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와 정소현때문에 임은숙과 정군은 오늘도 프리미엄 가든을 떠나지 않고 그들을 지키고 있었다.이튿날 아침, 임은숙이 장 보러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의문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여보, 빨리 와봐. 여기 문 앞에 이상한 사람들이 엄청 많아요.”정군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 보더니 프리미엄 가든 문 앞에 수십 명이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이 세 걸음에 무릎 꿇고 세 번 절을 하는 모습은 딱딱 맞아떨어졌다.길 가던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눈길이 끌렸고 심지어 그중 몇몇 권력 있는 사람을 알아보았다.“이... 이분 손씨 가문의 손 어르신 아닌가? 유명한 분인데 왜 여기서 절을 올리고 있지?”“프리미엄 가든에 귀인이 온 것이 아닐까? 손씨 가문에서도 이렇게 정중히 인사를 올리니 말이다!”“그러고 보니 혹시 기억하는가? 얼마 전에 성남시 공항이 봉쇄되었잖아. 내가 기억하기로 그때 수백 대의 롤스로이스가 있었는데 그야말로 장관이었어.”“아마도 진주에서 오신 그분 때문에 이러시는 것이겠지.”“손씨 가문도 참 대단해. 관건적인 시기에 자존심을 내려놓을 줄도 알고 말이야. 이번에는 진짜 높은 분한테 걸렸나 보다.”“혹시 아나, 손씨 가문이 성남시의 차세대 명문가가 될지?”사람들의 의논 소리를 듣고 임은숙과 정군은 서로 마주 보았다.정군은 이상한 표정으로 물었다.“설마 우리 때문에 온 건 아니겠지?”임은숙은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며 말했다.“당신 무슨 생각해요? 김예훈 그 자식처럼 맨날 쓸데없는 꿈 꾸지 좀 마요! 못 들었어요? 손씨 가문은 진주에서 온 귀인 때문에 온 거라고요! 김예훈 그 쓸모없는 자식이 진주에서 온 귀인처럼 보여요? 용포를 입혀도 태자로 보이지 않을걸요?”정군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긴, 맞아!”그런데 갑자기 두려워하며 말을 이어갔다.“여보. 방금 밖에 있는 사람들 당신 알아본 건 아니겠지? 우리 오늘 집 밖을 나가면 안 되겠다. 어제 일 해결되었는지도 모르는데 손씨 가문에서 아직도 노리고 있으면 우리는 망하는 거야!”이
“당신들, 지금 무슨...”정민아는 들것에 누운 손지강을 보고 낯빛이 어두워졌다.정군과 임은숙도 그 모습을 보더니 몸을 일으켜 세웠고 얼굴에는 믿기 힘든 표정이 역력했다.그들도 알만큼은 아는 사람이라 손씨 가문의 가주 손장건은 알고 있었다.그런데 손장건이 무릎을 꿇었다?그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손씨 가문의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풀썩 무릎을 꿇었고 절을 올리기 시작하였다.그 뒤로 보기에 위엄이 있는 한 사나이가 걸어 나오더니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또 무릎을 꿇었다.“정민아 씨, 오늘 저 손장건이 손씨 가문의 사람들을 데리고 사죄를 올립니다. 어제 손지강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해 상처를 준 일은 모두 저희의 잘못입니다.”손장건이 먼저 입을 열었다.홍인경도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저 홍인경도 어제 일에 대해 사죄를 올립니다. 둘째 아가씨를 납치해 간 홍만기는 이미 팔다리를 모두 잘랐습니다.”홍인경이 말을 하다가 손을 휙 젓더니 그 뒤로 또 하나의 들것이 올라오고 있었다.손지강과 홍만기의 들것은 차례로 붙어 있었고 두 사람이 누워있으니 마치 불쌍한 형제와 같았다.이때 정민아와 정소현은 믿기 어려운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두 놈은 얼마나 날뛰던지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게 보인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두 놈은 모두 팔다리가 끊어져 나갔고 심지어 상처를 감싸지도 않아 보기에 아주 흉했다.“펑—”손지강은 턱으로 짚으며 들것에서 스스로 굴러떨어졌다. 그러고는 떨면서 입을 열었다.“정민아 씨,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홍만기도 기어와 입을 열었다.“제가 몰라뵀습니다. 제가 몰라뵀습니다. 감히 두 분을 건드리다니! 저를 때려 화를 풀 수만 있다면 마음껏 때리십시오! 때려 죽어도 상관없습니다.”이 순간 정민아의 가족들은 모두 멍해 있었고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손씨 가문에서 사과도 하고 심지어 이런 행동까지 하다니... 정말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사건의 두 장본인
