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는 김형섭이 쓸모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그건 서씨 일가의 명령이었고 김형섭은 반박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연아야, 이건 정말 내가 원한 게 아니야. 난 그냥 네가 행복하게 크기를 바란 것뿐인데...”김형섭은 괴로운 얼굴로 말했다.“돌아오지 않았다면 전 행복하게 지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김연아는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돌아가세요. 정략 결혼할게요. 당신에게 폐 끼칠 일 없어요.”냉담한 어조에 김형섭은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았다.하지만 이렇게 된 마당에 뭐라고 더 할 수는 없어서 그냥 돌아갔다.김형섭이 떠난 뒤 김연아는 진서준의 사진을 꺼내더니 혼자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서 엉엉 울었다....유지수가 준 시간까지 이틀 남았다.만약 이틀 내로 옥선화를 찾지 못한다면 유지수가 어떤 미친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진서준 씨, 허씨 일가가 오늘 진서준 씨를 위해서 레이 호텔에서 파티를 열 거래요.”한보영은 아침에 진서준의 침실로 찾아와서 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미간을 살짝 구겼다.“거절해 줘요. 전 그런 자리에 참석할 정도로 여유롭지 않으니까요.”한보영은 한숨을 쉬었다.“진서준 씨, 그렇게 초조해할 필요 없어요. 유지수 씨는 절대 서준 씨 동생을 해치지 않을 거예요. 유지수 씨도 진서준 씨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나오면 두려울 거예요. 지금 초조해야 할 사람은 서준 씨가 아니라 유지수 씨예요. 이 파티에는 중부의 모든 가문이 다 올 거예요. 파티하는 와중에 수소문해 보면 옥선화의 소식을 알 수 있을지도 몰라요.”진서준은 한보영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좋아요. 보영 씨 말대로 할게요.”“일단 옷부터 바꿔입어요. 그 옷은 서준 씨 신분에 너무 어울리지 않아요.”한보영은 진서준이 입은 운동복을 보면서 말했다.진서준은 이곳에 올 때 옷을 한 번만 가져왔다.전의 옷은 너덜너덜해졌고 지금 입고 있는 옷은 한제성의 것이었다.“알겠어요.”진서준
차를 세운 뒤 진서준과 한보영은 차에서 내렸다.한보영은 진서준의 손을 잡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잡고 싶어서 잡는 거 아니에요. 우리 둘이 손을 잡지 않으면 저한테 연락처를 물으러 오는 사람들이 엄청 많을 거예요.”진서준은 주위를 둘러봤다. 한보영이 차에서 내렸을 때 적지 않은 남자들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한보영은 한때 아픈 적이 있어서 몸이 아주 허약하고 말랐다.그래서 많은 남자들이 그녀를 보면 보호 욕구가 생겼다.그리고 그런 여자들은 남자들의 시선을 더 사로잡았다.“제가 오히려 이득을 본 거네요.”여자인 한보영도 신경 쓰지 않으니 진서준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두 사람은 손을 잡고서 신시아 백화점으로 향했다.한보영은 진서준이 입을 만한 옷을 정성 들여 골랐다.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아마 두 사람을 연인이라고 오해했을 것이다.“보영아!”진서준의 옷을 골라주고 있던 한보영은 갑자기 들려오는 들뜬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고개를 돌린 그녀는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전해찬 씨, 말조심하세요. 당신은 제 이름을 막 부를 자격이 없어요.”한보영은 혐오 가득한 눈빛으로 차갑게 말했다.그녀의 거리를 두는 듯한 태도에 전해찬은 흠칫했다.예전에 한보영은 그에게 살갑지는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냉담하지는 않았다.전해찬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아쉬워했다.“보영아, 그래도 우리 오랫동안 친구였는데 이름을 부르지 못할 건 없잖아?”전해찬은 웃으며 말했다.한보영은 옆에 있는 진서준을 힐끗 보더니 표정이 더욱 차가워졌다.“우리 안 친하잖아요. 친구도 아니고요.”그녀의 말을 들은 전해찬은 체면을 구겼다는 생각이 들어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는 고양시 갑부의 아들이었기에 많은 여자들이 그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썼다.그런데 한보영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그래요, 좋아요.”전해찬은 예의 바른 미소를 짓더니 몸을 돌려 백화점을 떠났다.고개를 돌린 순간, 그의 잘생긴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눈동자에서는 분
