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안양시에서 이민혁은 김경진과 꽤 오랫동안 공개적 또는 비밀리에 신경전을 벌여왔다.두 사람 중 이민혁은 지하 세계를 완전히 장악하고 회색 산업도 곁들어 진행하고 있고 김경진은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며 정치와 상업 쪽에도 몸을 담그고 있었다. 둘은 어느 정도 동등한 위치에 놓여 있긴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김경진의 재산이 이민혁을 훨씬 초과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준이라는 점이었다.만약 김경진이 죽으면 경진 그룹도 덩달아 망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김경진이 남긴 산업 유산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이민혁일 것이다. 진짜 이런 상황으로 나간다면 안양시 정치와 지하 세계 그리고 상업 업계에서 이민혁과 힘을 겨뤄볼 상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이민혁은 도라희를 쓱 훑어보고는 돌아서 방에서 나가며 뒤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내가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수시로 진행 상황을 나한테 보고하는 걸 이지 마세요. 내 전화번호와 주소는 테이블 위에 뒀어요.”도라희는 이민혁을 공손하게 배웅해 드리고 온몸의 고통도 무시한 채 술집에서 천천히 걸어 다니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이민혁의 개인적인 힘은 의심할 바도 없이 강대할 것이고 정부와도 어느 정도 유착관계가 있을 것이다.유착관계가 김경진만큼 깊은 건 아닐지라도 도라희 역시 안양시 정부에 든든한 배후가 있었다.요 몇 년 동안 도라희는 쭉 김경진에게 밀려 항상 2인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살아왔는데 이젠 김경진을 밀쳐내고 정상에 우뚝 서있을 절호의 찬스가 눈앞에서 얼씬거리는 것 같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양은홍이 두려움에 몸을 벌벌 떨면서 올라와 물었다. “도 형님, 괜찮으세요? ”“하하하하.” 도라희가 폭소를 터뜨리자 양은홍은 깜짝 놀라 어쩔 바를 몰랐다. “난 괜찮아. 이젠 내 시대가 펼쳐질 거야. 김경진의 운도 여기까지인 거야. 두고 봐, 멀지 않아 안양시가 내 손아귀에 들어오고 말 거야.”안은홍은 미친 듯이 웃어대는 도라희를 보며 어안이 벙벙해서 할 말
“난 네 할애비야.”“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복면남은 백오경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백오경은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손바닥을 세워 날카로운 칼처럼 내리 찔렀다.퍽 하는 소리와 함께 피가 튀어 나왔고 복면남의 손이 비수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복면남은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부러진 손을 꽉 움켜쥐고 공포에 질린 채 백오경을 바라보았다.백오경은 담담하게 웃으며 고통스러워하는 남자를 보며 말했다. “돌아가서 김경진에게 전해. 마설현을 건드리고 싶으면 네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으니 좀 더 쓸만한 사람을 보내달라고 말야.”복면남은 자신이 눈앞의 남자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채고 백오경의 말이 떨어지자 뒤돌아보지도 않고 허겁지겁 도망쳤다.백오경은 키득키득 웃으며 모퉁이를 돌아 골목에서 나와 야시장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탕후루 한 개를 사서 먹으며 거리를 두고 멀리서 세 여자애를 따라갔다.“이 일도 꽤 흥미로운 일이네.” 백오경은 심지어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하지만 이민혁이 자신에게 얼마나 인색하게 굴었던지 생각이 나자 금세 허무맹랑한 생각을 접었다....안양시, 호텔 스위트룸.이민혁이 명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자 윤현빈 변호사가 중년의 남자와 함께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이 분은 누구시죠?” 이민혁이 윤현빈에게 물었다.그러자 윤현빈은 서둘러 남자를 소개했다. “이민혁 씨, 이분은 염성국이예요. 안양에서 권위가 높으신 분인데 이민혁 씨와 논의할 일이 있다 하셔서 제가 일부러 초대했어요.”“그러시구나. 어서 들어오세요.”두 사람이 들어와 앉자 이민혁은 그들 앞에 차 두 잔을 놓았다.윤현빈은 앉자마자 소송과 관련해서 보고했다. “이민혁 씨, 마장현 씨 소송은 정상적인 절차를 밟고 있는데 이민혁 씨도 아시다시피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그건 저도 알아요.” 이민혁은 윤현빈의 말에 공감했다.윤현빈은 이어서 조리 있
