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사연이 또 얘기했다.“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해요.”“네. 도움이 필요하면 저도 뻔뻔하게 손을 내밀 겁니다.”진서준이 미소를 지으면서 얘기했다.이때 진서라가 하얀 반팔 티를 들고 걸어왔다.“오빠, 이 옷 어때?”평범한 반팔이긴 하지만 노점상에서 파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노점상의 옷보다 디자인이 더욱 고급스러워 보였다.“그래. 네 마음에 들면 입어봐.”진서준이 웃으면서 얘기했다.“그런데... 조금 비싸.”진서라가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괜찮아.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마음에 드는 건 그냥 사면 돼.”진서준은 꿀 떨어지는 눈으로 진서라를 쳐다보며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이렇게 부드러운 여동생이 다시는 상처 받지 않도록 지켜낼 것이다.허사연도 옆에서 얘기했다.“그래요. 진서준 씨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마음대로 사요! 이 매장의 모든 옷을 다 사도 될 정도의 돈이 있거든요.”진서라는 환하게 웃으면서 얘기했다.“그럼 이 옷을 먼저 피팅해볼게요.”진서라는 빠르게 하얀 반팔 티로 갈아입고 피팅룸에서 걸어 나왔다.역시, 원래도 예쁜 진서라가 멋있는 옷을 입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새 옷을 입은 진서라를 보며 진서준과 허사연은 눈이 번쩍 뜨였다.“오빠, 사연 언니. 어때요?”진서라가 부끄러워하며 물었다.“잘 어울리네.”진서준이 칭찬했다.“얼른 몇 벌 더 골라요.”“아니요. 이것만 있으면 돼요.”진서라가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하지만 허사연은 진서라의 손을 잡고 매장을 돌아 다녔다.“그럼 안되죠. 진서준 씨는 지금 돈이 엄청 많아요. 그러니까 돈 걱정은 안 해도 돼요.”허사연이 진서라를 데리고 쇼핑하며 두 사람의 손에는 7, 8벌의 옷과 두 켤레의 신이 들려졌다.“진서준 씨, 서준 씨 차례예요.”허사연이 웃으면서 카운터를 향해 눈짓했다.진서준은 은행카드를 들고 가서 계산을 했다.이 옷들은 다 합해서 200만 원 정도였다. 지금의 진서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하지만 진서
원래는 자기가 돈을 내겠다고 했었지만 결국 허사연이 진서준의 물건을 다 사준 것이 되어버렸다.옷, 신발, 바지, 벨트, 시계... 이 모든 것을 다 합치면 거의 4억 가까이 되었다.진서준은 이런 것들을 가지는 꿈도 꿔본 적이 없다. 꿈에서도 이런 사치품들을 떠올리지 못할 정도였다.“오빠, 사연 언니가 오빠한테 이렇게 잘해주는데 꼭 붙잡아야지. 놓치면 안 돼!”차에서 진서라가 진서준을 향해 얘기했다.여동생이 놀리듯이 얘기하니 진서준의 얼굴은 금세 붉어졌다.“뭐라는 거야! 사연 씨가 나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진서준이 얘기했다.“좋아하는 게 아니면 왜 4억이나 넘는 물건들을 사주는 건데.”진서라가 작게 웃으면서 말했다.“게다가 아까 옷을 갈아입고 나올 때, 사연 언니의 눈을 봤어. 좋아하는 마음은 감출 수 없다니까!”“헛소리 그만해. 나랑 사연 씨는 이제 안 지 일주일밖에 안 돼.”진서준이 급하게 해명했다.허사연은 재벌 집 딸인 데다가 성격도 좋고 이해심도 넓으며 사업에도 수완이 있었다.이렇게 완벽한 여자이니, 그녀를 좋아하는 남자들은 널리고 널렸을 것이다.하지만 진서준은 그저 의술과 도술이 조금 뛰어날 뿐, 허사연의 마음을 사로잡을 능력은 없었다.만약 허사연에게 설렌 적이 있냐고 물으면 대답은 당연히 ‘있다’였다.요조숙녀인 허사연을 싫어할 남자는 없을 것이다.하지만 설렘은 설렘일 뿐, 진서준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 잘 알았다.“한 주일밖에 안 된 게 뭐가 어때서? 첫눈에 반할 수도 있는 거지!”진서라가 물러서지 않고 대답했다.“첫눈에 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진서준은 여동생을 향해 눈을 흘기고 얘기했다.“그건 그냥 성욕을 좋게 포장해서 얘기한 거야. 상대방이 잘생기거나 예쁘지 않다면 첫눈에 반할 리가 있겠어?”진서라가 반박했다.“외모가 중요하긴 해도, 알고 지내다 보면 외모 때문에 만나는 게 아니야. 그 사람의 성격을 보는 거지. 오빠, 나도 여자야. 여자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고. 하여튼, 오빠는 그저 사연
