이상 망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