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을 말해서는 안 돼.” 김예훈이 답했다.그러나 어떻게 보면 이 차는 확실히 티가 나지 않았다. 차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가족들이 임시로 머물고 있는 주택단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주택단지를 들어설 때 김예훈은 차를 세웠다.전에 차를 몰고 왔던 젊은이가 줄곧 이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공손하게 차키를 받아쥐더니 차를 몰고 떠났다.집에 돌아오니 정군과 임은숙 두 사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김예훈이 정소현을 데리고 들어오자 두 사람은 얼굴이 어두워졌다. 임은숙은 싸늘하게 말했다. “소현아, 앞으로 저 인간이랑 가깝게 지내지 마! 쓸모없는 인간!”정군도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민아야, 너보고 소현을 데리러 가라고 했잖아? 왜 저 찌질한 놈이 간 거야?”정민아가 백운 그룹의 대표가 된 이후부터 정군의 가족들은 김예훈을 더욱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예전에는 김예훈이 정민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김예훈이 정민아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정민아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엄마, 아빠. 이제 막 시작하는 회사라서 저 엄청 바빠요. 그래서 예훈씨한테 부탁했어요.”“근데 소현을 데리러 갔다 오는 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택시비 줬잖아?”이건 김예훈한테 하는 말이었다,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 “수업이 늦게 끝났어요 그래서 잠깐 기다렸어요.”정소현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 빠뜨린 수업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보충수업을 해주셨어요!”이 말을 듣고 정군과 임은숙도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임은숙은 웃으며 말했다. “소현아, 새 학교는 어때? 친구들과는 잘 지내니?”정소현은 내색하지 않고 김예훈을 쳐다보고 말했다. “재미있어요! 오늘은 엄청 잘생긴 남자도 만났어요. 엄청 즐거워요!”임은숙은 바로 긴장했다. “소현아! 네 나이에 쉽게 연애하는 건 안 돼. 넌 앞으로 명문가에 시집갈 사람이야...”“엄마!” 정소현은
정군 부부는 정소현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았다. 그들은 정소현을 귀여워죽겠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어쩌면 작은 딸이 그들을 먹여살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좀 더 잘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정민아도 그들의 맞은편에 앉았다.정소현은 아직도 식탁에 오지 않은 김예훈을 힐끔 쳐다보고 물었다.“아빠, 엄마. 왜 형부는 밥을 먹으러 오지 않아요?”“형부? 이 음식들은 너를 위해 준비한 거야. 걔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와 함께 밥을 먹어?”임은숙은 김예훈이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해시에 있을 때는 화장실 청소도 하고 음식도 차렸지만 성남시에 오니 이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쓸모없는 사람.“빨리 민아와 이혼시켜야겠어. 매일 집에서 얼굴봐야 되는 게 짜증 나 죽겠어.”정군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이혼? 저도 동의해요! 언니와 형부가 빨리 이혼했으면 좋겠어요!”정소현은 조금 흥분하여 말했다.“뭐?”가족 모두가 정소현을 이상하게 쳐다보았다.김예훈의 일이라면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소현이었기 때문이다.이제 와 갑자기 김예훈과 정민아의 이혼을 찬성한다고?김예훈도 정소현을 의아하게 쳐다보았다.내가 처제한테는 잘 한 것 같은데?왜 나한테 이러는 걸까? 내가 뭘 잘못했나?정소현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자 얼른 해명을 했다.“엄마 아빠 생각이 그러니까....”김예훈을 힐끔거린 정소현의 얼굴이 조금 불그스름해졌다. 형부와 언니가 이혼을 하면 나도 형부와 결혼할 수 있어!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만약 부모님이 알게 되면 반대할 뿐만 아니라 정민아와 김예훈의 이혼도 없던 일이 되기 때문이다.....저녁, 정민아는 정소현과 함께 자겠다고 했다.그 모습을 정소현은 아주 의아하게 쳐다봤지만 속으로는 아주 기뻤다.“언니, 아직도 형부와 첫날밤을 보내지 않았어?”“조그마한 머리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정민아가 정소현의 이마를 톡 건드리며 말했다.“형부가 소파에서 자겠다고 하니까..”