정민아는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았지만 이번에는 입을 열지 않았다.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들이 먼저 찾아와서 석고대죄한 거야.”틀린 말은 아니다.어제 손장건과 홍인경이 무조건 사과하러 오겠다고 했다. 김예훈이 허락하자 손장건과 홍인경은 김예훈에게 목숨이라도 바칠 것 마냥 감동했다.이 말을 듣자 정민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김예훈, 김세자를 만나면 꼭 감사의 인사를 전해. 그가 아니었더라면 너 어제 못 돌아올 수도 있었어. 그리고 다음에는 멋대로 행동하지 말고 제발 뒷일 좀 생각하고 행동해. 이번에는 김세자가 나서줘서 운이 좋았지만 다음번에는 어떻게 될지 몰라.”정민아의 말을 듣고 김예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오히려 정군이 놀라 입을 열었다.“민아야. 그러니까 이번에 일어난 큰일을 해결할 수 있었던 이유가 김세자가 손을 썼기 때문이라는 거니?”임은숙은 이제야 조각이 맞춰졌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난 또 저 쓸모없는 놈이 한 건 한 줄 알았잖아! 경기도 일인자인 김세자가 손을 썼으니 홍인경과 손장건이 와서 사과하는 건 정상이야! 예훈아, 너 정말 낯짝도 두껍다. 왜 네가 다 해결한 것처럼 말하니! 만약 민아가 말하지 않았으면 우린 다 너한테 속아 넘어갈 뻔했잖아.”정민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엄마 아빠, 예훈이를 탓하려고 말한 게 아니니까 너무 뭐라 하지 마세요. 저는 그냥 앞으로 김예훈이 행동하기 전에 생각이란 걸 했으면 해서 말한 거예요.”임은숙은 언짢은 표정으로 김예훈을 바라봤다. 그래도 참지 못하고 정민아를 구석으로 데리고 가 의심의 눈초리를 하며 말했다.“민아야 솔직히 말해. 너 김세자랑 뭔 일 있었지? 상관없으니까 엄마한테 말해봐. 솔직히 저 쓸모없는 놈이랑 갈라서도 엄마는 너 편이야.” 정민아는 묵묵히 듣다 진지하게 말했다.“엄마. 제발 다른 사람들처럼 헛소문 좀 만들지 마! 나랑 김세자는 아무 관계도 아니야. 심지어 어떻게 생긴지도 몰라!”임은숙은 놀란 눈을 하며 말했다.“내가 예전
정민아는 엄마가 갑자기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의문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 귀국해서 지금 대전에서 한 회사의 총 지배인을 맡고 있어.”“해연이 정말 대단하다!” 임은숙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딸 해연이한테 전화해서 엄마가 맛있는 밥 사줄 테니 성남시에 한 번 놀러 오라 해.” 말을 다 하고 임은숙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 임은숙은 자신은 정민아를 설득시킬 수 없지만 육해연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육해연이 정민아를 설득하기만 한다면 머지않아 자신은 부귀영화를 누릴 테니까.이런 생각을 하니 김예훈이 더욱 눈에 거슬렸다. 매섭게 김예훈을 노려보며 인사조차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임은숙과 정군이 떠나는 것을 확인하자 정민아는 미안한 기색을 내보이며 말했다. “예훈아, 이번 일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 엄마 성격 원래 저렇잖아.”김예훈이 말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뭐.”김예훈은 이번 김세자 일을 설명하려 했지만, 정민아의 태도를 보고 마음을 접었다.이 상황에서 설명을 해 봤자 소용이 없는걸 알고 있었다.더욱이 김예훈은 원래 정민아가 명문가에 들어올 수 있게 준비하고 있었는데, 지금 벌써 정체가 노출돼봤자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김예훈은 CY그룹에 도착해 하은혜를 호출했다.하은혜는 요 며칠 잠을 자지 못해 매우 수척한 모습이었다. 하은혜는 김예훈을 보자마자 말이 튀어나왔다. “김 대표님, 대전 일을 어떻게 됐습니까?”김예훈은 웃으며 말했다. “얼추 비슷합니다. 이번에 계열사에 새로 들어온 육해연 총 지배인한테 권한 넘겨서 일을 처리하라 하세요. 상당한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어차피 우리의 주 업무는 모두 경기도 쪽에 있으니, 대전부터 충청지역까지의 일은 지금 당장 급하지 않습니다. 아, 혹시 최근에 무슨 일 있었나요? 안색이 조금 안 좋아 보여요.”김예훈은 관심을 기울이며 말했다.사실 김예훈은 진주 이씨 가문이 청혼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하은혜가 어떤
