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 별장 프로젝트 현장.공사 현장을 바라보는 정민아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이제 별장 건설 현장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고, 도적구자가 보낸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덕분에 소란 피우는 무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그런데 원자재에 문제가 생겨 어쩔 수 없이 프로젝트를 중단해야만 했다.비서를 호출한 정민아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재무팀에 연락해서 4천만 원 보내 달라고 하세요. 그리고 현금으로 인출해서 직원들한테 20만 원씩 보너스로 나눠주고 며칠 쉬면서 다시 나오라고 할 때까지 대기하라고 전해주세요.”비서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지만 여전히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대표님, 이제 곧 겨울이 올 텐데 경기도는 겨울만 되면 바람이 세게 불어 작업 속도에 영향 주기 마련이죠. 가을까지 마무리 짓지 못한다는 가정하에는 시공을 중단할 수밖에 없어요.”정민아는 미간을 문질렀다.“나도 알아요. 하지만 원자재에 문제가 생긴 이상 서두른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잖아요. 우선 직원이랑 시공업체가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도록 잘 좀 설명해줘요. 그동안 문제를 해결하도록 최대한 노력해볼게요.”“네!”비서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떴다.정민아가 프리미엄 가든으로 돌아왔을 때 임은숙은 이미 각종 주얼리와 별장 부동산 계약서를 챙겨서 떠난 뒤였다.물론 정민아도 그녀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소파에 앉아 있는 정민아의 얼굴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이때, 김예훈이 다가와 주식 양도 계약서를 건네며 농담을 건넸다.“우리 정 대표 축하해! 앞으로 이 회사의 지분 중 49%는 네 개인 소유야. 이제 회사 대표인 네 말 한마디면 모든 게 해결되지 않겠어? 더는 널 힘들게 할 사람은 없을 거야.”정민아는 계약서를 뒤적거리더니 힘없이 말했다.“날 힘들게 하는 사람이 없다고 누가 그래?”“설마 CY그룹이야?”김예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버젓이 있는데 감히 정민아의 회사를 건드리는 사람이 있다니?정민아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CY그룹은 우리 회사랑 이익공동체
오전 내내 공사 현장에 머물렀던 정민아는 그제야 공급업체와 만나기로 한 식당으로 찾아갔다.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룸에 아무도 없었다.정민아는 상대방이 일부러 기 싸움을 한다는 걸 알고 굳이 따지지 않았다. 이내 차 한잔을 주문하고는 얌전히 기다렸다.장장 4시간 동안 점심부터 저녁까지 기다리고 나서야 공급업체 사장들이 뒤늦게 나타났다. 게다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다 같이 룸에 들어섰는데 호형호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대표님, 정말 죄송합니다. 좀 늦었네요.”“요즘 일이 좀 바빠서요. 대표님도 알다시피 최근에 원자재 가격이 계속 치솟고 있잖아요. 저희랑 거래하겠다는 업체가 점점 더 많아져서 도무지 여유가 없네요.”“가지고 있는 재고는 정해져 있고, 여기저기서 달라고 난리인데 대체 어디랑 거래해야 한단 말입니까? 정말 골치 아프네요!”룸에 들어선 일행들은 하나같이 의기양양한 모습이다.뒤룩뒤룩 살찐 남자와 달리 너나 할 것 없이 늘씬한 미인들을 데리고 등장한 이들은 딱 봐도 예사롭지 않았고, 소위 성공한 사업가라고 할 수 있다.이때, 누군가의 휴대폰이 올렸다. 그는 전화를 받으면서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체면이고 뭐고 언급할 필요 없어! 돈만 주면 다 해결될 일이야. 매입가를 올려주지 않으면 거래는 꿈도 꾸지 말라고 상대방한테 똑똑히 전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업체도 납품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내 말대로 해.”말을 마치고 나서 그는 씩씩거리며 전화를 끊더니 정민아를 향해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정 대표, 죄송해요. 어디를 가도 사리 분별을 못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죠. 무슨 시장도 아니고 흥정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호되게 욕을 먹어야 정신 차리지, 아니면 자기가 제일 잘 나가는 줄 아는 걸요? 하하하!”다른 사람들도 껄껄 웃었지만, 유독 정민아만 표정이 어두웠다.공급업체 사장들은 그녀에게 본때를 보여주려는 심산이었다.가격을 올리는 건 물론 만약 흥정이라도 한다면 물건을 보내지 않겠다는 입장을 확실히 밝혔다.심지어 그들을
