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성은 사람들의 비웃음 가득한 시선을 받으며 툴툴거리면서 호텔을 떠났다.연회에 참석하러 왔다가 내쫓기는 건 다른 손님들도 아마 처음 보는 광경일 것이다.다들 이씨 가문이 황보식 어르신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웬만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심하게!그렇지 않으면 늘 인자한 황보식이 이씨 가문에 이 정도로 망신을 줄 리가 있겠는가?한편, 진서준은 허사연과 함께 홀로 들어왔다. 홀이 어찌나 큰지 거의 축구장 하나 정도 돼 보였다.술향기와 꽃향기가 코끝을 스쳤고 참석한 손님들 모두 화려한 옷차림에 남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오늘 연회에 참석한 손님들은 전부 서울시에서 내로라하는 권력자들이었다. 이씨 가문의 연회에 초대된 손님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천지 차이였다.“가서 어르신께 인사하고 올게요. 윤진아, 서준 씨랑 자리 찾아서 앉아.”허사연이 여동생에게 말했다.“사연 씨, 나와 함께 가요.”진서준이 덤덤하게 웃어 보였다.황보식이 오늘 이 연회를 연 목적이 바로 진서준이었다. 조금 전 통화할 때 황보식에게 이미 도착했다고 했으니 당연히 만나서 인사는 해야 했다.허윤진은 진서준의 얘기를 듣고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우리 언니 신분이 어떻고 당신 신분이 어떤지 몰라서 그래요? 황보식 어르신은 우리 아빠도 존경하는 분이시라고요.”허윤진의 비웃음에도 진서준은 그저 웃기만 했다.“그런데요? 오늘 이 연회의 주인공이 저일지도 모르잖아요.”“풉!”허윤진의 두 눈에 담긴 경멸이 다 흘러나올 지경이었다.“진서준 씨,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요? 창피한 걸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죠.”허윤진은 진서준을 점점 더 질색했다.‘고작 의술을 조금 알고 있을 뿐이잖아?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공교롭게 우리 아빠의 목숨을 살려줬기에 이런 대접이라도 받지, 안 그러면 평생 이런 연회 근처에도 오지 못했을걸?’버릇없는 여동생의 모습에 허사연이 화를 냈다.“윤진아, 서준 씨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당
‘말도 안 돼!’금방 출소한 범죄자가 어떻게 황보 가문의 메인 자리에 앉을 수 있단 말인가?허윤진은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고 두 눈에는 오로지 경악뿐이었다.조금 전 진서준이 했던 얘기가 허윤진의 뇌리에서 맴돌았다. 허윤진은 자기 팔을 힘껏 꼬집었다. 아픔이 느껴지는 걸 보니 꿈은 아닌 듯싶다.그런데 대체 왜?허윤진의 마음이 진정되기도 전에 진서준은 이미 메인 자리에 앉았다.“사연 씨는 진 선생님 옆에 앉으세요.”눈치 빠른 황보식은 진서준과 허사연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허씨 가문은 서울시에서 지위가 꽤 있고 허사연도 많은 남자들의 이상형으로 명성이 자자했다.만약 두 사람이 결혼한다면 앞으로 그 누구도 진서준을 깔보지 못할 것이다. 허사연도 마침 진서준의 옆에 앉으려던 생각이었던지라 황보식의 말에 바로 옆에 앉았다.“정말 선남선녀가 따로 없네요.”황보식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다른 사람들도 두 사람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허사연도 이런 자리에 자주 참석했었지만 여자인지라 부끄럼을 잘 탔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건네는 칭찬에 쑥스러운 나머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오늘 여러분에게 진 선생님을 소개하려고 이렇게 모셨어요. 진 선생님은 우리 황보 가문의 귀한 손님이니 앞으로 진 선생님을 만나면 깍듯하게 대해줬으면 좋겠어요. 만약 함부로 대하거나 일부러 시비를 건다면 그건 우리 황보 가문과 맞서는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황보식의 말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저 녀석이 설마 황보식 아들의 사생아는 아니겠지?’“이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어요, 어르신.”진서준이 덤덤하게 웃으며 사람들에게 말했다.“저 진서준은 그저 평범한 시민일 뿐입니다. 하지만 어디 편찮은 데 있으면 언제든지 절 찾아와도 좋아요.”사람들은 대충 귓등으로 듣기만 할 뿐 딱히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고작 20대 청년의 의술이 뛰어나봤자 얼마나 뛰어나겠는가?하지만 앞으로 진서준을 만난다면 예의 바르게 대해야 했다. 물론 이건
