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의 말을 듣고 모든 가족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다들 욕심은 있지만. 문제는 정씨 어르신이 정씨 가문을 이렇게 오랫동안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그는 권력을 계속 장악할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누가 감히 대놓고 거역할 수 있을까? “아버지, 모든 사람들이 아버지가 계속 대표를 할 적임자라고 생각해요!” 정민택이 제일 먼저 일어나 정지용을 지지했다. "맞아요! 어르신이 계속 대표를 한다면 새 회사의 이름이 무엇이든지 여전히 우리 정씨 가문의 것이예요!” "할아버지, 우리 정씨 가문을 오늘까지 이끌어 주셨는데 할아버지의 인솔하에 정씨 가문을 성남의 일류 가문으로 만드는 것은 곧 이루어질 일이예요!" 이런 말을 듣고 사람들이 조금의 진심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정씨 어르신은 매우 만족스러워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들이…” "이 늙은이가 나이가 많이 들어서 늘 은퇴하고 편안한 삶을 누리고 싶거든." "그런데 자네들을 보면 지용이 말고는 정말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안 돼!" "만약 자네들이 정씨 가문을 대표해서 성남에서 발전한다면! 김세자를 놓치는 것은 작은 일이지만, 우리 정씨 가문을 하루아침에 망가뜨리는 것이 큰일이야!" "됐어. 됐어. 정씨 가문을 위해 내 이 늙은이가 몇 년만 더 고생해야겠네!" "내가 미리 말하는데 몇 년 후에 은퇴할 때 나를 더 이상 막으면 안 돼!" 정씨 어르신은 마지못해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마음속으로는 의기양양을 감출 수 없었다. 어쨌든 이 상황을 보았을 때 그는 여전히 정씨 가문을 계속 장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정씨 어르신은 결심했다. 자신이 죽지 않는 한! 이 권력은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정지용을 포함해서! 만약 자신이 운이 좋다면 20년을 더 살아도 문제없을 텐데 왜 그렇게 빨리 권력을 내놓아야 할까? 만약 정씨 가문을 성남의 일류 가문으로 만들 수 있다면 자신은 몇 년을 더
"맞아요! 밖에 그런 소문이 도는 것 같았어!" “김세자가 찾는 새로운 대표는 젊은 사람이어야 맞아!” "김세자가 무슨 새로운 인물, 새로운 분위기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이것은 정씨 가문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야. 정씨 가문이 스스로 오해하지 말아야지." "우리 모두 할아버지를 많이 지지하지만 이렇게 김세자를 무시하는 것이 정말 괜찮을까?" "김세자는 우리 주식의 51%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현재나 미래나 그분이 우리 회사를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거야. 우리가 지금 여기서 대표를 정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 아닌가?!" “......” 정씨 가족들은 모두 난처한 표정이었으며 마치 그들의 양심에 어긋나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사실 그들은 하나같이 입이 삐뚤어질 정도로 웃고 있었다. 어르신이 계속 권력을 장악하면 그들에게 어디 기회가 있겠는가? 지금 이 데릴 사위가 튀어나와 일을 저질렀으니 당연히 그에게 맞장구 쳐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에게도 대표가 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이 데릴 사위가 대표가 될 수는 없지 않는가? 철왕좌에 앉은 정씨 어르신은 보기 안 좋은 얼굴로 정지용과 눈을 마주쳤다. 정지용도 안색이 보기 안 좋았지만 여전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정씨 가족의 사람이고 정씨 가족의 이익을 대표하는데, 어떻게 남에게 이간질 당할 수 있어요!" "정씨 회사는 지금이나 앞으로나 어르신만이 권력을 장악할 수 있어요!” "지용아, 나는 이 데릴 사위 말이 맞다고 생각해. 우리 젊은 사람을 뽑자!" "어르신이 가능하다면 김세자는 대표를 다시 선출할 신호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야!" "아니면 지용이 네가 할래? 우리는 오히려 네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해!" 어떤 사람이 나쁜 속마음을 책하면서 웃음을 머금고 제안했다. 이 말을 들은 정지용은 얼굴이 새까맣게 질렸다. 맞다. 그는 이 새로운 회사의 대표가 되고 싶었다. 문제는 그는 자신이 그런 기회가