“하하하, 그렇다면 저희를 고소하겠다는 뜻인가요?”우광식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여기서 한 마디 조언해 드리자면 변호사를 고용하는 게 몇 푼이나 든다고 그래요? 다만 이런 민사분쟁은 어쨌거나 중재를 위주로 하기에 빨리 판결되는 경우가 거의 없죠. 따라서 소송을 한 7~8년 끄는 건 우리가 마음먹기 나름이라고요. 물론 저희는 괜찮다만 정 대표 회사에서 감당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우광식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그는 오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오늘 정민아를 만나러 온 이상 끝장을 보기로 했다.다른 사장들도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익공동체와 다름없는 사람들인 지라 돈을 벌 기회가 생긴 이상 당연히 똘똘 뭉치기 마련이다. 돈을 싫어하는 멍청한 인간이 어디 있겠냐는 말이다.정민아는 심호흡하며 말했다.“정 씨 일가에서 거래처를 찾기 시작할 때 분명 우 대표가 먼저 연락하지 않았나요? 게다가 공장이 파산 직전까지 갔다면서 파격적인 가격으로 납품하겠다고 역제안을 한 사람도 본인이잖아요. 저도 여태껏 꼬박꼬박 정산했고, 단 한 푼이라도 연체한 적이 없었죠. 신용은 둘째 치고 적어도 인정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때 제가 여러분과 계약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파산한 분도 적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청산유수가 따로 없는 정민아의 말에 몇몇 공급업체 사장은 죄책감을 느꼈다.당시 그들이 정민아를 먼저 찾아간 건 사실이었다.다만 문제는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이제 돈맛을 좀 봤으니 웬만해서는 만족이 안 되기 나름이다.우광식은 경멸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인정이요? 정 대표도 이 바닥에서 꽤 오래 지냈다고 들었는데, 사업하면서 제일 중요한 게 돈이라는 것도 몰라요? 돈만 있으면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죠. 인정은 그러고 나서 따지는 거예요. 지금 원자재 가격이 미친 듯이 치솟고 있는데 아직도 옛날 가격으로 공급해달라고 하면 말이 됩니까? 내가 듣기로 정 대표는 CY그룹의 지원을 받는다고 하던데, 무려 현재 경기도의 1위 그
이 말을 들은 정민아는 얼굴이 싸늘해졌다. 협상하러 온 자리에서 어찌 이런 수모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우리 기업은 매사에 진심으로 대하는데, 우 대표도 예의 좀 지켜주셨으면 좋겠는데...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 서로에게 유익한 거 아닌가? 남남으로 돌아서 봤자 좋은 점은 없을 텐데요? 그리고 이번 한 번만은 그냥 넘어갈게요. 나중에 또다시 날 모욕한다면 곧 경고장이 날아갈 겁니다!”“경고장? 모욕이요?”우광식이 피식 웃더니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정민아 씨, 본인이 진짜 양반집 규수인 줄 알아요? 오늘 어디 끝까지 한 번 가봅시다! 그쪽이랑 거래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도 살길이 없을 것 같아요? 똑똑히 들어요. 지금 우리랑 거래하고 싶은 업체가 얼마나 많은데, 오히려 원자재가 부족할까 봐 걱정이죠.”“도움을 받을 때는 언제고, 정녕 옛정 따위 안중에도 없는 건가?”정민아가 쌀쌀맞게 말했다.우광식은 피식 비웃으며 팔짱을 꼈다.“그런 얕은수는 집어치워요! 다들 사업하는 사람인데 당연히 이익만 챙기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백운 별장 프로젝트가 중단되는 날이 길어질수록 손해도 어마어마할 텐데, 더욱이 기한대로 완공하지 못한다면 CY그룹에는 어떻게 설명할 생각이죠? 이런 상황에서 고작 돈이 무슨 대수라고!”정민아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사실 가격 인상을 한 번만 하면 회사에서도 감당할 수 있다.다만 정민아는 비즈니스 전쟁에서 한발 양보하는 순간 상대방의 욕심도 끝이 없을 거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오늘에 50%를 올려달라고 했다면 내일은 60% 혹은 70%, 심지어 두 배로 뛸지도 모르는 일이다.상대방이 주도권을 잡은 이상 끊임없이 요구하는 건 당연했다.이때 정민아의 머뭇거리는 모습을 본 우광식은 갑자기 온몸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정민아는 여신급 미모의 소유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심지어 김세자도 그녀에게 프러포즈한 적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하지만 외부에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얼굴만 예쁘장할 뿐, 머리는 텅 빈지라
우광식의 머릿속에는 이미 그렇고 그런 장면으로 가득해서 다른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그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정민아, 오늘 밤 성남대호텔로 갈래? 걱정하지 마. 난 거기 회원이라서 스위트룸으로 잡을 테니까 실망하는 일은 없을 거야.”“꿈 깨! 이거 놔! 아니면 진짜 경찰에 신고할 거야.”정민아는 허우적대며 휴대폰을 꺼냈다.이를 본 우광식은 피식 비웃으며 오른손으로 정민아를 밀쳤고, 그녀는 이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하여간 여자들이란! 스스로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본데, 감히 내 앞에서 고상한 척해? 내가 장담컨대 나중에는 나랑 자고 싶다고 애원하게 될지도 몰라! 