오후에 쇼핑몰에서 진서준이 한 말이 사실이었다. 유지수는 확실히 바람을 피웠다.하지만 좋아하는 남자가 생긴 것은 아니고, 그저 이지성에게 복수라고 싶었을 뿐이다.유지수와 이지성이 결혼한 지 반년 정도 되었을 때, 이지성은 아직 유지수를 마음에 들어 했다.하지만 반년이 지나 서로가 익숙해질 때쯤, 이지성은 또 전과 같은 플레이보이로 돌아갔다.일주일에 집에 들어오는 건 두 번 정도였고 집에 오자마자 머리부터 박고 자면서 유지수와 같이 잔 적은 한 번도 없었다.처음에 유지수는 그저 억울함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다.그러다가 이씨 가문의 사람들이 그녀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 욕하기 시작하자 유지수도 참을 수 없었다.그녀는 술집에 가서 아무 남자나 붙잡고 밤을 보냈다.이튿날, 유지수는 후회막심했다.만약 이씨 가문 사람들이 그녀가 바람을 피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유지수는 한푼도 받지 못하고 쫓겨날뿐더러 진서준과 같은 모양이 될 수도 있었다.하지만 운명은 항상 잔혹했다.하룻밤으로 유지수는 임신하게 되었다.게다가 임신 2개월 만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이씨 가문 사람들의 욕설을 떠올린 유지수는 굳게 마음을 먹었다.그녀는 유혹적인 속옷을 입고 이지성과 함께 밤을 보냈다.그 후에는 임신했다고 둘러댔다.이지성도 크게 의심하지 않았고 이지성의 부모도 유지수를 애지중지했다.유지수는 아이를 낳기 전, 실수하지 않기 위해 병원에서 친자확인을 책임진 의사를 매수했다.그리고 그 의사가 유지수에게 알려주었다. 이씨 가문 사람들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바로 이지성과의 친자확인을 의뢰했다고. 유지수는 한숨을 돌리며 동시에 이씨 가문 사람들에게 실망했다.친자확인을 책임진 의사는 이씨 가문이 평범한 가문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머리를 굴렸다.이씨 가문의 사모님이니, 그 정도의 돈을 달라고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실대로 얘기하겠다고 말했다.유지수는 자기의 미래를 위해 이 의사의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의사는 처음에 돈만 요구했다.하지만 그는 유지수를 마음에
김다중은 글라리아 별장에 대해 조금 알고 있었다. 그곳에 사는 건 다 부자들이었다.유지수는 진서준이 그의 전 남자 친구라고 했다. 게다가 이지성 때문에 감옥에서 3년이나 있다가 얼마 전 갓 출소했다고 한다. 아무런 능력도 없이 얼굴 하나로 허씨 가문 아가씨의 마음에 들어 꽤 잘살고 있다고 한다.하지만 김다중은 유지수의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만약 유지수가 그저 그를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면? 그래서 김다중은 내일 사람을 찾아 진서준을 패러 갈 때, 몰래 숨어있으려고 했다.진서준은 자기가 타겟이 되었다는 건 전혀 모르고 있었다.이튿날 아침. 진서준은 일어나 아침을 먹고 운전해서 별장을 떠났다.하지만 글로리아 별장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봉고차 세 대가 그의 앞을 막아 나섰다.심상치 않은 상대들의 등장에 진서준은 미간을 약간 찌푸리고 차에서 걸어 내려왔다.“진서준이라고 했지?”가장 앞에 선 대머리 남자가 사진 속의 남자와 진서준을 비교하면서 얘기했다. 대머리의 뒤에는 야구 방망이를 든 남자가 7, 8명 있었는데 모두 험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나한테 볼 일이라도?”진서준은 차갑게 그들을 쳐다보며 얘기했다.“다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우리가 무슨 원한이라도 있나...”“우리를 건드린 건 아니지만 누가 돈으로 너의 목숨을 샀어.”대머리가 차갑게 웃으면서 얘기했다.그가 봤을 때 진서준은 그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반인이었다.그런 일반인 앞에서는 그의 부하들도 필요 없었다.“누가 내 목숨을 산 거야? 알려주면 안 돼?”진서준이 담담하게 물었다.“그런 건 죽고 나서 염라대왕한테 물어봐!”말을 마친 대머리는 야구방망이를 들고 있는 한 부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일단 다리부터 부러뜨리고 끌고 가.”차가 다니는 곳에서 일을 벌였다가는 복잡해지기 십상이다.야구 방망이를 든 부하가 진서준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진서준을 보고 있지도 않고 한눈팔고 있었다.그는 야구 방망이를 들고 바로 진서준의 다리를 향해 가격했다.야구
대머리는 몸의 상처도 신경 쓰지 못한 채 다리를 절뚝이며 봉고차에 올라 빠르게 이곳을 빠져나갔다.대머리가 떠난 후, 진서준도 자기 차에 다시 탔다. “유지수, 난 아직 너를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감히 날 죽이려고 해?”진서준의 눈은 한기를 잔뜩 뿜어내고 있었다. 이렇게 악독한 여자를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깊은 교훈을 줘야겠어.”먼 곳에서 자기가 부른 사람이 다 맞아서 도망가는 것을 본 김다중은 놀라서 그 자리를 떠났다.“미친 유지수. 감히 날 속여?!”김다중은 유지수가 자기를 속였다는 것에 매우 분노했다.진서준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어떻게 혼자서 아홉이나 상대할 수 있겠는가.진서준은 딱 봐도 실력자였다. 어쩌면 특수부대 출신일지도 몰랐다.