이때 희생양을 찾지 않으면 정씨 어르신이 그에게 화를 낼 것이 분명했다. 정지용은 정씨 어르신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럴 때 누가 '적임자'가 되면 누가 재수 없다. 곧 그의 시선은 정민아를 보고 있었다. 어쨌든 정씨 어르신은 늘 그녀를 싫어하셨으니, 그녀가 '적임자'가 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았다. "할아버지, 저는 민아가 적임자라고 생각해요!" "전에 기본 협정도 민아가 체결했으니까요! 민아가 새 회사의 대표가 되는 것은 당연한 거예요!" 이 순간 정지용은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이럴 때 정민아를 힘껏 치켜세워줄 뿐만 아니라, 진지하게 말할수록 그녀는 나중에 더 비참해질 것이다. 다른 정씨 가족들은 정지용의 속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잠깐 생각해보더니 그래도 맞장구를 치는 사람이 있었다. "맞아요. 민아와 CY그룹 사람들이 잘 아니까 대표가 되어도 문제가 없을 거예요!” "게다가 민아는 지금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는데, 회사에서 기생충이 될 수는 없잖아요? 차라리 겉으로만 보기 좋은 민아를 대표직에 앉히는 게 나을 거예요!" "맞아요. 민아가 가장 적합해요!" 정씨 가족들이 보기에 정민아는 승낙할 자격도 없고 용기도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녀를 비웃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 모두가 너를 그렇게 밀어주는데 민아야, 너는 이 대표가 되고 싶어?" 정씨 어르신은 웃는 듯 말 듯한 표정이었고 정민아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너, 하고 싶어?" 그가 보기에 정민아는 하늘이 용기를 주어도 감히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민아는 오늘 딴생각을 하다가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듣지 않았다. 이제 정씨 어르신이 몇 번 물어보자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반응했다. "할아버지, 저 하고 싶어요." 정민아는 지금 약간 자포자기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상관없이 받아들이면 된다. "뭐라고?!" 정씨 어르신의 표정이 굳
꼭 정씨 가문의 젊은 사람들 중에서 실권자 한 명을 뽑아야 한다면, 정씨 어르신은 정민아를 정말 마음에 들어했다. 그러자 정씨 어르신은 최후의 결정을 내리고 말했다. "됐어. 김세자 쪽에서는 우리 정씨 가문에서 젊은 사람을 뽑아 새 대표가 되기를 바래!" "정민아가 확실히 우리 정씨 가문에게 큰 공로가 있어!" "내 생각에 정민아가 새 회사 대표를 하는 거야." 이 말이 나오자 모든 사람들이 조용해졌고, 한참 있다가 간간이 맞장구를 쳤다. 정민아도 멍해 있다가 이제야 그녀에게 시키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들었다. 뜻밖에도 그녀를 새 회사의 대표를 맡으라는 것이다. 이 일은 어떻게 그녀에게 차례가 올 수 있지? "할아버지, 정말 안 돼요! 민아가 능력이 부족해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할아버지, 우리들 중에서 아무 사람이나 뽑아도 민아보다 나아요! 걔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요!" "맞아요! 김세자가 그의 미래의 아내에게 주는 예물을 이미 결혼한 민아가 무슨 자격이 있어요?!" 정씨 가족 사람들은 모두 정민아를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들은 정씨 어르신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정민아가 그 사람이 되는 것도 절대 원하지 않는다. 정지용은 받아들여도 정민아는 정말... 정씨 어르신의 안색이 차가워졌으며 그 같은 머리 좋은 사람이 정씨 가족들의 속셈을 모를 리가 없다. 다들 이렇게 반대하니까 그는 오히려 굳게 결심했다. 