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광식의 머릿속에는 이미 그렇고 그런 장면으로 가득해서 다른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그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정민아, 오늘 밤 성남대호텔로 갈래? 걱정하지 마. 난 거기 회원이라서 스위트룸으로 잡을 테니까 실망하는 일은 없을 거야.”“꿈 깨! 이거 놔! 아니면 진짜 경찰에 신고할 거야.”정민아는 허우적대며 휴대폰을 꺼냈다.이를 본 우광식은 피식 비웃으며 오른손으로 정민아를 밀쳤고, 그녀는 이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하여간 여자들이란! 스스로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본데, 감히 내 앞에서 고상한 척해? 내가 장담컨대 나중에는 나랑 자고 싶다고 애원하게 될지도 몰라! 내 허락 없이 과연 성남시에서 원자재를 납품할 업체가 있을 것 같아?”정민아는 휴대폰을 꼭 쥐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우광식, 어디서 잘난 척이야? 돈만 있으면 뭐든 지 살 수 있다는 거 몰라? 그때 가서 후회나 하지 마.”정민아의 말을 들은 우광식은 웃음을 터뜨렸다.사실 그가 날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경기도 부동산 업계의 선두주자이자 일류 가문에 속하는 손씨 가문이 그의 뒤를 봐주기 때문이다.손씨 가문이라는 든든한 지원군 덕분에 우광식은 경기도 원자재 업계를 꽉 잡고 있으며, 뭐든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했다.이런 상황에서 몰래 정민아에게 원자재를 공급하는 업체는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물론 우광식은 지금 당장 공개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정민아를 한참 위아래로 훑어본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정민아, 어디 한 번 발버둥 쳐 보던가? 나중에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서 날 다시 찾아와도 늦지 않았거든.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돈을 주든지 아니면 다리를 벌리든지, 너한테 선택할 기회는 줬는걸?”우광식의 거침없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정민아는 분노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우광식, 후회하지 마. 내가 널 구원해줬다고 다시 못 짓밟을 것 같아?”“그런 소리 집어치워! 예전에는 널 건드리면 큰일 나겠다
집으로 돌아온 정민아는 소파에 몸을 던진 채 먹구름이 잔뜩 드리운 얼굴로 입을 꾹 닫고 있었다.수업이 끝나서 집에 들어선 순간 정소현은 눈앞의 광경에 깜짝 놀랐다. 언니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그녀는 표정만으로도 언니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걸 눈치챘다.정소현은 재빨리 김예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냐하면 형부라면 분명 언니의 억울함을 풀어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연락을 받은 지 30분도 지나지 않아 김예훈이 집에 나타났다. 그에게 정민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민아야,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줄래?”김예훈은 정소현에게 2층으로 올라가라고 눈짓하더니 이내 우유 한 잔을 들고 소파로 걸어갔다.정민아는 우유를 건네받고 울컥하는 마음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오늘에 당한 일만 떠올리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게다가 우광식 그 뻔뻔한 놈이 감히 머리채를 잡아당길 줄이야! 그녀는 두피가 아직도 지끈거리는 듯싶었다.“우광식 그 개자식은 정말 배은망덕한 놈이야! 백운 별장 프로젝트가 결정된 지 얼마 안 되어서 파산 직전까지 갔다고 애원하는 바람에 기껏 도와줬더니 돈 좀 벌었다고 이제 안면박대하잖아. 게다가... 심지어...”정민아는 말을 이어갈수록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녀도 결국은 여자이기에 어떤 말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김예훈의 눈빛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어갔다.“너한테 또 무슨 짓을 했는데?”정민아는 심호흡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됐어, 이미 지나간 일인데 더는 언급하고 싶지 않아. 지금은 원자재를 어디서 공급받을지가 더 시급해.”“걱정하지 말고 오늘은 푹 쉬어. 어쩌면 내일 아침 일어났더니 모든 문제가 해결됐을지도 모르잖아?”김예훈이 위로를 건넸다.정민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비록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너무 피곤한 나머지 우유를 다 마시고 소파에서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김예훈은 정민아를 안아 들고 방으로 돌아가 침대 위에 눕힌 뒤 옥상으로 올라가서 오정범에게