현장에 있는 사람들 중에 이승재를 아는 사람은 아주 적었다. 이승재의 남다른 카리스마를 본 손님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진서준의 시선도 이승재에게 머물렀다. 그 순간 그에게서 영기가 느껴졌다. 아주 미약하여 진서준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천지 차이지만 일반인들 중에서는 극히 드문 존재였다.‘저 사람도 수련을 한 사람이군.’진서준은 바로 판단이 섰다.이승재는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며 황보식에게로 걸어갔다.“어르신, 오랜만입니다.”“도사님도 잘 지냈나요?”황보식이 웃으며 말했다. 자신에게 사기를 친 이승재만 생각하면 치가 떨릴 정도로 얄미웠지만 지금은 화를 낼 때가 아니었다.오늘 밤 진서준은 사람들 앞에서 이 사기꾼의 진짜 정체를 까발릴 것이다.“어제 마침 남주성에 왔다가 어르신이 연회를 연다는 소리를 듣고 일부러 왔어요. 사부님께서 요 며칠 만드신 보물까지 가지고 왔어요.”이승재가 웃으며 말했다.“그럼 그 보물을 봐도 될까요?”황보식이 흥분한 얼굴로 말하자 이승재는 오늘도 한 건 하겠다고 몹시 기뻐했다. 그가 사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돈 많은 사람들이 사 갈 것이다. 이런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들을 속이는 건 이승재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허사연은 이승재에 관하여 들은 바가 있었다. 그녀는 진서준이 모르는 줄 알고 낮은 목소리로 소개했다.“저분은 이승재 도사님이신데 우리 남주성에서 아주 유명한 술법 마스터예요. 듣건대 귀신을 쫓고 보물도 만든대요. 적지 않은 명문가에서 저분의 은혜를 입었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어르신도 저분과 깊은 친분이 있고요.”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술법 마스터인지 아닌지는 이따가 곧 알게 될 겁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다.“제가 한 말 다 사실이에요.”“이 세상에 초인적인 존재가 많다는 걸 저도 알아요.”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는 사이 두 부하가 보물 상자를 하나씩 들고 들어왔다.옥석으로 조각한 상자였는데 그 상자만 해도 아주 값어치
진서준의 목소리가 그리 크진 않았지만 사람들의 귀에 정확하게 때려 박혔다.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쳐다보았다.미리 마음의 준비를 마친 황보식마저도 진서준의 말에 여간 놀란 게 아니었다.“당신 정말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나 보네?”이승재의 낯빛이 더할 나위 없이 어두워졌다.그의 사부가 만든 보물은 늘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누군가 나타나서 이 법기들이 전부 고철이라고 한 것도 모자라 사부를 쓰레기라고 모욕했다.“저 사람 진짜 황보식 어르신의 지인 맞아요? 왜 일부러 어르신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 같죠?”“도사님의 사부를 쓰레기라고 하다니,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군요.”“오늘 황보식 어르신이 계신다고 해도 저 사람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사람들은 의견이 분분했고 저마다 오늘이 진서준의 제삿날이라고 생각했다.허사연도 긴장감이 도는 얼굴로 진서준의 손을 잡고 나지막하게 말했다.“서준 씨, 얼른 도사님께 사과드려요. 도사님은 진짜로 실력이 있는 분이시란 말이에요. 도사님의 사부는 남주성에서 명성이 자자한 풍수 대가시고요.”허사연이 손을 잡자 진서준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설렜다. 하지만 이내 다시 진정했고 입가에 미소가 새어 나왔다.이 법기들은 어제 황보식의 집에서 봤던 것과 똑같이 전부 다 풍수술로 위장한 쓰레기들이었다.현장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보아낼 수 있는 사람은 진서준밖에 없었다.“제가 이것들을 고철이라고 한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예요.”진서준이 무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어르신이 모셔 온 분의 안목이 참 남다르시나 봐요. 우리 하씨 가문은 황보 가문과 비할 바가 안 되죠. 어르신이 싫다고 하시면 그럼 제가 사겠습니다.”조금 전 법기를 사겠다던 유명 인사가 다시 나서서 말했다. 그의 이름은 하규천이었고 서울시 하씨 가문의 현 가주였다. 하씨 가문도 서울시에서는 나름 이름 있는 가문이었다.아까 그 한마디는 황보식이 사람 보는 눈이 없어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를 데려왔다