블랙티 레스토랑.현대몰에서 가장 고급 진 레스토랑이다. 소문에는 한 끼에 몇 천만 원이 넘는다.이 레스토랑 앞을 지나갈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은 일반인들은 식사는 꿈도 못 꾼다.이때 하은혜와 남성은 블랙티 레스토랑에 들어갔고 김예훈은 눈살을 찌푸린 채 빠르게 그 뒤를 쫓았다. 입구에 도착했을 때 김예훈은 하은혜가 홀 중앙에 있는 모습을 보았다.홀 전체가 궁전처럼 꾸며져 있는 것을 보아 오늘 블랙티 레스토랑 전체를 대관한 것이 분명하다.하은혜 앞 쪽에 백발을 한 노부인이 있었고 중년과 젊은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그리고 아까 하은혜와 같이 간 잘생긴 남성은 노부인에게 달려가 인사를 한 후 옆에 섰다.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하은혜를 차갑게 또는 조롱 섞인 눈빛으로 쳐다봤다.김예훈의 표정이 찡그러졌다. 이 상황으로 봤을 때 저 남성은 하은혜의 남자친구가 아니다.‘도대체 지금 무슨 상황이지?’이때 인파 속에서 하은혜의 형님인 조연아가 차갑게 말했다. “하은혜, 너 진짜 대단하다! 서울 하씨 가문의 큰 어르신께서 먼 서울에서부터 발걸음 하셨는데, 너는 세 번이나 거절하고! 아. 너 설마 지금 여기 경기도라고 우리가 이제 필요 없다는 거니? 서울 하씨 가문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거야?”하은혜의 사촌 오빠인 하지석도 옆에서 차갑게 말했다. “하은혜! 이번에는 일이 바쁘다 같은 핑계는 꺼내지도 마! 내가 다 이미 알아봤는데 네가 지금 일하고 있는 CY그룹에 새로 온 부대표가 전반적인 일을 관리한다며! 너는 도대체 뭘 하는 거니? 김세자를 그렇게 오래 따라다녔으면서 결국 지금도 일개 비서잖아! 엄연한 하씨 가문의 사람이 다른 사람의 비서가 된 것도 좋아. 근데 이렇게 오랫동안 일하면서 제대로 된 직책 하나 없잖아! 너는 우리 서울 하씨 가문이 온 서울에 웃음거리가 되길 원하는 거니? 하은혜, 너 잊지 마! 경기도 하씨 가문은 서울 하씨 가문에서 떨어져 나간 가문일 뿐이야! 하정민 할아버지가 너를 얼마나 아끼든 간에 평생 책임은 못 지어준다! 왜냐.
하은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서야 고개를 들어 하은우를 보며 말했다. “은우 오빠, 저 결혼 안 해요.” 하은우는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하지석이 소리쳤다. “하은혜, 지금 그게 어르신 앞에서 할 소리야?”“너는 하씨 가문의 방계일 뿐이야. 진주 이씨 가문의 세자가 너를 안 싫어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길 판에 네가 무슨 자격으로 다른 사람을 싫어해?” 조연아는 매서운 눈초리를 하며 하은혜한테 소리쳤다. 하은혜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형님, 제 일은 제가 결정해요. 다른 사람이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 없어요.”짝!조연아는 하은혜한테 다가가 뺨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건방진 것! 불효를 저질러도 유분수지 어르신 말씀도 거역하겠다는 거야?”하은혜가 다른 사람한테 맞는 모습을 보자 문 앞에 서 있던 김예훈은 더 이상 이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다.김예훈은 화를 참으며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차갑게 말했다. “자기가 결혼을 안 하겠다면 안 하는 거지! 하은혜는 나 김예훈의 사람이야! 이 좁은 경기도 바닥에서 내 사람을 협박하는 사람이 있다니. 믿기지가 않은데?”작은 체구의 하은혜는 몸을 떨며 고개를 돌려 김예훈에게 말했다. “김 대표님, 어서 가세요. 대표님이 계실 곳이 아닙니다. 서울 하씨 가문은 대표님이더라도 상대할 수 없습니다.”하은혜가 이 일을 김예훈에게 알리지 않은 이유는 서울 하씨 가문이 김예훈한테 화풀이를 할까 봐 그런 것이었다.서울 하씨 가문은 윗대부터 서울 10대 명문가 중 하나로 막강한 재산과 권력을 소유하고 있다.김예훈이 CY그룹의 대표고 김세자라고 불리더라도 하은혜가 보기에는 여전히 서울 하씨 가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김예훈은 하은혜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상대가 될지 안 될지가 중요한가요? 은혜 씨는 제 사람이고, 누구든 은혜 씨가 원치 않는 일을 강요할 수 없다는 사실이 지금 가장 중요해요. 제가 만약 제 사람들조차 지키지 못하면 세자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아요.”“넌 또 누구야
