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정동철이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민아야, 비록 우리가 전에 너와 정씨 가문이 연을 끊는다고 했지만... 우리가 무정했더라도 이 할아버지는 네가 마지막으로 정씨 가문을 한 번 도와주길 바라! 이번 사건이 지나면 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지 않을게.”정동철이 이제 과거를 들먹이며 은혜를 갚으라고 나올 것 같았다. 정민아는 원래 그들을 무시하고 싶었으나 정동철이 나이를 가득 먹고 불쌍한 얼굴을 보이자 마음이 약해졌다.“저한테 생각이 있어요. 들을지 말지는 알아서 결정하세요.”“그래, 한번 말해보렴.”정동철의 두 눈이 밝아졌다.정민아가 숨을 들이마시며 천천히 말했다.“당신들 예물은 다 팔아버리고 현금은 나눠가지고 집도 사고 차도 샀죠? 그럼 지금까지 예물로 바꾼 물건을 바꿔버리고 다 팔아버리고 모을 수 있는 만큼 모으세요. 나머지는 나중에 생각해보죠.”그녀의 말에 정가을이 제일 먼저 버럭했다.“그게 무슨 뜻이죠? 우리가 노숙이라도 해야 마음이 편해요?”“너 집이랑 차는 어떻게 생긴 건데? 내가 너보다 더 잘 알아. 어차피 네 것도 아니잖아. 돌려줄 건 돌려줘야지.그게 인지상정 아니야?”정민아가 담담하게 답했다.“상관없어요. 어차피 난 차랑 집은 안 팔 거예요! 죽으려면 다 같이 죽어요! ”정가을의 표정이 매우 흉했다. 그녀의 말에 정씨 가문 사람들이 불만을 토해냈다.“가을아, 넌 생각 좀 하고 말하면 안 돼? 예물에서 네가 절반이나 차지했으니까 토해낼 건 토해내! 죽을 때 죽더라도 토해낼 건 토해내고 죽어! 너더러 집 팔고 차 팔라고 한건 당연한거잖아!”정가을이 가장 많이 차지했으니 그녀가 모두 토해낼 수 있길 바랐다.“그리고 정지용, 너도 숨지 마! 너도 예물로 얼마 전에 별장을 샀잖아! 얼른 다시 팔아버려!”“그리고 너도!”순식간에 정씨 가족들은 서로 손가락질하며 난장판이 되었다.김예훈은 바로 별장을 나섰다. 정민아가 정 씨 일가와 연을 끊었으니 그는 정 씨 일가가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었다. 대신 치러야 할 대가는 무조건
정민아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정 씨 일가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이에 김예훈이 계속해서 말했다.“평소 돈을 물 쓰듯이 쓰니까 다 돌려줄 수는 없지. 그들이 가진 것을 전부 팔아버린다고 해도 예물을 다 모을 순 없을 거야.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예를 들면 정씨 회사 지분 49%를 얻는 거야. 반드시 너에게 전부 전이해야돼.”“그건...”정민아는 순간 망설여졌다. 정 씨 일가가 오랜 시간을 들여 세운 회사의 지분을 뺏는다면 정 씨 일가는 진짜로 무너지고 말 것이다.망설이는 그녀를 보며 김예훈이 말했다.“네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정 씨 일가는 나머지 지분으로 굶지 않으며 살 수는 있어. 어차피 모든 자산을 팔면 지분을 가지고 있어도 뭐해? 송준이 원하면 저들 회사의 지분이 마이너스가 될 수 있어.그때가 되면 지분은 자산이 아니라 빚이 되어버려. 그러니까 우리가 도와주는 거야. 이번 기회에 네가 되고 싶었던 상류 가문이 되어보는 거야! 49%의 지분에 CY그룹 내에서의 권력을 잘 이용하면 승승장구할 수 있어! 그 때가 되면 나도 매일 배부르게 먹고 잘 잘수 있겠지.”그의 말에 정민아는 김예훈을 째려봤으나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내일 모든 걸 돌려주지 않는다면 한번 얘기해볼게. 들을지 말지는 저들 선택이지.”김예훈은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록 그가 이 일을 벌이긴 했으나 정민아는 심성이 줄곧 똑같았다. 정민아는 너무나도 착한 사람이었다.그러니 앞으로 정 씨 일가가 어떻게 될지는 그들 자신의 손에 달렸다.이때, 정가을이 갑자기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얼굴이 왠지 더 부어오른 듯했다.도망치듯 달려 나온 그녀는 김예훈을 보자마자 욕설을 퍼부었다.“형부는 아무 쓸모도 없는 쓰레기예요! 형부가 조금만 잘났어도 다른 사람이 민아 언니한테 함부로 프러포즈하지 않았을 텐데! 이게 다 형부 때문이에요!”김예훈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어이가 없어 웃음
하지만 김예훈은 정가을의 악담에 아무렇지 않게 미소로 답했다.정가을은 자기의 미모를 굳게 믿고 있었지만 정민아와는 비할 수도 없었다.재벌에게 있어 정가을 같은 여자는 기껏해야 노리개에 불과했다.그러니 재벌가에 시집가려는 건 그녀의 멍청한 꿈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한편, 진주의 빅토리아 항구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태산을 스치고 지나갔다.귀족들만이 입주할 수 있는 이 산은 오랜 시간 동안 평화로웠다.태산 1호 별장은 태산 제일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서 진주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진주 이씨 가문이 여기에 살고 있는데, 보통 사람들은4대 상류 가문 중 하나인 이 가문의 실력을 상상도 못 한다.4대 가문은 진주 자산의 60% 이상을 차지했고 거의 모든 진주 사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4대 가문 중, 이씨 가문이 차지한 자산은 진주 자산의 20%에 다다랐다.