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이것 봐, 이건 내가 인정하지 않는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몰라서 그래. 난 어제 당신들과 계약에 대해 검토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계약금은 더더욱 받지 않았다고.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당신들 돈을 가져간 사람들한테서 계약금을 돌려받는 건 어때?”이 말은 들은 모두가 그 자리에서 당황의 빛을 내비췄고 이어서 모두가 하나같이 김진국 뒤에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기 시작하였다.아니나 다를까, 어제 계약에 대해 함께 검토하던 사람은 한 명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위 인사들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송문영은 어제 받은 어음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서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대표님, 어음에 당신들 회사 도장과 대표님 개인 도장까지 찍혀져 있어요.”김진국이 자기 머리를 치더니 입을 열었다.“생각났어, 얼마 전까지 우리 대전에 외지에서 온 사기꾼들이 판을 치고 다녔어. 당신네들 이 도장이 내 도장과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가짜야. 돈 받은 사람도 내가 아니고. 한번 그 사기꾼들을 찾으러 가봐, 아니면 우리가 대신 신고라도 해줄까?”김진국은 선심이라도 쓰듯 말을 이어나갔다.하지만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이들의 표정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지고 있었다.여기에 바보가 있지 않고서야 사기꾼 같은 이런 말에 넘어갈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그들이 지금 당황스러운 것은 무려 사업하면서 감히 돈을 먼저 받고 계약서를 고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었다.그들의 뻔뻔한 태도에 모두가 화가 나서 치를 떨 지경이였다.김예훈이 웃으며 손을 휘저으며 다른 사람들을 뒤로 물러서게 하였다. 그리고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김진국 씨, 맞죠? 우리 단도직입적으로 해결하죠, 이렇게 서로 간 보지 말고. 우리 20억 계약금 돌려줄 생각 없죠?”김진국이 몸을 일으키며 살기 어린 눈빛으로 김예훈을 쏘아 보았다.“이봐, 청년. 우리 말은 좀 가려서 하지 그래! 뭐가 돌려줄 생각이 없어? 나한테 없는 돈을 왜 나한테
“꺼져!”“더 이상 안 꺼지면 너희들 손모가지를 잘라버릴 거야!”“그리고 너 얼굴도 반반한 게 오늘은 오빠들과 함께 재미나 볼까?”그들의 수법은 비열하기 그지없었다.CY그룹의 고위 임원들의 표정도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하였다.그들은 지금까지 항상 프리미엄한 장소에서 정상적인 사람들만 상대해 왔었다.오늘같이 이런 망나니 같은 사람들과 이런 일은 그들도 처음 겪는 일이라 하마터면 바지에 오줌을 지릴뻔하였다.하지만 김예훈과 송준의 표정에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김예훈이 담담하게 물었다.“김진국, 다시 한번 기회를 줄게, 계약금 물어내.”김진국이 비웃으며 말하였다.“이 건방진 새끼가, 아직도 안 꺼지고 뭐 해? 다리 하나가 부러져 봐야 정신을 차릴런가? 그래, 좋아. 다들 뭐해? 이 새끼 다리 분질러 놓지 않고!”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여러 명이 그에게로 달려들려고 하자 김예훈의 옆에 서 있던 송준은 갑자기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더니 한 발로 김진국의 가슴을 그대로 걷어찼다.곧이어 송준은 김진국의 머리를 잡고는 테이블로 잡아당기고서는 한 손으로는 펜을 잡아 그대로 찔렀다.“헉!”사인펜은 김진국의 동공을 스쳐 그대로 테이블 위에 꽂혔다.김진국은 놀라서 그대로 오줌을 지릴 뻔하였다.“저들한테 전해, 멈추라고.”송준의 냉기 서린 목소리였다.“멈춰!”김진욱은 무의식적으로 큰소리를 치긴 하였지만 몸은 여전히 떨려왔고 식은땀마저 났다.그는 송준이 든 사인펜이 테이블마저 뚫을 정도면 자기 머리에 갖다 꼽는 일은 식은 죽 먹기라는 것쯤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뒤에 서 있던 사내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송준을 보았고 왜 자신들의 손을 멈추게 하게 했는지도 의문이었다.“손에 있는 무기 전부 버리고 꿇어.”송준이 이어서 명령하였다.“안 들려? 모두 무릎 꿇어!”김진국은 땀범벅이 된 얼굴로 누굴 원망할 겨를도 없이 명령하였다.건장한 사내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하였다.“내 말 안 들려? 나 죽이고 싶어서 환
