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 별장 프로젝트 현장.공사 현장을 바라보는 정민아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이제 별장 건설 현장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고, 도적구자가 보낸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덕분에 소란 피우는 무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그런데 원자재에 문제가 생겨 어쩔 수 없이 프로젝트를 중단해야만 했다.비서를 호출한 정민아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재무팀에 연락해서 4천만 원 보내 달라고 하세요. 그리고 현금으로 인출해서 직원들한테 20만 원씩 보너스로 나눠주고 며칠 쉬면서 다시 나오라고 할 때까지 대기하라고 전해주세요.”비서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지만 여전히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대표님, 이제 곧 겨울이 올 텐데 경기도는 겨울만 되면 바람이 세게 불어 작업 속도에 영향 주기 마련이죠. 가을까지 마무리 짓지 못한다는 가정하에는 시공을 중단할 수밖에 없어요.”정민아는 미간을 문질렀다.“나도 알아요. 하지만 원자재에 문제가 생긴 이상 서두른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잖아요. 우선 직원이랑 시공업체가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도록 잘 좀 설명해줘요. 그동안 문제를 해결하도록 최대한 노력해볼게요.”“네!”비서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떴다.정민아가 프리미엄 가든으로 돌아왔을 때 임은숙은 이미 각종 주얼리와 별장 부동산 계약서를 챙겨서 떠난 뒤였다.물론 정민아도 그녀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소파에 앉아 있는 정민아의 얼굴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이때, 김예훈이 다가와 주식 양도 계약서를 건네며 농담을 건넸다.“우리 정 대표 축하해! 앞으로 이 회사의 지분 중 49%는 네 개인 소유야. 이제 회사 대표인 네 말 한마디면 모든 게 해결되지 않겠어? 더는 널 힘들게 할 사람은 없을 거야.”정민아는 계약서를 뒤적거리더니 힘없이 말했다.“날 힘들게 하는 사람이 없다고 누가 그래?”“설마 CY그룹이야?”김예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버젓이 있는데 감히 정민아의 회사를 건드리는 사람이 있다니?정민아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CY그룹은 우리 회사랑 이익공동체
오전 내내 공사 현장에 머물렀던 정민아는 그제야 공급업체와 만나기로 한 식당으로 찾아갔다.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룸에 아무도 없었다.정민아는 상대방이 일부러 기 싸움을 한다는 걸 알고 굳이 따지지 않았다. 이내 차 한잔을 주문하고는 얌전히 기다렸다.장장 4시간 동안 점심부터 저녁까지 기다리고 나서야 공급업체 사장들이 뒤늦게 나타났다. 게다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다 같이 룸에 들어섰는데 호형호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대표님, 정말 죄송합니다. 좀 늦었네요.”“요즘 일이 좀 바빠서요. 대표님도 알다시피 최근에 원자재 가격이 계속 치솟고 있잖아요. 저희랑 거래하겠다는 업체가 점점 더 많아져서 도무지 여유가 없네요.”“가지고 있는 재고는 정해져 있고, 여기저기서 달라고 난리인데 대체 어디랑 거래해야 한단 말입니까? 정말 골치 아프네요!”룸에 들어선 일행들은 하나같이 의기양양한 모습이다.뒤룩뒤룩 살찐 남자와 달리 너나 할 것 없이 늘씬한 미인들을 데리고 등장한 이들은 딱 봐도 예사롭지 않았고, 소위 성공한 사업가라고 할 수 있다.이때, 누군가의 휴대폰이 올렸다. 그는 전화를 받으면서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체면이고 뭐고 언급할 필요 없어! 돈만 주면 다 해결될 일이야. 매입가를 올려주지 않으면 거래는 꿈도 꾸지 말라고 상대방한테 똑똑히 전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업체도 납품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내 말대로 해.”말을 마치고 나서 그는 씩씩거리며 전화를 끊더니 정민아를 향해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정 대표, 죄송해요. 어디를 가도 사리 분별을 못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죠. 무슨 시장도 아니고 흥정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호되게 욕을 먹어야 정신 차리지, 아니면 자기가 제일 잘 나가는 줄 아는 걸요? 하하하!”다른 사람들도 껄껄 웃었지만, 유독 정민아만 표정이 어두웠다.공급업체 사장들은 그녀에게 본때를 보여주려는 심산이었다.가격을 올리는 건 물론 만약 흥정이라도 한다면 물건을 보내지 않겠다는 입장을 확실히 밝혔다.심지어 그들을