그 외에도 외국에 대량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씨 가문은 진주 제일의 가문이라 불러도 무방했다. 평소 경비가 삼엄하던 태산 1호 별장에 오늘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매우 건강해 보이는 백 세 노인이 1호 별장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이씨 가문의 주인인 이준범이다. 진주 이씨는 그의 두 손으로 세운 가문이다.그러나 이때 그의 앞에 누군가 나타났고 이에 이준범은 손이 떨렸다.“이 빌어먹을 놈! 여기가 어디라고 다시 돌아와?”“아버지, 몇십 년 만에 봐도 절 이렇게 알아봐 주다니, 진짜 영광입니다.”이일매는 용의 머리가 조각된 지팡이를 짚고 있었는데 카리스마가 대단했다.“여봐라! 당장 이놈을 쫓아내!”이준범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주위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이씨 가문을 지키는 경비원들이 끄떡하지 않고 경외스러운 눈길로 이일매를 보고 있었다.이일매는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돌아왔으니까 이제부터 이씨 가문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저한테 넘겨주신다면 여생을 편히 보낼 수 있도록 해줄게요.”“퉤! 넌 그럴 자격이 없어! 손자가 돌아오면 널 가장 먼
“회장님!”우렁찬 외침과 함께 진주 이씨 가문의 권력이 바뀌고 있었다. 수십년 동안 이날을 계획해왔던 이일매는 다시 돌아와 무서운 기세로 순조롭게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태산 1호 별장 발코니에서 김병욱이 자기의 손금을 살펴보고 있었다. 왠지 예전과 달라진 듯했다. 이일매가 그의 뒤로 다가가자 그는 얼른 손을 숨겼다.이일매는 먼 곳에 있는 빅토리아 항구를 보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야망이 있는 건 나쁜 게 아니야. 하지만 아무런 생각과 계획이 없는 야망은 결국 널 잡아먹고 말 거야.”김병욱의 눈빛에 의아함이 스쳐지나갔다. 그가 바로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제가 가진 모든 것은 회장님께서 준 것인데 그런 회장님 앞에서 어찌 야망이라는 말을 꺼낼 수 있겠습니까?”이일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가 보기에 이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거야?”“매처럼 사납고 강하게 이씨 가문을 손에 넣었으니까 성공했다고 할 수 있죠.”“그래, 진주 이씨 가문도 이렇게 손쉽게 장악했는데 성남에선 왜 그렇게 된 거지?”이일매가 쓴웃음을 지었다. 김병욱은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으나 등뒤로 식은땀을 흘렸다.이일매가 말을 이어갔다.“만태한테 알려, 내 인내심에 한계가 있다고. 내가 진주에서 일을 마치기 전에 성남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4걸 중 한 명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테니까.”“네.”김병욱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제가 직접 다녀오겠습니다.”“마음대로 해. 이씨 가문의 돈은 마음대로 써도 돼. 하지만 내 인내심에 한계가 있다는 것만 기억해.”말을 마친 이일매는 자리를 떴다. 이일매가 사라지고 나서야 김병욱이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러곤 그는 빅토리아 항구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나와.”이윽고 어디선가 선녀 같은 실루엣이 나타났다.김청미는 발코니 난간에 기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오빠, 진짜 성남으로 돌아갈 거야? 그 사람이 김씨 가문의 모든 자산을 합병했다고 들었어. 지금 돌아가면 다 드러나는 거 아니야?이에 김병
다음날, 성남의 정씨 어르신과 정지용, 정가을 세 사람이 함께 프리미엄 가든에 나타났다. 그의 손엔 부동산 증명과 대량의 금, 보석과 현금이 있었다. 모두 정민아한테 줘야 할 것들이었다.그 모습을 보고 있는 정가을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정지용은 매우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할아버지, 모든 자산을 다 팔았는데도 한참 모자랍니다.”며칠 사이 집과 차를 팔아버렸으니 당연히 시장 가격에 한참 못 미치게 팔았을 것이다. 정씨 일가는 그 돈을 다 합쳐보았으나 여전히 그들이 써버린 부분을 메꾸지 못했다. 정동철은 어제보다 십년은 더 늙어 보였다. 그는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그래도 어쩔 수 없어. 우리는 반드시 와야 해. 지금은 그저 예전에 가족이었던 걸 생각해서라도 정민아가 우리를 봐주길 바라야지. 아니면 우리 모두 거리에 나앉게 될 거야.”이때, 정가을이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근데 우리가 왜 송준 말을 들어야 해요? 지금 우리가 황금과 옥석을 가지고 성남을 떠나도 막을 사람은 없잖아요? 다른 가족은 몰라도 우리 세 사람만 살아있으면 정 씨 일가는 무너지지 않을 거예요. 