“작은엄마, 이번 일과 김예훈은 관련이 없습니다. 그냥 보내주시죠.”하은혜는 김예훈이 다른 사람에 의해 다치는 것을 원치 않아 앞을 가로 막아섰다. 작은엄마라고 불린 중년 여성은 하은혜의 새엄마 이연희이다. 하은혜의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 이연희는 명목상 하은혜의 혈육이다.이연희는 분에 못 이겨 욕설을 퍼부었다.“계집년, 내가 작은엄마라는 걸 알긴 알아? 왜? 내가 네 내연남을 때려서 마음이 아프니? 지아비 닮아서 쪽팔린 것도 모르고 교양도 없이 매일같이 나가서 불륜이나 저지르고!”말이 끝난 후 이연희는 김예훈을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네 입으로 세자라면서 여자 뒤에 숨기나 하고 말이야. 듣던 대로 쓸모없는 놈이잖아.”김예훈은 이연희의 눈을 잠시 동안 쳐다보며 하은혜를 자신의 뒤로 오게 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괜찮아요. 제가 처리하면 돼요.”김예훈과 하은혜의 앳된 부부 같은 모습을 보니 이연희는 화가 치밀어 올라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우리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애정 행각을 하는 걸 보니까 네 녀석들은 쪽팔린 게 뭔지도 모르는구나. 우리는 없는 사람 취급하기로 한 거니?”조연아는 차가운 얼굴로 비꼬며 말했다.김예훈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만약 은혜 씨의 가족이란 사실을 배제하면 은혜 씨한테 그런 말들을 한 당신들 이미 죽었어.” “아, 별 능력은 없어 보이는데 큰소리치는 재주는 있구나? 이 좁은 경기도에서 감히 누가 우리 서울 하씨 가문 사람들을 건드릴 수 있는지 내가 한 번 두고 볼게. 경기도 일인자인 하정민도 우리 서울 하씨 가문 턱밑도 못 오는데 세자라고 떠들어 대는 네가 도대체 뭔데!”조연아는 김예훈을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빈정거렸다.“됐다.”이때 홀 정중앙에서 염주를 들고 있던 하씨 가문 큰 어르신이 덤덤히 입을 열었다.큰 어르신께서 입을 열자 노발대발하던 조연아나 겉과 속이 다른 이연희나 모두 겁에 질려 찍 소리 않고 가만히 있었다.하은우만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는 것 외에 모든 하씨 가문 사람
김예훈은 앉지 않았다.하은우 역시 개의치 않고 앞에 놓인 차를 마시며 말했다. “큰 어르신이 원래 이래, 큰 어르신 눈에 들지 않은 사람과는 말도 섞지 않으셔. 하은혜는 원래 엄청 아끼는 손녀였는데 너 때문에 서울 상류층에서 웃음거리가 됐어. 이제 이번 일을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지 말해봐.”김예훈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나랑 은혜 씨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 우리는…”김예훈에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은우는 키득거리며 웃었다.“김예훈, 우리 다 남자야. 내가 꼭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야 해? 비서가 말이 좋아 비서지, 할 일 있을 때는 비서고 할 일 없을 때는 방에서 둘이 무슨 일을 하겠어? 아. 이거 내가 한 말 아니다.”하은우의 말을 듣고 김예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 일은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 할 말이 없었다.하은혜는 우물쭈물거리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은우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둘 사이에 무언가 있는 건 너희가 인정했지만 난 너희가 무슨 관계든 간에 관심 없어. 근데 우리 서울 하씨 가문은 채면을 매우 중요시해. 그럼 이제 어떻게 처리할 건지 말해봐. 우리 하씨 가문이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한다면 앞으로 우리가 네가 승승장구하게 도울지 누가 알아. 근데 그렇지 않고 명문가의 원한을 사면 어떻게 되는지는 김세자, 넌 똑똑하니까 알겠지.”하은혜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은우 오빠, 진짜 오해예요. 저랑 김 대표님은 남녀 사이가 아니라 사이가 좋은 상사와 부하 직원일 뿐이에요.”“그럼 은혜야. 너는 왜 이장우를 거절하는 거야? 우리 같은 사람한테 혼인은 스스로 져야 할 책임이야. 하씨 가문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누리면서 이런 일을 거절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하은혜는 반박할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명문가가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하은혜의 표정을 본 하은우는 한숨을 쉬며 덤덤히 말했다. “너한테 두 개의 선택지를 줄게. 첫째, 너희 둘이 한 달 안에 결혼하고 김예훈은 서울 하씨 가문의 데릴사위가 되는 것. 둘째, 이장