그가 보기에 정민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나중에 정씨 가문에서는 여전히 그가 결정하지 않겠는가? 만약 정지용이 정말 그 자리에 오르면, 오히려 모든 것을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생각을 하자, 정씨 어르신은 기침 한 번 하고 모든 소란을 제지했다. 그리고 정민아를 보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민아야! 다들 네가 새 회사의 대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난 네가 맘에 들어!" "이건 기회인데 하고 싶어?” 정민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으며
이날 정씨 가문에서 새 회사의 대표를 선출했다는 소식이 온 성남에서 널리 퍼졌다. 동시에, 새 회사의 이름도 정했다. 백운 그룹! 새로운 회사의 주요 업무가 백운 별장이기 때문에 그 이름을 딴 것이다. 그러나 성남에서 백운이라는 두 글자는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백운 별원과 백운 가든은 모두 김씨 가문의 산업을 대표한다. 그런데 이번에 백운 그룹 네 글자는 뜻밖에도 CY그룹 쪽에서 통과되었다. 김세자조차도 이 백운 그룹이라는 이름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이것 때문에 한동안 소문이 분분했다. 심지어 김세자가 이날 마음에 든 사람은 아직 고등학교를 다니는 정민아의 여동생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래서 미래의 처형을 이렇게 챙겨주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을 밖에서 감히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모두 뒤에서 몇 마디 했을 뿐이다. 그리고 정민아는 정식으로 백운 그룹의 대표가 되었고, 그 후 각종 자원을 통합하는 일 때문에 팽이처럼 바쁘게 돌았다. 요즘 김예훈도 여러가지로 바쁘게 지내면서 무심한 척했다. 그러나 곧 추석이 다가오는데도 정민아는 여전히 바빴다. "김예훈, 소현이 데리러 가줘. 곧 추석 연휴인데 엄마는 걔가 학교에서 적응이 안 될까 봐 집에 와서 며칠 있으라고 했어." 정민아가 이 일이 생각났다. "알았어. 내가 데리러 갈 게." 김예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그와 정소현의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처제이니까 데리러 가는 것도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회사를 떠나자 김예훈은 하은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 한 대를 준비해줘요. 눈에 뛰지 않는 걸로 하면 돼요.” “네, 대표님.” 전화 건너편에서 하은혜도 숨을 돌릴 틈이 없이 매우 바빴다. 김예훈은 손 꼼짝하지 않고 남에게 시키는 일을 참 잘한다. 하은혜는 지금 매일 야근하느라 바빠서 김예훈을 도와 차를 준비할 시간도 정말 없어서 전화할 수밖에 없었다. 곧 양복 차림의 경호원이 차를 보내왔다. 토요타 엘파,
재벌 2세의 이름은 손학철이다.허구한 날 포르쉐를 몰고 다니며 놀고먹기밖에 하지 않는 날라리 부잣집 도련님이다.오늘 저녁 모임은 바로 그가 마련한 자리였다. 그렇지 않으면 이 학생들이 어떻게 이런 곳에 와서 소비할 수 있겠는가?로열 가든 KTV 같은 곳은 하룻밤에 몇천만 원씩 소비하는 곳이었다.손학철이 오늘 밤 이곳에 온 목적은 아주 간단했다. 정소현을 인사불성으로 만들어 야한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지금 어린 여자애들은 이걸 제일 두려워하지 않는가?그것으로 협박하면 바로 순한 양이 되어버릴 것이다!오늘 밤, 정소현은 절친이 선물한 옷을 입었다. 탱크톱 상의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는 그녀는 뽀얀 피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특히 길쭉 뻗은 다리는 손학철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정소현은 이런 옷차림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때, 그녀가 어색하게 앉아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형부가 왔어. 가지 않으면 언니한테 꾸지람을 들을 거야.”“오면 돈 몇 푼 줘서 돌려 보내. 언니한테는 널 못 찾았다고 하면 되잖아.”