이 돈이라면 다른 곳에서 충분히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예요!”그녀의 말에 정지용의 마음도 흔들렸다.“할아버지, 가을이 말이 맞을 지도 몰라요. 복수는 천천히 해도 돼요. 우리가 나중에 다시 강해진 후 복수하면 되잖아요.”정동철은 두 사람을 보며 가슴만 답답했다. 진짜 송준의 손에서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어제부터 감시자가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단 말인가?재물을 들고 성공적으로 도망쳐도 정동철은 자신이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저 두 사람이 다른 정씨 가문의 사람도 배신했는데 도망길에서 자신을 죽여버리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가 아닌가? 그렇게 되면 돈을 둘이서만 나눠도 된다.정동철은 비록 실력이 강하지 않아도 그동안 보고 들은 게 많으니 통찰력만큼은 뛰어났다.그 순간, 그가 앞으로 다가가 정가을과 정지용의 뺨을 힘껏 때렸다.“정지용, 정가을
프리미엄 가든 최고층.정군과 임은숙은 일찍이 거실에서 마치 예물이 그들의 것인냥 애를 태우며 기다리고 있었다.곧이어 벨이 울리는 순간, 임은숙은 체면따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마치 행동이 느리면 예물이 사라지기라도 하듯 말이다.“정군아, 은숙아...”정동철이 뒷짐을 쥔 채 온화하게 웃으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정 씨 일가를 오랫동안 장악하고 있었으니 정군과 임은숙은 무의식적으로 그를 무서워하고 있었다.그런 그의 자태를 보고 있으니 두 사람은 저도모르게 멈칫했다.“정군아, 민아는 어디 있어?”정동철은 자신이 두 사람의 기세를 꺾었다는 생각에 담담하게 물었다.임은숙은 바로 정지용과 정가을한테 눈길을 돌렸다. 그녀는 두 사람 손에 쥐어진 물건을 보고 두 눈이 반짝였다.“민아 출근했어요. 이건 저희한테 맡기세요.”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임은숙은 뺐듯이 물건을 가로챘다. 정지용과 정가을은 아쉬운 듯 쉽게 손을 놓지 못했다.“뭐 하는 거야? 얼른 놔! 송 부대표님 말이 기억 안 나? 이 물건은 모두 김세자가 우리 민아에게 준 거라고!”임은숙이 눈을 부릅뜨고 두 사람을 째려봤다.정지용과 정가을은 얼굴이 잔뜩 흐려진채 기어코 물건에서 손을 떼려하지 않았다.“일단 들어와서 앉아요. 액수가 맞는지 세어봐야죠. 송 부대표님이 예물 리스트를 뽑아줬거든요. 액수가 안 맞으면 저희도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임은숙은 한시가 급한듯 물건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려고 잽싸게 움직이기 시작했다.이에 정씨 어르신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지금 가지고 온 물건이 애당초 받은 것의 절반도 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그들은 송준이 예물 리스트를 가져올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이때, 금방 잠에서 깬 듯한 김예훈이 방에서 나왔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세 사람과 인사를 나눴다.정씨 어르신은 그를 보고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이 모든 게 다 그의 잘못이라 생각했다. 김예훈이 없었다면 정씨 가문은 현재 전처럼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정동
김예훈의 말을 들은 정지용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고 정동철도 표정이 굳어졌다. 그들은 정민아가 평소 말은 날카롭게 해도 심성은 매우 착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녀한테 빌려고 했다. 하지만 오늘 정민아가 모든 일을 김예훈에게 맡겼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다.“은숙아, 언제부터 너의 집 일을 데릴사위가 도맡게 된 거야?”정동철은 마른기침하고 나서 입을 열었다. 그는 지금 임은숙과 김예훈 사이를 이간질해 얼렁뚱땅 넘어가려 했다.그러나 임은숙은 김예훈을 신경 쓰지도 않고 보석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현금을 확인하던 그녀는 표정이 확 바뀌더니 말했다.“어르신, 액수가 맞지 않는데요? 부대표님이 준 예물 리스트와 비교하면 별장 외에 돈과 보석, 옥석만해도 절반이 모자라요! 안 돼요, 이건 인정할 수 없어요. 남은 부분도 반드시 채워넣어야 해요!”임은숙이 팔짱을 끼고 기고만장해서 물건들이 자기 것인 것마냥 말했다. 누가 감히 가져간다면 큰 코 다칠 것이라 경고하는 듯했다.정동철은 당황해서 안색이 점점 더 흐려졌다. 임은숙이 돈을 좋아하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로 미쳐있는 줄은 몰랐다.예전 같았으면 가문의 주인 신분으로 그녀를 억누를 수 있었지만 관계를 끊은 이상 이젠 자신의 신분으로 임은숙을 누를 수 없었다. 그는 후회가 막심했다. 애당초 왜 정지용과 정가을의 말을 듣고 전군 일가를 가문에서 내쫓았단 말인가? 이젠 그 결과를 오롯이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한참 후, 정씨 어르신이 한숨을 푹 내쉬고 억지로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은숙아, 우리가 자산을 팔아서 돈을 모으고 싶지 않은 게 아니야. 사실 우린 이미 정씨 가문이 성남에서 가지고 있는 팔 수 있는 모든 자산을 다 팔았어. 그래도 부족했다! 우리가 과거 한 가족이었던 정을 봐서라도 한 번만 봐줘.”말을 마친 그는 정지용과 정가을한테 눈짓했다.이윽고 정지용이 앞으로 나서며 임은숙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우리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지만 그래도 피는 물보다 진하