진서준은 침착하게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이승재를 힐끗거리며 피식 웃었다.“오늘 이 연회는 날 환영하는 자리인 동시에 당신의 속임수를 까발리는 자리이기도 하군.”그러고는 조금 전 가짜 법기를 산 가주들을 보며 말했다.“저 사람의 속임수에 당한 것도 모자라 돈까지 바친 걸 당신네 조상들이 안다면 무덤에서 기어 나와서라도 가만두지 않을걸요?”진서준의 말에 이승재와 가주들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인마, 죽고 싶어? 황보식 어르신이 계신다고 우리가 손을 못 댈 것 같아?”하규천 옆에 있던 한 청년이 발끈했다. 하규천이 말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진서준에게 달려가 주먹을 날렸을 것이다. 하규천의 두 눈에도 싸늘함이 스쳐 지나갔다.“나이도 어린놈이 입만 살아서는.”하규천의 목소리가 점점 서늘해졌다.“그럼 네가 이승재 도사님의 사부보다 더 강하단 말이야?”그 모습에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내저었다.고작 20대 초반인 진서준이 풍수에 대해 뭘 알겠는가? 그들 눈에 비친 진서준은 그저 자신의 체면 때문에 나선 것에 불과했다.이승재는 순간 불안감이 밀려왔고 두 눈에도 당황함이 스쳤지만 이내 다시 괜찮은 척했다.“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감히 우리 사부님과 비교하려 들어? 오늘 황보식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 기회는 줄게. 하지만 증거를 내놓지 못한다면 절대 가만 안 둬.”상황을 지켜보던 허사연이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황보식도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진서준은 덤덤하게 웃으며 오른손을 내밀어 구양 마법 거울을 가리키면서 몸속의 영기를 내뿜었다. 손을 다시 거두었을 때 영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지금 다시 봐봐요.”그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의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구양 마법 거울을 쳐다보았다.‘손으로 가리키기만 했잖아. 그게 뭐가 대단하다고?’그런데 곧이어 사람들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경악을 금치 못했다.“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조금 전까지도 법기에 빨아들이는 힘이 있다고
“이건 술법 중의 풍수술?!”하늘에 나타난 보랏빛 번개를 본 사람들은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10여 년을 수련한 사람들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사람의 힘으로 번개를 부를 수 있다니! 정말 전설 속의 술법이 아닌가! 현장의 많은 사람들은 일반인이라 다들 두려워했다.가장 높은 자리에 앉은 황보식이 이승재를 가리키며 화를 냈다.“이승재, 너 정말 이렇게 나올 거야?!”“그 새끼가 내 일을 망쳤는데 가만히 둘 수 없지.”이승재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그는 이미 너 죽고 나 죽자는 심정이었다.조철용은 하늘의 번개를 보며 표정이 심각해졌다.그는 무술 수련자와 싸워보기만 했지 이런 풍수술사와는 싸워보지 못했다.“저리 꺼져!”이승재가 손을 휘휘 젓자 하늘의 번개가 갑자기 조철용을 향해 쳤다.조철용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놀란 그는 뒤로 3미터 정도 멀어졌다.번개가 바닥에 떨어졌다. 조철용이 서 있던 곳에는 30센티미터 정도의 구덩이가 생겼다.하지만 이 바닥은 대리석 타일로 깐 바닥이다.그런데도 30센치미터의 구덩이를 만들어 내다니.이 번개가 사람의 몸에 떨어졌으면 뼈도 남지 않을 것이었다.조철용을 맞추지 못한 이승재는 손바닥을 들어 다시 번개를 내렸다.이번에는 아까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내리쳤다. 조철용은 제대로 서지 못했다. 마음속에 불안감이 피어났다.쿨럭.새빨간 피가 조철용의 허리에서 뿜어져 나왔다.연회장에는 어느새 피 냄새가 진동했다.사람들은 번개가 언제 친 것인지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조철용은 이미 당해버렸다.이승재가 들어온 소문보다 더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꺼져.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는 널 바로 죽일 수도 있으니까.”이승재가 화를 내며 얘기했다.조철용은 황보식의 사람이다. 만약 이승재가 조철용을 죽인다면 이승재와 황보식의 갈등은 더욱더 심해질 것이다.그래서 아까는 일부러 살살 했다.뒤쪽에 서 있던 진서준은 그 장면은 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허사연의 부드러운 손을