“학업 스트레스가 얼마나 많은데, 놀 땐 놀아야지, 안 그러면 어떻게 시험을 잘 볼 수 있겠어?”“이런 걸 노동과 휴식의 결합,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는 거야.”손학철은 정소현의 아름다운 얼굴을 쳐다보며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입을 열었다.“자자! 술 마시면서 게임하자...”정소현의 새로운 ‘절친’ 들은 손학철과 한통속이었다. 그들은 모두 게임을 하자며 부추겼다.사실상 그들의 목적은 단순했다. 그냥 정소현을 취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정소현은 바보같이 오늘 밤의 사냥감이 자신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룸의 문이 열리고 김예훈이 걸어 들어왔다.“아저씨 누구야? 여기가 어딘지는 알아? 무슨 일이야?” 남자 몇 명이 일어나서 김예훈을 쳐다보며 말했다.여자들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려고 하는 속셈이 훤히 보였다.김예훈은 그들을 무시하면서 룸 안을 훑어보고 정소현을 향해 담담하게 말했다. “소현아, 집에
얼굴이 발그레한 정소현을 보고 김예훈은 이 모임의 목적이 무엇인지 이내 알아챘다.아마도 이 양아치들이 정소현한테 손을 댈 속셈인 것 같다.정소현만 바보같이 자신한테 구애하는 줄로 알고 있었다.예전에 남해시에 있을 때, 정소현을 따라다니는 남자애들이 있었지만 정씨 일가의 명성이 자자하여 감히 이런 짓거리를 하지 못했다.근데 성남시가 어떤 곳인가? 억만장자도 이곳에서는 큰 소용이 없다. 워낙 부자들이 넘쳐나는 곳이라 손꼽히는 가문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김예훈, 빨리 가요! 난 안 갈 거예요. 무슨 자격으로 날 간섭해요!” 김예훈이 떠날 생각을 하지 않자 정소현은 큰 소리로 말했다.김예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정소현을 강제로 데려가려고 했다.“쾅-”바로 이때, 누군가가 문을 발로 찼다.한 사람이 발에 차여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너 왜 그래?” 자기 동창이라는 걸 확인한 그들은 다가가서 부축했다.뒤에는 얼굴이 빨갛게 부은 여자애가 있었다. 분명 방금 누구한테 맞은 것이다.“무슨 일이야?” 정소현 등 사람들은 얼른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그 여자애는 울면서 말했다.“방금 화장실에서 어떤 사람들이 날 괴롭혀서 얘가 몇 마디 욕해주다가 맞았어. 흐윽...”그 여자애가 울고 있는 사이 건달 몇 명이 건방진 걸음으로 걸어 들어왔다.“어쭈, 생각지도 못했네! 로열 가든 KTV에 언제 이렇게 예쁜 계집애가 많았어? 오늘 밤 간만에 신나게 놀겠는데!”건달들은 정소현 등을 보고 눈빛이 반짝거렸다.그들은 거리낌 없이 길게 쭉 뻗은 여자들의 다리를 쳐다보았다.“당신들이 내 친구를 때렸어!” 손학철은 기세등등하게 앞으로 걸어나가 차갑게 말했다.학교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 어떻게 친구가 남한테 괴롭힘을 당한 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게다가, 그의 뒤에는 십여 명의 남학생이 있다, 고작 이 몇 명 건달들을 무서워할 리가 있나?그리고 지금 여자애들 앞에서 그들은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 하나 같이 용감하게 나섰다.“그래, 내
“짝짝짝...”맨 앞에 있던 건달이 손을 뻗어 손학철의 얼굴을 가볍게 치더니 웃으며 말했다. “녀석, 아까는 그렇게 날뛰더니! 건방지게. 지금도 한 번 날뛰어 보던가? 우리가 무릎을 꿇어야 하는 거야?”“형님, 잘못했습니다!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제가 눈이 삐었나 봅니다!”손학철은 나설 줄도 굽힐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이내 '탁'하고 무릎을 꿇으며 사과했다.잘난 척하는 것보다 지금은 일단 살고 봐야 한다.“팍!”맨 앞의 건달이 그의 뺨을 때리고 이내 테이블 위에 있던 맥주병을 들고 머리를 내려쳤다.손학철은 처량한 비명을 질렀지만 여전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일어날 엄두를 내지 못했다.룸 안은 쥐 죽은 고요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건방지게 굴던 남학생들은 지금 모두 벌벌 떨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들은 자기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로 날뛰다가 수십 명이 건달들을 보고는 모두 겁에 질렸다. 