김예훈이 무덤덤하게 말했다.“어머님, 일단 제 말 끝까지 들어보세요.”김예훈의 말을 들은 임은숙은 그제야 흥분을 가라앉혔다.“알았어, 제대로 설명하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본때를 보여주겠어.”반면 정동철과 정지용, 정가을은 서로를 바라보았는데 눈빛이 하나같이 불안하게 흔들렸다.왜냐하면 다들 김예훈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김예훈은 말을 이어갔다.“전 여러분들이 일부 자산을 매각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그게 무슨 헛소리죠?”정지용이 제일 먼저 펄쩍 뛰어올랐다. 그가 집 한 채를 몰래 빼돌리고 팔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몰래 주얼리를 숨겨둔 정가을도 안색이 돌변했다.평생 자기밖에 모르고 살던 사람들이 어찌 가족을 위해 돈이 되는 물건을 선뜻 내놓겠는가! 일부분이라도 줬다는 자체가 대단할 정도였다.유독 정동철만 여전히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김예훈이 절대로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내 말 끝까지 듣지? 물론 자기 물건을 기꺼이 팔아서 돈을 모은다고 해도 예물을 반납하기에는 턱도 없겠죠? 그래서 여러분들을 위해 좋은 방법을 고안해 냈어요.”“무슨 방법인데?”정동철이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주식이 있잖아요. 제가 민아를 대신해서 정 씨 일가가 보유한 주식의 49%를 1000억 주고 인수하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펑펑 쓴 예물도 반납하고, 이 돈도 가져갈 수 있죠.”말을 마친 김예훈은 테이블 위에 현금 뭉치를 올려놓았다. 얼핏 보기에도 몇십억은 되어 보이는 현금이 바닥에 후드득 떨어졌다.김예훈의 말을 듣는 순간 정동철은 얼굴이 일그러졌다.“데릴사위 주제에 이렇게 잔인할 줄은 몰랐네! 우리를 벼랑 끝까지 몰아낼 작정인 건가?”김예훈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오히려 임은숙이 반짝 빛나는 눈빛으로 말했다.“사위, 아주 좋은 생각이야! 어르신, 잘 들었죠? 얼른 주식을 넘겨주고 빚을 갚은 뒤 이 돈 챙기고 나가요!”“진짜 너무하네! 그 주식은 우리 가문의 마지막 재산인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환각이 나타난 것처럼 나오키의 뒤에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귀신이 나타나 검을 들고 내리치는 것 같았다.이런 한방에 마음이 약하나 자는 바로 무너지기 일쑤였다.밖에서 그 기운을 느낀 진세은은 힘이 풀려 오줌을 지릴 뻔했다.쨍!이 순간,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나타나 나오키의 검을 막았다.쨍!김예훈은 멈추지 않고 뒤로 날아가 발이 바닥에 떨어질 때 뒤로 세 발짝 물러서 나오키의 검에 담긴 기운을 물리쳤다.“흥미롭군. 이제 막 무신 급에 접어든 실력이 아니야.”김예훈은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음양술로 이 실력에 도달할 수 있는 거 보면 일본 국방부의 그 몇몇 무신들도 너의 상대가 안 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죽고 싶어서 억지로 장병급에서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무신 급으로 거듭난 거야? 이 대결이 끝나면 육체가 무너지고, 사람 전체가 망가질 텐데?”김예훈은 여전히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었다.그는 이러한 기이한 수법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음양술, 주술 등을 이용하여 강제로 실력을 높이는 것은 자기 잠재력을 이미 소진하는 것과 같았다.특히 한 번에 큰 범위를 돌파하면 소진력은 더욱 무서웠다.나오키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대결이 끝나면 육체가 완전히 무너져서 병신이 될 수도 있었다.“김예훈, 너를 죽일 수만 있다면 죽어도 상관없어.”나오키는 차가운 표정으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다시 검을 들고 앞으로 나갔다.샤샥!나오키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또 한 번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완전히 방어를 포기한 상태라 오히려 빈틈을 드러내며 검을 휘둘렀다.샤샥!김예훈이 무심하게 휘두른 검은 정확히 나오키의 검에 부딪혔다.나오키는 부들부들 떨면서 어쩔 수 없이 뒤로 대여섯 발짝 물러났다.이순간 나오키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김예훈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렇게까지 큰 대가를 치렀는데 맞은편의 김예훈이 이 정도로 쉽게 공격을 피해버릴 줄 몰랐다.이것으로