“하하하, 그렇다면 저희를 고소하겠다는 뜻인가요?”우광식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여기서 한 마디 조언해 드리자면 변호사를 고용하는 게 몇 푼이나 든다고 그래요? 다만 이런 민사분쟁은 어쨌거나 중재를 위주로 하기에 빨리 판결되는 경우가 거의 없죠. 따라서 소송을 한 7~8년 끄는 건 우리가 마음먹기 나름이라고요. 물론 저희는 괜찮다만 정 대표 회사에서 감당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우광식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그는 오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오늘 정민아를 만나러 온 이상 끝장을 보기로 했다.다른 사장들도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익공동체와 다름없는 사람들인 지라 돈을 벌 기회가 생긴 이상 당연히 똘똘 뭉치기 마련이다. 돈을 싫어하는 멍청한 인간이 어디 있겠냐는 말이다.정민아는 심호흡하며 말했다.“정 씨 일가에서 거래처를 찾기 시작할 때 분명 우 대표가 먼저 연락하지 않았나요? 게다가 공장이 파산 직전까지 갔다면서 파격적인 가격으로 납품하겠다고 역제안을 한 사람도 본인이잖아요. 저도 여태껏 꼬박꼬박 정산했고, 단 한 푼이라도 연체한 적이 없었죠. 신용은 둘째 치고 적어도 인정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때 제가 여러분과 계약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파산한 분도 적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청산유수가 따로 없는 정민아의 말에 몇몇 공급업체 사장은 죄책감을 느꼈다.당시 그들이 정민아를 먼저 찾아간 건 사실이었다.다만 문제는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이제 돈맛을 좀 봤으니 웬만해서는 만족이 안 되기 나름이다.우광식은 경멸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인정이요? 정 대표도 이 바닥에서 꽤 오래 지냈다고 들었는데, 사업하면서 제일 중요한 게 돈이라는 것도 몰라요? 돈만 있으면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죠. 인정은 그러고 나서 따지는 거예요. 지금 원자재 가격이 미친 듯이 치솟고 있는데 아직도 옛날 가격으로 공급해달라고 하면 말이 됩니까? 내가 듣기로 정 대표는 CY그룹의 지원을 받는다고 하던데, 무려 현재 경기도의 1위 그
이 말을 들은 정민아는 얼굴이 싸늘해졌다. 협상하러 온 자리에서 어찌 이런 수모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우리 기업은 매사에 진심으로 대하는데, 우 대표도 예의 좀 지켜주셨으면 좋겠는데...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 서로에게 유익한 거 아닌가? 남남으로 돌아서 봤자 좋은 점은 없을 텐데요? 그리고 이번 한 번만은 그냥 넘어갈게요. 나중에 또다시 날 모욕한다면 곧 경고장이 날아갈 겁니다!”“경고장? 모욕이요?”우광식이 피식 웃더니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정민아 씨, 본인이 진짜 양반집 규수인 줄 알아요? 오늘 어디 끝까지 한 번 가봅시다! 그쪽이랑 거래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도 살길이 없을 것 같아요? 똑똑히 들어요. 지금 우리랑 거래하고 싶은 업체가 얼마나 많은데, 오히려 원자재가 부족할까 봐 걱정이죠.”“도움을 받을 때는 언제고, 정녕 옛정 따위 안중에도 없는 건가?”정민아가 쌀쌀맞게 말했다.우광식은 피식 비웃으며 팔짱을 꼈다.“그런 얕은수는 집어치워요! 다들 사업하는 사람인데 당연히 이익만 챙기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백운 별장 프로젝트가 중단되는 날이 길어질수록 손해도 어마어마할 텐데, 더욱이 기한대로 완공하지 못한다면 CY그룹에는 어떻게 설명할 생각이죠? 이런 상황에서 고작 돈이 무슨 대수라고!”정민아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사실 가격 인상을 한 번만 하면 회사에서도 감당할 수 있다.다만 정민아는 비즈니스 전쟁에서 한발 양보하는 순간 상대방의 욕심도 끝이 없을 거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오늘에 50%를 올려달라고 했다면 내일은 60% 혹은 70%, 심지어 두 배로 뛸지도 모르는 일이다.상대방이 주도권을 잡은 이상 끊임없이 요구하는 건 당연했다.이때 정민아의 머뭇거리는 모습을 본 우광식은 갑자기 온몸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정민아는 여신급 미모의 소유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심지어 김세자도 그녀에게 프러포즈한 적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하지만 외부에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얼굴만 예쁘장할 뿐, 머리는 텅 빈지라