김다중은 바로 유지수에게 문자를 보냈다.[당장 날 만나러 와. 그렇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거야.]그 시각 유지수는 병원에서 이지성의 간호를 하고 있었다.‘그쪽’에 문제가 생긴 이지성은 요즘 유난히 폭력적이었다.심심하면 유지수에게 화를 내고 때리고 욕했다.“X발, 너 따위랑 결혼한 건 내 가문의 수치야! 진서준, 그 자식이 내 다리를 부러뜨리고 남자구실도 못 하게 했으니. 네가 아들을 낳은 점을 봐서 살려두고 있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진작 널 내쫓았을 거야.”이지성이 얼굴을 찡그리며 외쳤다.유지수는 억울하지만 반박할 수도 없어 그저 고개를 숙이고 참았다.이때 이혁진이 급하게 병원으로 와 병실에 들어와 이지성에게 정장 한 벌을 던져주었다.“저녁에 이 옷으로 갈아입어. 유지수, 넌 지성이를 데리고 연회에 참석해.”이지성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버지, 제가 이 모양이 되었는데 연회에 참석하라고요?”“쓸데없는 소리는 그만 해. 이 연회는 황보식 어르신이 주최한 거야!”이혁진이 표정을 굳히고 얘기했다.“황보식 어르신은 서울시를 위해 큰 인물을 소개해 준다고 했어. 이 초대장도 어렵게 구한 거야! 네가 가서 큰 인물을 좀 만나보라고! 그 사람한테 빌붙으라는 게 아니라 가서 더 넓은 세상을 보라는
조희선은 허사연을 꽤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젊고 예쁜 데다가 철도 들었으니 이런 여자를 싫어할 리가 없었다.진서준은 허사연이 올 줄은 생각도 하지 못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사장님은 저보다 발이 빠르시네요!”진서준이 웃으면서 얘기했다.허사연은 살짝 멍해 있다가 진서준이 예전에 한 말이 떠올랐다.진서준은 조희선과 진서라가 그를 걱정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기가 허사연 회사에서 출근한다고 했었다.“사장이니까 먼저 퇴근하는 거죠.”허사연은 음식을 먹고 가볍게 웃으며 얘기했다.“사연 씨 말이 맞아. 사장이 하루 종일 바삐 돌아 치면 너 같은 직원은 뭘 하겠니.”조희선도 허사연의 편을 들어주었다.조희선의 말에 진서준은 속으로 웃기다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사연 씨가 너한테 기회를 줬으니 열심히 일해서 사연 씨를 실망하게 하지 마.”조희선이 계속 말을 이었다.“알겠어요, 어머니. 제가 월급만 타고 일은 안 하는 사람으로 보이나 봐요?”진서준을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사연 씨, 회사에서 서준이가 잘못하는 게 있으면 바로 혼내요! 말을 안 들으면 나한테 얘기해요. 내가 아주 혼쭐을 낼 테니까.”“알겠어요, 아주머니. 사실 서준 씨는 엄청 빠릿빠릿하게 일을 잘하는 스타일이에요.”허사연은 조희선이 계속 진서준을 향해 잔소리를 하는 것을 보고 약간 마음이 아팠다.“그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죠.”조희선은 당연하다는 듯 얘기했다.진서준은 음식을 입안으로 집어넣으며 식사를 마쳤다.“어머니, 전 먼저 들어가서 휴식할게요. 더 이야기 나누세요.”말을 마친 진서준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저 자식이!”조희선은 불만스러운 듯 진서준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괜찮아요, 아주머니. 우리끼리 먹어요.”점심 식사를 마친 후, 허사연이 일어나 진서하와 함께 주방에서 설거지를 했다.조희선은 허사연이 점점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것도 사실이었다.이렇게 좋은 여자지만 진씨
모든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돈이 모자라지 않은 여자들은 더욱 그랬다. 화장품 가격이 몇천만, 심지어 몇억까지 올라가는 건 장난도 아니었다.돈이 없을 때는 먹고살기에 바쁘지만 돈이 많아지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허사연 주변의 여자들은 다 돈이 모자라지 않은 부자들이었다.허사연이 주안단을 꺼내기만 하면 그녀들은 서로 주안단을 가지기 위해 안달 날 것이다.진서준은 아직 그 세계를 잘 몰랐다.허사연을 보낸 후, 진서준은 침대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시간이 오후 세 시쯤 되었을 때, 진서준은 운전해서 별장을 떠났다.이지성이 어느 병원의 어느 병실에서 치료받고 있는지, 허사연이 이미 다 조사해 놓았다.진서준은 빠르게 운전해서 이지성이 있는 서울 병원으로 왔다.이지성의 병실 앞에 온 진서준은 창문을 통해 내부에 이지성 한 사람만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진서준은 문을 밀고 들어갔다. “너 어디 갔다가 이제 왔어! 너 때문에 목말라 죽을 뻔했잖아!”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 이지성은 유지수가 돌아온 줄 알고 화를 내며 소리쳤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유지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내가 주는 물을 마실 용기는 있어?”