나오키는 김예훈의 폭넓은 지식에 놀라긴 했지만 더 이상 쓸데없는 말 하지 않고 김예훈이 있는 곳으로 돌진했다.나머지 열몇 명의 일본 고수들은 소리를 지르며 추문성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의미심장한 표정을 하고 있던 추문성은 진세은이 방금 바닥에 떨어뜨린 총을 집어 들고 사정없이 방아쇠를 당겼다.퍽! 퍽! 퍽!여러 일본 고수가 피바다에 쓰러졌지만 다른 일본 고수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여전히 소리를 지르며 돌진해 왔다.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진세은은 도망치고 싶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전혀 움직일 수 없어 본능적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이 시각, 김예훈과 나오키는 정면으로 승부를 겨루고 있었다.샤샥!나오키가 은빛 광채를 띠는 검을 앞으로 내리치길래 김예훈은 검으로 그의 천둥 같은 일격을 막아냈다.쨍!두 검이 부딪히는 순간 고막이 터질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나오키는 숨을 가쁘게 쉬면서 연신 뒤로 물러났다.하지만 김예훈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오키를 바라보았다.“무신 급이네.”김예훈은 적잖이 놀란 모양이다.나오키가 종이 인형을 사용해서 실력이 업그레이드되어 무신 급이 될 줄 몰랐다.비록 오래 지속될 수도 없고, 그에 따른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무신 급은 엄연히 장병급과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예를 들어 오정범과 추문성이 젊은 층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긴 하지만 김예훈의 지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단기간 내에 돌파구를 찾아 무신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나오키가 이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일본의 음양술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존재한 이유를 알수 있었다.김예훈이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나오키는 이미 무표정으로 칼을 들고 다시 접근했다.일본 검도를 수련한 지 오랜 세월이 지난 나오키는 김예훈과 같은 상대를 상대할 때 그 어떠한 허세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매번 검을 내리칠 때마다 온갖 힘을 다해 휘둘렀다.쨍! 쨍! 쨍!무표정을 한 김예훈
어쨌든 나오키도 전설적인 인물로서 많은 풍파와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이다.하지만 자기가 직접 상속자로 지정한 아들이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자, 품위를 지키던 모습은 사라지고 극도의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세이이치로와 마찬가지로 신분을 밝혔는데도 이렇게 무례하게 행동하며 자기 아들을 죽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이순간 나오키는 분노로 들끓기 시작하면서 김예훈을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어했다.열몇 명의 일본 남녀들이 짐승처럼 포효하면서 검을 꺼내 언제든지 덮칠 준비가 되어있었다.오직 김예훈만은 무덤덤하게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추문성은 진작에 당도를 들고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진세은은 부들부들 떨면서 장례식장에서 빠져나갔고, 더 이상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었다.따라서 홍성파 정예 부하들도 얼굴이 창백해진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그 순간, 진세은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지만 마치 느끼지 못한 듯 계속해서 중얼거렸다.“이런 미친놈은 절대 건드리면 안 돼.”진세은은 차라리 진주 감옥에 있었으면 했다.평생 감옥에 갇히더라도 이 장면을 겪고 싶지 않았다.“이런 제기랄! 감히 내 앞에서 내 아들을 죽여? 죽여버릴 거야! 너의 온 가족도! 너의 조상님들도 모조리 무덤에서 파내서 뼈를 부숴버릴 거라고!”나오키는 검을 꺼내 앞으로 돌진했다.김예훈 역시 무심하게 검을 들고 담담하게 말했다.“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은 부모님의 잘못이야. 네 아들이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른 것도 네가 잘 가르치지 못해서 그런거라고. 일본인이 대한민국에 왔으면 고개를 숙이고 다녔어야 한다고 진작에 말해줬어야지. 네가 불만이 많다는 거 알아. 그렇다면 내가 공정하게 대결할 기회를 줄게. 하지만 너는 분명히 내 상대가 아니야. 그러니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좋을 거야. 나이를 잔뜩 처먹고 지는 것도 쪽팔리잖아.”말하는 사이, 김예훈은 아무렇지 않게 검을 들었다.쌍방의 원한은 이미 죽고 못 사는 지경에 이르렀다.마냥 좋은 사람이 되기 싫은 김예훈은