매니저 또한 난감한 상황이었다.그는 그저 돈 받고 일하는 직장인일 뿐이었다. 고양시처럼 거물이 가득한 곳에서 그가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진서준도, 한보영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매니저가 진서준을 내쫓으러 온 건 아마도 누군가의 명령 때문일 것이다.그리고 명령을 내린 사람은 조금 전 한보영이 쌀쌀맞게 쫓아낸 전해찬이었다.“제가 블랙리스트에 들어갔다고요?”진서준이 물었다.“그렇습니다.”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매니저를 보더니 덤덤히 말했다.“내가 이 백화점 소유자가 된다면 블랙리스트가 될 일은 없겠죠?”아주 태연자약했다.“당... 당연하죠.”매니저는 어리둥절했다.이 백화점을 사겠다는 뜻인 걸까?백화점 매니저는 눈이 튀어나올 듯했다.신시아 백화점은 이곳의 가장 큰 백화점으로 그 가치가 6,000억에 달했다.엄청난 가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아주 대단한 재벌가 아들이라고 해도 블랙리스트가 되었다는 이유로 6,000억짜리 백화점을 사지는 않을 것이다.대체 얼마나 자신감이 넘치는 걸까?한보영 또한 놀란 듯했다. 그러나 그녀는 곧 정신을 차리고 미소를 드러냈다.“좋아요. 제가 기억하건대 이 백화점 대표님 이름이 왕석훈이죠?”“맞습니다. 저희... 저희 회장님이세요...”매니저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그는 20년 넘게 매니저를 해오면서 이렇게 황당한 일은 처음이었다.배포가 이렇게 크다니!왕석훈이 팔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었다. 이 백화점은 항상 흑자였고 몇 년 더 지나면 가치가 더 높아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왕석훈 회장님 맞죠? 전 한보영이라고 합니다. 진서준 씨께서 신시아 백화점을 구매하고 싶어 하십니다. 진서준 씨는 지금 백화점 2층에 있습니다. 오실 때 계약서 들고 오시죠.”한보영은 빠르게 전화를 끊었다.“왕 대표님 곧 계약서 들고 오실 겁니다.”한보영은 웃는 얼굴로 매니저를 바라보았다.“전해찬을 위해 새로 온 대표님께 밉보일 생각인가요?”매니저의 동공이 잘게 떨렸다.
“저 두 사람 무슨 일이지? 왜 경호원들이 와 있지?”“설마 도둑질하다가 잡힌 건 아니겠지?”“조용히 좀 해. 저 청년이 백화점 블랙리스트에 등록됐다잖아. 그런데 조금 전에 들어보니까 두 사람 이 백화점을 살 생각인 것 같던데?”사람들은 진서준이 어떻게 될지 수군대기 시작했다.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을 때 전해찬은 갑자기 아버지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아버지, 무슨 일이에요?”얼른 돌아와. 너 오늘 저녁 나랑 같이 파티에 가야 해. 지각하면 안 돼!”“아직 이르잖아요.”“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고 얼른 돌아와!”전해찬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전화를 끊었다. 그는 한보영이 좋아하는 남자가 어떻게 쫓겨나는지를 지켜보고 싶었지만 이젠 볼 수 없게 되었다.전해찬은 백화점을 떠날 때 왕석훈을 보았다.왕석훈은 신시아 백화점 회장으로 고양시에서 꽤 잘 나갔다. 전해찬도 그를 만나면 먼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야 했다.하지만 전해찬은 그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고 빠르게 떠났다.왕석훈은 빠르게 남성 정장 매장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한보영과 매니저를 보았다.“회장님...”매니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고양시 최고 백화점을 소유한 왕석훈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겨우 50세인 왕석훈은 얼굴이 초췌했고, 마른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으면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진 마스터님을 뵙습니다! 제 부하가 진 마스터님의 심기를 거슬렀다고 들었는데 부디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그 순간 다들 넋이 나가서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왕석훈을 바라보았다.왕석훈을 알아본 사람들은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몸값이 엄청난 왕석훈이 젊은이를 향해 무릎을 꿇다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그건 왕석훈만이 알았다.눈앞의 진서준은 그가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서울의 진 마스터, 이 일곱 글자가 모든 걸 의미했다.어제 진서준이 인의방에 이름을 올린 두 명의 2품 선천 대종사를 죽였을 때, 왕석훈은 바로 그 현장에 있었다.그는 진서