진서준은 이지성을 보면서 차갑게 웃었다.그 목소리는 이지성이 영원히 잊지 못할, 죽어서도 잊기 힘든, 악마 같은 목소리였다.“너 이 자식!”이지성은 고개를 돌려 원망 섞인 눈으로 두려워하면서 진서준을 쳐다보았다. 진서준이 밉고 또 두렵기도 했다.병실 안에는 그 혼자뿐이었다. 보디가드도 없고 유지수도 없었다.만약 진서준이 손을 댄다면 이지성은 그저 얻어맞을 수밖에 없다.“걱정하지 마. 내가 또 때리러 온 것도 아니고.”진서준은 그저 차갑게 웃었다.이지성은 진서준의 비웃음 섞인 말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진서준, 네가 허씨 가문에 빌붙었다고 뭐라도 되는 줄 알아? 허사연이 너를 버리면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게 해줄게.”진서준은 이지성의 원망 가득한 말을 들으면서 담담하게 웃었다.“지금 상황 파악이
그 말에 유지수는 바로 놀랐다.진서준이 직접 사진을 가져왔다면 이미 그녀와 김다중의 일을 알았을 수도 있다.“여보, 내 말 좀 들어봐! 진서준 그 자식이 날 모함한 거라고! 내가 왜 여보를 배신하겠어! 내가 오늘 이렇게 살 수 있는 것도 다 여보 덕분인데!”유지수는 눈물을 흘리면서 얘기했다.“내가 아무리 멍청해도 당신을 배신하고 다른 남자를 찾을 리가 없잖아! 날 못 믿겠으면 그 자식을 불러서 얘기해 봐! 그리고 이 사진들은 다 정상적인 친구 사이에 할만한 행동이잖아!”유지수의 변명을 들은 이지성은 화가 많이 누그러졌다.화가 났지만 이성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진서준이 직접 사진을 가져온 건 두 사람이 서로 물고 뜯는 것을 보기 위해서 일 것이다.“울지 마. 일단은 널 믿을게.”이지성은 눈물범벅이 된 유지수를 향해 소리쳤다.유지수는 그제야 한숨을 쉬고 눈물을 닦았다.“여보, 이 사진이 진서준이 직접 가져온 거라고?”유지수가 물었다.“응. 내가 너한테 전화하기 전에 사진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더라고.”이지성이 이를 꽉 깨물고 얘기했다.“그 나대는 얼굴만 보면 당장 죽여버리고 싶어!”“여보, 진서준이 일부러 날 모함하고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서라니까!”유지수가 화가 나서 얘기했다.“내가 여보랑 결혼해서 아들을 낳아서 배알이 꼴렸겠지. 그래서 그런 더러운 수를 쓴 거야!”이지성도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이 맞아. 그럴 가능성이 아주 커. 흥, 오늘의 연회에 나도 참가해야겠어. 어떻게든지 그 큰 인물과 친해져서 나의 복수를 도와달라고 할 거야!”이지성이 원망 가득한 얼굴로 얘기했다.“여보, 그럼 내가 가서 정장을 가져올까?”유지수가 얘기했다.“그래. 빨리 갔다 와.”이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병실을 떠난 유지수는 얼른 김다중의 전화를 걸었다.“김다중 씨! 우리 점심에 만난 거, 진서준 그 자식이 다 사진을 찍었어요. 게다가 그 사진을 이지성한테 보냈어요!”유지수가 화를 내면서 얘기했다.전화기 너머
그런데 진서준이 자기 애인을 보러 온 것임을 깨닫자 자연스레 투덜댔다.허사연의 눈빛 또한 장난기가 가득했다.“서준아, 대체 언제 그 조씨 가문 가주 딸이랑 특별한 관계로 엮인 거야?”진서준은 곧바로 쓴웃음을 지으며 해명에 나섰다.“오해야, 나랑 조민영은 그런 사이 아니야. 우리 만남은 정말 우연이었고 난 그 아이를 단지 여동생처럼 생각할 뿐이야. 그 아이만 보면 꼭 서라를 보는 것 같거든.”진서준이 조민영을 여동생처럼 생각한다는 말을 듣자 허사연 자매의 싸늘한 분위기가 금세 누그러졌다.제아무리 지선까지 처치했던 진서준이지만 허사연 앞에서 다른 여자 이야기를 꺼내는 건 긴장하고 식은땀이 나는 일이었다.“여동생처럼 생각하는 거라면 괜찮아.”허사연이 솔직한 소감을 밝혔다.“조민영은 이제 막 성인이 됐어. 이따가 그 아이를 만나면 그 아이가 서라랑 얼마나 비슷한지 알게 될 거야.”진서준이 덧붙여 설명했다.처음에 진서준이 조민영을 돕기로 결심했던 것도 조민영의 성격이 진서라와 너무나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너 혼자 그 조씨 가문 아가씨 만나러 가봐. 우리 둘은 고향에 좀 들러볼게.” 허사연이 말에 진서준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고향에 가?”“그래, 우리 고향이 여기 봉천시거든. 근데 몇 년 동안 한 번도 오지 못했어. 이번 기회에 한 번 들려보려고 해.”허사연이 설명했다.진서준은 허사연의 고향이 이곳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허사연이 따로 얘기하지 않았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허사연이 태어나고 나서 지금까지 고향에 온 횟수는 다섯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그래, 그럼 조심해서 다녀와.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전화해.”진서준은 손으로 전화 거는 제스처를 하며 말했다.“응, 너도 조심하고. 낯선 여자한테 홀리지 않도록 조심해.”허사연이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진서준은 그 말에 순간 움찔했다.지금 진서준은 더 이상 다른 여자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허사연, 김연아, 서지은만으로도 이미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또 다른 배수정 같은