다른 타케이 가문 사람들은 김예훈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해도 나오키는 김예훈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신했다.예를 들어 부산 용문당 회장으로서 부산에 있을 때 야마자키파를 물리친 사실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때는 부산에 있는 야마자키파 중에 무신 급은 없었기에 김예훈이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나오키는 비참한 모습으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아들을 보면서 화를 내는 대신 차분한 모습이었다.김예훈은 그런 그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타케이 가문의 수장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고, 그저 약간의 호기심뿐이었다.‘장병급 주제에 대한민국에 와서 위세를 부려?’“이봐, 젊은이. 오늘 일은 여기까지인 걸로 해. 나오토 사건에 대해 이미 알고 있으니 일본대사관에 진주 경찰서에 잘 협조하라고 할게. 만약 네가 정말 억울한 거라면 내가 타케이 가문을 대표하여 한마디 하지. 절대 너에게 복수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국제 경찰에 수배 신청도 내리지 않을 것이고.”나오키는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나 나오키는 타케이 가문의 수장이자 야마구치파의 장로로서 절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이만 가봐. 떠나기 전에 내 아들한테 사과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대가를 치러야 할 거 아니야. 안 그래?”나오키는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그의 신분으로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반드시 체면을 세워줄 거로 생각한 모양이다.죽어버린 타케이 가문 정예들에 대해서는 김예훈이 좋은 조건만 제시하면 따라서 없던 일로 해줄 수 있었다.“사과? 일본인 주제에 나한테 사과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김예훈은 피식 웃더니 발로 바닥에 있던 검을 두 동강 냈다.사람들이 반응할 틈도 없이 그중 한 조각은 세이이치로의 목구멍에 꽂히고 말았다.세이이치로는 부들부들 떨면서 목을 부여잡은 채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러다 서서히 바닥에 널브러져 숨을 거두게 되었다.그는 진주에 오고부터 타케이 가문의 상속자이자 야마구치파의
진세은은 총을 들어 올리려다 다시 움츠러들었다.김예훈이 추문성 덕분에 위세를 부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이순간 절망감에 휩싸이고 말았다.세이이치로는 얼굴이 찌릿찌릿한 느낌에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당연히 자존심, 자부심과 사무라이 정신마저 짓밟히고 말았다.김예훈은 휴지 한 장을 꺼내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닦으면서 말했다.“넌 나한테 안 돼.”다시 정신을 차리려던 세이이치로는 이 말에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사실 김예훈을 만나기 전에 그의 실력을 과대평가한 건 사실이지만 곁에 장병급 실력자가 있다고 해도 자기 상대가 안 될 거로 생각했다.그런데 뺨 한 대에 무너질 줄이야.야마구치파든, 타케이 가문이든, 실력자든, 김예훈의 소박한 뺨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세이이치로는 절망감에 휩싸였다고 해도 마지막 자존심 때문에 고개를 숙이지 않은 채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말했다.“김예훈, 장난 아닌데? 그런데 나를 이겨서 뭐 하려고? 나는 진주에서 직접 모신 손님인데 나를 죽였다간 어떻게 보고하려고? 어떻게 사람들의 입을 막을 수 있겠어. 그래서 말인데 넌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나를 죽일 용기는 없을 거야. 지금 이 시대에서는 힘이 강하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수 있는 건 아니거든. 김예훈,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어.”“그래?”김예훈은 피식 웃더니 앞으로 다가갔다.“네가 날 이렇게 도발하는데 죽이지 않고서야 내 체면이 서겠어?”김예훈의 미소에서 살기를 느낀 진세은은 부들부들 떨면서 누군가에게 전화했다.“뭐하는 짓이야!”바로 이때, 뒷문 쪽에서 위엄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열몇 명의 일본 남녀가 검을 들고 문을 박차면서 들어왔다.조금 전의 일본인들과는 다르게 어마어마한 압박감을 풍기고 있었다.뒤이어 기모노를 입은 백발의 노인이 뒷짐을 쥐고 걸어왔다.추문성은 이 사람을 보자마자 숨이 가빠지더니 본능적으로 김예훈의 앞을 가로막았다.“아버지.”상대방을 확인한 세이이치로는 뻘쭘한 표정이었다.“나오키 어르신!”진세은은 기쁜 마음에 재빨