내 허락 없이 과연 성남시에서 원자재를 납품할 업체가 있을 것 같아?”정민아는 휴대폰을 꼭 쥐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우광식, 어디서 잘난 척이야? 돈만 있으면 뭐든 지 살 수 있다는 거 몰라? 그때 가서 후회나 하지 마.”정민아의 말을 들은 우광식은 웃음을 터뜨렸다.사실 그가 날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경기도 부동산 업계의 선두주자이자 일류 가문에 속하는 손씨 가문이 그의 뒤를 봐주기 때문이다.손씨 가문이라는 든든한 지원군 덕분에 우광식은 경기도 원자재 업계를 꽉 잡고 있으며, 뭐든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했다.이런 상황에서 몰래 정민아에게 원자재를 공급하는 업체는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물론 우광식은 지금 당장 공개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정민아를 한참 위아래로 훑어본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정민아, 어디 한 번 발버둥 쳐 보던가? 나중에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서 날 다시 찾아와도 늦지 않았거든.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돈을 주든지 아니면 다리를 벌리든지, 너한테 선택할 기회는 줬는걸?”우광식의 거침없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정민아는 분노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우광식, 후회하지 마. 내가 널 구원해줬다고 다시 못 짓밟을 것 같아?”“그런 소리 집어치워! 예전에는 널 건드리면 큰일 나겠다
집으로 돌아온 정민아는 소파에 몸을 던진 채 먹구름이 잔뜩 드리운 얼굴로 입을 꾹 닫고 있었다.수업이 끝나서 집에 들어선 순간 정소현은 눈앞의 광경에 깜짝 놀랐다. 언니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그녀는 표정만으로도 언니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걸 눈치챘다.정소현은 재빨리 김예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냐하면 형부라면 분명 언니의 억울함을 풀어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연락을 받은 지 30분도 지나지 않아 김예훈이 집에 나타났다. 그에게 정민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민아야,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줄래?”김예훈은 정소현에게 2층으로 올라가라고 눈짓하더니 이내 우유 한 잔을 들고 소파로 걸어갔다.정민아는 우유를 건네받고 울컥하는 마음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오늘에 당한 일만 떠올리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게다가 우광식 그 뻔뻔한 놈이 감히 머리채를 잡아당길 줄이야! 그녀는 두피가 아직도 지끈거리는 듯싶었다.“우광식 그 개자식은 정말 배은망덕한 놈이야! 백운 별장 프로젝트가 결정된 지 얼마 안 되어서 파산 직전까지 갔다고 애원하는 바람에 기껏 도와줬더니 돈 좀 벌었다고 이제 안면박대하잖아. 게다가... 심지어...”정민아는 말을 이어갈수록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녀도 결국은 여자이기에 어떤 말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김예훈의 눈빛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어갔다.“너한테 또 무슨 짓을 했는데?”정민아는 심호흡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됐어, 이미 지나간 일인데 더는 언급하고 싶지 않아. 지금은 원자재를 어디서 공급받을지가 더 시급해.”“걱정하지 말고 오늘은 푹 쉬어. 어쩌면 내일 아침 일어났더니 모든 문제가 해결됐을지도 모르잖아?”김예훈이 위로를 건넸다.정민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비록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너무 피곤한 나머지 우유를 다 마시고 소파에서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김예훈은 정민아를 안아 들고 방으로 돌아가 침대 위에 눕힌 뒤 옥상으로 올라가서 오정범에게
오정범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에 든 반쯤 타들어 간 시가만 뚫어지라 쳐다보았다.그의 뜻을 눈치챈 부하들은 더욱 세게 때리기 시작했다.시가를 다 피우고 나서야 오정범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우광식, 너 같은 놈은 내 눈에 차지도 않는데 어떻게 오해가 있을 수 있겠어? 요즘 본인이 무슨 짓을 하고, 누구의 심기를 잘못 건드렸는지는 나보다 더 잘 알지 않아?”“그게 무슨 말입니까? 조용히 자기 사업만 하는 사람이 남을 건드릴 일이 뭐가 있겠어요?”우광식이 우는소리를 했다.“그래? 그럼 기억하게 해주지.”말은 마친 오정범이 앞으로 다가가 발로 우광식의 얼굴을 걷어찼다.“쿨럭!”벽에 세게 부딪친 우광식은 이가 몇 대나 부러졌다. 하지만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서 문득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들었다.