김예훈은 손을 뻗어 김진국의 머리를 툭툭 치더니 더럽다는 듯 다시 그의 옷에 닦더니 입을 열었다.“그럼 다시 물을게. 계약서를 바꾸고 내 계약금을 통째로 먹으라고 사주한 사람 누구야.”김진국은 아파서 숨을 헐떡이면서도 이를 갈았다.“아닙니다, 이 일은 제가 한 일입니다. 다른 사람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일입니다. 사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다만 오늘 이렇게 당신들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입니다.”김예훈이 웃었다. 그러고는 송문영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먼저 나가봐, 지금부터는 애들이 보면 안 되니까.”고위 이사들은 이미 얼굴이 창백하여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리를 떠났다.그들이 다 떠나고서야 김예훈이 웃었다.“송준아, 전장에서 너한테 가르친 거 잊지 않았겠지? 오늘 그 테스트 좀 하자.”“네.”송준이 웃더니 이내 김진국의 머리를 잡고는 더할 나위 없는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두려워할 거 없어. 아프진 않을 거야. 먼저 간단하게 설명 좀 해줄게. 지금 말이야 별로 무기가 많지 않은 관계로 좀 있다가 네 이빨부터 하나하나 뽑아볼까 해. 그리고 네 손가락과 발가락도 하나하나 부러뜨리려고 하는데.”여기까지 말은 마친 송준의 얼굴에 갑자기 화색이 돌기 시작하였다.“김 대표님, 당시 미르 제국의 기사단들도 모두가 하나같이 여기에서 무너졌죠. 제 기억으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가 시도 하기도 전에 자백하던지 말입니다. 여기 계시는 대표님은 절 즐겁게 해주길 기대할게요.”김예훈은 그대로 송준을 발로 걷어차더니 미간을 찌푸렸다.“쓸데없는 말 하지 마! 말하지 않았어? 말은 짧게! 행동은 과감하게!”“네네네!”송준은 공손한 표정을 하더니 이내 종이 한 장을 빼내서는 조심스레 김진국의 엄지를 감싸며 웃었다.“처음에는 좀 아플 수도 있어, 하지만 그다음부터는...”“말할게요! 말할게요!”김진국은 정말 바지에 오줌을 지렸는지 바지는 젖어있고 이내 역한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하였다.너무도 무서웠다!자신이 도대
생글거리는 김예훈의 얼굴을 보자 김진국은 무언가를 눈치챈 듯 흠칫 떨었다.비록 그들은 30명이 넘었지만, 만약 이 타이밍에서 물러서지 않는다면 고작 2명 뿐인 상대방한테 손쉽게 당할 거라고 직감했다.그때가 되면 10억은커녕 천원도 못 건지게 생겼다.결국 김진국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고,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이를 악물고 10억을 CY그룹 계좌로 다시 이체했다....대전 지사.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게 된 육해연은 대표라는 사람한테 감탄을 금치 못했다.부지를 매입하는데 최소 100억은 필요할 것이며, 심지어 상대방이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안할 거라는 마음의 준비까지 마쳤는데 결국 10억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적극 협조하는 상대방 덕분에 각종 수속과 인수인계도 하루 만에 마쳤다.그러고 나서 해야 할 일은 별거 없었다. 즉, 시공사한테 프로젝트를 진행하되 최단기간 내에 대전 쇼핑몰을 지으라고 하면 그만이다.육해연의 계획에 따르면 빠르면 3개월, 늦으면 6개월이 걸릴 것이다....대전 태호 언저리에 있는 민박.김진국이 손을 감싸고 상처를 치료하던 중 민박 대문이 벌컥 열리더니 흰색 슈트 차림의 백기영이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걸어들어왔다.“악!”처참한 비명과 함께 김진국은 백기영 부하의 발길질에 벌러덩 넘어졌고, 이내 질질 끌려가 강제로 백기영 앞에 무릎을 꿇었다.백기영은 구두 신을 발로 김진국의 턱을 들어 올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제정신이야? 그 땅은 팔면 안 된다고 했어? 안 했어? 이제 내 말은 대전에서 먹히지 않는다는 건가?”“기영님의 말을 무시한 게 아니라...”김진국이 굽신거리며 말을 이어갔다.다만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백기영이 발로 걷어차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강제 침묵하게 되었다.김진국은 콧대가 부러진 듯 코를 부여잡았고, 눈은 원망으로 가득 찼다.“기영님, 상대방이 제 친구랑 아는 사이라서 어쩔 수 없이 부탁 좀 들어줬어요. 부디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