조철용은 황보식의 경호원이긴 하지만 황보식은 그를 하인처럼 대하지 않았다.황보식이 참석할 수 없는 자리에 조철용을 보내기도 할 정도였다.그런 조철용을 죽기 직전까지 패다니, 이승재가 얼마나 화가 난 것인지 알 수 있었다.놀란 허사연의 연약한 몸이 바르르 떨렸다.진서준은 이제 끝장이다.“이번에는 네 차례야!”이승재는 차갑게 진서준을 노려보았다.진서준은 미간을 약간 찌푸리고 이승재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조철용의 곁으로 왔다.진서준이 자기를 무시하자 이승재는 화가 치밀었다.“너 이 새끼! 지금 당장 너를 저승길 친구로 보내주지!”푸른 빛이 진서준을 향해 날아갔다.진서준은 조철용의 곁에 앉아 체내의 영기로 상처를 치유해 주고 있었다.이승재의 일격은 조철용의 심장을 꿰뚫었다.빨리 치유하지 않는다면 3분 안에 죽을 것이다.조철용은 황보식의 사람이고 또 진서준을 보호하기 위해 다친 것이다.이렇게 다쳐보면서 약간의 교훈도 얻는 것이 아니겠는가.“서준 씨! 얼른 피해요!”하늘에 빛이 번쩍인 순간, 허사연이 힘껏 소리쳤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번개는 진서준을 향해 내리쳤다.그 순간, 모든 사람들은 진서준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번개가 진서준의 몸에 내려친 후, 진서준의 몸 주변에는 전기가 튀었다.연회장은 정적에 휩싸였다.모든 사람의 시선이 진서준에게 집중되었다. 다들 놀라서 수군거렸다.“죽은 건가?”“죽었겠지! 조철용도 막아내지 못하는 번개를...”“그런데 왜 안 쓰러진 거야?”다들 수군거리고 있을 때, 번개를 맞은 진서준은 담담하게 웃었다.“이게 네 실력이야? 이런 허접한 실력으로는 나한테 자그마한 상처도 낼 수 없어.”진서준의 앞에서 이 번개는 아주 미약했다.주변의 사람들은 놀라서 웅성거렸다.모두가 무시하던 진서준이, 혈혈단신으로 번개를 막아내다니.이게 사람인가?창백하게 질렸던 허사연의 얼굴에도 약간의 핏기가 돌았다.그녀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미소 지었다.“무사하니까 됐어... 무사하니까.”이승재는 믿
이미 죽은 줄로만 알았던 조철용이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그 장면에 겁이 많은 사람은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황보식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아까 그는 분명 번개가 조철용의 가슴을 꿰뚫는 것을 보았다.그런데 조철용이 일어나다니.설마 이것도 진서준이...?“콜록...”치명상은 사라졌으나 가슴께의 상처는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난... 죽은 게 아니었던가? 왜 아직도 살아있는 거지?”조철용이 가장 크게 놀랐다.아까 번개 빛이 그의 가슴을 꿰뚫을 때, 조철용은 그대로 기억이 멈췄다.“진 선생님이 널 구한 모양이구나!”황보식이 흥분해서 조철용의 곁으로 걸어갔다.조철용이 죽지 않은 것은 황보식에게도 좋은 일이었다.‘진 선생님?’조철용은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그러다가 자기가 아까 이승재와 겨루고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하지만 지금 이승재를 쳐다본 그는 놀라서 눈알이 빠질 뻔했다.한방에 조철용을 죽일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이승재는 지금 진서준 앞에서 벌벌 떨며 무릎 꿇고 있었다.이게 무슨 일인가!‘설마 진서준이 나보다 강한 건가!?’하지만 무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진다. 진서준은 이제 20대인데, 태어나서부터 무술을 연마했다고 해도 그만큼 강할 수 없었다.진서준은 자기가 살려준 조철용을 신경 쓰지 않고 이승재를 보며 담담하게 얘기했다.“몇 년간 수련했으니 영골에 대해 알지?”이승재가 허리를 약간 펴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스승님한테서 이 물건에 대해 들어본 적 있습니다만,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이승재는 수련한 지 30여 년이 된다. 스승인 권해철이 영골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하지만 이승재는 그 물건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그래? 그럼 네 스승은 지금 어디 있는데?”진서준은 약간 기뻤다.어머니의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영골이 필요하다.다른 것은 다 준비되었으니 영골만 있으면 진서준은 조희선을 일반인으로 만들어줄 수 있었다.“스승님은 현재 폐관 수련 중입니다.”이승재는 진
그런데 진서준이 자기 애인을 보러 온 것임을 깨닫자 자연스레 투덜댔다.허사연의 눈빛 또한 장난기가 가득했다.“서준아, 대체 언제 그 조씨 가문 가주 딸이랑 특별한 관계로 엮인 거야?”진서준은 곧바로 쓴웃음을 지으며 해명에 나섰다.“오해야, 나랑 조민영은 그런 사이 아니야. 우리 만남은 정말 우연이었고 난 그 아이를 단지 여동생처럼 생각할 뿐이야. 그 아이만 보면 꼭 서라를 보는 것 같거든.”진서준이 조민영을 여동생처럼 생각한다는 말을 듣자 허사연 자매의 싸늘한 분위기가 금세 누그러졌다.제아무리 지선까지 처치했던 진서준이지만 허사연 앞에서 다른 여자 이야기를 꺼내는 건 긴장하고 식은땀이 나는 일이었다.“여동생처럼 생각하는 거라면 괜찮아.”허사연이 솔직한 소감을 밝혔다.“조민영은 이제 막 성인이 됐어. 이따가 그 아이를 만나면 그 아이가 서라랑 얼마나 비슷한지 알게 될 거야.”진서준이 덧붙여 설명했다.처음에 진서준이 조민영을 돕기로 결심했던 것도 조민영의 성격이 진서라와 너무나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너 혼자 그 조씨 가문 아가씨 만나러 가봐. 우리 둘은 고향에 좀 들러볼게.” 허사연이 말에 진서준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고향에 가?”