누군가를 건드린 게 사실이라면 그건 정민아밖에 없었다.그런데 정민아가 오정범 같은 사람한테 부탁할 수 있으면서도 묵묵히 모든 수모를 감내한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건 상식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했다.“형님, 아마도 오해인 것 같은데, 혹시 저 말고 다른 사람은 아닌가요?”우광식은 더는 얻어맞기 싫은지 큰절을 하면서 말했다.오정범의 부하들이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두들겨 팬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맞으면 아팠다. 그동안 곱게 자란 사람이 어찌 이런 고통을 견딜 수 있겠는가!“뭐야? 우광식이 아니었어?”오정범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진짜 번지수를 잘못 짚었나?“우광식 맞아요!”“건축 원자재 사업하는 거 맞아?”“네!”“그럼 맞네. 끌고 가!”오정범이 무심하게 말했다.“형님, 저도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는데 함부로 끌고 가면 되겠습니까?”우광식은 오정범을 따라가면 큰일 날 게 뻔하다는 걸 알고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그래? 뒤에 누가 있는지 얘기해 봐. 설마 같은 편끼리 싸우고 있었나?”오정범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손씨 가문이요! 전 일류 가문인 손씨 가문의 지원을 받고 대신 일해주는 사람이에요. 형님, 오늘 한
새벽 2시, 김예훈은 프리미엄 가든을 떠나 오정범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지하실에서 끌려 나온 우광식은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김예훈이 보기에 심하게 다치진 않았다.아직 멀쩡하게 서 있는 우광식을 보자 김예훈은 싸늘한 시선으로 오정범을 바라보았다.오정범은 흠칫 놀라더니 우광식이 입을 떼기도 전에 다리를 들어 그의 배를 걷어찼다. 이내 저 멀리 나가떨어진 우광식은 바닥에 세게 부딪히면서 온몸이 경련을 일으켰다.“오해입니다, 형님! 진짜 오해라고요.”우광식이 중얼거렸다.김예훈 앞에서 감히 찍소리도 못하는 오정범은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아무 말도 안 했다.이때, 김예훈이 앞으로 다가가 오른발로 우광식의 얼굴을 밟으며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오늘 정민아한테 무슨 짓을 했어?”정민아의 이름을 듣는 순간 우광식은 넋을 잃고 말았다. 애써 몸을 돌리려고 했지만, 꼼짝 못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얼굴이 짓눌린 채 물었다.“넌 누구야?”“남편.”김예훈이 대답했다.정민아의 남편라니? 데릴사위 김예훈이란 말인가?우광식이 버럭 화를 냈다.“난 또 누구라고, 고작 쓸모없는 데릴사위 주제에 감히 나한테 손을 대? 내가 누군지 알아? 누가 내 뒤를 봐주고 있는지 알고 있냐고!”김예훈이 무심하게 말했다.“내 눈에 넌 그냥 쓰레기야. 마지막 기회를 줄게. 다시 물어볼 테니까 똑바로 대답해. 정민아한테 무슨 짓을 했어?”약자에 강하고 강자에는 약한 우광식이 어찌 데릴사위 앞에서 겁을 먹겠는가?설령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고 해도 그는 입만 살았다.“머리채를 잡고 나랑 하룻밤 보내자고 협박했을 뿐인데, 그게 뭐? 네 여자가 내 눈에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인 줄 알아야지, 나한테 고맙지도 않아?”옆에 있던 오정범의 눈가가 저도 모르게 파르르 떨렸다.이름도 모를 별 보잘것없는 놈이 어디서 건방지게 날뛴단 말이지? 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목숨을 부지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설마 역린을 건드리면 죽는다는 사실도 모르나?김예훈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이
랜드크루저가 마당을 뚫고 들어온 순간, 누군가 차 문을 발로 걷어차면서 스무 명이 넘는 젊은 남녀가 동시에 차에서 내렸다.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거만하고 차가운 표정이었다.그중 앞장선 사마은 키가 거의 1미터 70이 넘는 긴 생머리 미녀였다.그림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있는 그녀는 세상 모든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그녀는 왼손에 태블릿을 쥐고 김예훈을 힐끔 쳐다보고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김 회장님, 무단으로 부산을 떠나 진주에 와서 살인 방화를 저지르다뇨! 저 류서우는 정말 회장님께서 뻔뻔한 사람은 처음 보네요. 제 발로 찾아왔으니 절대 이만 갈 생각하지 마세요. 죽고 싶지 않으면 무기를 내려놓고 무릎부터 꿇으세요. 그러면 목숨만은 구제해 줄게요.”김예훈은 이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너희들 누구야?”“용문당 집법 부대인데요?”아주 깔끔한 대답이었다.“저희 당주님께서는 회장님이 부산 용문당의 안위를 무시하고 일본 손님을 도발했다는 신고를 받게 되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진주에까지 와서 사람을 죽일 수 있어요? 진주 기관은 당신 같은 사람을 용납할 수 없어요! 저희 용문당에서도 용납할 수 없고요!”“그래?”김예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용문당 4대 장로님이 지켜주는 집법 부대? 