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발그레한 정소현을 보고 김예훈은 이 모임의 목적이 무엇인지 이내 알아챘다.아마도 이 양아치들이 정소현한테 손을 댈 속셈인 것 같다.정소현만 바보같이 자신한테 구애하는 줄로 알고 있었다.예전에 남해시에 있을 때, 정소현을 따라다니는 남자애들이 있었지만 정씨 일가의 명성이 자자하여 감히 이런 짓거리를 하지 못했다.근데 성남시가 어떤 곳인가? 억만장자도 이곳에서는 큰 소용이 없다. 워낙 부자들이 넘쳐나는 곳이라 손꼽히는 가문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김예훈, 빨리 가요! 난 안 갈 거예요. 무슨 자격으로 날 간섭해요!” 김예훈이 떠날 생각을 하지 않자 정소현은 큰 소리로 말했다.김예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정소현을 강제로 데려가려고 했다.“쾅-”바로 이때, 누군가가 문을 발로 찼다.한 사람이 발에 차여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너 왜 그래?” 자기 동창이라는 걸 확인한 그들은 다가가서 부축했다.뒤에는 얼굴이 빨갛게 부은 여자애가 있었다. 분명 방금 누구한테 맞은 것이다.“무슨 일이야?” 정소현 등 사람들은 얼른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그 여자애는 울면서 말했다.“방금 화장실에서 어떤 사람들이 날 괴롭혀서 얘가 몇 마디 욕해주다가 맞았어. 흐윽...”그 여자애가 울고 있는 사이 건달 몇 명이 건방진 걸음으로 걸어 들어왔다.“어쭈, 생각지도 못했네! 로열 가든 KTV에 언제 이렇게 예쁜 계집애가 많았어? 오늘 밤 간만에 신나게 놀겠는데!”건달들은 정소현 등을 보고 눈빛이 반짝거렸다.그들은 거리낌 없이 길게 쭉 뻗은 여자들의 다리를 쳐다보았다.“당신들이 내 친구를 때렸어!” 손학철은 기세등등하게 앞으로 걸어나가 차갑게 말했다.학교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 어떻게 친구가 남한테 괴롭힘을 당한 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게다가, 그의 뒤에는 십여 명의 남학생이 있다, 고작 이 몇 명 건달들을 무서워할 리가 있나?그리고 지금 여자애들 앞에서 그들은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 하나 같이 용감하게 나섰다.“그래, 내
“짝짝짝...”맨 앞에 있던 건달이 손을 뻗어 손학철의 얼굴을 가볍게 치더니 웃으며 말했다. “녀석, 아까는 그렇게 날뛰더니! 건방지게. 지금도 한 번 날뛰어 보던가? 우리가 무릎을 꿇어야 하는 거야?”“형님, 잘못했습니다!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제가 눈이 삐었나 봅니다!”손학철은 나설 줄도 굽힐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이내 '탁'하고 무릎을 꿇으며 사과했다.잘난 척하는 것보다 지금은 일단 살고 봐야 한다.“팍!”맨 앞의 건달이 그의 뺨을 때리고 이내 테이블 위에 있던 맥주병을 들고 머리를 내려쳤다.손학철은 처량한 비명을 질렀지만 여전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일어날 엄두를 내지 못했다.룸 안은 쥐 죽은 고요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건방지게 굴던 남학생들은 지금 모두 벌벌 떨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들은 자기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로 날뛰다가 수십 명이 건달들을 보고는 모두 겁에 질렸다. 이때, 겁이 많은 애들은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어떤 애들은 부들부들 떨며 울먹울먹거리는데 눈빛에 공포가 가득했다.잘난 척하는 거. 여자애들의 환심을 사는 일은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다들 쪼그리고 앉아. 누가 감히 일어서면 나한테 죽도록 맞을 줄 알아!”건달이 손을 대자 이내 서 있던 몇 명 남학생들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여자애들은 말할 것도 없이 모두 껴안고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들은 남자애들보다 더 겁이 났다.사실, 건달들은 계속 거리낌 없이 그녀들을 쳐다보고 있었다.이때, 정소현만 담이 좀 컸다. 어찌 됐든 그녀는 큰 가문에 태어났고 견식이 좀 있는 편이었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김예훈은 이미 가장 구석에 있는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었다.그가 있는 자리가 하도 은밀하여 건달조차도 그를 보지 못한 것 같다.“역시 찌질한 인간이야. 저 데릴사위는 놈은 진짜 쓸모가 없구나. 언니가 저런 놈한테 시집간 건 정말 재수 없는 일이야!”정소현은 김예훈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그에게 남아있던