이민혁은 그를 흘깃 쳐다보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흥분하지 마세요. 제 뜻은 제가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일을 왜 굳이 그 쪽에게 떠넘기겠냐, 이거예요.”윤현빈은 팽팽하게 긴장한 분위기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힘들게 염성국을 초대했는데 이민혁의 간단한 몇 마디에 염성국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다니. 이대로 나간다면 마장현을 구하는 게 아니라 그를 더 빨리 죽음의 구렁텅이로 떠밀게 될 것 같았다.이민혁은 재산도 엄청난 사람인데 왜 말하거나 행동하는 방법이 이렇게 허접하고 어수선한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이민혁의 말에 염성국은 콧방귀를 뀌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가 나설 필요가 없다니 그럼 나서지 않죠. 대신 내가 오늘 여기서 마신 찻값은 확실히 내야겠네요.”“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이민혁은 염성국의 말에 의아해했다.그러자 염성국은 여전히 오만한 태도로 설명했다. “내가 초대를 받으면 거래가 성사되든 안 되든 찻값으로 20억 원을 받아야 해요. 이게 나만의 룰이에요. 알아들었어요?”“이런 룰이 있었나요?” 이민혁이 윤현빈에게 따졌다.윤현빈은 그 말에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염성국이 여기에 올 때 자기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고 게다가 이민혁이 단칼에 이 제안을 거절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그러니까...그건...”윤현빈의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그는 합리한 변명을 찾지 못해 쩔쩔맸다. 눈앞의 두 사람 모두 자신이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윤현빈이 찍소리도 하지 못하자 이민혁은 썩소를 지으며 염성국에게 물었다. “찻값만 20억 원을 내놓으라 하는데 이 일을 성사하려면 제가 얼마를 지급해야 하는 걸까요?”“1000억 원이요. 김경진에 대한 배상금은 따로 계산하고요.” 이민혁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가 빙그레 웃으며 또 물었다. “1000억이 뭐 지나가는 개 이름도 아니고 열린 입이라고 함부로 막 말하네요. 내가 이렇게 엄청난 돈을 들였는데 어떻게 이 일을 무조건 성사한다고 보장합
이건 염성국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장면이었다. 김경진을 대할 때 전혀 두려운 티를 내지 않고 당당하고 야생미가 넘쳐나던 도라희가 이렇게 고분고분한 면이 있다니, 그에게는 이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바로 이때 이민혁이 갑자기 도라희에게 질문을 날렸다. “도라희 사장님, 이 염성국이라는 사람을 혹시 아시나요?”“잘 알죠.” 도라희가 공손하게 대답했다.그러자 이민혁은 웃으며 담담하게 얘기를 꺼냈다.“이분이 나에게 1000억 원을 요구하네요. 뭐 자기가 김경진에게 합의하자고 얘기를 꺼내볼 수 있다나 뭐라나. 내가 동의하지 않으면 찻값으로 또 20억 원을 지급하라고 하네요. 안 그러면 나를 감옥에 처넣겠다고 해서 지금 무서워 벌벌 떨고 있었거든요.”염성국은 이민혁의 얘기에 얼굴색이 확 변했다. 도라희는 그런 염성국을 보자 흉악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선배님, 이 자식 삼촌은 안양시 부시장이긴 하지만 아무런 실질적인 권리도 없는 허수아비 부시장이거든요. 자식을 잃고 눈에 뵈는 게 없는 김경진이 그런 삼촌의 체면을 볼 기분이 있기나 할까요?”“그게 사실이라면 이분도 그만한 능력이 없겠네요?”“제 생각에는 그럴 것 같아요. 나도 이 자식의 삼촌을 쓰게 안 보는데 김경진이 쓰게 보다니요?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죠.”도라희의 비웃음을 듣자 염성국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지만 감히 반박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보아하니 도라희가 거짓말은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이에 이민혁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염성국에게 말했다. “염성국 씨, 잘 들어요. 그쪽이 원하는대로 누구의 돈이나 다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주 큰 착각을 하는 거예요. 알겠죠?”“전 그럼 이만 가볼게요.” 염성국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방을 나가려 했다.그러자 도라희가 염성국의 뒤통수에 대고 날이 선 말투로 으름장을 놓았다. “염성국, 네놈이 감히 중간에서 훼방을 놓으면 내가 널 갈기갈기 찢어서 개에게 먹일거야, 알겠어?”염성국은 순간 몸을 흠칫