김예훈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는데 이미 저녁 6시였다.휴식하고 싶어서 무음 모드로 해놓은 바람에 오늘 오후 동하임의 전화를 열몇 통이나 받지 못했다. 직접 찾아온 걸 보니 급한 일이 있는 듯했다.동하림이 호텔 주소를 찾아낸 것도 아주 정상적인 일이었다.동하임의 신분과 능력으로 김예훈 하나 찾지 못한다면 동씨 가문도 진주에서 살아남을 이유가 없었다.김예훈은 옷을 갈아입고 나서야 문을 열었다.동하임은 어느샌가 검은색 샤넬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여전히 단발머리였지만 이 드레스는 마침 날씬하고 섹시한 이국적인 매력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이 모습에 김예훈조차도 눈앞이 밝아지는 느낌에 속으로 감탄했다.“하임 씨, 마침 룸서비스를 시켜볼까, 했는데 같이 식사하실래요?”김예훈은 몇 가지 음식을 주문해서 먹으면서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인데요?”동하임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도련님, 하루 종일 주무시느라 며칠이 지났는지도 모르죠? 오늘 아침에 용문당 부당주님이 집법 부대를 이끌고 찾아왔어요. 진주 지위가 특별한 것 때문에 오늘 오후에 부당주님께서 김예훈 도련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공식적으로 진주 기관에 요청을 보내왔어요.”김예훈이 흥미롭게 말했다.“제가 용문당 회장인데 저한테 직접 연락하지 않고 동씨 가문에 연락했다고요? 재밌네요. 동씨 가문에 자기 정체성을 알고, 누구의 편에 서야 하는지 말해주려는 거예요?”동하임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용전, 용문당, 용의 부대, 용연옥에도 공식적으로 서신을 보냈으니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닌 거죠. 이 각도에서 보면 저희 동씨 가문을 완전히 배제하려는 것 같아요. 이 서신으로 이미 용문당의 의지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으니까요.”“용문당의 의지요?”김예훈은 피식 웃더니 용인주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신호가 없는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은 부재중 음성뿐이었다.김예훈의 행동에 동하임이 나지막하게 말했다.“저한테 전해달라고 하던데 용문당 당주님이 지금 무송에서 폐관 수련 중이니 찾을
류서우 등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김예훈이 항복하거나, 끝까지 저항하거나, 더 대단한 사람을 불러와 집법 부대와 맞설 줄 알았는데 이런 결말을 맞이할 줄 몰랐다.집법 부대가 이 상황을 휘어잡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나오키의 목숨을 살려서 이 증인들을 데리고 간다면 어떻게든 김예훈을 죽여버릴 방법이 많았다.그런데 김예훈이 이 증인들을 직접 황천길로 보내버릴 줄 몰랐다.증인이 없으면 김예훈의 죄를 증명할 수 없고, 또 그를 감옥에 보낼 수도 없으며 그를 회장 자리에서 끌어내릴 핑계도 없었다.김예훈의 이 한 수에 현장에 있던 용문당 집법 부대 자제들은 넋을 잃고 말았다.이 순간 바람이 불어오자, 류서우를 포함한 사람들은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김예훈의 실력을 봐서는 이들을 죽이려고 해도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김예훈은 앞으로 다가 진세은을 발로 걷어차 넘어뜨리고는 웃으면서 말했다.“진세은, 타케이 일가가 지은 죄가 두려워 알아서 복부를 찌른 모습을 보았지? 나의 증인이 되어줄 건가?”진세은은 힘겹게 침을 삼키며 웃고 있는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증인 할게.”“타케이 가문은 홍성파에서 직접 초대한 귀한 손님인데... 홍성파의 귀한 따님께서 타케이 가문이 자살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시면 그 죄목들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거지?”김예훈은 앞으로 다가가 류서우의 얼굴을 가볍게 툭툭 쳤다.“용문당 회장이 법을 어기지만 않았다면 집법 부대 제자보다는 위치가 높은 거 아니겠어?”김예훈의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에 류서우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어떻게 하실 건데요?”“어떻게 할 거냐고?”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용문당 집법 부대 사람들인데 내가 뭘 어떻게 하겠어. 이따 시체를 잘 치우고 바닥을 깨끗이 닦으면 오늘 일은 그냥 넘어가 줄게. 이깟 일도 처리하지 못하면 교훈을 주기 위해 손쓸 수밖에 없어. 그래서 말인데 내가 손쓰지 않게 해주길 바라.”김예훈이 태연하게 떠나는 모습을 보던 용문당 집법 부대 제자들은 눈앞이 어두워지는 느낌