오정범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에 든 반쯤 타들어 간 시가만 뚫어지라 쳐다보았다.그의 뜻을 눈치챈 부하들은 더욱 세게 때리기 시작했다.시가를 다 피우고 나서야 오정범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우광식, 너 같은 놈은 내 눈에 차지도 않는데 어떻게 오해가 있을 수 있겠어? 요즘 본인이 무슨 짓을 하고, 누구의 심기를 잘못 건드렸는지는 나보다 더 잘 알지 않아?”“그게 무슨 말입니까? 조용히 자기 사업만 하는 사람이 남을 건드릴 일이 뭐가 있겠어요?”우광식이 우는소리를 했다.“그래? 그럼 기억하게 해주지.”말은 마친 오정범이 앞으로 다가가 발로 우광식의 얼굴을 걷어찼다.“쿨럭!”벽에 세게 부딪친 우광식은 이가 몇 대나 부러졌다. 하지만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서 문득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들었다.누군가를 건드린 게 사실이라면 그건 정민아밖에 없었다.그런데 정민아가 오정범 같은 사람한테 부탁할 수 있으면서도 묵묵히 모든 수모를 감내한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건 상식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했다.“형님, 아마도 오해인 것 같은데, 혹시 저 말고 다른 사람은 아닌가요?”우광식은 더는 얻어맞기 싫은지 큰절을 하면서 말했다.오정범의 부하들이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두들겨 팬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맞으면 아팠다. 그동안 곱게 자란 사람이 어찌 이런 고통을 견딜 수 있겠는가!“뭐야? 우광식이 아니었어?”오정범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진짜 번지수를 잘못 짚었나?“우광식 맞아요!”“건축 원자재 사업하는 거 맞아?”“네!”“그럼 맞네. 끌고 가!”오정범이 무심하게 말했다.“형님, 저도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는데 함부로 끌고 가면 되겠습니까?”우광식은 오정범을 따라가면 큰일 날 게 뻔하다는 걸 알고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그래? 뒤에 누가 있는지 얘기해 봐. 설마 같은 편끼리 싸우고 있었나?”오정범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손씨 가문이요! 전 일류 가문인 손씨 가문의 지원을 받고 대신 일해주는 사람이에요. 형님, 오늘 한
새벽 2시, 김예훈은 프리미엄 가든을 떠나 오정범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지하실에서 끌려 나온 우광식은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김예훈이 보기에 심하게 다치진 않았다.아직 멀쩡하게 서 있는 우광식을 보자 김예훈은 싸늘한 시선으로 오정범을 바라보았다.오정범은 흠칫 놀라더니 우광식이 입을 떼기도 전에 다리를 들어 그의 배를 걷어찼다. 이내 저 멀리 나가떨어진 우광식은 바닥에 세게 부딪히면서 온몸이 경련을 일으켰다.“오해입니다, 형님! 진짜 오해라고요.”우광식이 중얼거렸다.김예훈 앞에서 감히 찍소리도 못하는 오정범은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아무 말도 안 했다.이때, 김예훈이 앞으로 다가가 오른발로 우광식의 얼굴을 밟으며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오늘 정민아한테 무슨 짓을 했어?”정민아의 이름을 듣는 순간 우광식은 넋을 잃고 말았다. 애써 몸을 돌리려고 했지만, 꼼짝 못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얼굴이 짓눌린 채 물었다.“넌 누구야?”“남편.”김예훈이 대답했다.정민아의 남편라니? 데릴사위 김예훈이란 말인가?우광식이 버럭 화를 냈다.“난 또 누구라고, 고작 쓸모없는 데릴사위 주제에 감히 나한테 손을 대? 내가 누군지 알아? 누가 내 뒤를 봐주고 있는지 알고 있냐고!”김예훈이 무심하게 말했다.“내 눈에 넌 그냥 쓰레기야. 마지막 기회를 줄게. 다시 물어볼 테니까 똑바로 대답해. 정민아한테 무슨 짓을 했어?”약자에 강하고 강자에는 약한 우광식이 어찌 데릴사위 앞에서 겁을 먹겠는가?설령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고 해도 그는 입만 살았다.“머리채를 잡고 나랑 하룻밤 보내자고 협박했을 뿐인데, 그게 뭐? 네 여자가 내 눈에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인 줄 알아야지, 나한테 고맙지도 않아?”옆에 있던 오정범의 눈가가 저도 모르게 파르르 떨렸다.이름도 모를 별 보잘것없는 놈이 어디서 건방지게 날뛴단 말이지? 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목숨을 부지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설마 역린을 건드리면 죽는다는 사실도 모르나?김예훈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이