김경진은 충분히 분풀이한 후 소파에 주저앉아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한참 후 그는 평정심을 되찾은 듯 담배를 피우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그렇게 오랫동안 생각하던 김경진은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장성수.”문밖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던 비서 장성수가 황급히 달려 들어와 물었다.“사장님, 무슨 지시가 있으신가요?”“주 시장에게 연락해서 급한 일이 있으니 당장 만나야 한다고 전해줘.” 김경진의 지시에 장성수는 연신 굽신거리며 방 한편으로 뛰어가 전화로 연락을 시도했다. 김경진은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흉악한 말투로 결단을 내렸다. “도라희, 네놈이 아주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구나. 날 함부로 건드린 대가는 톡톡히 치러주지. 이번엔 나도 인정사정 보지 않고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주마.”김경진이 별장에서 날뛰고 있을 때 모 주택 분양 단지가 사람들로 떠들썩했다.단지 내 분양 센터 앞에는 이미 주택 업주들로 와글와글했고 그들은 현수막을 들고 기업에서 주택을 제때 넘기고 업주들의 손실을 보상하라고 외쳐댔다. 3년 이상이나 연체된 이 주택 분양 단지 내 업주들은 아직도 주택을 넘겨받지 못하고 있었다.분양 담당자는 사무실에 앉아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채 시위하는 업주들을 바라봤다.예전 같으면 그는 주저없이 경호원들을 시켜 업주들을 때려눕힌 다음 시위를 해산시켰을 것이다. 이들에게 제일 부족하지 않은 게 돈과 빽인데 이따위 사람들을 두려워한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 농담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예전 같지 않았다. 여러 날 동안 업주들이 지속적으로 소란을 피우자 그는 처음에는 경호원을 소집해 이 사람들을 막무가내로 몰아내고 심지어 때려눕히기까지 했었다.하지만 왠지 이번에는 업주들이 유난히 단결되었고 심지어 그중엔 체격이 우람지고 싸울 줄 아는 사람도 여러 명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경호원들이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달려들었다가 볼품없이 구타당하며 물러나게 되었다.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그도 감히 외출할 엄두도 못 내고 사무실에만 처박혀 있게
수만 명의 노동자가 사옥으로 우르르 달려들어 수백 명의 경호원을 한순간에 제압했고 경영진들을 사무실에서 끌어내 와 흠씬 두들겨 팼다. 구타당하는 과정에 경영진들은 자칫 고층에서 건물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그리고 이런 소란은 경진 그룹의 모든 공장, 회사에서 날마다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고 경진 그룹 전체가 거의 마비 상태에 빠졌다....이른 저녁.교외 호숫가에 아우디 A6 한 대가 조용히 주차되어 있었다.벤츠 S500이 서서히 다가오더니 김경진이 차에서 내려 아우디 옆으로 저벅저벅 걸어와 공손하게 허리를 굽혔다.아우디의 뒤쪽 창문이 천천히 반쯤 내려갔다.김경진은 서둘러 주 시장에게 물었다.“시장님, 최근 우리 그룹에 이런저런 소동이 많다는 소식은 들으셨나요?”“무슨 소동? 난 들은 적이 없는데?”“도라희 그 개자식이 사람들을 시켜 소란을 피워 지금 우리 그룹이 완전히 마비 상태에 빠졌어요.”“소란이라니, 무슨 소란을 피웠어?”“뭐 흔해빠진 소란이죠. 주택을 넘기라는 사람들, 임금을 올려달라는 사람들, 초과 근무가 불만인 사람들이 소란을 피운 거죠. 이 배은망덕한 것들은 누가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는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잖아요.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요?”“그럼 너는 아무런 문제도 없이 아주 당당해? 주택을 제때 넘겼어, 아니면 법이 규정한 시간 내에서 초과 근무를 했어?”“그건...주 시장님, 시장님도 알다시피 이런 일은 나도 별 방법이 없잖아요. 이건 저만 그러는 게 아니라 이 바닥의 사람이라면 다들 그러거든요.”“다들 그런다고 변명하지 마. 이건 네 일이니까 알아서 얼른 처리해. 소란이 커져 폭동으로 번지면 그 누구도 너를 두둔할 수 없어.”“주 시장님, 시장님이 나서야죠. 시장님이 윗선에 한마디만 해주시면 도라희 그 자식이 감히 이렇게 날뛰겠어요? 그 개자식만 없다면 이놈들이 감히 소란을 피울 엄두를 내기나 하겠어요?”“이런 내부적인 일은 너희들끼리 알아서 해결해. 내가 이런 일에 나설 시간이 어디 있어? 그리고 지난번에