양도 계약이지 거래 계약이 아니었다.왕석훈은 6,000억 가치의 백화점을 진서준에게 그냥 주려고 했고 그 박력에 한보영은 깜짝 놀랐다.왕석훈은 아주 똑똑했다. 그는 진서준의 실력을 알고 있었다.진서준에게 왕석훈을 죽이고 그의 재산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였고, 정말로 그런다고 해도 국안부에서는 그의 일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그렇다면 차라리 먼저 굽히고 들어가서 백화점을 그냥 줘버리는 것이 나았다. 적어도 자기 목숨과 다른 사업들은 지킬 수 있으니 말이다.옆에 있던 매니저는 완전히 얼이 빠졌다.그는 어떻게 진서준과 왕석훈을 대해야 할지 몰랐다.게다가 왕석훈은 이제 더는 그의 상사가 아니었다.매니저는 진서준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 숙여 사죄했다.“죄송합니다. 모든 건 전해찬 씨께서 시킨 일입니다.”전해찬이 시킨 일이라는 말에 진서준과 한보영 모두 놀라지 않았다.“그냥 날 블랙리스트에 넣으라고 한 건가요?”진서준이 물었다.“아... 아뇨. 진서준 씨를 백화점에서 내쫓은 뒤 경호원들을 시켜 흠씬 두들겨 패라고 했습니다.”매니저는 덜덜 떨면서 말했다.경호원을 시켜 진서준을 패라고 했다는 말을 듣자 왕석훈은 전해찬이 죽도록 미웠다.선천 2품 대종사마저 진서준의 상대가 되지 않는데, 일개 경호원들이라면 진서준이 손가락 하나 움직이면 전부 목숨을 잃을 것이다.“세상에는 똑똑한 사람도, 멍청한 사람도 있는 법이죠.”진서준은 피식 웃었다.“일어나요. 이 백화점은 이제부터 제 겁니다. 계속 매니저 하세요. 하지만 기회는 한 번뿐입니다.”매니저는 그 말을 듣더니 연신 고개를 조아리면서 진서준에게 고마워했다.먼저 매를 든 뒤 당근을 준다면 상대방은 더욱 고마워할 것이다.진서준은 이제 더 이상 무턱대고 앞으로 돌진하던 단순한 청년이 아니었다.왕석훈은 자리에서 일어난 뒤 진서준을 향해 정중히 말했다.“제 딸은 진 마스터님을 오랫동안 좋아했습니다. 진 마스터님을 한 번 뵙고 싶어 하는데 혹시...”“전 여자 친구가 있으니 그
게다가 진 마스터는 최근에 고양시의 가장 강한 대종사를 죽였다.하지만 전해찬은 진 마스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아버지, 진 마스터에게 돈을 줘서 절 제자로 받아달라고 하면 안 돼요?”전해찬이 흥분해서 물었다.“겨우 그까짓 돈을 진 마스터님께서 원하겠어?”전홍석이 차갑게 말했다.진서준에게 소멸당한 세 가문의 자산을 더해도 전시 일가와 비슷할 것이다.진서준에게 부족한 건 돈 따위가 아니었다.“그렇다면 뭘 줘야 할까요? 미녀? 아니면 골동품?”전해찬은 떠오르는 걸 다 얘기했다.“너는 머리 좀 쓰면 안 되겠니?”전홍석은 본인은 똑똑한데 아들이 너무 멍청해서 무척 화가 났다.갑자기 전홍석은 호흡이 가빠지더니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안색이 창백해졌다.“약... 약...”전해찬은 서둘러 전홍석의 약을 가지러 갔다.약을 먹은 뒤 전홍석은 숨 쉬는 게 한결 쉬워졌다.그는 잠깐 숨을 돌린 뒤 말했다.“그 정도 수준의 사람이라면 부족한 게 없을 거야. 부족한 게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앞다투어 선물로 주겠지. 우리는 다른 사람이 찾지 못하는 걸 줘야 해.”전홍석이 말했다.“다른 사람이 찾지 못하는 거라면 어떤 거예요?”전해찬은 서둘러 물었다.“바로 이거야!”전홍석은 자신이 공들여 준비한 선물을 꺼냈다.예쁘게 꾸며진 박스를 본 전해찬은 궁금한 듯 물었다.“아버지, 안에 뭐가 들어있는 거죠?”“영약!”전홍석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영약이요? 그게 뭔데요? 영성이 있는 약은 아니겠죠?”“맞아.”“설마 다리가 달려서 도망치는 건 아니에요?”전홍석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멍청한 것, 그런 영약이 어디 있어? 내가 말한 영약이란 풍수 좋은 곳에서 수백 년간 자라서 대량의 영기를 띤 약이야. 수련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귀중한 거라고!”전홍석의 말을 들은 전해찬은 무척 흥분했다.“아버지, 이 약이 있다면 진 마스터님께서 절 제자로 받아주시겠죠?”