김예훈은 서늘한 눈빛으로 우광식을 바라보다가 죽도록 패는 대신 뒤돌아서 자리를 떠났다.오정범은 어안이 벙벙했다. 김예훈은 절대로 남을 봐줄 사람이 아닌데, 그냥 간다는 게 말이 안 되었다.“세자, 이게...”김예훈이 무심하게 말했다.“보내줘요.”“왜요? 형수님을 건드리지 않았습니까?”오정범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저한테 맡겨주시면 뒤끝 없이 깔끔하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김예훈은 그를 훑어보며 무덤덤하게 말했다.“나랑 같이 일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생각이 없어서야, 원. 아직도 모르겠어요? 우광식은 단지 꼭두각시에 불과하죠. 그런 사람이 대체 무슨 능력으로 성남시 원자재 시장을 꽉 잡고 있겠어요? 배후에 누군가 있는 게 확실해요.”김예훈이 말했다.“고작 손씨 가문일 뿐이잖아요.”오정범이 말을 이었다.“그건 모르는 일이죠.”김예훈이 고개를 저었다.손씨, 나씨, 임씨, 윤씨 가문은 4대 일류 가문으로서 분명 모든 일에 함께 나설 것이다.그에게 한 방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김예훈의 추측이 맞는다면 4대 일류 가문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4대 가문의 회장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자기한테 도움이 일도 안되는 비열한 수작을 부릴 이유가 없었다.다만 김예훈은 우광식 배후에 있는 사람의 목표가 본인인지 아니면 정민아인지 궁금했다.따라서 확실히 알아내기 전까지 우광식의 목숨을 며칠 더 살려주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어차피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 번에 처리하면 그만이니까.“그럼 이제 뭐 하면 될까요?”오정범이 눈살을 찌푸렸다.“오해였다고 하고 풀어주면 돼요.”김예훈이 무심하게 말했다.30분 후, 우광식은 도시 외곽의 한 도로에 덩그러니 버려졌다.아까만 해도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던 그는 이제 한껏 경계하는 모습으로 길가의 으슥한 곳에 30 동안 숨어 있다가 그제야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성남시 교외, 지하 공간.이곳은 성남시와 인접한 경계에 있는 무법 지대였고, 드나드는
“잘했어, 그 쓰레기는 나타났어?”김만철이 싸늘하게 물었다.쓰레기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순간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지만,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설령 김예훈을 상대한다고 해도 김만철은 김예훈의 정체를 공개할 생각이 없었다.왜냐하면 어떤 신분을 공개하든지 간담이 서늘해지기 마련이니까.“그 보잘것없는 놈 말입니까? 데릴사위 김예훈이요? 도련님의 예상대로 나타나긴 했으나 저한테 손을 대지는 않았죠. 오정범이 저를 순순히 풀어준 것도 김예훈이 시켰을 가능성이 커요. 도련님이 말씀하신 대로 어떤 거물의 꼭두각시일 수도 있어요.”김만철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오른쪽 검지로 휠체어 팔걸이를 톡톡 두드렸다. 이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워낙 신중한 사람이라서 네 배후에 있는 세력이 손씨 가문이라는 걸 확신하지 않은 이상 섣불리 안 움직일 거야. 이렇게 된 김에 손씨 가문과 적으로 돌아서게 선물이나 주고 와.”“네!”부하들은 하나같이 정자세로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김만철은 역시나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 비록 반신불수가 되었지만, 여전히 전략에 능하고 승부에 강했다.곧이어 누군가 김만철의 휠체어를 밀고 떠났다.이때, 얼굴에 칼자국이 선명한 흰 슈트 차림의 남자가 다가와 우광식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광식아, 만철 도련님께서 우리 두 사람한테 부탁했으니 잘 좀 해보자.”눈앞의 남자를 본 우광식이 흠칫 떨었다.그는 비록 성남시 조직에 속한 인물은 아니지만, 무법 지대에서 꽤 이름을 날렸다. 다들 그를 범룡이라고 불렀다.“형님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무법 지대 밖 길가에 렉서스 승용차 한 대가 나타났다.차창 너머로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의 모습이 언뜻 보였는데, 마치 눈앞의 황홀경이라도 감상하는 듯 감탄 어린 시선을 보냈다.다만 척박한 불모의 땅에 절경이 가당키나 하겠냐는 말이다.이내 누군가 휠체어를 밀고 다가왔다.김만철은 어두운 표정으로 김만태를 바라보았다.한참이 지나서야 김만철은 다른 사람들한테 이만
다음날 정민아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른 아침부터 백운 별장 공사 현장으로 찾아갔다.다만 텅 빈 공사장에 인기척은커녕 직원조차 코빼기도 보이지 않자 정민아는 마음이 씁쓸하기만 했다.어제 김예훈이 다음날 눈을 뜨게 되면 모든 게 술술 풀릴 거라고 했을 때 그녀는 약간의 기대를 품고 있었으나 오늘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이에 정민아는 쓴웃음이 지었다.대체 무슨 헛된 망상에 빠졌단 말인지? 만약 김예훈이 정말 능력이 있다면 절대로 데릴사위에 만족하지 않았을 것이다.정민아는 가끔 이해가 안 갔다. 정 씨 일가에서 갖은 비난과 모욕을 당하면서도 어떻게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꿋꿋이 감수할 수 있는 거지?