도라희는 김경진을 경멸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분은 당신이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두 분 사이의 일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니 그만 캐묻는 게 좋을 거 같네요.”그러자 김경진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으름장을 놓았다. “내가 지금 네놈이 두려워 이 난리를 피운다고 생각하지 마. 예전부터 네놈은 내 안중에도 없었어.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야, 알겠어?”“예전에 네놈이 내 숨통을 조여왔던 건 나도 인정해.”도라희도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김경진을 째려봤다. “근데 이번엔 네놈 숨통이 끊어날 차례야. 남의 눈에 눈물이 나게 하면 네 눈엔 피눈물이 나야지, 안 그래?”그 말에 김경진은 어정쩡한 자세로 얼어붙었다가 한참 후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마장현과 관련이 있는 거야?”“네 맘대로 상상해.” 도라희는 다시 자리에 앉아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셨다.이를 본 김경진은 콧방귀를 뀌며 냉정하게 말했다. “도라희, 안양에는 아직 두사부가 있다는 걸 까먹지 마. 네놈과 네 뒤에 있는 그놈이 맨손으로 하늘을 가리기에는 아직 형편없이 부족하거든.”김경진은 말을 마치고 돌아서서 이내 자리를 떠났다. 김경진의 뒷모습을 보며 도라희의 얼굴에 살짝 표정 변화가 생겼다. 김경진이 자리를 뜨자 양은홍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도라희에게 물었다.“두사부는 누구죠? 혹시 전설 속의 싸움꾼인가요?”도라희는 일어나서 사무실 내에서 천천히 걸어 다니며 유유히 말문을 열었다.“두사부는 도시를 박살 낸다, 뭐 20년 전부터 이런 소문이 떠돌아다녔어. 그분은 유명한 영경 고수야. 그 시절에 난 일개 깡패에 불과했고. 근데 그분의 명성이 정점을 찍을 때 돌연 은퇴하고 수련의 길에 들어간 거야. 그래서 우리가 그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먹고 있었지.”“김경진이 진짜 그런 전설 속의 인물을 모셔서 힘을 빌리진 않을까요?”“딱 그렇다고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이 일은 즉시 이민혁 선배님께 알려야 해.”“두 사람 중에 과연 누가 더
이민혁은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누구든 상관없어요. 내가 동생을 대신해서 김경진한테 복수하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은 목숨을 걸고 대가를 치러야 할 거에요.”도라희는 그를 안심시키며 말했다.“제가 최선을 다해 일을 처리할 테니 안심하세요, 선배.”“사장님도 이만 가보세요. 사장님은 저를 위해 일하는 저의 사람이니까 해치치 않을게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감사합니다, 선배님.”도라희는 인사를 하고 호텔에서 빠져나와 차 앞에서 멈춰 섰다. 그는 침착하게 되뇌었다.“부와 귀는 모험하는 가운데 구해진다고 흘러가는 대로 살자.”한편 김경진은 승용차를 몰고 안양시 외곽 쪽에 있는 먼 산기슭에 도착했다.여기에 크지 않은 산장이 하나 있는데, 문 위에 “정심원”이라 쓰여 있었다.그는 차에서 내려 정심원 문 앞에 털썩 무릎을 꿇고 높은 소리로 외쳐댔다. “두사부 님, 김경진이라는 자가 볼일이 있어 찾아오셨어요.”얼마 후, 마흔 살쯤 되어 보이는 검소한 차림을 한 남자가 걸어 나와 얼굴을 찡그리며 김경진을 바라보았다.“선생님, 저희 아버지께서 두사부님과 친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급한 일이 있어 두사부님을 꼭 뵈어야 합니다. 제발 두사부님께 소식을 전해주세요.”김경진이 이런 꼴을 다른 사람한테 들키면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할것이다. 하지만 그 중년 남성은 귀찮아하며 말했다.“당장 가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선생님, 정말 급한 일이 있어요. 한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 꼭 전달해 주세요.”“대담하네.”중년 남성은 언성을 높이더니 한 발 내디디자 갑자기 땅이 갈라지면서 김경진은 곤두박질쳤다.김경진이 낙담한 얼굴로 올라오자 그 중년 남성은 냉랭하게 말했다.“이래도 떠나지 않는다면 여기에 묻어버릴 가야.”중년 남성의 냉혹한 얼굴을 보며 김경진은 절망했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는 안양시에서 지위가 꽤 높은 인물이었다. 모두 그를 이사장님이라 칭했고 깍듯하게 모셨다.하지만 며칠 만에 그는 이미 파산 직전이었고, 사람들은 그를
남지유가 반쯤 잠든 채로 계속 뒤척이며 자세를 바꿀 때마다 이민혁의 몸이 반응했다.순간, 이민혁은 남지유를 안고 방에 가서 그녀를 덮치고 싶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이 남아있어서 멈칫했다.애초에 그의 수련 공법에 큰 문제가 있었기에 만약 체질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사망할 가능성이 있었다.거기에 지금 혈신교 일까지 더해졌다.혈신교의 사도조차도 이렇게 강한데 그들의 보스는 더 강할 것이다.지금 혈신교와는 철천지원수가 되었으니, 그들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아마 이민혁 본인도 편히 있지 못할 것이다.이 일을 해결하기 전까지 그는 남지유와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다.혹시라도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남지유는 하루아침에 과부가 되지 않겠는가.