우광식의 머릿속에는 이미 그렇고 그런 장면으로 가득해서 다른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그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정민아, 오늘 밤 성남대호텔로 갈래? 걱정하지 마. 난 거기 회원이라서 스위트룸으로 잡을 테니까 실망하는 일은 없을 거야.”“꿈 깨! 이거 놔! 아니면 진짜 경찰에 신고할 거야.”정민아는 허우적대며 휴대폰을 꺼냈다.이를 본 우광식은 피식 비웃으며 오른손으로 정민아를 밀쳤고, 그녀는 이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하여간 여자들이란! 스스로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본데, 감히 내 앞에서 고상한 척해? 내가 장담컨대 나중에는 나랑 자고 싶다고 애원하게 될지도 몰라! 내 허락 없이 과연 성남시에서 원자재를 납품할 업체가 있을 것 같아?”정민아는 휴대폰을 꼭 쥐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우광식, 어디서 잘난 척이야? 돈만 있으면 뭐든 지 살 수 있다는 거 몰라? 그때 가서 후회나 하지 마.”정민아의 말을 들은 우광식은 웃음을 터뜨렸다.사실 그가 날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경기도 부동산 업계의 선두주자이자 일류 가문에 속하는 손씨 가문이 그의 뒤를 봐주기 때문이다.손씨 가문이라는 든든한 지원군 덕분에 우광식은 경기도 원자재 업계를 꽉 잡고 있으며, 뭐든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했다.이런 상황에서 몰래 정민아에게 원자재를 공급하는 업체는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물론 우광식은 지금 당장 공개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정민아를 한참 위아래로 훑어본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정민아, 어디 한 번 발버둥 쳐 보던가? 나중에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서 날 다시 찾아와도 늦지 않았거든.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돈을 주든지 아니면 다리를 벌리든지, 너한테 선택할 기회는 줬는걸?”우광식의 거침없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정민아는 분노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우광식, 후회하지 마. 내가 널 구원해줬다고 다시 못 짓밟을 것 같아?”“그런 소리 집어치워! 예전에는 널 건드리면 큰일 나겠다
집으로 돌아온 정민아는 소파에 몸을 던진 채 먹구름이 잔뜩 드리운 얼굴로 입을 꾹 닫고 있었다.수업이 끝나서 집에 들어선 순간 정소현은 눈앞의 광경에 깜짝 놀랐다. 언니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그녀는 표정만으로도 언니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걸 눈치챘다.정소현은 재빨리 김예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냐하면 형부라면 분명 언니의 억울함을 풀어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연락을 받은 지 30분도 지나지 않아 김예훈이 집에 나타났다. 그에게 정민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민아야,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줄래?”김예훈은 정소현에게 2층으로 올라가라고 눈짓하더니 이내 우유 한 잔을 들고 소파로 걸어갔다.정민아는 우유를 건네받고 울컥하는 마음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오늘에 당한 일만 떠올리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게다가 우광식 그 뻔뻔한 놈이 감히 머리채를 잡아당길 줄이야! 그녀는 두피가 아직도 지끈거리는 듯싶었다.“우광식 그 개자식은 정말 배은망덕한 놈이야! 백운 별장 프로젝트가 결정된 지 얼마 안 되어서 파산 직전까지 갔다고 애원하는 바람에 기껏 도와줬더니 돈 좀 벌었다고 이제 안면박대하잖아. 게다가... 심지어...”정민아는 말을 이어갈수록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녀도 결국은 여자이기에 어떤 말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김예훈의 눈빛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어갔다.“너한테 또 무슨 짓을 했는데?”정민아는 심호흡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됐어, 이미 지나간 일인데 더는 언급하고 싶지 않아. 지금은 원자재를 어디서 공급받을지가 더 시급해.”“걱정하지 말고 오늘은 푹 쉬어. 어쩌면 내일 아침 일어났더니 모든 문제가 해결됐을지도 모르잖아?”김예훈이 위로를 건넸다.정민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비록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너무 피곤한 나머지 우유를 다 마시고 소파에서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김예훈은 정민아를 안아 들고 방으로 돌아가 침대 위에 눕힌 뒤 옥상으로 올라가서 오정범에게