정민아가 연신 감탄하는 와중에 봉고차 한 대가 조용히 길가에 멈춰 섰고, 차 안에서 누군가 망원경으로 열심히 두리번거렸다.“형님, 저 여자가 정민아입니다.”“가서 데려와. 아직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이라 다행이야. 이따가 사람이 많아지면 골치 아프게 되니까.”범룡이 입에 담배를 문 채 사악한 표정으로 말했다.잠시 후 공사장 입구에 멈춰선 밴을 보자 정민아는 호기심에 뒤를 돌아보았다. 설마 시공업체인가?하지만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발견한 순간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하나같이 건들거리며 걸어오는 남자들은 언뜻 보기에도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고, 도적구자가 보낸 부하들도 아니었다.왜냐하면 도적구자의 부하들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볼 엄두도 내지 못하는데, 어찌 휘파람까지 불면서 걸어올 수 있겠냐는 말이다.사방을 둘러본 정민아는 속으로 괜히 혼자 왔다는 생각에 후회막급이었다.이때, 애써 침착함을 유지한 채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누구시죠? 여기가 공사장인 거 몰라요? 함부로 침입하면 경비원 부를 거예요.”“이쁜이, 오빠들이 대신 확인해봤는데 경비원은 없거든? 아직 출근 시간도 안 됐잖아. 하지만 걱정하지 마. 오빠들이 지켜줄 테니까.”선두에 선 양아치 같은 사람이 정민아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비열한 표정을 지었다.“당신들 누구야! 설마 우
“세자, 이건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오정범이 일어서며 말했다.김예훈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조직 일까지 개입하기에는 마땅치 않은지라 오정범한테 맡기는 게 가장 좋았다.게다가 예리한 통찰력을 지닌 덕분에 그는 이상한 낌새를 단번에 눈치챘다. 마치 누군가 그와 손씨 가문이 피 터지게 싸우는 걸 기대하는 것 같았다.오정범이 떠난 뒤 김예훈은 송준을 불렀다.현재 성남시에서 송준의 지위는 전화 한 통으로 우광식의 집 주소를 알아낼 정도였다.송준은 직접 운전해서 김예훈을 우광식의 집까지 모셔다드렸다.우광식은 마침 집에 있었고, 늘씬한 미녀 비서가 옆에서 한창 그의 상처를 치료해줬다.“대표님, 대체 어떤 사람이 이렇게 인정사정없이 때린 거예요? 저한테 얘기해주면 뺨이라도 한 대 갈겨버릴게요.”비서가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우광식이 호탕하게 웃으면서 오른손으로 비서를 덥석 끌어안았다.“이 바보야! 네가 뭘 알아? 와신상담이라고 들어봤어? 비록 지금은 얻어터진 것 같지만, 나중에 이 사건이 종료되고 나한테 떨어지는 콩고물은 상상을 뛰어넘을지 몰라.”“상상을 뛰어넘어요?”그녀는 우광식을 마사지해주면서 애교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대표님은 이미 성남시 원자재 시장을 주름잡고 있지 않나요? 대체 얼마나 좋은 일이길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라고 하는 거예요?”우광식은 평소에 나름 냉정한 편인 지라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분석했다.“손씨 가문이 망하는 순간 부동산 사업이 몽땅 내 손으로 넘어오게 될 텐데, 이게 상상을 뛰어넘는 좋은 일이 아니면 뭐야?”여비서는 나름 반항하는 척이라도 하려고 했으나 그의 말을 듣자 온몸에 힘이 탁 풀렸다.“대표님, 나중에 저 잊으시면 안 됩니다?”“당연하지. 그때 가서 별장 두 채 선물해줄 테니까 하나는 살고 하나는 구경만 해. 난 너만 행복하면 되거든.”우광식은 이 순간 진심으로 기뻤다. 오늘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모든 게 김만철의 계획대로 흘러간다면 신분 상승하는 날도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이때, 갑자기 초
툭.바닥에 떨어진 수류탄은 폭발하지 않고 계속 돌고 있었다.사람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부들부들 떨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어? 폭발하지 않는데?”“죄송해요. 불이 꺼졌네요?”김예훈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맹승현의 몸에서 다른 수류탄을 꺼내 또다시 안전핀을 뽑았다.“풀어줄게! 내가 사람을 풀어주겠다고!”맹승현이 반응할 틈도 없이 남윤지가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방금 죽을 고비를 넘긴 남윤지는 다른 사람들처럼 죽고싶지 않았다.탄탄대로인데 절대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았다.표정이 일그러진 맹승현은 한숨을 크게 들이마시다 자기 몸에서 나는 지린내를 맡았다.이순간 그는 땅에 머리를 박아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맹승현은 살면서 이렇게 두려워하는 순간이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곧이어 남윤지의 전화 한 통에 몇몇 보디가드들이 강서연을 데려왔다.그녀는 얼굴이 조금 창백했지만 큰 부상은 입지 않은 것 같았다.결국 서로 다 아는 사이이기에 남윤지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동하임과 추하린이 달려와서 강서연을 뒤로 보호하는 사이, 이상한 눈빛이 김예훈을 향했다.