글쎄 왜 이렇게 거만하게 행동하는가 했네.”김예훈은 용인주의 체면을 봐서 부산 용문당 회장을 하기로 한 것이다.아니면 당주를 하라고 해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용문당 집법 부대 제자라도 해도 그의 앞에서 잘난 척할 자격이 없었다.“마침 잘 왔어. 내가 이따 나오키를 죽이면 바닥을 깨끗이 청소하고 현장 정리 잘해. 아무리 그래도 진주 호텔인데 사람이 죽으면 너무 불길하잖아.”김예훈을 차가운 말을 내뱉으면서 나오키를 죽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결국 뿌리를 뽑아버리는 것이 오늘 밤 그의 목적이었다.“김 회장님!”류서우는 결국 분노하고 말았다.“지금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세요? 저희 집법 부대는 당주님과 회장님을
퍽!바닥에 세게 부딪힌 나오키는 힘겹게 일어나려고 했지만, 체내에서 알 수 없는 힘이 휘몰아쳐 결국 피를 토해냈다.그는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이 순간 그는 대결로 모든 생명력과 잠재력을 소진했는지 아까보다도 더 늙고 초췌해 보였다. 나오키는 창백한 얼굴로 저항하지도 않고 비명을 지르지도 않은 채 서서히 무릎을 꿇었다. 오른손에는 여전히 검을 쥐고 있었다.아직 죽지 않았지만, 곧 죽음이 다가올 운명이었다.김예훈의 손에 목숨이 잡혀있었기에 그가 원한다면 뺨 한 대로 바로 목숨을 끝내버릴 수 있었다.“안 돼!”이 모습에 일본 고수들은 마음속 신이 무너진 것처럼 통곡했다.여전히 표정이 덤덤한 김예훈의 모습에 일본 남녀들은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손에 쥐고 있던 검을 하나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진세은 역시 의심할 여지 없이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정신마저 혼미해졌다.김예훈이 나오키를 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 거로 생각지도 못했다.몇 명의 아름다운 일본 여성들은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을 막고 있었다. 무슨 소리라도 냈다간 함께 김예훈의 손에 죽을까 봐 겁이 났다.“네가 졌어.”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예훈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내가 이미 말했잖아. 알아서 목숨을 내놓으면 체면 정도는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왜 내 말을 안 믿는 거야. 그런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퍽!김예훈은 단검을 나오키 앞에 떨어뜨리더니 피식 웃었다.“일본 사무라이들이 전장에 나가서 지면 알아서 목숨을 끊는다고 들었어. 그리고 항상 두 자루의 검을 가지고 다닌다지? 장검은 적을 죽이는 데 쓰이고, 단검은 자결하는 데 쓰인다고 들었어. 단검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내가 직접 빌려줄게. 네가 일본 최고의 사무라이 정신을 보여줄지 너무나도 궁금해.”이 말에 열몇 명의 일본 남녀는 서로를 바라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이들은 그제야 김예훈이 전혀 용서할 마음 없이 뿌리까지 뽑아버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런 제기랄! 끝까지 해봐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환각이 나타난 것처럼 나오키의 뒤에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귀신이 나타나 검을 들고 내리치는 것 같았다.이런 한방에 마음이 약하나 자는 바로 무너지기 일쑤였다.밖에서 그 기운을 느낀 진세은은 힘이 풀려 오줌을 지릴 뻔했다.쨍!이 순간,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나타나 나오키의 검을 막았다.쨍!김예훈은 멈추지 않고 뒤로 날아가 발이 바닥에 떨어질 때 뒤로 세 발짝 물러서 나오키의 검에 담긴 기운을 물리쳤다.“흥미롭군. 이제 막 무신 급에 접어든 실력이 아니야.”김예훈은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음양술로 이 실력에 도달할 수 있는 거 보면 일본 국방부의 그 몇몇 무신들도 너의 상대가 안 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죽고 싶어서 억지로 장병급에서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무신 급으로 거듭난 거야? 이 대결이 끝나면 육체가 무너지고, 사람 전체가 망가질 텐데?”김예훈은 여전히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었다.그는 이러한 기이한 수법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음양술, 주술 등을 이용하여 강제로 실력을 높이는 것은 자기 잠재력을 이미 소진하는 것과 같았다.특히 한 번에 큰 범위를 돌파하면 소진력은 더욱 무서웠다.나오키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대결이 끝나면 육체가 완전히 무너져서 병신이 될 수도 있었다.“김예훈, 너를 죽일 수만 있다면 죽어도 상관없어.”나오키는 차가운 표정으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다시 검을 들고 앞으로 나갔다.샤샥!나오키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또 한 번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완전히 방어를 포기한 상태라 오히려 빈틈을 드러내며 검을 휘둘렀다.샤샥!김예훈이 무심하게 휘두른 검은 정확히 나오키의 검에 부딪혔다.나오키는 부들부들 떨면서 어쩔 수 없이 뒤로 대여섯 발짝 물러났다.이순간 나오키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김예훈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렇게까지 큰 대가를 치렀는데 맞은편의 김예훈이 이 정도로 쉽게 공격을 피해버릴 줄 몰랐다.이것으로