곧 설표 특전대의 목욕탕에서 귀신 울음소리 같은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약효가 너무 강렬해 모두가 뼈가 분해되어 다시 조립되는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이 고통이 심할수록 진서준이 작성한 처방전의 공포스러움이 증명되었다.한 시간 후, 설표 특전대 전원이 귀청이 터질 듯한 환호성을 질렀다.다들 일제히 경지 돌파에 성공한 것이다.본인의 실력이 이전과 비교해 몇 배는 더 강해진 게 확실했다.내공 무인이었던 장서안을 비롯한 몇몇 장병들은 단숨에 내력 절정 경지에 이르러 종사 경지까지 단 한 걸음 남겨둔 상태였다.심지어 무인조차 아니었던 나머지 장병들도 내공 무인이 되어 진기를 모을 수 있게 되었다.이 순간, 모두가 진서준을 신처럼 숭배하기 시작했다.“진 교관님, 정말 우리 부모와 같은 은인이십니다.”“진 교관님, 앞으로 무슨 명령이든 말씀만 하시면 그곳이 지옥이라고 해도 망설임 없이 뛰어들겠습니다!”“교관님이 주신 처방전과 새로 개량된 열풍권 덕분에 이번 8군 대회에서 반드시 우승할 수 있을 겁니다.”기쁨에 찬 장병들의 모습을 보며 진서준도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이들은 진서준이 직접 가르친 병사들이었기에 그의 눈에 반쯤은 자기 자식 같은 존재였다.자기 자식이 뛰어난 성과를 거두는 것을 본 부모가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다들 열심히 수련해. 그리고 15일 후에 처방전을 한 번 더 사용해. 난 일이 있어 먼저 떠나야겠어.”진서준이 떠난다는 말을 듣자 다들 아쉬워 발을 동동 구르며 그의 이탈을 원치 않았다.진서준이 부대에 온 지 고작 이틀 만에 병사들의 태도를 이처럼 극적으로 변화시킨 것이다.진서준이 조금만 더 머물러준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설표 특전대원들은 대한민국 군부의 최고 전당인 전신전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전신전은 대한민국 8대 특전대 위에 군림하는 최고의 전당이었다.전신전에 소속한 인원은 극히 적어 단 50명뿐이었지만 이 50명은 대한민국 군부의 최고 정점에 선 존재들이었다.장서안을 포함한
“정말 중요한 친구 한 명이 연락이 닿지 않아서요. 빨리 가서 확인해 봐야 합니다.”진서준은 한마디 덧붙였다.“우선 설표 특전대원들에게 이번에 도착한 약재로 샤워부터 하게 해주세요. 병사들이 전부 사용하고 나면 그때 떠나겠습니다.”“알겠습니다... 아, 맞다, 진 교관님, 이번에 설표 특전대가 8군 대회에서 우승만 하면 제가 교관님을 위해 신청한 군 계급도 곧 내려올 겁니다.”소정태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군 계급을 신청하다니?진서준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제 권한으로는 소장 계급까지만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설표 특전대가 우승하면 다른 7개 특전대도 진 교관님을 모시려 들겠죠. 그때가 되면 교관님은 곧바로 중장으로 승진할 겁니다.”소정태는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장군 계급은 수많은 군인의 꿈이자 목표였다.하지만 평생을 전장에 바쳐도 고작 위관 계급에서 머무는 군인이 허다했다.그런데 진서준은 위관과 교관 계급을 건너뛰고 바로 소장이 될 수 있었다.이는 최근 군 역사에서도 전례 없는 일이었다.하지만 소정태는 진서준이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고 믿었다.진서준의 훈련을 받은 설표 특전대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특히 개량된 열풍권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이 훈련 덕분에 설표 특전대는 향후 임무 수행 중 생존율과 완수율 모두 크게 높아질 터였다.대한민국 8대 특전대 임무는 항상 국가의 핵심 이익과 연관이 있는 중요한 임무였다.임무 완수율이 높아지면 국가에도 막대한 이익이 돌아올 것이다.사실 진서훈이 직접 나서 군 고위층에 요구한다면 진서준은 중장이 아니라 상장까지도 바로 승진할 가능성이 있었다.단 한 번의 보해 전투만으로도 진서준은 소장 계급에 오를 자격을 충분히 입증했다.진서준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제가 군에 머물 시간이 없어서요. 장군 계급은 좀...”“아니요, 절대 교관님을 강제로 군에 묶어두진 않습니다.”소정태가 급히 해명했다.“교관님께 드리는 군 계급은 국안부 상경과 같은 개념입니다. 별다른