“오늘은 내가 졌어.”전세 역전에 지린내가 진동하는 맹승현은 표정이 극도로 어두워졌다.“나보고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무릎은 꿇을 수 있지만 네가 감당할 수 있겠어?”이 순간까지도 맹승현은 김예훈을 도발하고 있었다.강서연은 맹승현이 무릎을 꿇으려고 하자 순간 본능적으로 말했다.“김예훈 도련님, 이제 그만 해요...”다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모두 김예훈을 바라보며 자비를 베풀었으면 했다.김예훈 도련님이라는 호칭에 남윤지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김예훈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다음 순간 그녀는 온몸을 떨면서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너였어? 맹승현 도련님의 무릎을 꿇게 하는 순간 맹씨 가문, 남씨 가문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내가 사람을 놓아주라면 놓아주고, 무릎 꿇으라면 꿇고, 사과하라면 사과해야 하는 거야.”퍽!김예훈은 앞으로 다가가 맹승현을 발로
맹승현은 계속해서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김예훈을 마주한 순간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이 순간 그는 자존심을 내세우며 말했다.“이 자식이. 너 정말 죽는 게 두렵지 않아?”“무섭지. 죽는 게 왜 두렵지 않겠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난 아무것도 아니라 괜찮지만 너는 진주·밀양 4대 도련님 중의 한명이자 흑아프리카에서 천하무적이라 앞날이 창창하잖아. 우리 둘이 함께 죽으면 과연 누가 손해일까? 나는 이대로 잊히겠지만 맹승현 도련님이라는 사람이 체면을 위해 다른 사람과 함께 죽을 정도로 멍청한 사람이라고 기억되지 않을까?”아무렇지 않게 한 말에 임수민 등은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미친 자는 한 명으로도 족한데 두명이 함께 모이니 정말 무서웠다.이들은 두려워서 곧 오줌을 지릴 것만 같았다.맹승현은 김예훈한테서 어떤 두려움이라도 찾아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는 이미 생사에 익숙한 듯 무덤덤하기만 했다.맹승현은 그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기백을 가졌는지 궁금했다.‘설마 전쟁터에 나가본 적 있는 걸까? 아니면 시체 더미에서 살아남은 걸까? 일반인은 절대 이런 자신감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잖아.’이런 생각에 맹승현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네가 대단한 사람인 건 인정해. 내가 졌어. 사과할게. 아까는 내가 잘못했어. 모두에게 한마디 사과할게.”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맹승현 도련님, 사과는 이렇게 하는 거 아니지. 무릎 꿇고 사과하고 강서연 씨를 풀어줘. 셋 중에 하나도 빠짐없이 실행해야 할 거야. 아니면 다 함께 죽는 거야.”맹승현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냉랭하게 말했다.“이 자식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그래도 네가 뭐라도 되는 것 같아서 너의 체면을 봐서라도 추문성에게 사과할게. 그런데 강서연은 나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러는 거야? 윤지 씨와의 원한을 내가 무슨 수로 간섭해. 그리고 내가 정말 너를 두려워하는 것 같아? 까짓거 총 쏘라고 명령을 내리면 누가 먼저 죽을지 해보자고.”맹승현의 경호원들은 하나같이 총알을 장
이 순간 맹승현의 표정은 변화무쌍했다.눈앞의 이 장면은 그에게 진정한 치욕이었다.흑아프리카를 종횡무진하면서 항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였지만 오늘날 이렇게 짓밟힐 줄 몰랐다.게다가 김예훈은 그보다 더 잔인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류탄이 언제든지 터질 수 있었다.맹승현은 항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 죽음으로 모든 사람의 얼굴에 침 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오늘은 어디서 튀어나온 줄도 모르는 놈때문에 마음속 두려움을 깨닫게 되었다.과거에 거만하고 미친 짓을 했던 것은 죽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성립된 것이다.자신도 누군가의 손에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겁을 먹게 된다.맹승현의 얼굴은 극도로 어두워져 사람 전체가 우울해 보였다.“대단한데? 추씨 가문의 부하인 거야? 이름 대볼래? 내일이면 어떻게 너희 온 가족을 죽여버리고 조상님들의 무덤을 파내서 뼈를 부숴버릴지 두고봐.”맹승현은 분명 동반자살을 하지 못할 거면서 음흉한 표정으로 협박하고 있었다.쨕!김예훈은 차가운 표정으로 그의 뺨을 때렸다.“쓸데없는 말이 왜 그렇게 많아? 같이 죽든가. 아니면 무릎 꿇고 사과하든가.”김예훈은 이런 사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전쟁터에서 수년을 보내면서 머리털도 제대로 나지 않은 애송이를 무서워할 리가 없었다.