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얕은 한숨을 내쉬고는 정신력으로 남지유의 영혼을 쓰다듬어 그를 깊은 잠에 빠지게 한 뒤, 그녀를 번쩍 안아서 안방의 침대에 눕히고는 이불까지 잘 덮어줬다.그러고는 거실로 나와서 잡념을 떨치고 명상을 시작했다....해골의 땅,두개골 왕좌에는 거대한 남자가 여전히 조각상처럼 비스듬히 앉아서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두개골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구부정한 자세로 또다시 왕좌 앞에 서서는 고개 숙여 인사를 하며 말했다.“존경하는 피의 지존님, 제7 사도의 영혼의 불이 꺼졌습니다. 체내에 있던 피의 알도 신호가 끊겼습니다.”한참의 침묵이 끝나고 거대한 그림자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보아하니 충분히 거대한 강자가 나타났나 보군.”“그런 것 같습니다. 존경하는 지존님.”또 한참의 침묵이 끝나고 그림자가 말했다.“제9 사도더러 가라고 하게. 피의 알도 하나 가지고 가라고 해.”“피의 알을 가지고 간다고 하더라도 제9 사도 혼자서는 힘들지 않을까요?”노인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싸우러 가라는 게 아니라 그 강자를 찾아서 피의 알을 전해주라는 뜻이야.”“네? 그 이유가 뭐죠? 그건 우리의 성물입니다. 얼마 남지도 않았어요.”노인이 이해되지 않는
마설현도 급히 이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빠, 괜찮아요?”전화를 받자마자 마설현이 다급히 물었다.“괜찮아. 거기 사장이 나랑 친해서 얘기 좀 하다가 각자 집으로 돌아갔어.”마설현이 한시름 놓으며 대답했다.“다행이네요. 난 오빠한테 무슨 일 생길까 봐 너무 무서워요. 진짜 무슨 일 생기면 난 우리 오빠한테 뭐라고 해요.”“걱정하지 마. 내가 서경시에서는 좀 힘이 있으니,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연락해. 내가 꼭 해결해 줄 테니까.”“알았어요. 고마워요. 오빠가 괜찮다니 이제 됐어요.”“그래. 안녕.”“안녕.”전화를 끊은 마설현의 마음속에는 작은 의혹이 생겼다.(듣고 보니 오빠 말처럼 민혁 오빠의 실력이 대단한가 보네. 근데 민혁 오빠는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오빠도 말해주지 않고, 참 이상하네.)그때, 백수민이 상심한 얼굴로 들어왔다.김하늘이 물었다.“왜 그래?”“연락이 안 돼. 전화가 아예 꺼져있어.”백수민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그러자 우하영이 물었다.“혹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고 대표님같이 높으신 분이 무슨 일이 있겠어. 내가 걱정하는 건, 민혁 오빠가 이렇게 난리를 쳐서 만약 고 대표님이 화가 나시면 앞으로 다들 가깝게 지내지 못할 게 뻔하잖아.”백수민이 마설현을 보며 말했다.마설현은 한숨을 내쉬고는 자기 침대로 가서 책을 보기 시작했다.마설현은 흥하고 콧방귀를 뀌고는 화장을 지우러 갔다. 누가 봐도 그녀는 마설현에게 불만이 있어 보였다. 필경 고기명은 그녀 마음속의 황금알 낳는 거위니까.이민혁은 막 해호도에 도착하자마자 안수연의 연락을 받았다.안수연이 웃으며 말했다.“덕분에 또 한 건 했네요.”“말로만 고맙다고 하지 말고 행동으로 좀 보여줘 봐.”이민혁이 대답했다.“걱정 하지 마세요. 이제 밥 살게요.”“그 약속 언제 지키는지 기다릴게.”말을 마친 이민혁이 전화를 끊고 자기 방으로 향했다.(앞으로 고기명 패거리는 설현이를 건드릴 생각을 못 하겠지.)이민혁이 허허 웃고는 방
유천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세 사람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너희들이 대단하신 선배님도 못 알아보고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다니! 선배님이 너희들의 한쪽 다리만 부러뜨리라고 하지 않았으면 오늘 내 손에서 살아서 나갈 수 없었을 거야!”고기명은 유천이 계속 다가오자, 무서움에 말까지 더듬었다.“유 사장, 당신 나한테 손대기만 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유천은 망설이지 않고 고기명의 복부를 가격했고, 그 충격으로 고기명은 고통을 호소하면서 몸을 움츠렸다.유천의 공격은 멈출 줄 몰랐고 곧이어 이민혁의 명령대로 고기명의 한 쪽 다리를 사정없이 부러뜨렸고, 고기명은 한 번의 반항도 하지 못하고 비명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노호와 석한 또한 놀란 표정으로 한순간 제압당한 고기명을 바라보았다.다음 순간, 유천은 두 명의 부하에게 눈짓을 하자, 부하들은 노호와 석한을 단번에 제압해 버렸다.유천은 주저 없이 그들한테 다가가서 한 쪽 다리를 밟아 부러뜨렸다.고기명과 친구들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모두 바닥에 쓰러진 채 고통에 울부짖으며 식은땀을 흘렸다.유천은 이민혁의 지시에 따라 일을 처리한 후, 또다시 이민혁 앞에 무릎을 꿇었다.“선배님께서 시키신 대로 다 처리했습니다. 제가 더 할 일이 있습니까?”