나오키는 김예훈의 폭넓은 지식에 놀라긴 했지만 더 이상 쓸데없는 말 하지 않고 김예훈이 있는 곳으로 돌진했다.나머지 열몇 명의 일본 고수들은 소리를 지르며 추문성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의미심장한 표정을 하고 있던 추문성은 진세은이 방금 바닥에 떨어뜨린 총을 집어 들고 사정없이 방아쇠를 당겼다.퍽! 퍽! 퍽!여러 일본 고수가 피바다에 쓰러졌지만 다른 일본 고수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여전히 소리를 지르며 돌진해 왔다.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진세은은 도망치고 싶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전혀 움직일 수 없어 본능적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이 시각, 김예훈과 나오키는 정면으로 승부를 겨루고 있었다.샤샥!나오키가 은빛 광채를 띠는 검을 앞으로 내리치길래 김예훈은 검으로 그의 천둥 같은 일격을 막아냈다.쨍!두 검이 부딪히는 순간 고막이 터질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나오키는 숨을 가쁘게 쉬면서 연신 뒤로 물러났다.하지만 김예훈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오키를 바라보았다.“무신 급이네.”김예훈은 적잖이 놀란 모양이다.나오키가 종이 인형을 사용해서 실력이 업그레이드되어 무신 급이 될 줄 몰랐다.비록 오래 지속될 수도 없고, 그에 따른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무신 급은 엄연히 장병급과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예를 들어 오정범과 추문성이 젊은 층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긴 하지만 김예훈의 지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단기간 내에 돌파구를 찾아 무신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나오키가 이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일본의 음양술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존재한 이유를 알수 있었다.김예훈이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나오키는 이미 무표정으로 칼을 들고 다시 접근했다.일본 검도를 수련한 지 오랜 세월이 지난 나오키는 김예훈과 같은 상대를 상대할 때 그 어떠한 허세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매번 검을 내리칠 때마다 온갖 힘을 다해 휘둘렀다.쨍! 쨍! 쨍!무표정을 한 김예훈
어쨌든 나오키도 전설적인 인물로서 많은 풍파와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이다.하지만 자기가 직접 상속자로 지정한 아들이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자, 품위를 지키던 모습은 사라지고 극도의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세이이치로와 마찬가지로 신분을 밝혔는데도 이렇게 무례하게 행동하며 자기 아들을 죽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이순간 나오키는 분노로 들끓기 시작하면서 김예훈을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어했다.열몇 명의 일본 남녀들이 짐승처럼 포효하면서 검을 꺼내 언제든지 덮칠 준비가 되어있었다.오직 김예훈만은 무덤덤하게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추문성은 진작에 당도를 들고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진세은은 부들부들 떨면서 장례식장에서 빠져나갔고, 더 이상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었다.따라서 홍성파 정예 부하들도 얼굴이 창백해진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그 순간, 진세은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지만 마치 느끼지 못한 듯 계속해서 중얼거렸다.“이런 미친놈은 절대 건드리면 안 돼.”진세은은 차라리 진주 감옥에 있었으면 했다.평생 감옥에 갇히더라도 이 장면을 겪고 싶지 않았다.“이런 제기랄! 감히 내 앞에서 내 아들을 죽여? 죽여버릴 거야! 너의 온 가족도! 너의 조상님들도 모조리 무덤에서 파내서 뼈를 부숴버릴 거라고!”나오키는 검을 꺼내 앞으로 돌진했다.김예훈 역시 무심하게 검을 들고 담담하게 말했다.“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은 부모님의 잘못이야. 네 아들이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른 것도 네가 잘 가르치지 못해서 그런거라고. 일본인이 대한민국에 왔으면 고개를 숙이고 다녔어야 한다고 진작에 말해줬어야지. 네가 불만이 많다는 거 알아. 그렇다면 내가 공정하게 대결할 기회를 줄게. 하지만 너는 분명히 내 상대가 아니야. 그러니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좋을 거야. 나이를 잔뜩 처먹고 지는 것도 쪽팔리잖아.”말하는 사이, 김예훈은 아무렇지 않게 검을 들었다.쌍방의 원한은 이미 죽고 못 사는 지경에 이르렀다.마냥 좋은 사람이 되기 싫은 김예훈은