얼굴이 퉁퉁 부어오른 맹승현은 평생 받아보지 못한 치욕감에 얼굴이 극도로 일그러졌다.“악!”아름다운 여성들은 본능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얼굴이 청백해지고 끔찍한 표정을 지었다.이들은 맹승현이 한 번의 충동으로 수류탄을 놓아버리면 한창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할까 봐 두려웠다.남윤지 역시 누군가가 이렇게 자신을 괴롭힐 줄 몰랐는지 표정이 극도로 안 좋아졌다.자기가 맹승현을 불러와 놓고 이런 결말을 맞이할 줄 몰랐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현장을 떠나고 싶었지만 용전 사람들이 죽어도 함께 죽겠다는 태도를 보이면서 모든 입구를 막고 있어 도망칠 수가 없었다.이 순간, 남윤지는
“둘째, 죽고싶지 않으면 지금 바로 무릎 꿇고 스스로 자기 뺨을 열대 때리세요. 사과하라는 대로 하면 이번 일은 없던 일로 해드릴게요. 어떤 선택을 하든 제가 끝까지 함께해 드릴게요. 어때요?”김예훈은 무심한 말투로 맹승현을 죽일 듯한 표정을 지었다.맹승현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순간 살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넌 도대체 누구야?”그는 김예훈을 발로 차서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자기 손을 단단히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김예훈이 손에 힘을 주기만 하면 안전장치를 뺀 수류탄이 바닥에 떨어져 모두가 함께 죽을 수도 있었다.그래서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제가 누군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도대체 어떤 선택을 할 거냐예요.”김예훈은 말을 끝내자마자 손끝에 힘을 주었다.“선택 못 하겠다면 제가 도와줄까요?”김예훈이 손에 힘을 주는 순간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맹승현은 손의 힘이 점점 약해져 수류탄이 당장 떨어질 것만 같았다.“이런 미친놈!”아까까지만 해도 거만하던 맹승현은 뒤로 물러나고 싶었지만 김예훈이 그의 손목을 잡고 있어서 도저히 물러날 수가 없었다.그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져 매우 보기 흉했다.소파 뒤에서 머리를 내민 남윤지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했고, 거만하던 얼굴에는 온통 두려움이 가득했다.이순간 남윤지는 이 사람이 누군지 제대로 쳐다볼 용기조차 없었다.마음속에는 두려움만 가득했다. 맹승현의 손이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수류탄이 바로 폭발할 것이다.그렇게 되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다 반신불수가 될수 있었다.“자! 그냥 같이 죽죠?”김예훈이 손에 힘을 더하는 순간 맹승현은 식은땀을 흘리며 어떻게든 수류탄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왜요? 못하겠어요? 아까까지만 해도 기세가 하늘을 찌르더니.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하신 거 아니었어요? 수류탄으로 협박하지 않았어요?”맹승현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죽음이 두렵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하하하하! 역시 병신이 맞았어! 쓰레기는 쓰레기일 뿐이라고! 너희들 꼬락서니를 봐!”추문성 일행의 처참한 모습을 본 맹승현은 사악하게 미소를 지었다.“이러고도 내 앞에서 잘난 척했던 거야? 그것도 모자라 정의를 되찾고 싶어? 아직 수류탄을 던지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겁을 먹다니! 정말 던져버리면 무서워서 울겠네? 정말 안 되겠네. 추씨 가문? 동씨 가문? 제발 웃기지 마! 1인자 자리에 앉아있는 건 아무도 너희와 경쟁하지 않기 때문이야. 정말 자기가 대단한 줄 알고 나 같은 사람이랑 비교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거야? 그럴 자격이 있기나 해?”맹승현은 추문성의 얼굴을 때리며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임수민 등 아름다운 여성들은 모두 입을 가리고 웃음을 터뜨렸다.오늘 이 일이 밖에 알려지면 동씨 가문이든 추씨 가문이든 진주·밀양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 뻔했다.추문성은 맹승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오늘 이 자리에 무고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면 맹승현과 함께 죽는 것을 택했을 것이다.“됐어. 오늘은 충분히 기회를 많이 줬어. 앞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생각도 하지 마.”맹승현은 한껏 조롱과 비웃음이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길에서 나를 만나든 윤지 씨를 만나든 멀리 썩 꺼져. 앞으로 우리가 참석하는 자리에는 동씨 가문도, 추씨 가문도 나타나지 말아야 할 거야. 아니면 만날 때마다 본때를 보여줄 거니까. 그리고 내 말대로 얼른 돈이랑 고서희 씨를 돌려내.