“맞다! 진짜 깜빡할 뻔했어!”“가자. 우리 함께 다녀오자!”무언가를 고민하는 것 같던 김예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정소현은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김예훈을 노려보았다. 이 형부가!조금 전까지만 해도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있더니 언니 말이 나오자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 좀 봐.두 사람은 교외로 나왔다. 하은혜가 이번에 준비한 차량은 마이바흐였다.외관을 평범했지만 내부는 별천지였다.“형부, 형부는 어떻게 이런 차가 있어요? 이 차는 특수 제작 해야 되는 차잖아요. 국내에서는 살 수 없고 외국에서 가져온다고 하던데 맞죠?”상류층 가문에서 태어나고 자란 정소현도 웬만한 사치품과 차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다른 사람이 준비해 준 거야. 내 차가 아니야.”김예훈이 말했다.두 사람이 차에 앉자 차가 출발했다. 도로 위에서 달리는 차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달리는 차에서 정소현의 눈빛은 김예훈의 몸에서 떠나지 않았다.“왜 나를 그렇게 봐?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김예훈은 정소현의 눈빛이 너무 부담스러워 말했다.“형부, 엄마와 아빠가 매일 형부한테 이혼하라고 하는데 차라리 이혼하는 건 어때요?”정소현은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말했다.김예훈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기 전, 나를 정 씨 가문의 사위로 남겠다고 했어. 돌아가신 할아버지 유언도 신경 쓰지 않는 거야?”“아니요! 형부가 언니와 이혼을 하면 저와 결혼해요!”“저 언니하고 똑같게 생겼어요. 그리고 제가 더 어리잖아요!”“제가 매일 같이 있을게요!”“형부도 고민 좀 해보세요!”정소현이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김예훈이 몸을 흠칫 떨었다. 나이도 어린 여자아이가 말을 함부로 하네. 내가 나쁜 마음이라도 품으면 어쩌려고?“형부, 진지하게 고민해 보세요!”“우리 언니는 형부의 장점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에요.”“하지만 저는 형부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아요. 제가 소중하게...”“어차피 저하고 결혼해도 정 씨 가문의 사위는 맞잖아요!”“그러면 데릴사
이 거리는 성남시의 주요 상업거리이자 관광 센터이기도 했다.성남 타워는 성남의 대표 건축물이기도 했다.성남 타워의 지하에는 쇼핑몰 센테에서는 세계 유명한 명품 브랜드 상품이 있다.엘리베이터를 타고 백 층이 넘는 최상층에 오면 성남시에서 제일 큰 회전 레스토랑이 있다.레스토랑은 모두 유리로 만들어져 이곳에서 밥을 먹으면 성남시 전체를 내려다보게 된다.그리고, 이곳의 셰프들은 모두 미슐랭 3스타 이상의 셰프들로 몸값이 어마어마한 사람들이다.이곳에서 밥 한 끼 값은 백만 원이 넘는다.제일 중요한 것은 예약제로 운영되는 이곳은 일반 사람들이 예약하기 힘든 곳이기도 했다.가끔 인터넷에서 예약을 받는 날이면 1분도 안 돼 매진되기도 했다.이곳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은 모두 유명한 연예인이거나 사업가들이다.“형부, 성남 타워는 우리 형편에 너무 사치에요.”“내 기억이 맞는다면 가방 하나에 100만 원을 호가하는 거 맞지?”“언니한테 어떤 선물을 줄 거예요?”정소현은 주위 상가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언니한테 뭐가 어울릴 것 같아?”김예훈이 싱긋 웃으며 물었다.“선녀 같은 우리 언니한테 절대 아무 물건이나 어울리지 않죠!”“하지만 제 생각엔 하늘에서 같이 밥을 한 끼 먹어도 언니는 좋아할 것 같아요.”정소현이 호언장담했다.김예훈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러면 우리 성남 타워 회전 레스토랑을 예약하는 걸로 하자.”정소현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인터넷으로 성남 타워 회전 레스토랑을 검색하고 깜짝 놀랐다.“형부, 블로거들의 말에 의하면 성남 타워 회전 레스토랑은 한 달 전에 예약해야 된대요. 그리고 한정 구매라 예약이 없으면 아예 입장할 방법이 없대요!”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래? 그런 규칙이 있어? 나는 왜 몰랐지?”여기도 CY 그룹의 계열사였지만 경영을 꽤나 잘하고 있었다.CY 그룹의 계열사가 워낙 많아 김예훈이 하나하나 알기에는 역부족이었다.이곳이 유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규칙이 있는 줄은 몰랐다.이것도 일종의