“송우 형님, 안으로 드시죠!”뜻밖에도 대머리는 오늘 그보다 더 높은 분을 모시고 왔다.사람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검은 양복 차림에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들어왔다.“송... 송우...”그 사람을 보고 손학철은 기겁했다.대머리는 기껏해야 싸움꾼이었다.하지만 송우는 달랐다!어디서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난 인물로 거느리는 수하가 수없이 많았다.대머리조차도 그의 수하일 뿐이다.“송우 형님, 대머리 형님. 여기 계집애들 장난 아닙니다! 하하하!”방금 앞장섰던 그 건달이 아부했다.그 대머리는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여자애들을 훑어보았다.오히려 송우는 카리스마를 뽐내며 여자애들을 자세히 보지 않고 무심하게 내뱉었다. “제일 예쁜 애들 둘 골라서 내 방으로 데려와.”그는 예전에 남해시에 정민아를 탐내나가 김예훈에게 맞아 죽을 뻔했다.머리가 총명한 편인 그는 오정범한테 호되게 당하고는 후에 오정범 밑으로 들어갔다.지금은 오정범의 명을 받고 성남시의 상황을 보러 온 것이다.평소에 그는 조용히 처신하며 지냈다. 성남시의 큰 인물을 만나면 허리를 굽히며 낮은 자세를 취했다.그러나 오늘 이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대머리가 그의 말을 듣고 이내 말했다. “여자들은 남기고 남자들은 때리고 풀어줘!”“누가 감히 밖에 나가 함부로 지껄이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안 돼요! 안 돼요!”남자애들과 여자애들은 하나같이 두려움에 떨었다.특히 여자애들은 울고 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남아서 무슨 일어날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방금 전까지 패기가 넘쳤던 정소현조차도 지금은 당황하여 몸을 떨기 시작했다.이런 건달들한테 짓밟히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남자애들은 극심한 공포에 부들부들 떨었다. 어떤 애는 심지어 도망갈 수만 있다면 여자애들이 어떻게 되든 자신과 상관없다고 생각했다.노래방 파티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이때,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손학철은 자신이 탐하던 여자가 남에게 짓밟히
주위에 있는 친구들의 눈빛, 특히 정소현의 눈빛을 느낀 손학철은 허리를 곧게 폈다.이때 그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송우 형님, 대머리 형님. 아버지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형님들은 지하 세계의 큰 인물들이시라고!”“형님들 같은 큰 인물이 저희와 같은 꼬맹이들한테 화를 내시겠습니까?”“오늘은 송우 형님께서 제 체면을 봐서 이 일을 그냥 넘어가는 게 어떠십니까?”“제 친구의 잘못이니 여기서 제가 사과하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아버지한테 말해서 형님들을 대접하겠습니다. 어떠십니까?”말을 마치고 손학철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비록 해산물 장사를 하는 아버지이지만 엄청난 부자였다. 건달들도 그한테서 밥 빌어먹고 살아야 할 것이다.그래서 손학철은 아버지의 이름을 꺼내기만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송우와 대머리가 돈을 벌지 싶지 않은 한, 이 바닥에서 먹고 살려면 그의 체면을 세워주어야 할 것이다.룸 안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이때, 손학철은 뒷짐을 지고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여자애들이 탄복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송우는 손학철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재밌군, 요즘은 새파랗게 어린놈도 내 앞에서 잘난 척을 다 해!”“넌 말할 것도 없고 네 아버지가 와도 내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할 거야! 체면을 세워달라니? 너 따위가?”말을 마치고 송우는 손학철의 뺨을 후려졌고 멀리 튕겨 나간 손학철은 이빨이 여러 개 빠졌고 얼굴이 퉁퉁 부어올랐다.이 순간, 룸 안의 사람들은 모두 멍해졌다.모든 사람의 희망이 깨져버린 것이다.방금 전까지도 다들 손학철이 자신들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흐윽...”지금 이 순간, 학생들은 모두 절망에 빠졌고 여자애들은 작은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오늘 밤, 정소현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지만 이제보니 자신도 함정에 빠지게 된 것 같다.“너 때문이야! 이게 다 너 때문이라고!”“그래! 만약 네가 진작에 손