“그래, 우리 고향이 여기 봉천시거든. 근데 몇 년 동안 한 번도 오지 못했어. 이번 기회에 한 번 들려보려고 해.”허사연이 설명했다.진서준은 허사연의 고향이 이곳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허사연이 따로 얘기하지 않았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허사연이 태어나고 나서 지금까지 고향에 온 횟수는 다섯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그래, 그럼 조심해서 다녀와.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전화해.”진서준은 손으로 전화 거는 제스처를 하며 말했다.“응, 너도 조심하고. 낯선 여자한테 홀리지 않도록 조심해.”허사연이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진서준은 그 말에 순간 움찔했다.지금 진서준은 더 이상 다른 여자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허사연, 김연아, 서지은만으로도 이미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또 다른 배수정 같은
곧 설표 특전대의 목욕탕에서 귀신 울음소리 같은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약효가 너무 강렬해 모두가 뼈가 분해되어 다시 조립되는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이 고통이 심할수록 진서준이 작성한 처방전의 공포스러움이 증명되었다.한 시간 후, 설표 특전대 전원이 귀청이 터질 듯한 환호성을 질렀다.다들 일제히 경지 돌파에 성공한 것이다.본인의 실력이 이전과 비교해 몇 배는 더 강해진 게 확실했다.내공 무인이었던 장서안을 비롯한 몇몇 장병들은 단숨에 내력 절정 경지에 이르러 종사 경지까지 단 한 걸음 남겨둔 상태였다.심지어 무인조차 아니었던 나머지 장병들도 내공 무인이 되어 진기를 모을 수 있게 되었다.이 순간, 모두가 진서준을 신처럼 숭배하기 시작했다.“진 교관님, 정말 우리 부모와 같은 은인이십니다.”“진 교관님, 앞으로 무슨 명령이든 말씀만 하시면 그곳이 지옥이라고 해도 망설임 없이 뛰어들겠습니다!”“교관님이 주신 처방전과 새로 개량된 열풍권 덕분에 이번 8군 대회에서 반드시 우승할 수 있을 겁니다.”기쁨에 찬 장병들의 모습을 보며 진서준도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이들은 진서준이 직접 가르친 병사들이었기에 그의 눈에 반쯤은 자기 자식 같은 존재였다.자기 자식이 뛰어난 성과를 거두는 것을 본 부모가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다들 열심히 수련해. 그리고 15일 후에 처방전을 한 번 더 사용해. 난 일이 있어 먼저 떠나야겠어.”진서준이 떠난다는 말을 듣자 다들 아쉬워 발을 동동 구르며 그의 이탈을 원치 않았다.진서준이 부대에 온 지 고작 이틀 만에 병사들의 태도를 이처럼 극적으로 변화시킨 것이다.진서준이 조금만 더 머물러준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설표 특전대원들은 대한민국 군부의 최고 전당인 전신전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전신전은 대한민국 8대 특전대 위에 군림하는 최고의 전당이었다.전신전에 소속한 인원은 극히 적어 단 50명뿐이었지만 이 50명은 대한민국 군부의 최고 정점에 선 존재들이었다.장서안을 포함한
“정말 중요한 친구 한 명이 연락이 닿지 않아서요. 빨리 가서 확인해 봐야 합니다.”진서준은 한마디 덧붙였다.“우선 설표 특전대원들에게 이번에 도착한 약재로 샤워부터 하게 해주세요. 병사들이 전부 사용하고 나면 그때 떠나겠습니다.”“알겠습니다... 아, 맞다, 진 교관님, 이번에 설표 특전대가 8군 대회에서 우승만 하면 제가 교관님을 위해 신청한 군 계급도 곧 내려올 겁니다.”소정태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군 계급을 신청하다니?진서준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제 권한으로는 소장 계급까지만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설표 특전대가 우승하면 다른 7개 특전대도 진 교관님을 모시려 들겠죠. 그때가 되면 교관님은 곧바로 중장으로 승진할 겁니다.”소정태는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장군 계급은 수많은 군인의 꿈이자 목표였다.하지만 평생을 전장에 바쳐도 고작 위관 계급에서 머무는 군인이 허다했다.그런데 진서준은 위관과 교관 계급을 건너뛰고 바로 소장이 될 수 있었다.이는 최근 군 역사에서도 전례 없는 일이었다.하지만 소정태는 진서준이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고 믿었다.진서준의 훈련을 받은 설표 특전대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특히 개량된 열풍권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이 훈련 덕분에 설표 특전대는 향후 임무 수행 중 생존율과 완수율 모두 크게 높아질 터였다.대한민국 8대 특전대 임무는 항상 국가의 핵심 이익과 연관이 있는 중요한 임무였다.임무 완수율이 높아지면 국가에도 막대한 이익이 돌아올 것이다.사실 진서훈이 직접 나서 군 고위층에 요구한다면 진서준은 중장이 아니라 상장까지도 바로 승진할 가능성이 있었다.단 한 번의 보해 전투만으로도 진서준은 소장 계급에 오를 자격을 충분히 입증했다.진서준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제가 군에 머물 시간이 없어서요. 장군 계급은 좀...”“아니요, 절대 교관님을 강제로 군에 묶어두진 않습니다.”소정태가 급히 해명했다.“교관님께 드리는 군 계급은 국안부 상경과 같은 개념입니다. 별다른