표정이 일그러진 진세은은 오른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더이상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김예훈의 실력에 놀랐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오른손만 봐도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동작이 너무 느려. 좀 더 빨리할 수 없어? 저녁에 밥 안 먹었어?”김예훈은 진세은을 무시한 채 추문성에게 시선을 돌리면서 계속해서 지시했다.샤샤샥!이때, 쌍방 분위기는 점점 더 치열해졌다.추문성이 실수로 왼손에 상처를 입자마자 열몇 명의 사무라이들이 그 기회를 틈타 공격해왔다.여러 자루의 검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어마어마한 살기로 추문성을 침식해 버릴 것만 같았다.이 모습에 두려움에 떨고 있던 진세은과 세이이치로는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루미코 역시 기대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검술.”김예훈의 말에 추문성은 눈앞이 밝아졌다.다음 순간, 추문성은 당도를 칼집에 넣었다가 다시 빼냈다.하늘을 가를 듯한 당도를 빼내 휘두르는 순간 살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사무라이들의 검이 전부 다 두 동강 나고 말았다.이 모든 것은 잠깐에 불과했으며. 추문성은 다시 당도를 칼집에 널었다.“푸!”아까까지만 해도 서 있던 열몇 명의 사무라이들의 목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다.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오십 명이 넘는 사무라이들과 열몇 명의 닌자들은 전부 다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왼쪽 손에 상처가 나 있는 추문성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한 명도 빠짐없이 다 죽어버렸다고? 정말 장병급 실력자인 거야?’진세은과 홍성파 정예 부하들은 어안이 벙벙해져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추문성이 무조건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사실 아무리 장병급 실력자라고 해도 이렇게나 많은 사람을 상대하기는 힘들었다.김예훈이 몇 마디 지적했을 뿐인데 추문성한테는 아무 일도 없고, 일본인들만 목숨을 잃었다.세이이치로는 그제야 반응했다.‘이 사람들 모두 실력이 내로라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모두 다 죽어버렸다고? 돌아가서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이런 제기랄! 다 죽여버릴 거
김예훈이 직접 나서기도 전에 토요타 프라도 뒷문이 언제 열렸는지는 몰라도 대기하고 있던 추문성이 차에서 내렸다.추문성은 바로 칼집에서 당도를 꺼내 앞을 향해 휘둘렀다.“푸!”칼날이 스쳐 지나가고, 김예훈과 가장 가까이 있던 세 명의 사무라이가 목을 감싼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졌다.추문성은 그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한 걸음 내딛어 또 당도를 휘둘렀다.길을 막고 있던 사무라이들은 순식간에 바닥에 널브러지고 말았다.“장병급?”세이이치로는 멈칫하고 말았다. 그는 어젯밤에 일어난 일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추문성이 김예훈을 지키는 장병급 실력자인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진세은은 결정적인 순간에 추문성이 김예훈을 위해 나설 줄 몰랐는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정말 김예훈과 함께 죽고 싶은 건가?’샤샥!바로 이때, 닌자 한 명이 그림자처럼 추문성의 뒤에 나타났다.하지만 검을 뽑기도 전에 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하는 것이다.“앞으로 세 걸음 나아가 뒤에서 찌르기!”옆으로 피할 준비를 하고 있던 추문성은 김예훈이 시키는 대로 앞으로 세 걸음 나아가 당도를 앞으로 찔렀다.“푸!”어두운 곳에 숨어있던 난자 한명이 가슴을 움켜쥔 채 쓰러지고 말았다.추문성을 향해 검을 뽑으려던 닌자의 이마에도 붉은 흔적이 나타나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졌다.“왼쪽으로 세 걸음 가서 내리찍기.”김예훈은 여전히 담담한 모습이었다.추문성은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을 하더니 김예훈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푸!”세 명의 사무라이들은 반응할 틈도 없이 이미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뒤로 세 걸음 가서 가로 베기.”“높이 뛰어 내리 찌르기.”“앞구르기로 베기.”김예훈은 담담한 표정으로 지시하고 있었다.이렇게 일본 사무라이와 닌자들은 추문성에게 가까이하지도 못한 채 당도에 베어 목숨을 잃고 말았다.일본인들은 추문성을 포위해서 해결할 계획이었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오히려 추문성은 김예훈의 지시를 받을 때마다 더욱더 힘