그 기세는 순식간에 건달들은 제압했다.잠시 후, 대머리는 화를 내며 입을 열었다. “뭐 해! 가서 저놈을 끌어내!”“감히 송우 형님 앞에서 잘난 척을 하다니! 주제도 모르고!”대머리의 명이 떨어지자, 정소현의 허벅지를 만지려 했던 건달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와 김예훈한테 손을 뻗었다.그러나 이내, 김예훈은 담담하게 손을 내밀어 건달의 손목을 낚아챘다.“커억-”김예훈은 살짝 틀었을 뿐인데 건달의 손목이 빠져버렸다.“아악-”처량한 비명이 순식간에 울려 퍼졌다.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 장면을 목격하고 어안이 벙벙해졌다.특히 건달의 손바닥이 이상한 방향으로 비틀어져 있는 것을 보고 모두 식은땀을 흘렸다.저 녀석의 힘이 도대체 얼마나 센 거야?정소현도 그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정씨 일가에서 사이코패스라고 불리는 김예훈이 툭 하면 정지용한테 물건을 집어 던져 피를 흘리게 한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김예훈한테 이런 실력이 있는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감히 내 부하를 건드려? 너 좀 맞아야겠다!” 대머리는 으르렁거리며 앞으로 다가갔다.이때, 송우가 손짓을 하며 말했다. “급할 것 없어. 보아하니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은데, 일단 지켜봐.”송우는 오정범 밑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 전보다 훨씬 신중해졌다. 자신의 실수로 성남시의 큰 인물한테 미움을 살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이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김예훈 쪽으로 다가갔다.그러나 김예훈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고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불 켜!”송우가 명령했다.“타닥타닥-”이내, 룸 안의 모든 불이 켜졌고 모든 것을 똑똑히 볼 수가 있었다.소파에 앉아있는 김예훈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상대방이 낯선 젊은이인 걸 확인하고 대머리는 순식간에 노호했다. “당신 뭐야? 감히 송우 형님 앞에서 앉아있어? 죽고 싶어?”“망했어!” 정소현은 한숨을 쉬었다.찌질한 김예훈이 아무리 싸움 실력이 좋아도 오늘은 망했다. 혼자서 이 사람들은 다 어떻게 쓰러뜨리는
“툭툭툭-”건달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지만 송우가 입을 열었으니 누구도 감히 반항하지 못했다. 이 순간,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함께 무릎을 꿇는 장면은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소름이 끼쳤다.대머리는 머리를 감싸고 영문도 모른 채 김예훈 앞에 무릎을 꿇고 꼼짝도 하지 못했다.지금 이 순간, 건달들은 소파에 앉아 있는 김예훈이 도대체 어떤 신분인지 추측하고 있었다.성남시에 새로 나타난 큰 인물이 바로 그 앞에서 무릎을 꿇다니?지독하기로 유명하던 사람이 아니었던가?손학철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송우와 대머리가 어떤 사람인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의 아버지 같은 억만장자도 이 둘 앞에서는 체면을 세울 수가 없다. 근데 정소현의 형부가 이 사람들의 무릎을 꿇게 만들다니?소문만 듣던 데릴사위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라고?손학철은 충격을 받아 말문이 막혔다.그리고 한편, 김예훈을 미워하고 하찮게 여기던 정소현도 지금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우러러보고 있었다.찌질한 데릴사위인 형부가 이렇게 남자다울 줄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지금 그녀의 눈에는 이 남자가 매력적이고 후광이 비치고 있었다.형부가 이렇게 멋있을 줄 알았다면 진작에 친하게 지낼 걸 그랬다.다른 여자애들도 김예훈을 연모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이게 바로 전설 속의 영웅, 큰 인물이 아닌가?평소에 그들이 접하던 풋풋한 학생들과는 사뭇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게다가 이런 자리에서는 더욱더 매력이 넘쳤다.“이번이 두 번째죠...”김예훈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송우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얼굴을 바닥에 파묻었다.지난번에는 이분의 아내를 탐내고 이번에는 처제까지 탐낸 꼴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이리 빌어먹을 우연이 다 있단 말인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었다!“도, 도련님... 제가 잘못했습니다...”송우는 부들부들 떨었다. 담력이 없었더라면 아마 진작에 오줌을 쌌을 것이다.“오정범이 성남에 그쪽을 보낸 게 여자를 괴롭히는 짓거리를 하라고