그러자 이민혁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괴로운 얼굴로 고통을 호소하는 고기명과 친구들에게 다가갔다.“너희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건 의견이 없지만 설현이를 괴롭히거나 귀찮게 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오늘은 그냥 경고의 의미로 다리 하나만 부러뜨렸지만, 다시 내 귀에 이런 일이 들리면 각오해.”고기명과 친구들은 이민혁의 카리스마 넘치는 말투에 겁나서 고개만 끄덕였다.이민혁은 고기명의 주위에 떨어진 파란 알약에 시선이 갔고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지면서 물었다.“그녀들한테 감히 이런 걸 먹이려고?”고기명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부랴부랴 설명했다.“그냥 저희끼리 먹으려고 가지고 다녔을 뿐, 그녀들에게 먹일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내 생각
유천은 가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고기며과 친구들이 VVIP였기 때문에 이민혁의 진정한 신분을 알기 전까지는 움찔해서는 안 되고 최대한 당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이민혁은 담담하게 유천에게 자기 신분을 말했다.“잘 들어! 장호를 주먹으로, 민경호를 칼로 베어 죽인 사람이 바로 나야! 이제 내 정체를 알았으니 너희 같은 쓰레기들의 일에 내가 나선 걸 영광으로 알아야 하지 않겠어?고기명과 친구들은 이민혁의 말한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그가 더욱 오만한 태도로 나오는 것이 더욱 맘에 들지 않아 유천에게 따졌다.“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정신이 어떻게 된 거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네!”“유 사장, 더 이상 듣고 싶지도 않으니 빨리 처리해!”그들은 이민혁의 싸움 실력을 본인들이 상대하기에는 버겁다는 걸 알기에 유천이 빨리 나서서 처리하기를 바랐다.하지만 유천은 전에 장호와 민경호가 모두 이씨 성을 가진 젊은이한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고, 이민혁의 말이 사실임을 알기에 얼굴이 창백해져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게다가 그는 이민혁이 소문으로 들었던 그 젊은이라면 네 사람이 결코 무사하게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이민혁은 얼굴이 창백해진 유천을 보고는 웃으면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물었다.“민씨 가문의 현 수장인 민준한테 연락해서 확인까지 시켜줘야 하나?”이때 유천은 겁에 질린 얼굴로 갑자기 이민혁 앞에 무릎을 꿇었다.“선배님, 잘못했습니다. 아까는 제가 눈이 멀어서 높으신 분한테 무례하게 행동했습니다, 제발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십시오.”유천은 이민혁이 민씨 가문의 현 수장인 민준까지 안다는 걸 보면 그 전설 속의 인물이 틀림없는 것 같아 목숨이라도 건지기 위해서는 무릎을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그러나 고기명과 친구들은 철석같이 믿고 있던 유천이 갑자기 몇 마디에 무릎까지 꿇자,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었다.고기명이 먼저 멀뚱멀뚱 유천을 바라보면서 물었다.“유
이민혁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넌 또 누구야?”유천은 어이없는 듯 웃었다.“서경에서 나 유천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유천? 처음 들어보는데?”유천은 그 말에 안색이 완전히 굳어졌다.“좋게 해결하려고 했더니 이렇게 건방지게 나오면 나도 더 이상 못 참지!”고기명도 이민혁의 도발에 더욱 화가 났다.“유 사장, 당장 처리하지 않고 뭐 하는 거야?”유천은 자존심이 많이 상했지만, 장사꾼인지라 일말의 여지를 남겨두면서 차갑게 말했다.“고 대표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이렇게 건방지게 행동하는 거야? 당장 이분들한테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당신을 여기서 두 발로 걸어 나갈 수 없도록 만들 테니까 조심해!”이민혁도 인상을 팍 쓰면서 말했다.“사과? 먼저 건방지게 행동하면서 다른 사람 심기를 건드린 건 저놈들인데 내가 왜 사과를 해야 하지? 당신이 저놈들 정신 차리게 한다면 나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을게. 그렇지 않다면 네 사람 모두 다시는 서경에서 발을 붙이고 살지 못하게 될 거야!”고기명과 친구들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유천에게 한마디씩 했다.“유 사장, 건방지게 떠드는 걸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않아?”“유 사장, 처리하지 않고 뭐 하는 거야?”“저놈이 다시는 건방진 말을 못 하도록 당장 처리해!”