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이기 전에. 알겠어?”맹승현은 테이블 위에서 샴페인 병을 집어 들고 추문성의 머리를 내리치더니 냉랭하게 말했다.“진주·밀양에서는 아무도 내 앞에서 뭐라 하지 못해. 너희들은 그럴 자격도 없어.”추문성은 머리를 부여잡고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얼굴은 일그러진 것이 맹승현이 수류탄만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직접 나섰을 것이다.추문성이 이토록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자 맹승현은 더욱더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나는 어때!”바로 이때, 인파를 뚫고 한 사람이 거만한 모습으로 맹승현 앞에
한계를 넘어선 맹승현의 행동에 추하린은 미간을 찌푸린 채 표정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고 말았다.그녀는 진주·밀양 용전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김예훈의 이익도 대표하고 있는데 이렇게 쉽게 맞을 수가 있겠는가?다음 수난 추하린은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며 차갑게 말했다.“맹승현, 내가 괜히 진주·밀양 용전 전주가 된 줄 알아? 정말 너를 죽이지 못할 것 같아?”추하린의 명령과 함께 주위에 열몇 명의 부하들이 동시에 나타나 총알을 장전하고 맹승현을 겨냥했다.하지만 맹승현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는지 그는 무표정으로 추하린을 바라보며 냉랭하게 말했다.“옥루 회관을 무단침입한 것도 모자라 윤지 씨 앞에서 위세를 부리는데 너를 건드리지 않으면 누굴 건드리겠어? 내가 말해주는데 추하린! 진주·밀양 용전 전주면 다른 사람에게 겁줄 수는 있겠지만 나한테는 안 먹혀. 네까짓 게 추문성을 위해 나서려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거야.”추하린이 냉랭하게 말했다.“나랑 제대로 한번 붙어볼 생각인가 봐? 사람도 많고 총도 많은데 굳이 나를 건드리겠다고?”맹승현은 피식 웃기만 했다.“총으로 나를 쏴보든가! 나를 죽이지 못하면 추씨 가문의 남자는 대대로 노예가 되고 여자는 창녀가 될 것이야.”맹승현이 외투를 풀어 헤치는 순간 옷 속에서 또 몇 개의 검은 수류탄이 보였다.수류탄이 터지는 순간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은 죽을 운명이었다.너무나도 위험한 상황에 사람들은 소름이 끼치고 말았다.수십 명의 용전 부하들과 경호원들은 본능적으로 후퇴했고, 어떤 사람들은 은신처를 찾느라고 정신이 없었다.맹승현은 그야말로 진정한 미친놈이었다.남윤지조차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심지어 왜 이런 미치광이를 전쟁터에서 데려왔는지 조금 후회하기도 했다.맹승현의 스타일을 봤을 때 정말로 동반자살 하는 행동을 저지를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추문성은 피식 웃으며 앞으로 다가가려고 했지만 추하린이 꽉 잡았다.“왜. 아까는 그렇게 잘난 척하더니. 나를 죽이겠다면서? 왜 이제는 하나둘 겁먹은 거야
“체면을 지켜주지 않으면 뭐 어쩔 건데? 뺨을 때리면 뭐 어쩔 거냐고.”남윤지는 천천히 소파로 돌아가 다리를 꼬고 앉았다.그러면서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추문성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참기만 하더니 드디어 폭발할 준비가 된 거야? 이제는 나를 때리려고? 자, 한 대 쳐봐. 어떻게 나를 건드릴 건지 지켜볼 거니까.”“너!”추문성이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뒤에서 갑자기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잠시 후, 수십 명의 제복을 입고 전신 무장한 사람들이 나타나 총을 빼 들고 전체 마당을 포위했다.이때 제복을 입고있는 추하린이 긴 다리를 뻗으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남윤지 씨, 저희 추씨 가문을 건드리기 전에 제 의견을 물어본 적 있어요?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알고 있냐고요.”말하는 사이 추하린은 추문성 앞으로 다가가 그의 퉁퉁 부어오른 얼굴과 처참한 모습을 보고 표정이 일그러지고 말았다.“어머, 이게 누구야. 진주·밀양 용전 전주 추하린이잖아. 왜? 전주를 며칠 해봤다고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어?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감히 옥루 회관에 와서 소란을 피워? 그것도 모자라 지금 나에게 도전장을 내민 거야?”남윤지가 가소로운 표정으로 말했다.“김현민 도련님이 어르신 생신 때문에 너를 해결할 시간이 없었을 뿐인데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 할 판에 여기서 허세를 부려? 이런 제기랄! 이따 네 뺨까지 때려줄까?”맹승현도 냉랭하게 말했다.“추하린, 창피하게 그깟 총을 꺼내지도 마. 하나같이 피를 본 적도 없는 초보들이 방아쇠를 당길 줄이나 알아? 그것도 모르면서 어디서 잘난 척하는 거야.”‘맹승현?’이때 추하린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추문성이 여기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났다고 해서 바로 달려오느라 김예훈을 전혀 눈치채지도 못했다.추문성이 남윤지만 건드렸다면 그걸로 끝났겠지만 문제는 맹승현도 있다는 것이다.남윤지와 맹승현은 진주·밀양 4대 명문가 중 두 가문을 대표하고 있어 잘못했다간 용전도 이 상황을 수습하지 못할 수도 있었