류서우의 편파적인 말투를 들은 나오키가 말했다.“류서우 씨, 제가 증언해 드릴게요. 저 자식이 바로 제 아들딸을 죽이고 한일 관계를 파괴한 놈이에요. 그리고 여기 쓰러져있는 일본인들도 전부 다 저 자식이 죽였어요. 살인마나 다름없는데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해요! 저런 사람이 죽지 않으면 한일 관계도 다시 호전될 수 없다고요.”나오키는 일본의 신성한 사무라이 정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어쩌면 비열한 것이 본모습이라 사무라이 정신은 그저 보여주기식일지도 몰랐다.남들이 믿기를 바라지만 자신은 절대 믿지 않는 그런 거짓말처럼 말이다.나오키의 진심 어린 호소에 류서우가 웃으면서 말했다.“나오키 씨,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집법 부대에서는 법에 따라 이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할 거예요. 자기 사람도 다스리지 못한다면 용문당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겠죠.”류서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김 회장님, 정말로 반항할 준비가 되셨어요?”김예훈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피식 웃었다.“반항? 만약 시비를 가리지 않고, 선과 악도 구분하지 못해 악당을 도와주는 것이 집법 부대의 스타일이라면 반드시 반항해야 하겠는데?”“이런 젠장! 어디서 이런 무례한 말을 하는 거예요! 용문당 집법 부대를 모욕한 죄로 더 큰 벌을 받아야 할 거예요!”류서우는 뒷짐을 쥔채 거만하게 김예훈을 쳐다보고 있었다.“지금 아셔야 할 것은 당신은 이미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거예요. 규칙이든 법도든 하나도 빠짐없이 위반했다고요! 그런데도 저희가 나서지 않으면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 것 같아요?”‘하찮은 회장 주제에 공손하게 대하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도전장을 내밀어?’류서우의 마음속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과거의 회장들은 류서우를 보면 바로 굽신거렸는데 처음 보는 태도에 더욱 분노를 샀다.이 순간, 류서우는 허리춤에서 활을 꺼내 김예훈의 머리를 겨냥하면서 차갑게 말했다.“손 머리 위로, 무릎 꿇으세요!”“정말 구제 불능이네.”김예훈은 한숨을
류서우는 김예훈에게 삿대질하면서 냉랭하게 말했다.“제가 집법 부대를 대표해서 알려드리는데 무기를 내려놓고 나오키 씨한테 용서를 비세요. 그리고 저희 집법 부대에서 회장님을 어떻게 처리할지 기다려 주세요. 다시 마음대로 행동했다간 체면이고 뭐고 바로 체포할 거예요. 어차피 나오토 씨도 죽이고 세이이치로 씨도 죽인 건 사실이잖아요. 증거가 확실하고 사실도 명백하니 당신을 죽여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 같아요.”이때, 류서우의 손짓하나에 용문당 집법 부대 제자들이 활을 꺼내 김예훈을 겨냥했다.김예훈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뒤돌아 류서우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마치 자신을 싫어하는 듯 공격성이 강했다.하지만 집법 부대라는 말에 김예훈은 조금이나마 그녀가 이해되기도 했다.부산 용문당 회장이 된 이후로 많은 사람의 이익을 해쳤기 때문이다.그리고 지난번 만남에서 집법 부대를 짓밟아버렸는데 그런 그들이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짓밟힌 상황에서도 류서우가 이렇게 대담하게 찾아온 것을 보면 신분이 심상치 않거나 용문당 몇몇 장로들의 후손일 가능성이 컸다.일반적인 용문당 집법 부대 제자라면 김예훈 앞에서 아마 기침도 하지 못했다.이때 김예훈이 담담한 표정으로 류서우를 쳐다보면서 말했다.“나오토는 내가 죽인 게 아니야. 확실한 증거도 있고, 증인과 물증도 충분한데 어떻게 내가 죄를 지었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거야? 세이이치로는 내가 나오토를 죽이지 않은 걸 알면서도 그 핑계로 나를 공격하려고 했고, 나는 그저 정방 방위했을 뿐인데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래? 나오키도 복수심에 불타서 고수들을 조직해 나를 포위하려고 했고, 이 많은 사람이 나 하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그것도 내 잘못이야? 루미코 역시 의사로 가장해 나를 암살하려고 했어. 타케이 가문에서 자꾸만 나를 괴롭히고 죽이려고 해서 나는 그저 나 자신을 보호하려고 정당 방위했을 뿐이라고. 집법 부대 제자 입장에서는 내가 무모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해? 넌 도대체 한국인이야? 아니면 일본인이야?