조태희가 강 종사를 같이 데리고 가야 한다고 하자 조기강은 순간 망설였다.“형, 강 종사는 집에 남겨두시는 게 좋을 것 같아.”“근데 천산 근처에 대요괴가 출몰하는데 너 혼자 가는 건 너무 위험하잖아.”조태희의 얼굴엔 우려가 가득했다.동북 천산은 사계절 내내 눈이 덮여 있을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바로 그 근처에 거대한 요괴가 출몰하기 때문이었다.천산 아래에는 영맥이 흐르고 있어 그 지역 동물들이 영기를 흡수하며 영지를 얻곤 했다.예컨대 얼마 전 진서준이 보운산에서 길들인 누렁이도 그런 대요괴 중 하나였다.조기강은 최근 연이어 전투를 치르며 몸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그런 조기강을 혼자 천산으로 보내는 건 조태희에게도 불안한 일이었다.“대요괴를 만나면 내가 이길 순 없더라도 도망칠 수는 있어.”조기강이 단호하게 말했다.“강 종사가 나와 함께 가면 우리 가문 전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어. 변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이 틈을 타 공격하면 어쩌려고 그래?”조기강의 눈엔 깊은 우려가 담겨 있었다.심씨 가문이 이번 가문 사이 혼인을 제안하면서 다른 꿍꿍이를 숨기고 있을지도 몰랐다.겉으론 결혼을 빌미로 선의를 베푸는 척하지만 사실은 다른 목적으로 접근했을 가능성도 컸다.조기강의 뜻을 이해한 조태희는 한참 동안 고심한 끝에 결국 동생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기강아, 정말 조심해야 해. 너까지 민영 때문에 다치면 내가 정말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조태희는 동생의 손을 붙잡으며 진심으로 당부했다.40년 넘게 이어진 형제애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만약 조기강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조태희는 아마 평생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조기강은 간단히 짐을 챙기고 곧바로 차를 타고 북쪽 천산으로 향했다.조기강이 봉천시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심씨 가문과 변씨 가문 모두 이 소식을 접했다.그러나 두 집안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마치 조기강이 봉천시를 떠난 사실조차 모르는 듯한 태도
“좋아요, 번거롭게 해드려 미안하네요.”밤이 완전히 내려앉은 후, 소정태는 곧바로 사람을 시켜 진서준과 허사연 일행에게 방 세 개를 준비했다.방은 별로 화려하지 않고 심플하고 깔끔했고 필요한 물건은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저녁 식사를 마친 뒤, 진서준은 휴대폰을 꺼내 들고 조민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벨이 오래 울렸음에도 아무도 받지 않자 진서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진서준이 전화를 몇 번 더 걸어봤지만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조민영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지난번 양씨 가문에서 조민영은 자기 목숨을 걸고 진서준 앞을 막아섰다.그 용기 하나만으로도 진서준은 조민영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다.진서준의 마음속에서 조민영은 이미 친동생과도 같은 존재였다.“모레쯤 조씨 가문에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 봐야겠어...”봉천시.조씨 가문 저택은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조씨 가문의 개인 병원 병실 내 조민영이 조용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조민영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했고 숨결이 미약했으며 기운은 극도로 쇠약했다.조민영 곁에는 조태희와 하얀 가운을 입은 중년의 대머리 남성이 서 있었다.“장 의사님, 제 딸 상태가 어떻습니까?”조태희가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장 의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가주님, 따님께서 단순히 병에 걸린 것이면 다행이었겠지만 문제는 병이 아니라 중독된 겁니다.”딸이 중독되었다는 말을 듣자 조태희의 얼굴이 굳어졌다.‘중독이라고? 언제 중독된 거지? 내가 왜 몰랐지?’“무슨 독에 중독된 겁니까?”지금 범인을 찾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우선은 딸을 살리는 것이 급선무였다.딸을 살린 후에 범인을 찾아도 늦지 않았다.“민영 아가씨 상태를 보아하니 칠채지독에 중독된 것 같습니다. 이 독은 오독의 독액에 빙정과 천산설련을 섞어 만든 무색무취의 독입니다.”장 의사가 자세하게 독에 관해 설명했다.설명을 들은 조태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빙정과 천산설련은 매우 희귀한 약재로 천지산 근처에서만 발견될 수