하지만 유천은 오랫동안의 사업 경력으로 보아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도 태연하게 반응하는 이민혁이 믿는 구석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그리고 그는 이민혁을 떠보기로 마음먹었다.“젊은이, 쓸데없는 유혈 사태는 피해야 하지 않겠어? 당신이 강호 쪽 사람이라면 얼른 이름을 말해.”이민혁은 그 말에 유천을 더 비웃었다.“당신 보아하니 강호 쪽 사람인 것 같은데 어디 함부로 겁도 없이 내 이름을 묻는 거지?”유천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당신 설마 민씨 가문에 대해서 아는 거야? 장호에 대해서 아는 거야?”“그럼, 네가 민씨 가문의 사람인 건가?”하지만 유천은 쉽게 답할 수 없었다.그도 그럴 것이 몇 년 전, 민씨 가문이 정씨 가문,
고기명은 마설현이 계속 고집을 부리는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참는 것도 한계가 있어! 더 이상 볼 것 없으니 그냥 때려!”그 말에 노호와 석한은 술병을 집어 들고 이민혁을 에워쌌다.마설현은 놀라서 소리쳤다.“뭐 하는 거야! 경찰에 신고할 거야!”백수민은 마설현을 끌고 밖으로 나가면서 말했다.“너 미쳤어? 그냥 겁주는 거잖아! 설마 무슨 일 있겠어? 학교에 알려지면 복잡해지니까 빨리 돌아가자!”그녀들이 나가자, 이민혁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다.“친구 여동생 앞이라 너희들 체면을 세워줬더니 진짜 뭐라도 되는 줄 알고 까부는 거야?”그 말에 고기명은 화를 내면서 술병을 깨뜨렸다.고기명은 화를 내면서 술병을 깨뜨렸다.“제기랄, 아무것도 아닌 놈이 죽지 못해서 안달 났네!”이민혁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발로 고기명을 구석으로 걷어차 버렸고, 소파에 천천히 걸터앉으면서 말했다.“이놈들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제멋대로 날뛰네!”노호와 석한은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서 멍해 있었고, 고기명은 괴로운 듯 얼굴을 감싸 쥐면서 발악했다.“감히 날 때려? 넌 오늘 끝났어!”“그래, 네가 뭘 하든 기꺼이 상대해 줄게.”이민혁은 남자들이 돈만 믿고 싹수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 가소롭게만 느껴졌다.이때, 고기명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누군가에게 급히 연락했다.“유 사장, 내가 황족 노래방에서 어디서 나타난 건지도 모르는 놈한테 맞았는데 당신은 지금 어디서 뭐 하는 거지? 당장 처리하지 않으면 내가 직접 처리할 줄 알아!”잠시 후, 고기명은 전화를 끊고 이민혁을 바라보면서 말했다.“넌 끝났어! 오늘 널 내 앞에 무릎 꿇게 못 하면 내가 네 성을 따르지.”“하하하! 난 너같이 재수 없는 아들을 둘 생각이 없는데?”고기명은 계속되는 비꼬는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딱 기다려! 유 사장이 오고 나서도 당당할 수 있는지 보자고!”“유 사장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너 같은 놈이 알 수가 없지! 유천이라고 황족 노래방의 대표이자 서
고기명은 썩은 웃음을 한번 짓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서경에서 누가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내가 만든 자리를 망치려고! 대체 날 뭐로 보는 거야!”그러자 백수민이 마설현에게 말했다.“설현아, 네 맘은 알겠지만 더 이상 고 대표님 심기 건드리지 말고 빨리 보내.”백수민은 고기명과 친구가 된 반년 동안 그의 주변 부자 친구들도 많이 만났고 그에게서 값비싼 선물과 돈도 받았었다.그녀는 젊고도 돈 많은 부자를 만날 기회는 흔치 않다는 것을 알고 어떻게 해서든 고기명의 마음을 사로잡아 남은 인생 돈 걱정 없이 편하게 살려고 마음먹었다.그래서 백수민은 갑자기 나타난 이민혁 때문에 고기명의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그녀는 부자들의 심기를 건드리면서까지 별 볼 일 없는 이민혁을 감싸고 도는 마설현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마설현은 끝까지 방을 나가려고 했다.“됐어, 민혁 오빠랑 먼저 갈 테니 재밌게 놀아!”마설현과 이민혁이 방을 나가려고 일어서자, 석한이 벌떡 일어나 크게 소리쳤다.“이민혁 씨, 오늘 당신이 두 발로 방을 빠져나간다면 내가 당신 성을 따르지.”마설현은 그의 선포에 놀랐다.“뭐 하려는 거야?”노호도 덩달아 일어나면서 소리쳤다.“네가 막무가내로 나오는데 우리도 네 체면을 세워줄 필요 없는 거 아니야?”그러자 이민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 설현아, 여기는 나한테 맡기고 너 먼저 가.”백수민은 당당한 이민혁의 말에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웃겨! 당신이 뭐라고 여기를 맡기고 가라는 거죠?”마설현은 무례한 백수민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민혁 오빠, 안 돼요! 같이 가야죠!”고기명은 계속되는 고집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마설현, 그만해! 수민이만 아니었으면 진작 가만두지 않았을 거야!”이때 김하늘과 우하영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일어나서 말렸다.“설현아, 그만해! 고 대표님도 진정하시고 오늘은 시간도 늦었으니 헤어지고 다음에 기분 좋게 또 마셔요.”백수민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이미