대전에서 백씨 가문의 입지는 그야말로 탄탄했다.김청미가 지켜보는 앞에서 백기영은 바로 전화를 걸었고, 대전건설 대표는 프로젝트 계약은 물론 계약금까지 받을 테지만 시공은 절대 진행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즉, 착공하기 전까지 적어도 몇 년은 질질 끌 작정이었다.결국 기약 없는 일정 때문에 대전도 대전이지만 충청지역을 통틀어 CY그룹 사업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컸다.어쨌거나 김예훈과 육해연은 최대한 6개월 안으로 쇼핑몰 공사를 마치고, 자원 통합과 지사 확장을 위한 사전 준비를 1년 안에 끝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따라서 백기영의 전화 한 통으로 사실상 김예훈과 육해연의 계획은 물 건너간 셈이다.“청미님, 전 백씨 가문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충청지역의 모든 건설업에 CY그룹과 거래하지 말라는 금지령으로 내리고 싶어요.”전화를 마친 백기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김청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이내 백기영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만약 이 일만 잘 처리한다면 김청미의 마음속에서 그의 위상은 달라질 게 뻔했다.어쩌면 마냥 불가능하게 느껴졌던 소원도 이루어질 가능성이 컸다.곧이어 충청지역의 모든 건설업이 이 금지령에 대해 전해 들었다.대전 백씨 가문은 일류 가문으로서 충청지역의 기관은 물론 조직 거물과도 친분이 있다.게다가 워낙 유명한 현지 토박이라서 그들을 건드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CY그룹의 프로젝트가 아무리 돈이 된다고 해도 몇 푼 더 벌려고 차마 백씨 가문의 심기를 건드리는 위험은 무릅쓰지 않을 것이다.물론 김예훈 일행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어쨌거나 대전건설과 계약을 체결했으니 시공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김예훈은 대전에 며칠 더 있으려고 했지만,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여보세요? 형부? 형부예요? 형부! 살려줘요. 그 사람이... 뚜뚜뚜...”정소현한테서 걸려온 전화란 걸 알아차린 김예훈은 넋을 잃고 말았다.사고 난 건가?그가 떠난 지 고작 사흘밖에 안 됐는데, 정소현한테 일이 생
깡패 두목이 웃음을 터뜨렸다.“이년아, 네가 전화한 걸 모르는 줄 알아? 네 형부라는 놈이 우리 세자님을 건드리고 글쎄 잽싸게 도망갔잖아. 아니면 지금쯤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 그 자식을 불러들이려고 일부러 너한테 전화할 틈을 준 거야. 안 그러면 기회나 있을 것 같아?”말을 마친 깡패 두목이 정소현한테 다가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위로 당겼다.“그래도 얼굴은 꽤 예쁘장하게 생겼네? 우리 애들도 나가 논지 오래되어서 엄청 굶주리고 있는데 말이야.”깡패 두목은 말을 이어가면서 일어서더니 천천히 벨트를 풀었다.정소현이 세 살배기 아이도 아니고 어찌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모를 수 있겠는가?“싫어! 싫다고!”고집으로 똘똘 뭉친 그녀의 얼굴은 한순간에 창백해졌고, 땅바닥이 더럽든 말든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미친 듯이 뒤로 물러났다.“하하하, 이 년아! 이제 좀 무서워졌니? 하지만 걱정하지 마. 우리도 나름 젠틀한 사람이거든. 너희들! 이 년을 깨끗이 씻겨!”깡패 두목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누군가 호스를 끌고 와서 정소현의 몸을 향해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안 그래도 옷을 적게 입은 정소현은 몸에 물이 닿는 순간 옷이 딱 달라붙게 되면서 그녀의 글래머한 몸매가 한층 더 돋보였다.깡패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게걸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심지어 두목은 당장이라도 덮칠 기세였다.“예쁜아, 오빠가...”깡패 두목이 다가가려는 찰나 별장 외벽이 갑자기 와르르 무너지면서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토요타 프라도 한 대가 곧장 벽을 들이받았다.곧이어 뒷좌석에서 살기로 가득한 김예훈이 훌쩍 뛰어내렸고, 박인철과 오정범이 그의 뒤를 따랐다.김예훈을 본 순간 멘탈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던 정소현은 힘없이 축 늘어지더니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형부, 왔어요?”“소현아!”눈앞의 광경에 김예훈은 분노가 차올라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성남시를 떠난 지 고작 며칠이라고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퍽!”김예훈이 발로 걷어차자 바지