조태희가 강 종사를 같이 데리고 가야 한다고 하자 조기강은 순간 망설였다.“형, 강 종사는 집에 남겨두시는 게 좋을 것 같아.”“근데 천산 근처에 대요괴가 출몰하는데 너 혼자 가는 건 너무 위험하잖아.”조태희의 얼굴엔 우려가 가득했다.동북 천산은 사계절 내내 눈이 덮여 있을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바로 그 근처에 거대한 요괴가 출몰하기 때문이었다.천산 아래에는 영맥이 흐르고 있어 그 지역 동물들이 영기를 흡수하며 영지를 얻곤 했다.예컨대 얼마 전 진서준이 보운산에서 길들인 누렁이도 그런 대요괴 중 하나였다.조기강은 최근 연이어 전투를 치르며 몸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그런 조기강을 혼자 천산으로 보내는 건 조태희에게도 불안한 일이었다.“대요괴를 만나면 내가 이길 순 없더라도 도망칠 수는 있어.”조기강이 단호하게 말했다.“강 종사가 나와 함께 가면 우리 가문 전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어. 변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이 틈을 타 공격하면 어쩌려고 그래?”조기강의 눈엔 깊은 우려가 담겨 있었다.심씨 가문이 이번 가문 사이 혼인을 제안하면서 다른 꿍꿍이를 숨기고 있을지도 몰랐다.겉으론 결혼을 빌미로 선의를 베푸는 척하지만 사실은 다른 목적으로 접근했을 가능성도 컸다.조기강의 뜻을 이해한 조태희는 한참 동안 고심한 끝에 결국 동생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기강아, 정말 조심해야 해. 너까지 민영 때문에 다치면 내가 정말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조태희는 동생의 손을 붙잡으며 진심으로 당부했다.40년 넘게 이어진 형제애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만약 조기강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조태희는 아마 평생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조기강은 간단히 짐을 챙기고 곧바로 차를 타고 북쪽 천산으로 향했다.조기강이 봉천시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심씨 가문과 변씨 가문 모두 이 소식을 접했다.그러나 두 집안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마치 조기강이 봉천시를 떠난 사실조차 모르는 듯한 태도
“좋아요, 번거롭게 해드려 미안하네요.”밤이 완전히 내려앉은 후, 소정태는 곧바로 사람을 시켜 진서준과 허사연 일행에게 방 세 개를 준비했다.방은 별로 화려하지 않고 심플하고 깔끔했고 필요한 물건은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저녁 식사를 마친 뒤, 진서준은 휴대폰을 꺼내 들고 조민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벨이 오래 울렸음에도 아무도 받지 않자 진서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진서준이 전화를 몇 번 더 걸어봤지만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조민영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지난번 양씨 가문에서 조민영은 자기 목숨을 걸고 진서준 앞을 막아섰다.그 용기 하나만으로도 진서준은 조민영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다.진서준의 마음속에서 조민영은 이미 친동생과도 같은 존재였다.“모레쯤 조씨 가문에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 봐야겠어...”봉천시.조씨 가문 저택은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조씨 가문의 개인 병원 병실 내 조민영이 조용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조민영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했고 숨결이 미약했으며 기운은 극도로 쇠약했다.조민영 곁에는 조태희와 하얀 가운을 입은 중년의 대머리 남성이 서 있었다.“장 의사님, 제 딸 상태가 어떻습니까?”조태희가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장 의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가주님, 따님께서 단순히 병에 걸린 것이면 다행이었겠지만 문제는 병이 아니라 중독된 겁니다.”딸이 중독되었다는 말을 듣자 조태희의 얼굴이 굳어졌다.‘중독이라고? 언제 중독된 거지? 내가 왜 몰랐지?’“무슨 독에 중독된 겁니까?”지금 범인을 찾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우선은 딸을 살리는 것이 급선무였다.딸을 살린 후에 범인을 찾아도 늦지 않았다.“민영 아가씨 상태를 보아하니 칠채지독에 중독된 것 같습니다. 이 독은 오독의 독액에 빙정과 천산설련을 섞어 만든 무색무취의 독입니다.”장 의사가 자세하게 독에 관해 설명했다.설명을 들은 조태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빙정과 천산설련은 매우 희귀한 약재로 천지산 근처에서만 발견될 수