다른 타케이 가문 사람들은 김예훈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해도 나오키는 김예훈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신했다.예를 들어 부산 용문당 회장으로서 부산에 있을 때 야마자키파를 물리친 사실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때는 부산에 있는 야마자키파 중에 무신 급은 없었기에 김예훈이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나오키는 비참한 모습으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아들을 보면서 화를 내는 대신 차분한 모습이었다.김예훈은 그런 그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타케이 가문의 수장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고, 그저 약간의 호기심뿐이었다.‘장병급 주제에 대한민국에 와서 위세를 부려?’“이봐, 젊은이. 오늘 일은 여기까지인 걸로 해. 나오토 사건에 대해 이미 알고 있으니 일본대사관에 진주 경찰서에 잘 협조하라고 할게. 만약 네가 정말 억울한 거라면 내가 타케이 가문을 대표하여 한마디 하지. 절대 너에게 복수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국제 경찰에 수배 신청도 내리지 않을 것이고.”나오키는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나 나오키는 타케이 가문의 수장이자 야마구치파의 장로로서 절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이만 가봐. 떠나기 전에 내 아들한테 사과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대가를 치러야 할 거 아니야. 안 그래?”나오키는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그의 신분으로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반드시 체면을 세워줄 거로 생각한 모양이다.죽어버린 타케이 가문 정예들에 대해서는 김예훈이 좋은 조건만 제시하면 따라서 없던 일로 해줄 수 있었다.“사과? 일본인 주제에 나한테 사과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김예훈은 피식 웃더니 발로 바닥에 있던 검을 두 동강 냈다.사람들이 반응할 틈도 없이 그중 한 조각은 세이이치로의 목구멍에 꽂히고 말았다.세이이치로는 부들부들 떨면서 목을 부여잡은 채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러다 서서히 바닥에 널브러져 숨을 거두게 되었다.그는 진주에 오고부터 타케이 가문의 상속자이자 야마구치파의
진세은은 총을 들어 올리려다 다시 움츠러들었다.김예훈이 추문성 덕분에 위세를 부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이순간 절망감에 휩싸이고 말았다.세이이치로는 얼굴이 찌릿찌릿한 느낌에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당연히 자존심, 자부심과 사무라이 정신마저 짓밟히고 말았다.김예훈은 휴지 한 장을 꺼내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닦으면서 말했다.“넌 나한테 안 돼.”다시 정신을 차리려던 세이이치로는 이 말에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사실 김예훈을 만나기 전에 그의 실력을 과대평가한 건 사실이지만 곁에 장병급 실력자가 있다고 해도 자기 상대가 안 될 거로 생각했다.그런데 뺨 한 대에 무너질 줄이야.야마구치파든, 타케이 가문이든, 실력자든, 김예훈의 소박한 뺨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세이이치로는 절망감에 휩싸였다고 해도 마지막 자존심 때문에 고개를 숙이지 않은 채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말했다.“김예훈, 장난 아닌데? 그런데 나를 이겨서 뭐 하려고? 나는 진주에서 직접 모신 손님인데 나를 죽였다간 어떻게 보고하려고? 어떻게 사람들의 입을 막을 수 있겠어. 그래서 말인데 넌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나를 죽일 용기는 없을 거야. 지금 이 시대에서는 힘이 강하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수 있는 건 아니거든. 김예훈,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어.”“그래?”김예훈은 피식 웃더니 앞으로 다가갔다.“네가 날 이렇게 도발하는데 죽이지 않고서야 내 체면이 서겠어?”김예훈의 미소에서 살기를 느낀 진세은은 부들부들 떨면서 누군가에게 전화했다.“뭐하는 짓이야!”바로 이때, 뒷문 쪽에서 위엄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열몇 명의 일본 남녀가 검을 들고 문을 박차면서 들어왔다.조금 전의 일본인들과는 다르게 어마어마한 압박감을 풍기고 있었다.뒤이어 기모노를 입은 백발의 노인이 뒷짐을 쥐고 걸어왔다.추문성은 이 사람을 보자마자 숨이 가빠지더니 본능적으로 김예훈의 앞을 가로막았다.“아버지.”상대방을 확인한 세이이치로는 뻘쭘한 표정이었다.“나오키 어르신!”진세은은 기쁜 마음에 재빨