마설현의 말에 세 남자는 서로를 한 번 쳐다보았다.노래를 부르던 남자가 마이크를 내려놓고 소파에 앉으면서 이민혁에게 물었다.“설현이 친구면 뭐라고 불러야죠?”“이민혁입니다.”그러자 백수민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마설현에게 말했다.“마설현, 사람이 왔으면 네가 소개를 해줘야지.”“아는 사이에 그냥 놀면 되지 무슨 소개가 필요해.”백수민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민혁에게 말했다.“그러면 제가 소개해 드릴게요.”이민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백수민은 노래를 부르던 남자를 가리키면서 말했다.“이분은 JS그룹의 고기명 대표님이신데 자신이 600억 원 정도 되고 저와는 오래된 친구 사이입니다.”“고 대표님, 안녕하세요.”이민혁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고, 고기명은 그저 웃기만 했다.“그리고 이분은 HT그룹 노호 사장님이시고 연봉이 6억 원 정도 되십니다.”“노 사장님, 안녕하세요.”“마지막으로 이분은 음료를 만드는 에너지 회사의 석한 대표님이시고 연간 매출이 100억 원이 넘습니다.”“석 대표님, 안녕하세요.”백수민은 소개를 하면서 자기가 이러한 고위계층의 친구들이 있다는 것에 어깨가 으쓱했다.간단한 소개가 끝나고 고기명이 물었다.“이민혁 씨는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지금은 별일 없이 한 기업의 잔심부름을 하고 있습니다.”이민혁은 KP그룹에서 아직 제대로 된 직함이 없어 잔심부름을 해준다고 말했다.고기명은 그를 비웃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테이블 위의 양주 몇 병을 가리켰다.“이민혁 씨, 테이블 위에 있는 이 술들이 가격이 얼마인지 아시나요?”이민혁은 어깨를 한번 들썩이더니 말했다.“글쎄요, 제가 양주는 잘 안 마셔서 모르겠네요.”고기명은 계속 비꼬면서 말했다.“양주 몇 병에 600만 원 이상이 나오니까, 오늘 전체 소비가 적어도 1000만 원은 나오겠네요.”이민혁은 고기명의 돈 자랑에도 끄떡없이 웃으면서 말했다.“역시 사장님들이라 그런지 규모가 남다르시네요, 대단하세요!”이민혁이 살짝 비꼬면서 말하자, 고기명의 얼굴이 급
남지유는 이민혁에게 퉁명스럽게 물었다.“민혁 씨, 또 무슨 일이에요?”이민혁은 미안한 표정으로 답했다.“마장현의 여동생이 급한 일이 생겼다고 연락이 와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그녀는 얼굴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지면서 이민혁의 팔을 붙잡았다.“그래요, 선영이랑 좋은 시간 보냈으니, 이제는 대학생을 만나러 가는 건가요?”이민혁은 그녀의 말이 황당하기만 했다. “무슨 소리예요? 친구 동생일 뿐이에요.”남지유는 이민혁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계속 물었다.“그럼, 중해에서 선영이랑 무슨 일 있었던 거죠?”이민혁은 황급히 답했다.“맹세하는데 아무 일도 없었어요.”“선영이도 민혁 씨랑 같은 생각이었을까요? 그래도 명색에 연예인이잖아요.”이민혁은 몹시 당황했지만, 더 이상의 해명을 하지 않고 급하다는 핑계로 빠져나왔다.“설현이가 지금 급하다고 연락이 와서 빨리 가봐야 할 것 같아요.”남지유는 이민혁이 떠난 후에도 한참 동안 소파에 기대어 한숨만 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오선영이 이민혁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민혁이 중해에 가 있던 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물어볼 사람도 없었고 심지어 속 시원하게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도 없어서 엄청 괴로웠다.이민혁의 공식 여자 친구로서 항상 너그러운 마음으로 남들을 대하고 싶어도 엄청난 능력과 매력을 겸비한 이민혁을 여자들이 결코 가만히 놔두지 않아 신경 쓰이고 마음이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그럼에도 남지유는 자기의 선택을 원망도 후회도 할 수 없었고 이민혁을 믿고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그녀는 생각을 정리한 후, 소파에 누운 채로 잠이 들어버렸다....이민혁은 떠나기 전, 그는 마설현에게 문자를 보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에게서 답장이 왔다.마설현의 말로는 백수민이 친구들과의 식사 자리에 자기를 포함한 세 명의 룸메이트를 데리고 나갔고 백수민의 친구들이 2차로 기어코 노래방을 가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다고 했다.하지만 과음으로 인해 수위와 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