랜드크루저가 마당을 뚫고 들어온 순간, 누군가 차 문을 발로 걷어차면서 스무 명이 넘는 젊은 남녀가 동시에 차에서 내렸다.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거만하고 차가운 표정이었다.그중 앞장선 사마은 키가 거의 1미터 70이 넘는 긴 생머리 미녀였다.그림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있는 그녀는 세상 모든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그녀는 왼손에 태블릿을 쥐고 김예훈을 힐끔 쳐다보고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김 회장님, 무단으로 부산을 떠나 진주에 와서 살인 방화를 저지르다뇨! 저 류서우는 정말 회장님께서 뻔뻔한 사람은 처음 보네요. 제 발로 찾아왔으니 절대 이만 갈 생각하지 마세요. 죽고 싶지 않으면 무기를 내려놓고 무릎부터 꿇으세요. 그러면 목숨만은 구제해 줄게요.”김예훈은 이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너희들 누구야?”“용문당 집법 부대인데요?”아주 깔끔한 대답이었다.“저희 당주님께서는 회장님이 부산 용문당의 안위를 무시하고 일본 손님을 도발했다는 신고를 받게 되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진주에까지 와서 사람을 죽일 수 있어요? 진주 기관은 당신 같은 사람을 용납할 수 없어요! 저희 용문당에서도 용납할 수 없고요!”“그래?”김예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용문당 4대 장로님이 지켜주는 집법 부대? 글쎄 왜 이렇게 거만하게 행동하는가 했네.”김예훈은 용인주의 체면을 봐서 부산 용문당 회장을 하기로 한 것이다.아니면 당주를 하라고 해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용문당 집법 부대 제자라도 해도 그의 앞에서 잘난 척할 자격이 없었다.“마침 잘 왔어. 내가 이따 나오키를 죽이면 바닥을 깨끗이 청소하고 현장 정리 잘해. 아무리 그래도 진주 호텔인데 사람이 죽으면 너무 불길하잖아.”김예훈을 차가운 말을 내뱉으면서 나오키를 죽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결국 뿌리를 뽑아버리는 것이 오늘 밤 그의 목적이었다.“김 회장님!”류서우는 결국 분노하고 말았다.“지금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세요? 저희 집법 부대는 당주님과 회장님을
퍽!바닥에 세게 부딪힌 나오키는 힘겹게 일어나려고 했지만, 체내에서 알 수 없는 힘이 휘몰아쳐 결국 피를 토해냈다.그는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이 순간 그는 대결로 모든 생명력과 잠재력을 소진했는지 아까보다도 더 늙고 초췌해 보였다. 나오키는 창백한 얼굴로 저항하지도 않고 비명을 지르지도 않은 채 서서히 무릎을 꿇었다. 오른손에는 여전히 검을 쥐고 있었다.아직 죽지 않았지만, 곧 죽음이 다가올 운명이었다.김예훈의 손에 목숨이 잡혀있었기에 그가 원한다면 뺨 한 대로 바로 목숨을 끝내버릴 수 있었다.“안 돼!”이 모습에 일본 고수들은 마음속 신이 무너진 것처럼 통곡했다.여전히 표정이 덤덤한 김예훈의 모습에 일본 남녀들은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손에 쥐고 있던 검을 하나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진세은 역시 의심할 여지 없이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정신마저 혼미해졌다.김예훈이 나오키를 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 거로 생각지도 못했다.몇 명의 아름다운 일본 여성들은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을 막고 있었다. 무슨 소리라도 냈다간 함께 김예훈의 손에 죽을까 봐 겁이 났다.“네가 졌어.”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예훈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내가 이미 말했잖아. 알아서 목숨을 내놓으면 체면 정도는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왜 내 말을 안 믿는 거야. 그런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퍽!김예훈은 단검을 나오키 앞에 떨어뜨리더니 피식 웃었다.“일본 사무라이들이 전장에 나가서 지면 알아서 목숨을 끊는다고 들었어. 그리고 항상 두 자루의 검을 가지고 다닌다지? 장검은 적을 죽이는 데 쓰이고, 단검은 자결하는 데 쓰인다고 들었어. 단검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내가 직접 빌려줄게. 네가 일본 최고의 사무라이 정신을 보여줄지 너무나도 궁금해.”이 말에 열몇 명의 일본 남녀는 서로를 바라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이들은 그제야 김예훈이 전혀 용서할 마음 없이 뿌리까지 뽑아버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런 제기랄! 끝까지 해봐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환각이 나타난 것처럼 나오키의 뒤에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귀신이 나타나 검을 들고 내리치는 것 같았다.이런 한방에 마음이 약하나 자는 바로 무너지기 일쑤였다.밖에서 그 기운을 느낀 진세은은 힘이 풀려 오줌을 지릴 뻔했다.쨍!이 순간,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나타나 나오키의 검을 막았다.쨍!김예훈은 멈추지 않고 뒤로 날아가 발이 바닥에 떨어질 때 뒤로 세 발짝 물러서 나오키의 검에 담긴 기운을 물리쳤다.“흥미롭군. 이제 막 무신 급에 접어든 실력이 아니야.”김예훈은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음양술로 이 실력에 도달할 수 있는 거 보면 일본 국방부의 그 몇몇 무신들도 너의 상대가 안 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죽고 싶어서 억지로 장병급에서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무신 급으로 거듭난 거야? 이 대결이 끝나면 육체가 무너지고, 사람 전체가 망가질 텐데?”김예훈은 여전히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었다.그는 이러한 기이한 수법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음양술, 주술 등을 이용하여 강제로 실력을 높이는 것은 자기 잠재력을 이미 소진하는 것과 같았다.특히 한 번에 큰 범위를 돌파하면 소진력은 더욱 무서웠다.