표정이 일그러진 진세은은 오른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더이상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김예훈의 실력에 놀랐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오른손만 봐도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동작이 너무 느려. 좀 더 빨리할 수 없어? 저녁에 밥 안 먹었어?”김예훈은 진세은을 무시한 채 추문성에게 시선을 돌리면서 계속해서 지시했다.샤샤샥!이때, 쌍방 분위기는 점점 더 치열해졌다.추문성이 실수로 왼손에 상처를 입자마자 열몇 명의 사무라이들이 그 기회를 틈타 공격해왔다.여러 자루의 검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어마어마한 살기로 추문성을 침식해 버릴 것만 같았다.이 모습에 두려움에 떨고 있던 진세은과 세이이치로는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루미코 역시 기대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검술.”김예훈의 말에 추문성은 눈앞이 밝아졌다.다음 순간, 추문성은 당도를 칼집에 넣었다가 다시 빼냈다.하늘을 가를 듯한 당도를 빼내 휘두르는 순간 살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사무라이들의 검이 전부 다 두 동강 나고 말았다.이 모든 것은 잠깐에 불과했으며. 추문성은 다시 당도를 칼집에 널었다.“푸!”아까까지만 해도 서 있던 열몇 명의 사무라이들의 목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다.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오십 명이 넘는 사무라이들과 열몇 명의 닌자들은 전부 다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왼쪽 손에 상처가 나 있는 추문성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한 명도 빠짐없이 다 죽어버렸다고? 정말 장병급 실력자인 거야?’진세은과 홍성파 정예 부하들은 어안이 벙벙해져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추문성이 무조건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사실 아무리 장병급 실력자라고 해도 이렇게나 많은 사람을 상대하기는 힘들었다.김예훈이 몇 마디 지적했을 뿐인데 추문성한테는 아무 일도 없고, 일본인들만 목숨을 잃었다.세이이치로는 그제야 반응했다.‘이 사람들 모두 실력이 내로라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모두 다 죽어버렸다고? 돌아가서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이런 제기랄! 다 죽여버릴 거
김예훈이 직접 나서기도 전에 토요타 프라도 뒷문이 언제 열렸는지는 몰라도 대기하고 있던 추문성이 차에서 내렸다.추문성은 바로 칼집에서 당도를 꺼내 앞을 향해 휘둘렀다.“푸!”칼날이 스쳐 지나가고, 김예훈과 가장 가까이 있던 세 명의 사무라이가 목을 감싼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졌다.추문성은 그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한 걸음 내딛어 또 당도를 휘둘렀다.길을 막고 있던 사무라이들은 순식간에 바닥에 널브러지고 말았다.“장병급?”세이이치로는 멈칫하고 말았다. 그는 어젯밤에 일어난 일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추문성이 김예훈을 지키는 장병급 실력자인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진세은은 결정적인 순간에 추문성이 김예훈을 위해 나설 줄 몰랐는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정말 김예훈과 함께 죽고 싶은 건가?’샤샥!바로 이때, 닌자 한 명이 그림자처럼 추문성의 뒤에 나타났다.하지만 검을 뽑기도 전에 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하는 것이다.“앞으로 세 걸음 나아가 뒤에서 찌르기!”옆으로 피할 준비를 하고 있던 추문성은 김예훈이 시키는 대로 앞으로 세 걸음 나아가 당도를 앞으로 찔렀다.“푸!”어두운 곳에 숨어있던 난자 한명이 가슴을 움켜쥔 채 쓰러지고 말았다.추문성을 향해 검을 뽑으려던 닌자의 이마에도 붉은 흔적이 나타나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졌다.“왼쪽으로 세 걸음 가서 내리찍기.”김예훈은 여전히 담담한 모습이었다.추문성은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을 하더니 김예훈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푸!”세 명의 사무라이들은 반응할 틈도 없이 이미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뒤로 세 걸음 가서 가로 베기.”“높이 뛰어 내리 찌르기.”“앞구르기로 베기.”김예훈은 담담한 표정으로 지시하고 있었다.이렇게 일본 사무라이와 닌자들은 추문성에게 가까이하지도 못한 채 당도에 베어 목숨을 잃고 말았다.일본인들은 추문성을 포위해서 해결할 계획이었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오히려 추문성은 김예훈의 지시를 받을 때마다 더욱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