KTV 밖.손학철은 냉큼 정소현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소현아, 너 괜찮아? 방금 난 그들과 필사적으로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어!”손학철이 겁에 질려 오줌을 쌀 뻔한 장면을 보고 정소현은 그를 쳐다보기도 싫었다.형부와 비교하면 넌 아무것도 아니야!“괜찮아!” 정소현은 짜증 나는 표정을 지었다.어린애라서 모든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 숨길 수가 없었다.손학철은 안색이 변했지만 이내 정교한 키를 꺼내며 말했다. “집까지 데려다줄게. 오늘 포르쉐를 몰고 왔어.”말을 하면서, 손학철은 키를 눌렀다.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빨간 포르쉐의 불이 켜졌다.다른 학생들은 이 장면을 보고 하나 같이 부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학생 신분에!학생이 억 소리 나는 차를 몰고 다니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방금 김예훈을 연모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여자애들이 지금 손학철을 우러러보고 있었다.싸움을 잘하는 건 대단하지만 요즘 세상에 돈보다 힘 있는 건 없다.여자애들이 하나 같이 부러워하는 표정을 보고 정소현은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필요 없어. 형부랑 택시 타고 갈 거야.”집안 사정이 어떠한지 정소현은 잘 알고 있다. 데릴사위인 형부는 남해시에서 차가 있었지만 성남시에서는 차를 살 돈이 없을 것이다.“차 가지고 왔어.”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하며 전방에 주차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그의 차를 보고 손학철이 피식 웃었다. “승합차? 소현아, 설마 승합차 타고 집에 갈 건 아니지?”“저런 차는 우리 집에서 해산물이나 담을 때 쓰는 거야. 저 차에 타면 앞으로 사람들이 널 해산물 아가씨라고 부를지도 몰라.”이때, 다른 학생들도 손학철의 뜻을 눈치챘다.손학철은 정소현을 자신의 차에 타게 하려는 것이다.그리고 방금 위험에서 벗어난 학생들이 너도나도 입을 열었다.“소현아, 넌 미녀야. 어떻게 승합차를 타니! 창피하게!”“승합차와 포르쉐의 차이가 뭔지 알아? 승합차 가격으로 포르쉐 취득세도 못낼 거야!”“이런 차는 화물을 싣는데 쓰는 거야. 냄새도 엄청
“입 닥쳐! 이건 승합차가 아니야!”이 순간, 손학철은 식은땀이 쏟아졌다.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당부한 적이 있다. 밖에서 두 종류의 차를 타는 사람은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하나는 토요타 알파드 같은 차고 또 하나는 테슬라 같은 차다.이런 차를 타는 사람들은 쓸 데가 없을 정도로 돈이 많은 사람들이다.정소현의 형부라는 이 사람, 왠지 모르게 신비로워 보였다.“이게 무슨 차인지 똑똑히 봤지? 말은 함부로 하면 책임을 져야 하는 거야...” 김예훈은 차에 오르면서 무심하게 한 마디 던졌다.정소현도 차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방긋 웃으며 손학철을 향해 개구쟁이 표정을 짓고는 조수석에 올라탔다.토요타 알파드는 조용히 떠났고 주차장에는 손학철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손학철은 자신이 감히 학교에서 정소현의 소문을 함부로 퍼뜨린다면 그녀의 형부 손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자동차는 도로에서 조용히 안정적으로 달리고 있다.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김예훈은 몸을 돌렸다. 이때 정소현이 귀엽게 머리를 갸웃거리며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김예훈은 어이가 없었다. 정소현은 애송이였을 때부터 지켜봐 온 아이였다.그런 계집애가 지금 이런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니.김예훈은 난감하기만 했다. “보지 마. 똑바로 앉아!”“싫어요! 볼래요! 형부, 이렇게 보니까 형부 잘생겼네요! 되게 멋있어요!”“우리 학교에 킹카라는 애들, 연예인, 아이돌, 다 형부와는 비교도 안 돼요!”“형부 같은 사람이 진짜 남자죠!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에요!”정소현은 웃었다.이때, 정소현은 말을 하면서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뒤지며 비교했다.그래, 역시 우리 형부가 제일 멋있어. 다른 애들은 별거 아니야!그들은 형부 발끝도 못 따라와.“그래, 알았어!” 김예훈은 미소를 짓더니 이내 또 안색이 어두워졌다.계집애가 이런 수작을 부릴 줄이야? 날 이렇게 치켜세워서 뭘 하려는 건지?”“형부,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