‘개한테 도리를 말해봤자 알아듣지도 못한다고?’‘그냥 죽여버리겠다고?’김예훈의 담담한 어조에 일본인들은 하나둘씩 분노가 폭발했다.‘이렇게나 많은 사람한테 둘러싸이고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오만방자한 것도 모자라 어떻게도 뻔뻔한 말을 할 수 있는 걸까?’‘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김예훈은 떳떳한 모습에 일본인들은 자신이 포위당했다고 착각할 정도로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심지어 어떤 사무라이는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하고 싶어 자기 뺨을 때리기도 했다.샤워가운을 입고 있던 일본 미녀들은 바보를 쳐다보듯이 가소롭게 김예훈을 쳐다보고 있었다.타케이 가문을 따라 여러 곳을 다니면서 오만방자한 사람은 많이 만나보았는데 이렇게 바보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세이이치로는 화가 나서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남동생이 죽고, 여동생도 제정신이 아닌 상황에서도 진실을 무시한 채 김예훈을 죽이려고 하는데 김예훈이 이미 모든 것을 간파한 듯한 표정을 하고 있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이것은 단순히 세이이치로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타케이 가문, 그리고 전체 야마구치파를 무시하는 것과도 같았다.‘도대체 어디서 나온 자신감과 용기길래 이런 말을 하는거지?’세이이치로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김예훈을 응시하면서 말했다.“법적 처분을 받게 하려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그냥 죽여버리는 것이 깔끔하겠어.”김예훈은 왼손 검지로 검 날을 만지면서 말했다.“확실히 그럴 필요는 없지. 나오토가 이곳에서 죽든 말든 진세은이 가져다준 이익이 더 관심이 있는 거겠지. 너희가 도리를 따지지 않고 끝까지 가겠다고 하는데 나 역시 도리를 따질 필요가 없잖아? 너희를 모조리 죽여버리면 내 말에 일리가 있는 거 아니겠어? 주먹이 크면 힘이 센 법이거든.”김예훈이 분위기를 압도해 버리자 진세은은 갑자기 속이 불편한 느낌이었다.상류 인사 못지않은 태도를 보면 진주 4대 도련님이라고 해도 그런 말을 하라 자격이 없어 보였다.전체 진주 젊은 층에서는 김현민만이 그런 말
세이이치로의 마라에 루미코는 멈칫하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이제야 알겠네. 김예훈이 나한테 영상을 보여주고 여기까지 데려온 것은 억울함을 씻기 위해서였네. 사실 세은 씨가 이미 범인이 김예훈이라고 우리한테 말해줬는데 말이야.”외곽에 있는 땅을 주겠다고 하니 루미코는 바로 야마구치파가 진주에 진출할 좋은 기회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이런 상황에서는 사건의 진실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세이이치로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도 이 뜻이 아닌가 싶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루미코를 바라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루미코, 정말 양심도 없이 나한테 모든 책임을 떠넘길 생각이야?”루미코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세이이치로는 오히려 한숨을 들이마시더니 반짝거리는 두 눈을 하고서 김예훈에게 다가가 냉랭하게 쳐다보았다.“김예훈, 루미코는 양심을 저버린 적도 없고, 너한테 책임을 떠넘긴 적도 없어. 네가 잘못을 저질렀으면 인정해야 할 거 아니야. 범인인 이상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라고. 오늘 밤, 난 내 동생이 외롭지 않게 너까지 함께 보내줘야겠어!”세이이치로의 말은 전혀 놀랍지 않았다.진세은은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자기 체취가 묻어있는 계약서를 꺼낸 순간부터 김예훈이 나오토를 죽였든 안 죽였든 무조건 이 누명을 써야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현장에 있는 일본인들을 쭉 둘러보고는 세이이치로한테 시선을 고정하면서 피식 웃었다.“이제야 죄를 뒤집어씌운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네.”세이이치로와 루미코 두 사람 모두 바보가 아니었기에 김예훈이 나오토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김예훈은 범행을 저지를 시간도, 동기도, 필요성도 없었다.하지만 진세은이 건넨 계약서의 가치는 어마어마했다.막대한 이익 앞에서 세이이치로는 동생이 어떻게 죽었든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다.일본인은 이른바 이익을 위해서 친척도, 연인도, 친구도 얼마든지 버리는 사람이었다.“됐어. 더 이상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저 범인을 당장 잡아!”세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