뜨거운 김이 피어나는 욕조를 보며 소정태는 머리를 돌려 진서준에게 물었다.“진 교관님, 이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그래요, 근데 처음에는 좀 아플 거니까 꾹 참아야 해요.”진서준이 한마디 일러두었다.소정태는 이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소정태가 횡련 대종사가 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여러 전장에서 생존한 덕분이었다.몸에는 칼자국과 총상투성이였고 아무리 강렬한 고통이라도 소정태는 견뎌낼 자신이 있었다.소정태는 옷을 단숨에 벗어 던지고 욕조로 뛰어들었다.그 순간, 소정태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어졌고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강렬한 약효가 소정태의 근육과 뼈대를 자극하며 우두둑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결국 소정태는 견딜 수 없는 고통에 괴로운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진서준이 작성한 처방전은 단번에 효과를 발휘했다.잠깐 사이에 소정태의 몸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소정태의 고통스러운 비명은 무려 30분간 이어졌다.30분 후, 욕조 안의 약효는 완전히 사라졌고 피처럼 붉었던 욕조 물은 다시 맑고 투명해졌다.소정태를 다시 보니 온몸에서 이전보다 더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고 난 소정태는 드디어 경지를 돌파하게 된 것이었다.소정태는 일급 대종사의 절정 단계에서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었다.평생 이급 대종사에 이르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진서준이 작성한 처방전 덕분에 단숨에 이급으로 돌파한 것이다.가슴 속에서 밀려오는 기쁨과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욕조에서 나온 소정태는 급히 옷을 입고 무릎을 꿇어 진서준에게 머리를 숙였다.“진 교관님, 당신은 제게 새 생명을 주신 분이나 다름없습니다.”진서준이 없었다면 소정태는 평생 이급 대종사라는 경지의 문턱에도 오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진서준 덕분에 소정태는 단 30분 만에 평생 넘지 못할 벽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진서준은 소정태를 일으키며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사령관님이 돌파할 수 있었던 건 사령관님이 이전부터 쌓아온
이때 병사들이 몰려와 허윤진에게 칭찬과 존경을 연신 쏟아냈다.“사모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렇게 젊으신데 벌써 종사라뇨.”“이런 대단한 사모님이 계시니 저희도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주변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사모님이라 부르자 허윤진은 부끄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허윤진은 허사연을 힐끗 쳐다보고는 서둘러 사람들을 정정했다.“저는 사모님이 아니에요. 저분이 사모님이고 저는 저분 동생이에요.”처제를 사모님으로 착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다들 아부하려다 큰 실수를 한 셈이었다.사람들은 급히 허사연 곁으로 가서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사모님. 저희가 착각했어요. 마음에 두지 마세요.”“사모님, 저희 때문에 교관님과 다투지 마세요.”“진 교관님, 정말 죄송합니다...”진서준의 얼굴이 잔뜩 굳어지더니 병사들에게 소리쳤다.“다들 한가한 모양이지? 어서 가서 권법 연습이나 해.”백여 명의 병사들은 재빨리 진서준이 개량한 열풍권을 연습하러 뛰어갔다.“진서준, 방금 내 실력 어땠어?”허윤진은 깡충깡충 뛰어 진서준 앞으로 오더니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그러자 진서준이 미소를 지으며 칭찬했다.“정말 강하던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실력이 훨씬 늘었어.”“당연하지. 내가 누군데.”허윤진은 한껏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좋아, 너희는 알아서 구경하고 있어. 난 소정태의 상태를 좀 보고 올게.”소정태에게 중상을 입혔으니 진서준은 당연히 확인하러 가야 했다.진서준이 군구 병원에 도착했을 때, 간호사가 소정태에게 붕대를 감고 있었다.“진 교관님!”진서준이 오자마자 소정태는 벌떡 일어나 경례를 올렸다.“크게 다쳤는데 얼른 앉으세요.”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한쪽에 있던 간호사는 놀라운 눈빛으로 진서준을 쳐다보았다.소정태가 어떤 사람인지 군구 전체가 다 알고 있었다.심지어 군구 최고 책임자를 마주해도 소정태는 항상 당당했다.그런 소정태가 이제 겨우 스무 살 넘은 청년에게 먼저 경례를