뜨거운 김이 피어나는 욕조를 보며 소정태는 머리를 돌려 진서준에게 물었다.“진 교관님, 이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그래요, 근데 처음에는 좀 아플 거니까 꾹 참아야 해요.”진서준이 한마디 일러두었다.소정태는 이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소정태가 횡련 대종사가 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여러 전장에서 생존한 덕분이었다.몸에는 칼자국과 총상투성이였고 아무리 강렬한 고통이라도 소정태는 견뎌낼 자신이 있었다.소정태는 옷을 단숨에 벗어 던지고 욕조로 뛰어들었다.그 순간, 소정태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어졌고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강렬한 약효가 소정태의 근육과 뼈대를 자극하며 우두둑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결국 소정태는 견딜 수 없는 고통에 괴로운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진서준이 작성한 처방전은 단번에 효과를 발휘했다.잠깐 사이에 소정태의 몸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소정태의 고통스러운 비명은 무려 30분간 이어졌다.30분 후, 욕조 안의 약효는 완전히 사라졌고 피처럼 붉었던 욕조 물은 다시 맑고 투명해졌다.소정태를 다시 보니 온몸에서 이전보다 더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고 난 소정태는 드디어 경지를 돌파하게 된 것이었다.소정태는 일급 대종사의 절정 단계에서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었다.평생 이급 대종사에 이르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진서준이 작성한 처방전 덕분에 단숨에 이급으로 돌파한 것이다.가슴 속에서 밀려오는 기쁨과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욕조에서 나온 소정태는 급히 옷을 입고 무릎을 꿇어 진서준에게 머리를 숙였다.“진 교관님, 당신은 제게 새 생명을 주신 분이나 다름없습니다.”진서준이 없었다면 소정태는 평생 이급 대종사라는 경지의 문턱에도 오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진서준 덕분에 소정태는 단 30분 만에 평생 넘지 못할 벽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진서준은 소정태를 일으키며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사령관님이 돌파할 수 있었던 건 사령관님이 이전부터 쌓아온
이때 병사들이 몰려와 허윤진에게 칭찬과 존경을 연신 쏟아냈다.“사모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렇게 젊으신데 벌써 종사라뇨.”“이런 대단한 사모님이 계시니 저희도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주변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사모님이라 부르자 허윤진은 부끄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허윤진은 허사연을 힐끗 쳐다보고는 서둘러 사람들을 정정했다.“저는 사모님이 아니에요. 저분이 사모님이고 저는 저분 동생이에요.”처제를 사모님으로 착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다들 아부하려다 큰 실수를 한 셈이었다.사람들은 급히 허사연 곁으로 가서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사모님. 저희가 착각했어요. 마음에 두지 마세요.”“사모님, 저희 때문에 교관님과 다투지 마세요.”“진 교관님, 정말 죄송합니다...”진서준의 얼굴이 잔뜩 굳어지더니 병사들에게 소리쳤다.“다들 한가한 모양이지? 어서 가서 권법 연습이나 해.”백여 명의 병사들은 재빨리 진서준이 개량한 열풍권을 연습하러 뛰어갔다.“진서준, 방금 내 실력 어땠어?”허윤진은 깡충깡충 뛰어 진서준 앞으로 오더니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그러자 진서준이 미소를 지으며 칭찬했다.“정말 강하던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실력이 훨씬 늘었어.”“당연하지. 내가 누군데.”허윤진은 한껏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좋아, 너희는 알아서 구경하고 있어. 난 소정태의 상태를 좀 보고 올게.”소정태에게 중상을 입혔으니 진서준은 당연히 확인하러 가야 했다.진서준이 군구 병원에 도착했을 때, 간호사가 소정태에게 붕대를 감고 있었다.“진 교관님!”진서준이 오자마자 소정태는 벌떡 일어나 경례를 올렸다.“크게 다쳤는데 얼른 앉으세요.”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한쪽에 있던 간호사는 놀라운 눈빛으로 진서준을 쳐다보았다.소정태가 어떤 사람인지 군구 전체가 다 알고 있었다.심지어 군구 최고 책임자를 마주해도 소정태는 항상 당당했다.그런 소정태가 이제 겨우 스무 살 넘은 청년에게 먼저 경례를