종업원은 김예훈과 정소현이 식사를 하러 왔다고 착각한 것 같았다.김예훈은 고개를 저었다.“예약하지 않았어요. 오늘 식사를 하러 온 것도 아니고요.”“예약을 하러 왔어요.”“3일 뒤. 레스토랑 전체를 비워주세요.”정소현은 몸을 흠칫 떨며 김예훈의 얼굴을 당장이라도 꿀이 떨어질 것 같은 눈길로 쳐다봤다.형부는 역시 멋져! 아니 호탕해!이런 장소를 가격도 물어보지 않고 빌리겠다니.“손님, 아직 저희 레스토랑 규칙을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저희 레스토랑은 인터넷에서 한 달전 미리 예약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저희는 레스토랑 전체를 빌려주는 이벤트는 하지 않습니다.”종업원은 짜증이 섞인 표정이었다.김예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아직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네요. 3일 뒤. 제가 이곳을 사용하겠다는 거예요.”싸구려 옷을 입고 레스토랑에 온 김예훈은 아무리 보아도 돈이 많아 보이는 사람 같지 않았다.종업원은 그를 아래위로 훑어본 뒤 비웃으며 말했다.“손님, 여긴 손님이 난동을 부릴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에요. 그리고 이곳을 빌리는 비용이 얼마인지 알기나 해요?”“평생을 뼈빠지게 벌어도 벌지 못하는 금액이에요!”“레스토랑 전체를 빌리려면 인터넷에서 미리 예약을 하세요!”“하지 못하시겠다면 그만 가세요!”“저희는 고급 신분을 지닌 사람들만 접대하는 레스토랑이에요! 돈이 없는 사람들은 얼씬하지도 못하죠!”“아무것도 모르면서 여자 앞에서 허세나 부리는 사람은 저희 레스토랑 영업만 방해하는 사람이에요!”종업원은 김예훈을 여자 앞에서 허세를 부리는 사람으로 오해했다.김예훈은 종업원을 노려보며 말했다.“헛소리하지 말고, 하루 빌리는 값이 얼마예요?”“진짜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네요! 잘 들어요. 하루에 1억 원이에요. 빌리겠어요?”“하하하하하!”“돈도 없으면서 허세는?”넋이 나간 김예훈을 종업원은 한껏 비웃으며 말했다.김예훈은 레스토랑 내부를 힐끔 거리며 말했다.“하루에 1억은 너무 싸요. 앞으로 규칙을 바꿔야겠어요. 하
장기태의 장 씨 가문은 성남시에 삼류 가문이었다.장 씨 가문은 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김예훈의 투자를 받고 다시 살아났다. 장 씨 가문은 암암리에 김세자의 이름을 빌려 경쟁상대를 해치웠다.지금, 성남시에서 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경쟁상대는 얼마 남지 않았다.김세자가 다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장 씨 가문에서는 자신들의 주식 50%를 내놓아 CY 그룹의 계열사가 되었다.CY 그룹은 주식만 관리할 뿐, 장 씨 가문의 운영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장 씨 가문의 자산은 CY 그룹이 탐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하지만 CY 그룹이라는 대기업을 등에 업은 장 씨 가문은 예전보다 많이 날뛰었다.“음? 이거 누구야, 정소현 후배 아니야? 네가 왜 여기에 있어?”바람둥이 장기태는 지금 대학에 다니고 있다.고등학교 활동에 참가하면서 정소현을 만나고 깜짝 놀랐다.정소현에게 몇 번의 데이트 신청을 했지만 한 번도 허락하지 않았다.오늘 이곳에서 우연히 만날 줄 몰랐다.“아. 선배 안녕하세요. 오늘 예약하러 왔어요.”정소현은 평소에 장기태를 무서워했다. 그가 너무 허세를 부리고 날뛰고 다녀 상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자신에게 몇 번 데이트 신청을 할 때도 그는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허세를 부렸다.정소현의 말을 들은 장기태는 옆에 있는 종업원의 뺨을 때렸다.