박인철은 죄책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총사령관님, 최근 경기도 국방부 업무를 인계하면서 형수님을 제대로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이게 다 제...”김예훈은 손을 휘휘 젓더니 불쑥 끼어들었다.“요점만 얘기해.”박인철은 심호흡을 크게 했다.“사건은 이미 조사했고, 아마도 일류 가문인 손씨 가문 세자 손지강의 작품인 듯싶어요. 양아버지가 경기도 조직의 보스 홍인경으로 유명한데, 아까 그 양아치들은 홍인경의 부하거든요. 손지강은 이번에 총사령관님을 타깃으로 움직인 것 같아요. 형수님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고, 마침 CY그룹 임원들과 공사현장에서 업무 보던 차라 아직은 무사합니다. 대신 소현 양이 학교에서 납치당해 여기까지 끌려오게 되었죠. 학교 경비원이 말렸다고 하는데 한바탕 두들겨 맞았다고 하네요.”김예훈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정민아마저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는 후회막급할지도 모른다.이를 본 박인철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그리고 10분 전에 손지강도 소문을 들었는지 이미 한 무리 사람을 이끌고 백운 별장 공사현장으로 향했죠. 방금 제 부하들을 보내긴 했어요.”김예훈의 얼굴이 다시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사실 그는 당도 부대라는 중요한 무기를 함부로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그러나 끊임없이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는 사람이 있으니 별수 있겠는가!그가 입을 떼려는 찰나, 갑자기 밖에서 경적이 들리더니 차량이 줄지어 나타났다.이때 오정범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총사령관님, 성남시 경찰서 사람들이 찾아왔어요. 성남 경찰서 이인자인 임성휘가 책임자인가 봅니다.”김예훈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밖엔 인철한테 맡겨요.”별장 밖.임성휘는 허리에 찬 권총에 손을 걸친 채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방금 그는 이곳에서 난동을 부리는 사람이 있으니 얼른 가서 처리하라는 손씨 가문의 연락을 받았다.사실 자신의 직급으로 고작 이런 사소한 일에 출동할 필요까지 없었다.하지만 그와 손씨 가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당도 부대 총사령관은 그야말로 국방부의 신화 같은 존재이자 살아있는 전설이다!대통령마저 그를 매우 중요시하여 서울에서 9대 국방부를 통솔하는 임시 총사령관으로 임명할 의향마저 내비쳤기에 앞으로 국방부 원로가 될 가능성이 컸다.그런데 임성휘가 어찌 그런 사람을 건드리겠냐는 말이다.“아닙니다! 저는 단지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만약 총사령관님께서 일보는 중인 걸 알았더라면 저를 두드려 패면서 협박한다고 해도 감히 방해하러 찾아오지 않았을 겁니다.”이때, 임성휘는 손씨 가문 사람들을 한 명씩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충동마저 생겼다.하필이면 그 누구도 아닌 총사령관을 건드리다니! 목숨이 두 개도 아니고 말이야!임성휘를 따라 출동한 형사들은 하나같이 창백한 얼굴로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당도 부대 총사령관은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그는 열혈 단신으로 당도 부대를 이끌고 5대 강국에 맞서 싸워 세계에서 한국의 패권을 확립했다.이런 분이 일 보고 있는데, 고작 형사 나부랭이가 무슨 참견을 한단 말인가!이내 임성휘는 정신이 번쩍 들면서 재빨리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박인철 씨, 총사령관님께서 일 보신다고 하니 당장 팀원들 철수하고 밖에서 수비하도록 할게요.”박인철의 표정이 싸늘하긴 했지만, 별다른 말은 없었다.어쨌거나 비상상황인지라 이들에게 수비를 맡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적어도 불필요한 소란에 휘말릴 일은 없을 테니까. 괜히 누군가 눈치 없이 절대 안정을 취하는 정소현을 방해하면 큰일이다.현장을 떠나고 나서야 임성휘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성남시 경찰서장 여운기한테 전화를 걸었다.여운기는 경기도 경찰청에서 발령받아 며칠 전에 이도운의 자리를 대체했다.“일은 잘 처리했나?”휴대폰 너머로 차분한 여운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운기도 신세 좀 지겠다는 손씨 가문의 연락을 받은 듯싶었다.임성휘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서장님, 이번에 큰일 났어요. 물론 사건이 터진 건 사실이지만 감히 우리가 건드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