이때, 겁이 많은 애들은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어떤 애들은 부들부들 떨며 울먹울먹거리는데 눈빛에 공포가 가득했다.잘난 척하는 거. 여자애들의 환심을 사는 일은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다들 쪼그리고 앉아. 누가 감히 일어서면 나한테 죽도록 맞을 줄 알아!”건달이 손을 대자 이내 서 있던 몇 명 남학생들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여자애들은 말할 것도 없이 모두 껴안고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들은 남자애들보다 더 겁이 났다.사실, 건달들은 계속 거리낌 없이 그녀들을 쳐다보고 있었다.이때, 정소현만 담이 좀 컸다. 어찌 됐든 그녀는 큰 가문에 태어났고 견식이 좀 있는 편이었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김예훈은 이미 가장 구석에 있는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었다.그가 있는 자리가 하도 은밀하여 건달조차도 그를 보지 못한 것 같다.“역시 찌질한 인간이야. 저 데릴사위는 놈은 진짜 쓸모가 없구나. 언니가 저런 놈한테 시집간 건 정말 재수 없는 일이야!”정소현은 김예훈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그에게 남아있던
“정말 그런 거라면 내가 사람을 잘못 봤어. 그동안 너를 너무 몰라본 거야.”김서하는 진지한 표정으로 김현민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녀는 곧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수장이 될 사람이 한 여자 때문에 이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할 줄 몰랐다.“고모, 이것은 단순히 충동 때문에 하는 행동은 아니에요. 진주·밀양에서 오륜 사찰이 제 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김현민은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내뱉었다.“혜선 스님과 김예훈의 만남이 우연일지라도 누군가 이 기회를 이용해서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면 오륜 사찰과의 동맹이 무너질 수도 있어요. 더욱이 저는 남자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어요. 차라리 죽더라도 혜선 스님이 다른 남자와 얽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고요.”김서하가 손을 내밀어 김현민의 잘생긴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잠시 후에 말했다.“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현민아, 이제 곧 수장이 될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하는 말과 행동 모두 조심해야 한다고. 너만 아니었으면 나도 오늘 직접 나서지 않았어.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내 행동도 다소 충동적이었던 것 같아.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현명한 행동은 아마 잠시 숨죽이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을 따냈을 때 그 기세를 몰아붙여 김예훈 그놈을 죽일 수 있다고.”김서하는 김예훈이 미웠지만 잠깐 차에 앉아 있는 동안 차분해진 느낌이었다.그녀의 뺨을 때릴 수 있는걸 보면 정말 실력과 배짱을 가진 자임이 분명했다.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이런 사람과 무모하게 싸워봤자 방해만 될 뿐 아무런 좋은 점도 없었다.그래서 지금 해야 할 일은 신중히 계획을 세우고 나서 행동하는 것이다.김예훈한테 뺨 맞은 김서하는 두렵기도, 화나기도 했지만 정신을 차린 것도 사실이었다.적어도 과거의 그녀는 용전 안주인으로서,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서열 5위로서 절대 참을 일이 없었다.김현민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한참 뒤에 말했다.