고소연은 설표 특전대에서 유일한 여성 종사였고 그 실력은 압도적이었다.장서안 같은 일반 대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부사령관인 박준명조차 고소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허윤진과 고소연의 대결 전, 사실 대다수 병사는 허윤진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여겼다.진서준이 강하다고 해서 그의 여자친구도 강할 거란 보장은 없었다.병사들은 두 사람을 위해 넓은 공터를 마련했다.“허윤진 씨, 실례하겠습니다.”고소연은 허윤진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저를 봐주지 말고 모든 실력을 보여주세요.”허윤진도 똑같이 예를 갖추어 답했다.그 말이 끝나자 고소연은 미세하게 다리를 굽힌 후 치타처럼 순식간에 허윤진을 향해 돌진했다.고소연의 속도는 너무 빨라서 주변에서 지켜보던 병사들의 시선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고소연이 자기 실력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허윤진의 눈빛에도 투지가 활활 불타올랐다.고소연은 허리를 낮춘 채 양손을 날카로운 발톱처럼 치켜들고 허윤진의 팔을 향해 덤벼들었다.고소연의 의도는 단순했다.허윤진을 다치게 하지 않고 제압하려고 했던 것이다.“마침 잘 왔네요.”허윤진은 체내의 영기를 모으더니 불꽃처럼 타오르는 기운이 그녀의 양손에 뿜어져 나왔다.이 광경을 본 병사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맙소사, 진 교관님의 여자친구도 종사였어?.”“세상에, 그래서 사모님이 고소연 부사령관님에게 대련을 신청했구나. 이제야 이해할 것 같네.”“사모님이라고? 야, 너 진짜 표현 잘한다.”곧 사모님이라는 호칭이 병사들 사이에서 퍼졌다.진서준은 그 단어를 듣자 얼굴이 어두워졌다.‘윤진은 내 처제가 아니야. 내 여자친구는 옆에 있는 사연이라고.’고소연은 허윤진도 종사라는 사실을 깨닫자 단전의 강기를 모아 기세를 더욱 끌어 올렸다.쾅...두 사람의 팔이 부딪히며 둔탁한 폭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지면 위의 눈이 순간적으로 튕겨 나가며 사방으로 흩날렸다.허윤진은 제자리를 굳건히 지켰고 고소연은 일곱 발짝 이상 뒤로 물러나며 겨우 몸을 가눴다.
진서준의 말에 소정태는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 진 교관님.”소정태는 감격해하며 한마디 더 보탰다.“진 교관님, 제 식구는 이제 진 교관님께 전적으로 맡기겠습니다. 부디 제대로 된 훈련 부탁드립니다.”소정태가 떠난 후, 진서준은 백여 명의 병사를 평온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아직도 날 못 믿겠다는 사람이 있나요?”“없습니다. 우리 모두 진 교관님을 믿고 따르겠습니다!”병사들이 일제히 외치는 모습을 보자 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그렇다면 특훈을 지금 바로 시작합시다.”진서준은 설교 특전대에서 주목을 받는 장서안을 가리켰다.“이리 와 보세요.”장서안은 바로 앞으로 나와 공손히 물었다.“진 교관님, 무슨 지시가 있으십니까?.”“아까 여러분이 연습한 그 권법을 한 번 더 보여줘요.”진서준의 말을 듣자 장서안은 망설임 없이 설표 특전대 특유의 열풍권을 선보이기 시작했다.열풍권이란 권법은 이름 그대로였다.모든 주먹과 발차기가 굉장히 빠르고 맹렬했으며 거의 내지를 때마다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이 권법은 특전대 병사들의 직업 특성과도 관련이 있었다.특전대 병사들은 다들 국가를 지키고 전장에서 적을 처치해야 하는 군인이었다.한 방에 적을 죽이지 못하면 죽는 건 바로 병사들 자신일 것이다.이러한 절박함 때문에 열풍권은 빠르고 강렬하기는 했지만 방어 자세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그래서 상대가 자기와 동등한 실력이라면 열풍권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으나 상대가 더 강하다면 한 번의 공격 이후에 쓰러지는 건 오히려 아무런 방어도 없는 본인일 가능성이 높았다.진서준은 열풍권을 유심히 본 후 연신 고개를 저었다.“그 권법은 참 허점투성이군요.”“네?”진서준의 평가에 병사들은 전부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이제 내가 그 권법을 개량해 줄 거니까 다들 집중해서 보세요.”진서준은 창욱 어르신의 가르침을 받는 3년 동안 권법, 발차기, 검술, 도법 등 다양한 기술을 익혔다.이렇게 여러 분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