“팍!”“내 후배가 예약을 하겠다잖아. 당장 준비해. 알겠어?”종업원은 시무룩하여 말했다.“도련님, 아가씨가 예약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남자가 레스토랑을 하루 종일 예약하겠다고 했어요!”종업원의 말을 들은 장기태는 김예훈을 힐끔거리며 말했다.“후배, 이 아저씨는 누구야?”정소현은 김예훈의 팔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선배, 소개가 늦었네요. 제가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제 남자친구예요!”김예훈을 소개하며 정소현은 김예훈에게 더욱 바싹 붙었다.김예훈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정소현은 그런 그를 더욱 끌어안았다. 김예훈의 몸에 찰싹 붙었다.그 모습을
김예훈의 안색이 어두운 것을 본 정소현은 김예훈이 화가 났다고 생각하고 해명을 했다.“됐어요. 말뿐인걸요. 괜찮아요.”“우리가 오늘 이곳에 온 목적을 잊지 않았겠죠? 우리는 오늘 예약을 하러 왔어요.”정소현은 장기태를 보며 말했다.“선배님, 3일 뒤에 이곳을 빌리고 싶어요. 가능할까요?”비록 그녀는 화가 났지만 형부의 체면을 생각해 참기로 했다.장기태는 정소현은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안돼. 우리 레스토랑은 1달 전부터 예약을 해야 되는 곳이야. 전체를 빌려주는 규칙도 없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가능하다면 가능한 거야. 하루에 1억 8천.”그의 말을 들은 장기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돈이 아주 많으신가 봐요?”그가 땅에 침을 뱉고 말했다.“하지만 내가 그 돈이 모자라지 않아.”“눈 똑바로 뜨고 다녀. 우리 레스토랑에 오늘부터 규칙을 하나 추가해야겠어. 개 같은 사람은 출입 금지!”“도련님,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개 같은 사람인가요?”종업원이 말했다.“맞아. 그거야. 이 개 같은 남녀의 출입을 금지하겠다는 거야!”장기태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그의 말을 들은 정소현은 화가 치밀었다.일부러 좋은 말만 했는데 기회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사람 비하를 해?’“장기태, 너 뭐야? 너 일부러 그러는 거야?”“그래! 나 일부러 그런 거야!”“이 레스토랑 내가 운영하는 거야. 개보다 못한 사람이 들어와 어지럽히면 어떡해?”“왜? 화나? 그러면 날 물어!”장기태가 날뛰며 말했다.“그래, 가능하지 못한 것도 아니야... 오늘 우리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건 어때? 오빠가 기분 좋으면 참아줄게. 그러면 네가 우리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을 수 있어.”“하지만 네가 밥을 먹고 나오면 인테리어를 다시 해야겠지? 아니면 너무 더럽잖아!”“하하 하하..”장기태는 더욱 괴이한 표정으로 말했다.“너....”정소현은 이번에야말로 진짜 화가 치밀었다.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장기태 진짜 두고 봐!김예훈이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비웃자 정소현은 얼굴이 뜨거워졌다.그녀가 참지 못하고 김예훈의 옷을 잡아당기며 말했다.“형부, 우리 나가요. 다른 레스토랑을 예약해도 되잖아요.”“이 레스토랑이 마음에 들어. 장 씨가문에서 우리를 환영하지 않으면 주인을 바꾸면 돼.”김예훈이 말했다.“하하하. 그래. 내가 기다려줄게. 아직 3분이 남았어.”장기태가 시계를 보며 흥미진진하게 말했다.“1분...”장기태가 득의양양한 얼굴로 말할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김예훈의 앞에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김예훈 씨, 오늘부터 저희가 레스토랑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3일 뒤에 레스토랑을 비워드리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흉흉한 기세에 정소현은 몸을 흠칫 떨었다.형부가 진짜 해냈다고?전화 한 통으로 어떻게?진짜 믿을 수 없어!