고소연은 설표 특전대에서 유일한 여성 종사였고 그 실력은 압도적이었다.장서안 같은 일반 대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부사령관인 박준명조차 고소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허윤진과 고소연의 대결 전, 사실 대다수 병사는 허윤진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여겼다.진서준이 강하다고 해서 그의 여자친구도 강할 거란 보장은 없었다.병사들은 두 사람을 위해 넓은 공터를 마련했다.“허윤진 씨, 실례하겠습니다.”고소연은 허윤진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저를 봐주지 말고 모든 실력을 보여주세요.”허윤진도 똑같이 예를 갖추어 답했다.그 말이 끝나자 고소연은 미세하게 다리를 굽힌 후 치타처럼 순식간에 허윤진을 향해 돌진했다.고소연의 속도는 너무 빨라서 주변에서 지켜보던 병사들의 시선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고소연이 자기 실력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허윤진의 눈빛에도 투지가 활활 불타올랐다.고소연은 허리를 낮춘 채 양손을 날카로운 발톱처럼 치켜들고 허윤진의 팔을 향해 덤벼들었다.고소연의 의도는 단순했다.허윤진을 다치게 하지 않고 제압하려고 했던 것이다.“마침 잘 왔네요.”허윤진은 체내의 영기를 모으더니 불꽃처럼 타오르는 기운이 그녀의 양손에 뿜어져 나왔다.이 광경을 본 병사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맙소사, 진 교관님의 여자친구도 종사였어?.”“세상에, 그래서 사모님이 고소연 부사령관님에게 대련을 신청했구나. 이제야 이해할 것 같네.”“사모님이라고? 야, 너 진짜 표현 잘한다.”곧 사모님이라는 호칭이 병사들 사이에서 퍼졌다.진서준은 그 단어를 듣자 얼굴이 어두워졌다.‘윤진은 내 처제가 아니야. 내 여자친구는 옆에 있는 사연이라고.’고소연은 허윤진도 종사라는 사실을 깨닫자 단전의 강기를 모아 기세를 더욱 끌어 올렸다.쾅...두 사람의 팔이 부딪히며 둔탁한 폭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지면 위의 눈이 순간적으로 튕겨 나가며 사방으로 흩날렸다.허윤진은 제자리를 굳건히 지켰고 고소연은 일곱 발짝 이상 뒤로 물러나며 겨우 몸을 가눴다.
진서준의 말에 소정태는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 진 교관님.”소정태는 감격해하며 한마디 더 보탰다.“진 교관님, 제 식구는 이제 진 교관님께 전적으로 맡기겠습니다. 부디 제대로 된 훈련 부탁드립니다.”소정태가 떠난 후, 진서준은 백여 명의 병사를 평온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아직도 날 못 믿겠다는 사람이 있나요?”“없습니다. 우리 모두 진 교관님을 믿고 따르겠습니다!”병사들이 일제히 외치는 모습을 보자 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그렇다면 특훈을 지금 바로 시작합시다.”진서준은 설교 특전대에서 주목을 받는 장서안을 가리켰다.“이리 와 보세요.”장서안은 바로 앞으로 나와 공손히 물었다.“진 교관님, 무슨 지시가 있으십니까?.”“아까 여러분이 연습한 그 권법을 한 번 더 보여줘요.”진서준의 말을 듣자 장서안은 망설임 없이 설표 특전대 특유의 열풍권을 선보이기 시작했다.열풍권이란 권법은 이름 그대로였다.모든 주먹과 발차기가 굉장히 빠르고 맹렬했으며 거의 내지를 때마다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이 권법은 특전대 병사들의 직업 특성과도 관련이 있었다.특전대 병사들은 다들 국가를 지키고 전장에서 적을 처치해야 하는 군인이었다.한 방에 적을 죽이지 못하면 죽는 건 바로 병사들 자신일 것이다.이러한 절박함 때문에 열풍권은 빠르고 강렬하기는 했지만 방어 자세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그래서 상대가 자기와 동등한 실력이라면 열풍권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으나 상대가 더 강하다면 한 번의 공격 이후에 쓰러지는 건 오히려 아무런 방어도 없는 본인일 가능성이 높았다.진서준은 열풍권을 유심히 본 후 연신 고개를 저었다.“그 권법은 참 허점투성이군요.”“네?”진서준의 평가에 병사들은 전부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이제 내가 그 권법을 개량해 줄 거니까 다들 집중해서 보세요.”진서준은 창욱 어르신의 가르침을 받는 3년 동안 권법, 발차기, 검술, 도법 등 다양한 기술을 익혔다.이렇게 여러 분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