“그리고 강씨 가문 지분이 추씨 가문의 것도 아닌데 대신 결정할 자격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면 당신 주인이 이미 두려워서 우리를 건드리지 못하는 건가? 그래서 이런 굴욕적인 조건을 스스로 제안한 건가?”남윤지는 차가운 눈빛으로 추문성을 응시하며 다음 행동을 위해 그의 표정으로 뭔가를 읽어내려 했다.하지만 추문성이 무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남윤지 씨, 쓸데없는 말은 필요 없고 한 번만 더 물을게요. 저희랑 이 거래를 할 의향이 있는 거예요?”남윤지는 천천히 다가와서 추문성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이렇게 좋은 조건이라면 물론 거래할 의향이 있지만 아쉽게도 네가 강서연 씨를 납치한 게 아니거든. 설령 그렇다 해도 당신 주인이 이렇게 큰 힘을 들여 데려가겠다고 하는데 차라리 계속 붙잡아 두고 강씨 가문이 당신들이랑 연을 끊게 하는 것이 더 재밌지 않을까? 당신 주인이라는 사람은 그깟 똑똑한 척하는 머리와 기술로 진주·밀양에서 뭐든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보지? 정말 순진하긴. 나타나기조차 두려워서 너 같은 쓰레기를 보낸 것만 해도 병신인 것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을까?”남윤지의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 오늘 이 모든 것은 김예훈을 위해 준비된 것인데 김예훈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이른바 거래를 할수 없었다.게다가 추문성은 그녀와 거래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추문성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남윤지 씨는 저의 체면을 지켜줄 생각이 없나 봐요?”“당연히 체면은 지켜줘야지.”남윤지는 샴페인을 들고 다가왔다.“당신 체면을 봐서 고서희를 납치한 일은 따지지 않을게. 돌아가서 사람을 풀어주고 옥루 회관에 2천억 원을 배상하면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을게. 내 조건을 들어줄 수 있겠어? 안 된다면 너까지 잡아둘 수밖에. 네가 먼저 옥루 회관 사람들을 건드렸으니 붙잡아도 너희 누나도 뭐라고 하지 못할 거야.”멀지 않은 곳에서부터 걸어오던 임수민이 웃으면서 말했다.“추문성 도련님, 동의하는 것이 좋을 거예요. 아까 동영상이랑 사진을 많이 찍었
가까워진 남윤지의 얼굴을 보던 추문성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오른손을 부들부들 떨었다.추문성은 그녀를 때리지 않으려고 꾹 참고 있었다.쨕!추문성이 공격할 생각이 없어 보이자 남윤지가 다시 한번 추문성의 다른 한쪽 뺨을 때렸다.“쓸모없는 자식. 여자한테 맞고도 반격할 용기도 없는 멍청한 자식. 이러고도 체면을 지켜달라고? 체면이라고 있는 거야?”이순간 남윤지는 추문성을 극도로 경멸했다.‘진주·밀양 도련님 중의 한 명으로서 나한테 손대지도 못하는데 잘나면 얼마나 잘났을까? 그냥 죽기를 기다릴 수밖에.’얼굴을 감싸고 있는 추문성의 입가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얼마나 처참한지 이보다도 더 처참할 수가 없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 모두 박장대소를 지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술잔을 부딪치며 좋은 구경을 하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이 장면을 기록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다.부잣집 도련님이 쩔쩔매는 모습이 온라인에 퍼진다면 절대 큰 화제가 될 수 있었다.동하임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남윤지 씨,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동하임은 화가 났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가 없었다.남윤지와 맹승현의 막무가내를 봤을 때 가끔은 능력과 인맥이 그렇게 유용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실력이야말로 진정으로 믿을 구석이었다.지금 이 순간 남윤지의 실력이 추문성보다 강하기 때문에 추문성이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심지어 말도 하지 못했다.“농담도 심하시네요. 남윤지 씨는 진주·밀양 4대 명문가 중의 하나인 남씨 가문의 따님이자 안동 김씨 가문의 안방마님이 될 사람인데 제가 아무리 겁 없는 사람이라도 남윤지 씨를 어떻게 모욕하겠어요. 하지만 그래도 제 체면을 지켜주셨으면 바람이네요.”추문성의 눈빛은 차가웠고, 이 순간 그는 분노도 두려움도 없었으며 오히려 얼굴에 남은 손자국을 문질렀다.“저는 오늘 화해를 구하러 온 것이지 남윤지 씨가 두려워서 이러는 거 아니에요. 가끔 어떤 일은 크게 만들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문제가 커져봤자 모두에게 좋지 않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