“몰라. 제자로 받아주지는 않더라도 몇 수 가르쳐주기는 할 거야.”전홍석은 미소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전부 거물이었다.세 도시의 모든 거물이 오늘 저녁 레이 호텔에 모였다.그들 중에 진서준을 본 적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지만 다들 진 마스터는 익히 알고 있었다.호텔 입구에는 아름다운 외모에 뛰어난 몸매를 소유한 여자가 서 있었다.그 여자는 분위기만 봐도 신분이 남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호텔 안으로 들어가던 거물들도 여자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초조해 보이던 여자는 진서준과 한보영을 보자 미소 띤 얼굴로 그들을 맞이했다.“저 두 사람은 누구지? 허씨 집안의 아가씨가 직접 마중 나가다니!”“저 여자... 한씨 일가의 딸 같은데. 그 옆에 있는 남자는 나도 모르겠어.”“설마 소문으로만 들었던 진 마스터님은 아니겠지?”“그럴 리가! 진 마스터님이 저렇게 젊을 리가 없잖아.”다들 진서준의 정체를 궁금해하면서 쑥덕댔다.“진 마스터님!”허수아는 진서준의 앞으로 걸어가 정중하게 예를 갖추면서 고개를 숙였다.“아버지께서 여기서 진 마스터님을 맞이하라고 하셨어요.”허수아는 허준희의 딸로 아직 미혼이었다.어제 진서준이 이씨 일가를 처단한 뒤 허준희는 곧바로 허수아에게 연락해 고양시로 오라고 했다.진 마스터를 극진히 보살피기 위해서 말이다.“고마워요.”진서준은 허수아를 보면서 덤덤히 말했다.“이쪽으로 오세요!”허수아는 한쪽 손을 내밀면서 제스처를 취했고 곧 두 사람의 앞에 서서 직접 그들을 안내했다.허수아의 깍듯한 모습에 구경하던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저 젊은이는 대체 누구길래 동성 최고 가문 허씨 일가의 딸까지 그를 깍듯이 대하는 걸까?“저 사람은 진 마스터님이 맞아. 어제 나도 현장에 있었거든.”한 재벌이 흥분해서 말했다.그는 어제 진서준이 홀로 두 사람과 싸우던 모습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세상에, 진 마스터님 너무 젊은 거 아냐?”“저렇게 젊은 나이에 선천 대종사를 이기다니, 정말 앞날이 창창하네!”“하지만 진 마스터님은 두 대종사가 한참 싸운 뒤에 나선 걸로 알고 있는데. 기회를 잘 잡아
그러나 진서준은 그녀를 보고도 표정 변호가 전혀 없었다.마치 허수아의 외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말이다.“알겠습니다, 진 마스터님. 제가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올게요.”허수아는 감히 진서준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고 씩씩대며 떠났다.허준희는 허수아에게 진서준을 빈틈없이 섬겨야 하며 절대 그의 명령을 어겨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었다.진서준이 오늘 밤 그녀와 관계를 가지려고 해도 허수아는 승낙해야 했다.하지만 진서준은 그럴 생각 따위 전혀 없었다.허수아가 떠난 뒤 한보영은 장난스레 말했다.“진서준 씨, 허수아 씨는 엄청난 미인인데 설레지 않아요? 허수아 씨를 보니 진서준 씨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바로 진서준 씨 침대에 오를 것 같던데요. 그리고 진서준 씨를 귀찮게 하지도 않을 것 같네요. 전 진서준 씨가 다른 여자랑 잤다고 사연 씨에게 고자질할 생각이 없어요.”진서준은 눈을 흘겼다.“제겐 여자 친구가 있어요. 허수아 씨가 아무리 예뻐도 저랑은 상관없어요.”진서준은 허사연에게 미안할 짓을 할 생각이 없었다.일부일처제는 진서준의 머릿속에 깊게 박혀 있었다.“전 아직 바람 피지 않는 남자는 본 적이 없는걸요. 저희 아버지도 다른 여자랑 잔 적이 있어요.”한보영은 계속해 말했다.“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이고 나는 나예요.”진서준의 말을 들은 한보영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그러나 한보영은 그것을 아주 잘 감췄다. 그녀의 눈빛은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먼 곳, 전해찬은 구석에 앉아 있는 진서준과 한보영을 보았다.두 사람이 화기애애하게 얘기를 나누자 전해찬은 무척 화가 났다.“저 자식 무슨 낯짝으로 이곳에 온 거야? 아침에 백화점에서 쫓겨났으면서 수치심 따위는 전혀 없는 건가?”전해찬은 차갑게 웃었다.“반성할 줄 모르네. 그렇다면 내가 여기 사람들 앞에서 망신시켜주겠어!”말을 마친 뒤 전해찬은 레이 호텔의 매니저를 찾았다.매니저는 당연히 전해찬을 알아보았다. 전해찬의 분부를 들은 매니저는 곧바로 진서준과 한보영에게 다가갔다.“고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