토요타 알파드 문이 서서히 열리고, 김현민이 검은 우산을 들고 빗속을 뚫고 걸어왔다.그는 김서하더러 창문을 내리라고 하면서 문을 두드렸다.멍때리고 있던 김서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고, 김현민의 환한 미소를 보는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잠시 후, 그녀는 차에서 내려 그의 품에 기대어 나지막하게 말했다.“현민아, 나 실패했어. 설득도, 암살도 모두 실패했다고. 줄곧 다른 사람들한테 무능하고 한심하다고 했는데 김예훈 앞에서는 나도 그들과 다를 바가 없었어.”김서하는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김현민은 오른손을 내밀어 김서하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더니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얻은 정보에 따라 그 녀석이 오륜 사찰 뒷산 금지구역에 들어가 혜선 스님을 만난 거 맞아요?”김서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가 사실 오륜 사찰을 이용해서 김예훈을 죽이려 했어. 그런데 지금 보니 그 계획은 실패한 것 같아.”“어리석은 놈.”김현민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김예훈을 못 죽인 것도 모자라 혜선 스님이랑 만나게 했다니. 정말 한심하기 그지없는 놈이네요.”김현민은 더 이상 차분함을 유지하지 못했다.김서하든, 선재 스님이든, 남윤지든, 그저 주위를 맴도는 사람 일뿐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는 아니었다.이처럼 거대한 진주·밀양에서 김현민이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혜선 스님뿐이었다.하지만 아쉽게도 이 두 사람은 늘 애매모호한 거리를 유지해왔다.여자의 마음에 대해 잘 아는 김현민마저도 혜선 스님의 마음을 얻을 수 없었다.‘그런데 김예훈이 우연히 혜선 스님이랑 만났다고? 더군다나 혜선 스님 목욕탕에 뛰어들어서 알몸까지 봤다고?’김현민은 김예훈을 당장이라도 목 졸라 죽이고 싶었다.이건 그의 체면을 구겨놓은 것도 모자라 그의 자존심과 진심을 짓밟은 거나 다름없었다.터벅터벅.바로 이때, 김현민의 뒤에서 김병욱이 천천히 걸어왔다.빗속에서 서로 끌어안고 있는 두 남녀를 보고도 그는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
퍽.더 이상 선택지가 없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을 힘껏 내리쳤다.마침 양상철이 몸을 피한 덕분에 아마미네 토시로는 그의 필살기를 피할 수 있었다.하지만 그 여파로 상처에서 피가 스며 나왔다.몇 번 한숨을 내쉬어야 고통을 멈출 수 있었던 그의 얼굴에는 김예훈에 대한 증오가 더욱 짙어졌다.양상철은 표정이 일그러진 그를 보며 말했다.“내가 봤을 때 넌 미야다 신노스케보다도 못해. 신노스케는 그래도 김예훈 도련님이랑 공격을 주고받을 수 있었어. 그런데 넌 이미 겁에 질려서 김예훈 도련님의 공격을 피하지도 못했어. 사실 널 한 방에 죽일 수 있었는데 말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김예훈은 그냥 피도 안 마른 놈이야. 내가 이번에 급하게 출관하는 바람에 원기가 손상되지만 않았다면 걔가 미쳐 날뛸 수나 있었을까? 내가 일본에 돌아가면 1년 반쯤 수련해서 김예훈 그놈한테 내 실력을 제대로 보여줄 거야.”양상철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김예훈 도련님보다 못하다는 것을 인정했으면 너를 높이 평가했을 텐데 지금은 그냥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비겁한 놈으로 보여. 아마미네 토시로, 넌 정말 일본 무신과 야마자키파 검신의 체면을 완전히 구겨버렸어. 너의 손발을 잘라내서 김예훈 도련님한테 선물로 드릴 거야. 그러면 너도 일본에 돌아갈 일이 없겠지.”양상철은 또 한 번 아마미네 토시로가 있는 곳으로 손을 뻗었다.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똑같이 손을 뻗으려고 했는데 저 멀리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퍽.양상철이 미간을 찌푸린 채 몸을 약간 옆으로 트는 순간 총알이 그의 머리카락을 스치며 뒤에 있던 나무를 뚫고 지나갔다.양상철이 무표정으로 전방을 바라보았는데 산봉우리에 어떤 남자가 총을 들고 바위에 서 있는 것이다.그는 양상철을 향해 피식 웃으며 죽여버리겠다는 제스처를 하면서 또다시 총을 들었다.양상철은 바로 상대방이 평범한 사수가 아니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이 모습에 아마미네 토시로는 멈칫도 잠시 땅을 구르더니 쏜살같이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