나오키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대결이 끝나면 육체가 완전히 무너져서 병신이 될 수도 있었다.“김예훈, 너를 죽일 수만 있다면 죽어도 상관없어.”나오키는 차가운 표정으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다시 검을 들고 앞으로 나갔다.샤샥!나오키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또 한 번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완전히 방어를 포기한 상태라 오히려 빈틈을 드러내며 검을 휘둘렀다.샤샥!김예훈이 무심하게 휘두른 검은 정확히 나오키의 검에 부딪혔다.나오키는 부들부들 떨면서 어쩔 수 없이 뒤로 대여섯 발짝 물러났다.이순간 나오키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김예훈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렇게까지 큰 대가를 치렀는데 맞은편의 김예훈이 이 정도로 쉽게 공격을 피해버릴 줄 몰랐다.이것으로
나오키는 김예훈의 폭넓은 지식에 놀라긴 했지만 더 이상 쓸데없는 말 하지 않고 김예훈이 있는 곳으로 돌진했다.나머지 열몇 명의 일본 고수들은 소리를 지르며 추문성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의미심장한 표정을 하고 있던 추문성은 진세은이 방금 바닥에 떨어뜨린 총을 집어 들고 사정없이 방아쇠를 당겼다.퍽! 퍽! 퍽!여러 일본 고수가 피바다에 쓰러졌지만 다른 일본 고수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여전히 소리를 지르며 돌진해 왔다.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진세은은 도망치고 싶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전혀 움직일 수 없어 본능적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이 시각, 김예훈과 나오키는 정면으로 승부를 겨루고 있었다.샤샥!나오키가 은빛 광채를 띠는 검을 앞으로 내리치길래 김예훈은 검으로 그의 천둥 같은 일격을 막아냈다.쨍!두 검이 부딪히는 순간 고막이 터질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나오키는 숨을 가쁘게 쉬면서 연신 뒤로 물러났다.하지만 김예훈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오키를 바라보았다.“무신 급이네.”김예훈은 적잖이 놀란 모양이다.나오키가 종이 인형을 사용해서 실력이 업그레이드되어 무신 급이 될 줄 몰랐다.비록 오래 지속될 수도 없고, 그에 따른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무신 급은 엄연히 장병급과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예를 들어 오정범과 추문성이 젊은 층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긴 하지만 김예훈의 지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단기간 내에 돌파구를 찾아 무신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나오키가 이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일본의 음양술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존재한 이유를 알수 있었다.김예훈이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나오키는 이미 무표정으로 칼을 들고 다시 접근했다.일본 검도를 수련한 지 오랜 세월이 지난 나오키는 김예훈과 같은 상대를 상대할 때 그 어떠한 허세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매번 검을 내리칠 때마다 온갖 힘을 다해 휘둘렀다.쨍! 쨍! 쨍!무표정을 한 김예훈
어쨌든 나오키도 전설적인 인물로서 많은 풍파와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이다.하지만 자기가 직접 상속자로 지정한 아들이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자, 품위를 지키던 모습은 사라지고 극도의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세이이치로와 마찬가지로 신분을 밝혔는데도 이렇게 무례하게 행동하며 자기 아들을 죽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이순간 나오키는 분노로 들끓기 시작하면서 김예훈을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어했다.열몇 명의 일본 남녀들이 짐승처럼 포효하면서 검을 꺼내 언제든지 덮칠 준비가 되어있었다.오직 김예훈만은 무덤덤하게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추문성은 진작에 당도를 들고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진세은은 부들부들 떨면서 장례식장에서 빠져나갔고, 더 이상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었다.따라서 홍성파 정예 부하들도 얼굴이 창백해진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그 순간, 진세은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지만 마치 느끼지 못한 듯 계속해서 중얼거렸다.“이런 미친놈은 절대 건드리면 안 돼.”진세은은 차라리 진주 감옥에 있었으면 했다.평생 감옥에 갇히더라도 이 장면을 겪고 싶지 않았다.“이런 제기랄! 감히 내 앞에서 내 아들을 죽여? 죽여버릴 거야! 너의 온 가족도! 너의 조상님들도 모조리 무덤에서 파내서 뼈를 부숴버릴 거라고!”나오키는 검을 꺼내 앞으로 돌진했다.김예훈 역시 무심하게 검을 들고 담담하게 말했다.“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은 부모님의 잘못이야. 네 아들이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른 것도 네가 잘 가르치지 못해서 그런거라고. 일본인이 대한민국에 왔으면 고개를 숙이고 다녔어야 한다고 진작에 말해줬어야지. 네가 불만이 많다는 거 알아. 그렇다면 내가 공정하게 대결할 기회를 줄게. 하지만 너는 분명히 내 상대가 아니야. 그러니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좋을 거야. 나이를 잔뜩 처먹고 지는 것도 쪽팔리잖아.”말하는 사이, 김예훈은 아무렇지 않게 검을 들었다.쌍방의 원한은 이미 죽고 못 사는 지경에 이르렀다.마냥 좋은 사람이 되기 싫은 김예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