장기태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재밌어. 어디서 배우라도 섭외하고 장난치는 거야?”“아무 사람이나 데려와 우리 레스토랑을 운영하겠다고? 너 우리 장 씨 가문을 누가 보호해 주고 있는지 몰라?”장기태가 팔짱을 꼈다. 장 씨 가문은 CY 그룹의 계열사야. CY 그룹은 김세자가 직접 운영하고 있다고!그런데 아직도 감히 우리 레스토랑을 더럽혀?장기태가 김예훈에게 삿대질을 하려고 할 때, 휴대폰이 울렸다.“여보세요? 아버지 웬일이세요? 네 저 지금 회전 레스토랑에...”그때, 장기태는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전화가 걸려온 타이밍이 너무 좋지 않았다.전화기 너머 장 씨 가문의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렸다.“미친놈! 빨리 무릎 꿇고 빌어! 너 지금 누구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알아? 그분이 너를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 가문은 망했어!”“아버지 무슨 말이에요? 제가 누구 심기를 건드려요? 저 지금 무례한 가난뱅이들을 교육해 주고 있어요.”장기태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가 지금 얼마나 위대한 사람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모른다.“너 너
“정말 그런 거라면 내가 사람을 잘못 봤어. 그동안 너를 너무 몰라본 거야.”김서하는 진지한 표정으로 김현민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녀는 곧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수장이 될 사람이 한 여자 때문에 이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할 줄 몰랐다.“고모, 이것은 단순히 충동 때문에 하는 행동은 아니에요. 진주·밀양에서 오륜 사찰이 제 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김현민은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내뱉었다.“혜선 스님과 김예훈의 만남이 우연일지라도 누군가 이 기회를 이용해서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면 오륜 사찰과의 동맹이 무너질 수도 있어요. 더욱이 저는 남자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어요. 차라리 죽더라도 혜선 스님이 다른 남자와 얽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고요.”김서하가 손을 내밀어 김현민의 잘생긴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잠시 후에 말했다.“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현민아, 이제 곧 수장이 될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하는 말과 행동 모두 조심해야 한다고. 너만 아니었으면 나도 오늘 직접 나서지 않았어.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내 행동도 다소 충동적이었던 것 같아.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현명한 행동은 아마 잠시 숨죽이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을 따냈을 때 그 기세를 몰아붙여 김예훈 그놈을 죽일 수 있다고.”김서하는 김예훈이 미웠지만 잠깐 차에 앉아 있는 동안 차분해진 느낌이었다.그녀의 뺨을 때릴 수 있는걸 보면 정말 실력과 배짱을 가진 자임이 분명했다.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이런 사람과 무모하게 싸워봤자 방해만 될 뿐 아무런 좋은 점도 없었다.그래서 지금 해야 할 일은 신중히 계획을 세우고 나서 행동하는 것이다.김예훈한테 뺨 맞은 김서하는 두렵기도, 화나기도 했지만 정신을 차린 것도 사실이었다.적어도 과거의 그녀는 용전 안주인으로서,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서열 5위로서 절대 참을 일이 없었다.김현민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한참 뒤에 말했다.