오정범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에 든 반쯤 타들어 간 시가만 뚫어지라 쳐다보았다.그의 뜻을 눈치챈 부하들은 더욱 세게 때리기 시작했다.시가를 다 피우고 나서야 오정범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우광식, 너 같은 놈은 내 눈에 차지도 않는데 어떻게 오해가 있을 수 있겠어? 요즘 본인이 무슨 짓을 하고, 누구의 심기를 잘못 건드렸는지는 나보다 더 잘 알지 않아?”“그게 무슨 말입니까? 조용히 자기 사업만 하는 사람이 남을 건드릴 일이 뭐가 있겠어요?”우광식이 우는소리를 했다.“그래? 그럼 기억하게 해주지.”말은 마친 오정범이 앞으로 다가가 발로 우광식의 얼굴을 걷어찼다.“쿨럭!”벽에 세게 부딪친 우광식은 이가 몇 대나 부러졌다. 하지만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서 문득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들었다.누군가를 건드린 게 사실이라면 그건 정민아밖에 없었다.그런데 정민아가 오정범 같은 사람한테 부탁할 수 있으면서도 묵묵히 모든 수모를 감내한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건 상식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했다.“형님, 아마도 오해인 것 같은데, 혹시 저 말고 다른 사람은 아닌가요?”우광식은 더는 얻어맞기 싫은지 큰절을 하면서 말했다.오정범의 부하들이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두들겨 팬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맞으면 아팠다. 그동안 곱게 자란 사람이 어찌 이런 고통을 견딜 수 있겠는가!“뭐야? 우광식이 아니었어?”오정범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진짜 번지수를 잘못 짚었나?“우광식 맞아요!”“건축 원자재 사업하는 거 맞아?”“네!”“그럼 맞네. 끌고 가!”오정범이 무심하게 말했다.“형님, 저도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는데 함부로 끌고 가면 되겠습니까?”우광식은 오정범을 따라가면 큰일 날 게 뻔하다는 걸 알고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그래? 뒤에 누가 있는지 얘기해 봐. 설마 같은 편끼리 싸우고 있었나?”오정범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손씨 가문이요! 전 일류 가문인 손씨 가문의 지원을 받고 대신 일해주는 사람이에요. 형님, 오늘 한
새벽 2시, 김예훈은 프리미엄 가든을 떠나 오정범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지하실에서 끌려 나온 우광식은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김예훈이 보기에 심하게 다치진 않았다.아직 멀쩡하게 서 있는 우광식을 보자 김예훈은 싸늘한 시선으로 오정범을 바라보았다.오정범은 흠칫 놀라더니 우광식이 입을 떼기도 전에 다리를 들어 그의 배를 걷어찼다. 이내 저 멀리 나가떨어진 우광식은 바닥에 세게 부딪히면서 온몸이 경련을 일으켰다.“오해입니다, 형님! 진짜 오해라고요.”우광식이 중얼거렸다.김예훈 앞에서 감히 찍소리도 못하는 오정범은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아무 말도 안 했다.이때, 김예훈이 앞으로 다가가 오른발로 우광식의 얼굴을 밟으며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오늘 정민아한테 무슨 짓을 했어?”정민아의 이름을 듣는 순간 우광식은 넋을 잃고 말았다. 애써 몸을 돌리려고 했지만, 꼼짝 못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얼굴이 짓눌린 채 물었다.“넌 누구야?”“남편.”김예훈이 대답했다.정민아의 남편라니? 데릴사위 김예훈이란 말인가?우광식이 버럭 화를 냈다.“난 또 누구라고, 고작 쓸모없는 데릴사위 주제에 감히 나한테 손을 대? 내가 누군지 알아? 누가 내 뒤를 봐주고 있는지 알고 있냐고!”김예훈이 무심하게 말했다.“내 눈에 넌 그냥 쓰레기야. 마지막 기회를 줄게. 다시 물어볼 테니까 똑바로 대답해. 정민아한테 무슨 짓을 했어?”약자에 강하고 강자에는 약한 우광식이 어찌 데릴사위 앞에서 겁을 먹겠는가?설령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고 해도 그는 입만 살았다.“머리채를 잡고 나랑 하룻밤 보내자고 협박했을 뿐인데, 그게 뭐? 네 여자가 내 눈에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인 줄 알아야지, 나한테 고맙지도 않아?”옆에 있던 오정범의 눈가가 저도 모르게 파르르 떨렸다.이름도 모를 별 보잘것없는 놈이 어디서 건방지게 날뛴단 말이지? 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목숨을 부지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설마 역린을 건드리면 죽는다는 사실도 모르나?김예훈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