토요타 알파드 문이 서서히 열리고, 김현민이 검은 우산을 들고 빗속을 뚫고 걸어왔다.그는 김서하더러 창문을 내리라고 하면서 문을 두드렸다.멍때리고 있던 김서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고, 김현민의 환한 미소를 보는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잠시 후, 그녀는 차에서 내려 그의 품에 기대어 나지막하게 말했다.“현민아, 나 실패했어. 설득도, 암살도 모두 실패했다고. 줄곧 다른 사람들한테 무능하고 한심하다고 했는데 김예훈 앞에서는 나도 그들과 다를 바가 없었어.”김서하는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김현민은 오른손을 내밀어 김서하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더니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얻은 정보에 따라 그 녀석이 오륜 사찰 뒷산 금지구역에 들어가 혜선 스님을 만난 거 맞아요?”김서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가 사실 오륜 사찰을 이용해서 김예훈을 죽이려 했어. 그런데 지금 보니 그 계획은 실패한 것 같아.”“어리석은 놈.”김현민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김예훈을 못 죽인 것도 모자라 혜선 스님이랑 만나게 했다니. 정말 한심하기 그지없는 놈이네요.”김현민은 더 이상 차분함을 유지하지 못했다.김서하든, 선재 스님이든, 남윤지든, 그저 주위를 맴도는 사람 일뿐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는 아니었다.이처럼 거대한 진주·밀양에서 김현민이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혜선 스님뿐이었다.하지만 아쉽게도 이 두 사람은 늘 애매모호한 거리를 유지해왔다.여자의 마음에 대해 잘 아는 김현민마저도 혜선 스님의 마음을 얻을 수 없었다.‘그런데 김예훈이 우연히 혜선 스님이랑 만났다고? 더군다나 혜선 스님 목욕탕에 뛰어들어서 알몸까지 봤다고?’김현민은 김예훈을 당장이라도 목 졸라 죽이고 싶었다.이건 그의 체면을 구겨놓은 것도 모자라 그의 자존심과 진심을 짓밟은 거나 다름없었다.터벅터벅.바로 이때, 김현민의 뒤에서 김병욱이 천천히 걸어왔다.빗속에서 서로 끌어안고 있는 두 남녀를 보고도 그는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
퍽.더 이상 선택지가 없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을 힘껏 내리쳤다.마침 양상철이 몸을 피한 덕분에 아마미네 토시로는 그의 필살기를 피할 수 있었다.하지만 그 여파로 상처에서 피가 스며 나왔다.몇 번 한숨을 내쉬어야 고통을 멈출 수 있었던 그의 얼굴에는 김예훈에 대한 증오가 더욱 짙어졌다.양상철은 표정이 일그러진 그를 보며 말했다.“내가 봤을 때 넌 미야다 신노스케보다도 못해. 신노스케는 그래도 김예훈 도련님이랑 공격을 주고받을 수 있었어. 그런데 넌 이미 겁에 질려서 김예훈 도련님의 공격을 피하지도 못했어. 사실 널 한 방에 죽일 수 있었는데 말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김예훈은 그냥 피도 안 마른 놈이야. 내가 이번에 급하게 출관하는 바람에 원기가 손상되지만 않았다면 걔가 미쳐 날뛸 수나 있었을까? 내가 일본에 돌아가면 1년 반쯤 수련해서 김예훈 그놈한테 내 실력을 제대로 보여줄 거야.”양상철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김예훈 도련님보다 못하다는 것을 인정했으면 너를 높이 평가했을 텐데 지금은 그냥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비겁한 놈으로 보여. 아마미네 토시로, 넌 정말 일본 무신과 야마자키파 검신의 체면을 완전히 구겨버렸어. 너의 손발을 잘라내서 김예훈 도련님한테 선물로 드릴 거야. 그러면 너도 일본에 돌아갈 일이 없겠지.”양상철은 또 한 번 아마미네 토시로가 있는 곳으로 손을 뻗었다.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똑같이 손을 뻗으려고 했는데 저 멀리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퍽.양상철이 미간을 찌푸린 채 몸을 약간 옆으로 트는 순간 총알이 그의 머리카락을 스치며 뒤에 있던 나무를 뚫고 지나갔다.양상철이 무표정으로 전방을 바라보았는데 산봉우리에 어떤 남자가 총을 들고 바위에 서 있는 것이다.그는 양상철을 향해 피식 웃으며 죽여버리겠다는 제스처를 하면서 또다시 총을 들었다.양상철은 바로 상대방이 평범한 사수가 아니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이 모습에 아마미네 토시로는 멈칫도 잠시 땅을 구르더니 쏜살같이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